* 진전사지 3층 석탑

 

 

 

 

 

 

***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6일간 강원도 일대를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인제 ☞ 속초 ☞ 양양 ☞ 강릉 ☞ 평창 ☞ 원주

 

 

 

 

2021년 2월 2일 화요일 .

 

화요일에는 일정을 두 개를 소화했다. 첫번째는 이전 포스팅에 언급한 속초 해수욕장과 외옹치 탐방이었다. 두번째는 양양군에 있는 진전사지와 둔전 계곡 탐방이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일정을 소화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속초와 양양이 서로 인접해있기 때문이다.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에 진전사지(陳田寺址)에는 국보 122호인 진전사지 3층 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진전사는 신라 현덕왕 13년(821)에 도의선산에 의해서 창건됐는데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곳이다. 교종에서 선종으로 바뀌는 시기에 토대를 마련했던 것이다.

 

- 경전이나 해석하고 염불을 외우는 일보다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도의선사의 주장이었는데 지금이야 별다를 게 없는 말이다. 하지만 저 당시에는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교종 중심의 불교는 신분 질서와도 일치했다. 왕이 부처, 귀족은 보살, 일반 백성은 중생으로 여겨졌다. 도의선사의 주장대로 하면 실제적으로 경전에 접근할 수 없었던 일반 백성들도 자신의 본연의 마음을 알면 득도를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당시 경주에 있던 승려들과 귀족들은 난리가 났다. 자신들이 누리는 안락함과 권위를 송두리째 뺏겨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들은 도의선사를 마귀라고 몰아붙였고, 이에 도의선사는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설악산 자락에 둥지를 틀게 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의 이익과 배치된다면 악착같이 달라든다. 그게 인간의 속성인지...

 

 

 

 

 

 

* 진전사지 3층 석탑

 

 

 

 

 

 

* 진전사지 3층 석탑: 상층부 기단에 8부중상, 1층 탑신에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진전사지로 가기 위해 물치해수욕장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 바로 앞에 송이버섯 등대로 유명한 물치 해수욕장이 있어 잠시 탐방했다. 물치 해변은 서핑으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그 추운날에도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휴~ 보기만 해도 춥더라. 그런데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더라.ㅋ

 

양양읍에서 진전사지가 있는 강현면 둔전리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4편 뿐이다. 그나마도 둔전리까지 안 가고 바로 아랫 동네인 석교리까지만 가는 버스도 있다. 필자가 그 버스를 탔다.^^ 석교리 정류장에서 둔전리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어갔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주위 풍광도 수려해서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진전사지가 설악산 자락에 있어서 그렇다. 실제로 화채능선을 따라가면 설악산 대청봉에 닿을 수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 루트로 설악산을 가보고 싶다. 물론 무자게 빡세겠지...ㅋ 둔전리 버스 종점에서 진전사지까지는 약 10분 정도 걸어간다.

 

진전사지 3층 석탑을 친견했을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석탑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둔전계곡의 자연적 아름다움과 3층 석탑의 인공미가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정교하게 표현된 3층 석탑을 보고 있자니 피로감이 싹 다 날라갔다. 문화재를 보면서 큰 희열을 느끼게 되다니! 역사트레킹을 행하다보니 직업병이 생긴거야~^^

 

진전사지 3층 석탑은 2단 기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상층 기단부에는 8부중상이 새겨져 있고, 탑신 1층에는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고부조, 즉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 솜씨가 무척이나 빼어나다. 사진으로 봐도 좋지만 직접 바라보면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참고로 8부중상은 불교를 수호하는 8종류의 신을 말한다.

 

진전사지 3층 석탑에서 5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새로 지은 진전사가 있고, 그 옆에 진전사지 부도가 있다. 도의선사의 부도인데 제작시기는 9세기 중반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진전사지 부도는 얼핏보면 석탑처럼 보인다. 석탑 형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부도들 하고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부도의 탑신은 8각형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한쪽면에는 길쭉하게 네모 문양을 새겼다. 감실 역할을 하는 네모인 거 같다.

 

둔전 계곡을 왔으니 당연히 계곡 탐방을 해야지. 새로 지은 진전사 앞에는 설악저수지가 있는데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다. 산 중턱에 큰 저수지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1980년에 준공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도 저수지가 있었다고 한다.

 

둔전 계곡은 장엄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단풍으로 유명한 설악산의 한 자락에 위치해 있으니 가을 때오면 눈이 아주 호강할 거 같다.

 

이렇게하여 진전사지 탐방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멋진 문화재와 멋진 풍광 때문에 눈이 호강한 날이었다.

 

 

 

 

 

 

 

* 진전사지 부도: 석탑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진전사지 부도: 탑신 한 쪽면에 길쭉한 네모를 새겼다. 감실로 여겨진다.

 

 

 

 

 

 

 

* 둔전계곡

 

 

 

 

 

 

 

 

*둔전계곡

 

 

 

 

 

 

 

 

 

 

 

 

* 속초 해수욕장: 빨간 다리가 설악대교이고, 파란색 다리가 금강대교이다.

 

 

 

 

 

 

 

***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6일간 강원도 일대를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인제 ☞ 속초 ☞ 양양 ☞ 강릉 ☞ 평창 ☞ 원주

 

 

2021년 2월 2일 화요일 .

 

전날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탐방이 어그러진 후 바로 속초시로 넘어갔다. 굳이 인제에 더 머물 필요가 없었으니까.

 

속초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들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속초 해수욕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옹치의 해안산책로였다. 속초 해수욕장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이라고 할만 하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약 3분 정도만 걸으면 속초 해수욕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승차를 한 후 2시 20분 정도를 달리면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할 수 있다. 그런 후에 약 5분 정도만 걸어가면 파도가 넘실대는 속초 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청과 가까운 동명동에는 속초 시외버스터미널도 있다. 사실 이 동명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하여 대포항에서 종료하는 역사트레킹 코스를 기획했었다.

 

동명항(영금정) ☞ 갯배 ☞ 아바이마을 ☞ 속초 해수욕장 ☞ 외옹치 ☞ 대포항

 

실제로 회원들을 모집해서 트레킹을 행한 적도 있었다. 속초는 워낙 유명한 동네여서 사람들이 올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속초 여행 안 해본 한국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기우였다. 생각보다는 반응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한 번 갔다고 두 번, 세 번 못 갈 것도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사람 냄새를 맡으며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검증된 프로그램을 원했던 것 같았다.

 

파도가 넘실대는 속초 해수욕장을 보고 있자니 속이 뻥 뚫리듯 시원해진다.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푸른 동해바다는 청량제와 같은 존재다. 철썩철썩 치는 파도에 일상의 찌든 피로를 씻어낼 수 있다. 그래서 접근성이 좋은 속초 바다가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 조도: 속초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조도. 새들의 고향이다.

