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부터 27일까지 9일간 남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휴가 겸 도보여행 겸 답사여행 겸... ^^

대략적인 경로는 이렇습니다. 

포항 -> 영덕 -> 언양(반구대) -> 양산(통도사) -> 부산 -> 통영 -> 여수 -> 전주

주로 시외버스로 이동했더니 9일 동안 꽤 많은 곳을 다녀갔네요.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장소도 꽤 됩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여행일지 식으로 풀어서 작성할게요. 오늘은 비렁길로 유명한 금오도 사진만 살포시 놓고갑니다. '비렁'은 그 지역 방언으로 '벼랑'이라는 뜻입니다.  

금오도는 예전부터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비렁길이 개통되고 나서는 더욱더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딛는 섬이됐습니다. 제가 금오도에 입도했을 때는 평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비렁길을 탐방하더군요. 뭐 늦은 휴가를 오는 사람도 있긴 있었겠죠. 하여간 비렁길은 금오도를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관광자원으로 자림매김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금오도, 아름다운 비렁길!


그런데 한가지! 
비렁길이 좋기는 하지만 금오도까지 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여수까지 온 후 배를 타고 금오도까지 가야하니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비렁길을 걷기에는...ㅋ
















새로 제작한 표식광고문! 

예전에 표식물로 사용했던 현수막은 천막 가게에 주문을 하면 알아서 다 해줬다. 가격도 저렴하게 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2만 원정도였지 아마... 


하지만 현수막은 재질이 천이라서 그런지 비를 맞으면 곰팡이가 피었다. 나중에는 너무 더러워져서 남들 보여주기가 창피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깔고 앉을 수 있게 깔개로 사용했다. 


이번에는 아예 발상을 바꿔서 현수막이 아닌 다른 재질로 표식물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천에다가 큰 붓글씨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붓글씨를 못 쓰는터라...ㅋ


고민 끝에 대형 인쇄를 한 후 특수코팅을 하기로 했다. 전에 특수 코팅을 몇 번 해봤는데 꽤 괜찮았기에 도전을 해봤던 거다. 


그래서 효과는?


곰팡이가 필 염려도 없고, 내구성도 튼튼한 표식물을 득템하게됐다. 예전 현수막을 사용했을 때보다 가격은 더 비싸고 좀 복잡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잘 만든거 같다. 크기도 더 작아졌는데 전 아담하게 보여서 더 좋더라.


크기만 큰 현수막보다는 한 사람이 들고 있기에 딱인 이 표식물이 더 좋다!


이제 무언가가 되는 느낌이 드네요. 표식물 제작에 한참 고민을 했었거든요. 아자아자! 올 가을에 대박날 거 같아요!^^;






















참 세상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전 포스팅에도 언급했듯이 난 요즘 햄스트링이 올라와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원래 이 시기에 야간트레킹을 할 생각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할 예정이었는데 모두 다 폐강이 된 것이다. 솔직히 좀 마음이 많이 상했다. 

그 야간트레킹을 예상하고 노원50플러스센터에 기본 강좌(6주)를 하나 개설했었다. 야간트레킹만 하는 것보다 그게 좀 나을 거 같아서 그렇게 한 것이다. 한 여름에 개강하는 거라 좀 무리수를 두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을까!

"개강을 하긴 했는데요 한 여름에 행하는 거라 걱정이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좀 생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기본 강좌는 강사료가 무척 저렴하다. 그저 실비를 받는 수준이다. 그래서 우선 순위의 강의는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집에서 노원50은 꽤나 멀다. 현장에서 직접 만나는 실외수업 위주지만 해당 지역 기반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영등포50에서 강의할 때는 서울 서남부 지역을 코스로 몇 개 꼭 집어넣는 것처럼 말이다. 

