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한강대교 폭파... 그런 일이 있었냐고?

 

아픈 역사 간직한 한강 다리 곳곳, 자전거·도보 탐방으로 '딱'

 

15.03.11 20:11   최종 업데이트 15.03.11 20:11

 

 

 

 

 

 
▲ 노들텃밭 한강대교 중간에 위치한 노들섬에 있는 노들텃밭. 텃밭 뒤로 한강대교 아치가 보인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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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시와 관련된 한강 다리는 몇 개일까? 총 26개다. 지난해 11월 구리암사대교의 임시 개통으로 26개로 늘어났다. 동쪽 강동대교에서부터 서쪽 신행주대교까지 한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다리들은 한강철교와 같은 열차 전용 교량도 있고, 방화대교처럼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다리도 있다. 물론 사람과 자동차가 동시에 이동할 수 있는 교량이 대다수다.


서울의 팽창과 함께 한강에도 차곡차곡 다리들이 놓이게 됐다. 한강 다리들은 '한강의 기적'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상징물이 된 것이다. 한강 다리 교각 아래로 우리의 근현대사가 흘러갔고, 또 흐르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셈이다. 역사성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다리들도 생겨나면서 한강 다리를 따라 도보 탐방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보행로의 확장과 연결로 정비 등으로 한강 다리 자체가 트레킹 코스로 자리 잡은 것이다. 

 

 



현대사 비극 품은 한강대교

한강에 처음으로 들어선 인공 교량은 한강철교다. 1900년도에 들어선 한강철교는 말 그대로 철도 전용 다리였기에 일반 사람이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지금이야 교통카드만 있으면 전철을 타고 느긋하게 한강을 넘어갈 수 있지만, 옛날 구한말의 백성이 기차표를 쉽게 끊을 수 있었겠는가?

일반 백성이 편리하게 한강을 넘을 수 있게 된 건 1917년부터였다. 한강 인도교라고 불렸던 한강대교가 개통됐기 때문이다. 한강철교 제작 때 남은 자제들로 건설되어서 그런지 개통 당시 한강대교는 대교(大橋)라는 말이 어울리지는 않았다. 중앙 차로 부분이 4미터, 좌·우측 보도 부분이 각각 1미터, 총 6미터의 폭이었기 때문이다.

한강대교는 당시 경성 사람들의 나들이 장소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룻배에 의존해 도강해왔던 한강을 느긋하게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척 신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한강대교는 그 긴 역사만큼 큰 아픔도 가지고 있다. 한국 전쟁 시기였던 1950년 6월 28일 다리가 폭파됐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서울 함락이 눈앞에 이르자 당시 이승만 정권은 한강대교 폭파라는 극단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 한강철교 63빌딩 부근에서 촬영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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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 작전은 기습적으로 감행됐다. 당시 한강대교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어떠한 사전 통보도 없었다. 그래서 500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폭파와 함께 생명을 잃거나 한강에 수장됐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당시 시내에서는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음성이 계속해서 퍼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 이승만 정권의 수뇌부는 이미 대전으로 피난을 간 상태였다. 수도 서울을 버리고 시민의 피난 행렬을 묶어둔 채 앵무새처럼 녹음 방송만 틀어댔던 셈이다.

한강대교 폭파로 군사적인 피해도 엄청났다. 한강 북부에 남아 있던 국군의 퇴각로가 봉쇄됐기 때문이다. 만약 순차적인 퇴각이 이뤄졌다면 국군은 한강 이남에서 전열을 정비해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할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50년 7월 14일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전시 작전 통제권 이양도 없었을 수도 있었다.

분명 한강대교 폭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런 사실들을 모르는 듯했다. 필자가 몇 차례 걸쳐 한강 다리 트레킹을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한강대교가 끊겼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리가 끊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절단한 주체를 잘못 알고 있었다.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교량이 폭파되지 않았냐'고 물었던 참가자도 있었으니까. 필자는 한강대교 설명을 마칠 때 이런 말로 항상 마무리를 지었다.

"인민군의 남침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강대교 폭파에 면죄부가 부여될 수 없지요. 자기는 안전하게 대전에 내려가 있으면서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거짓말이나 해대고... 그게 바로 이승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뭘 건국했다는 건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선유도를 품고 있는 양화대교

 
▲ 양화대교 선유도에서 촬영한 사진임.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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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런 명칭이 통용되지 않지만 예전에는 '제1한강교', '제2한강교'처럼 한강 다리에 번호들이 매겨졌다. 제1한강교는 앞서 언급한 한강대교이고, 제2한강교는 이번에 소개할 양화대교다. 1965년 양화대교가 들어서기까지 한강에는 인도교가 두 개밖에 없었는데 한강대교와 1936년에 준공된 광진교가 바로 그것이었다. 둘 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양화대교는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한강에 만들어진 최초의 인공 교량이 된 것이다.


양평동과 합정동을 연결하는 양화대교는 서울 서남부권의 교통량 해소라는 목적과 함께 서부전선의 물자 수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건설됐다. 그래서 유사시에는 군사 작전에만 이용하도록 그 용도가 제한됐다. 양화대교는 선유도를 품고 있어 한강 다리 트레킹을 하기에 가장 좋은 다리다. 또한 합정동 방면으로는 절두산 성지를 지척에 두고 있어 역사 탐방까지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다.    

 

 

 

* 선유도: 선유교를 넘어 선유도로 갈 수 있다.

