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불 앞에 서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12] 안동 이천동 석불 앞에서 '깔깔'거리며 웃다

 

 

13.02.21 13:43l최종 업데이트 13.02.21 18:20l
▲ 국제탈춤공연장 안동 시내에 국제탈춤공연장이 있다. 그 입구에 하회탈 석상이 방문객들을 환영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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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4일: 여행 31일차


# 안동 이천동 석불 앞에서 크게 웃어댔다!

누구는 여행을 직접 할 때보다 여행 계획을 꾸릴 때가 더 흥분된다고 한다. 지도를 보며 동선을 그리고 검색을 통해 탐방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 계획을 꾸리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정된 시간과 뻔한 예산을 가진 가난뱅이 여행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다녀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으나 시간과 경비 제약 때문에 가보고 싶은 탐방지를 뺄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난뱅이 여행자들이라면 더 많은 뺄셈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여행자들이 그렇듯, 필자도 절경과 유적지를 양대 축으로 삼아 여행 계획을 수립한다.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풍광에 매혹되고, 또 한편에서는 찬란한 우리 문화유산에 감탄사를 내뱉는다는 말이다. 양대 축을 동시에 누리면 금상첨화겠지만 따로 따로 체험한다고 해도 큰 불만은 없다. 이번 여행기에 소개할 안동 이천동 석불은 후자 쪽에 속할 것이다. 이천동 석불은 감탄사를 유발시키는 훌륭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었던 것이다.

 

 

 

▲ 안동 이천동 석불 멀리서 보면 이천동 석불은 망토를 두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천동 석불은 몸통에 따로 제작한 머리를 올린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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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필자는 이천동 석불 앞에서 '깔깔깔'하고 연신 웃음보를 터뜨렸다. 석불 앞에서 경망스럽게 웃었더니,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필자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그럼 필자는 왜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망동된 행동을 했던 것일까? 혹시 필자는 불교에 대한 존중심이 없던 것이 아닐까?

 


# 거인 같은 고려 전기시대 석불들

전편인 경북 봉화 여행기에서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을 만나 뵙고 왔다고 했다. 청량산에 있는 청량사에서 세상을 시원스럽게 굽어보시는 석불 좌상을 두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 말에 빗대보자면 안동 이천동 석불은 세상을 즐겁게 해주시는 부처님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멀리서 보았을 때 이천동 석불은 망토를 두른 모습이었다. 큰 망토를 두르고 얼굴을 불쑥 내민 형상이었다. 그런 독특한 형상의 석불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엉뚱한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부처님이 누더기 같은 도포를 두르고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고행의 길을 가시다 안동 이천동에서 석상이 되신 것이 아닐까?'

 

▲ 안동 이천동 석불 망토를 두르고 수풀 속에서 그 앞을 지나는 중생들을 굽어 보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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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이천동 석불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석불이다. 몸통 부분과 머리 부분이 별개의 암석으로 제작된 독특한 형상을 갖고 있는 것이 이 석불의 특징이다. 몸통 부분, 즉 필자가 망토를 둘렀다고 지칭한 큰 바위 상단 중앙에 머리 부분을 조각한 별개의 돌을 얹었다는 것이다. 단지 머리 부분만 조각하여 올렸을 뿐인데도 자연석인 몸통 부분이 서로 어우러져 일체형의 거대한 석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석불 제작자의 지혜와 구성 감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안동 이천동 석불은 고려 전기 작품이다. 파주 용미리마애이불입상(일명 파주 쌍미륵 석불)이나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이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석상들이다. 이 시기에 세워진 석불들은 하나 같이 다 엄청난 크기들을 자랑하고 있다. 신체비례에 맞춰 정교함을 구현하는 방식이 아닌, 선이 굵은 방식으로 '키다리 아저씨' 같은 큰 석불을 조각했던 것이다. 일례로 대조사 석불은 인체비례로 따지면 4등신에 가깝고, 얼굴은 '얼큰이'다. 정교성보다는 투박함이, 조화미보다는 개성이 넘치는 석불들이 탄생했던 시기가 바로 고려 전기였던 것이다.

그럼 왜 고려 사람들은 선이 굵으면서 개성이 넘치는 큰 석불들을 제작했을까?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사람들보다 세공기술이 덜 해서 그런 식으로 석불을 제작했단 말인가? 고려 전기 시대에는 마을의 안녕에서부터 개인적 기복까지 다 받아주는 수호신과 같은 '키다리 아저씨'가 대표적인 석불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런 대형 석불들은 해당 지역의 민간 신앙이 접목된 형태라고 한다. 마치 큰 장승을 세운 것처럼 거인 같은 수호신이 마을 입구나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으니 해당 지역 사람들은 얼마나 든든했겠는가?

 

▲ 안동 이천동 석불 안동 이천동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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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쌍미륵과 안동 이천동 석불


더불어 파주 쌍미륵은 잉태까지 '책임'져 준다고 하지 않던가? 파주 쌍미륵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남녀 쌍미륵 형상이라 잉태와 관련된 기도들이 많이 올려진다는 것이다. 즉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부부들이 많이 와서 기원을 드리고 간다고 한다. 실제로 이 쌍미륵과 관련된 설화도 잉태와 관련이 있었다.

파주 쌍미륵도 안동 이천동 석불처럼 자연석을 몸통으로 이용하였고, 얼굴 부위도 따로 제작하여 올렸다고 한다. 쌍미륵이 있는 용미사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쌍미륵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경내에서 그것도 석불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웃는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짓이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스님이었다. 누가 뒤에 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웃었던 것이다.

"쌍석불을 보니까 좋네요. 그냥 보기만 해도 복이 오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 파주 용미리마애이불입상 일명 파주용미리석불입상 또는 쌍미륵석불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쌍둥 석불 형식을 띄고 있다. 왼쪽에 원립불을 쓰고 있는 상은 손에 연꽃을 들었는데 남성을 뜻한다고 한다. 오른쪽 방립불을 쓰고, 손을 합장한 상은 여성을 뜻한다고 한다. 원립불은 말그대로 둥근 모자 형태이고, 방립모는 그에 비해 각이 진 모자 형태라고 한다. 용미리마애이불입상은 보물 93호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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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이천동 석불 이천동 석불이 있는 곳은 제비원이라는 하여, 조선시대 국영여관이 있었던 곳이다. 즉 석불이 세워진 제비원 일대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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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짓을 했지만 웃음소리가 나쁘지 않게 들렸는지, 스님은 필자를 꾸짖지 않고 그냥 거처로 돌아가셨다. 필자는 그런 큰 웃음을 안동 이천동 석불 앞에서도 터뜨리고 만 것이다. 망토를 두른 듯한 모습이 재밌었고, 수풀 사이로 몸을 쑤욱 내민 듯한 모습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하느라 심신이 다 지쳐있었지만 석불을 보고 있을 때만큼은 근심 걱정을 다 내려놓고 크게 웃었다.

그런 '불경'한 모습을 보고 어떤 불심이 깊은 분이 손가락질을 해댔지만 필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마을의 수호신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석불 앞에서 경망스럽게 '깔깔'거리며 웃었던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안동 이천동 석불이 준 큰 기쁨 덕택에 나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계속 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천동 석불을 보기 위해 거의 20Km 이상을 돌아갔지만 200Km 이상을 갈 수 있는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충전시킨 느낌이었다.

글을 마치기 전에 4대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잠깐 언급해 보겠다.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4대강에 대해서, 필자까지 나서서 왈가불가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가 스스로 느낀 감상 정도만 언급해 보겠다.

필자는 경북 안동에서부터 구미까지 낙동강 자전거도로를 타고 이동을 했다. 필자는 예전부터 국토를 종단하는 자전거 도로가 하나 개설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자전거도로든 도보여행길이든 무동력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이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개설됐으면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의 부속시설로 만들어진 현재의 4대강 자전거도로 방식은 반대한다. 필자가 직접 주행을 한 결과 4대강 자전거도로는 안전성이 결여된 구간이 상당히 많았다. 4대강을 중심축에 두고 억지로 설계를 해서 그랬는지 급경사가 다반사였다. 기존의 산길과 농로길을 끌어 와서 4대강 자전거도로 탈바꿈을 시키느라 그런 무리수가 나왔던 것으로 판단된다. 급경사가 진 농로길은 굴곡이 심한 일반국도 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도로폭이 좁을뿐더러 안전시설물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를 가장 당혹시켰던 것은 강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보였다. 그런 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아름다운 이곳에 이런 시설물이 있어야 하지? 굳이 이런 시설물이 여기 있을 필요가 있을까?'

자연석을 이용하여 석불을 제작함으로써 주위사물들과 혼연일체가 된 안동 이천동 석불을 보다 '쌩뚱맞게' 낙동강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입맛이 무척 씁쓸했다.

 
▲ 낙단보 경북 군위군에 위치한 낙단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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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낙동강 상류의 사진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보를 쌓고, 콘크리트를 바르면서 4대강이 친환경적이라고 하면 그걸 누가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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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을 만나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11] 경북 봉화 여행기②

13.02.02 09:56l최종 업데이트 13.02.02 09:56l
▲ 청량사 청량산 중턱에 있는 청량사. 사찰 한 가운데에는 석탑과 함께 부처님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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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사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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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하늘다리에서 스릴을 즐기다!

