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종교다원주의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했었는데 그때 큰 감흥을 느꼈었다. 사찰을 탐방하는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는 합장부터 하며 가람을 누볐다. 또한 간간이 교회도 갔고, 그 곳에서 이웃 사랑에 대해서 곱씹어 보기도 했다.

 

무속신앙도 빠질 수 없다. 친분이 있는 무속인이 있는데 작두를 아주 잘 탔다. 그 분 따라 작두잡이를 여러 번 해봤다. 작두잡이를 할 때는 절대 말을 해서는 안 되기에 입에다 ‘함’을 물린다. 작두굿은 유혈이 낭자하는 경우가 많기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작두굿은 종료가 되고 관객들은 한 명씩 차례로 공수를 받는다. 공수는 신이 무당의 입을 빌려 전하는 메시지이다.

그때서야 작두잡이들도 긴장감에서 해방이 되어 입에 문 함을 뱉어낸다. 침방울로 범벅이 된 함을 그냥 태울 것인가? 안 된다. 함을 열어봐야한다.

“앗싸 돈 들어있다! 작두잡이 값이다.”

* 인왕산 성곽길

● 바위산인 인왕산

이번에는 우리나라 무속 신앙의 메카 같은 곳을 향해 간다. 그곳은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다.

인왕산은 바위산이라 그런지 돌이 많기로 유명하다. 호랑이바위, 투구바위, 해골바위 등등... 독특한 형상을 한 바위들이 참 많다. 원래 인간은 자연이 빚어놓은 형상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이 바위에도 투영되니 거석숭배문화가 발생했다. 인왕산 선바위는 그런 애니미즘적인 거석숭배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선바위는 가로 7미터, 세로 10미터 정도로 인왕산의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가 큰 바위인데다 워낙 독특하게 생겨서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인왕산에 다른 바위들이 많은 터라 좀 자세히 봐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선바위를 비롯해 인왕산의 남서부 일대를 한 발짝 떨어서져 조망하고 싶다면 인왕산이 아닌 그 앞쪽에 있는 안산(鞍山)에 올라가보자. 안산은 무악재 고개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이다. 서대문 형무소가 위치해있을뿐더러 유명한 안산자락길이 있어 도보여행자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는 산이다. 그 무악재에는 2017년에 무악재하늘다리가 놓여서 두 산을 연결하고 있다.

안산은 ‘편안한 안(安)’이 아닌 ‘안장 안(鞍)’을 쓴다. 산이 말 안장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 안장 형상을 제대로 인지하려면 인왕산, 그 중에서도 선바위 인근에서 바라봐야 한다. 가까이에서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있고, 반대로 멀리서 봐야 그 전체 틀거리를 알 수 있는 게 있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닌가? 상황에 따라 줌인 / 줌아웃을 적절히 해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선바위

 

 

● 선바위와 국사당

선바위를 한자로 쓰면 '선암(禪岩)'으로 '스님바위'라는 뜻이 된다. 승복을 입은 선승이 참선을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선바위를 자세히 보면 단일 암석이 아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것을 두고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영혼이 나란히 깃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렇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보니 선바위는 예로부터 아이를 갖기 원하는 이들의 좋은 기도처였다고 한다. 쌍둥이 바위는 다산을 뜻하니까. 요즘같이 저출산 시대에는 ‘애국자 바위’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암석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을 두고 거석숭배문화라고 한다. 이 거석숭배문화는 우리 민간신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선바위는 이런 거석숭배문화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산악신앙이다.

우리 옛 선인들은 산을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였다. 물이 샘솟고, 과실과 약초들이 산재해 있으며, 연료인 나무들을 채취할 수 있으니 산은 인간에게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산을 마냥 좋은 것만 주는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사나운 맹수들이나 험준한 지형이 항상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인 산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드렸다. 산에 사는 신령, 즉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산악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런 산악신앙은 우리 무속신앙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바위 아래에는 국사당(國師堂)이라는 신당이 있다. 이 국사당은 원래 남산에 있던 신당이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395년(태조4), 이성계는 목멱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호국의 신으로 삼았다. 그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졌는데 이것을 국사당, 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 불렀다.

