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들섬: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한강철교를 바라본 모습. 아파트 사이로 새남터 성지가 보인다.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필자는 예전에 한참 한강에 미친(?)적이 있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되는 양수리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녔었고, 백두대간 깊은 곳에 있는 한강의 발원지를 탐방하기도 했었다. 또한 서울에 놓인 한강 다리들을 직접 두 다리로 건너보며, 어느 다리가 건너기 편한가 평가를 내리기도 했었다. 직접 도보로 건넌 다리 중에 가장 빈번하게 발걸음을 한 건 한강대교였다. 63빌딩과 한강철교를 지나 한강대교에 들어섰고, 그 발걸음의 마지막에는 노들섬이 있었다.

근현대에 들어 서울이 역동적으로 변해갔듯 한강도 크게 변모하게 된다. 물줄기가 달라지기도 했는데 그렇게 되니 전에는 없던 섬들이 생기게 됐다. 이 글은 한강에 떠 있는 섬들, 그 중에서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섬들에 관한 이야기다. 노들섬부터 서래섬을 찍고 새빛섬까지, 직접 발로 담은 이야기이다.

 

● 한 때 한강에 미친(?) 사람의 한강 이야기

본격적인 섬이야기에 앞서 한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한 때 한강에 미친 사람의 한강 이야기다. 한강은 우리에게 젓줄과도 같은 존재였던 만큼 시대마다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렸다. 고구려 장수왕때 만들어진 광개토대왕비에는 ‘아리수’라고 기재되어 있다. 서울시의 수돗물 명칭인 그 아리수다. 고려시대에는 ‘열수’라고 불렸는데 크고 긴 강물이 열을 지어 흐른다는 뜻이다. 지역적으로도 다른 이름을 갖기도 했다. 임진강과 합수되어 서해로 흐르는 한강 하류 일대는 ‘조강’이라고 불렸고, 경기도 여주 지역은 여강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서울에서도 지역에 따라 세부적인 명칭을 가지기도 했다. 뚝섬과 가까운 곳에 매봉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는데 그 일대의 한강은 동호(東湖)라고 불렸다. 서울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호수처럼 잔잔해서 동호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지금은 그 위로 동호대교가 놓여 옥수동과 압구정동을 연결해주고 있다. 서강도 있다. 지금의 마포지역의 한강을 서강 혹은 서호(西湖)라고 칭했다. 동호대교처럼 서강 일대에는 서강대교가 놓여 있는데 다리 아래에는 유명한 밤섬이 자리잡고 있다.

동호, 서호가 있으면 남호(南湖)도 있지 않았을까? 있었다. 지금의 용산 일대를 남호 혹은 용산강이라고 불렀다. 그 용산강 일대에 한강대교가 자리잡고 있고, 그 한강대교 아래에 노들섬이 있다.

 

 

* 노들섬: 한강대교에서 노들섬 서쪽편을 바라본 모습. 노들섬의 자랑인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다. 사진 오른쪽에 큰 원반 모양의 달빛노들이 보인다.

 

 

●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노들섬

춘삼월이 코 앞이었지만 날씨가 쌀쌀했다. 63빌딩을 지나 노량진쪽에서 한강대교로 진입했다. 그러자 강바람이 매섭게 분다. 역시 강바람은 한강다리에서 맞아야 한다.

그렇게 노들섬에 들어섰다. 노들섬은 1995년 이전에는 중지도(中之島)로 불렸다. 요즘도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노들섬은 모르셔도 중지도는 다 아신다. 중지도 시절의 노들섬은 서울의 대표적인 강수욕장이었다. 1950~60년대 자료사진들을 보면, 지금의 해운대를 빰칠 정도로 물놀이객들의 천국이었다.

노들섬은 처음부터 섬이 아니었다. 강변에 있는 넓은 모래벌판이었다. 그 모래벌판이 워낙 넓어서 군사훈련도 하고, 처형장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 인근에 천주교 성지인 새남터가 있는 것이다.

모래벌판이었던 곳에 다리가 놓였다. 한강철교가 1900년에 놓인 후 남은 자재들을 모아 한강인도교라 불리는 한강대교가 탄생하게 되니 그때가 1917년이었다. 이때부터 모래벌판은 인공섬의 형태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중지도라는 명칭도 일제강점기인 이때 붙여진 것이다.

노들섬은 196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한강개발계획에 의해 완전한 섬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주변에 있던 모래벌판이 사라진 대신 그 자리를 강물이 메우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즈음 노들섬의 소유권이 어떤 기업체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소유주가 개인으로 넘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발걸음은 뜸해지게 됐다. 개인 소유였던 노들섬을 2005년에 서울시에서 매입하게 된다. 이후 많은 개발계획이 타진됐으나 계속 무산되고 말았다. 공지로 남아 있던 섬은 도시텃밭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 한강철교: 노량진쪽에서 한강철교 라인을 따라 남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 구간에만 키 큰 건물이 없어서 남산을 겨우 볼 수 있다.