강사료도 저렴하고, 거리도 먼 곳이니... 말그대로 메인이 아닌 사이드 개념이었다. 야간 트레킹이 메인이었고 노원50 강의가 사이드였다. 하지만 메인이라고 생각했던 야간 트레킹이 다 날라가니...ㅋ
노원50 기본 강의만 남은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딱 이것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주간 꼼짝없이 서울에 묶여있었다. 만약 그 기본 강의가 없었으면 난 한참 남도에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남도 도보여행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야간트레킹이 다 날라간 것에 대한 아픔을 삭이면서...ㅋ

진짜 그렇게 남도 여행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내 햄스트링은 엄청 크게 손상됐을 것이다. 물리치료가 아닌 입원을 했을지도 모른다. 또 거기서 끝날까, 재활을 받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지.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다시금 곱씹어진다. 

메인 강의는 다 날라가고 사이드라고 생각했던 강의만 남아 속이 많이 상했는데 그 사이드 강의 때문에 햄스트링 치료 기간을 얻었으니 이게 바로 새옹지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 정형외과에 갔을 때는 무릎이 좀 욱신거려서 갔었는데 생각외로 햄스트링 이상이라고 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이제 그 '사이드'였던 기본 강의가 6주 간의 일정을 마치고 7월 29일에 종료된다. 정형외과 물리치료도 7월 29일에 종료될 예정이다. 날짜를 너무 잘 맞춘 거 아니야! ^^;
















여차여차해서 2019년 상반기가 종료됐다. 올 상반기는 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작년 겨울에 세웠던 일정들이 생각만큼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 지금 왼쪽 무릎과 종아리쪽에 이상이 생겨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당분간 물리치료를 해야할 판이다.

예상했던 것에서 어긋나고 막판에는 병원 신세까지!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거 같다.

커뮤니티 문제도 그렇다. 무슨 커뮤니티 하나 만드는데 그렇게 까다롭던지... 이건 첨언을 해야겠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실타래가 풀리니까.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을 계속했지만 나는 트레킹 강사다. 역사트레킹 강사. 단순히 리딩만하는 것이 아니라 포인트를 찍어서 그곳에서 해설도 한다. 그래서 내 강의가 인기가 좀 많았다. 그래 좀 잘난체 좀 했다... ^^;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트레킹의 주 소비층은 50~60세대들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시50플러스센터에 기반을 두고 강의를 했다. 50플러스센터는 명칭에도 나와있듯이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중년층 세대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5060세대들과의 만남이 간절히 필요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그곳에 노크를 했던 것이다.

50플러스센터는 한 곳만 있지 않고 여러곳이 있다. 나는 집과 가까운 영등포50플러스센터에서 주로 강의를 했었다. 그외에도 도심권50플러스센터와 노원50플러스센터에서도 강의를 했다.

지난 2년 정도를 영등포50플러스센터에서 정식 강의를 행했는데 앞으로 정식 강의는 어려울 거라는 전언을 통보받았다. 트레킹 강의를 못한다는 건 수강생들한테도 나한테도 참기 힘든 일이었다. 트레킹으로 얻는 효용은 생각보다도 더 컸던 것이다. 사실 내가 코스를 진짜 좋은 곳들만 갔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대안으로 커뮤니티가 제시됐다. 뭐 한마디로 말하자면 동아리다. 트레킹 동아리.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건 좋았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만들기까지가 예상외로 까다로웠다. 다른 여타 커뮤니티는 잘도 만들어지는데 우리 커뮤니티만 계속 진도를 못나가고 있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커뮤니티명은 내 강의명과 동일하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만드는 건 어려웠지만 그래도 한 번 만들어지면 다음은 일사천리로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 나만의 착각!

정식 강의는 접수 10분 만에 마감을 친 적이 있을 정도로 내 강의는 인기가 많았다. 내가 좀 노력을 했었다. 좀 더 입소문을 타게, 좀 더 많은 이들이 오게... 그렇게하려고 답사도 많이 다녔고, 현장해설을 위한 자료 준비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커뮤니티 체제로 넘어오니 마감은커녕 최소인원 달성도 안 되는 강의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결국 어떻게 됐는지 아는가?