이 목멱신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국가의 공식행사로 제례를 올렸다. 유교중심주의를 표방하며 건국된 조선에서조차도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렇게 목멱대왕을 모셨던 국사당은 192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된다. 일제가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세웠는데 자기들의 신궁 위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것이다. 국사당이 선바위 부근으로 옮겨오게 된 건, 인왕산이 무학대사의 기도처였기 때문이었다. 국사당(國師堂)에서 '국사(國師)'는 무학대사를 뜻한다.

“제가 예전에 작두 좀 탔습니다.”

국사당 앞에는 작두를 타는 단이 있는데 그 앞에서 좀 있어 보이려고 저런 멘트를 했었다.

 

“정말요? 무섭지 않았어요?”

“작두날이 날카롭지 않아요? 피 날 거 같은데.”

“아니 제가 탔다는 게 아니라... 전 작두잡이를 하면서요... 작두잡이 하면 돈도 입에다 물려줘요. 공수도 받고, 돈도 받고...”

돌아오는 반응은 항상 작두의 날만큼 매서웠다. 그럼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궁색해져 돈 타령으로 급히 마무리 할 수밖에...

 

 

* 국사당: 국사당에는 당연히 주차장이 없다. 그래서 제사 물품을 지게로 나른다. 최첨단 시대이지만 한편으로는 올드 스타일도 존재하는 법이다.

 

● 무학대사와 정도전, 그리고 선바위

선바위는 한양도성에서 직선거리로 3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두냐 마냐를 두고 무학대사와 정도전 간에 격론이 오갔다. 불교세력을 대변했던 무학대사는 당연히 선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교세력을 대변했던 정도전은 이 스님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오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선바위가 들어오면 도성 안에 불교가 융성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첨예하게 오갔던 격론은 이성계에 의해 결론이 났다. 선바위가 도성 밖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불심이 깊은 이성계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유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에 무학대사는 200년 안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이고, 국운이 기울 것이라는 큰 저주(?)를 내뱉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이 선바위를 두고 오갔다던 ‘무학대사 VS 정도전’ 간의 갈등은 정사가 아닌 야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선바위를 두고 오갔던 두 사람의 갈등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적인 사료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일까? 선바위 논쟁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나왔던 건, 실제로 조선이 건국한 후 약 200년 뒤에 일어난 조일전쟁(임진왜란) 때문이었다. 당시의 민중들이 어떤 식으로든 전란에 대한 유학자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선바위와 무학대사를 무대로 등판시켰다는 것이다. 도성을 버리고 떠난 왕과 사대부들에 대한 원망을 선바위와 무학대사에 기대어 풀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무속의 메카답게 오늘도 선바위에는 많은 이들이 와서 기도를 올린다. 아이를 낳게 해 줄 수 있는 바위라 그런지 확실히 여성들이 더 많다. 신엄마, 신딸로 보이는 무속인 무리들도 자주 보인다. 심지어는 외국인 여성도 와서 기원을 드리더라. 확실히 선바위의 기도빨이 좋긴 좋나보다. 그 여성 외국인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 꽤 오랫동안 묵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선바위 앞에서 필자도 조심스럽게 합장을 하였다. 무슨 기원을 드렸을까? 로또대박? 역사트레킹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역사트레킹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으니까!

 

* 선바위와 한양도성: 선바위의 뒷모습. 선바위가 한양도성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 눈내린 인왕산 성곽

 


■ 선바위

1. 코스: 안산자락길 ▶ 무악재하늘다리 ▶ 선바위 ▶ 국사당

2. 가는법: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한 후 선바위로 바로 올라갈 수 있음. 하지만 안산자락길을 좀 걸은 후 무악재하늘다리를 통해 선바위를 탐방하는 코스를 추천함. 길도 예쁘고 완만해서 부담없이 걸을 수 있음.