 

다음날.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정신없이 잠에 빠져 있었는지 늦잠을 잔 것이다. 세면을 하고 난 후에 어제 내가 '물아일체'를 했던 곳을 찾아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그 곳을 찾았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는 좀 움푹 파인 곳처럼 보였다. 선녀탕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충의 틀은 나왔다. 그래서 난 내식대로 이름을 지어보았다. 신선탕으로.

그런데 신선탕 주변에 쓰레기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누군가가 먹다 남은 술병과 안주거리들을 그대로 놓고 간 것이다. 어제밤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난 좀 짜증이 났다. 자연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유명관광지 티'를 내고 갔기 때문이었다. 어떤이들이 '유명관광지 티'를 내던 곳에서 난 좋다고 물아일체를 했던 것이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청량사 산들이 병풍처럼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부처님이 계신 곳은 주위가 확 트여 있어, 풍광이 시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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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까지 와서 등산을 하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와 텐트를 잘 놓아두고 등산 버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등산을 하기 전에 신선탕 근처에 있는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갔다. 내가 전날 물아일체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풍기문란도 했기에 그 벌로 환경미화를 자청했던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즐겼던 만큼 남들도 재밌게 놀 수 있게 뒷정리를 깨끗이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청량산도 국립공원 클럽의 물망에 오를 정도로 절경을 뽐내는 산이다. 낙동강 상류와 어우러진 청량산의 모습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산 중턱에 있는 청량사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도 만나 뵐 수 있다.

한편 청량산에는 하늘다리가 있다. 그 곳에 서면 자신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산바람이 세게 분다. 스릴을 느끼고 싶지만 번지점프를 할 용기가 나지 않는 분들은 청량산 하늘다리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가 구름다리를 통과할 때, 갑작스럽게 돌풍이 불었는데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다리가 요동을 쳤다. 스릴 만점이었다.

 

 

▲ 청량산 하늘다리 저 하늘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스릴이 넘친다. 다리를 건널때 강력한 횡풍이 불면 그 스릴감은 공포감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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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산 하늘다리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고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의 계곡'에 하늘다리를 걸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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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물귀신, 오늘은 고기귀신의 유혹에 넘어가다!


즐겁게 청량산 산행을 마치고 난 후, 필자가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경이었다. 그런데 내 베이스캠프 옆쪽에 승용차와 함께 작은 텐트가 하나 쳐져 있었고, 수염을 기른 어떤 아저씨가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겹살을 굽는지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내 코를 자극시켰다. 어제는 물귀신이 나를 유혹하더니만 오늘은 고기귀신이 나를 유혹하나?

"자전거여행 다니시나 봐요? 여기 와서 같이 식사 하시겠어요?"

서울에서 봉화군으로 귀농을 하셨다는 분이셨다. 자신도 젊었을 때 자전거여행을 많이 다녔던 터라 자전거 여행족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했다.

"아참, 아까 저 아래에서 쓰레기를 줍던데..."
"그거요. 제가 먹은 건 아니고요. 그냥 보기 흉해서 제가 환경미화 좀 했죠."
"아, 역시 그랬구나! 진짜 자전거여행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야."

별 뜻 없이 쓰레기를 주었을 뿐인데, 그 덕에 난 푸짐하게 삼겹살과 술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착한 일을 해서 내가 상을 받았던 것일까? 그 귀농아저씨도 그날 같이 캠핑을 했다. 젊은 시절 캠핑을 자주했던 분이라 귀농 이후에도 종종 캠핑을 해오셨다고 한다.

"그 팔각정 명당자리에요. 그 자리 내가 좋아하는 자리인데..."

알고 보니 내가 아저씨의 명당자리를 '선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량산 등반에서 오는 피로감에다 푸짐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받았더니 노곤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은 자리에 눕자마자 그냥 눈이 감겼던 것 같다.

다음날.

 


그토록 예쁘게 안개가 낀 산을, 난 난생처음 보았다. 낙동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청량산 봉우리들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장관중의 장관이었다. 마치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맛에 강변 캠핑을 하는 거구나!

그렇게 진기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뒤로 하고 나는 계속 자전거여행을 이어갔다. 외롭고 힘든 길이었지만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으니, 난 행운아였던 셈이다.

 

▲ 차 한 잔 청량사 같은 고즈넉한 사찰에서 느긋하게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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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사 청량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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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해가 졌네"... 이럴 때 최고의 야영지는?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10] 경북 봉화 여행기①

 

13.02.01 11:01l최종 업데이트 13.02.01 13:24l

 

 

 

 

 

 

 

▲ 낙동강과 청량산 필자가 봉화를 방문했을 때는 장마철이라 그랬는지 무척 유량이 풍부했다. 물소리가 아주 거세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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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낙동강은 청량산을 굽이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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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바라보면서 잠이 드는 것처럼 로맨틱한 '굿나잇'이 또 있을까? 나는 바다도 좋아하지만 강변에서의 하룻밤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는 강변이 갖고 있는 아기자기함 때문이다. 난 광활한 망망대해를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 주는 각성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독여 주는 입체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강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 강촌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모꼬지를 가고, 캔 맥주 하나 들고 홀로 한강에 나가 실연의 아픔을 강물에 실어 보내고...


이런 강변에 산이 어우러지면 그 입체성은 더욱더 강조될 것이다. 경쾌하게 흐르는 강물 소리에 산 새 소리가 어우러지면, 최소한 사운드면에서는 이미 무릉도원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이번 여행기는 강변 캠핑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매일같이 텐트를 쳤다. 한계령 도로 정상에서 텐트를 쳤고, 울릉도 북면 천부항에도 쳤다. 또 수많은 초등학교와 폐교, 개활지에도 쳤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최고의 캠핑지에 대한 순위가 매겨졌다. 그럼 최고의 캠핑지 1순위는 어디일까.

 

 





▲ 청량산 베이스캠프 낙동강가에 세운 청량산 베이스캠프. 청량산을 병풍 삼고, 낙동강 끌어 안을 수 있었던 최고의 캠핑지였다! 한편 저렇게 정자 아래에 텐트를 치니 밤새 비가 내려도 물난리를 겪을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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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베이스캠프

 

당시 나는 경북 봉화를 거쳐 안동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강원도 태백을 통해 봉화군으로 입성을 했는데, 내가 보기에 봉화는 행정상으로는 경상북도이지만 지형적으로는 강원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험준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봉화지역은 '심산유곡'의 절경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명소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명호면에 있는 낙동강시발지공원에서부터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까지의 길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병풍처럼 서 있는 청량산을 따라 낙동강이 시원하게 내달리는 모습은 장관 중에 장관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근처에 캠핑장이 있나요?"

나는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청했다. 낙동강과 청량산이 뽐내는 절경을 카메라로 담아내느라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그러다 덜컥 일몰 시간을 맞았기 때문. 설상가상이라고 그때 빗줄기가 한 두 방울씩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 여기는 근처에 캠핑장이 없는데... 여유가 있으면 민박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비수기라 민박 요금이 비싸지는 않을 텐데요."

자신도 아웃도어를 무척 좋아한다고 밝힌, 관리사무소의 한 젊은 직원은 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비수기에는 민박 요금이 비싸지 않다고 하지만, 내게는 비쌌다. 하루를 만 원으로 버텼던 내게 5만 원 짜리 펜션 숙박은 사치였기 때문이었다.

"아참,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여기에서 쭈욱 가다보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비를 막을 수 있는 오두막이 있거든요. 거기다가 텐트를 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장마철이라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요."

 

 


 

▲ 청량산 도립공원 주자창 필자가 청량산을 방문했을 때는 장마철이라 그랬는지 주자창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최고의 캠핑을 즐길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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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아웃도어 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러면서 손수 커피 한 잔을 타서 내게 건네주었다. 역시 아웃도어를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다르긴 다른 듯싶었다.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자칫하면 숙소도 못 잡고 노숙을 할 판이었는데 말이다. 시골 인심에 아웃도어 인심까지 더해진 행운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의존하여 그 직원이 알려준 곳을 찾아갔다. 그 곳은 팔각정 같은 곳으로 나무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해두고 있었다. 좋은 풍광을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장소인 듯싶었지만 내 시야는 가로등 불빛 너머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주위 풍광만 지레짐작 할 수밖에 없었다. 난 서둘러 의자와 테이블을 한 쪽으로 몰아 텐트 칠 공간을 마련했다. 그것들이 돌처럼 무거워서 힘을 좀 쓴 후에야 그럭저럭 비가 들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드디어 나의 '청량산 베이스캠프'가 완성될 수 있었다.

 

▲ 청량폭포 등산로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량폭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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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프팅 낙동강 상류는 물살이 급해 래프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청량산 도립공원 인근에는 래프팅 업체들이 산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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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 템플스테이 발우 공양 문화를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⑨] 태백산 2편

13.01.02 08:35l최종 업데이트 13.01.02 08:35l

 

 

 

 

 

 

▲ 태백산캠핑장 일명 당골캠핑장이라고도 불린다. 아침에 눈을 뜬 후, 바라보는 태백산의 전경이 일품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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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태백산캠핑장에서 3일을 머물렀다. 이번편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다.


# 물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는 태백산 캠핑장

"야영비 받으러 왔습니다."

태백산 산신령님이 달콤한 잠을 내려 단잠에 빠져 있는데, 아침부터 누가 돈 타령을 하고 있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내일 받으러 와요."
"..."