 

 

 

 

 

 

 

 

파도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파도 사진을 몇 장 좀 찍어봤다. 날씨가 맑은 날았음에도 파도가 크게 쳐서 좀 의아하더라. 이것을 두고 너울성 파도라고 하는데 이런 너울성 파도에 의해 몸이 휩쓸려 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맑은 날에 파도가 크게 일어 좋은 사진은 찍었지만 자칫하다 파도에 휩쓸릴 뻔도 했다. 실제로 예상치를 훨씬 넘는 바닷물이 밀려와 바지가 젖어버렸다. ^^

 

모습이 항아리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외옹치는 속초 해수욕장과 인접해 있다. 설악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주봉산과 청대산을 거쳐 외옹치에서 바다와 만나게 된다. 바닷가에 불쑥 튀어나온 산줄기라 그런지 외옹치는 예로부터 무척 중요한 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예전에는 봉수대가 있었고, 근래까지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다 부대가 철수했고, 그 자리에 대형 리조트가 들어섰다.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해안 산책로가 만들어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해안 절벽 구간도 탐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예전의 외옹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외옹치와 그 옆 외옹치항은 꽤나 운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을 볼 수 없으니 참 아쉽다.

 

더불어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속초인데... 너무 많이 변해서 좀 당황스러웠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고층 빌딩들이 연이어 들어섰는데 얼핏 해운대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그 거주 시절들이 다 분양이 됐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도시가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너무 갑자기 변하면 적응하기가 힘들다. 속도 조절은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

 

 

 

 

 

 

 

*파도

 

 

 

 

 

 

 

 

* 파도

 

 

 

 

 

 

 

* 외옹치항: 외옹치를 바라본 모습. 정상부에 리조트가 있다.

 

 

 

 

 

 

 

 

 

 

 

* 남대천: 고사리 수변공원에서 찍었음.

 

 

 

 

 

 

 

***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6일간 강원도 일대를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인제 ☞ 속초 ☞ 양양 ☞ 강릉 ☞ 평창 ☞ 원주

 

 

2021년 2월 1일 월요일 .

 

유명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탐방하는 날이다. 전날 아침가리골 얼음트레킹을 행한 후 다시 현리로 돌아왔는데 시간이 저녁 7시경이었다. 서울에서야 오후 7시면 초저녁이지만 지역에서는 어두워지면 인적이 드물어진다. 그래서 인제읍으로 이동하지 않고 현리에 있는 모텔에서 1박을 했다.

 

얼마나 많은 군인 아저씨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까? 생각해보니 나도 20년도 더 전에 강원도 화천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아휴 그때만 생각하면 아주 징글징글한데 강원도의 자연은 정말 매력적이단 말야! 강원도는 아웃도어 천국이지...^^

 

현리에서 인제읍내까지는 약 3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윗길과 아랫길로 갈 수 있다. 현리에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가려면 고사리 수변공원까지 시골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현리에서 고사리 수변공원까지는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아랫길은 유명한 남대천을 끼고 있어 풍광이 아주 수려하다. 자칫 운전하는데 시선을 뺏겨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아니다를까 앞에서 사고가 났다. 아스팔트에 살짝 살얼음이 언 거 같았다. 안개도 끼었고. 하여간 사고 때문에 20분 정도를 버스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 자작나무 숲 입구

 

 

 

 

 

 

 

 

고사리 수변공원에 도착했다. 안개낀 남대천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자작나무 숲이 아니다. 수변공원에서 약 5km 정도를 걸어가야 자작나무 숲 입구에 갈 수 있다. 버스를 타라고? 자작나무숲 입구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편 되지 않는다. 그럼 택시는? 돈이 없다. ^^

 

그리고 필자도 나름 도보여행가인데 왕복 10km 정도는 항상 감안해야 하지 않나? 물론 자작나무 숲에 이동을 하면 거의 20km 정도에 달하겠지만...

 

고사리 수변공원에서 자작나무숲 입구까지는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었지만 나름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 걸을만 했다. 걸으면서 마을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는데 왜 버스편이 하루에 몇 편밖에 없는지 알겠더라. 아무리 자작나무 숲이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원대리는 그저 시골 동네였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이런 곳에 버스편이 많이 배치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뚜벅이 여행자들은 자신의 두 발을 믿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10km 이상을 걸을지 모르니까. 돈 없는 게 원수지...ㅋ

 

전날 아침가리골 얼음트레킹에서 힘 좀 뺐더니만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더군다나 배낭도 50리터 짜리를 메고 왔다. 배낭이 크니 마구 때려넣었다. 태블릿과 키보드를 세트로 넣고, 책과 다이어리 세트도 넣었다. 결론적으로 태블릿은 한 번도 전원을 안 켰고, 책은 한 장도 펼쳐보지 않았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숙소에서는 그저 TV만 붙잡고 있었다. 모텔만 다녀서 그런가? 성인방송이 잘 나오더군~^^

 

그나저나 저놈의 배낭 2014년도에 스페인에서 구매해서 잘도 써먹는다. 저 배낭으로 두 번이나 산티아고 순례길도 다녀오고 했으니 본전은 제대로 뽑은 셈이다. 사실 50리터짜리 새 배낭이 있긴 하지만 저 녀석이 더 끌린다. 그런데 왼쪽 사이드 포켓 자크가 고장이 났다. 하지만 고장이 났더라도 계속 쓸 생각이다. 여행의 동반자를 함부러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쉬엄쉬엄 걷다보니 어느 순간 자작나무 숲 입구에 닿았다. 자 이제 자작나무 숲으로 출발!

 

-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입니다. 이용에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의 핵심 부분을 가보지 못했다. 사진은 입구 바로 앞쪽에 있는 구간에서 찍은 것이다. 한마디로 맛배기만 보고 온 것이다. 자세히 알아보니 그간 코로나 때문에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입산 통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2월 3일부터 탐방이 재개가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이든 휴무일이든... 어쨌든 탐방을 하지 못했다.

 

세상 일이 다 그렇겠지만 여행도 합이 맞아야 한다. 기껏 갔더니 휴무이거나 공사중이라면 김이 셀 수밖에 없다. 물론 그 핑계대고 해당 지역을 또 방문할 수도 있다. 이번에 못 가면 다음에 또 가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검색을 해야 할 거다.

 

조만간 다시 자작나무 숲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때는 20km 정도 걸어야 할 거 같다. 통상적인 코스가 아니라 임도따라 쭈욱 걸어볼 생각이다. 이때 못 걸은 거 그날 다 걸어봐야지!