 

 

 

 


선유도는 처음엔 섬이 아니었다. 원래는 선유봉(仙遊峰)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말 그대로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선유봉은 맞은편 잠두봉과 함께 중국 사신도 즐겨 찾았다는 절경이었다. 잠두봉은 뽕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흥선대원군 시절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은 천주교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선유봉은 일제 강점기 때 여의도 비행장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채석 작업이 이뤄져 그 높이가 점점 낮아지게 됐다. 해방 이후에도 채석 작업이 진행됐고 결국, 그 원형을 잃게 됐다. 이후 한강의 강폭이 넓어져 섬이 되었고, 1978년 그 자리에 정수장이 건립됐다가 지난 2000년에 폐쇄됐다. 선유도 공원은 그 정수장을 개조해 만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유도의 역사는 곧 한강 개발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런 아픔을 품고 있는 선유도는 한강을 찾는 서울 시민의 좋은 휴식처가 됐다. 선유도는 산책하기도 좋고, 소풍 가기도 좋은 곳이다.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확 트인 한강을 넘어 인왕산과 남산, 멀리 북한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잠수교와 잠실철교


 
▲ 잠수교 한강다리들 중에 가장 접근성이 좋은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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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있는 다리를 직접 걸어서 건너다보면 자연스럽게 순위가 매겨진다. 그 중 단연 1등은 잠수교다. 도보로 한강 다리를 건널 때 가장 중시되는 부분은 진·출입의 편리성이다. 다리에 설치된 보행로는 만족스럽지만, 다리 자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수교는 보행로뿐 아니라 진출입의 편이성에서도 최고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한강 시민 공원에서 바로 잠수교로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잠수교는 795m로 한강 다리 중에서는 가장 짧다. 넓게 확보된 보행로와 진·출입의 용이성, 거기다 최단 거리로 한강을 건널 수 있기 때문에 잠수교는 한강을 가장 편하게 건널 수 있는 다리 1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한강 다리 중에는 지하철과 속도 경쟁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바로 잠실 철교가 그곳이다. 1979년 10월. 지하철 2호선의 일부 구간으로 개통된 잠실철교는 교량 중앙에 철로가 있었고 양옆에는 도로가 놓여 있었다. 약 4미터 정도의 폭을 가진 이 도로는 현재 자전거 도로와 인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자전거 도로를 따라 전동차와 속도 경쟁(?)을 벌이는 라이더들도 있다. 그만큼 잠실철교는 자전거와 전동차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공간인데 그 간격이 가까워 전동차에 탄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될 정도다. 달리 말하면 전동차에 탄 승객들이 라이더가 힘들어하는 모습도 쉽게 관찰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전동차를 따라잡겠다고 너무 세게 페달을 밟지는 말자.

한강은 큰 강이고, 이와 비례해 담긴 이야기도 아주 많다. 봄날을 맞이해 한강을 직접 건너보는 건 어떨까? 한강과 한강 다리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건너보는 것이다.

 

 



"님아, 이 강을 걸어서 건너보세요! 대신 옷은 따뜻하게 입고요!"

 



 
▲ 잠실철교 전동차와 나란히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잠실철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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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http://blog.daum.net/artpunk)에도 실렸습니다.



● 한강다리 트레킹 추천 코스

1. 양화대교 - 한강대교 구간: 합정역 ▶ 절두산성지 ▶ 양화대교 ▶ 선유도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 63빌딩 ▶ 한강철교 ▶ 노들텃밭(한강대교)

2. 이동거리: 약 10km / 소요 시간: 약 3시간(휴식시간 포함)

 

 

 

 

 

* 당산철교와 양화대교: 당산철교와 양화대교 사이 해역에 해양스포츠 훈련장이 있다.

 

 

 

 

 

 

 

* 인어공주: '인어공주도 입장불가'라는 문구가 재밌다. 수영금지를 알리는 현수막. 해양스포츠 훈련장 앞에 게시되어 있어서 한 컷.

 

 

 

 

 

 

 

지난 6월 1일, 한강다리에 대한 기사 작성을 위해 서울 지하철 당산역으로 향했다. 그간 한강에서 자전거 타기와 트레킹을 많이 한 탓에 한강 다리와 관련된 사진들이 넉넉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 혼자 볼 사진이 아니라 외부로 공표할 사진이라는 점을 고려하니 그저그런 사진가지고는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전문 사진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이름으로 기명 기사가 나가는데 사진을 아무거나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럼 그날 제대로 된 사진을 찍었단 말인가? 아니다. 하드디스크에 담긴 예전 한강 사진이나 그날 찍은 사진이나 별로 차이점이 없었다. 그저 마음만 앞섰다고 할까나? 아니면 나의 촬영 기술이나 미적 감각의 한계? -_-

 

하지만 그날 흥미로운 사진들을 몇 컷 촬영했다. 당산역 부근 한강시민공원에는 해양스포츠 훈련장이 있다. 아래 사진에서도 보이듯 청소년들이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지도와 훈련을 해주는 곳이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1인용 요트, 그냥 돗단배라고 해도 무방한 배들이 당산철교와 인근 선유도 부근 해역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코치로 보이는 사람들이 연신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에게 지시를 했고, 아이들은 그 지시에 따라 좋다고 배를 몰았다.

 

 

 

 

 

 

* 양화대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성들이 당산역 부근 한강가에서 울려퍼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배를 타는 모습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물이 무서웠다고 해야할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내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말들을 내뱉었었다. 배 타기가 무섭다고...

 

그래서 더 씩씩하게 요트를 운행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요트를 운행할 때만큼은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이나 학교시험 같은 것은 다른 나라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돛을 움직여야 했고, 물살을 주시해야 했으니까. 그러다 무사히 운행을 마치고 정박지에 돌아오고...

 

그런 활동들이 진짜 교육이 아닐까? 스스로 무언가 해내고 서로 어울려서 협동심을 기르는 것이 진짜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 해양스포츠 훈련 

 

 

 

 * 해양스포츠 훈련

 

 

 

 

* 해양스포츠 훈련장: 운항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온 아이들 

 

 

 

 

* 해양스포츠 훈련장: 당산역 부근 한강시민공원 주변에 있다.

 

 

 













두둥~ 이제 곧 있으면 직장인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황금 연휴가 시작되겠네요.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 맛보는 휴일의 느긋함은 그 어느 것보다도 더 달콤할테죠.

그런 달달한 느낌을 5월 5일 어린이날에 양수리에서 맛보는 건 어떨까요?

 

황금연휴에 좀 멀리 여행을 가고 싶지만 그런 여건이 안되는 분들도 환영합니다.

