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남길 장군봉이라는 곳이다. 작은 산이지만 그 곳에 올라서면 평야와 산들이 어우러진 강진군 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사진에서 나타나듯 장군봉에서 바라다보는 남도 일대는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사진에 등장한 분들은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과 장덕진 팀장이다.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7일 동안 90km 걸으며 삼남길 보수작업 여행기___2편

 

 

 

 

 

# 공구가방을 둘러메고 보수작업에 나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개척이 아닌 보수공사를 하러갔다. 이미 개척이 완료된 구간의 설비들을 재정비하는 것이 필자의 임무였다. 보수작업은 개척작업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래서 개척작업과 보수작업을 이란성 쌍둥이로 표현할 수도 있다.

도보여행 코스는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는 한 번쯤 전수 조사를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안내판 재정비 같은 작업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훼손된 방향표지판을 새로 교체해 주고, 수풀이 우거진 곳은 낫으로 통행로를 확보하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지니고 움직여야 할 장구들도 한가득이었다. 방향지시판, 스티커, 리본, 전동드릴, 실리콘총 등등…. 이렇게 가지고 다녀야 할 공구들이 많으니 작업팀들은 허리에 공구가방을 둘러야 했다. 군대에서 쓰는 탄띠를 응용해서 만든 가방이었다. 그 많은 장비들을 공구가방에 담았더니 허리가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보수작업의 첫 시작점은 해남 땅끝 마을이었다. 삼남길의 시작점이 땅끝 마을이기 때문이다. 보수작업은 할 만했다. 필자도 트래킹 코스를 직접 개척한 경험도 있었고, 개별적으로 삼남길을 여행한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필자는 아웃도어 여행가가 아닌가!

'그냥 산보 하듯이 살랑살랑 걷다가 맛있게 남도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겠군. 푸하핫, 간만에 일주일 동안 포식하겠군!'

 

 

 

 

 

▲ 화장실에 붙여진 삼남길 스티커: 녹색이 서울 방면이고 빨간색이 해남 방면이다. 사단법인이 돈이 없는 관계로 값비싼 방향표지판 대신 스티커를 붙여야 했다. 한편 저 화장실은 스티커를 붙이는데는 제격이었지만 볼 일을 보기에는 꽝이었다. 무척 지저분 했기 때문이다. 아마 화장실 귀신도 도망갔을지 모른다.

 너무 지저분해서.

 

 

 

 

 

도보여행 길 보수 작업의 핵심은 올바른 표지판 설치에 있다. 단방향 길처럼 중간에 진·출입이 없는 곳이면 표지판 설치에 드는 수고가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남길은 그렇게 단순한 길이 아니다. 바다와 만나고, 산을 둘러가고, 농로를 질러가고, 강을 건너는 길이 바로 삼남길이기 때문이다. 해안길만 타고 가는 길이야 그냥 바다를 기준 삼아 계속 나아갈 수 있지만 삼남길은 그렇게 단순하게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말이다.

혹자는 '그렇게 단순한 길이 아니면,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나무 푯대 같은 것을 갈림길 곳곳에 세워두면 되지 않냐'고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삼남길 개척을 주관하는 손성일 대장의 고심이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돈이 문제지. 나무 푯대 하나 설치하는데 인건비 포함해서 100만 원 정도 든다는데 그 비용이면…. 아휴."

 

 

 

 

 

▲ 점재 삼나무 숲길: 삼남길 6코스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지나 점재를 넘는다. 1970년대 포장도로가 들어서기 전까지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 산 아래 주민들은 점재를 넘어 강진 읍내로 왕래했다고 한다. 포장도로 개설 이후 사람들이 자동차만 타고 다니니, 자연스럽게 산길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다 삼남길 개척으로 옛길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아마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저 점재를 넘어 강진 읍내로 왕래를 하셨을 것 같다.

저렇게 시원스럽게 뻗은 늠름한 삼나무에 감탄을 하시면서.

 

 

 

 

 

#'초' 저비용으로 개척되고 있는 삼남길

그렇게 손성일 대장이 한탄을 할 만했다. 오죽했으면 고급(?) 인력인 필자까지 자원봉사로 삼남길 보수공사에 참여를 했겠는가. 그렇다. 역시 돈이 문제였다. 사단법인이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헝그리 정신'은 삼남길 개척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전남구간 228km 개통에 3억 원 남짓한 비용밖에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km당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이 투입됐던 다른 도보여행 길들의 예산 집행과정과 삼남길의 개척비용을 일대일로 비교해보면, 그 '헝그리 정신'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걷기여행의 열풍을 타고 각 지자체에서 앞 다투어 개설했던 도보여행 길들에 적게는 수십 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삼남길은 확실히 저비용이라는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개발비용이 저렴하다는 말은 달리 말해 개척자들이 엄청난 '생고생'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랬다. 개척초기에 삼남길 개척단은 매일 같이 텐트 생활을 해야 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했다. 돈이라고는 지인들이 모아준 후원금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용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개척단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백이 되어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피로가 가중됐고, 황소도 때려잡게 생긴 사람도 몸살을 앓고 '픽픽' 쓰러졌다고 한다.

 

 

 

 

*삼남길 작업: 삼남길 작업에 쓰인 리본

 

 

 

 

#'이거 도망가야 하나?', 야반도주를 생각하게 됐다

문제는 필자도 그렇게 '픽픽'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작업 3일째가 되자 출발 전에 품었던 느긋함은 싹 다 사라졌다. 작업 장구를 지니고 하루 평균 15km 이상의 거리를 속보를 통해 이동을 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피지컬을 염두에 두고 이동하는 일반적인 도보여행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균형이 깨졌던 것이다. 자신만의 페이스라는 게 있다. 아웃도어 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한 번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적지까지 잘게 썰어서 도착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두 가지를 절충해서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삼남길 보수 작업에서는 그런 통상적인 페이스 조절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왜? 말 그대로 작업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작업지점에 멈춰 서서 작업을 하고, 또 이동하다 작업하고. 그렇게 불규칙적으로 이동과 작업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 수많은 돌발 변수들이 발생했다. 예전에 설치했던 표식들이 사라졌거나 길 자체가 훼손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새롭게 코스를 재정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유지를 통과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땅 주인이 철문을 새로 달아 놓으면 그 길은 더 이상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엔 국도가 4차선으로 확·포장 되어서 기존의 트래킹 코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필자만의 페이스를 발휘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균형도 깨졌다. 일반적인 도보여행보다 피로도가 2~3배는 더한 것 같았다. 작업 당시 남도는 봄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지만 내 몸에는 한기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식은땀이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온 삭신이 다 녹아나는 느낌이었다. 파스로 버틸 수위를 넘어선 것이다. 야반도주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내 마음을 간파했는지 손성일 대장이 몸살약을 건네며 이런 말을 했다. 

