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 하러 가자! 월류봉으로 달보러 가자!

<영동여행> 월류봉둘레길 따라가는 길, 월류봉에서 반야사까지

 

충북 영동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 이웃 옥천과 더불어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다보니 와인의 고장으로 영동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미감을 자극하는 와인처럼 영동에는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풍광들도 정말 많다. 백두대간이 영동을 통과하기에 그런 풍광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영동에서 가장 유명한 백두대간의 지명이 추풍령(秋風嶺 )과 민주지산(珉周之山)인데 그 둘의 고도차가 무려 1000미터에 달한다. 추풍령이 221미터이고, 민주지산이 1,241미터이다. 정말 흥미로운 대목이다. 참고로 추풍령은 민주지산에서 북동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백두대간중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지점으로 불린다.

이런 영동에서도 가장 으뜸인 곳을 꼽으라면 월류봉(月留峰)이 가장 먼저 꼽힐 것이다. 월류봉은 달이 머물다 갈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풍유객들이 음풍농월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깎아질 듯한 바위산 아래로 금강의 상류인 초강천이 힘차게 흐르고 있고, 그 위에 그림처럼 월류정이 자리잡고 있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 월류봉

 

 

 

월류봉은 해발 400미터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굽이굽이 흐르는 초강천과 이웃한 석천이 어우러져 빼어난 산수(山水)의 조화를 뽐내는 곳이다. 월류봉은 영동군 황간면에 위치해있는데 여기서 황간이 어떤 곳인지 잠시 알아보자.

지금은 '면'이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황간은 황간현이었다. 그래서 지방관으로 현감이 파견되었는데 지금의 추풍령면과 황간면 등이 황간현의 영역이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황간현과 영동현이 합쳐져서 영동군이 된다.

월류봉에서 동남쪽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황간역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했다. 황간역은 작은 간이역이다. 하지만 황간역은 경부선이 개통할 때부터 만들어진 역이었다. 지금은 간이역으로 소박하게 변했지만 무려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역사인 것이다.

영동군은 일찍부터 경부선 철도가 들어서고,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영남을 잇는 추풍령의 존재자체가 영동군의 지리적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지역에 철도와 도로가 놓이니 예전부터 인공적으로 교각들이 세워진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이렇다. 산이 깊은 만큼 물도 많이 흐르고, 그러다보니 굴다리같은 형태의 다리 시설물이 많이 건설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굴다리는 비상시에 대피소 역할을 해준다. 피난길을 떠난 이들에게 잠시나마 쉼터 역할을 해준다.

 

 

* 쌍굴다리: 월류봉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1950년 7월 26일경,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 있는 쌍굴다리에도 그렇게 피난민들이 모여들었었다. 여기서 노근리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국전쟁 발발 이후 약 1달이 지났을 때였다. 피난민들은 고단한 발걸음으로 남쪽으로 이동해갔다. 그렇게 추풍령을 넘으면 영남이었다. 당시는 여름이라 비를 피하거나 햇빛을 막기위해 쌍굴다리로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그 쌍굴다리 위로는 지금도 경부선 기차가 달리고 있다. 참고로 노근리 쌍굴다리는 1934년에 건설되었다.

그런 피난민들에게 공중에서는 폭탄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기관총이 난사된다. 7월 26~29일까지, 3일에 걸쳐서 벌어진 노근리 학살로 인해 무고한 피난민 250~300명이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미군에 의해 벌어진 노근리 학살이다.

이 노근리 사건은 월간 <말>지 기자였던 오연호가 10년에 걸쳐 심층적으로 보도를 했었다. 하지만 국내외 언론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1999년 9월 30일, 미국 AP통신에 의해 노근리 사건이 특종으로 보도되었다. 이때부터 노근리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받게 된다. 이후 2001년 1월 12일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이 유감을 표하게 된다. 기왕 언론을 타려면 외신을 타야 되는 것인가? 오연호는 현재 <오마이뉴스>의 대표로 있다.

학살이 있었던 쌍굴다리 앞쪽으로는 현재 노근리평화공원이 있다. 시간이 되신다면 노근리평화공원과 쌍굴다리를 탐방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평화공원에서 북동쪽으로 뾰족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월류봉이다.