나는 당골매표소 아래쪽에 위치한 태백산캠핑장(일명 당골야영장)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당시가 장마철이라서 그랬는지 캠핑장에는 야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화장실 문을 잠가 놓고 샤워를 했다. 원래는 캠핑장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놈의 돈이 원수지!

필자가 보기에 태백산 캠핑장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내부는 숲이 둘러싸고 있고, 외부는 산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말 그대로 숲 속에서 캠핑을 하는 식이었다. 또 캠핑장 옆으로 당골천이 흐르고 있어, 밤에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잠자리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작은 소음에도 잠을 뒤척일 수 있지만 태백산 캠핑장은 당골천이 소음을 중화시키기에, 민감한 사람도 비교적 편하게 취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밤에 산 새 소리와 함께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핑장이라면, 정말 좋은 캠핑장이 아니겠는가? 물론 갈수기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태백산 베이스캠프 저렇게 태백산캠핑장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참 단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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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텐트 내 텐트와 비교하면 저 텐트는 궁궐 같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나도 저런 멋진 텐트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

 

 

 

 

 


그렇게 좋은 태백산 캠핑장에서 필자는 3일을 머물렀다. 하지만 돈 한푼 안냈다. 처음 수금하러 온 이후에는 징수원들이 다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규칙을 위반하고, 사용료도 지불하지 않는 등 민폐를 끼쳤다고 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필자는 민폐를 끼쳤으면 그만큼의 값을 한다.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했고, 캠핑장 식수대를 말끔히 치웠다.

어느 캠핑장을 가나 식수대는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로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퇴수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찌꺼기들을 손으로 직접 다 끄집어내, 퇴수가 잘 되도록 하고 나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행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골든보이 캠핑장에 가면 색다른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 '골든보이' 이 친구도 태백산캠핑장에서 만났다. 그는 3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여행했다고 한다. 3개월 동안 강원도를 돌아다닌 터라 그의 허벅지는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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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장에 템플스테이 식문화를 이식시키자


한편 그 음식물 찌꺼기는 필자가 버린 것이 아니었다. 음식물을 왜 남기는가? 넉넉히 먹고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캠퍼들이 종종 눈에 보인다. 숨 가쁜 도시생활을 벗어나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은 정말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의 안락함을 캠핑에서까지 이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필자는 답답함부터 느낀다.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 주말 섹션에 겨울캠핑과 관련하여 전기장판에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됐다. 필자는 그 기사를 보고 혀를 찼다.

'과연 이 엄동설한에 뭐 하러 전기장판까지 준비해서 캠핑에 나서는가? 전기 꼽을 곳은 있나? 그렇게 갖출 거 다 갖추고 싶으면, 동네 찜질방에서 몸을 지지는 게 최고일 텐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캠핑시장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그런가?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캠퍼들이 기본적인 캠핑 매너도 안 지키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같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캠핑장을 애용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캠핑장 사용을 매우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다음 일정을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먹고, 마시자, 죽자'라는 캠퍼들의 소음에 새벽까지 잠을 설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 태백산 캠핑장 필자가 손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끄집어 낸 식수대. 그 뒤로 필자가 몰래 샤워를 한 화장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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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최첨단 장비에 걸맞게 캠핑문화도 최첨단으로 향상 시킬 때가 됐다. 성숙한 캠핑문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할 때가 됐다. 이제 캠핑장에서는 좀 덜 먹고, 덜 마시는 분위기가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 같아서는 '템플스테이'와 같은 식문화와 정숙함이 전국 캠핑장에 만발했으면 좋겠다. 이건 너무 급진적인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이 있다. 캠핑장에서 수금 징수원을 가장해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기꾼들이 있으니 주의를 요망한다. 대규모 캠핑장 같은 경우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기에 사기꾼들의 좋은 활동처가 되곤 한다. 그들은 캠핑장 직원과 동일한 복장과 동일한 영수증 용지를 들고 다니며 캠퍼들을 현혹시킨다. 그런 사기에 넘어간 캠퍼들은 사기꾼과 정식 수금요원에게 두 번 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캠핑의 낭만은 사라지고 불쾌지수만 높아질 것이다.

 

 

 
▲ 백캠핑 대형오토 캠핑도 좋지만 요즘은 호젓하게 백캠핑을 하는 캠퍼들도 많이 늘어났다. 백캠핑은 배낭에다 캠핑장비를 짊어 지고 다니며, 캠핑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백캠핑의 관건은 짐의 경량화에 달려 있다. 필자가 행한 캠핑도 백캠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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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비를 받아서 얼마나 남겠냐고, 의문을 표시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형텐트의 경우는 통상 2만 원 정도의 요금을 지불한다. 그런 텐트가 10동 이상 있다고 생각해보시라. 한 시간도 안 되서 사기꾼들은 수십 만원을 챙길 수가 있는 셈이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캠퍼 자신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가지 팁을 제시해 본다.


1. 영수증을 꼭 확인한다.
2. 징수원의 직원증을 확인한다.
3. 쓰레기봉투를 요청한다.

2번 직원증 확인의 경우는 쉽지 않다. 수금요원이 직원증이 없는 단순 아르바이트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면, 사전에 캠핑장 관리사무소의 전화번호를 메모해뒀다가 전화를 걸어 수금 요원의 신분을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요즘은 웬만한 대형캠핑장은 사용료를 지불하면 해당 지자체에서 발행한 쓰레기봉투를 지급하니, 쓰레기봉투 지급여부도 잘 확인을 해보면 가짜 징수원들의 사기 행각의 덫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캠핑장 요금도 안 내고 도망간 주제에 말이 많다고, 아직도 필자를 질책할 분이 있을지 모른다. 여행이 다 그런 거지 뭐. 여행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그리고 캠핑장 팁도 알려드렸으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캠핑 적기에 맞춰 이런 팁을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엄동설한에 이런 글을 쓰니, 필자도 그게 참 아쉽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8편]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

태백산여행기 1편

 

 

12.12.31 20:23l최종 업데이트 12.12.31 20:23l

 

 

 

 

▲ 태백산 주목 죽은 것 중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있을까? 죽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흉하게 썩고 만다. 그건 식물도 마찬가지다. 죽은 나무는 껍질이 썩어들어가 종국에는 흰개미가 득실거리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그래서 썩은 나무는 땔감용으로 쓰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태백산 주목은 다르다. 오히려 죽어서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 같다. 죽어서 더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 같다. 생(生)과 사(死)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태백산 주목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든다. '혹시 태백산의 진짜 산신령은 주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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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은 언제 국립공원으로 승격을 할까?

지난 7월 5일, 울릉도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온 나는 '태백산 산신령'을 만나러 강원도 태백시로 향했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 개천절이면 산 정상부에 있는 천제단에서 단군을 위해 제례를 들이는 곳. 예로부터 계룡산과 더불어 민간신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곳. 신라 오악(五嶽) 중 하나로 북악(北嶽)이라 불렸던 곳. 이렇듯 태백산(1567m)은 예로부터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축적되어 온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태백산이, 국립공원이 아닌 도립공원 '품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뻘인 소백산(1440m)도 국립공원인데 태백산이 아직도 도립공원으로 묶여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의문을 표하는 사람 중에 필자도 포함되어 있다.

특정 지역의 국립공원 지정은 첨예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교통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이해관계 중에서 단연 두드러진 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 제약이다. 군립공원보다는 도립공원이, 도립공원보다는 국립공원이 더 많은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 망경사 용정 당골매표소에서 천제단 방면으로 오르다보면 8부 능선 즈음에 망경사가 나온다. 망경사 옆쪽으는 '용정'이라는 시원한 샘물이 있다. 한편 사진 오른쪽에 있는 가부좌를 튼 보살상이 이채롭다. 용정에서 조금만 더 오르다보면, 단종 임금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단종비각에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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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은 국립공원, 태백산은 도립공원 


지난 12월 27일에 지정된 21번째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국립공원이 지정된 해는 1988년이다. 그해, 변산반도와 월출산이 지정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이 1967년에 지정됐고 20호인 월출산이 1988년에 지정됐으니, 21년 만에 무려 20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 24년 동안 새로운 국립공원 지정이 전무했던 것은 시대상황의 변화 때문으로 판단된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같은 권위주의적인 정권하에서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을 거라는 건 불 보듯 빤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로는 재산권 행사와 관련해서 국민들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국립공원 지정에 대한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그 수위가 높아졌을 거라는 걸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2월 27일에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경우는 참 반가운 사례다. 서울의 북한산과 더불어 무등산은 광주광역시라는 대도시에 인접해 있는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순번 대기를 하고 있는 국립공원 후보군들이 재산권 제약이라는 난관을 뚫고 '국립공원 클럽'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을 무등산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번호표를 뽑고 '국립공원 클럽' 앞에서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 몇 명 보인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린 '녀석'은 단연 태백산이다. 도대체 언제쯤 태백산은 국립공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 태백산 주목 이 사진을 보니 비룡이 용솟음 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장면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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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서도 아름다운 태백산 주목
 


태백산은 태백시내에서 약 5~6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강원도에 있는 다른 큰 산들에 비해 접근성이 더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태백시내에서  도립공원 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운행을 하는데, 그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하면 바로 등산로에 진입할 수 있다.