 

 

 

 

 

 

 

* 본전 뽑은 배낭: 필자대신 인증샷

 

 

 

 

 

 

 

 

 

* 자작나무 숲 초입

 

 

 

 

 

* 운영안내 현수막

 

 

 

 

 

 

 

 

 

* 아침가리골

 

 

 

 

 

 

***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5일까지, 6일간 강원도 일대를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인제 ☞ 속초 ☞ 양양 ☞ 강릉 ☞ 평창 ☞ 원주

 

 

2021년 1월 31일 .

 

강원도 동계 여행의 시작일이다. 아직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 때문에 좀 조심스럽게 움직였었다. 방역수칙을 항상 염두해 가면서 이동을 했었다. 뭐 물론 단독여행이었으니 누구랑 말 섞을 일도 없었지만...

 

이날의 일정은 강원도 인제군이었다.

 

인제오면 언제가나? 원통해서 어찌하리!

 

인제는 강원도 군번들의 특유의 푸념들을 다 담아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인제에서는 아침가리골과 원대리 자작나무 숲, 두 곳을 메인 탐방지로 삼아 방문할 생각이었다. 아침 일찍 동서울터미널로 향했고, 인제행 버스를 발권을 하려고 카드까지 꺼냈다. 그러다 딱 멈췄다. 아침가리골을 가려면 인제읍내보다는 현리터미널이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현리터미널은 인제군 기린면에 위치해 있는데 인제읍내에서 남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져있다.

굳이 읍내를 들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현리터미널행 시외버스에 탑승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현리터미널까지는 약 2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됐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든다. 기린면터미널로 불리는 것이 맞지 않나? 왜 '면'보다 '리'를 중시해서 현리터미널로 불리는지... 물론 그곳에 가면 '기린면터미널'이라고 입간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린면터미널이 아니라 현리터미널로 부른다. 동서울터미널 자동발권기에도 현리터미널로 적시되어 있다.

 

무슨 스토리가 있지 않을까? 사실 현리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전투 중의 하나로 불리는 현리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혹자들은 조일전쟁 때의 칠전량 해전, 병자호란 때의 쌍령전투와 더불어 한국전쟁 때의 현리 전투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3대 패전이라고 부른다.

 

1951년 5월 16일부터 22일까지 벌어진 현리 전투는 국군 3군단과 중공군 9병단이 맞붙었었다. 당시 중공군은 지금의 현리터미널에서 남서쪽으로 약 7킬로 정도 떨어진 오미재 고개를 점령한다. 오마치 고개라고도 불리는 오미재는 국군 3군단의 유일한 퇴각로이자 보급로였다.

 

문제는 중심을 잡고 지휘를 해야 할 군단장이 연락기를 타고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퇴각로가 봉쇄되어 동요를 겪고 있는데 지휘관이 도망을 가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렇게 도망간 이는 유재흥 중장이었다. 별 3개가 아깝다.

 

지휘체계가 무너지니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군인들은 오합지졸처럼 퇴각을 했는데 많은 인원이 중공군에게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히게 됐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워낙 급박하게 퇴각을 하다보니 무기와 보급품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떠났다는 것이다. 하나가 아쉬운 무기와 탄약, 보급품들이 중공군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다.

 

현리 전투를 두고 당시 미군 사령관인 밴플리트 장군은 격노를 했다. 그리고는 3군단을 해체시키고 한국군의 지휘권을 박탈시키기에 이른다. 현리 전투의 결과 때문에 아직까지도 전시작전권을 미군에게서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가리골 트레킹을 소개한다면서 현리 전투에 대한이야기를 너무 길게 한 걸까? 아니다. 아침가리골과 현리 전투는 서로 연관이 되어 있다. 아침가리골은 방태산에 자리잡고 있는데 3군단의 주요 퇴각로가 방태산이었으니까. 당시 군인들은 길도 없었던 그 험한 곳을 기어가다시피 했다. 사단장은 제복을 벗어던져 버리고, 장교들은 계급장을 떼어버렸다고 하니 얼마나 군기가 문란했는지 알 수 있다.

 

 

 

 

 

* 아침가리골

 

 

 

 

 

 

현리터미널에서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시작점까지는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가 다니는데 하루에 6편밖에 없다. 잘 확인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인아웃은 이렇다.

 

IN: 방동약수(방동약수마을)

OUT: 진동1리(추대)

 

하지만 필자는 인아웃을 거꾸로 했다. 진동1리로 들어가서 방동약수로 나온 것이다. 간간이 트레킹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나만 반대방향이었다. 뭐 이렇게 가나 저렇게 가나...ㅋ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침가리골은 계곡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여름에 인기가 많다. 허리까지 오는 계곡물을 박차며 걷는 맛이 제격인 곳이다. 그만큼 계곡이 깊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얼음트레킹을 하기에도 제격이라는 뜻이 된다. 수위가 원만하니 얼음이 훅 꺼진다고 해도

양말이나 젖는 정도가 될테니까.

 

어쨌든 여름 계곡트레킹의 천국같은 곳에서 얼음트레킹을 하겠다고 나섰다. 운이 좋았는지 여러 조건들이 받혀줬다. 기온이 비교적 온화했고, 바람이 불지 않았다. 하지만 전전날까지 강추위가 몰아쳐 얼음이 꽝꽝얼었다. 물론 군데군데 얼음이 깨진 구간도 있었지만.

 

사실 얼음트레킹은 쉽게 할 수가 없다. 갑자기 얼음이 쑥 꺼지면 어떻게 하는가. 또 그만큼 얼음이 얼어야 한다는 건 날씨가 추워야 한다는 뜻이다. 동장군의 위세에 맞서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필자도 정말 오랜만에 얼음트레킹을 하러 온 것이다.

 

챙겨온 아이젠을 끼고 열심히 걸었다. 아이젠을 끼고 걸었더니 얼음을 치고 나가는 소리가 계곡에 쩌렁쩌렁 퍼져나갔다. 간간이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계곡을 전세낸 듯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안전에 신경을 써서 그랬는지 계곡 구간의 종료점인 조경교 인근까지 한 번도 얼음이 깨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원래 사고는 막판에 일어나는 거야! 끝까지 조심해야 돼"

 

딴에는 경각심을 갖겠다고 혼자서 궁시렁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 우지찍

 

계곡 구간 막판에 얼음이 제대로 깨져서 오른쪽이 싹 다 젖었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몇 걸음을 종종 걸음쳤는데 또 얼음이 깨져 이번에는 왼쪽이 싹 다 젖었다. 그래 원래 사고는 막판에 일어나는 거잖아!