예전에 이성친구 혹은 애인과 함께 거닐었던 양수리, 그 두물머리를 집밥 식구들과
함께 걷는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나요? 집밥 식구들과 느긋하게 대화를 하며
사뿐사뿐 소풍을 가듯 두물머리를 걷는 겁니다.

 

집밥지기인 제가 남자친구 역할에 부적절하다고요? 그래서 저는 판만 깔아드리고
뒤로 빠진답니다~ㅋ 여러분들이 재밌게 노시라고~ㅋ

 


일시: 2014년 5월  5일 월요일 오후 1시 ---> 좀 시일이 촉박하죠.  사실은 예정된 출장이 날라가서...

이 모임을 급조해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재미만큼은 급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결장소:  중앙선 팔당역 --->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해 있음.

 

이동경로:  팔당역 ▶(버스이동) ▶ 조안면 면사무소 ▶진둥산 ▶ 솔개고개 ▶ 운길산역 ▶ 팔각정 ▶ 북한강 철교

▶ 양수리 생태공원▶ 두물머리(양수리) ▶ 새미원(선택사항)
*** 맛나고 유익한 뒤풀이 예정~ㅋ

 

이동거리: 약 7km /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 예상(쉬는 시간 포함)
 
난이도: 하 ---> 평이한 코스입니다. 기초 체력이 되시면 누구나 다 참여가능합니다.

 

준비물: 여분의 옷, 간식

 

확인사항: 중간 중간에 사진 촬영이 있습니다. 이 점 양지해 주세요. 사진 촬영이 별로인 분들은
스키마스크 착용을 추천 드립니다!~ㅋ

 

주의점: 장시간 트래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하이힐 NO! 트래킹화 YES!
출발 즈음에 가볍게 스트래칭을 할 예정입니다. 아웃도어를 하기 전에는 꼭 스트래칭을!!!


참고사항:  당일날 햇살이 강할지 모르니 모자나 썬크림 등을 준비해주세요. 해가 떨어지면 추워집니다. 여분의 옷도 준비해주세요!
 

비용: 비용은 7천원입니다. ---> 식수, 간식, 리딩비 포함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간식이 제공될까요?ㅋㅋㅋ



















 

 

 

 

 

 

 

 

청명한 가을날에 떠난 한강 역사트레킹

13.10.17 14:10l최종 업데이트 13.10.17 21:43l
곽동운(artpunk)             

 

---> 1편에 이어서

 

 

 

# 자신을 아낌없이 다 내주었던, 선유봉

과연 그럴까? 정말 한강에 볼거리가 없을까? 한강역사트레킹의 첫 번째 도착지는 선유도 공원이었다. 원래 선유도는 선유봉이라고 불렸던 해발 40m 정도의 봉우리였다. 강가 바로 옆 쪽에 우뚝 선 모습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중국 사신들도 조선에 오면 꼭 선유봉이 있는 양화 일대를 유람하고 돌아갔다고 할 정도였다.

겸재 정선도 선유도를 사랑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겸재는 양천 현감으로 있었던 1741년에 <양화환도> <금성평사> <소악후월> 등 3편의 진경산수화를 그려, 지금의 선유도 일대의 한강 유역을 사실감 넘치는 필치로 담아내었다.

특히 <양화환도>에서는 선유봉과 함께 잠두봉이라고 불렸던 지금의 절두산이 등장하고, 또한 그 잠두봉 아래에는 양화진(지금의 합정동)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선유봉과 잠두봉 사이의 강물길을 느긋하게 나룻배로 건너고 있는 뱃사공의 모습도 화폭에 담겨 있어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도 그 그림 속에 뛰어들어 신선놀음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 정도다.

그렇다. 선유봉(仙遊峰)은 신선이 노닌다는 봉우리였다. 그럼 왜 선유봉은 졸지에 선유도로 내려앉았는가? 선유도는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었다. 일제에 의해 여의도에 비행장이 들어설 무렵, 활주로를 닦고 제방을 쌓는다며 선유봉에서 채석을 한 것이다. 그렇게 선유봉은 채석장이 되어버렸고 봉우리는 점점 더 낮아져 갔다. 해방 이후에도 선유봉은 계속해서 채석장으로 이용되었는데 선유봉에서 캔 돌들은 지금의 강변북로 공사 등에 이용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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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강생태공원 한강 역사트레킹팀이 활기차게 걷고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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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깎이다보니 선유봉은 납작하게 되었고, 이후 한강이 개발되어 강폭이 넓어졌을 때 영등포 쪽과 분리되어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1978년에는 서울 서남부권에 식수를 공급하는 정수장이 선유도에 들어서게 됐고, 그 정수장이 지난 2000년에 폐쇄되어 지금의 선유도 공원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선유도는 참 사연이 많은 섬이다. 깎이고, 부서지고, 졸지에 섬이 되어버리고.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선유도가 그렇게 아낌없이 내주었기에 지금이 서울 시민들은 느긋하게 '신선놀음'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선유도에서 느긋하게 강바람을 맞으며 가을소풍을 즐겼다. 우리 역사트레킹팀도 간식을 먹으며 즐겁게 선유도를 탐방했다.

 

 



# 잠두봉이 왜 절두산으로 개명했나?

선유도를 이야기하면서 절두산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안 될 것이다. 절두산은 한강역사트레킹의 루트는 아니었지만 그 중요성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설명을 했다. 앞서 말한 <양화환도>에서 절두산, 즉 잠두봉은 선유봉과 짝을 이루고 있다. 뽕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잠두봉은 그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고 하여 용두봉이라고도 불렸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왔을 때 꼭 들렀다는 잠두봉이, 겸제 정선이 화폭으로 담아낼 정도로 비경을 자랑하던 잠두봉이 왜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을까? 그것도 머리가 잘린다는 의미의 절두산(切頭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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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두산 성지 당산역 방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절두산 성지 뒤로 북한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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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이루어진 병인박해 때문에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죽음을 당한다. 이때 주교인 베르뇌를 포함한 9명의 프랑스인들이 처형을 당했는데 그들은 절두산이 아닌 새남터(현재의 용산구 이촌동)와 충남 보령 갈매못 등지에서 죽었다.