"정말 만만치가 않지…. 이 일 하다 여럿 도망갔어."

 

 

 

 

 

 

 

▲ 공구가방을 두른 필자 사진 왼쪽이 손성일 대장이고, 오른쪽이 필자다. 허리에 공구가방을 두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계속된 작업에 지쳐서 그랬는지 뒷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공구가방이 축 처져있다. 자켓에 달린 모자도 지퍼가 좀 풀려있다. 뒤에 있는 산은 영암 월출산이다.

 

 

 

 

 

#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도망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배신자도 되고 싶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전 일정을 다 참가한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 달릴 때까지 달려보는 거야. 중간에 그만 둘 수는 없잖아!'

오기 때문인지, 몸살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필자는 전 일정을 다 소화 할 수 있었다. 무척 고단한 작업이었고 체력적으로도 힘겨웠지만 전 일정이 무사히 완료됐다. 멤버들도 모두 무탈하게 귀가 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7일 동안 90km 정도를 이동했던 것 같다. 100km에는 못 미쳤다. 오전 작업만 한 적도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단기간 내에 참 많이 걸었던 셈이다.

새삼스럽게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지 말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했던 여행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체력적으로 충만하다고 해도 아웃도어 현장에서는 돌발 변수라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피로는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아웃도어를 하다가 골병이 들면 안 되지 않나?

도보여행 객들을 위해 좋은 길을 만드시는 분들의 노고도 새삼스럽게 되새겨 보았다. 가장 걷기 좋게, 가장 친환경적으로 트래킹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숱한 몸살과 골병들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개척자들의 피땀 어린 노고가 있었기에 도보꾼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을 것이다.

 

 

▲ 삼남길 8코스 태평양 다원 여기서 조금만 더가면 유명한 월남사지 3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 강진 태평양 다원 삼남길 전남구간 8코스에 있는 태평양 다원. 멀리 보이는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을 병풍 삼아 펼쳐진 강진의 녹차밭은 보성 녹차밭과는 또다른 멋이 있었다.

 

 

 

 

 

▲ 해남의 갈대밭 삼남길 3코스는 해안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삼남길은 바다를 만나고, 산을 둘러가고, 강을 넘는 길이다. 멀리 보이는 섬은 완도다.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7일 동안 90km 걸으며 삼남길 보수작업 여행기____1편

 

 

 

일주일 동안 100km를, 도보를 통해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필자는 개의치 않았다. 차라리 느긋해 있었다. 물론 자동차가 아닌 도보를 통해 100km를 이동해야 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할 일은 길의 보수·정비였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걷는 일반적인 도보여행이 아니었다. 각종 장구들을 지니고 주요 지점에 멈춰 서서 길을 정비하는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 필자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여행가이기 때문이다. 5600km라는 무동력 여행 기록을 가지고 있으니, 100km 정도는 그리 큰 숫자로 보이지 않았다.

'하핫, 까짓것 파스 좀 바르면 거뜬하게 버틸 수 있겠군. 오랜만에 남도여행이나 재밌게 해보는 거야!'

지난 2월 21일. 필자는 그런 느긋한 생각을 품고 해남 땅끝 마을로 향하는 승합차에 탑승했다. 승합차 뒤편에는 전동드릴, 실리콘 총, 리본, 스티커 등등…. 각종 작업 장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곽 작가, 오랜만이야. 자원봉사 고마워. 그런데 이번 삼남길 보수작업 만만치 않을 거야."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었다.

"무슨 말씀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전문가 아닙니까?"

 

 

 

* 삼남길 보수작업: 보수작업에 쓰여던 각종 공구와 도구들.

 

 

 

 

 

 #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삼남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랬다. 필자가 이번에 소개할 여행기는 삼남길 전남 구간 보수·정비에 대한 이야기다.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삼남길에 대해서 소개해본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듯이 한국에도 삼남길이 있다. 서울에서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걷기 편한 트레일(trail:오솔길) 코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장장 700km가 넘는 도보여행길이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에 의해서 개척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현재의 삼남길 개척은 조선시대 십대대로 중에 하나였던 삼남대로를 계승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곡창지대였던 삼남(전라, 경상, 충청)이 조선왕조 물산(物産)의 중심축 역할을 했듯, 한양에서 호남지역으로 향했던 삼남대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길을 따라 수많은 관헌들이 말을 달렸고, 그 길을 따라 수많은 보부상단과 남사당패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한 수많은 수레들이 힘 좋은 황소들에 이끌려 그 길에 바퀴자국을 냈다. 
 
그 길에서는 희망과 참담함이 서로 교차되기도 했다. 호남과 충청지역 자제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갔던 길이 삼남대로였고, 중앙권력에서 밀려난 선비들이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며 귀양길을 떠나야 했던 길도 삼남대로였기 때문이다. 정약용·정약전 형제가 귀양길을 올랐던 곳도 삼남대로였고,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인 제주도로 향할 때 걸었던 길도 삼남대로였다. 이렇듯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는 삼남길은 단순히 국토종단 도보여행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적인 길이 오늘날 느림의 미학과 결부되어 행복과 치유의 도구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삼남길은 현재 전남구간(해남~장성) 14코스 228km가 개통되어 있고, 올해 5월에는 경기도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다. 아직 충남과 전북지역은 미개통 상태로 남아 있다.