3. 같이 가면 좋을 곳: 인왕산 수성동계곡

* 선바위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지난 9월 26일 목요일. 
영등포50 커뮤니티 목요반.

올 봄, 화사했던 개나리들의 물결로 찬사를 받았던 그 인왕산성곽길 역사트레킹!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날 다시 탐방했다. 

본 인왕산성곽길 역사트레킹은 인왕산을 탐방하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코스로 가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인왕산은 서촌, 즉 효자동 청운동 방면이 익숙하다. 실제로 인왕산하면 서촌 위에 수성동계곡에서 많은 이들이 인증샷을 찍는다. 

하지만 트레킹팀은 홍제동 방면 탐방로로 향했다. 홍제동쪽 탐방로는 좀 거친 면이 있고, 좀 덜 다듬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찾지를 않지만 난 홍제동 방면으로 인왕산을 오르는 코스가 참 좋다. 
인왕산의 숨겨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서 그런 것이다. 

독특한 형식의 마애불이 있는 환희사를 탐방한 후 트레킹팀은 인왕산의 기차바위를 향해 치고 올라갔다. 백련봉이라고 불리지만 역시 기차바위는 기차바위라고 불러야 제 맛인듯~











거기에 올라선 트레킹팀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서울 최고의 풍광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서울에도 이름난 전망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기차바위가 가장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건 바로 북한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은 북한산이 떡하니 배경이 되어주니 바로 서울 최고의 풍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서울둘레길 아차산 코스의 풍광과 경합을 버린다고 할 수도 있다. 

참가자 분 중에 사진을 잘 찍는 분이 계셨다. 나도 사진을 찍어줬는데... 날씨까지 받혀줘서 그런지 인생샷을 찍었다. 정말 귀한 사진을 공짜로 얻은 셈이다. 정말 감사했다. 

인왕산성곽길 역사트레킹은 올 때마다 좋은 감흥을 받았다. 올 때마다 즐거웠고, 올 때마다 행복했다. 
이런 인생샷을 서울에서도 찍을 수 있다는게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이아니겠는가! ^^;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인왕산선바위 역사트레킹을 실시합니다. 인왕산 선바위역사트레킹은 정말 인기가 많았던 코스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 십 번에 걸쳐 이 코스를 리딩했답니다. 그때마다 다 호평을 받았었고요.  

 

그런데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카페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왕산선바위 역사트레킹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하기는 했었지요. 하긴 카페가 개설된 지 아직 1년도 안 됐으니, 그런 것들을 시시콜콜하게 따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참! 이번 인왕산선바위 역사트레킹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10월 29일을 마지막으로 인왕산선바위 역사트레킹의 세부코스가 전면적으로 재조정 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독립문역에서 만나 이동을 하지만 다음부터는 경복궁역에서 만나 시작할 생각입니다. 


어떠세요? 인왕산선바위 역사트레킹에 오실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직 마음이 동하지 않으신 분들은 아래쪽의 사진들과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주세요. 그럼 분명 마음이 동하실 겁니다 ^^; 



http://cafe.naver.com/trekkingmaster/116  <- 클릭























4월 16일 일요일.


오랜만에 소셜다이닝 <집밥>에서 모객을 해서 역사트레킹을 떠났답니다.

<집밥>에는 청년들이 많이 방문하기에 저도 간만에 청년들과 함께 트레킹을 했답니다.

주로 장년층들과 함께 발걸음을 같이 해왔던 터라 이번 모임은 좀 설레기도 했었답니다.


아참!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트레킹을 했을 때는 청년층과 좀 했었지요.


어쨌든 저는 청년들이 더 많이 트레킹을 즐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힐링이 필요한 세대니까요. 학업에 쫓겨, 취업준비에 쫓겨... 그렇게

사회에 나와서는 업무에 쫓겨... 진짜 발걸음을 멈추고 한 박자 쉼표를 찍어야 할 세대가 바로 이 땅의 청년들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힐링에 목마른 청년들과 함께 인왕산선바위 역사트레킹을 행했답니다.