폐강! -_-

정식 강의와 커뮤니티 강의는 외형적으로는 99% 동일하다. 다를게 거의 없다. 하지만 정식 강의는 50플러스센터의 인프라를 타고 널리널리 홍보가 된다. 그러니 인기가 좋은 강의는 하루만에 마감이 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커뮤니티 강의는 말그대로 동아리에 소속된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니 호응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런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폐강

내가 런칭한 강의는 거의 다 하루만에 마감을시켰다. 가장 길게 간 것이 72시간 마감이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시작 10분 만에 마감시킨 것도 있었다.

그랬던 내 강의가 계속 폐강을 때리니... ㅋ 예상하지 못한 폐강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또한 폐강이 되니 일정도 무척 꼬였다. 순서지가 아주 어그러졌다고 해야 하나. 스텝이 완전 꼬여버린 것이다.

솔직히 승승장구하다가 무언가 확 꺾인 느낌이다.

1. 더이상 정식 강의는 없다.
2. 대안으로 커뮤니티 강의를 개설할 수는 있었지만 계속 '폐강'을 찍었다.
3. 앞으로도 폐강을 찍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상반기 시즌이 끝나고, 이제 트레킹 비수기 시즌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이런 엇박자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가을단풍트레킹 시즌이 오면 커뮤니티 강의도 마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제 강의가 짤릴지 모르는... 그런 불안감을 항상 달고 살아야 하는게 이 바닥의 생리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성수기와 비수기가 너무나 명확히 갈리는 이 트레킹 바닥의 구조상의 한계를 내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다는 점도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뭐 투잡하면 되겠지만 그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일정도 꼬여버리고 다리도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터라 좀 답답하다. 항상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처럼 보여 내 자신이 미워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것도 팔자가 아니겠는가.

사실 트레킹 강사로 밥 벌어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프리랜서 바닥에서 월 300만원 이상 버는 프리랜서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확 갈리는데 더하면 더했지!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일단 다리 치료에 만전을 기할 셈이다. 또한 다가올 가을트레킹 준비에도 소홀함이 없게 해야지. 가을 금방올거다. 올 가을트레킹은 정말 재밌게 해 볼 셈이다.


지금이야 폐강이지만 가을트레킹 때에는 조기 마감이다~!!!


ps. 투잡 준비중입니다. 웹소설이요.





















다이어리 첫 장에 2019년 목표를 적어놓았다. 남들처럼 연초에 결심하는 뻔한 것들을
기술하였다. 어차피 그렇게 정한 목표들이 성공할 거라고 기술한 건 아니었다. 작심삼일은
둘째치고, 해당 목표들이 성공 / 실패로 딱 떨어지는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 불교, 생태에 관심 갖기
2. 독서 많이하기

뭐 이런 목표들을 성공 / 실패 틀거리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난 계속 불교와 생태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고, 그에 대한 시간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불교와 생태에 대한 나의 내공이 확
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패를 하지 않았지만 성공을 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다. 

독서도 그렇다. 책을 계속 읽고 있기는 하지만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실패를 하지 않았지만 성공을 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런데 올해 확실히 한 가지 성공한 목표가 있다. 이제 상반기가 지났을 뿐인데...

3. 트레킹 코스 60개 이상 확정하기

정확히는 2019년 7월 3일 현재 58개이니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확정을 앞둔 예비 코스가 3개이니 목표 성공이라고 과언이 아니다. 

트레킹으로 밥을 먹고 사는 나에게 트레킹 코스는 생명줄과도 같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하지만 코스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뭐 그까이거 지도보면 다 나오는 거 코스 하나 짜는 게 뭐가 어렵다고 징징대고 있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까이거 대충~' 하기에는 코스 만들기라는게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나 혼자 행하는 트레킹이라면 고민을 할 필요도 없지! 하지만 난 수강생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대중트레킹 강사다. 대중트레킹을 행하는 만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코스를 기획해야 한다. 

* 역사유적이 있어야 한다.
* 화장실이 최소 2개 이상되야 한다. 
* 숲길이 적어도 50%이상 되어야 한다. 
* 스토리텔링이 있는 코스여야 한다. 
* 전망대가 있으면 좋다.
* 팔각정 같은 시설이 있으면 좋다. 우천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 계절적 특성에 맞는 코스가 좋다. 갈대가 있는 구간은 가을, 봄꽃이 피는 구간은 봄에 배치한다.
* 너무 완경사로만 다니면 지루할 수 있다. 적절한 높낮이가 있어야 한다.