태백산의 등산로는 잘 정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매표소 입구에서 부지런히 걸으면 정상까지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당골매표소-반재-망경사-단종비각-천제단 코스가 바로 그것이다. 하산을 할 때면 그 반대편인 유일사매표사 코스로 내려가면 되는데 그 코스도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태백산 산 정상부는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그 능선길 양 옆으로는 장구한 세월을 올곧게 서 있는 주목들이 있다. 그 중에서 단연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목의 고사목들이다.

주목은 색깔이 붉다고 하여 적목(赤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생하는 고산 식물이다. 그래서 백두대간 고산 지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편, 주목은 가장 오래 사는 식물들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또 주목은 한약재로 쓰이는 좋은 나무라고 한다. 주목이 약재에 좋은 나무라는 것이 잘 알려져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많이 벌목이 됐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소백산 정상에 있는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 태백산 주목 이 주목은 큰 수사슴의 뿔처럼 여겨진다. 이 기사가 발행되는 시점이 한겨울이라 태백산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주목 사진이 더 시의성에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새해 2013년을 기약하는 마음과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사진을 바라본다면, 그것 자체로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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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이 오래 살고, 약재에도 좋다고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그저 '죽은 주목'만이 눈에 뛸 뿐이었다. 왜? 주목의 고사목처럼 죽어서 아름다운 나무들은 거의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죽었지만 주목의 올 곧은 자태는 태백산의 정기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도 등산 중에 나무를 몇 그루 쓰러뜨린 적이 있다. 필자가 힘이 센 '슈퍼맨 나무꾼'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두께가 얇은 나무는 죽으면 쉽게 쓰러진다. 그 쓰러질 타이밍에 필자가 손을 댔던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 우쭐해 하며 내 힘 자랑을 떠벌렸다. 산행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보고 나를 진짜 슈퍼맨으로 알겠지만 노련한 등산가들은 필자를 허풍쟁이로 몰아붙일 것이다.

이렇듯 죽은 나무는 가벼운 외부 충격에도 제 본 모습을 잃고 흉하게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죽은 나무는 땔감용으로 쓰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태백산 정상에 서 있는 주목 고사목들은 기품이 있었다. 죽었으나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은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주목의 자태를 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죽어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있구나! 혹시 태백산 산신령이 있다면 이 주목들이 아닐까?'

 

 



▲ 태백산 천제단 태백산은 태고적부터 우리조상들이 신성시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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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 그런 신성스러운 공간에 필자가 올랐다. 자전거는 저 산 아래 태백산캠핑장에 주차시켜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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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의 산신령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태백산은 우리민간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속설에 의하면 태백산이 내뿜는 기가 매우 강렬하여 무속인들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샛길로 빠졌는데, 그 곳에서 형형색색의 비단으로 치장한 나무 성황단을 만나게 됐다. 그곳은 그나마 있던 샛길도 끝나는 후미진 곳에 있던 나무 성황단이었다.

아무래도 태백산 산신령을 모시기 위한 제단처럼 여겨졌다. 제단이 후미진 곳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아지트와 같은 곳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제단에는 지폐 몇 장과 동전이 쌓여 있었다. 싹 쓸어 담으면 한 2만 원 돈 이상이 되는 듯했다.

 



▲ 나무 성황단 태백산은 계룡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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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한테는 죄송한데, 저걸 가져다 여행 경비로 써? 어차피 지폐는 비 맞고 하면 훼손 되잖아. 이참에 한 번 조폐공

사에서 감사패 한 번 받아봐?'

그 순간 갑자기 푸드득 거리며 내 앞으로 새가 한 마리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좀 놀랐다. 아무래도 그 짓을 하지 말라는 '산신령의 계시'인 것 같았다. 뒤가 밟혔던 나는 돈은 그대로 두고, 제단 주위에 있는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웠다. 그리고는 생수 하나를 개봉하여 정화수로 올렸다. 괜히 제단에 있는 재물을 탐했다가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하긴 앞으로도 수많은 '백두대간 산신령'들을 만나뵐 텐데 괜히 거기서 밑보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 태백산은 참 복받은 산 등산 중에 배수로 작업을 하시는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도립공원 직원이 아니었다. 그냥 자진해서 등산로 배수로 작업을 하시고 계셨다. 그냥 태백산이 좋아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작업을 하신다고 했다. 극구 사진 찍는 걸 원하지 않으셨지만 난 살짝 '몰카'를 찍었다. 그러고보면 태백산은 참 복 받은 산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분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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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도 울릉도를 여행할 권리가 있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7편] 울릉도 여행 가이드

 

 

12.11.19 11:47l최종 업데이트 12.12.07 15:36l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에서 바라보는 울릉도 북면 일대의 해안선. 눈도 마음도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오른쪽 방면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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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하등대 모노레일을 타고 태하등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태하등대가 있는 서면 부근은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태하등대에서 그 유명한 태하 낙조를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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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는 울릉도 여행에서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본다. 또 필자가 추천하는 저렴하게 울릉도를 여행하는 방법도 소개해본다.

 


# 기억에 남을 명소: 태하 등대와 대풍감

하지만 필자는 7일이나 머물렀지만 울릉도 곳곳을 다 다녀보지 못했다. 아무리 자전거여행이라고 해도, 통상적인 울릉도여행이 2박3일인 것을 감안하면 좀 오래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울릉도의 지붕인 성인봉도 못 가봤다. 입산을 하려고 나리분지까지 갔었는데 마침 그때 비가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울릉도의 구석구석까지 다 탐방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몇몇 곳을 소개해보겠다.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서면 태하 대풍감이다. 이곳은 태하 등대가 있는 곳인데 한 아웃도어 잡지에서 우리나라의 10대 비경으로 꼽은 곳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사실 필자는 아직까지도 태하 대풍감이 눈에 아른거린다. 대풍(待風)은 '바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큰 바람이라는 대풍(大風)으로 뜻을 고쳐도 무방할 만큼 태하 대풍감 일대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었다.

그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깎아질 듯한 절벽 위에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시라! 그런 해안 절벽은 암벽타기를 하지 않는 이상 도저히 육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런 해안절벽 위로 유유히 갈매기 떼들이 춤을 추듯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시라! 진짜 태하 대풍감은 그런 상상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울릉도의 곳곳이 다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곳만을 찍으라고 하면 태하 대풍감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의 왼쪽편 해안선이다. 깎아지는 듯한 해안절벽이 자아내는 풍광은 한마디로 명품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위를 유유히 비행하고 있던 갈매기들이 부러웠다. 저런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삼아 날개짓을 할 수 있는 울릉도 갈매기들은 정말 복받은 갈매기들이다. 한편 태하대풍감은 천연기념물 제49호 '대풍감향나무'의 자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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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 등대까지는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서 왕복비용 4000원만 지불하면, 그곳까지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탑승하지 않아도 그 곳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해발 309미터를 6분 만에 주파하는 모노레일을 타는 게 체력에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태하를 위시한 서면과 북면 지역의 일몰도 장관 중에 장관이다. 노을이 지는 서편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은 육지의 일몰 명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듯했다. 어둠 속에 붉게 채색된 일몰이 스며드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묘한 황홀감까지 들 정도였다. 필자는 그 광경을 울릉도 군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았다. 운이 좋았는지 시간대가 맞았는데, 그 버스는 내게 일몰을 감상하는 '관광버스'가 된 셈이다.

 

 



▲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이다. 석포전망대에 오르면 저런 멋진 풍광들을 볼 수 있다. 한편 관음도에는 다리가 놓였지만, 필자가 입구에 갔을 때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관음도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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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을 명소: 석포

두 번째 추천할 곳은 북면 석포리 일대다. 석포는 울릉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석포의 해안도로에서는 삼선암이나 딴바위 같은 큰바위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고, 전망대에 오르면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기암괴석과 항구가 어우러진 북면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석포 전망대는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석포전망대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망루로 쓰였다고 한다. 석포에는 전망대가 하나 더 있는데 그 곳은 '석포독도전망대'라고 불린다.

석포전망대는 두루봉(281m) 일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해안가에서 올라가려면 좀 시간도 걸리고 힘도 많이 든다. 태하 대풍감처럼 모노레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석포전망대에 올라서면 호젓하게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그 길을 걷다보면 멀리 있는 관음도의 모습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 북면 석포 인근의 해안가 석포 인근에는 삼선암이나 딴바위 같은 큰 바위들이 해안도로 주변에 위치해 있다. 사진에 나오는 '물개바위'도 석포 일대에서 볼 수 있다. '물개바위' 뒤편으로 보이는 섬은 관음도이다. 석포전망대에서 보는 관음도의 풍광은 일품이었다. 한편 '물개바위'는 필자가 임의적으로 네이밍을 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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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을 항로: 섬목-저동 간 여객선

석포 독도 전망대 아래쪽으로 하산을 하면 섬목항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섬목-저동 간 여객선이 운항을 했다. 앞선 여행기에도 언급했듯이 울릉도 일주도로는 섬목-저동 간의 구간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섬목까지 탐방한 사람들은 차를 돌려 왔던 길을 고스란히 돌아가야 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야 느긋하지만, 나같이 철TB에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무시무시한 항목령에서 '시시포스 놀이'를 또 하라고! 시시포스 놀이는 한 번으로 족했다. 섬목-저동 간의 여객선을 타면 느긋하게 저동항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탑재도 가능한 여객선이라 자전거 탑승은 문제 없었다. 배 삯은 1인당 5000원이었고, 자전거는 3000원의 추가 운임을 받았다. 전남 완도-청산도의 여객선 운항거리가 30km 정도이고 배 삯이 8000원 안팎인 것에 비하면 섬목-저동 간의 배 삯은 좀 비싼 편이다. 총 운항거리가 10Km도 안 되기 때문이다.