이 병인박해가 원인이 되어 병인양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자국의 선교사가 처형됐다는 소식에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의 로즈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프랑스 함대는 본격적인 공세에 앞서 정찰선을 파견하는데 그 정찰선이 한강 깊숙이까지 올라온 것이다. 양화진을 넘어 서강까지 침범을 하고 돌아간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대원군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아주 격분을 했다. 그러면서 '사악한 서양 세력의 흔적들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씻어내겠다'며 잠두봉에 새로운 처형지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뽕나무들이 우거졌던 잠두봉은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는 뜻의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약 150년 전, 그렇게 절두산은 수천 명의 천주교인들의 목이 잘려나간 비극의 땅이었다. 또한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감시견처럼 서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갔다. 그 흐름은 흥선대원군도 어쩌지를 못했다. 현재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는 절두산 한쪽에 꿔다둔 보릿자루 마냥 껑뚱하게 서 있지만 절두산은 그 자체가 우리 천주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성지 중에 성지가 됐다.

서양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흥선대원군의 반대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사람들의 피로 그 흔적을 닦아낸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무슨 공포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사람 피로 무엇을 닦는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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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화비 절두산 성지 한 쪽 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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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병인양요에 대해서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더불어 그 콧대 높은 프랑스 함대가 왜 다시 조선을 침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시대사적인 유추를 해보았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통치기였다. 그 시절 전 유럽은 신흥강국으로 발돋움한 프로이센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 중 프랑스는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 중에 하나였다. 아니나다를까 몇 년 후 프랑스와 프로이센간에는 전쟁이 벌어졌고, 그 파장으로 독일 지방은 통일된 국가를 이루게 됐다. 즉 1866년경, 프랑스는 동방의 조선에 물리력을 집중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 숨어 있는 진주,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이런 필자의 설명을 뒤로하고 한강역사트레킹팀은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샛강생태공원은 1997년 9월 경에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트레킹 코스나 자전거도로가 닦인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앞쪽의 한강이 보기 좋게 정비가 됐다면, 뒤쪽의 샛강은 그렇지 못했다. 생태탐방로나 나무데크 같은 시설이, 또 자전거 도로 같은 인프라가 갖추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S라인을 강조하며 여의도와 신길역을 연결하는 샛강도보교가 개통된 지도 겨우 1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2011년 4월 12일에 개통했다고 한다. 역으로 말하면 샛강의 접근성은 최근에 와서야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샛강생태공원이 무슨 대단한 절경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샛강은 상당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여의도의 고층건물과 습지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여의도라는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첨단 구역에 샛강생태공원이라는 허파와도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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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강생태공원 샛강생태공원은 억새가 많은 곳이다. 그 억새들을 배경으로 한 컷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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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합시다, 역사트레킹! 

한강 역사트레킹의 다음 탐방지는 중지도에 있는 노들 텃밭이다. 한강대교가 걸터 있는 중지도에 도시형 텃밭이 들어섰는데 그 곳이 우리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노들텃밭이었다. 그곳은 2012년에 첫 농사를 지었는데 63빌딩을 비롯한 여의도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농사를 짓는 이색적인 곳이다. 도심지 한복판에 한가롭게 허수아비들이 들어서 있는 모습도 흥미롭다. 노들 텃밭에는 오두막도 많은데 그곳에서 먹는 새참과 간식은 꿀맛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강 역사트레킹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무슨 여복(?)이 터졌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를 빼고는 모두 젊은 처자들이 이번 트레킹에 참여를 했다. 그것도 5명씩이나. 그런 5명의 재기발랄한 젊은 처자들과 함께 4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아주 상쾌했다. 물론 그들을 리딩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마스터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감수를 했다. 

앞으로도 역사트레킹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역사트레킹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주말에 마땅히 할 일이 없으면 애꿎은 방바닥만 긁지 말고 필자와 함께 역사트레킹에 나서 보는게 어떤가? 필자가 유머 감각이 뛰어나지는 않다. 그래서 '이승만은 세종대왕과 같다'와 같은 '빵' 터지는 개그콘서트를 펼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일본 우익의 주장을 고스란히 담은 후소사 역사교과서나 요즘 한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보다 훨씬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것을 확실히 보장한다. 말만 잘하면 필자가 밥도 사줄 수 있다.

 

 

 

 

 

 

 

 

 

 

청명한 가을날에 떠난 한강 역사트레킹

13.10.17 14:10l최종 업데이트 13.10.17 21:43l
곽동운(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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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고층건물들과 습지가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 상당히 이채로운 곳이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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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다리

"그게 정말이에요? 저 한강대교가 폭파됐었다고요? 그게 언젠데요?"

누군가 놀란 듯 큰 목소리로 필자에게 물었다. 나머지 팀원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필자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끊은 주체가 인민군이 아닌 우리 국군이었다는 점입니다. 인민군의 남하를 막겠다고 다리를 폭파시킨 거죠. 전쟁 때는 일부러 시설물을 파괴해서 적군의 행군 속도를 늦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강대교 폭파는 문제가 아주 많았어요. 다리 절단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죠."

 


"무슨 피해가 있었는데요?"

 


"사전 예고 없이 폭파가 실시돼서 당시 다리를 건너던 피난민들이 많이 죽었어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더 황당한 일은 다리가 끊기기 몇 시간 전까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힘찬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는 겁니다."
"그럼 대통령이 서울에 남아 있었는데 다리를 끊었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 없었어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수뇌부들은 멀리 대전까지 피난을 간 상태였습니다. 미리 녹음했던 음성으로 계속 돌려 됐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 그 방송 내용을 믿고 피난을 안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웃기는 거죠.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을 간 건 그렇다 쳐도 왜 거짓말을 합니까? 서울에 있지도 않으면서 서울에 있다고 구라쳐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고."