혼자 다닌다면야 이런거 저런거 다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트레킹으로 밥을 먹고 살려면 이런거 저런거 다 고려해야 한다. 그게 수강생들이 내게 바라는 점이다. 

하여간 요즘 트레킹 코스를 짜기 위해서 열심히 발걸음을 분주히 옮겨댔다. 10km 짜리 코스를 만들기 위해 100km를 탐방한 적도 있었다. 

실외강의(트레킹) - 답사 - 자료정리 -실외강의 - 답사 - 자료정리- (가끔) 실내강의 - 답사







계속 이렇게 일정이 반복되다 보니 좀 탈이 났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강행군을 하다보니 몸살이 제대로
걸린 것이다. 뭐 일하다보면 몸살도 걸리고 약도 먹고 그러는 거지... 

그렇게 몸살을 걸리면서까지 움직였더니 2019년 목표 중에 한가지를 조기 달성하게 된 것이다. 

* 트레킹 코스 60개 이상 확정하기!!!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아직 하반기가 남아 있는데 목표를 달성하다니! 내일은 내 자신에게 선물을 하나 해야겠다. 맛난 거라도 하나 사 먹어야지.

목표가 조기에 달성됐다고 하더라도 난 앞으로도 계속 답사를 다녀야 한다. 

* 트레킹 코스 75개 이상 확정하기!!!

목표를 상향했기 때문이다. 올 해까지는 힘들고, 내년 2020년까지 달성할 생각이다. 시간적 여유는 있으나 좀 만만치 않은 구간을 탐방해야 한다. 몸살약을 달고 살아야 하나? 조절 좀 하면서 다닐란다. 

트레킹 강사가 체력이 저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잖아! ^^;
 





















5월 31일과 6월 13일.

뜀뛰기를 하듯 도봉산 역사트레킹을 행하고 왔습니다. 5월 31일 금요일에는 영등포역사트레킹 커뮤니티에서 행하는 커뮤니티 강의를 6월 13일에는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강의 때문에 도봉산을 열심히 탐방했답니다. 뭐 물론 도봉산에 있는 둘레길을 위주로 탐방을 했었답니다. 항상 그래왔잖아요^^;

양이틀 모두 날씨가 덥기는 했지만 가시거리는 꽤 좋더군요. 그래서 풍광을 감상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도봉산은 인접해있는 북한산과는 또다른 멋이 있습니다. 암반 노출이 많은 북한산이 강한 느낌을 전해준다면 도봉산은 좀 유한 느낌입니다. 뭐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다르니까요~

이번 도봉산 역사트레킹에서의 백미는 쌍둥이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었습니다. 쌍둥이전망대는 무수골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 서면 도봉산과 북한산은 물론 동쪽의 수락산과 불암산, 멀리는 한강 넘어 관악산과 남한산까지 조망을 할 수 있답니다. 서울에 있는 둘레길 전망대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좋은 전망을 품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시원한 풍광을 감상한 도봉산 역사트레킹은 무사히 잘 종료가됐습니다. 더워서 그랬는지 저는 끝나고 아이스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켰답니다. 저 말고도 그러신 분들이 많으셨다고 하네요. 아니면 아이스크림을 드신 분들도 계시고... 트레킹의 뒤풀이를 그렇게 하셨던 셈이죠. 땀흘린 후에 마시는 아이스커피 한 잔! 아이스크림 하나!

카~ 좋다!^^;
 
      


















 


평소 서울에 있을 때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뭐 매일 비스무리한 일상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ㅋㅋ 아니다. 게을러서 그랬다. 그래도 일상을 육필로 기록하고 싶은 생각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하지만 장거리여행을 할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꼬박꼬박 일지를 작성하였다. 올 겨울에 다녀온 이베리아반도 여행도 51일 내내 여행일지를 깨알같이 작성하였다. 다이소에서 천원에 사간 기자(?)수첩을 한 권 다 채웠으니까.