그날 인왕산은 봄꽃이 만발해 있더군요.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일상에 시달려서 그랬는지 참가자들 대다수가 그때까지 꽃구경다운 꽃구경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한테 꽃구경을 시켜줘서 너무 고맙다고 이야기한 참가자들도 있었답니다.


그러고보면 봄꽃 덕분에 인왕산선바위 역사트레킹이 확실히 풍성해진 느낌입니다.

하여간 참 좋은 트레킹이었습니다. 우리가 꽃길을 걸을 수 있었으니까요.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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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기도발' 잘 받는 바위가 있다고?


선바위와 국사당을 품고 있는 인왕산



17.01.26 10:29   최종 업데이트 17.01.26 12:10

곽동운(artpunk)             





    

        

 

▲ 선바위 인왕산 중턱에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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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거대한 암반이 노출된 인왕산은 그 자체가 절경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인왕산에 대한 애정 공세는 오늘날에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성곽길을 탐방하는 도보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왕산을 향하는 발걸음이 모두 성곽길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성곽길 트레킹이 아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인왕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속인일 수도 있고, 그냥 평범한 일반 시민일 수도 있다. 필자와 같이 역사 트레킹을 즐겨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 그들은 어디를 가서 기원을 드릴까. 대충 아무 곳이나 가서 돗자리 펴고 절을 올리는 것일까.





       

▲ 선바위 누군가 간절히 기원을 드리고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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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을 입은 바위?
 
그들이 기원을 드리는 곳은 인왕산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선바위라는 곳이다. 선바위는 높이 7미터, 가로 10미터 정도가 되는 바위로 산 중턱에 불쑥 솟아 있다. 그렇게 바위의 규모가 크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선바위를 한자로 쓰면 '선암(禪岩)'으로 '스님바위'라는 뜻이 된다. 승복을 입은 선승이 참선을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선바위를 자세히 보면 단일 암석이 아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것을 두고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영혼이 나란히 깃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렇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보니 선바위는 예로부터 아이를 갖기 원하는 이들의 좋은 기도처였다고 한다. 쌍둥이 바위는 다산을 뜻하니까.

거대한 암석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을 두고 거석숭배문화라고 한다. 이 거석숭배문화는 우리 민간신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선바위는 이런 거석숭배문화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산악신앙이다.

우리 옛 선인들은 산을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였다. 물이 샘솟고, 과실과 약초들이 산재해 있으며, 연료인 나무들을 채취할 수 있으니 산은 인간에게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산을 마냥 좋은 것만 주는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사나운 맹수들이나 험준한 지형이 항상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 국사당 인왕산 선바위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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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당과 산악신앙
 
그래서 그들은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인 산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드렸다. 산에 사는 신령, 즉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산악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런 산악신앙은 우리 무속신앙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바위 아래에는 국사당(國師堂)이라는 신당이 있다. 이 국사당은 원래 남산에 있던 신당이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395년(태조4), 이성계는 목멱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호국의 신으로 삼았다. 그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졌는데 이것을 국사당, 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 불렀다.

이 목멱신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국가의 공식행사로 제례를 올렸다. 유교중심주의를 표방하며 건국된 조선에서조차도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 국사당






그렇게 목멱대왕을 모셨던 국사당은 192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된다. 일제가 남산 중턱에 신사를 세웠는데 자기들의 신사 위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것이다. 국사당이 선바위 부근으로 옮겨오게 된 건, 인왕산이 무학대사의 기도처였기 때문이었다. 국사당(國師堂)에서 '국사(國師)'는 무학대사를 뜻한다.

그렇게 아래쪽에 국사당이 자리 잡게 되니 선바위는 거석숭배문화에다 산악신앙까지 더해지게 된다. 선바위에서 기원을 드리는 사람들이 국사당 앞에서도 두 손을 모으게 됐다는 것이다. 