 

 

 

 

▲ 삼남길 보수작업의 작업팀 맨 왼쪽은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다. 나머지 두 분은 보수작업을 위해서 자원봉사를 하시러 왔다.

두 분 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다. 도보여행에 대한 애착과 경력은 이미 전문가급을 넘어서고 있었다.

 

 

 

 

 

 #매연을 먹으면서 '힐링'을 할 수 있는가?

한편 현재 개척되고 있는 삼남길이 조선시대에 발간된 지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필자는 이런 주장이 좀 우려스럽다. 삼남길에 대해서 기계적인 접근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사기로 복사하듯 옛날 길을 복원하라는 건 현실적인 상황을 아예 무시하는 태도라고 판단된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교통혁명을 겪었다. 인력과 축력, 즉 무동력 시대에서 동력기관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교통혁명은 시간에 대한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무동력 시대에는 해남에서 한양까지 30일이었지만 지금은 고속도로로 5시간이다. 현재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이 해남으로 출장을 가면 1박 2일이 걸리지만 조선시대 관헌은 왕복하는데 족히 2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교통혁명은 옛 삼남대로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흙길이었던 곳에 신작로가 닦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신작로가 지금은 국도나 고속도로로 변한 곳도 있다. 군부대가 들어선 곳도 있다.

옛 삼남대로를 기계적으로 복원하면,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바퀴 열 개짜리 24톤 트레일러와 함께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군부대 연병장을 가로질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길은 걸을 필요가 없다. 매연을 먹으면서 '힐링'하려고? 소음을 들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려고?

 

 

 

 

 

▲ 삼남길 삼남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남도의 정취에 물들게 된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풍광이 삼남길 곳곳에 즐비해 있다.

 

 

 

 

 

 

 

 

▲ 청량사: 청량산 중턱에 있는 청량사. 사찰 한 가운데에는 석탑과 함께 부처님이 계셨다.

 

 

 

 

 

* 청량사: 보기만 해도 시원한 곳에 부처님이 계셨다!

 

 

 

 

 

# 청량산 베이스 캠프 완성

 

 

그러면서 손수 커피 한 잔을 타서 내게 건네주었다. 역시 아웃도어를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다르긴 다른 듯싶었다.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자칫하면 숙소도 못 잡고 노숙을 할 판이었는데 말이다. 시골 인심에 아웃도어 인심까지 더해진 행운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의존하여 그 직원이 알려준 곳을 찾아갔다. 그 곳은 팔각정 같은 곳으로 나무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해두고 있었다. 좋은 풍광을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장소인 듯싶었지만 내 시야는 가로등 불빛 너머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주위 풍광만 지레짐작 할 수밖에 없었다. 난 서둘러 의자와 테이블을 한 쪽으로 몰아 텐트 칠 공간을 마련했다. 그것들이 돌처럼 무거워서 힘을 좀 쓴 후에야 그럭저럭 비가 들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드디어 나의 '청량산 베이스캠프'가 완성될 수 있었다.

 

 

▲ 청량산 하늘다리: 저 하늘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스릴이 넘친다.

다리를 건널때 강력한 횡풍이 불면 그 스릴감은 공포감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 청량산 하늘다리: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고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의 계곡'에 하늘다리를 걸어놓은 셈이다

 

 

 

 

청량산 하늘다리에서 스릴을 즐기다!

다음날.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정신없이 잠에 빠져 있었는지 늦잠을 잔 것이다. 세면을 하고 난 후에 어제 내가 '물아일체'를 했던 곳을 찾아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그 곳을 찾았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는 좀 움푹 파인 곳처럼 보였다. 선녀탕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충의 틀은 나왔다. 그래서 난 내식대로 이름을 지어보았다. 신선탕으로.

그런데 신선탕 주변에 쓰레기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누군가가 먹다 남은 술병과 안주거리들을 그대로 놓고 간 것이다. 어제밤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난 좀 짜증이 났다. 자연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유명관광지 티'를 내고 갔기 때문이었다. 어떤이들이 '유명관광지 티'를 내던 곳에서 난 좋다고 물아일체를 했던 것이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청량산까지 와서 등산을 하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와 텐트를 잘 놓아두고 등산 버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등산을 하기 전에 신선탕 근처에 있는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갔다. 내가 전날 물아일체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풍기문란도 했기에 그 벌로 환경미화를 자청했던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즐겼던 만큼 남들도 재밌게 놀 수 있게 뒷정리를 깨끗이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청량산도 국립공원 클럽의 물망에 오를 정도로 절경을 뽐내는 산이다. 낙동강 상류와 어우러진 청량산의 모습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산 중턱에 있는 청량사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도 만나 뵐 수 있다.

한편 청량산에는 하늘다리가 있다. 그 곳에 서면 자신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산바람이 세게 분다. 스릴을 느끼고 싶지만 번지점프를 할 용기가 나지 않는 분들은 청량산 하늘다리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가 구름다리를 통과할 때, 갑작스럽게 돌풍이 불었는데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다리가 요동을 쳤다. 스릴 만점이었다.

 

 

▲ 래프팅: 낙동강 상류는 물살이 급해 래프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청량산 도립공원 인근에는 래프팅 업체들이 산재해 있었다.

 

▲ 청량사 산들이 병풍처럼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부처님이 계신 곳은 주위가 확 트여 있어, 풍광이 시원스럽다.

 

▲ 낙동강 낙동강은 청량산을 굽이쳐 흘러간다.

 

 

 

 

▲ 낙동강과 청량산: 필자가 봉화를 방문했을 때는 장마철이라 그랬는지 무척 유량이 풍부했다. 물소리가 아주 거세게 들렸다.