필자의 설명이 끝나자 분위기는 한층 더 가라앉았다. 그래서 영화 이야기로 방향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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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의 코스 당산역 ->선유도공원 -> 샛강생태공원 -> 노들텃밭(한강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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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 기억나시죠? 그 영화에서 신하균이 육군 소위로 나오잖아요. 영화에서 신하균은 탈영을 하고 자살까지 시도를 했는데 그게 다 죄책감 때문에 그랬더라고요. 피란민들이 몰려든 다리를 폭파시켰는데 담당자가 신하균이었던 거죠. 그래서 신하균은 죄책감에 시달렸던 거고요. 그 부분은 한강대교 폭파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 아닌가 하네요."

씁쓸한 적막감이 바람에 실려 온 듯 우리 한강 역사트레킹팀을 크게 흔들고 지나간 듯싶었다. 누군가 소리 낮춰 이야기 내뱉었다.

"아픈 우리 현대사네요."

 


"그렇죠.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니까 마치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연상되더군요. 상판이 떨어져 나가서 강물에 둥둥 떠 있고요…."

 


# 한강에 뭐 볼 게 있는가?

10월 13일 오후. 가을날의 한강은 청명함이 더해가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의 느긋함을 만끽하려는 듯 한강시민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우리 한강역사트레킹 팀의 얼굴 표정에서도 그런 청명한 가을 날씨가 살아 숨쉬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팀은 진지함까지 묻어 있었다. 하나라도 더 배워가려는 듯 필자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런 진지함이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필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거 괜히 버벅대서 팩트 전달이 꼬이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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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 여복이 터졌나? 필자만 뺴고 모두 젊은 처자들이었다. 이 분들 덕분에 재미난 역사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뒤에 보이는 곳이 선유도와 양화대교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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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역사트레킹 마스터다. 이 직함은 우리나라에서는 필자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즉,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한 직함이라는 것이다. 역사트레킹 마스터는 역사 유물 앞에서는 유홍준 선생이 되어야 하고, 필드에서는 엄홍길 대장이 되어야 한다. 또 직접 트레킹 코스도 개척해야 하기에 손발이 무척 분주한 직업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게 무척 대단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지적인 면과 아웃도어적인 면이 동시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동안 그 직함에 어울리는 활동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역사트레킹 마스터라고 그냥 폼만 잡고 다녔던 것이다.

그랬다. 그간 필자의 손발은 무척 한가했다. 또한 필자가 주인장으로 있는 역사트레킹 카페도 파리만 날렸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얼마전 위즈돔이라는 지식 공유 사이트에 <한강역사트레킹>이라는 코너를 하나 개설했다. 운이 좋았는지 코너는 매진이 되었고, 10월 13일에 역사트레킹의 첫 항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강에 무슨 볼거리라 있다고, 거창하게 '역사트레킹'을 하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강이야 산책하고, 운동하는 그러는 곳이잖아. 그렇게 친숙한 곳에 '한강역사트레킹'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이는 거 오버 아니야? 괜히 있어 보이려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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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화대교 선유도공원에서 바라본 양화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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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의 코스: 당산역 ->선유도공원 -> 샛강생태공원 -> 노들텃밭(한강대교)

 

 

 

 

 

* 척화비: 절두산 성지 한 쪽 편에 있었다.

 

 

 

 

 

* 절두산 성지: 당산역 방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절두산 성지 뒤로 북한산이 보인다.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고층건물들과 습지가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 상당히 이채로운 곳이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노들텃밭: 노들텃밭에는 저렇게 오두막이 많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한강 역사트레킹: 샛강생태공원을 걷고 있는 모습.

 

 

 

 

 

 

 

 

* 샛강생태공원: 샛강생태공원은 억새가 많은 곳이다. 그 억새들을 배경으로 한 컷 찍었다.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 한강역사트레킹: 여복이 터졌나? 필자만 뺴고 모두 젊은 처자들이었다. 이 분들 덕분에 재미난 역사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 선유도에서 바라본 양화대교

 

 

 
 
 
 
 
 

 

 

 

 

 

 

 

 

 

 

 

 

 

 

 

 

 

 

 

 

 

안녕하세요?

저는 역사트래킹 마스터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한강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위즈돔을 개설해 봅니다.

 

저는 몇 해 전부터 아웃도어 여행을 꾸준히 해왔답니다. 총 5번에 걸쳐 국토종단, 국토횡단을

행했고 수 천 킬로 미터의 거리를 이동을 했습니다. 그것도 무동력(no-moter)으로 이동을 했지요.

무동력여행? 무동력여행은 자동차나 기차 같은 동력 운송 수단을 탑승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만 이동을 하는 여행을 말한답니다. 한마디로 무척 고단한 여행이지요.

 

매일같이 텐트를 쳤고, 직접 밥을 지어 먹었고, 공동묘지에서 잠을 자야했고, 지리산에서

태풍을 만났고, 속리산에서 다시 또 태풍을 만났고... 

 

그렇게 무동력 여행 기록이 쌓이다보니 어느새 6,500km가 되었더군요.

적지 않은 기록이지요. 그러다보니 첨부사진에서도 보듯 공중파 TV에도 나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그런 숫자놀음식의 기록은 별 의미가 없어보이더군요.

겨우 '나 잘났오!' 하는 자기 자랑이나 떠벌이는 제 자신이 보이더군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아웃도어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고심 끝에 역사트래킹(http://cafe.daum.net/historytrekking) 카페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트래킹을 통해 몸과 마음을 살 찌우고, 역사를 통해 머리를 채우자는 의미로 역사트래킹을 개설하게 된 것입니다.

 

TV뉴스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야스쿠니 젠틀맨'이라고 부르던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굳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개탄스러운 인터뷰가 역설적으로 저에게 큰 동력을 준 셈입니다.

제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자각심을 주게 됐으니까요!

 

현장에서 배우는 역사만큼 제일 좋은 게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문화답사 기행 프로그램도 많이

생겨 났지요. 하지만 그런 답사 기행 프로그램은 짧은 시간에 속도전 하듯 여러 답사지를 다니더군요.