 

아침가리골 트레킹의 길이는 약 14km 정도다. 계곡 구간이 약 7km 이고, 임도 구간이 약 6km 정도 된다. 나머지는 마을입구까지 걷는 아스팔트 길이다.

 

방동약수마을 ☞ 방동약수 ☞ 방동리고개 ☞ 조경교 ☞ 계곡구간 ☞ 진동 1리

 

한 번 진입하면 나가는 길이 마땅치 않으니 그냥 열심히 걸으셔야 한다. 그렇게 경사가 심한 구간은 아니기에 트레킹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 도전해 볼만 하다. 하지만 중간에 매점은커녕 화장실도 없다는 걸 명심하셔야 한다. 벤치조차도 없다. 단단히 준비를 하시고 떠나셔야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얼음트레킹은 쉽게 하기가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의 하천은 갑자기 쑥 꺼지는 부분이 있기에 무척 조심해야 한다. 뭐 그걸 선녀탕이라고 부르는데 선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하여간 얼음트레킹을 하려면 여러가지가 받혀줘야 한다. 여러가지 돌발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저체온증이 올 수 있으니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렇게 단단히 준비를 해야만 설경과 빙설이

만들어놓은 환상적인 풍광을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 아침가리골: 필자 대신 가방으로 인증샷

 

 

 

 

 

 

 

* 아침가리골

 

 

 

 

 

 

 

* 아침가리골

 

 

 

 

 

 

* 아침가리골

 

 

 

 

 

 

 

 

 

 

 

 

<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8편> 불암산이 부처님 산이라고? _ 불암산 역사트레킹

 

 

 

* 불암사 뒤편 마애삼존불: 12지상이 호위하듯 서 있다.

 

 

 

 

 

 

 

- 목적없이 그냥 트레킹을 하는 것이 좋으신가, 아니면 주제성이 확실한 테마트레킹이 좋으신가?

 

수강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거의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테마트레킹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계신분들은 어떤 것이 좋으신가?

 

역사트레킹은 역사를 중심에 둔 테마트레킹이다. 역사트레킹이 거듭될 때마다 점점 더 큰 욕심이 생겼는데 테마의 강도를 더 높이고 싶은 욕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맨 처음 구체화한 것이 내사산(동: 낙산, 서: 인왕산, 남: 남산, 북: 북악산) 테마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외사산(동: 아차산, 서: 덕양산, 남: 관악산, 북: 북한산)으로 확장시켰다. 내사산, 외사산의 테마가 종료되니 새로운 주제에 대한 갈증이 일어났다. 그러다 목탁을 치듯 무릎을 쳤다. 사찰이 있었던 것이다.

 

 

 

 

 

 

* 불암사 일주문

 

 

 

 

 

 

● 부처님의 형상을 한 불암산

 

이번에는 불암사 역사트레킹이다. 불암사는 불암산에 있는 사찰로 동불암(東佛巖)으로도 불리는 서울근교의 4대 명찰이다. 4대 명찰을 알기 쉽게 정리를 해보자. 동쪽 - 불암사, 서쪽 - 진관사, 남쪽 - 삼막사, 북쪽 - 승가사.

불암산 역사트레킹은 서쪽편인 서울시 노원구에서 시작하여 동쪽편인 경기도 남양주시로 넘어간다. 그러니 불암산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는 게 먼저다.

 

필암산이라고도 불리는 불암산(해발508미터)은 이웃한 수락산과 더불어 바위가 많은 산이다. 거북바위, 해골바위, 백바위 등등... 형형색색의 바위들이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불암산이라는 명칭도 바위의 형상에서 도출됐다. 정상부 바위의 모습이 마치 송낙을 쓴 부처님의 모습처럼 보인다하여 불암산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송낙이 뭐지? 어려운 명칭이 나왔으니 잠시 정리하고 가자. 송낙은 송라립(松蘿笠)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여승들이 쓰는 모자를 말한다. 이 송낙은 소나무의 겨우살이인 송라를 엮어서 만드는데 얼핏 보면 지푸라기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양은 전체적으로 고깔모자처럼 생겼으나 맨 윗부분은 두상에 맞춰져 평평하다.

 

이렇게 설명해도 감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조각 피자를 생각해보시라. 먹음직스러운 조각 피자를 먹으려고 딱 준비를 했는데 누가 냉큼 한 입 베어 먹은 것이다. 조각 피자의 삼각뿔이 없어지고 마음은 아프고... 송낙을 쓴 부처님의 형상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곳은 불암산의 동쪽편이다. 그러고 보면 불암산은 부처님 자체인 거 같다.

 

“불암산, 불암산 하는데 이 산이 최불암 산이에요?”

“그럴 수도 있어요. 최불암 선생이 이 산의 명예 산 주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최불암 선생님은 좋겠어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도 하고, 산 주인도 하고요.”

“저도 정말 부러워요. 하하하”

 

 

 

 

 

 

* 불암사 가는길

 

 

 

 

 

 

 

● 불암산의 다른 이름, 필암산

 

불암산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마다 꼭 나왔던 말들이다. 물론 최불암 선생의 본명은 따로 있다. 최영한. 하지만 우리에게 최불암은 최불암이다. 송해 선생이 본명인 송복희가 아닌 송해로 우리에게 각인된 것처럼.

앞서 언급한 필암산(筆巖山)이라는 명칭도 살펴보자. 필(筆)자는 ‘붓필’인데 이 일대는 문방사우와 관련된 지명들이 나타난다. 인근에 있는 중랑구 묵동이 대표적이다.

 

묵동은 먹(墨)을 만드는 동네라고 하여 먹골로 불렸다. 먹골배가 생각나시나? 먹는다고 먹골배가 아니라 먹을 만든다고 먹골이었던 것이다.

 

노원구 월계동에는 ‘벼루연(硯)’자를 쓴 연촌(硯村)이 있었다. 이 곳은 ‘벼루말’이라고도 불렸는데 동네에 벼루처럼 생긴 연못이 있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종이, 붓, 벼루, 묵. 문방사우(지필묵연) 중에 종이만 빼놓고는 다 나왔다. 기왕이면 종이와 관련된 지명까지 만들어서 완전체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일부러 완전체를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문방사우와 관련된 지명을 배치했다면 종이지(紙)와 관련된 동네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가 가장 먼저 나오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필, 묵, 연의 지명을 쓴 건 이 일대의 지기(地氣)를 꺾기 위한 풍수적인 의도였다는 설도 있다.