 

 

 

 

 

 

강변을 바라보면서 잠이 드는 것처럼 로맨틱한 '굿나잇'이 또 있을까? 나는 바다도 좋아하지만 강변에서의 하룻밤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는 강변이 갖고 있는 아기자기함 때문이다. 난 광활한 망망대해를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 주는 각성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독여 주는 입체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강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 강촌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모꼬지를 가고, 캔 맥주 하나 들고 홀로 한강에 나가 실연의 아픔을 강물에 실어 보내고...

이런 강변에 산이 어우러지면 그 입체성은 더욱더 강조될 것이다. 경쾌하게 흐르는 강물 소리에 산 새 소리가 어우러지면, 최소한 사운드면에서는 이미 무릉도원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이번 여행기는 강변 캠핑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매일같이 텐트를 쳤다. 한계령 도로 정상에서 텐트를 쳤고, 울릉도 북면 천부항에도 쳤다. 또 수많은 초등학교와 폐교, 개활지에도 쳤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최고의 캠핑지에 대한 순위가 매겨졌다. 그럼 최고의 캠핑지 1순위는 어디일까.


 

 

 

 

▲ 청량산 베이스캠프: 낙동강가에 세운 청량산 베이스캠프. 청량산을 병풍 삼고, 낙동강 끌어 안을 수 있었던 최고의 캠핑지였다!

한편 저렇게 정자 아래에 텐트를 치니 밤새 비가 내려도 물난리를 겪을 일이 없었다.

 

 

 

 

*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 필자가 방문을 했을 때는 방문객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느긋하게 주차장에서 베이스캠프를 칠 수 있었다.

 

 

 

 

 

# 청량산에 만난 도립공원 직원

 

당시 나는 경북 봉화를 거쳐 안동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강원도 태백을 통해 봉화군으로 입성을 했는데, 내가 보기에 봉화는 행정상으로는 경상북도이지만 지형적으로는 강원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험준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봉화지역은 '심산유곡'의 절경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명소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명호면에 있는 낙동강시발지공원에서부터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까지의 길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병풍처럼 서 있는 청량산을 따라 낙동강이 시원하게 내달리는 모습은 장관 중에 장관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근처에 캠핑장이 있나요?"

나는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청했다. 낙동강과 청량산이 뽐내는 절경을 카메라로 담아내느라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그러다 덜컥 일몰 시간을 맞았기 때문. 설상가상이라고 그때 빗줄기가 한 두 방울씩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 여기는 근처에 캠핑장이 없는데... 여유가 있으면 민박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비수기라 민박 요금이 비싸지는 않을 텐데요."

자신도 아웃도어를 무척 좋아한다고 밝힌, 관리사무소의 한 젊은 직원은 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비수기에는 민박 요금이 비싸지 않다고 하지만, 내게는 비쌌다. 하루를 만 원으로 버텼던 내게 5만 원 짜리 펜션 숙박은 사치였기 때문이었다.

"아참,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여기에서 쭈욱 가다보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비를 막을 수 있는 오두막이 있거든요. 거기다가 텐트를 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장마철이라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요."

 

 

 

 

* 청량산: 청량산의 최고봉인 장인봉에 올라 한 컷! 청량산은 유력한 국립공원 후보지 중에 한 곳이라고 한다. 


 

 

 

 

▲ 청령포와 청령포 나룻터: 단종이 겨울철에 유배를 왔으면 저 얼음을 넘어서 다시 한양땅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단종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단종의 유배기간도 자신의 운명처럼 무척 짧았던 셈이다.

 

 

 

 

▲ 청령포 터널 청령포에서 방절산(야산)을 넘어가면 청령포역이라고 간이역이 나온다. 그 길 중간에 저 터널이 있었다.

산 중간에 배꼽처럼 뚫린 터널 속으로 기차가 오가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 걷기 열풍의 빛과 그림자

행정도 유행을 타는 걸까. 제주 올레길의 인기를 벤치마킹한 길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그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 놓은 트레킹 코스들을 많이 탐방해봤다. 물론 좋은 길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도보여행길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부실한 곳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화장실이나 안내판 같은 기본적인 편의 시설 부족은 둘째 치고, 자동차들이 쌩쌩 다니는 도로를 횡단해야 다음 코스로 진행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도 여러 곳 만날 수 있었다.

다른 형식의 여행도 마찬가지겠지만 도보여행의 기본 덕목은 안전이다. 목숨을 내놓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도보여행은 비교적 아웃도어에서 소외되었던 이동권 약자들이 더 많이 선호하는 여행이 아니던가. 남성보다는 여성, 젊은층보다는 장년·노년층이 선호하는 아웃도어 방식이 걷기 여행이라면, 그에 걸맞은 안전시설과 편의시설들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기승전결이 잘 맞아떨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필자는 이 지면에서 '단종 유배길'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을 기반이 확실히 잡힌 도보여행 코스에 빗대서 비판을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영월군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기왕 좋은 길을 만들었으면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편의 시설도 갖추어서 도보꾼들의 발걸음을 불러들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동차 없이도 영월 지역에서 부담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버스편 증편 등 제반 시설 확충에 힘써 달라는 말이다.

 

 

 

 

 

 

* 빨간다리: 영월읍에서 청령포 나룻터까지는 약 2Km 정도 걸린다. 얼마전 청령포 입구쪽에 저류지 공사가 있었다.

저류지에는 각종 운동시설이 들어섰는데, 난 개인적으로 저 빨간다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동강 철로길: 동강 위로 철로길이 놓여 있었다. 이 철로길은 영월역과 청령포역(무인역, 기차 정차 안 함) 사이에 놓여 있었다.

뒤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은 태화산이다. 상당히 멋진 산이라는데...

 

 

 

 

 

 

# 단종이 겨울에 유배를 왔었다면 저 얼음을 넘어 한양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덧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도달하게 됐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배후면에는 가파른 산이 놓여 있는 곳이라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그래서 청령포는 배가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지난 가을에 방문했을 때는 필자도 배를 타고 청령포에 입장했다. 