 

 



▲ 섬목-저동간의 여객선 울릉도 일주도로는 섬목에서 끊긴다. 그래서 울릉도 동북쪽인 섬목에서 읍사무소가 있는 도동까지 가려면, 왔던길을 다시 또 가야 한다. 하지만 저 배를 타면 저동항까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배를 타면서 아름다운 울릉도의 동쪽 해안을 느긋하게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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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섬목-저동 간의 여객선을 타보라고 권해드린다. 바닷가 위에 우뚝 솟은 울릉도의 기암절벽들을 스쳐지나가듯 배를 타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가며 울릉도 동쪽 해안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 배를 타고 가면, 왜 아직까지 섬목-저동 구간 도로가 개설되지 않은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 곳은 지형이 험하다. 다시 말하면 그런 해안가 기암괴석들을 배를 타고 느긋하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석포에서는 산길을 따라 내수전으로 갈 수 있다. 석포와 내수전을 잇는 산길은 동편 울릉둘레길이다. 동편 울릉둘레길을 따라가면 정매화골을 지난다. 내수전에도  전망대가 있는데 이름하여 '내수전 일출전망대'라고 불린다. 내수전 코스도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울릉도의 절경 중에 한 곳으로 꼽힌다.

 

 

 


#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팁

필자는 2012년 6월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울릉도에 머물렀다. 6월 29일까지 쓴 비용은 29만7000원이었다. 이를 다시 울릉도에서만 지출한 비용을 계산해보니 19만6000원이었다. 여기에 강릉-울릉도 여객선 왕복요금인 9만8000원을 빼보니 9만8000원이 되었다. 즉 약 7일간 울릉도에 있으면서 9만8000원으로 여행을 한 것이다. 이 비용에는 태하 모노레일 비용, 섬목-저동 구간 배 삯, 울릉도 군내버스 비용 등이 다 포함된 것이다.

물론 필자는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으며 여행을 하는 터라 위와 같은 저렴한 비용으로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저렇게 가난뱅이처럼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울릉도 탐방에 대한 팁을 드리려고 한다.

울릉도는 숙박이나 음식점의 90%가 울릉읍 저동-도동-사동에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읍내를 빠져나오면 호젓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울릉도도 성수기 시즌에는 민박 잡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성수기 시즌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 중심가만 빠져나오면 텐트 칠 곳은 아주 많기에 캠핑 장비를 완비했다면 여름에도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 울릉도의 단방향터널 울릉도 남부지역 해안가도로에는 단방향터널이 상당히 많았다. 단방향터널 앞에는 신호등이 있어, 양측방면의 차량소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신호를 제때 받으면 저런 터널을 몇개씩 통과했기에 차들이 터널 안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도보로 터널을 넘어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입구가 흰색인 단방향터널 3개를 동시에 렌즈 속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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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그래서 울릉도의 일주도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일주도로가 해안가를 끼고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주도로를 걷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일주도로가 걷기에 편한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보면 입출입이 한 곳인 단방향 터널이 나온다. 그런 터널을 걸어서 넘어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필자는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넘었는데, 어찌나 차들이 빨리 다니는지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울릉도에는 단방향 터널이 여러 곳이 있는데, 신호를 잘 받으면 한 번에 여러 터널을 쉽게 건널 수 있는 구조였다. 반면 신호를 놓치면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터널에서 차들이 빨리 지나갔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도보로 터널을 지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해안가 걷기는 북면 일대가 최적이었다. 내가 시시포스 놀이를 했던 항목령을 넘으면 북면 현포항이 나온다. 이곳부터 섬목까지는 걷기도 좋고, 풍광도 멋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코끼리 바위나 삼선암, 관음도 같은 멋진 풍광을 시원스럽게 볼 수 있다.

울릉도는 버스 운행이 자주 있는 터라 버스와 도보를 결합하는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버스가 1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데 시골버스치고는 상당히 자주 운행하는 편이다. 중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다음 관광지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여행 중에 만난 대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 태하 산책길에서 서면 태하 모노레일 인근에는 소라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타고 오르면 해안산책길을 만날 수 있다. 바위투성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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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요금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울릉도 시내버스의 기점인 도동 읍사무소 입구에서 북면 면사무소 소재지인 천부까지 거리는 30Km가 넘는다.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6월 26일(여행13일차)에 나는 천부항 인근에 텐트와 자전거를 주차해 놓고 도동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앞서 언급한 '일몰 관광버스'를 이용했던 것이다. 당시 왕복요금으로 3000원 정도를 지불했으니 무척 저렴하게 여행했던 셈이다.

다른 지역의 시골버스 같은 경우는, 30Km 이상 이동했으면 편도 요금만 3000원이 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울릉도 버스-도보를 결합한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면 굳이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고도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이런 방식은 단독이거나 소규모 팀으로 움직여야 가능할 것이다. 

걷기를 하다 식사를 못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울릉도의 경우 면소재지 정도에 가야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전거여행 중에 거의 매일 5끼를 먹었다. 영양보충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중에 3식은 시리얼과 두유로 해결을 했다. 우유보다는 두유가 보관하기가 편하고 유통기간이 길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니 무척 간편했다. 또 시리얼과 두유를 섭취하면 영양공급 문제가 해결이 되는 장점도 있었다.

 

 


▲ 내수전 가는 길 저동항에서 내수전 가는 길이다. 내수전 전망대에 오르면 바닷가 쪽으로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죽도를 볼 수 있고 내륙 쪽으로는 성인봉 일대를 바라볼 수 있다. 필자가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있어 원활한 관찰을 할 수 없었다. 사진 중앙에 조그맣게 있는 섬은 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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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하는 여행, 맛집도 다니고 그래야 하지 않냐고? 맛집 기행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무슨 재미냐고? 혼자 몸으로 식당에 들어가면 식당 주인이 별로 안 좋아한다. 서울이야 혼자 밥먹는 사람도 많지만 유명관광지는 단체손님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냥 눈치 보면서 밥먹는 것보다 시리얼로 때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끼 식사 정도는 그런 식의 행동식을 섭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맛집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남이 맛있다고 해도 나한테는 별로일 수 있는 게  음식이다. 음식 맛이라는 건 매우 주관적인 개념 아니겠는가?

전쟁 때는 주먹밥 먹고도 전투를 잘 했다고 하지 않던가! 주먹밥보다는 두유나 우유에 시리얼 둥둥 띄어서 먹는 게 더 맛있을 것이다. 가난뱅이 여행자라면 이런 정도는 감수를 해줘야지!

 

 


▲ 현포항 일대 북면 현포항. 이국적인 모습이 들 정도로 참 아름다운 풍광이다. 저런 곳에서 낙조를 본다면 더욱더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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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포항이 바라다보이는 전망대 북면 현포항이 보이는 전망대다.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현포항 부근은 옛날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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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지도 울릉도 지도. 기사의 이해 높이기를 위하여 네이버 지도 서비스를 가져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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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0일 차: 2012년 6월 23일

내가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석양이 지고 있을 때였다. 당시 여행일지를 살펴보니 오후 8시에 하선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배멀미로 구토를 여섯 번이나 해서 진이 다 빠졌지, 주위는 이미 어두워진 데다 하룻밤 잘 곳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지. 울릉도 섬 여행이고, 백두대간 여행이고 다 귀찮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여행을 '쫑 내고'고 서울로 복귀하고 싶었다. 그냥 편하게 안양천이랑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예쁜 여자'들이나 쳐다보면서 자전거나 탈 걸 무엇 하러 이고생을 사서 하는가? 그런 필자의 우울한 마음도 몰라주고 어떤 울릉도 아줌마가 이런 말을 외친다.

"어이, 자전거 끌고 가는 아저씨 민박 3만원."

가뜩이나 울릉도에 와서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는데 그 호객행위 하는 아줌마의 말이 귀에 잘 들렸겠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텐트 있어요."

 

 



 

 

▲ 울릉한마음회관에 친 텐트 울릉도에 너무 늦게 입도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노숙을 할 판이었지만, 다행히 울릉한마음회관 앞마당에 저렇게 텐트를 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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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의 첫 번째 베이스캠프 울릉한마음회관

텐트만 있었을 뿐이지, 캠핑 장소는 없었다. 조바심이 생겼다. 아무리 필자가 노숙에 익숙하다고 해도 진이 빠진 상태에서 텐트 세팅도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도동항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읍 소재지인 도동항에 가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울릉도의 지형은 한계령 빰칠 정도로 험했다. 저동항에서 도동항으로 이동할 때는 저동재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의 경사도가 엄청 가파른 것이다. 배멀미의 여파로 정신은 혼미하고, 뱃속은 허하고, 저동재의 경사도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정말 울릉도와 나는 서로 궁합이 안 맞는 것일까?

불행 중 다행으로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곳 앞뜰에 팔각정이 있어 거기다 그냥 텐트를 쳤던 것이다. 더 이상 이동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그냥 텐트 세팅을 했던 것이다.

텐트를 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바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다. 배멀미로 위액까지 쏟아낸 터라 내 뱃속이 음식물을 잘 소화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을 먹으면 제격이었기에 그 길로 다시 저동항 부근 편의점으로 가, 인스턴트 야채죽을 하나를 사먹었다. 울릉도에 입도해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편의점 죽일 줄이야...