 

 

 

쌀쌀했지만 노들섬에는 많은 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예전보다 확실히 접근성도 좋아지고 휴식공간도 많아졌다. 이렇게 편의성이 높아지니 시민들의 발걸음이 많아지는 것이다.

섬이 다시 북적북적해진 건 지난 2019년 9월 28일부터다. 노들섬이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노들섬의 자랑인 잔디마당을 둘러본 후 향긋한 커피향을 따라 노들서가로 입장했다. 그런데 라이브공연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역시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 공간이 맞았다.

다시 잔디마당으로 나오니 마침 한강철교 위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용산역으로 가는 기차였는데 그 철길을 따라가니 새남터 성지도 보였다. 아름다운 한강의 풍광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장소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한강철교 자체도 역사적인 장소다. 1900년에 완공됐고, 한국전쟁 때인 1950년 6월에 폭파됐기 때문이다. 한강철교가 폭파됐을 때 한강대교도 같이 폭파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노들섬은 노을 명소다. 생각 같아서는 노을까지 보고 싶었으나 서래섬과 새빛섬 탐방을 하기 위해 서둘러 섬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달빛노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달빛노들은 섬의 서쪽에 설치된 둥근 원반 형태의 시설물로 그 크기가 무려 약 12미터에 달한다. 인공으로 달빛을 비추기 위해 만들었는데 유람선을 타고 갈 때 보면 꽤나 이색적이라고 한다.

 

 

 

*서래섬:서래섬에서 바라본 한강과 남산.

 

 

 

● 인공적이지만 정다운 섬, 서래섬

동작대교를 지나 서래섬에 도착했다. 서래섬에 입도(?)하니 가까운 곳에 세빛섬과 반포대교가 아주 가깝게 보였다. 반포한강공원 지구에 온 것이다.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는 ‘서래’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다. 동작역 아래로 반포천이 흐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 하여 ‘서래’라고 칭한 것이다. 실제로 반포천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다 한강을 앞두고 크게 휘돌아나간다. 그 반포천 인근에 프랑스인들이 많이 산다는 서래마을이 있다.

위성사진을 보면 서래섬은 한강변 둑이 바둑판처럼 매끈하게 잘 다듬어졌다. 반대로 반포쪽은 산(山)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형태다. 이런 외형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렇다. 서래섬도 인공섬이다.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경조오부>라는 지도를 보면 지금의 반포에 기도(碁島)라는 섬이 보인다. 1960년대까지도 존재했던 기도는 한강종합개발이 시행되면서 그 형태가 사라지게 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기도에 있던 돌들로 바둑돌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1986년, 제2차 한강종합개발사업(1982~86년)으로 서래섬이 태어났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산을 한 건 아니었다. 한강종합개발이 시행될 즈음에 일부에서는 홍수 예방에 더 적합하다는 이유로 서래섬을 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한강개발추진본부장이었던 이상연은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이곳에 섬을 만들기로 했고 실행에 옮긴다.

서래섬은 약 7천평 정도로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공섬이지만 정감있는 모습이다. 봄에는 유채꽃이, 가을에는 갈대밭이 펼쳐지니 계절마다 보여주는 색감이 달라서 좋다. 그런 배경물들이 없더라도 서래섬은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다른 섬들과는 달리 산책로가 흙길로 되어있으니까.

서래섬에 입도를 하려면 약 50미터 정도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그 몇 십 미터 차이로 걷기에 퀄리티가 달라진다. 흙길을 밟으며 한강변을 산책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참고로 서래섬은 3개의 다리로 진출입을 할 수 있다.

 

 

 

* 노들섬:  문화복합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노들섬.

 

 

● 세 개가 아닌 네 개의 인공섬, 세빛섬

서래섬에서 빠져나와 마지막 탐방지인 세빛섬으로 향했다. 세빛섬의 영어 명칭은 '플로팅 아일랜드(Floating Island)'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1년 5월에 탄생하였다. 애초 세빛섬은 3개의 빛이 내린다는 의미로 이름이 지어졌는데 처음에는 ‘세빛둥둥섬’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3개의 빛이라면 섬도 3개라는 뜻인가? 아니다. 정확히는 4개다. 처음에는 예빛섬이라는 대형스크린이 있는 미디어아트 섬이 2009년에 완공된다. 이후 가빛섬, 솔빛섬, 채빛섬이 2011년에 완공되어 현재의 외형을 갖추게 된다. 그러다 2014년 ‘세빛둥둥섬’에서 ‘세빛섬’으로 이름까지 개명하게 된다. 그간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혈세가 둥둥 센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고자 ‘둥둥’을 빼버렸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세빛섬이라고 하는데 딱 세빛섬이라고 꼬집을 수 있는 섬이 없다. 그냥 뭉뚱그려, 대표 이름으로 ‘세빛섬’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빛섬은 옆에 있는 반포대교나 그 아래 잠수교에서 바라보는게 가장 좋다. 조명이 켜진 세빛섬들 뒤로 관악산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노을이 넘어가니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이제까지 한강 중심부에 있는 섬들을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나선 길이라 필자도 무척 신났다. 겨우 전철값으로 시원스러운 한강섬 트레킹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던 것이다. 이야기거리도 많고 걷기에도 좋은 한강의 섬들, 여러분들도 그 발걸음에 동참하시면 참 좋겠다.