 

말 그대로 여행일지였지만 여정 와중에 느낀 감상들도 기술했으니 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 자신을 소개할 때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직함 말고도 '여행작가'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다. 그래서 누가 여행을 하며 삶이 확 바뀌었다고 하면... 물음표부터 걸어둔다. 뭐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렇다치고.

 

그 전에도 가기는 했지만 딱 10년 전 여름경에 행한 국토종단 자전거여행부터 내 장거리여행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름, 그것도 장마철과 겹쳐서 행한 여행이라 비를 계속 맞았다. 싸구려 자전거를 타고, 비가 줄줄 세는 2만원 짜리 텐트를 치고 잤었다. 짐도 주렁주렁이었다. 대충 자전거 무게까지 합치면 40kg 정도는 됐을 것이다.

 

캠핑장에서 잤다? 아니다. 돈도 없었고 캠핑장도 눈에 띄지 않아 주로 공터에서 사이트를 구축했다. 공동묘지에서도 텐트를 쳤고. 생각보다 공동묘지가 은근히 아늑하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렇게 국토종단 4, 국토횡단 2번을 행했다. 그 자전거여행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도둑으로 몰린 일, 사고가 났던 일, 지역주민들의 따뜻한 격려를 받았던 ... 다 추억이다. 잊지못할 추억들...

 

사진에 나온 일지는 2010년도 여름에 행한 L자형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원래는 다른 곳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새로 받은 수첩에 옮겨 적고 있다. 기존에 적혀 있던 수첩이 비에 젖어 완전히 엉망이고 해서 필사(?)를 해서 옮기고 있는 것이다.

 

L자형이라는게 내가 이동한 코스가 알파벳 L자형이라서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천안(시작) -> 공주 -> 익산 -> 나주 -> 목포 -> 제주 -> 추자도 -> 완도 -> 장흥 -> 고흥

(나로도)

 

대충 요렇게 이동을 했다. 찌그러진 L자 형태가 나오더라.

 






비를 맞으면 맞은대로 엉망이면 엉망인대로 그냥 간직하는게 나을 것도 같다하지만 내 10년 전 쯤의 일기를 들쳐보고 수정한다는 생각으로 옮겨 적고 있다사실 오리지널이 적힌 수첩은 너무 꽝이었다는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옮겨 적다보니 그 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또렸하게 되살아나 울컥하는 것이다. 당장 어딘가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드는 것이다아무 자전거나 빌려 타고 페달을 열심히 밟고 싶은 생각이 확 드는게 아닌가!

 

괜히 옮겨 적었나! 수첩 속에 잠들어 있던 자전거요정이 깨어나서 내 몸에 붙은 거 아닌지몰라...ㅋ 

 

붙은게 맞다. 2013년 이후로 중단했던 자전거여행을 올 8월 경에 다시 행하기로 했으니까. 지금 열심히 관련 용품들을 검색하고 있다. 트레킹하는 사람이 다시 페달을 열심히 굴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10년 전의 일기가 올 여름 휴가를 기획해줬네! 이게 기록의 힘인가? ^^;
























5월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소래산을 탐방했습니다. 23일 목요일에는 영등포50플러스센터에서 진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강의를, 24일 금요일에는 영등포역사트레킹 커뮤니티에서 행하는 커뮤니티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소래산 역사트레킹이 행해진 것입니다.

양이틀에 걸쳐 땀 좀 흘렸습니다. 덕분에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지요! 어쩌겠습니까, 날씨가 한여름 날씨로 돌변했으니 그에 맞게 움직여야죠. 그나마 소래산 역사트레킹은 숲길 구간이 80%정도가 되서 다행이었습니다.

소래산 역사트레킹은 소산서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소산서원은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하연 선생을 모신 서원입니다. 서원 뒤편으로는 사당도 있습니다.

