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전골계곡: 만물상

 

 

 

 

 

 

 

2021년 7월 2일 금요일

 

약 40일 만에 설악산 주전골에 다시왔다. 전날에는 천불동계곡, 이날은 주전골계곡.

이래저래 설악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든다. 이것도 정말 복인 거 같다. 설악산의 비경들만 찾아나서고 있으니까. 어떤이는 태어나서 설악산을 한 번도 못 가본 이들도 있을텐데...

 

천불동계곡이 속초에서 접근한다면, 주전골계곡은 양양에서 접근한다. 주전골은 작은 천불동계곡이라고 불릴만큼 그 역시 천혜의 비경을 품고 있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천불동계곡 입구보다는 주전골쪽이 좀 더 한적보인다. 주전골이 한계령과 가까워서 그럴 것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있으니 좀 더 한적함이 느껴지는 것일테지.

 

주전골과 관련된 내용은 링크를 건 지난 포스팅을 참조해주시면 좋겠다. 이번에는 그냥 사진 감상 위주로 봐주시면 좋을 듯하다. 계속봐도 좋은 사진들이다.

 

 

 

 

 

 

* 주전골계곡

 

 

 

 

 

 

 

 

*주전골계곡: 독주암

 

 

 

 

 

 

 

 

* 주전골계곡: 만경대

 

 

 

 

*주전골계곡: 선녀탕

 

 

 

 

*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

 

 

 

 

 

 

 

*** 설악산 주전골에 대한 자세한 포스팅은 아래 링크글 클릭!!!

 

https://brunch.co.kr/@historytrekking/258

 

 

 

 

 

 

 

 

 

 

* 선녀탕: 보다시피 선녀는 없고 아저씨만...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 여행 3일차

 

전날 오전에 양양 낙산사를 방문한 후 오후에는 선림원지를 탐방하려고 했다. 선림원지는 유명한 미천골에 자리잡고 있는 폐사지인데... 가보니 미천골 휴양림이 일대 공사중이었다. 휴양림을 통과해야 선림원지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선림원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덕분에 터벅터벅 한 15km 정도 걸은 것 같다.

 

늦은 시간에 양양 읍내로 돌아왔는데 돈도 아낄겸 2만 5천원 짜리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휴~ 눈이 높아진 건가? 전에는 실내에서만 자도 감지덕지한 적이 있었다. 뭐 가난뱅이 여행자들은 그 말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2만 5천원 짜리 여관은 정말 딱 그 수준이었다.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우울하고... 성인방송도 안 나오고...ㅋ

 

전날 선림원지 답사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울한 마음을 씻겨줄 장소가 필요했다. 그렇게해서 오색약수로 유명한 남설악산 주전골 계곡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오색약수 입구

 

 

 

 

 

 

 

양양 읍내에서 오색약수로 향하는 1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데 시골버스치고는 배차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

25분 가량 이동을 하는데 차창밖 풍광이 아름다워 지루하지가 않다. 그냥 시내버스만 타도 신나는 여행이 된다. 사실 이 길은 국도 44호인데 이 길을 따라 가면 한계령을 넘어 인제군에 닿을 수 있다. 그러니 차창밖 풍광이 아름답지! 버스에서 내리면 우뚝 솟아있는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여러분의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 온 몸을 감싸듯 강렬하게 전해지는 돌산의 딴딴한 기운! 그 기운에 흠뻑젖어 보는거다!

 

그렇다. 설악산은 누가뭐래도 우리나라 제일의 골산이다. 바위산이다. 독특한 형상을 자랑하는 바위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자신이 신선이 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그만큼 설악산이 발산하는 아우라가 굉장하다는 것이다.

 

오색약수터 -> 성국사(오색석사) -> 독주암 -> 선녀탕 -> 용소폭포 -> 용소폭포탐방로

 

약 3.2km 로 정도되는 코스인데 지형특성상 원점회귀를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약 6.4km로 정도된다. 돌산, 즉 '악'자 들어가는 산은 보기는 멋있는데 직접 탐방하려면 겁부터 난다. 하지만 이 코스는 길이 순하다. 정식 명칭이 <오색주전골 자연관찰로>인데 둘레길 수준이다.

 

트레커는 오색약수를 가장 먼저 만난다. 주전골 계곡은 잘 모르더라도 오색약수는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래전 이 인근에 오색석사(五色石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사찰은 성국사로도 불렸다. 그 사찰의 승려가 계곡 너럭바위 위에서 용출되는 샘물을 발견했기에 오색약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경내에 다섯 가지 색의 나무가 있다하여 오색석사라는 이름을 가졌다는데 아무래도 알록달록한 단풍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색약수가 있는 곳은 단풍으로 유명한 설악산이니까!

 

계곡 너럭바위 위로 뿜어져나와서 그런지 오색약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약수터의 모습이 아니다. 경사면 한쪽에 배관 같은 구멍이 있고, 그 사이로 졸졸졸 물이 흘러나오는 통상적인 약수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가지도 걸려있고, 주인대신 석유통 같은 물통이 줄을 서 있는...ㅋ

 

계곡과 구별되지 않는 구조라서 그런지 오색약수는 비가 많이 오면 계곡물에 잠기게 된다. 실제로 2006년도에 비가 많이 와서 오색약수가 훼손됐다. 지금의 모습은 그 이후에 복원한 것이고, 2011년도에는 천연기념물 제529호로 지정된다. 참고로 오색약수는 두 개의 구멍에서 뿜어져나온다. 또 인근에는 오색온천이 용출되어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선녀들처럼 노천에서 즐길 수는 없고, 욕실을 갖춘 숙박시설에 들어가야한다.