 

 

 

 

 

 

* 불암산

 

 

 

 

 

 

 

● 숲길이 좋은 불암산

 

서론이 길어졌다. 불암산 역사트레킹은 4호선 상계역에서 시작한다. 바위가 많은 산을 골산(骨山), 흙이 많은 산을 육산(肉山)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따르면 불암산은 골산이다. 설악산이 대표주자로 많이 언급되듯이, 골산은 ‘악’자가 많이 따라붙는다. 치악산, 관악산, 월악산 등등... 이런 산들은 입에서 ‘악’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골산임에도 불암산은 어렵지 않게 탐방할 수 있다. 해발고도가 508미터로 그리 높지 않기도 하지만 딱히 ‘악’ 소리를 입에 달고 오르는 구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트레킹은 정상을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악’ 소리하고는 거리가 멀다.

 

현재 불암산의 서쪽은 서울둘레길 1코스(수락불암)에 포함되는데 완경사를 따라 걷는 길이 참 좋은 곳이다. 숲도 울창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많은 이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 곳이다. 숲이 우거진데다 흙길도 잘 정비되어있어 명품 숲길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숲길을 따라 걷다 둘레길 전망대에 올라 불암산 정상쪽을 바라보자. 암반면이 노출된 암봉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위들이 정말 매끈하지 않습니까? 저 위에서 쭈욱따라 미끄럼 타고 싶어요.”

“그래요. 말 나온 김에 시범을 보여주세요.”

 

재치 9단인 수강생들 앞에서는 농담도 조심해야한다.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저기보세요. 저 높은 바위에 뭐가 매달려있어요. 그리고 또 움직여요.”

“정말 그러네요. 저거 사람이에요? 어떻게 저길 올라갔데요.”

 

그곳은 학도암장이다. 그렇게 움직이는 이들은 암벽등반을 하는 이들이다. 로프에 몸을 싣고 암벽을 타는 이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하지만 너무 멋있어 보인다. 필자는 암벽을 탈 용기가 없다. 그냥 걷는 게 좋다. 그래서 트레킹을 한다. 참고로 학도암장 정상부에서 조금만 더 이동하면 신라 시대에 만든 불암산성을 만날 수 있다.

 

바위가 많은 산은 사람들을 상상의 날개를 펴게 만든다. 바위의 형상이 조금이라도 무언가와 비슷하다면 해당되는 이름이 붙게 된다. 해골바위, 거북바위, 범바위 등등... 거시기한(?) 바위도 있다. 남근석이나 여근석이 바로 그것이다. 불암산에도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는데 그 모양새가 꽤 사실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군다나 두 바위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여 음양의 조화를 제대로 펼치고 있는 모양새다. 다른 지역에는 남근석만 있거나 반대로 여근석만 있어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불암산은 그걸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천보사: 대웅전과 코끼리바위

 

 

 

 

 

 

 

 

● 하늘의 보물을 품은 천보사

 

이제 천보사 방면으로 이동한다. 불암산은 필암산 이외에도 천보산(天寶山)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천보산이라는 명칭은 세조가 지었다고 한다. 세조가 이 일대를 유람하다 아름다운 풍광에 매혹되어 천보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물음표부터 떠오른다. 불암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천보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산이 두 개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유명한 회암사지가 자리 잡고 있는 양주의 천보산이고, 다른 하나는 의정부의 북쪽에 위치한 천보산이다. 이 둘은 하나의 맥으로 연결되어 있긴 한데 그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다.

 

해발고도도 다르다. 양주의 천보산이 432미터이고, 의정부 천보산이 337미터이다. 이미 기존에 천보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산이 있는데 굳이 세조가 또 천보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가람을 품고 있는 산의 명칭이 어찌됐든 천보사는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사찰이다. 하늘의 보물을 품고 있는 있다는 뜻 아닌가.

 

천보사는 천연보궁(天然寶宮)이라고 불린다. 법당 뒤쪽에 병풍처럼 펼쳐진 코끼리바위가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풍바위처럼 비교적 평평한 암석면에는 마애불을 그려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창 선운사 마애불을 생각해보시라! 하지만 천보사는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암석을 부처님으로 보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천연보궁이라고 칭한다.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한 번 바라보세요. 저 바위에 부처님이 깃들어 계신데요.”

“잘 안 보이는데요.”

“마음속에 불심이 없으셔서 그런 거에요. 불심이 있으면 보입니다.”

“곽작가님은 보이세요? 설명 좀 해주세요.”

“아니... 제가 사실은 제가 시력이 안 좋아서...”

“피이... 자기도 못 알아보면서.”

 

그랬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더라도 부처님이 보이지 않더라. 물론 근래에 새겨놓은 석불좌상은 잘 보였다. 하지만 천연보궁에 깃든 부처님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필자에게는 부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불심이 없었던 것이다.

 

- 모든 돌은 그 내부에 조각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조각가의 일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말이다. 이 말에 의하면 모든 바위는 부처 바위가 될 수 있다.한낱 중생도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다. 천보사 코끼리바위에서 육안으로 부처님을 찾기보다는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게 더 좋을 거 같다. 아니면 바위에 ‘자비’ 두 글자를 그려 넣어도 좋을 것이다. 조각이든 글씨든 뜻이 통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거대한 코끼리 바위를 품고 있는 천보사는 그 자체로 절경이다. 그 아름다운 사찰에서 내려 보는 풍광도 아주 시원스럽다.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의 보물을 품고 있는 사찰이 맞다. 사찰을 떠나기 전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천보사 5층 석탑을 꼭 보고 오자. 천보사의 역사가 짧지 않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천보사

 

 

 

 

 

 

 

● 서울이 4대 명찰, 불암사

 

이제 마지막 탐방지인 불암사(佛巖寺)로 향한다. 천보사에서 불암사까지는 산길로 연결이 되어 있다. 좁은 오솔길을 걷는 맛이 참 좋다. 그런데 좀 위험한 구간도 있으니 발걸음을 조심하자.

 

불암사는 지증대사가 후기 신라시대인 헌덕왕 16년(824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불암사는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동불암이라고 불렸다. 서울 근교 4대 명찰은 세조의 명에 의해 지정된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재위 기간에 자신의 아들(의경세자)과 손자(인성대군)가 죽는 등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자신도 여러 가지 병치레를 했는데 금강산이나 오대산 같은 강원도 지역의 명산들에서 요양을 했기에 반드시 서울의 동쪽 지역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조가 천보사의 명칭을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세조는 그런 시련을 불심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도성밖 사방에 왕실의 발전을 기원하는 4대 명찰을 지정하게 된다. 동쪽 - 불암사, 서쪽 - 진관사, 남쪽 - 삼막사, 북쪽 - 승가사.