        

▲ 선바위의 뒤태 선바위의 뒷모습.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사오정을 닮았다. 그래서 필자는 선바위를 사오정바위라고 부른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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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와 정도전, 선바위를 두고 맞서다
 
선바위는 한양도성에서 직선거리로 3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두냐 마냐를 두고 무학대사와 정도전 간에 격론이 오갔다. 불교세력을 대변했던 무학대사는 당연히 선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교세력을 대변했던 정도전은 이 스님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오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선바위가 들어오면 도성 안에 불교가 융성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첨예하게 오갔던 격론은 이성계에 의해 결론이 났다. 선바위가 도성 밖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불심이 깊은 이성계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유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인왕산은 그 자체가 매력적인 산이다. 또한 그 안에 선바위와 국사당 같은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잘 간직해온 산이다. 그렇게 매력적인 풍광과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산이 서울 중심가에 '떡'하고 위치해 있는 것이다.







        

▲ 선바위 선바위는 정도전을 위시한 유교세력들에 의해 한양도성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사진에서보듯 선바위는 한양도성과 무척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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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 인왕산에 직접 가서 선바위와 국사당을 탐방하고 오는 건 어떨까. 선바위가 기도발이 잘 받는 곳이라는데 그곳에서 기원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살짝 뒤로 돌아 선바위의 '뒤태'도 살펴보자. 앞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왔던 사오정과 비슷하게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선바위를 '사오정바위'라고 부른다. 

거기에 더해 유명한 수성동 계곡에도 가보자. 수성동계곡에서 바라보는 인왕산은 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거대한 암반이 노출된 모습을 하고 있다. 인왕산에 올라 '기도발'도 세워보고, 유명한 수성동 계곡도 탐방하고. 그 아래 서촌에 들러 배도 채우고! 참 서울을 즐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 것 같다.





여행정보

1. 교통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1번 출구 하차. 표지판을 따라 8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선바위에 도착함.


2. 추천이동경로: 선바위(국사당) ▶ 인왕산 성곽구간 ▶ 수성동계곡 ▶ 서촌
 






 



        

▲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성곽에 눈 내리는 날





1월 22일 토요일.


서울에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더군요. 온 세상이 다 하얗게 변했습니다.


서울성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인왕산 성곽길에 들어섰을 때, 이미 그곳은 설국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성곽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눈길을 걸었습니다. 성곽길 너머 희미하게 눈 쌓인 바위들이 보이더군요. 절경이었습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하얗게 눈 덮인 성곽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게 다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흰 눈으로 세상살이에 찌든 제 몸을 씻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눈 덮인 성곽길을 걷고 난 후 촛불 집회가 열리던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눈사람을 만났네요. 역시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눈사람이라 그런지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주장하고 있네요. 앞에다 촛불도 여러개 켜 놓고서.






















2016년은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국내외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그렇게 다이내믹했던 2016년이 지고 이제 대망의 2017년의 새해가 밝아오네요.

새해가 되면 많은 분들이 해돋이를 보러 갑니다. 또 누구는 산에 오르기도 하지요. 그곳에서 한 해를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깊게 새기시겠지요. 그렇게 다짐을 하고 오는 곳은 자신에게 특별한 곳일 겁니다.

저한테도 그런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바로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입니다.
승복을 입은 스님처럼 보인다고 하여 선바위로 이름 붙여진 큰 바위가 바로 그곳이지요.


누구는 이 선바위를 두고 무학대사 바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양도성을 쌓을 때 무학대사가 이 바위를 도성 안에 넣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선바위는 도성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유학을 중시했던 정도전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저는 이 바위를 사오정 바위라고 부릅니다. 바위의 뒤태를 담은 사진을 잘 보세요. 꼭 사오정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아니면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다의 뒷모습?

이름이 어떻든 간에 이 바위는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가장 잘 받는 곳 중에 한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두 손 모아 기원을 드립니다. 저도 선바위에서 삼 배를 올리곤 했습니다.

2017년 새해를 맞이해서 선바위에 가서 삼 배를 올릴 생각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번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두 손을 모을 생각이지요. 또 한 해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다부지게 할 생각입니다.