 

눈이 많이 와도 오색약수의 형태는 구별이 안 될 거 같다. 설악산도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눈이 많이 왔을 때 오색약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 주전골계곡

 

 

 

 

 

 

* 주전골계곡

 

 

 

 

 

 

 

이제 본격적인 주전골 탐방에 나선다. 초입부터 돌산의 계곡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거북바위. 공룡알 바위 등등... 형태도 제각각인 바위들이 트레커들을 반긴다. 원시림 같은 때묻지 않은 계곡의 숲이 있어 더 기분 좋은 길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성국사에 도달할 수 있다.

 

성국사는 오색약수의 어원이 되어준 오색석사의 다른 이름이다. 주전골의 어원도 이 사찰에서 나왔다고 한다. 오색석사에 있던 어떤 중이 엽전을 위조했다하여 이 일대가 '주전골'이라고 불리게됐다는 것이다. 오색약수도 그렇고 이 사찰에서 많은 것들이 뻗어나왔던 거 같다.

 

성국사는 도의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도의선사는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가지산문을 창시했던 고승이다. 구산선문은 경전 위주의 교종과는 달리 수행에 중심을 둔 선종의 9개 선문을 말한다. 한마디로 신라 말기에 9개의 선종 문파가 산을 중심으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중 도의선사는 장흥의 가지산문에서 선종 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썼다는 것이다.

 

사실 울산 언양에 있는 가지산이 훨씬 더 유명하다. 영남알프스에 포함되니까. 하지만 도의선사가 세운 가지산문은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다. 착오가 없으시길.

 

숲길에서 잠깐 벗어나 성국사 경내로 들어가보자. 계곡 안쪽에 있는 성국사는 작은 사찰로 좀 허전해보인다. 살짝 폐사지의 느낌도 전해진다. 이런 성국사에 양양 오색리 3층 석탑이 우뚝 서 있다. 3층 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말기시대 석탑으로 한적한 경내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보물 제497호로 지정된 3층 석탑은 무너져있던 것을 1971년에 복원을 했다.

 

2중 기단 위에 3층짜리 탑신석이 올려진 석탑은 상층 기단부분과 1층 탑신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다. 아래쪽에 네모난 택배 상자 같은 부분은 상층 기단이다. 탑신이 아니다. 4층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2층 탑신은 급격히 줄어들어 상승감이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다. 오래된 탓인지 옥개석의 모서리 부분은 훼손된 부분이 많다. 그리고 3층 위쪽 상륜부도 훼손되어 있다.

 

양양 오색리 3층석탑의 가장 큰 매력은 주위의 산들과 어우러져있다는 것이다. 빽빽하게 숲이 들어선 산 중에 공터처럼 성국사가 자리잡고 있고, 그 한쪽편에 3층석탑이 있으니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에 사람의 인공미가 가미된 모습이다. 이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원래 둘이 하나였던 거 같다.

 

이 밖에도 성국사에는 돌사자 같은 석재들이 남아 있다. 한쪽 편에는 또다른 탑의 잔해물들이 있다. 예전에는 다른탑도 서 있었던 것이다.

 

 

 

 

 

* 양양 오색리 3층석탑

 

 

 

 

 

 

 

* 독주암: 가운데 있는 바위가 독주암이다. 한 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경내를 벗어나 걷다보니 계곡 한쪽편에 독주암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보인다. 혼자 앉아 있기도 비좁다하여 독주암이라 불리는데 이 바위는 주전골 최고의 비경이라고 불린다.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듯 계곡 옆에 우뚝 서 있는 독주암은 그 자체로 절경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곳에 이렇게 멋진 풍광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다. 우뚝 솟아있는 바위들에 넋을 잃었다. 장가계 부럽지 않을 정도다.

 

아무리 완경사라고 하지만 계곡길은 계곡길이다. 바위도 많고 잔돌도 많다. 이 길을 걸으시려면 운동화보다는 트레킹화 이상을 신으셨으면 한다. 어떤 분들은 구두를 신고 오시기도 하던데 좀 위태로워보였다. 계곡이니만큼 미끄러운 구간이 많다.

 

길을 계속가다보니 선녀탕이 보였다. 선녀탕은 탐방로에서 벗어나 그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 선녀가 있을까 하고 바로 앞까지 갔지만... 사진에서 보이듯 어떤 아자씨만 있었다. 분풀이는 나뭇꾼에게 해야겠다. 요즘은 나뭇꾼도 가스보일러 때나?ㅋ

 

물감을 풀어놓은 듯 에머랄드색의 물빛이 참 매력적으로 보인다. 선녀들이 은밀하게 노닐만 하다. 그런 에머랄드 빛깔은 마지막 탐방지인 용소폭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수가 귀를 정화시켜준다. 용이 노닐만한 곳이다.

 

이렇게하여 주전골 계곡 탐방을 마쳤다. 눈이 호강하고, 귀가 맑아지는 트레킹이었다. 또 공기는 얼마나 좋은가. 한 1년쯤 젊어진 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3.2km를 걷는동안 필자는 계속 어깨춤을 추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속 미친놈처럼 어깨를 들썩였던 것이다. 이런 느낌은 인근에 있는 천불동계곡에서도 느껴본 적이 있다.