수학여행식의 '버스 뺑뺑이'와 다를 바 없는 형식이 되는 것이지요. 

 

역사트래킹은 그런 식의 '버스 투어'를 지양합니다. 역사트래킹 코스를 개척할 때 고려 사항 중

하나가 대중교통 친화성입니다. 즉 대중교통만으로도 역사트래킹을 즐길 수 있게 코스를 짜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역사트래킹은 문화유적을 중심으로 10km 정도 걷기가 수반된 아웃도어 활동입니다.

역사트래킹 마스터는 문화유적 앞에서는 유홍준 선생이 되어 해당 유적을 설명하고, 트래킹에서는

엄홍길 대장이 되어 도보꾼들을 리딩합니다.

 

 

 

 

 

 

 

 

서설이 좀 길어졌네요. 역사트래킹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이번에 만나볼 역사트래킹은 <한강 역사트래킹>입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여의도 샛강을 지나 한강대교까지 가는 코스입니다.

약 8km 정도의 거리로 3시간 10분 정도 한강과 여의도 일대를 걸으며 트래킹을 할 생각입니다.

 

느긋하게 한강과 여의도를 산책하면서 그 곳에 관련된 역사이야기를 듣는 것이죠.

평소에 하는 산책보다 조금 더 먼 거리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트래킹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걷다보시면 여의도 주변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드실지 모릅니다.

 

 

트래킹을 하다보면 허기가 질 수 있으니 간단한 간식 같은 것을 싸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강바람이 추울 수 있으니 여분의 옷을 준비하는 센스도 잊지 마시길!

 

 

일시: 2013년 10월  13일 일요일

모임장소: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  번 출구

이동경로: 당산역 ▶ 선유도 ▶ 샛강(여의도) ▶ 한강대교 ▶ 한강텃밭

준비물: 물과 간식, 여분의 옷

주의점: 트래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하이힐 NO! 트래킹화 YES!

기타: 출발 즈음에 가볍게 스트래칭을 할 예정입니다. 아웃도어를 하기 전에는 꼭 스트래칭을!!!

 

 

 

 

 

 

 

 

PS. 숲길 같은 곳을 걸어야지 트래킹이지, 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한강 역사트래킹>은

시티워킹입니다. 제대로 오프로드를 걷고 싶은 분들에게는 좀 약할 수 있지요.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역사트래킹은 무궁무진합니다. 지금도 역사트래킹 코스는 계속 개척중에

있습니다. 제가 직접 코스를 개척하고 있답니다. 제가 괜히 마스터라는 칭호를 쓰는 게 아니죠!^^;

 

 

 

 

 

 

 

 

 

 

 

 

 

 

 

 

 

 

 

 

 

 

 

 

 

 

 

 

 

 

 

 

 

 

 

 

 

 

 

 

 

아세요?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시민리포터 곽동운 | 2013.01.24

 

 

 

 

 

# 작지만 매력적인 '깍두기' 공원

 

1월 22일. 흐리기는 했으나 동장군의 위세가 주춤한 듯, 서울의 날씨는 포근함이 느껴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샛강도보교를 건너갔다. 그렇다. 필자가 향한 곳은 영등포구 여의도와 신길동 사이를 흐르고 있는 샛강이었다.

 

한강시민공원이 한강을 따라 수 십 킬로에 걸쳐 이루어졌다면, 샛강생태공원은 여의도에 국한된 공원이다. 샛강공원은 한강시민공원하고는 좀 차이가 난다. 한강공원이 휴식과 레저,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대규모의 '멀티플렉스' 공간이라면 샛강공원은 소규모의 생태공간이라고 보면 적절할 것이다. '샛강'이라는 어감에서도 나타나듯이 실제로 샛강생태공원은 한강시민공원에 비하면 '깍두기'에 불과하다. 심지어 안양천 구간보다도 더 작다. KBS에서부터 63빌딩까지의 구간을 걷는데 채 1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거리를 따진다고 해도 기껏해야 4KM 남짓이다.

 

그래서일까, 샛강생태공원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한강시민 공원은 워낙 유명하니 외국인까지 몰려들지만 샛강공원은 그냥 아는 현지 주민들이나 여의도의 사무실 직원들이 많이 이용하는 듯싶었다. 그러고 보면 샛강은 해당 지역 주민들과 인근 직장인들이 함께 어울려 산책을 하는 서울에 몇 안 되는 생태공원인 것 같다.

샛강생태공원은 1997년 9월경에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트레킹 코스나 자전거도로가 닦인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앞쪽의 한강이 보기 좋게 정비가 됐다면, 뒤쪽의 샛강은 그렇지 못했다. 생태탐방로나 나무데크 같은 시설이, 또 자전거 도로 같은 인프라가 갖추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S라인을 강조하며 여의도와 신길역을 연결하는 샛강도보교가 개통된 지도 겨우 1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2011년 4월 12일에 개통했다고 한다. 역으로 말하면 샛강의 접근성은 최근에 와서야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리, 왜가리, 토끼 그리고…

 

샛강생태공원이 무슨 대단한 절경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샛강은 상당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여의도의 고층건물과 습지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여의도라는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첨단 구역에 샛강생태공원이라는 허파와도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실제로 샛강의 생태환경은 상당히 호조건이라고 한다. 청둥오리 뿐 아니라 왜가리 같은 대형 조류의 서식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누가 의도적으로 방사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토끼 한 마리도 눈에 띄었다. 그 만큼 샛강의 생태조건이 동물들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뜻일 게다.