하연 선생? 조선 건국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경기관찰사 출신 하륜 선생의 이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하연 선생? 솔직히 하연 선생의 이름은 낯설겁니다. 소산서원도 그렇지요. 소수서원은 들어봤어도 소산서원은 처음 듣는 분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하연 선생은 정몽주 선생의 문하생으로 조선 태종때 급제를 합니다. 정몽주 선생의 문하생이 그를 죽였던 태종 이방원 때 출사를 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하여간 그렇게 관직에 나선 하연 선생은 세종 대왕 시기에 큰 빛을 발합니다. 마침내 영의정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죠. 당대 명재상이었던 황희 정승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합니다.

아참 하륜과 하연은 같은 진주 하씨로 친족 사이입니다. 이거 빼뜨리면 심심합니다. 하륜 선생이 서운해하실 듯...ㅋ

소산서원 옆쪽으로 하연 선생의 묘가 있는데 그곳이 명당이라는 게 아닙니까. 풍수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그곳에 올라서면 무언가 확 트이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왜? 앞쪽이 확 트여있거든요.

"여기가 시흥에서도 손꼽히는 명당이라고 합니다. 무공단좌형 음택이라는데... 딱봐도 명당 같죠? 앞이 확 트여 있으니까요. 근데 이름은 어려워요. 무공단좌..."

이름이 어려워서 그런지 발음도 샜습니다. 그래서 '무공단좌'를 한 글자씩 발음해야했습니다.

"후손이 번영하는 음택 풍수라는데... 요즘 같이 저출산 시대에 맞춤형 풍수가 아닐까 합니다."

썰렁! 때양볕인데 썰렁!ㅋ

트레킹팀은 소래산 산림욕장에서 식사를 한 후 소래산 마애불을 탐방하러 갔습니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소래산 마애불은 높이가 무려 13미터가 넘는답니다. 음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은 동쪽 방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곳에 서면 멀리 서울의 서쪽 부근이 잘 보입니다. 마애불 앞쪽에 데크 시설을 했는데 그 자체가 전망대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음각이 깊게 새겨지지 않아 마애불이 도드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세히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는 것이죠. 5mm 정도의 깊이로 새겨 밋밋하다는 겁니다. 기왕하는 거 1cm 이상 새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마지막으로 트레킹팀은 소래산 정상까지 탐방을 했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누구입니까! 아무리 미세먼지가 덮친다고 해도 사진 찍기 삼매경을 놓칠 수 있나요.

그렇게하여 소래산 역사트레킹은 잘 종료가 됐습니다. 덕분에 저도 땀 좀 확 뺐습니다. 땀 좀 빼고 샤워하니 몸이 좀 가벼운 느낌이었습니다. 뭐 땀 빼고 이온음료 마시고 샤워하는게 여름 트레킹의 별미아니겠습니까! ㅋ





























지난 5월 16일 목요일.

이날은 영등포50플러스센터에서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4강, 안양골 역사트레킹이 행해졌습니다. 그 전 주보다는 좀 덜하긴 했지만 이날도 덥긴 더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수박이 인기가 좋았답니다. 물론 제가 싹 다 긁어 먹었답니다...ㅋ

안양골 역사트레킹의 백미는 안양예술공원 인근에 있는 석수동 석실묘였습니다. 백제시기에 만들어진 석실묘가 서울 인근에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죠. 석실묘를 풀어쓰면 돌방무덤이 됩니다. 역사책에서만 봐왔던 돌방무덤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게 다들 신기했나 봅니다. 물론 지금은 석실 안은 빈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도굴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요. 그래도 1500년도 더 넘는 세월동안에도 그 안쪽에 쌓은 석축은 튼튼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자세히보겠다고 석실분 안으로 몸을 수구리는 분들이 있어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안쪽에서 터 잡고 살고 싶은 분 저한테 말씀하세요! 월세가 가능한지 알아봐 드릴게요~"

옛날 안양땅에 살던 백제 호족의 돌방무덤을 두고 제가 임의적으로 부동산 중계를 했나요?ㅋ

이후 트레킹팀은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는 김중업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후기 신라 흥덕왕 때인 827년에 건립한 것으로 보물 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복원한 중초사지 삼층석탑도 서 있답니다. 중초사는 신라시대에 안양 삼성산 아래에 있던 사찰로 규모가 상당했던 대찰이었다고 합니다. 