 

- 어떤 느낌?

- 신선이 된 느낌!

 

 

 

 

 

 

 

* 용소폭포

 

 

 

 

 

 

 

*만경대: 사진 중앙 상단에 있는 것이 만경대다. 설악산에는 여러 만경대가 있다. 이 주전골 만경대는 47년동안 페쇄됐다 2016년에 다시 개방됐다. 하지만 가을철에만 개방한다고 하니 탐방을 원하시는 분들은 꼭 확인을 하셔야한다.

 

 

 

 

 

 

 

 

* 주전골: 만물상

 

 

 

 

 

 

 

*** 남설악 주전골 가는법

 

1. 서울 경부터미널에서 양양행 고속버스 탑승. 약 2시간 소요됨.

2. 양양버스터미널에서 오색약수행 시내버스 탑승. 약 25분 정도 소요됨. 배차시간은 1시간에 1대 정도임.

3. 코스는 3.2km이나 지형 특성상 왔던 길을 다시 와야하는 왕복 코스임. 그래서 6.4km 정도됨. 정류장에서 이동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총 7km 정도 예상함.

4.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오색약수행 시외버스도 있음. 하지만 편수가 많지 않음.

 

 

 

 

 

 

 

 

 

 

 

 

---> 1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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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도 속초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조도.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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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해수욕장과 조도

아바이마을을 빠져나오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인 해변 트레킹이 시작된다. 거기서부터가 속초 제일의 명소라고 불리는 속초해수욕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속초 해수욕장은 황토빛 모래사장이 인상적인 곳이다. 약 1km 정도에, 질 좋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새들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조도(鳥島)가 두둥실 푸른 동해바다에 떠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더구나 바다 반대편에는 우뚝 솟은 설악산이 내려다보고 있어 여느 바닷가 해우욕장과는 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사실 속초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다. 느릿느릿 걸어도 30~40분 정도면 끝부분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해운대나 경포대 같은 '광대역' 백사장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성이 안 찰 수도 있다. 하지만 광대역보다는 아기자기함을, 더불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속초해수욕장에 더 높은 점수를 줄지도 모른다.

속초해수욕장의 끝자락에는 외옹치라는 작은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속초해수욕장 일대와 속초 중심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푸른 동해바다의 물결과 황토빛 모래사장이 서로 서로의 배경색이 된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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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 외옹치는 해안가로 툭 튀어나온 형상을 하고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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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와 마도로스 리

속초해수욕장에서 외옹치를 바라다보면 마치 어떤 산 하나가 바닷가를 향해 뛰어들려는 형상이다. 평평한 해안가가 계속 이어지다 외옹치 부근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 나온 모습이라는 것이다. 외옹치(外瓮峙)라는 명칭도 바깥(外)으로 튀어 나온 항아리(瓮) 같은 언덕(峙)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외옹치에는 짧기는 했지만 숲길도 있었다. 속초시 지형도를 보면, 설악산 대청봉에서 동쪽 방면으로 내려온 줄기는 주봉산을 타고 내려오다 바다를 앞에 두고 외옹치가 된다. 즉 외옹치에서는 동해바다와 설악산이 서로 만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형적인 특색 때문인지 외옹치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된 것이다. 사실 외옹치 해변은 2005년 전까지만 해도 군사용 철책이 들어서서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한편 같은 해에 동쪽에 주둔하고 있었던 군부대도 철수하게 되어 지금의 외옹치의 모습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외옹치 일대에는 해안 방어를 위해 군 초소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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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 외옹치를 배경으로 촬영을 하는 모습.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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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군사시설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외옹치의 안쪽은 덕산이라고 불렸는데 그 곳에 봉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산 봉수대는 북쪽으로는 간성 남쪽으로는 지금의 양양으로 봉화를 연결해주는 곳이었다. 그렇게 오솔길을 타고 가다보면 '마도로스 리' 선생이 살고 있는 집이 나온다. 그 마도로스 선생 뒤편으로는 외옹치항이 있다.

마도로스 선생은 홍게잡이 어선을 타는 분인데 한 번 출항할 때마다 일 주일 정도는 해상에서 보낸다고 한다. 홍게는 심해 1000미터 부근에서 서식하는 터라 어획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또 한 번 조업에 나서면 하루 20시간 이상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무척 세다. 오죽하면 홍게 잡이가 극한직업으로까지 분류될 정도일까! 실제로 '마도로스 리' 선생은 극한 직업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여러번 출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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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로스 LEE 외옹치와 대포항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그 힘들다는 홍게 잡이 배를 탄다고 한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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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아담한 외옹치항