 

샛강 곳곳에는 아직 얼음이 얼어 있었다. 하지만 추위가 한 풀 꺾인 탓인지 생태탐방을 하러 나온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도 간간이 눈에 보였다. 오리, 왜가리, 토끼와 같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고, 느긋하게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샛강은 생태탐방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춥다고 움츠리지 말고, 문 밖으로 나가 아웃도어를 행하는 것이 진짜 겨울을 이기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을 때, 그럼 전철 1호선 신길역 2번 출구에서 하차한 후 샛강도보교를 건너 샛강 생태공원을 탐방하는 걸 어떨까? 아참 9호선 샛강역 4번 출구와 1호선 대방역 4번 출구에서도 샛강생태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다.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 교통 : 1호선 신길역 2번 출구, 대방역 4번 출구
              9호선 샛강역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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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운 시민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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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라연: 어라연은 동강 중에서도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숙부에 의해 사사된 단종이 태백산 산신령이

    되기 위해 황쏘가리가 되어 동강의 상류로 올라가려다 여기 어라연 일대에서 잠시 쉬어 갔다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

    단종의 넋도 쉬어갈 정도로 어라연의 풍광은 일품이다. 그래서 필자도 잠시 쉬었다.

     

     

     

    * 잣봉 어라연 전망대: 잣봉 정상 부근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어라연.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강과 앞쪽에 있는 완택산을 둘러 볼 수 있다.

    가을이라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져서 시야 확보가 더 잘 되는 듯싶다.

     

     

     

     

    동강 어라연에서 가을을 만끽하다!

     


    하필 왜 강원도 영월군 동강으로 단풍여행을 하러 가는가? 동강이 레프팅의 천국인 만큼 여름 시즌에 동강을 방문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가 한 순간에 물밀 듯 사라진 곳의 황량함을 잘 알면서.

     

    사실 이번 동강 단풍여행은 그런 점을 역이용하여 진행됐다. 단풍여행 하면, 우리는 설악산과 내장산부터 떠올린다. 그렇듯 동강으로 단풍여행을 하러 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필자는 영월군 관계자에게 직접 몇 개의 사안에 대해 확인을 해봤다. 그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가을시즌에 영월군의 숙박업소 예약률이나 택시이용률은 현저히 격감한다는 한다.

     

    동강이 빛나는 시간은 확실히 여름 시즌이다. 뗏목을 젖고, 펜션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하지만 여름시즌의 동강은 바캉스 철의 유명 해수욕장처럼 내게는 기피 대상으로 등재되어 있다. 왜? 나는 호젓한 산행, 정숙한 트래킹을 좋아하니까! 외롭고 힘들지만 진짜 여행은 단독여행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아웃도어맨이니까!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동강과 그 일대를 감싸고 있을 오색찬란한 단풍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나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행 버스에 올랐다. 주중 낮시간이라 그랬는지 고속도로는 아주 시원했고, 버스도 예상 시간보다 일찍 영월에 도착했다.

    내가 동강 탐방의 목표로 삼은 곳은 영월읍에 위치한 어라연이다. 동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라는 어라연은 영월군 시내에서 직선거리로 15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야 손쉽게 접근을 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뚜벅이 여행가인 내게 그곳은 먼 곳이었다. 오직 시골버스만이 그 곳을 연결시켜 줄 수 있었다.

     

     

     

    * 어라연: 기암괴석과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특히 바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붉은 빛을 띄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 잣봉의 소나무: 소나무가 신기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한 컷 담아 보았다.

     

     

     

     

    뚜벅이 여행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골버스 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예전 섬진강 여행을 할 때였다. 그때도 난 시골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섬진강이 자아내는 멋진 풍광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운전을 하다가 주위 풍광에 넋을 잃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머니가 가벼운 만큼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렇게 저렴하게 여행을 해서 얻는 이득도 있으니, 우리 너무 상심하지 말자.

     

    버스에서 내려 난 산행 준비를 했다. 높은 곳에서 어라연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잣봉이었기 때문이다. 잣봉은 해발 500미터 정도 되는 야트막한 산으로 정상부근에 어라연 전망대가 있다. 험준한 산은 아니므로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산행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동강의 어라연과 그 일대를 감싸고 있는 완택산 등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기에 후회 없는 산행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된다.

    잣봉은 매력적인 단풍을 품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단풍은 영월읍내에 있는, 단종 묘역인 장릉 일대가 더 색깔을 잘 머금었다. 또한 등산적인 면에서도 잣봉은 그리 매력적인 산은 아니다. 오히려 620고지인 우리동네 뒤편의 관악산이 난 더 좋다.

     

    하지만 분명 잣봉은 매력적인 산이었다. 그 앞쪽에 있는 완택산도 마찬가지였다. 왜? 동강을 품고 있으니까. 동강의 어라연 일대는 큰 계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높은 산들 사이로 강물이 흐르는 형상이다. 이런 모습은 두물머리 인근의 한강의 지세와 유사점이 있다. 한강 일대 산행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코스가 있는데 그곳은 바로 남양주시에 위치한 예봉산 코스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일대 산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예봉산에 올라서면 바로 앞쪽에 있는 검단산이 눈에 잡힐 듯 잘 보인다. 반대로 검단산에 올라서면 예봉산이 눈앞에 잡힐 듯 잘 보인다. 그렇게 멋진 산들 사이로 한강이 흐르니 그 지역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수도권 지역의 한강 일대와 강원도 영월의 동강을 일대일 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강도 한강의 일부분이다. 동강은 남한강에 합수되고, 남한강은 북한강과 합수되어 한강을 이루지 않던가. 상류 지역인 동강의 아름다움이 한강 하류지역까지 계속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동강 어라연의 십자동굴: 혹시 저기에 용왕님이 살고 계시는 건 아닐까? 어라연이 속한 영월읍 문산리에서는 용왕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어라연의 바위들: 그 모습들이 다 특이하여 나그네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어라연의 바위들: 맨 왼쪽 바위는 사자바위, 두번째는 치타 바위다. 그냥 필자 임의로 이름을 붙여 봤다.