다음날. 육지에서 피로가 많이 쌓여서 그랬는지 잠은 잘 왔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관공서 앞에 야영지를 잡았지만 그럭저럭 하루를 잘 보낸 셈이었다. 텐트에서 나와 야영지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난 놀라운 풍광들을 보게 됐다. 내가 있던 울릉한마음회관은 저동재 중턱 부근에 있었는데 그 아래로 저동항 일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던 게 아닌가. 내 눈은 휘둥그레졌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비경을 품고 있기에 필자가 놀랄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 저동항 울릉한마음회관에서 내려다 본 저동항. 울릉도에서 맞은 첫 아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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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의 해안도로 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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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vs. 제주도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다. 그래서 울릉도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듯 계속적으로 울릉도행 배편은 증편되고 있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활동에 의해 탄생된 섬이다. 하지만 두 섬의 지형적 특색은 다르게 나타난다. 제주도가 솥두껑 모양의 완만한 순상화산 지형이라면, 울릉도는 급격한 경사도를 나타내는 종상화산 지형이다. 제주도는 해안도로를 따라 올레길이 개설됐을 정도로 해안지형이 완만한 경사도 나타내지만 울릉도는 그렇지가 않다. 울릉도의 해안은 수직적인 해식애 지형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해식애란 바닷물의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를 말한다.

그런 지형적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 울릉도는 완전한 일주도로가 없다. 1963년부터 2001년까지 39.8km에 이르는 도로가 저동(울릉읍)-섬목(북면)까지 개설이 됐는데, 섬목-저동까지는 도로가 끊겼다. 울릉도 중앙에 성인봉(986m)이 있는데, 성인봉을 중심으로 1시 방향 지역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동리 -천부(북면 면소재지)간 4.75km 도로의 기공식이 2011년 12월에 거행됐고, 2016년에는 완전한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설될 예정이다.

 

 



▲ 울릉공설운동장 서면에 있는 울릉공설운동장. 저렇게 멋진 곳에서 축구를 하면 나도 메시나 호나우두처럼 공을 잘 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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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듯 울릉도에는 둘레길이 있다. 하지만 경사도 완만성이나 접근성면에서 제주 올레길이 우위에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울릉도 둘레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서면 남양리에서 태하리까지 개설된 7km 구간은 섬 안쪽에 있는 태하령(496m)를 넘어가는 코스다. 저동-섬목 구간에 개설된 둘레길도 남양-태하 구간보다는 바닷가에 접하기는 하나 내수전과 정매화골등을 지나쳐야 하기에 산행코스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대신 울릉도에는 '행남해안산책로'라는 해안도보길이 따로 개설돼 있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 팀이 탐방해 유명해진 길인데, 해안절벽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을 주는 멋진 길이다.

 

 

 


▲ 항목령 정말 꾸불꾸불한 길이다. 난 항목령에서 '시시포스'놀이를 해야 했다. 내가 무슨 그리스 신화를 쓰는 사람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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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락내리락, 울릉도는 내게 시시포스가 되길 '강요'했다

필자는 주로 울릉도 해안을 따라 이동을 했다. 울릉도는 역시 섬지역이라 해안을 따라 관광명소가 즐비했다. 예를 들어 서면 통구미 마을에 거북바위나 북면 석포리의 삼선암 등은 해안도로 바로 옆에 있어 힘들이지 않고 그 바위들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한편 울릉도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무척 힘든 곳이었다. 급격한 경사도로 인해 자전거를 끌고 가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철TB'인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에 무려 40kg 달하는 짐을 싣고, 울릉도의 꾸불꾸불한 길을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오르락내리락은 반복하니, 마치 내 자신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가 된 것 같았다.

설악산의 한계령을 넘고, 그밖에 강원도의 험준한 고개들 줄줄이 넘어온 나였지만, 울릉도의 꾸불꾸불한 길에 그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서면 태하에서 북면 현포리로 넘어가는 항목령 부근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 험하기로 소문난 지리산 관통도로와 필적할 정도로 꾸불꾸불했기 때문이다. 지리산 관통도로야 해발고도가 높기라도 하지. 항목령은 겨우 300m밖에 안 되는 곳이었지만 내게 시시포스의 역할을 강요시켰던 것이다.

 

 

 


▲ 항목령에 우뚝선 블루야크 어렵게 어렵게 정상부에 올랐다. 거의 탈진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시시포스 놀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뿌듯했다. 블루야크는 내 철TB의 애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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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바위 서면 통구미 마을 부근에 있는 거북바위다. 형상이 기묘하여 사진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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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이 나의 '원통' 함을 달래주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④] 한계령 편
12.10.12 20:59l최종 업데이트 12.12.18 22:00l
곽동운(artpunk)

 

 

 

 

 

 

 

▲ 한계령 한계령에 자신이 올라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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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월요일

나는 강원도 양구와 인제에 있는 광치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입성했다. 광치령은 660고지였는데, 역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힘든 기색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 곧 한계령을 넘어야 했으니까!

"실례하지만, 여기 읍사무소가 어디에요?"

힘들게 광치령을 넘었던 터라, 읍사무소에서 물도 얻어 마시고, 인제군 여행지도도 얻어갈 생각이었다.

"읍사무소는 남쪽으로 한참 가야 하고,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면사무소가 있어요."
"예? 여기가 원통읍이 아닌가요?"
"원통은 원통리이고, 여기는 읍이 아니라 북면이에요. 인제군 북면."

 

 

 

# 원통이 읍이였어?... '광천김'은 A급 밥도둑

'읔! 원통읍이 아니라 원통리였다니! 원통의 정확한 행정상 지명이 인제군 북면 원통(元通)리였다니!'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원통이 행정구역상 '리' 단위였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았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은 내 얇은 지식이 들통이 나서 더 창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칭 아웃도어 여행가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다니!'

우리나라에서 '읍' 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군' 단위와 차별화되어 자체적 '네이밍' 파워를 가진 곳이 몇 군데 있다. 가야, 강경, 광천, 삼랑진, 벌교 등이 그곳이다. 강경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광천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 삼랑진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벌교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공식적인 행정 지명이다. 고대연맹 국가인 가야국에서 지명을 따온 가야읍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속해 있는 곳으로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벌교도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였으니, 잘 알 것이다.

강경과 삼랑진은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 이후, 쌀의 집산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강경은 금강을 통해, 삼랑진은 낙동강을 통해 바다로 출항할 수 있는 곳인데, 그만큼 내륙 수운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광천은 '광천김'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1년 자전거여행 당시 난 그곳에 들러 '광천김'을 한가득 샀었다. 장거리여행을 할 때는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여행자와 궁합이 잘 맞는 밥도둑들을 데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광천김'은 A급 밥도둑이었다.

이렇듯 읍 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나 군만큼 입에 자주 언급되는 경우는 종종 봐 왔지만, 리 단위의 지명이 군 단위의 '브랜드 파워'와 필적하는 경우는 원통리가 유일할 것으로 여겨진다.

 

 




▲ 원통종합복지타운 저 곳에는 도서관, 공공회의실, 보건지소 등 공공시설이 입주해 있는데 우리동네에 있는 곳보다 시설이 더 좋았다. 저 사진은 복지타운의 담당자님이 찍어 주셨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인제군 북면은 인구가 8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면단위 인구 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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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럼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원통리가 인제군과 짝을 이루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애절한 슬로건 대명사를 낳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원도 군번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아리랑 곡조보다도 더 애절한 이 말의 출현시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사실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에도 원통리가 있다. 하지만 인제군의 원통리와 비교하면 그 존재감이 덜해서 일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청원 가서 원통하다!'라는 말은 없으니까.

인제군 원통리의 지형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북쪽으로는 명당산(764m)이 있긴 하지만, 동쪽으로는 소양강을 향해 가는 북천이 흐르고 있어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원통리에는 원통체육공원도 자리 잡고 있다. 차라리 한계령을 품고 있는 한계리의 지형이 험하면 더 험한 듯싶었다.

원통(元通)은 원래 원산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설악산과 금강산을 넘으면 바로 원산이니 그런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인 의미의 명칭은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군사도시로 변모한 인제군의 모습 속에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마음속에 '슬픈 아리랑' 한 곡조씩을 품고 사는 강원도 군번들에게 '인제'와 '원통'이란 명칭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푸념거리의 소스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원통에 대해서 '왜 그리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느냐'고 필자에게 질책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것인지 '명칭 따라 삼천리'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비판의 화살을 내게 발사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필자는 원통을 보면서 한국전쟁과 뒤이은 분단으로 인해 해당 지역 명칭이 일반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각인되는지에 대해서 주목해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지리산 피아골 같은 경우도 원래는 곡식인 피가 많이 재배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리산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골짜기가 피로 넘쳐 났다는 변형된 의미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게 됐다는 것이다.

 



▲ 설악산 산봉우리의 걸린 흰구름을 보니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해지더라!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배 맛 탱크보이가 그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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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한계령으로 향하다!  


한계령 초입에 해당하는 한계교차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2시 경이었다. 40Kg 달하는 자전거를 끌고 한계령을 넘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행동식은 준비가 됐는가? 식수는 몇 통을 챙겼는가? 만약 밤샘 이동을 한다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등등의 물음에 대한 답을 충족시키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한계령이 어떤 곳인가? 설악산을 가로질러 동해로 나아갈 수 있는 높디높은 고개가 아니던가!

