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답사여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도 드물 것이다. 5천 년에 걸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문화재가 국토 곳곳에 산재해있으니 답사여행에 ‘딱’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인프라가 갖추어져있다는 말이다.

사실 광활한 영토보다는 적당히 규모 있는 영토가 답사여행하기에는 더 낫다. 영토가 넓으면 그만큼 교통이나 숙박, 편의시설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수 백 킬로미터를 가야 겨우 마을을 만날 수 있는 곳에서는 답사여행이 원활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높은 것도 답사여행이 활성화되는데 한 몫 했다. 역사와 문화에 목말라한 많은 소비자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답사여행을 흥하게 하는 긍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귀면: 오간수문에 조각되어 있다.

● 직접 가서 봐야지 그려볼 수 있다!

그럼 답사여행의 장점은 무엇일까? 텍스트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그 중 하나의 장점으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 안에서는 읽어낼 수 없는 지식들을 답사여행을 통해서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곽과 같은 축조물들은 해당 유적과 함께 주위 사방의 지형을 함께 둘러보아야 그 진면목을 명쾌하게 인지할 수 있다.

가파른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성곽이 어떤 방면의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탐방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적들의 예상 침입로를 짐작해보고, 해당 성곽이 그 침입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축조됐는지 나름대로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도 있다.

이런 과정들은 역사책이나 위성지도 같은 텍스트로는 구현할 수 없는 것들이다. 현장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해야 가능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답사여행은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격언을 가장 잘 실천하는 행위인 듯싶다.

이번에 소개할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은 그런 격언에 잘 어울리는 답사 트레킹이라고 할 만하다. 그 길을 따라가면 탕춘대성은 물론 고려시대 마애불을 볼 수 있다. 또한 병풍처럼 펼쳐진 북한산의 남사면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탕수육을 잘하는 중국집이 아닌, 방어용 산성이었던 탕춘대성! 그 길을 따라 걸어가 본다.





* 옥천암: 왼쪽 첫번째 건물이 백불이 모셔진 보도각이다. 홍제천이 바로 앞에 흐르고 있다.


●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그리고 탕춘대성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은 상명대 옆쪽에 자리잡은 홍지문(弘智門)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울에는 큰 성곽이 두 개가 있다. 일명 서울성곽이라고 불리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이 바로 그것이다. 한양도성은 북악산을 기점으로 동쪽의 낙산, 서쪽 인왕산, 남쪽 남산을 둘러쌓아 축조한 것이다. 이 네 개의 산은 내사산이라 불린다. 안쪽에 있는 네 개의 산이란 뜻이다. 전편에서도 계속 언급을 했었다.

한양도성이 도읍 방어의 최후의 보루였다면, 북한산성은 도성 방어의 전초기지라고 불릴 수 있다. 북한산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손꼽히는 요충지였다. 이 일대를 차지하기 위해 삼국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고려시대에도 여러차례 북한산에 있는 산성을 수리·축조했다. 그만큼 북한산 일대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방어 거점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시기에 축조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혹독하게 치룬 조선은 국방력 강화와 도성 방어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리하여 1704년(숙종 30)부터 1710년까지 도성 성곽을 재정비했다. 또한 다음해인 1711년에는 북한산성을 축조하게 됐다.

약 8km 달하는 북한산성은 기공에서 완공까지 6개월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규모에 비해 무척 빨리 축조된 것인데 청나라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공사를 서둘러 완료시켰다고 한다. 당시 조선은 병자호란 강화조약에 의해 성의 축조와 수축에 큰 제약을 받고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서울성곽은 내사산을 둘러 만든 성이다. 북한산성은 북한산에 있는 성이고. 그래서 두 성곽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두 성곽 사이가 좀 ‘붕 떠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보조성이 축성됐는데 그것이 바로 탕춘대성(湯春臺城)이다. 성이 세워진 세검정 부근에 탕춘대(湯春臺)가 있다하여 그렇게 명명된 것이다. 탕수육을 잘하는 중국집이 아니고...

도성과 북한산성을 약 4km에 걸쳐 연결한 탕춘대성도 1719년, 조선 숙종 시기에 만들어졌다. 인왕산에서 가파르게 내려온 성벽은 홍제천(사천)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다시 북한산 쪽으로 숨 가쁘게 비탈을 탄다. 그러다 북한산 서남쪽 비봉 인근에서 북한산성과 합류된다. 북한산 비봉은 진흥왕 순수비(555년 건립)가 있던 곳이다.






* 홍지문





● 상처(?)가 많은 홍지문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이었다. 성벽이 숨을 골랐던 자리에 홍지문이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홍지문 옆에는 홍제천이 흐를 수 있도록 수문 5개가 함께 세워져 있다.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이라고 불리는 이 수문은 홍예형(무지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지문(弘智門)은 상처(?)가 많은 문이다. 사람들이 자꾸 4대문 중 북쪽에 있는 문으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트레킹팀 멤버 중에도 그렇게 오해를 하신 분이 계셨다. 이번 편에서는 예전 트레킹팀과 동행한 이야기들이 종종 언급될 것이다. 대화체로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이 근처에 북대문이 있다고 하던데... 이게 그 북대문이에요? ”

“북대문은 숙정문이라고 따로 있습니다. 홍지문은 북대문이 아니에요.”