외옹치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다는 마도로스 선생은 사람이 좋아서 그런지 자신의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차 대접을 아끼지 않는 분이다. 외옹치 숲길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집이 있는데 외옹치항으로 길을 잡으려면 반드시 마도로스 선생의 집을 지나쳐야 한다. 그렇게 필자도 차를 대접받았는데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옹치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현재 외옹치 마을은 바닷가 쪽이 아닌 도로와 인접한 곳에 밀집되어 있었다. 어촌 마을이라면 조금이라도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집을 지어야 이치에 맞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1984년에 있었던 수해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984년에 있은 수해로 인해 산사태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 이후 마을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당시 수해는 외옹치 마을의 어로 활동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1984년 이전에는 '뗀마'라고 불리던 무동력선을 타고 문어를 잡는 재래식 어로 작업을 많이 했다. 하지만 수해복구와 함께 항구도 현대식으로 탈바꿈했고, 무동력선도 동력선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재래식 어로 활동도 자취를 감추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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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항의 야경 철책선 위로 불빛이 비취고 그 반대편에는 보름달이 떠올랐다. 동해바다와 어루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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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외옹치항에는 어선들이 입출입을 하지 않는다. 외옹치항을 입출입하는 어선들은 항구 앞에 꾸려진 난전 식당들에 싱싱한 수산물을 공급했는데 그만 그 식당들이 올 겨울에 화재로 다 소실됐기 때문이다. 약 10채에 달하던 외옹치 난전들이 싹 다 소실될 정도로 큰 화재였다고 한다. 수산물의 판로가 없으니 항구에 배들은 인근 지역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1984년에 있은 큰 수해를 극복했던 외옹치이기에 이번에도 그런 곤경을 잘 극복할 것이다. 실제로 화마의 상처가 깊던 식당가는 올 겨울 재개장을 앞두고 한창 공사중에 있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고깃배가 직접 잡아온 싱싱한 수산물을 바로 맛볼 수 있는 외옹치 난전이 다시 개장할 것이다. 그러면 작고 아담한 외옹치 항구는 예전처럼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다.

# 유명한 대포항 수산시장

외옹치에서 유명한 대포항까지는 약 1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실제로 행정구역 상 외옹치는 대포동에 속한다. 대포항은 어시장이 잘 발달되어 속초 최고의 항구로 손꼽힌다. 최근에 현대화 공사가 끝나 대포항은 항구와 어시장이 확 바뀌었다. 싱싱한 횟감이 즐비한 어시장과 말끔하게 정비된 접안 시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구경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해안트레킹에서 어시장탐방 트레킹으로 변형이 되는 것이다.

대포항 일대를 다 걸어보려면 1시간 이상이 소요될 정도로 항구와 어시장은 큰 규모를 자랑한다. 깔끔하게 단장된 식당들에는 싱싱한 수산물들을 맛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북적인다. 이렇듯 작고 아담한 외옹치 항구와 큰 규모의 대포항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속초해변트레킹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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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항 오토바이 오징어. 오토바이에 걸려 있는 오징어의 모습이 흥미롭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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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항과 어시장 탐방을 마치면 약 8km에 달하는 속초해변트레킹이 종료가 된다. 사실 8km는 트레킹을 하기에는 짧은 거리이다. 2시간 정도면 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시간 만에 속초해변트레킹을 마무리 짓기는 힘들 것이다. 멋진 풍광과 함께 힘차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취하다보면 자꾸 발걸음이 멈춰지기 때문이다.

그런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도보 여행객의 상처와 시름은 어느 순간 동해바다에 실려 멀리멀리 사라졌을지 모른다. 물론 도시로 돌아와 일상에 찌들면 그 상처와 시름들이 다시 몰려올 수도 있겠지. 그럼 그때마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설악산의 상록수, 외옹치를 감싸는 푸른 동해바다...

아직 후배는 속초행 고속버스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은근히 필자와 함께 가길 원하는 것 같다. 기회가 닿는다면 함께 가도 좋을 것이다. 그럼 속초해변 역사트레킹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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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해변트레킹 코스 빨간색으로 그려진 부분으로 이동한다. 이동거리는 약 8km 정도다.


● 도움말
1. 서울 동서울터미널 기준으로 속초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속초에는 고속버스터미널도 있는데 그 곳은 속초해수욕장 입구 부근에 있다.

2. 대포항에서 트레킹을 마친 후에는 7번 국도쪽 나와서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돌아올 수 있다. 버스 노선이 많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3. 춘천에서 속초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춘천 같은 강원도 서부 내륙지역도 속초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럽지가 않다.

 

 

 

 

 

 

 

 

 

 

 

 

 

 

 

한계령이 나의 '원통' 함을 달래주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④] 한계령 편
12.10.12 20:59l최종 업데이트 12.12.18 22:00l
곽동운(artpunk)

 

 

 

 

 

 

 

▲ 한계령 한계령에 자신이 올라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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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월요일

나는 강원도 양구와 인제에 있는 광치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입성했다. 광치령은 660고지였는데, 역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힘든 기색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 곧 한계령을 넘어야 했으니까!

"실례하지만, 여기 읍사무소가 어디에요?"

힘들게 광치령을 넘었던 터라, 읍사무소에서 물도 얻어 마시고, 인제군 여행지도도 얻어갈 생각이었다.

"읍사무소는 남쪽으로 한참 가야 하고,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면사무소가 있어요."
"예? 여기가 원통읍이 아닌가요?"
"원통은 원통리이고, 여기는 읍이 아니라 북면이에요. 인제군 북면."

 

 

 

# 원통이 읍이였어?... '광천김'은 A급 밥도둑

'읔! 원통읍이 아니라 원통리였다니! 원통의 정확한 행정상 지명이 인제군 북면 원통(元通)리였다니!'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원통이 행정구역상 '리' 단위였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았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은 내 얇은 지식이 들통이 나서 더 창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칭 아웃도어 여행가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다니!'

우리나라에서 '읍' 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군' 단위와 차별화되어 자체적 '네이밍' 파워를 가진 곳이 몇 군데 있다. 가야, 강경, 광천, 삼랑진, 벌교 등이 그곳이다. 강경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광천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 삼랑진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벌교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공식적인 행정 지명이다. 고대연맹 국가인 가야국에서 지명을 따온 가야읍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속해 있는 곳으로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벌교도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였으니, 잘 알 것이다.