아참! 201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테니 그것에 대한 기원도 드릴 생각입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이 고생을 했으니, 다음 대통령은 정말 상식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선출되라고 국가적인 기원을 드릴 생각입니다.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여기에서는 <함께 걷는 서울역사트레킹>으로 이름을 바꿔서 올릴 생각입니다. 실제로 '서울트레킹'보다는 '서울역사트레킹'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함께 걷는 서울역사트레킹_ 다음스토리펀딩 1편

올 해는 소출이 좀 있었다!







 ▲ 남산 남산 서울성곽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는 서울. 그 서울이 싫어 누구는 '탈 서울'을 꿈꾼다. 귀농, 귀촌, 주말농장, 혹은 제주살이. 명칭만 다를 뿐 서울을 떠나는 이들의 이유는 비슷비슷할 것이다. 각박한 삶, 끊임없는 경쟁, 웃음기 잃은 얼굴들...




다시 서울로

역사트레킹 강사인 나도 '탈 서울'을 꿈꾸었다. 서울과는 더 이상 궁합이 맞지 않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백두대간인 삼봉산이 올려다 보이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이라는 곳에서 쓰고 있다. 거창 귀농학교라는 곳에서.

하지만 나는 다시 서울로 상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귀농하려다 실패해서 다시 리턴하는 것인가? 아니다. 현재 귀농학교에서 기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농사를 지을 실력이 못 된다. 귀농은 아무나 하는가!

귀농학교는 내게 집필 장소이자 생태교육의 장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우리 농촌과 우리 산하의 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위쪽으로는 덕유산, 아래쪽으로는 지리산이 가까운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마디로 이곳은 강원도를 빰치는 아웃도어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아웃도어 천국인 곳을 뒤로 하고 나는 왜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 하는가? 서울이 역사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도 뚜껑 없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각박함, 스트레스, 공해 등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단어들 너머로 숨어 있는 서울의 유적지와 그 유적지를 탐방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 내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 진관사: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의 대웅전

 





성곽길이 곡선을 그리며 나가는 인왕산, 계곡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북한산성, 낙조가 아름다운 안산의 봉수대... 남도가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다 해도,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서울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역사트레킹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서울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요!"


그런 말을 내게 하며 미소 짓던 얼굴들.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물과 간식거리를 건네주었던 따뜻한 마음들. 그런 고마운 미소와 마음들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리딩을 하고 싶어 했던 내 모습. 그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게 서울로 가는 티켓을 다시 끊게 했던 것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지만 결국은 또 사람이다. 역사트레킹을 하면서 망나니들만 만났다면 나는 진작 트레킹 리딩을 때려치웠을지 모른다. 돈도 안 되는 일에, 거기다 망나니들까지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 안산 봉수대 서대문 안산의 정상에 자리잡은 봉수대. 중국인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작은 서울과 큰 서울

서울은 작은 서울과 큰 서울로 나눌 수 있다. 작은 서울은 내사산(內四山)이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북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이 바로 그 내사산이다. 이 내사산들을 따라 한양도성이 축조됐던 것이다. 즉 작은 서울은 사대문 안쪽을 말한다.

이에 비해 큰 서울은 외사산(外四山) 안쪽을 뜻한다. 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덕양산(행주산성)이 외사산이다. 아시다시피 조선건국 초기의 서울은 도성 안쪽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은 계속 팽창해 나갔다. 그렇게 팽창해 나갔지만 외사산을 넘지는 못했다. 현재 서울의 행정구역은 외사산 안쪽에 위치해 있다. 아무리 도심지가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자연지형까지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작은 서울, 큰 서울은 내 트레킹의 단골 소재로 이용됐다. 이번 주는 작은 서울, 다음 주는 큰 서울. 그 다음 주는 좀 멀리가고. 계속 그런 식으로 트레킹을 해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볼 일 없는 나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고,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붙여줬다. 아이고, 낯 뜨거워! 그러고 보면 트레킹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창구였던 셈이다.