 

불암사에는 보물 제591호 불암사경판이 전해 내려온다. 이중 <석씨원류(釋氏源流)>라는 책을 찍은 목판이 있는데 이 <석씨원류>는 조선 후기 불교의 대중적 확산에 공헌을 했다고 한다. <석씨원류>는 중국에서 간행된 책으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일반 민중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중간에 그림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이 책은 1631년(인조9년), 정두경이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 가져왔는데 승려 지습이 1673년에 불암사에서 판각했다. 이후 <석씨원류>가 퍼져나갔고, 사찰 건물의 내외부에 부처님의 행적을 담은 불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글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그림만큼 좋은 교화 도구도 없었을 것이다. 성당에 그려진 성화들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1989년 불암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게 된다. 태국에서 3과, 스리랑카에서 4과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진신사리보탑을 건립하게 된다.

 

- 머리에 송낙을 쓴 부처님의 형상

- 부처님의 행적을 담은 <석씨원류> 목판

- 부처님의 사리를 담은 사리탑

 

서울의 4대 명찰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만큼 귀한 것들이 많기에 동불암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 하산을 할 시간이다. 제월루 앞에 있는 천보산불암사사적비도 놓치지 말고 보고 가자. 사적비는 1731년(영조7년)에 만들어졌다. 1994년에 만들어진 일주문에도 천보산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하여 불암산 역사트레킹이 종료가 됐다. 좋은 숲길을 걸으며 귀한 문화유산을 만나서 그런지 마치 하늘에서 보물을 선물 받은 거 같다. 덕분에 즐겁게 역사트레킹을 행했다.

 

 

 

 

 

 

* 불암사

 

 

 

 

 


 

 

 

 

 

 

■ 불암산 역사트레킹

 

1. 코스: 전망대 ▶ 남근석 ▶ 여근석 ▶ 천보사 ▶ 불암사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4시간(휴식시간 포함)

4. IN: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 / OUT: 불암사 ☞ 202번 버스종점에서 6호선 화랑대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음.

 

 

 

 

 

* 불암산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 보리암

 

 

 

 

 

*** 지난 11월 22일부터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11월 26일. 경상남도 남해군에서의 일정이 시작됐다. 남해에서는 보리암 탐방을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잡았다. 보리암은 상주면에 있는 금산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금산은 원효대사의 기도처였는데 원효대사께서는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에는 보광산이라고 불렸다. 그러다 이성계가 이 산에서 기도하였고, 마침내 왕으로 등극을 하였다. 이성계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산 이름을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금산은 산악으로서는 유일하게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금산은 빼어난 절경을 품고 있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시라. 눈이 다 즐거워진다.

 

그런 금산 정상 아래쪽에 보리암이 자리잡고 있다. 깎아질 듯한 지형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보리암은 다른 사찰들과는 다른 가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치 기암괴석들과 하나로 혼연일체가 된 느낌이랄까? 예전에 탐방했던 도봉산 원통암이 생각이났다.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과 어우러진 원통사의 모습이 보리암 앞에서 떠올랐다.

 

원통사도 우이암 정상부 아랫부분에 자리잡고 있고, 또한 우리나라 관음사상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물론 도봉산 원통사는 보리암보다는 덜 알려져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는 강화군 석모도 보문사,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홍련암, 그리고 보리암이다. 서해, 동해, 남해바다를 관음보살께서 살펴주시고 계신다. 더 정확히는 해수관음 성지다. 모두 바닷가에 면해 있으니까.

 

 

뚜벅이들은 보리암을 가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보리암을 가려면 남해읍내에서 상주면행 버스를 타야한다. 그리고는 보리암 입구(?)에서 하차한 후 약 30분 정도 복곡 1주차장이라는 곳을 향해 걷는다.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여기서 보리암의 관문인 복곡 2주차장까지 약 7km나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총 9km의 거리를 걸어가야 보리암을 탐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주차장과 2주차장 사이에 마을버스가 운행되기는 하는데 그건 성수기 때의 일이다. 배차 시간이 있는게 아니라 일정 정도 사람들이 모아져야 운행을 하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았는데 상주면행 버스에서 보리암을 가는 보살님 두 분을 만나 함께 택시에 동승했다. 9km 거리에 택시 요금이 1만원이었는데 셋이 나눠냈다. 난 3천원 냈다. ㅋ

 

 

사찰 탐방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보리암은 한 번 쯤 방문해보시면 좋을 거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룬 가람이 이색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리암 해수관음상 앞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의 모습은 정말 절경이다. 속이 다 시원해진다.

 

 

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그런가? 조금은 어수선하다. 산 꼭대기에 있는 사찰에 사람들이 붐벼서 좀 당혹스러웠다. 이런 말을 해서 좀 그런데... 마치 유원지 같았다.

 

 

 

 

 

* 보리암 3층 석탑: 왼쪽으로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마음이 거시기해서 일부러 상주은모래해수욕장으로 길을 잡고 내려갔다. 이곳은 금산 등산로로 향하는 길이기도 한데 상당히 경사가 심했다. 그래서인지 동굴인 쌍홍문 부근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 이 맛이지! 이렇게 호젓하게 탐방하려고 그 멀리 남해까지 온 거잖아!

 

보리암에서 금산 등산로 입구까지는 약 2km 정도인데 무척 가파르다. 하지만 등산에 자신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 해볼만 할 것이다. 택시 1만원이 없는 분들이라면 그쪽으로 가시는 것도... 나도 다음에는 금산 등산로로 올라가 볼 생각이다. 다리에 파스 좀 엄청 뿌리겠구먼~^^

 

상주은모래해수욕장까지 다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그냥 걷기로 했다. 어차피 해수욕장까지는 약 2~3km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도로옆을 지나가는 길이니 조심해야 한다. 참고로 금산 등산로 앞에 정차하는 버스는 복곡주자장도 지나가고 상주은빛해수욕장도 지나가는 버스다. 그 버스가 그 버스다.

 

상주은빛해수욕장에 가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렇게 바다가 보고 싶었는데... 결국 바다에 온 것이다. 모래사장도 어쩜 그렇게 좋은지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걸었다. 이토록 여유롭게 겨울바다를 걸어본 것이 얼마만인지!

 

남도라서 그런지 겨울인데도 바닷바람이 살랑거린다. 그 바람결이 좋구나!

 

 

 

 


 

 

*** 뚜벅이들을 위한 금산 보리암 가는법

 

A. 복곡주차장 방면으로는 가는 방법 

 

1. 남해군 읍내에서 상주면행 시골버스 탑승. 복곡주차장 입구에서 하차. 이때 버스기사에게 꼭 보리암으로 간다고 말을 해야함. 

2. 진행방향은 이렇다.  주차장 입구 -> 제1 복곡주차장 -> 제2 복곡주차장.