강경과 삼랑진은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 이후, 쌀의 집산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강경은 금강을 통해, 삼랑진은 낙동강을 통해 바다로 출항할 수 있는 곳인데, 그만큼 내륙 수운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광천은 '광천김'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1년 자전거여행 당시 난 그곳에 들러 '광천김'을 한가득 샀었다. 장거리여행을 할 때는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여행자와 궁합이 잘 맞는 밥도둑들을 데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광천김'은 A급 밥도둑이었다.

이렇듯 읍 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나 군만큼 입에 자주 언급되는 경우는 종종 봐 왔지만, 리 단위의 지명이 군 단위의 '브랜드 파워'와 필적하는 경우는 원통리가 유일할 것으로 여겨진다.

 

 




▲ 원통종합복지타운 저 곳에는 도서관, 공공회의실, 보건지소 등 공공시설이 입주해 있는데 우리동네에 있는 곳보다 시설이 더 좋았다. 저 사진은 복지타운의 담당자님이 찍어 주셨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인제군 북면은 인구가 8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면단위 인구 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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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럼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원통리가 인제군과 짝을 이루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애절한 슬로건 대명사를 낳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원도 군번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아리랑 곡조보다도 더 애절한 이 말의 출현시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사실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에도 원통리가 있다. 하지만 인제군의 원통리와 비교하면 그 존재감이 덜해서 일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청원 가서 원통하다!'라는 말은 없으니까.

인제군 원통리의 지형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북쪽으로는 명당산(764m)이 있긴 하지만, 동쪽으로는 소양강을 향해 가는 북천이 흐르고 있어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원통리에는 원통체육공원도 자리 잡고 있다. 차라리 한계령을 품고 있는 한계리의 지형이 험하면 더 험한 듯싶었다.

원통(元通)은 원래 원산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설악산과 금강산을 넘으면 바로 원산이니 그런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인 의미의 명칭은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군사도시로 변모한 인제군의 모습 속에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마음속에 '슬픈 아리랑' 한 곡조씩을 품고 사는 강원도 군번들에게 '인제'와 '원통'이란 명칭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푸념거리의 소스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원통에 대해서 '왜 그리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느냐'고 필자에게 질책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것인지 '명칭 따라 삼천리'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비판의 화살을 내게 발사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필자는 원통을 보면서 한국전쟁과 뒤이은 분단으로 인해 해당 지역 명칭이 일반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각인되는지에 대해서 주목해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지리산 피아골 같은 경우도 원래는 곡식인 피가 많이 재배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리산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골짜기가 피로 넘쳐 났다는 변형된 의미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게 됐다는 것이다.

 



▲ 설악산 산봉우리의 걸린 흰구름을 보니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해지더라!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배 맛 탱크보이가 그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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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한계령으로 향하다!  


한계령 초입에 해당하는 한계교차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2시 경이었다. 40Kg 달하는 자전거를 끌고 한계령을 넘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행동식은 준비가 됐는가? 식수는 몇 통을 챙겼는가? 만약 밤샘 이동을 한다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등등의 물음에 대한 답을 충족시키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한계령이 어떤 곳인가? 설악산을 가로질러 동해로 나아갈 수 있는 높디높은 고개가 아니던가!

한계교차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미시령 고개를 넘을 수 있고, 44번 국도를 타면 한계령에 다다를 수 있다. 인제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인접 도시인 속초로 갈 때 주로 미시령 도로를 이용한다고 했다. 미시령은 터널로 연결됐기 때문에 보다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꼬불꼬불한 한계령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서울에서 속초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주로 미시령을 이용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아갔지만, 설악산 속살을 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더군다나 차가운 개천이라는 뜻의 한계(寒溪)로 들어가는데, 그 정도의 노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확실히 자동차 여행과 자전거 여행은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계령이 험하다고 하지만, 자동차로 1시간 정도면 반대편 양양군에 입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공간을 빨리 이동할수록 인간의 두뇌가 '패스'시키는 지리적 장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긴 운전에 집중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수많은 자연풍광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지켜보겠는가.

 

 



▲ 한계령 관통도로 표지판에 있는 고라니처럼 껑충껑충 뛰어올라 한계령에 도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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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 야크' 타고, 한계령을 10시간 만에 주파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엄연히 내 자전거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 블루야크. 내 자전거가 푸른색이라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 명칭을 빗대서 그렇게 지어본 것이다. 내 자전거가 무적 철TB라 히말라야 야크들처럼 튼튼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네이밍을 붙여본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니까.

산중에서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어차피 야간 이동을 각오했지만, 밤이 되니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시간이 더 지체 됐던 것이다. 나도 블루야크도 지쳐갔다. 이전의 여행들을 통해 많은 경험이 쌓였지만, 한밤중 산중에서의 이동은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지친다고 안 갈 수 있겠는가! 무거운 블루야크를 끌고 걸음에 걸음을 계속했다. 이렇게 걷다보면 언젠가는 한계령에 올라서서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블루야크에게 '채찍'을 가하며 재촉했다. 칠흑 같은 어두운 산중에서 홀로 고독과 탈진 사이를 오가며 계속 걸음에 걸음을 더했다. 그런 외로운 길에도 친구는 있는 법이다. 뻐꾸기, 소쩍새 등등의 산새들이 내 귀를 밝게 해주었다. 시각적으로는 어두웠으나 청각적으로는 무척 경쾌했다.