 

 

 

* 쌍굴다리: 아직도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월류봉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나라 산악지대를 감싸고 있는 하천들이 다 그렇듯 월류봉을 감싸고 도는 초강천도 감입곡류의 형태를 띄고 있다. 감입곡류천은 말그대로 하천이 굽이굽이 감싸고 돌아나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천이 지형을 감아돌아 나가니 특이한 지형도 형성되는 것이다.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 충북 옥천의 역한반도 지형이 바로 그것이다.

월류봉 중턱 아래쪽에 월류정이 있는데 그 월류정에서 감입곡류 형태를 명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지형이나 역한반도 지형은 좀 떨어진 위쪽 전망대에서 관망하는 방면에 월류정은 근거리에서 관찰한다는 차이가 있다. 월류정은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직접 물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서 청각적으로도 만점이었다.

이렇게 빼어난 산수를 자랑하니 예로부터 이 일대를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고 칭했다. 한천팔경은 제 1경 월류봉을 위시하여 사군봉(使君峯)·산양벽(山羊壁)·용연동(龍淵洞)·냉천정(冷泉亭)·화헌악(花獻岳)·청학굴(靑鶴窟)·법존암(法尊巖)으로 이루어져 있다. 월류봉의 여러 모습들을 다른 명칭으로 부른 것이 대부분이다.

 

 

 

* 월류봉

 

 

 

월류봉은 서인의 거두이자, 인조부터 숙종 때까지 정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송시열과도 관계 깊은 곳이다. 우암 송시열은 작은 정사를 짓고 후학을 양성했는데 그곳이 바로 한천정사(寒泉精舍)라는 곳이다. 한천팔경이 바로 한천정사에서 나온 명칭이다. 원래는 냉천팔경이었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과 관련되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충북 괴산에 있는 화양구곡이지만 한천정사도 사료적 가치가 꽤 높은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송시열을 기리는 한천서원이 들어서있었다. 그러다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이 철폐되었고, 이후 이 지역 선비들이 한천정사를 지어 송시열의 학문을 이어나갔다. 지금도 송우암 유허 비석과 함께 한천정사가 보존되어 있다.

이제 월류봉을 뒤로 하고 초강천의 지류인 석천(石川) 을 따라 반야사 방면으로 이동한다. 석천은 백화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가는데 그 상류에 반야사가 있다. 그 석천을 따라 월류봉 둘레길이 2021년에 개통된다. 석천은 한자명처럼 돌이 많은 하천인데 기암괴석들을 바라보며 걷는 맛이 있다.

경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약 8km를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둘레길의 종점 부근이다. 이제 마지막 탐방지인 반야사(般若寺)를 둘러볼 차례다. 반야사는 상원화상이 후기 신라시대인 720년(성덕왕19)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보다 약 50년 정도 앞선 문무왕 시절에 원효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상원은 의상대사의 십대 제자들 중에 한 명이다.

 

 

 

* 월류봉둘레길

 

 

 

* 월류봉둘레길

 

 

 

반야사는 조선 전기였던 세조 시대에 크게 중창된다. 피부병 때문에 고생을 하던 세조는 속리산에서 있던 신미대사를 만나러갔고, 이후 신미대사와 함께 반야사와 대웅전에서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속리산이 있는 충북 보은과 영동은 그리 멀지 않다.

신미대사는 세조가 깊이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세종대왕과도 인연이 깊었다. 그런 신미대사가 속리산 중턱에 있는 복천암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세조가 그곳까지 찾아간 것이다. 속리산 복천암에서 세조는 3일 동안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세조가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의 도움으로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런 기적이 행해진 곳이 바로 속리산 목욕소이다.

반야사에 들어서면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는 돌무더지가 탐방객들의 눈길을 끈다. 돌무더지가 있는 곳은 바로 백화산인데 다른 곳은 다 풀숲으로 덮혀있지만 딱 그곳만 돌무더지로 노출되어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다. 호랑이 형상이라고.