다시 영월을 방문했던 1월 중순께에는 '얼음 트레킹'이라는 말에 걸맞게 청령포 앞을 흐르는 서강이 얼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음 위를 걸어가 청령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배가 오갔던 서강 강물이 강추위로 꽁꽁 언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미끄러지듯 그 얼음 위로 청령포를 오가는 방문객들의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종은 청령포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했다. 1457년 6월 하순에 청령포에 왔다 그해 여름 홍수를 피해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 갔고, 그해 10월 하순에 관풍헌에서 숙부인 세조에 의해 사사됐다. 그러고 보면 단종의 유배기간도 자신의 운명처럼 짧았던 셈이다.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관풍헌을 오가는 탐방객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종이 겨울에 유배를 왔으면 저 얼음을 넘어서 다시 한양 땅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태백산에서는 산신령으로 만났던 단종 임금을 영월 얼음 트레킹을 통해 다시 만났던 것은 뜻 깊은 일이었다. 그 외에도 필자는 청령포를 넘어가는 방절산(야산)과 동강 철로길을 탐방했다. 방절산에는 청령포역이라고 지금은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작은 간이역이 있는데 그곳도 탐방하고 왔다.

약 12km 정도 되는 비교적 짧은 트레킹이었지만 겨울철에 하는 아웃도어라 만만치는 않았다. 눈 속에 발이 파묻히기도 했고, 얼음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도 여러 번 찧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영월 얼음 트레킹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 동강대교: 현재 영월군에서는 '영월 동강 겨울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1월 11일부터 시작된 축제는 2월 3일까지 계속 된다고 한다.

필자가 영월을 방문했을 때는 축제 준비로 동강 일대가 분주했었다. 한편 사진에 나온 동강 대교는 영월의 또다른 자랑 거리이다.

확 트인 동강 둔치와 그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이 동강대교와 어우러진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서강: 서강 뚝방길은 단종유배길 11코스다. 단종유배길의 종점은 청령포가 된다.

 

 

 

 

▲ 서강 고라니길: 서강은 동강에 비해 개발이 덜 된 곳이었다. 그래서 고라니들이 뛰어놀 만큼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겨울철을 맞아 고라니들이 먹이가 없어서 마을로 내려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동네 개들이 고라니들을 보고 안 짖는 걸 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필자를 보고 엄청나게 짖어 댔다.

 

 

 

 

 

 

# 저 고라니를 잡아다 루돌프를 시켜볼까?

 


그 길이 동물 전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 길을 걷는 사람은 필자 혼자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필자의 모습이 무척 신기했는지 고라니 녀석 하나가 계속 내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고라니들은 겁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독 그 녀석은 겁도 없이 내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었다. 마치 원거리 경호를 하듯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 앞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고라니 녀석의 '원거리 경호'를 받으며 길을 걸었던 곳은 영월읍 방절리 일대 뚝방길이었다. 몇 해 전 서강 일대에는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제방 공사를 했는데, 그 위로 길을 닦았다. 그 길을 필자는 홀로 호젓하게 걸었던 것이다.

필자가 영월을 방문했을 때는 동장군이 위세를 부렸던 1월 중순이었다. 그래서 서강의 물길은 꽁꽁 얼어 있었다. 강 옆으로 펼쳐진 야트막한 기암괴석들과 농한기의 한적한 농촌 풍경들이 꽁꽁 언 서강의 모습과 함께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을철 단풍산행이 형형색색의 '비주얼'을 감상하는 재미라면, 겨울 눈꽃 산행은 흰색으로 단일화된 설국(雪國)을 걷는 오묘한 맛이 있다. 그 말에 빗대서 생각해보면, 서강 '얼음트레킹'은 흰 색 물감이 좀 덜 칠해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흰색이 덜 채색된 부분에 얼음이 얼어 있다고나 할까. 그런 서강길을 고라니와 함께 걷고 있자니 엉뚱한 상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저 고라니를 잡아다 루돌프를 시켜봐? 그럼 내가 산타클로스가 되는 건가?'

 

 

 

 

 


* 방절산(야산): 방절산에는 청령포역이 있다. 예전에는 청령포역에서 하차 한 후 걸어서 청령포 나룻터까지 갔다고 했는데,

지금의 청령포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무인역사다. 이 사진은 방절산 정상 부근에 올라 영월읍 지역과 함께 동강철로길을 찍은 것이다. 

 

 

 

 

# 동네 주민도 모르는 '단종 유배길'

한편, 전국에 불어 닥친 걷기 열풍은 서강 뚝방길에도 영향을 미쳤다. 필자가 걸었던 길이 바로 단종 유배길 11코스였기 때문이다. '단종 유배길'은 영월군에서 단종의 유배 행선지를 모티프로 삼아 트레킹 코스로 개척된 도보여행길이다. 유배라는 테마를 중심에 둔 트레킹 길은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강진군의 '정약용 남도 유배길'과 경남 남해군의 '남해 바래길'이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남해 바래길'은 <구운몽>으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과 관련된 길인데, 그중 3코스가 서포의 유배지였던 벽련 마을을 통과한다.   

조선시대 중앙정치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눈물을 머금고 걸어야 했던 비운의 유배길이, 오늘날에는 '스토리'가 있는 도보여행길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건 참 역설적인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인물을 중심에 놓은 길이 풍광을 앞세운 길보다 역사 공부에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 여행 전후로 해당 역사인물의 삶의 궤적과 당시의 시대상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으니 1석 2조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단종 유배길'은 걷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단종 유배길'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단종 유배길'은 전체 구간이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난해 9월). 하지만 '단종 유배길'은 현지 주민들이 길 개통에 대한 존재 자체를 모를 정도로 전혀 홍보가 안 된 상태였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영월군 누리집에도 '단종 유배길'에 대한 상세한 안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단종유배길'에는 화장실이나 벤치·식수대와 같은 기본적인 편의 시설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청령포역: 청령포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무인역사다. 2005년 경에 무인 역사가 됐다고 한다.