가고, 또 가고 하다보니 결국 한계령 정상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고도 920m인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난 쾌재를 불렀다. 애초 예정했던 시각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반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러고보면 여행하면서 어떤 이동수단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지는 듯 싶다. 10시간이면 고속버스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왕복 2번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 한계령 정상 참 힘들게 올라왔다. 어두웠을 때 도착했더니 사진도 잘 안 찍혔다. 수 십방을 찍은 후에 겨우 건진게 이 사진이다. 흐릿하게 나왔지만 이 사진 하나가 내게는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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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태순이 말하는 한계령

 

 만약 누군가가 자동차로 한계교차로에서 한계령까지 오는데 10시간이 걸렸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을 했을까? 그 운전자가 설악산에 사는 신선이 아닌 이상 무슨 큰 사단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적어도 동승한 사람은 10시간 동안 운전자의 짜증과 욕설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거리를 10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 교통수단에 따른 '여행시간 체감변동법칙'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애초 한계령 관통도로는 1972년에 군사용 도로로 개통된다. 그러다 한 공병부대가 6년간의 노력 끝에 1978년 포장도로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반 국민들이 자동차로 한계령까지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소설가 박태순씨가 쓴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에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한 내용이 있어 잠시 인용해본다.

"공병부대원들의 노고와는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애당초 잘못 설계되고 아울러 무리한 산복도로 공정으로 사고가 발생되곤 한다. 절개와 절삭, 백두대간의 산세와 지세를 아예 무시하고 묵살시켜 벼랑길을 내게 한 것이다."

박태순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70년대, 그것도 공병부대에 의해 개설된 도로이기에 지금의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것은 아예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환경적인 면은 그렇다 하더라도 '벼랑길'은 눈에 보이는 현재적인 위협이 된다. 이 부분은 필자도 제대로 경험을 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제군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안전상 문제로 인해 한계령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하지 않던가! 한계령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해준 것은 인정되나 그만큼 '목숨 걸고' 한계령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 한계령 이 사진은 나처럼 자전거여행을 하던 어떤 대학생이 찍어준 것이다. 나는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길이었고, 그는 반대로 양양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참 멋진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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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내 텐트로 찾아온 한계령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한계령은 그 말뜻대로 정말 서늘했다. 준비해 둔 잠바를 꺼내 입었는데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 정도였다. 변덕스럽게 끼고 지고를 반복하는 안개를 보고 있자니 몽롱한 기운도 느껴졌다. 가수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한 곡 제대로 뽑고 싶었지만, 한여름에 맞는 추위에 입이 얼어붙었는지 난 그저 따뜻한 커피만 홀짝였다. 제설장비를 모아두는 창고에다 베이스캠프를 친 후 나는 싸늘한 한계령의 날씨를 원통해하며 잠이 들었다. 잠결이었나? 누군가 내게 말을 이런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인제서라도 와줘서 고맙습니다. 원통한 마음은 거두고 편하게 잘 쉬었다 가세요!"

내가 잠든 사이 한계령이 내게 와서 속삭이듯 이 말을 남기고 간 듯싶었다.

 

 



▲ 한계령 정상에 차린 베이스캠프 제설장비들을 적재시켜 놓은 창고에다 한계령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한여름에 눈이 올 것도 아닌데.. 하룻밤 신세 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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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항 설악산에도 올라가고, 동해바다도 달리고... 나의 자전거인 블루야크는 어디든 종횡무진이다! 다음은 울릉도로 향해 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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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 한계령 관통도로: 표지판에 있는 고라니처럼 껑충껑충 뛰어올라 한계령에 도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 한계령: 이 사진은 나처럼 자전거여행을 하던 어떤 대학생이 찍어준 것이다.

나는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길이었고, 그는 반대로 양양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 전편에 이어서

 

 지친다고 안 갈 수 있겠는가! 무거운 블루야크를 끌고 걸음에 걸음을 계속했다. 이렇게 걷다보면 언젠가는 한계령에 올라서서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블루야크에게 ‘채찍’을 가하며 재촉을 했다. 칠흑 같은 어두운 산중에서 홀로 고독과 탈진 사이를 오가며 계속 걸음에 걸음을 더했다. 그런 외로운 길에도 친구는 있는 법이다. 뻐꾸기, 소쩍새 등등의 산새들이 내 귀를 밝게 해주었다. 시각적으로는 어두웠으나 청각적으로는 무척 경쾌했다.

 

가고, 또 가고 하다보니 결국 한계령 정상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고도 920m인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난 쾌재를 불렀다. 애초 예정했던 시각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반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러고보면 여행을 하면서 어떤 이동수단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지는 듯싶다. 10시간이면 고속버스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왕복 2번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만약 누군가가 자동차로 한계교차로에서 한계령까지 오는데 10시간이 걸렸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을 했을까? 그 운전자가 설악산에 사는 신선이 아닌 이상 무슨 큰 사단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적어도 동승한 사람은 10시간 동안 운전자의 짜증과 욕설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거리를 10시간 만에 주파를 했다고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 교통수단에 따른 ‘여행시간 체감변동법칙’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필자는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 한계령 정상: 참 힘들게 올라왔다. 어두웠을 때 도착했더니 사진도 잘 안 찍혔다.

수 십방을 찍은 후에 겨우 건진게 이 사진이다. 흐릿하게 나왔지만 이 사진 하나가 내게는 참 소중하다.