3. 제1 복곡주차장까지 걸어간다. 거리는 약 2km 정도.

4. 여기서 제2 복곡주차장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탄다. 제1주자창에서 제 2주차장까지는 약 7km 정도임.

주의할 점이 있음. 문제는 해당 셔틀버스가 비수기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차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일정 정도 사람이 모이면 운행되는 버스임. 

5. 정 안되면 보리암 경내까지 걸어간다. 예전에는 비포장 임도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되었다. 총 9km 정도를 이동하면 된다. 약 3시간 정도 잡고 걸어간다. 

6. 시골버스에서 하차 한 지점에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있음. 제2 복곡주차장까지 택시비 1만원임. 

 

B. 금산 등산로로 올라가는 방법

 

1.  역시 남해군 읍내에서 상주면행 시골버스 탑승해서 금산 등산로 입구에서 하차. 이때도 금산 등산로 입구에서 내리겠다고 이야기를 해야 함. 

2. 진행방향은 이렇다. 등산로 입구 -> 도선바위 -> 쌍홍문 -> 보리암

3. 등산로 입구에서 보리암까지는 계단도 많고 가파르다. 거리는 약 2km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넉넉하게 2시간 정도 잡고 산행을 하면 좋을 듯싶다. 

4. 가팔라서 그런지 등산로 입구에서 보리암까지는 아주 한적하다. 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은 마시고. 필자도 나중에는 이 코스로 올라갈 생각이다. 올라갈 때는 화끈하게 올라가야지~^^

5. 참고로 금산의  높이는 해발 700미터다. 보리암은 금산의 9부 능선 쯤에 자리잡고 있다. 

 

 

 

 

* 금산

 

 

 

 

 

* 금산 정상 망루

 

 

 

 

 

 

* 보리암

 

 

 

 

 

 

* 쌍홍문

 

 

 

 

* 금산 전경

 

 

 

 

 

 

 

* 상주은빛해수욕장

 

 

 

 

 

 

 

* 상주은빛해수욕장

 

 

 

 

 

 

 

 

 

 

 

 

 

 

 

 

*** 지난 11월 22일부터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11월 23일. 예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거창 양평동 석조여래입상을 보러갔다. 거창군 거창읍 양평마을에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실 경남 거창은 내게 친숙한 곳이다. 거창군 고제면에 거창 귀농학교가 있는데 그 귀농학교 교장선생님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해 전에는 귀농학교에서 한동안 기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듯 거창에 많은 발걸음을 해왔지만 정작 문화재 답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양평동 석불도 전에 한 번 답사하려고 갔다가 정확한 위치를 몰라 되돌아 온 적이 있었다.

 

석불이 있는 양평마을은 거창 읍내에서 가깝다. 직선거리로 약 2~3km 정도 된다.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걸어서 약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나도 읍내에서 걸어서 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가려고 지도를 계속 주시하고 걸었다.

 

사진에서보듯 양평동 석불은 뛰어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아주 잘 표현된 얼굴 부분, 옷주름까지 신경 쓴 신체부분... 정교한 멋이 살아있는 디테일이 강한 석불이다. 밑받침인 대좌까지 합쳐 총 3.7미터에 이르는 석불은 통돌로 되어 있다.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니! 그것도 천 년도 훨씬 전인 신라 후기에 만들어졌다니!

 

사실 이 양평동 석불은 1970년대에 복원을 하였다. 그 전에는 하반신이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머리 위에 있는 천개도 같이 올렸다고 한다. 원래부터 천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실수에 의해 올려진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참고로 석불 머리 위에 얹혀진 둥근 모자 같은 걸 천개 혹은 보개라고도 부른다.

 

솜씨 좋은 석공이 만든 석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흐믓해진다. 섬세하게 잘 표현된, 거기에 보존 상태까지 좋은 석불을 보니 자연스럽게 합장을 하게 됐다. 더군다나 아주 가까이까지 가서 볼 수 있으니 그 감동이 두 배가 되더라. 마치 한 편의 완벽한 예술 작품을 보고 온 느낌이었다.

 

이렇듯 우리 문화재는 후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정말 눈이 호강한 날이었다.

 

 

 

 

 

 

 

 

 

 

 

 

 

 

 

 

 

 

 

* 농월정

 

 

 

 

*** 지난 11월 22일부터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경남 함양군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 트레킹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지리산 둘레길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함양에는 지리산 둘레길말고도 '화림계곡 선비문화탐방로'라는 계곡트레킹을 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 있다.

 

일명 선비문화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함양군 서하면부터 안의면까지 약 9km에 걸쳐 이어진 길이다. 총 연장이 총 9km면, 도보여행길 치고는 무척 짧은 편이다. 지난 10월 31일에 개통된 남파랑길을 보라. 총 연장이 무려 1470km라고 하니까.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를 논할 때, 흔히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여기서 '우 함양'을 '우 안의'로 바꿔도 될 만큼 안의 지역은 풍부한 선비문화를 창달했던 곳이다. 선비문화길이 있는 화림동(花林洞) 계곡은 용추계곡이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심진동(尋眞洞) 계곡, 거북바위로 유명한 원학동 계곡과 더불어 안의삼동(安義三洞)이라고 불렸다. 원학동, 화림동, 심진동이 안의 지방의 3대 계곡이라는 뜻이다.

 

안의는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으로, 면 단위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안의현이라 불리며 함양, 거창과 함께 그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한다.

 

주변에 큰 산들이 많은 이 일대는 예로부터 정자가 많기로 유명했다. 큰 산들이 뿜어내는 풍부한 유량과 평평한 너럭바위들은 풍류객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충분했을 것이다. 그때도 막걸리 잔부터 돌렸을까?ㅋ

 

사진에서 보이듯 화림동 계곡은 매우 완만하게 이루어져있다. 통상적으로 계곡이라하면 급경사와 급류가 떠오르는데 화림동 계곡은 평평한 모습이다. 그래서 선비문화길의 난이도는 '하'이다. 통상적인 계곡트레킹이 '중' 이상인 것을 생각해보시라. 큰 부담없이 계곡길을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일대는 정자가 많이 있다. 그래서 선비문화길은 정자를 따라 걷는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스는 이렇게 된다.

 

거연정 ☞ 동호정 ☞ 농월정

 

이렇게 하면 약 6km 정도다. 6km 정도로는 성이 안 찼다면, 3km를 더 걸어 안의면 버스터미널까지 가면 된다. 그래서 총 연장이 9km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의 6km를 추천한다.