 

 

 

 

 

* 반야사삼층석탑: 고려전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으로 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뒤쪽에 미끈한 배롱나무가 보인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곳이라 그런지 영동군은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들이 많다. 월류봉에서 가까운 황간면 소계리 성주골에는 호총이라 불리는 호랑이 무덤이 있고, 바로 옆동네인 매곡면 노천리 내동마을에는 호랑이 공덕비가 있다. 반야사의 호랑이 돌무더지도 이런 친호랑이(?)적인 동네의 분위기와 맥이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속살을 드러내듯 미끈한 모습의 배롱나무가 보인다. 나무를 잘 탄다는 원숭이도 배롱나무에서는 떨어진다는데 그 말이 맞는 듯싶다. 아주 매끈하다. 배롱나무 아래에 있는 삼층석탑은 인근에 있는 탑벌이라는 곳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반야사 삼층석탑은 일부분이 새로 채워지기는 했지만 고려전기시대의 탑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어 2003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이제 마지막으로 반야사 문수전을 보러가자. 망경대(望景臺)라고 불리는 곳에 문수전이 있는데 약 1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이 좀 많기는 하지만 올라갈만 하다. 드디어 문수전에 닿았다. 올라온 보람이 있다. 백화산 호랑이 돌무지는 더 잘 보였고, 석천은 물줄기를 뿜으며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 백화산 돌무지: 저 돌무지가 호랑이로 연상되시나? 호랑이 형상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날 때는 눈이 온 뒤라고 한다. 아쉽게도 방문했을 때 눈이 오지 않았다.

 

 

 

문수전 아래쪽의 석천을 따로 영천(靈泉)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설화가 있다. 반야사 대웅전에서 참배를 마친 세조에게 문수보살이 나타난다. 문수보살은 절 위쪽에 있는 계곡으로 가서 몸을 씻으라고 한 후, '왕의 불심이 깊어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이에 흡족한 세조는 어필을 하사한다.

석천도 월류봉 아래 초강천처럼 감입곡류 하천이다. 그래서 휘돌아가는 부분은 물줄기의 속도가 약해진다. 그 구간에 속리산 목욕소만한 공간이 있다. 그곳이 바로 영천이다.

왕이 씻은 곳이니 왕탕인가? 그냥 선녀탕이 더 좋은 거 같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조는 속리산 목욕소에서 월광태자를 만나는 기적을 맞이한다. 이후 반야사에서는 문수보살도 만난다. 문수보살은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오대산에서도 또 만난다.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인물들을 여러번 만나는 것이다. 마치 한 번 맞기도 힘든 로또를 여러번 맞은 것이다.

왜 그렇게 세조와 관련된 설화들이 많을까? 덕업이 많았던 세종께서 설화와 연결이 되시던가? 정조께서는 어떤가? 세조는 불교의 신앙적 대상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도덕적인 흠결을 메꾸려고 했던 거 같다. 참고로 약사여래는 병을 치유하는 부처님이고,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마자막 왕으로 나라가 망한 뒤 월광사를 지어 그곳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 석천: 반야사 문수전에서 바라본 석천. 저 아래에도 둘레길이 있다. 저 길을 따라가면 경북 상주시 모동면이 나온다.

 

 

 

불교에서 '반야'는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뜻한다. 문수보살은 보살중에서 지혜를 수호한다.

불교 설화로 자신의 흠결을 덮을 수는 없다. 세조도 질병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또 그렇게 어렵게 오른 용상에서 불과 13년 만에 내려오지 않았던가. 같이 묶어서 생각하는게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연산군이 12년, 광해군이 15년동안 보위에 있었으니 생각보다는 재위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던 것이다.

덕업은 쌓지 못하더라도 악업은 쌓지 말자! 요즘 필자가 곱씹고 있는 말이다. 나름 실천할 수 있는 '반야'같은 '지혜'로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참 계속 곱씹고 있는 말이 또 있다.

- 세상은 넓고 트레킹할 곳은 많다!

 

 


 

 

* 세부코스: 월류봉 -> 한천정사 -> 원촌교 -> 목교 -> 반야교 -> 반야사

* 길이: 약 8km

* 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 정도

* 난이도: 하

* 교통편: 황간역은 작은 간이역이라 기차 편수가 많지 않음. 황간역에서 월류봉까지는 약 2km 정도 떨어져 있음. 영동역은 좀 더 큰 역이라 기차 편수가 많음. 영동역에서 하차한 후 공영버스를 타고 황간역 부근으로 이동할 수 있음. 이때 중간에 노근리평화공원에서 하차할 수 있음. 영동역에서 노근리평화공원까지 약 25분 정도 소요됨.

* 참고: 월류봉에서 반야사까지는 약 8km 정도임. 문제는 반야사에 공영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는 점임. 콜택시를 부르거나 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함. 필자는 왔던길을 되돌아왔음. 그날 약 20km를 걸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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