 

 

 

* 한계령 정상: 뒤편에 저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힘 좋은 4륜 구동들을 타고 오신 것 같은데.

 

 

 

 

 

 

애초 한계령 관통도로는 1972년에 군사용 도로로 개통된다. 그러다 한 공병부대가 6년간의 노력 끝에 1978년 포장도로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반 국민들이 자동차로 한계령까지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소설가 박태순씨가 쓴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에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한 내용이 있어 잠시 인용해본다.

 

 

“공병부대원들의 노고와는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애당초 잘못 설계되고 아울러 무리한 산복도로 공정으로 사고가 발생되곤 한다. 절개와 절삭, 백두대간의 산세와 지세를 아예 무시하고 묵살시켜 벼랑길을 내게 한 것이다.”

 

 

박태순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70년대, 그것도 공병부대에 의해 개설된 도로이기에 지금의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것은 아예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환경적인 면은 그렇다 하더라도 ‘벼랑길’은 눈에 보이는 현재적인 위협이 된다. 이 부분은 필자도 제대로 경험을 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제군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안전상 문제로 인해 한계령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하지 않던가! 한계령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해준 것은 인정되나 그만큼 ‘목숨 걸고’ 한계령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한계령은 그 말뜻대로 정말 서늘했다. 준비해 둔 잠바를 꺼내 입었는데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 정도였다. 변덕스럽게 끼고 지고를 반복하는 안개를 보고 있자니 몽롱한 기운도 느껴졌다. 가수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한 곡 제대로 뽑고 싶었지만 한여름에 맞는 추위에 입이 얼어붙었는지 난 그저 따뜻한 커피만 홀짝였다. 제설장비를 모아두는 창고에다 베이스캠프를 친 후 나는 싸늘한 한계령의 날씨를 원통해하며 잠이 들었다. 잠결이었나? 누군가 내게 말을 이런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인제서라도 와줘서 고맙습니다. 원통한 마음은 거두고 편하게 잘 쉬었다 가세요!”

 

내가 잠든 사이 한계령이 내게 와서 속삭이듯 이 말을 남기고 간 듯싶었다.

 

 

 

 

 

 

 

 

* 한계령 정상에 차린 나의 베이스캠프: 제설장비들을 적재시켜 놓은 창고에다 나의 한계령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한여름에 눈이 올 것도 아닌데.. 하룻밤 신세 좀 지었다.

 

 

 

 

 

 * 한계령 베이스캠프: 산 정상부에 있으니 여름이었는데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 설악산: 안개가 낀 설악산의 모습. 운무가 낀 모습에 영험한까지 느껴질 정도다.

 

 

  

 

* 주문진항: 설악산에도 올라가고, 동해바다도 달리고... 나의 자전거인 블루야크는 어디든 종횡무진이다!

 

 

 

 

* 주문진항

 

 

 

 

 

 

 

 

 

 

 

 

 

 

 

 

 

 

 

 

 

 

 

 

 

 

 

 

 

 

 

 

 

 

 

 

 

 

 

 

 

 

* 설악산: 산봉우리의 걸린 흰구름을 보니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해지더라!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배 맛 탱크보이가 그리웠었다.

 

 

 

* 장수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설악전투의 전승을 기념하고, 설악산을 찾은 탐방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지은 'ㄱ' 형태의 한옥집.

 

 

 

 

---> 전편에 이어서

 

 

 

#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어찌하리요!

 

인제군 원통리의 지형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북쪽으로는 명당산(764m)이 있긴 하지만 동쪽으로는 소양강을 향해 가는 북천이 흐르고 있어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원통리에는 원통체육공원도 자리 잡고 있다. 차라리 한계령을 품고 있는 한계리의 지형이 험하면 더 험한 듯싶었다.

 

원통(元通)은 원래 원산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설악산과 금강산을 넘으면 바로 원산이니 그런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인 의미의 명칭은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군사도시로 변모한 인제군의 모습 속에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마음속에 ‘슬픈 아리랑’ 한 곡조씩을 품고 사는 강원도 군번들에게 ‘인제’와 ‘원통’이란 명칭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푸념거리의 소스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원통에 대해서 왜그리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냐고 필자에게 질책을 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것인지 ‘명칭 따라 삼천리’를 하는 것인지 혼동스럽다고 비판의 화살을 내게 발사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필자는 원통을 보면서 한국전쟁과 뒤이은 분단으로 인해 해당 지역 명칭이 일반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각인되는지에 대해서 주목을 해본 것이다. 예를 들어 지리산 피아골 같은 경우도 원래는 곡식인 피가 많이 재배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리산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골짜기가 피로 넘쳐 났다는 변형된 의미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게 됐다는 것이다. 

 

 

 

 

* 설악산: 구름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 설악산

 

 

 

 

# 달려라 블루야크

 

한계령의 초입에 해당되는 한계교차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12시 경이었다. 40Kg 달하는 자전거를 끌고 한계령을 넘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행동식은 준비가 됐는가? 식수는 몇 통을 챙겼는가? 만약 밤샘 이동을 한다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등등의 물음들에 대한 답을 충족시키려면 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계령이 어떤 곳인가? 설악산을 가로질러 동해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높디높은 고개가 아니던가!