▲ 인왕산 서대문 안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산 능선을 타고 서울성곽이 구축되어 있다. 왼쪽 뒤편에 있는 산은 북한산이다.  







올해는 소출이 좀 있었다!

'덥다 덥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슬슬 외투를 챙겨 입어야 할 계절로 들어섰다. 그렇다. 이제는 가을로 진입했다. 야외활동하기에 제격인 계절로 들어선 것이다.

사실 이 글은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1편을 오마이뉴스에 싣기 위해 편집한 글이다.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실시하는 프로젝트로 9월 1일에 오픈하여 111일간 진행된다.

트레킹 하기 좋은 계절에 시작해서 올해가 끝나는 시기에 종료되는 펀딩이다. 정확히 12월 20일에 종료가 되는데 그때가 동지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연재가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지난 3월에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이라는 펀딩을 이미 실시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올해에만 펀딩을 두 개를 실시하는 것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난생 처음으로 펀딩을 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아봤고,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해서 '선생님' 소리도 들었다. 이 정도면 소출이 좀 나왔다고 할 만하다.

이제 나는 그 소출을 더 늘리기 위해 다시 서울로 복귀할 것이다. 그렇게 서울로 복귀를 하면 남도의 넉넉한 들녘이 내 시야에서 계속 아른거릴 것 같다. 내가 남도에서 서울성곽길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 서울트레킹 서울트레킹, 정확히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참가했던 분이다. 앞쪽에 있는 한옥 구조물은 창의문이다. 창의문은 사소문 중에 하나로 작년에 보물로 승격됐다.      






* 북악산 역사트레킹: 북악산 역사트레킹에 참여한 참가자들. 저런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이다.  

     









 
  

 

 













* 광화문: 해태상 앞에서 참가자 분들.






 

​   * 전단: 역사트레킹을 알리는 렛츠런문화공감센터의 전단 










7월 12일 화요일.


일기예보에는 분명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진다고 했지만... 날씨가 화창했습니다. 기상청 예보대로 움직였으면 그날 트레킹을 못할 뻔했지요.


이날 저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을 리딩했습니다. 제가 7월 달부터 렛츠런문화공감센터에서 역사트레킹을 런칭했는데 이날이 첫 시작일이었습니다.  사실은 일주일 전인 5일 날이 첫 개강일이었지만 그날 호우경보가 내려서 한 주 연기가  것이지요. 


어렵게 시작한 만큼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가 문화센터 강의는 처음이라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는 역사트레킹을 많이 리딩을 했지만요...


좀 덥기는 했지만 그래도 트레킹 하는데 양호한 날씨였습니다. 또한 인왕산 트레킹의 특징이 전반부만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숲길로 갑니다. 그래서 초반 30분 정도만 버티면 때양볕 걱정은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이날 참가를 해주신 분들은 트레킹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으셨습니다. 제가 바짝 긴장을 할 만큼...^^;


트레킹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서 제가 다 감사할 정도였습니다. 부족한 저의 설명도 경청을 해주셔서 감사했고요. 그래서인지 한 분의 낙오자도 없이 모든 분들이 다 완주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얼마나 저를 잘 챙겨주시는지... 먹을 것도 엄청 얻고 먹었습니다. 또 어떤 분께서는 제게 모자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날 제가 모자를 쓰고 가지 않았거든요. 제가 챙겨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제가 넉넉한 인심을 누리고 온 것이죠.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이 맛에 트레킹 리딩을 하는 거겠죠! 카아~!



이 포스팅은 간략한 스케치입니다.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정식 포스팅이 궁금하신다면


 

클릭 ☞ http://blog.naver.com/kwakmaster/220736534015


 









* 성곽길: 곡선미가 넘치는 서울성곽






* 수성동 계곡: 수성동 계곡에서. 뒤로 인왕산이 보인다.





​*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 뒤쪽에 있는 시인의 언덕에서.




* 창의문: 창의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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