 

 

 

 

 

▲ 선돌: 기묘한 형상의 선돌은 예로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 청령포 조선조 6대 임금이었던 단종은 청령포에서 2달 간 유배 생활을 했다. 단종은 1457년 6월 하순에 청령포에 왔다,

그 해 여름 홍수를 피해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러다 그 해 10월 하순에 관풍헌에서 숙부인 세조에 의해 사사됐다.

 

 

 

 

 

# '뚜벅이' 여행자들에게 불편한 영월 여행

 

강원도 영월은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비운의 왕인 단종과 관련된 유적지부터 래프팅으로 유명한 동강, 가난뱅이 여행자들의 아이콘인 김삿갓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습을 닮은 한반도 지형까지…. 이렇게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니 영월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했다. 지난 10일, 설렘을 안고 영월로 향했다.

하지만 자동차 없이 '뚜벅이'로 여행을 다녀야 하는 필자 같은 여행객에게 영월은 다른 지역처럼 불편한 곳 중 하나다. 왜? 군내 버스편이 드문드문 있으니까. 동강 어라연이 있는 문산리행 버스는 읍내에서 하루 다섯 번만 운행한다. 김삿갓 문학관행도 마찬가지로 다섯 편만 운행된다. 그러나 문산리행이나 김삿갓행은 양반에 속한다. 한반도지형행은 하루에 단 두 편밖에 없다. 이런 대중교통편의 미비로 인해 영월 여행도 자동차 여행이 주를 이룬다. 실제적으로 영월 읍내에 있는 관광 안내도도 자동차 여행을 기준으로 작성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필자는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았음에도 아주 재밌게 영월 지역을 탐방하고 왔다. 영월 읍내 지역을 중심으로 '얼음 트레킹'을 하고 왔는데, 겨울 눈꽃 산행하고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고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숨어 있는 진주와도 같은 서강의 모습을 발견하는 큰 수확도 얻었다.  

 

 

 

 

* 동강: 동강과 서강은 영월읍 방절리 부근에서 서로 합쳐져 남한강을 이룬다. 필자가 영월을 방문했을 때, 서강과 마찬가지로 동강도 꽁꽁 얼어 있었다.

 

 

 

 

 

 

 

# 유배가는 단종도 선돌의 기묘함에 감탄하지 않았을까


영월 얼음 트레킹은 선돌에서부터 시작됐다. 선돌은 영월 읍내에서 약 4.5km 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서강 강변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다. 본 바위에서 툭 튀어 나온 듯이 서 있는 선돌은 그 높이가 70m에 달한다.

선돌은 그 자태가 오묘하여 예로부터 '신선암'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기묘한 모습 때문에 선돌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비운의 임금이라고 불리는 단종 임금도 그들 중에 포함된다. 단종 임금의 유배지는 영월 땅 청령포였다. 한양에서 청령포로 가기 위해서는 소나기재라는 곳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고개 정상 부근에 선돌이 있다. 단종도 선돌을 볼 때만큼은 고된 귀양길에서 오는 피곤함을 잠시 내려놨다고 한다.

소나기재에 올랐던 단종은 기묘한 모습의 선돌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종대왕의 피가 흘러 어릴 적부터 영민했던 단종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다시는 한양 땅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신의 불후한 운명을 말이다.

선돌 탐방을 마친 후, 산길을 1km 정도 내려오면 본격적으로 서강 강변을 트레킹할 수 있다. 어라연을 품고 있는 동강과 한반도 지형을 품고 있는 서강은 영월읍 부근에서 서로 만나 남한강을 이룬다. 같은 영월 땅을 흐르고 있지만 서강은 동강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서강 주변은 개발의 손길에서 비켜나 있었다. 동강 주변을 따라 각종 리조트들과 래프팅 업체들이 몰려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느껴질 정도.

역설적으로 그렇게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서 그런지, 서강은 고라니들이 뛰어놀 만큼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가 직접 서강길을 탐방했을 때, 곳곳에서 고라니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눈길 곳곳에 찍힌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람 발자국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야생 동물들의 발자국들만 가득하니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 길은 동물 전용 노선인가? 사람이 발을 들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 선돌과 서강: 선돌 옆을 유유히 흘렀던 서강이 겨울 동장군에 의해 꽁꽁 얼게 됐다.

 

 

 

 

▲ 선돌: 꽁꽁 언 서강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오른 선돌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 일본 돗도리현 다이센(大山): 올해 첫 눈을 일본에서 맞았네요. 생각지도 않은 설국(雪國)을 만나서 좀 어리둥절 했습니다.

 한편 별다른 장비없이 이 정도까지 산행을 했다면, 온천에서 몸 좀 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제목이 상당히 선정적이다. 굳이 이렇게 선정적인 제목을 거는 이유가 뭐냐고 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제목에 언급된 단어들만으로도 충분히 '일본산 AV' 하나 정도는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보시고, 은근슬쩍 하드디스크의 '비밀폴더'에서 비슷한 제목의 동영상을 찾으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에서 DBS호를 타면 일본 돗도리현 사카이미나코항에 갈 수 있다. 동해항-사카이미나코항 항로는 450km에 달하는데, 그 거리를 DBS호는 14시 동안 달린다. 비행기로 한두 시간 정도면 닿을 거리를 14시간을 달리니 만만치 않은 항해임에 틀림없다.

내가 그렇게 긴 항해를 감내하며, 돗도리현에 갔던 이유는 '다이센(大山) 등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등반대회는 지난 11월 24일에 개최됐었다. 다이센은 해발 1729m로, 일본인들이 가장 등반하고 싶어 하는 산들 중에서 세 번째로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 선호도가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듯, 다이센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난 올해 첫 눈을 다이센에서 맞았다. 등산 초입에서는 눈이 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산 중턱부근에 오르자 눈발이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등산로에 쌓인 적설량도 상당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왜? 난 눈꽃 산행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젠은커녕 그 흔한 스틱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또 우비도 없었다. 하지만 난 목표지점까지 완등을 했다. 그런 악조건 하에서도 목표지점까지 무사히 도달한,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산행을 마치자 난 오들오들 떨었다. 그럴 만했다. 눈을 맞아서 옷이 많이 젖었기 때문이다. 목욕탕 생각이 간절했다. 이심전심인지 가이드도 급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하여 온천 탐방을 추가시켰다.