     

     

     

     

     

     

    * 동강의 억새밭

     

     

     

     

     

     

     

     

     

     

     

     

     

     

     

     

     

     

     

     

     

     

     

     

     

     

     

     

     

     

     

     

     

    * 도림천: 도림천의 짝퉁 징검다리_ 신도림역 부근에서 찍은 사진이다. 최근 신도림역 부근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런 징검다리와 고층건물이 동시에 등장한 사진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 안양천의 흙길: 한겨울에 자전거를 탈 수 없었을 때, 난 항상 이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아웃도어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사실 제목이 좀 거창합니다. 괜히 제목으로 사람들을 낚아내는 포스팅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네요!ㅋ

     

    사실 예전에도 저는 도림천이나 안양천과 관련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포스팅은 예전 포스팅에 재탕에 불과한 것일까요?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제가 아웃도어에 발을 들여 놓은지도 벌써 10년째가 되네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다녀온 곳을 꼼꼼히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더군요. 물론 해당 지역에 가서 열심히 걷고, 느끼고, 사진 찍고 하는 행위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들을 기록으로 담아내는 후속 작업도 무척 중요한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요.

    기록으로 담아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분명 다르겠지요. 해당 아웃도어가 기록이 됐다면 나중에도 디테일하게

    기억이 될 수 있을 듯하네요.

     

     

     

     

    * 도림천: 예전에는 정말 지저분했었다. 냄새도 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에게는 앞마당과 같은 곳이다.

     

     

    * 안양천: 한강에 가까워지자 하천 폭이 넓어졌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이대 목동 병원과 목동 열병합 발전소다.

     

     

     

     

    <도림천_안양천_한강, 그 환상의 삼각주>라는 거창한 제목이 달린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고개를 저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메콩강 삼각주니, 양쯔강 삼각주니 하는 건 들어봤어도 '도림천,안양천,한강 그 환상의 삼각주'라는 말은 너무 작위성이

    강하다고 질책을 하실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저한테는 도림천,안양천,한강이 삼각주와 같이 정말 소중한 곳입니다. 삼각주라는 곳은 강이나 하천의 하류

    부근에 퇴적층이 생겨서 이루어지는 곳이지요. 상류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부유물이 퇴적되었으니 삼각주의 토양은

    영양 덩어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삼각주는 세계적인 곡창지대를 이루는 곳이 많지요.

     

    물론, 도림천,안양천,한강이 지리적으로 삼각주 형태를 띄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그곳이 제게 아웃도어의

    비타민과 같은 곳이라는 의미로 삼각주라는 명칭을 붙여준 것입니다.

     

     

     

    * 안양천의 꽃 길: 꽃 길을 걷다보면 눈이 다 시원해진다.

     

     

     

     

     

    제가 아무리 아웃도어를 좋아하고, 즐겨한다지만 매일 같이 제주 올레길을 갈 수는 없겠죠. 또한 매일 같이 지리산을

    올라갈 수는 없을 겁니다. 입으로는 매일 같이 백두대간을 외치지만 제 몸은 일상의 사슬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답니다.

    그것이 도시인들의 한계일 겁니다. 포털 뉴스에서 아웃도어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엔돌핀이 팍팍 솟구치지만, 정작

    모니터만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이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실 겁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아웃도어를 즐기시는 분들은 자신의 앞마당과 같은 곳을 지정해 두어야 합니다. 4계절을 다 돌릴 수 있는

    그런 아웃도어의 앞마당이 필요한 것이지요. 태풍 같은 악천후는 제외하더라도 한겨울에도 다닐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합니다.

     

     

     

     

     

    * 도림천: 도림천은 비교적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잘 구분되어 있다. 자전거도로와 보행로의 구분은 안전문제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그렇습니다. 저한테는 도림천,안양천,한강이 제 앞마당과 같은 곳입니다. 태풍이나 수해 같은 악천후를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그곳에서 아웃도어를 즐겼으니까요. 그렇게 아웃도어의 내공이 쌓이니까 자전거전국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던

    것이고요. 그렇게 내공이 쌓이다보니까 무동력 여행 4200km를 다녀올 수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도림천, 안양천, 한강은 제게 아웃도어의 영양을 듬뿍 가져다 준 곳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도림천_안양천_한강, 그 환상의 삼각주>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걸고 블로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4~5년 사이에 도림천과 안양천의 수변 공간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신도림 지역의 토박이인데... 저 어렸을 때는

    도림천, 안양천은 말 그대로 똥물이었습니다. 워낙 지저분해서 그 곳에 한 번 빠지면 피부병이 발병될 정도였죠.

    하지만 요즘은 그 곳은 지금 물세떼들의 서식지가 됐을 만큼 친환경적인 하천으로 탈바꿈하게 됐습니다.

    한여름에는 동네 꼬맹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놀더군요.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죠.

     

     

     

     

     

    * 안양천의 오프로드: 흙 길이 걷기에 좋지...

     

     

     

     

     

    왜가리인가요? 백로는 아니었는데... 제가 조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ㅋㅋㅋ 하여간 덩치가 큰 흰 새 녀석이 도림천에서

    먹이 사냥을 하는 것을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두 번씩이나요.

    그렇게 수질이 좋아지고 수변 공간이 정돈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도시 트레킹 코스로 자리를 잡더군요. 참, 격세지감이지요!

    예전에는 똥물이라고 외면받았던 곳이 이제는 저한테 아웃도어의 영양분을 팍팍 불어넣어주는 삼각주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도림천, 안양천,한강의 삼각주를 꾸준히 애용할 생각입니다. 이곳에서 열심히 아웃도어의 내공을

    쌓은 후에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영양을 듬뿍 받았으니 열심히 움직여야겠지요!

     

     

    TIP) 나의 이동경로: 도림천(신도림역 부근에서 출발)  -> 도림천_안양천 합수지점 -> 안양천_한강 합수지점

    1. 도림천 루트: 약 1.5km

    2. 안양천 루트: 약 5.5km

    3. 이동시간: 약 2시간 정도(도보 기준)

     

     

     

     

     

     

     

     * 한강 합수지점: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가양대교와 행주대교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지하철 2호선 합정역과 여의도가 나온다.

     

     

     

     * 안양천

     

     

     * 안양천

     

     

     

     * 안양천

     

     

     

     * 도림천의 안내판

     

     

    * 안양천

     

     

    * 도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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