 

 

* 저자도: 성동구 옥수동에 있는 매봉산에서 뚝섬 부근을 바라본 모습. 중간쯤에 성수대교가 보인다. 성수대교를 중심으로 왼쪽이 뚝섬이고, 오른쪽이 압구정동이다. 성수대교 아래쪽 부근에 저자도가 있었다.

 

 

● 저자도와 잠실

한강의 섬 중에는 지금은 수면 아래로 사라진 전설적인 섬도 있다. 전설적인 섬? 무슨 아틀란티스 제국인가? 하여간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 섬은 저자도(楮子島)이다. ‘닥나무저(楮)’에서 보듯 종이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가 많아 저자도라고 불렸다. 이 섬은 옥수동 근처에 있다 하여 옥수동섬이라고도 칭했다. 중랑천이 한강에 합수되는 지점에 있었는데 인근에는 뚝섬도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존재 자체도 모르지만 저자도는 동서 길이가 2km에 면적이 약 35만평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현재의 노들섬이 동서 길이가 약 700미터에 면적이 4만 5천평 정도이니 저자도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저자도는 선유도처럼 주위 풍광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대왕께서도 뱃놀이를 즐기셨을 정도다. 그런 저자도도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지고 만다. 저자도의 모래를 퍼내서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짓는데 사용한 것이다.

현재 서강대교 아래에 있는 밤섬도 1968년에 폭파되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퇴적물이 계속 쌓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저자도도 재탄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전설이 완성될지 모른다.

한강에는 섬이었다가 육지가 된 곳도 있다. 뽕나무밭으로 유명했던 잠실이 바로 그곳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지금 어디를 봐서 잠실이 섬인가? 하지만 잠실은 1970년대 초반까지 잠실도(蠶室島)라고 불리던 섬이었다. 더군다나 부리도(浮里島)라는 작은섬도 거느리고 있었다. 행정구역도 강남이 아니라 강북에 위치해있었다. 강남지역의 옛 행정구역은 경기도 광주군 소속이 많았다. 이에 반해 잠실도는 한강 이북이었던 경기도 양주군 혹은 고양군에 속했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났다. 용산 일대까지 물에 잠기는 등, 서울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때 잠실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건기에는 육지와 붙어있던 섬의 북쪽에 새로운 물길이 난 것이다. 우기에만 섬이 됐던 잠실이 계절에 상관없이 섬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렇게 섬의 북쪽에 난 물길을 신천강이라고 불렀고, 남쪽의 물길은 송파강이라고 칭했다.

1971년, 잠실도는 을축년 때처럼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남쪽 물길이었던 송파강을 메워 잠실을 육지로 만든 것이다. 강의 남쪽과 붙게 되니 잠실은 한순간에 강남 지역이 됐다. 한편 메워진 송파강도 석촌호수로 물길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렇게 한강의 섬들은 저마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퍼내도 퍼내도 끊이지 않을 거 같다. 그럼 한강섬들은 이야기 보물섬인가? 그 보물섬과 같은 곳을 찾아 오늘도 한강섬 트레킹에 나선다.

 

* 경조오부: 사진 오른쪽 하단에 '저자도'가 표시되어 있다. 하단 중앙에는 '기도'가 표시되었다.

 

 

* 잠실: 잠실의 변천사. 아래에 있는 송파강이 본류(메인)이었고, 위에 신천강이 지류(사이드)였다. 하지만 송파강을 메꿔 잠실섬이 육지화됐고, 지류였던 신천강이 메인이 되버린다. 사진은 인터넷을 참조했다.

 

 


 

@ 한강섬 트레킹

* 추천코스: 노들역 -> 한강대교 -> 노들섬 -> 동작대교 -> 서래섬 -> 세빛섬

* 길이: 약 6km

* 난이도: 하

* 교통편: 9호선 노들역에서 하차한 후, 한강대교에 진입함. 서래섬을 방문한 후에는 9호선 신반포역을 이동할 수 있음. 잠수교를 넘고 싶은 분은 경의중앙선 서빙고역을 이용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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