 

 

 

▲ DBS호 동해항-사카이미나코항-블라디보스토크항을 연결하는 국제여객선입니다.

 동해-사카이미나코 항로의 거리는 450Km 정도인데, 그 거리를 DBS는 14시간을 달려갑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온천에서 따뜻하게 몸을 지지고 나오십시오!"

그렇게 하여 난 문제의 온천에 입장하게 된 것이다. 온천의 입장료는 500엔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7000원 정도였다. 최근의 환율은 100엔당 1400원 정도다. 입장료는 저렴했지만 수건은 공짜가 아니었다. 우리돈 2000원을 주고 수건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껏 수건을 쓸 수 있는 우리동네 찜질방을 생각하며, 나는 속으로 욕에 욕을 해댔다. 그리고는 그냥 맨 몸으로 들어갔다. 등반대회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손수건으로 대충 닦을 생각을 하면서.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눈꽃 산행을 해서 그랬는지 온천물은 무척 달았다. 몸에도 미각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있었으면 그렇게 감별을 했을 것이다. 밝고, 탁 트인 느낌의 온천 내부도 상당히 호감이 갔다. 뗏국물이 둥둥 떠 있는 후미진 동네 목욕탕 하고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그 곳은 노천 온천도 있었다. 노천온천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몸을 '지질'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얼굴에는 찬바람이 불어댔지만 목 아래쪽은 후끈했었다.

그렇게 온천에서 몸을 지지니 노곤해졌다. 난 잠시 눈을 감고 향후 일정들에 대해서 곱씹어 보고 있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남자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에 놀라, 난 눈을 떴다. 그때 꼬마 숙녀들이 정신없이 욕탕을 뛰어다니고 있는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 그리 신났는지 대여섯 살로 보이는 여아들이 '깔깔'거리며 온천 내부를 헤집고 다녔던 것이다. 그 뒤로는 아버지로 보이는 어떤 일본 남자가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어리둥절 해졌다.

'여기 남녀 혼탕인가? 아닌데… 분명 남녀 갈라서 들어갔는데….'

 

 

 

 

* DBS호의 항로:  우리나라 동해항을 기점으로 일본 돗도리현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정기적으로 운항합니다.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라서 그런지, 자국 중심으로 지도를 배치했군요.

 

 

 

 

 

* DBS호의 항로: 그래서 이렇게 사진을 돌려봤습니다. 사실 이게 더 눈에 잘 들어오지요. 이게 실제로 맞는 거지요!

 

 

 

 ▲ 다이센 등반대회 처음 진입했을 때는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산 중턱 부근에 오르자 저렇게 설국(雪國)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강설량도 상당했습니다. 한편 아이젠이나 스틱 같은 별다른 겨울산행 준비도 없이 눈꽃 산행을 했더니 곤혹스러웠더군요.

하산하다 엉덩방아도 찌었습니다. 산행할 때는 안전이 가장 우선이겠죠.

 

 

 

 

 

 

 

* 동강 단소길과 단풍: 동강산소길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형형색색의 단풍들

 

 

* 동강 산소길: 동강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참 좋은 도보여행 길이다.

 

 

---> 전편에 이어서

 

 

 

그렇게 산길을 오르다보니 옆에서 물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지곤 했다. 코너를 돌면 들렸다, 다시 길 안쪽으로 가면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그 소리는 그냥 시냇물 소리가 아니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아니라 세찬 물소리였다. 그렇다. 그 소리는 동강이 내뿜는 우렁찬 물소리였다. 그 우렁찬 강물 소리를 길벗 삼아 난 더욱더 걸음을 빨리 했다.


와!


내 입에서 외마디 탄성이 일어났다. 얼마나 멋있던지! 전망대에 바라본 어라연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산들을 이웃 삼아 동강이 휘돌아 나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만약 잣봉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런 멋진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조망과 옆에서 보는 광경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여름에 오지 않고 가을에 온 게 훨씬 더 나았던 것 같다. 전망대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시야를 좀 가렸기 때문이었다. 여름이었으면 잎이 무성하여 어라연 일대를 조망하는 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낙엽이 지는 계절에 왔더니 그런 제한에서 좀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 동강 산소길에서 바라본 어라연 일대

 

 

 

 

* 붉게 물든 동강산소길: 저렇게 예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일이다.

 

 

 

잣봉 정상에 올라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는 어라연으로 나아갔다. 빨리 가서 어라연을 더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분 정도의 산길을 내려갔더니 드디어 어라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강이 빚어 놓은 아름다운 절경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곳은 U자형을 그리며 휘돌아 나가는 동강과 단풍으로 물든 울창한 숲, 그리고 기암괴석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천혜의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강물에 비친 단풍나무와 기암괴석들의 모습이 마치 무릉도원을 연상케 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혼자서 호젓하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었다. 그렇다. 나 혼자 어라연을 ‘전세’냈던 것이다. 기암괴석에 박힌 형형색색의 단풍들을 보니 기쁨에 겨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런 식으로 단풍 구경을 하다니! 정말 나는 복 받은 놈이야!

 

다시 등산 원점으로 향해갈 때는 잣봉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강산소길을 걸었다. 동강산소길은 동강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었다. 그 오솔길 주변으로는 오색찬란한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런 길을 걷다보면 누구다 시인이 될 거 같다. 누구나 다 가객이 될 거 같다. 그렇듯 나도 시와 노래를 읇조리며 동강의 가을을 만끽했다.

 

 

 

 

 

 

 

 

* 이정표: 잣봉과 어라연을 탐방하는데는 약 3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필자는 사진도 찍고, 게으름 좀 부리고 했더니 5시간 이상 걸렸다. 

 

 

 

 

* 동강 산소길: 동강 산소길을 걸으면 잣봉을 거치지 않고 어라연에 닿을 수 있다. 동강 산소길은 평지와 같은 트래킹 코스다.