한계교차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미시령 고개를 넘을 수 있고, 44번 국도를 타면 한계령에 다다를 수 있다. 인제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인접 도시인 속초로 갈 때 주로 미시령 도로를 이용한다고 했다. 미시령은 터널로 연결됐기 때문에 보다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꼬불꼬불한 한계령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서울에서 속초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주로 미시령을 이용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아갔지만, 설악산 속살을 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더군다나 차가운 개천이라는 뜻의 한계(寒溪)로 들어가는데, 그 정도의 노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확실히 자동차 여행과 자전거 여행은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계령이 험하다고 하지만, 자동차로 1시간 정도면 반대편 양양군에 입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공간을 빨리 이동할수록 인간의 두뇌가 '패스'시키는 지리적 장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긴 운전에 집중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수많은 자연풍광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지켜보겠는가.

 

 



▲ 한계령 관통도로 표지판에 있는 고라니처럼 껑충껑충 뛰어올라 한계령에 도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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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 야크' 타고, 한계령을 10시간 만에 주파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엄연히 내 자전거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 블루야크. 내 자전거가 푸른색이라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 명칭을 빗대서 그렇게 지어본 것이다. 내 자전거가 무적 철TB라 히말라야 야크들처럼 튼튼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네이밍을 붙여본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니까.

산중에서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어차피 야간 이동을 각오했지만, 밤이 되니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시간이 더 지체 됐던 것이다. 나도 블루야크도 지쳐갔다. 이전의 여행들을 통해 많은 경험이 쌓였지만, 한밤중 산중에서의 이동은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지친다고 안 갈 수 있겠는가! 무거운 블루야크를 끌고 걸음에 걸음을 계속했다. 이렇게 걷다보면 언젠가는 한계령에 올라서서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블루야크에게 '채찍'을 가하며 재촉했다. 칠흑 같은 어두운 산중에서 홀로 고독과 탈진 사이를 오가며 계속 걸음에 걸음을 더했다. 그런 외로운 길에도 친구는 있는 법이다. 뻐꾸기, 소쩍새 등등의 산새들이 내 귀를 밝게 해주었다. 시각적으로는 어두웠으나 청각적으로는 무척 경쾌했다.

가고, 또 가고 하다보니 결국 한계령 정상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고도 920m인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난 쾌재를 불렀다. 애초 예정했던 시각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반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러고보면 여행하면서 어떤 이동수단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지는 듯 싶다. 10시간이면 고속버스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왕복 2번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 한계령 정상 참 힘들게 올라왔다. 어두웠을 때 도착했더니 사진도 잘 안 찍혔다. 수 십방을 찍은 후에 겨우 건진게 이 사진이다. 흐릿하게 나왔지만 이 사진 하나가 내게는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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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태순이 말하는 한계령

 

 만약 누군가가 자동차로 한계교차로에서 한계령까지 오는데 10시간이 걸렸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을 했을까? 그 운전자가 설악산에 사는 신선이 아닌 이상 무슨 큰 사단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적어도 동승한 사람은 10시간 동안 운전자의 짜증과 욕설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거리를 10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 교통수단에 따른 '여행시간 체감변동법칙'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애초 한계령 관통도로는 1972년에 군사용 도로로 개통된다. 그러다 한 공병부대가 6년간의 노력 끝에 1978년 포장도로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반 국민들이 자동차로 한계령까지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소설가 박태순씨가 쓴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에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한 내용이 있어 잠시 인용해본다.

"공병부대원들의 노고와는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애당초 잘못 설계되고 아울러 무리한 산복도로 공정으로 사고가 발생되곤 한다. 절개와 절삭, 백두대간의 산세와 지세를 아예 무시하고 묵살시켜 벼랑길을 내게 한 것이다."

박태순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70년대, 그것도 공병부대에 의해 개설된 도로이기에 지금의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것은 아예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환경적인 면은 그렇다 하더라도 '벼랑길'은 눈에 보이는 현재적인 위협이 된다. 이 부분은 필자도 제대로 경험을 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제군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안전상 문제로 인해 한계령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하지 않던가! 한계령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해준 것은 인정되나 그만큼 '목숨 걸고' 한계령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 한계령 이 사진은 나처럼 자전거여행을 하던 어떤 대학생이 찍어준 것이다. 나는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길이었고, 그는 반대로 양양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참 멋진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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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내 텐트로 찾아온 한계령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한계령은 그 말뜻대로 정말 서늘했다. 준비해 둔 잠바를 꺼내 입었는데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 정도였다. 변덕스럽게 끼고 지고를 반복하는 안개를 보고 있자니 몽롱한 기운도 느껴졌다. 가수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한 곡 제대로 뽑고 싶었지만, 한여름에 맞는 추위에 입이 얼어붙었는지 난 그저 따뜻한 커피만 홀짝였다. 제설장비를 모아두는 창고에다 베이스캠프를 친 후 나는 싸늘한 한계령의 날씨를 원통해하며 잠이 들었다. 잠결이었나? 누군가 내게 말을 이런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인제서라도 와줘서 고맙습니다. 원통한 마음은 거두고 편하게 잘 쉬었다 가세요!"

내가 잠든 사이 한계령이 내게 와서 속삭이듯 이 말을 남기고 간 듯싶었다.

 

 



▲ 한계령 정상에 차린 베이스캠프 제설장비들을 적재시켜 놓은 창고에다 한계령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한여름에 눈이 올 것도 아닌데.. 하룻밤 신세 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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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항 설악산에도 올라가고, 동해바다도 달리고... 나의 자전거인 블루야크는 어디든 종횡무진이다! 다음은 울릉도로 향해 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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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강원도 화천에서 행한 <평화안보백일장>의 쓰라린 패배를 뒤로하고, 나는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 방문을 접목하는 방식은 확실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몸은 많이 축났다. 그저 방문객의 입장에서 보고 즐기는 축제에 참가했으면 모르겠는데, 능동적으로 움직여야하는 글쓰기 대회에 참여했으니, 예상치 못한 체력의 소진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난 1등을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1등은커녕 가작에도 못 들어, 인건비도 못 건졌으니 강원랜드에서 '한 판 땡길' 이유도 없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기념으로 정선에도 가보고, 가리왕산도 탐방할 생각이었는데 애초 계획이 어긋난 것이다. 그래서 여행 경로를 수정했다.

 



▲ 북한강의 자전거도로 화천에서 양구를 향해 가는 길. 이 길을 따라 시원하게 강변을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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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 양구 -> 인제 -> 양양 -> 강릉 ->울릉도

이 코스로 길을 잡았고, 실제로 이 코스로 주행을 했다. 그런데 이 코스에는 중간에 한계령이 자리 잡고 있다. 한계령! 그 이름만으로도 아웃도어 여행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설악산 한계령!

일단 자전거를 타고 설악산을 넘는다는 것이 무척 '환상'적인 일인데, 게다가 다른 고개도 아닌 한계령을 넘어간다는 것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화천에서 한계령으로 가려면 양구를 거쳐 가야 한다.

'국토중앙 양구'

위의 명칭은 양구군에서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지역을 두루 다니다 보면 각 지자체마다 자신들의 특색을 슬로건화 해, 네이밍 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천시는 '대한민국 생태도시 순천', 거창군은 '거창한 거창', 장흥군은 '정남진 장흥' 등으로 브랜드화했다. 거창군의 '거창한 거창'이야 지역 명칭을 브랜드화 시켰음을 단 번에 알아낼 수 있지만 장흥군의 '정남진'이나 양구군의 '국토중앙 양구'는 쉽게 그 뜻이 와 닿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남진은 장흥군이 서울에서 정남쪽으로 있다고 하여 정남진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했는데, 정동진을 빗대서 생각해보니 그 뜻을 쉽게 이해하게 됐다.

그럼 국토중앙 양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양구군은 DMZ를 끼고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북한인데...

 

 



▲ 국토중앙 양구 한반도 중앙에 양구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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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배꼽 양구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남한, 북한을 뛰어넘는 한반도적인 슬로건이다. 휴전선 남쪽이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양구는 철책선에 갇힌 변방에 불과하지만 철책선을 걷어낸 후의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미래지향적이고 통일지향적인 구호라고 할 만하다.

남쪽만 나와 있는 교통지도와 남쪽지역 날씨만 알려주고, 북한 지역은 '언저리'로 알려주는 날씨방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죽비소리와도 같은 일침을 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구글 어스에는 북한지역 정보가 나오지 않지만, 옛날 <대동여지도>에는 남북한의 구분이 없지 않았던가?

지리적으로 남과 북을 구분하는 사고도 극복해야 할 분단고착적인 사고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려있다고 하지만 백두대간이 갈렸는가? 남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고, 북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겠는가? 다 똑같이 소중한 우리의 백두대간이지 뭐!

 

 



▲ 파로호 화천에서 양구로 넘어가기 위해서 파로호 인근을 지나야 했다. 멀리 파로호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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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령 터널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진 양구

 

국토의 정중앙이라서 그런가? 양구를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최근에 양구는 도로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다. 올봄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됐기 때문이다. 5.1Km라는 국내 최장거리 터널이 개통되어 양구와 화천을 오가는 길이 많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기존의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어 도로교통이 무척 불편했었다.