 

 

 

 

 

* 거연정

 

 

 

 

 

* 거연정 자연석 주초

 

 

 

 

 

트레킹의 시작은 거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번에 갔을 때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거연정의 주춧돌이었다. 사진에서보듯 거연정은 계곡의 바위 위에 지어졌다.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지어지다보니 통상적인 주춧돌이 쓰일 수 없었을 것이다.

 

보통 건물의 주춧돌은 잘 다듬어져 있다. 하지만 '덤벙주초'라고 해서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주춧돌로 삼기도 했다. 그러면 주초가 나무기둥에 맞혀지는게 아니라 반대로 나무기둥이 주초에 맞혀지게 된다.

 

그런데 거연정의 주춧돌은 덤벙주초를 넘어 아예 울퉁불퉁한 계곡 바위다. 그러니 나무 기둥도 그에 맞춰 생김새가 아주 독특한 것이다. 전에는 잘 모르고 넘어간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가니 눈에 확 들어왔다.

 

동호정 앞에는 차일암이라고 불리는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다. 이 차일암은 하도 커서 100명이 동시에 앉을 수도 있다고 한다. 족구도 한 판 할 수 있을 거 같이 차일암이 크긴 크더라.

 

마지막으로 농월정을 탐방했다. 선비문화길의 하이라이트 같은 곳이 바로 농월정이다. 농월정 앞은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크게 펼쳐진 곳이다. 확 트인 곳에 시원스럽게 물줄기가 흐르고 있고, 큰 너럭바위들까지 펼쳐져있으니 '음풍농월' 하기에 제격이 아니던가!

 

그랬던 농월정이었지만 2003년에 큰 아픔을 겪게 된다. 누군가 방화를 해서 농월정이 전소된 것이다. 아주 천벌을 받을 놈이지! 소중한 문화재를 왜 망가뜨리냐고!

 

지금 보는 농월정은 2015년 9월 16일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다시 지어졌을 때는 칠이 칠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화려하게 단청까지 칠해져있었다.

 

무리없이 계곡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인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로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끄적이다보니 다시 가고 싶네~^^

 

 

 

 

* 거연정

 

 

 

 

 

 

* 동호정

 

 

 

 

 

 

 

*화림동계곡

 

 

 

 

 

 

 

* 소나무숲: 농월정 가는 길

 

 

 

 

 

 

 

 

 

* 농월정

 

 

 

 

 

 

 

 

 

얼굴이 두껍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꾹 참고 써본다. 내가 추천하는 브런치북은 <트레킹은 생각창고>다. 그렇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내가 쓴 작품이다. 잘나도 내 작품, 못나도 내 작품이기에 염치불구하고 추천을 해본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사연이 많은 원고다. 이 원고의 오리지널 제목은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었다. 오리지널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 원고는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행한 역사트레킹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트레킹은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라 트레킹을 행하며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아주 고급진 아웃도어 활동이다. 역사트레킹은 아웃도어에서 행해지는 터라 요즘 같이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시절에도 실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원고들에는 내 역사트레킹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있다. 처음 작성했던 원고가 2013년도였고, 브런치북으로 간행된 것이 2020년 6월이었으니 약 7년이란 시간동안 숙성이 된 원고라는 뜻이다.

 

 

 

 

 

 

 

7년 동안 자연 상태로 두지는 않았다. 무척이나 휘저었다. 서울과 경기, 그리고 에필로그인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총 20화로 엮었는데 재작성만 10번 이상을 한 꼭지도 있었다. 그렇듯 재작성도 만만치가 않았다. 글을 새로 한 편 쓰는 정도의 에너지가 들 필요했으니까. 그만큼 제대로 쓰고 싶었고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게 원고가 손이 많이 갔다는 건 외부적인 충격이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원고는 출간 제의를 3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3번 다 처참할 정도로 차였다. 그렇게 출간이 불발됐으니 이렇게 브런치북 공모전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번 공모전까지 떨어지면 도대체 몇 번을 차이는 거지?

 

- 우리출판사는 역사서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내용을 보강해주세요.

- 적어도 30꼭지는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분량으로는 부족합니다.

- 트레킹에 중점을 둔 실용서가 우리의 방향입니다. 맛집이나 주변관광지를 포함하는 건 당연하고요.

- 글 앞뒤에 있는 에세이 부분을 더 강조해주세요.

 

각기 다른 3곳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하다보니 요구 멘트도 중구난방이었다. 거기에 휩쓸리듯 원고에 손을 댔던 것이다. 그러니 재작성을 10번 이상한 원고도 나오게 됐다. 제목도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서 <트레킹은 생각창고>로 변경을 하게 됐다.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쓰고 고치고를 여러번 하다보니 웬만한 오탈자나 비문은 다 잡아냈다. 추가된 내용들도 원문글에 잘 녹였다. 시간이 갈수록 잘 숙성 된 듯싶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읽기만 하면 되는데...

 

10km짜리 역사트레킹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 100km 이상을 탐방해야 한다. 한 번 갔던 길을 여러번 반복해서 가야한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길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또 가고, 또또 가야 하는 것이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더 알찬 내용을 담기위해 눈을 비비며 글을 작성했었다.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만큼 교차검증을 철저히 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한 시간 이상 걸린 적도 있었다. 그만큼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못난 그림 솜씨로 지도도 그려 넣었을까! 이해도를 높이려고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만든 <트레킹은 생각창고>였지만 생각만큼 성적이 신통치가 않다.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게 글이 길어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설명식의 딱딱한 글이어서 그런가?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하지 않던가. 성적이 좋든 나쁘든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내게는 자식처럼 아주 소중한 존재다. 잘났든 못났든 어쨌든... 내 소중한 작품이다.

 

 

*** 브런치북을 소개하는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올 가을경에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여행플랫폼에 역사트레킹을 런칭했다. 3년 정도 5060세대들을 집중 타겟으로 트레킹을 진행했었는데 그것을 좀 탈피해보고자 그렇게 한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많아 좀 놀랬다. 기존 수강생들은 대다수가 단독으로 참가를 하거나 친구끼리 참여를 했었기 때문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모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고, 일가족이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가족 단위로 트레킹을 행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좋았다.

 

오늘 마이리얼트립에서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리뷰 메일을 받았다. 내가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문서 형식의 리뷰를 보니 좀 신기한 느낌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런 방식의 리뷰는 흔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잘 보시라! 성적이 꽤 괜찮지 않나? 올 A+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못하고 성적도 꽝이었는데... 역사트레킹 때문에 좋은 성적표도 받아보네~^^

 

ps. 코로나 때문에 아주 버라이어티했던 2020년도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 저런 뜻하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니 기분은 좋다. 좋은 성적 받았으니 누가 표창장 안 주나...ㅋ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