 한편 기왕하는 거 표지판을 좀 좋은 것으로 설치하면 어떨까? 이정표가 좀 없어 보인다.  

 

 

 

 

* 동강과 나룻배: 단풍잎 사이로 사공 없는 나룻배가 보인다.

 

 

 

* 동강과 나룻배: 저 나룻배로 래프팅을 할 수 있을까?

 

 

 

* 동강

 

 

 

 

* 동강산소길: 힘차게 흐르는 동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세상 시름도 사라질 것 같다.

 

 

 

 

 

 

 

 

 

 

 

 

 

 

 

* 어라연: 어라연은 동강 중에서도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숙부에 의해 사사된 단종이 태백산 산신령이

되기 위해 황쏘가리가 되어 동강의 상류로 올라가려다 여기 어라연 일대에서 잠시 쉬어 갔다는 전설이 내려져 온다.

단종의 넋도 쉬어갈 정도로 어라연의 풍광은 일품이다. 그래서 필자도 잠시 쉬었다.

 

 

 

* 잣봉 어라연 전망대: 잣봉 정상 부근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어라연.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강과 앞쪽에 있는 완택산을 둘러 볼 수 있다.

가을이라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져서 시야 확보가 더 잘 되는 듯싶다.

 

 

 

 

동강 어라연에서 가을을 만끽하다!

 


하필 왜 강원도 영월군 동강으로 단풍여행을 하러 가는가? 동강이 레프팅의 천국인 만큼 여름 시즌에 동강을 방문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가 한 순간에 물밀 듯 사라진 곳의 황량함을 잘 알면서.

 

사실 이번 동강 단풍여행은 그런 점을 역이용하여 진행됐다. 단풍여행 하면, 우리는 설악산과 내장산부터 떠올린다. 그렇듯 동강으로 단풍여행을 하러 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필자는 영월군 관계자에게 직접 몇 개의 사안에 대해 확인을 해봤다. 그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가을시즌에 영월군의 숙박업소 예약률이나 택시이용률은 현저히 격감한다는 한다.

 

동강이 빛나는 시간은 확실히 여름 시즌이다. 뗏목을 젖고, 펜션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하지만 여름시즌의 동강은 바캉스 철의 유명 해수욕장처럼 내게는 기피 대상으로 등재되어 있다. 왜? 나는 호젓한 산행, 정숙한 트래킹을 좋아하니까! 외롭고 힘들지만 진짜 여행은 단독여행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아웃도어맨이니까!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동강과 그 일대를 감싸고 있을 오색찬란한 단풍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나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행 버스에 올랐다. 주중 낮시간이라 그랬는지 고속도로는 아주 시원했고, 버스도 예상 시간보다 일찍 영월에 도착했다.

내가 동강 탐방의 목표로 삼은 곳은 영월읍에 위치한 어라연이다. 동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라는 어라연은 영월군 시내에서 직선거리로 15Km 이상 떨어져 있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야 손쉽게 접근을 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뚜벅이 여행가인 내게 그곳은 먼 곳이었다. 오직 시골버스만이 그 곳을 연결시켜 줄 수 있었다.

 

 

 

* 어라연: 기암괴석과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특히 바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붉은 빛을 띄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 잣봉의 소나무: 소나무가 신기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한 컷 담아 보았다.

 

 

 

 

뚜벅이 여행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골버스 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예전 섬진강 여행을 할 때였다. 그때도 난 시골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섬진강이 자아내는 멋진 풍광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운전을 하다가 주위 풍광에 넋을 잃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머니가 가벼운 만큼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렇게 저렴하게 여행을 해서 얻는 이득도 있으니, 우리 너무 상심하지 말자.

 

버스에서 내려 난 산행 준비를 했다. 높은 곳에서 어라연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잣봉이었기 때문이다. 잣봉은 해발 500미터 정도 되는 야트막한 산으로 정상부근에 어라연 전망대가 있다. 험준한 산은 아니므로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산행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동강의 어라연과 그 일대를 감싸고 있는 완택산 등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기에 후회 없는 산행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된다.

잣봉은 매력적인 단풍을 품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단풍은 영월읍내에 있는, 단종 묘역인 장릉 일대가 더 색깔을 잘 머금었다. 또한 등산적인 면에서도 잣봉은 그리 매력적인 산은 아니다. 오히려 620고지인 우리동네 뒤편의 관악산이 난 더 좋다.

 

하지만 분명 잣봉은 매력적인 산이었다. 그 앞쪽에 있는 완택산도 마찬가지였다. 왜? 동강을 품고 있으니까. 동강의 어라연 일대는 큰 계곡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높은 산들 사이로 강물이 흐르는 형상이다. 이런 모습은 두물머리 인근의 한강의 지세와 유사점이 있다. 한강 일대 산행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코스가 있는데 그곳은 바로 남양주시에 위치한 예봉산 코스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일대 산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예봉산에 올라서면 바로 앞쪽에 있는 검단산이 눈에 잡힐 듯 잘 보인다. 반대로 검단산에 올라서면 예봉산이 눈앞에 잡힐 듯 잘 보인다. 그렇게 멋진 산들 사이로 한강이 흐르니 그 지역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수도권 지역의 한강 일대와 강원도 영월의 동강을 일대일 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강도 한강의 일부분이다. 동강은 남한강에 합수되고, 남한강은 북한강과 합수되어 한강을 이루지 않던가. 상류 지역인 동강의 아름다움이 한강 하류지역까지 계속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동강 어라연의 십자동굴: 혹시 저기에 용왕님이 살고 계시는 건 아닐까? 어라연이 속한 영월읍 문산리에서는 용왕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어라연의 바위들: 그 모습들이 다 특이하여 나그네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어라연의 바위들: 맨 왼쪽 바위는 사자바위, 두번째는 치타 바위다. 그냥 필자 임의로 이름을 붙여 봤다.

 

 

 

 

 

 

* 동강의 억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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