건축가 김중업을 기념하는 김중업 기념관 옆으로는 고려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수동 마애종도 있답니다. 마애불은 많이 아실 겁니다. 하지만 마애종은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렇듯 마애종은 이곳이 거의 유일합니다. 보존 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당장이라도 범종이 울릴 거 같더군요. 그래서 제가 또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답니다. 

"밤 12시에 여기에 오시면 저 바위에서 종소리가 들립니다. 저 바위에 새겨진 승려가 직접 타종을 하지요. 그 종소리를 듣고 이 골짜기에 숨어 있는 모든 정령들이 눈을 뜨고!!!"

참가자들은 긴장된 얼굴로 저를 바라봅니다.

"모든 정령들이 종소리에 눈을 뜨고 자신의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라다닙니다. 우리를 이들 두고 어벤져스라고 말을 합니다!!!"
"피이~ 잘나가다 어벤져스야!" 

어벤져스가 어때서요? ㅋㅋㅋ 























5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서울 강남에 있는 우면산을 탐방했습니다. 우면산 역사트레킹을 행한 것이죠.

잠깐! 우면산이 그렇게 큰 산인가요? 뭐하느라 이틀에 걸쳐 우면산을 탐방했던 걸까요?

5월 9일 목요일에는 영등포 50플러스센터 정식 강의인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강의가 진행됐었고, 10일 금요일에는 영등포역사트레킹 커뮤니티 강의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정식 강의는 뭐고, 커뮤니티 강의는 뭐야? 헷갈리시죠? 강의를 진행하는 저도 어리둥절합니다...ㅋ 그냥 주체 형식만 달리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역사트레킹을 하고 싶은 분들은 많은데 50플러스센터에서 그걸 다 담아내지 못해서 커뮤니티라는 동아리 형식으로 보폭을 넓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정식 강의와 커뮤니티 강의는 99.9% 동일합니다. 코스도 동일하고, 해설도 동일합니다. 제가 풀어내는 아재개그도 동일합니다...ㅋ

이날도 좀 더웠습니다. 저는 늦봄트레킹을 기획했는데 갑자기 여름트레킹으로 돌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숲길이 더욱더 반가웠답니다. 사실 더운날씨에 도심지 구간을 걷는다는 건 정말 난감한 일이거든요. 자칫하면 탈진 사고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서초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우면산에도 울창한 숲길이 있답니다. 이 숲길이 꽤 괜찮거든요. 그래서인지 서울둘레길도 이 우면산 숲길을 지나간답니다.

우면산 역사트레킹은 세종대왕의 바로 윗형인 효령대군의 사당, 청권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걷다보면 백제시대에 창건된 대성사라는 사찰을 만나게됩니다. 대성사는 백제 침류왕 때인 370년대에 창건됐으니 무려 1700년 전에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서울 강남에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이 남아 있다니요! 더군다나 이 대성사의 창건주는 마라난타라는 인도 승려입니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넘쳐나는 대성사지만 막상 가보면... 좀 허전합니다. 천년 고찰이지만 천년 고찰 같지가 않은 것이죠. 이렇게 대성사가 주목을 못 받는 이유는 일제의 탄압도 한 몫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였던 용성 스님이 이 곳과 연을 맺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들어 일제가 대성사를 훼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폐허가 됐던 대성사는 한국전쟁 이후 재건이 됩니다.

사진에 나와 있는 불상은 조선 후기 작품입니다. 목불이지만 개금을 잘 해서인지 금불상 같아보이더군요.

아참! 저는 지붕에 달린 닫집이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보궁형 닫집인데... 보궁형 닫집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참가자분들도 신기하다고 감탄하시더군요.

그렇게 숲길도 걷고 문화재 탐방도 했던 우면산 역사트레킹은 잘 종료가 됐답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요? 벌써 다음편이 궁금하신가요? 저만 궁금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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