 

한계교차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미시령 고개를 넘을 수 있고, 44번 국도를 타면 한계령에 다다를 수 있다. 인제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인접 도시인 속초로 갈 때 주로 미시령 도로를 이용한다고 했다. 미시령은 터널로 연결됐기 때문에 보다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꼬불꼬불한 한계령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서울에서 속초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주로 미시령을 이용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아갔지만, 설악산의 속살을 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난 콧노래를 부르며 나아갔다. 더군다나 차가운 개천이라는 뜻의 한계(寒溪)로 들어가는데 그 정도의 노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확실히 자동차 여행과 자전거여행은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계령이 험하다고 하지만 자동차로 1시간 정도면 반대편 양양군에 입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공간을 빨리 이동할수록 인간의 두뇌가 ‘패스’시키는 지리적 장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긴 운전에 집중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수많은 자연풍광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지켜보겠는가.

 

비록 중고자전거지만 엄연히 내 자전거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 블루야크. 내 자전거가 푸른색이라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 명칭을 빗대서 그렇게 지어본 것이다. 내 자전거가 무적 철TB라 히말라야 야크들처럼 튼튼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네이밍을 붙여본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니까.

 

산중에서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어차피 야간 이동을 각오했지만 밤이 되니 덜컥 무서운 것이었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시간이 더 지체됐던 것이다. 나도 블루야크도 지쳐갔다. 이전의 여행들을 통해 많은 경험이 쌓였지만, 한밤중 산중에서의 이동은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 장수대

 

 

 

* 설악산

 

 

 

 

* 설악산: 한계령을 지나 양양 오색약수 방면으로 향하는 길

 

 

 

 

 

 

 

 

 

 

 

 

 

 

 

 

 

 

 

 

 

 

 

 

 

 

 

 

 

 

 

 

 

 

 

 

 

 

 

*한계령: 한계령에 자신이 올라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 인제군 북면 원통리 북천: 북천은 남쪽으로 흘러가다 소양강과 합수된다. 가운데 멀리로 설악산이 보인다.

 

 

 

 

 

2012년 6월 18일 수요일

 

나는 강원도 양구와 인제에 있는 광치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입성을 했다. 광치령은 660고지였는데, 역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힘든 기색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 곧 한계령을 넘어야 했으니까!

 

"실례하지만, 여기 읍사무소가 어디에요?"

 

힘들게 광치령을 넘었던 터라, 읍사무소에서 물도 얻어 마시고 인제군 여행지도도 얻어갈 생각이었다.

 

"읍사무소는 남쪽으로 한참가야 하고, 저쪽으로 좀만 가면 면사무소가 있어요."

"예? 여기가 원통읍이 아닌가요?"

"원통은 원통리이고, 여기는 읍이 아니라 북면이에요. 인제군 북면."

 

읔! 원통읍이 아니라 원통리였다니! 원통의 정확한 행정상 지명이 인제군 북면 원통(元通)리였다니!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국내여행을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원통이 행정구역상 '리' 단위였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았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은 내 얇은 지식이 들통이 나서 더 창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칭 아웃도어 여행가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다니!

 

 

* 원통종합복지타운: 저 곳에는 도서관, 공공회의실, 보건지소 등 공공시설이 입주해 있는데 우리동네에 있는 곳보다 시설이 더 좋았다.

저 사진은 복지타운의 담당자님이 찍어 주셨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인제군 북면은 인구가 8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면단위 인구 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다.

 

 

 

* 인제군: 양구에서 인제군으로 진입할 때 작은 조형물 공원이 하나 있어서 사진을 좀 찍어 보았다.

여행을 자주 하다보니 내 자신의 트렌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농기구들이 요즘에는 눈에 확 들어온다.

더불어 목공예나 짚신공예를 배워서 '한 몫 단단히 챙겨볼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가끔 든다.

 

 

 

 

 

우리나라에서 '읍'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군' 단위와 차별화 되어 자체적 ‘네이밍’ 파워를 가진 곳이 몇 군데 있다. 가야, 강경, 광천, 삼랑진, 벌교 등이 그곳이다. 강경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광천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 삼랑진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벌교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공식적인 행정 지명이다. 고대연맹 국가인 가야국에서 지명을 따온 가야읍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속해 있는 곳으로 굳이 따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벌교도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였으니 잘 아실 것이다.

 

강경과 삼랑진은 조선후기 대동법 시행 이후, 쌀의 집산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강경은 금강을 통해, 삼랑진은 낙동강을 통해 바다로 출항할 수 있는 곳인데, 그만큼 내륙 수운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광천은 광천김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1년 자전거여행 당시 난 그곳에 들러 광천김을 한가득 샀었다. 장거리여행을 할 때는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여행자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밥도둑들을 데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광천김은 A급 밥도둑이었다.

 

이렇듯 읍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나 군만큼 입에 자주 언급되는 경우는 종종 봐왔지만 리단위의 지명이 군단위의 '브랜드 파워'와 필적하는 경우는 원통리가 유일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 여기서 필자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원통리가 인제군과 짝을 이루어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애절한 슬로건의 대명사를 낳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원도 군번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아리랑 곡조보다도 더 애절한 이 말의 출현시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사실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에도 원통리가 있다. 하지만 인제군의 원통리와 비교하면 그 존재감이 덜해서 일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청원 가서 원통하다!’라는 말은 없으니까.

 

 

 

* 설악산

 

 

* 한계천: 북천보다 상류에 있는 한계천에서 본 설악산

 

 

 

*설악산: 산봉우리에 흰 구름이 걸려있다.

 

 

*인제군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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