그 두 호수가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길이 그곳을 '뼁~'하고 돌아가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차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되었으니 화천과 양구에 사시는 분들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난 왜 양구를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말을 했나? 이율배반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5.1Km나 되는 터널을 통과한다고 생각을 해봐라. 그거 정말 못할 짓이다.


400~500m 짜리 터널을 지나는 것도 정말 괴로운 일인데 무려 5.1km에 달하는 터널 구간을 지날 때의 고통이란! 내 고막을 도려낼 것 같은 자동차의 소음은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그나마 뒤에서 오는 차가 승용차면 다행이지, 22톤짜리 바퀴 8개 달린 덤프트럭이 뒤따라온다고 생각해봐라!

그 긴 장거리 터널을 지나고 나니, 탈진할 정도로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어둠 속에서도 야영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여행일지를 보니, 난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사명산 양구학생 캠핑장에서 텐트를 쳤었다. 도착 시간을 보니 23시였다.

 






▲ 박수근 공원 박수근 미술관 앞에 있는 박수근 공원. 산책하거나 사색하기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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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만난 박수근 화백

 


다음날.

난 양구읍내로 진입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다. 그래서 호반의 도시로 보이기도 한다. 양구 읍내에서 가까운 곳에 박수근미술관이 있었다. 양구 읍내에서 걸어갈 수도 있을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좋은 감흥을 받고 왔다.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가 접목되고, 또 미술관 탐방까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박수근(1914~1965)은 양구군 양구면(현 양구읍) 정림리에서 출생을 했다. 가난했던 그는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런 성장배경은 박수근의 작품들에 오롯이 스며들게 된다. 그는 화강암처럼 두툼하고 거친 풍의 질감으로 작품들을 많이 제작을 했는데 그런 작품들은 서민적이면서도 소박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악〉(1932),〈나무와 여인〉(1950년대),〈행인〉(1964), <할아버지와 손자〉(1964) 등등... 작품명만 봐도 한국적이지 않은가? 그런 박수근미술관은 선생의 작품들과 함께 일대기를 기록한 공간이었다. 2002년에 개관한, 비교적 최근에 개관한 곳이라 그런지 전시공간과 편의시설도 합격점을 줄 만 했다. 

 

 




▲ 박수근 선생 좌상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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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선생 생가터에 200여 평 규모로 건립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은 그 자체로 문화공간이었다. 앞산이 보이는 확 트인 공간에 있는 미술관은 전면에 공원과 함께 야외전시장이 있었다.

그냥 얼핏 봐도 산책하기도 좋고, 사색하기도 좋은 공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나는 공원에 앉아 야외전시물들을 감상하며 식사를 했다. 왜 이상하게, 난 그렇게 멋진 문화공간에 들어서면 허기가 지는지 모르겠다. 야유회를 가면 도시락부터 챙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긴 잘 먹어야지. 그래야 구비구비 돌아가는 한계령을 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는 '인제'로 향하는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느냐고? 원통해서 어찌하라고? 그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가서 물어보시라.
 

 

 



▲ 고구려이야기 가난했던 박수근 화백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직접 역사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감옥에서 역사편지를 썼던 인도의 네루 총리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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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의 고구려이야기 박수근 고구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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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화백 작품 박수근 화백이 이런 작품도 그렸다. 박수근 화백에게서는 서양 화풍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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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과 자전거 박수근 미술관에 가면 무언가 작품을 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되는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 번 설치미술(?)을 해보았다. 박수근 선생은 내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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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나무들: 으샤으샤~ 열심히 오르자!

 

 

* 이 글은 고어코리아에서 행하는 마스터클래스 again 서울 7대명산 이벤트와 관련된 등산여행기입니다.

마스터클래스는 고어코리아에서 진행하는 품격있는 아웃도어 이벤트라고 합니다. 그런 품격 있는 곳에 제가

참여를 하게 된 셈인가요? 이번에 오르게 된 산은 관악산입니다.

 

 

 

 

* 청계산 꽃길: 모래부대로 만들어 놓은게 눈길을 끈다.

 

 

 

 

청계산 후기를 지금에서야 올리네요. 당장 내일이 수락산 등반날인데...

인생사 타이밍이라고 역시 후기도 제때 올려야 제 맛인 것 같습니다.

 

 

산행장소: 청계산(입산:서울 양재동, 하산: 경기도 과천)

산행시간: 약 6시간

산행자: 마스터클래스 11차 회원들

기상조건: 해가 떴으나 흐렸음

특이사항: 야유회 인원들이 많았음. 특히 신입사원 환영회를 청계산에서 하는 인원들이 눈에 띄었음.

그 인원들이 정상을 접수함~ 산에서 지하철 분위기를 느끼기는 처음이었음!ㅋ

 

 

전에 약식 후기를 한 편 올렸는데 아무래도 좀 찜찜하더군요. 사진 한 장 안 올라간 후기는 좀 밋밋하잖아요. 저는 후기를 올리는 것도 마스터클래스에 대한 약속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여간 저는 약속을 중시하는 입장이라 사진이 포함된 후기를  남겨봅니다. 

 

 

첫번째 불암산 산행에서 호흡이 늦게 터져서 무척 고생을 했었답니다. 아무리 늦어도 30분 이내에는 호흡이 터져야 매끄럽게 산행을 마칠 수 있는데 불암산 때는 거의 막판 무렵에 호흡이 터지더군요. 그런 앞전 산행의 경험을 빗대서 이번 청계산 산행에서는 호흡관리를 좀 했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제 컨디션에 맞게 호흡이 터지더군요.

 

 

 

 

* 나무들: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나! 뒤에는 도깨비님.

 

 

 

 

 

청계산.

 

서울 동남부와 경기도 일원에 맞닿아 있는 산.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 때,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운전자들의 시선을 빼앗기게 하는 산. 입구에 아웃도어 메이커들이 '갤러리'를 차려 놓은 산.

 

저는 예전에 청계산을 서너번 정도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산행외에 가장 최근에 오른 적이 한 5년 전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과천에서 입산하여 성남 외곽으로 하산을 했었답니다. 하산할 때 비를 억수로 맞고 내려갔는데, 하산을 하니 허허벌판이더군요. 시내버스가 1시간에 한 대씩 오는 동네였습니다.

 

그 아픈(?) 기억 이후로 청계산은 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번 마스터클래스가 아니었으면 두 번 다시 청계산을 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왜? 청계산이 싫어서. 그 비 맞은 기억이 싫어서? 아닙니다. 저도 나름대로 산행이나 여행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청계산은 그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거든요. 북한산도 마찬가지입니다.

 

 

 

 

 

  * 공중부양: 이거 상당히 재밌었음. 난 왼쪽에서 세번째.

 

 

 

 

계속 여행을 다니다보니 눈만 높아져서 지리산이나 설악산이 기준점이 되어버렸지요. 도보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에 500개 이상의 도보여행길이 있는데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에 눈에 맞춰져서 그런지 다른 트래킹 코스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군요. 왠만한 트래킹 코스는 성이 차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런 면에서 이번 마스터클래스 서울7대 명산은 서울 인근의 산들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7대 명산 중에 제 리스트에 유일하게 오른 산은 관악산이죠. 관악산은 제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라 평생을 꾸준히 오를 생각이거든요. 아참, 제 베이스캠프는 관악산 말고 또 있습니다. 바로 안양천입니다. 둘 다 저희 집에서 가깝습니다. 제가 주로 서식하는 곳이 신도림이라 안양천과 관악산을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죠.

 

5년 만에 다시 오른 청계산은 좀 변한 것 같더군요. 편의시설도 많이 늘었고, 안전시설도 많이 확충됐더군요. 그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건 등산객들이었습니다. 청계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엄청 많이 늘었더군요. 확실히 아웃도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답니다.

 

 

 

* 나무들: 땀나냐? 아니면 힘드냐?ㅋ

 

 

 

역시 우리 마스터클래스 팀은 다르더군요. 그렇게 등산객들이 많이 있다고 해도 단연 눈에 띄더군요.

고어 배낭 때문인가요? 멋진 고어 배낭을 메고 매너 있게 등산을 하니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마클을 경이롭게 바라보지!!!ㅋ

 

어떤 분들은 고어 배낭이 탐난다고 하더군요. 마스터클래스가 무엇하는 팀이냐고 묻는 분들도 계셨고.

그런 물음에... 라라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물음에 차근차근 설명을 잘 해주시더군요.

 

두번째 산행이어서 그랬는지 피로감은 확실히 덜했습니다. 제 체력이 많이 올라온 것 같습니다. 

다른 회원분들도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7대 명산 종주는 시간 문제인 것 같네요.

 

벌써 다음 산행이 기다려지는데... 아무래도 3번째 수락산 산행은 참여가 힘들 것 같습니다.

안타깝네요.

 

 

 

 

*** 간식 싸주신 분들 덕택에 아주 맛나는 산행이었습니다. 삐수님의 쌈 간식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가져다주신 다른 분들에게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 후기에 올려진 몇몇 사진은 가자주인장님과 여유님의 사진입니다. 제가 등장한 사진은 두 분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제가 두 분의 사진을 좀 수정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작자의 오리지널을 건들면 안되는데... 좀 더 잘 해보겠다고 수정을 했으니...

용서를 구합니다. 사진을 올려주신 분들 덕택에 산행의 여운이 더욱더 살아있는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 파워블로킹님: 항상 밝은 미소를 지니신 파워블로킹님!

전번에 이어 제 후기도 파워블로킹님이 마무리를 지어주시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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