한 번 더 이야기하지만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이다. ‘북대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북쪽의 대문은 서울성곽 북악산 구간에 있는 숙정문(肅靖門)이다. 4대문에 붙여진 인의예지(仁義禮智) 중 북쪽에 해당되는 ‘智’가 홍지문(弘智門)에 붙여져 그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홍지문은 그런 명칭의 혼용 같은 내적상처 뿐 아니라 외적상처도 있다. 성곽 일부가 잘려나간 것이다. 홍지문 바로 옆으로 세검정로가 놓여 있는데 성곽 일부를 잘라서 도로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홍지문은 자동차들의 매연과 소음이 끊임없이 진동하는 곳이다. 문화재가 자동차들에 의해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

그보다 더 큰 상처도 있었다. 1921년에 있은 대홍수로 아주 싹 쓸려 내려간 것이다. 옆에 있는 오간대수문도 그때 싹 쓸려 내려갔다. 지금의 홍지문은 1977년에 복원한 것이다. 대홍수 이후 방치되어오다 약 반세기만에 복원한 것이다.

이렇게 상처 많은 홍지문이지만 그 곳 일대를 탐방하다보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이 어떻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가파른 경사에 축조된 성곽이 어떻게 방어기지 역할을 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평소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가을이 되면 성벽과 오색단풍이 어우러져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오간수문과 홍지문: 오간수문 아래로 통행이 가능하다.





● 컬러풀한 부처님? 컬러풀한 보도각 백불!

앞서도 언급했듯이 홍지문 아래로는 오간수문이 있다. 최근에 산책로가 정비되어 그 오간수문을 직접 통과해서 걸을 수 있다. 수문은 홍예문, 즉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홍예문의 맨 위쪽 부분을 홍예종석이라고 부르는데 홍지문 오간수문에는 귀면이 장식되어 있다.

“저 아치의 꼭대기에 있는 돌에 괴상하게 장식된 것이 있죠. 저걸 귀면이라고 하는데 저는 편의상 치우천왕이라고 부릅니다.”

“저걸 왜 장식했어요?”

“물을 타고 들어오는 악귀가 저 괴상한 귀면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라고 그렇게 한 거죠?”

“풋, 정말 악귀가 도망갈까요?”

“글쎄요. 도망은 안 가도 한참 여기 서 있을 거 같아요. 무서운 거 같기도 하고, 웃긴 거 같기도 해서요. 절에 있는 사천왕을 생각해 보세요. 무서운데 우스꽝스럽잖아요.”

트레킹팀은 건강과 답사를 중시하는 ‘복덩이들’이기에 치우천왕의 보호(?)를 받으며 오간수문을 통과했다. 이제부터는 홍제천을 따라 걷는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이동을 하니 보도각 백불(白佛)을 만날 수 있었다. 정확한 명칭이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인 보도각 백불은 지난 2014년 3월 11일에 보물 1820호로 승격했다.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백불이 2014년에 와서야 보물로 승격됐다는 건 좀 늦은 감이 있다. 그 전에는 서울시지정문화재였다. 옥천암은 백불 바로 옆에 위치한 사찰이고, 보도각은 백불을 보호하기 위해 올린 기와 건물을 말한다.

고려 전기시대에는 이스턴 석상을 빰칠 정도로 큼직큼직한 석불들이 많이 등장하는 시기다. 발걸음이 많이 오가는 곳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던 석불들은 지나가는 이들의 수호신이자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석불들은 돌장승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됐다. 고려 전기시대에 유명한 석불들은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안동 이천동 석불, 파주 쌍미륵 등이 있다.

길이가 약 5미터에 달하는 보도각 백불도 홍제천을 따라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던 이들의 이정표이자 수호신 역할을 했다. 또한 많은 이들의 기도처이기도 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부처님과 달리 ‘화이트컬러’를 한 부처님인데 당연히 많은 이들이 왔겠지!

“그런데 왜 백불이에요? 흰색이 아닌데요. 회색인데요.”

“그렇죠. 화이트가 아니죠. 호분이라는 안료를 바른 건데요. 조개껍질에다 흰 색 성분이 섞인 안료로 바위에 칠을 했습니다. 목걸이나 팔찌, 보관들은 적색이고요.”

보도각 백불은 정확히 부처님 상도 아니다. 머리에 쓴 보관이 눈에 띄는 관음보살상이다. 부처상이 남성적인 면으로 그려졌다면 보살상은 여성적인 면으로 그려진다. 보관, 목걸이, 팔찌들에 색깔이 입혀져서 그런지 백불은 다른 보살상들보다도 더 여성적으로 보인다.

흰색이든 회색이든 무슨 상관인가? 또 부처상이든 보살상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거기에 거대한 돌장승 같은 마애불이 있다는 것이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그네들은 잠시 시름을 달래며 기원을 드렸다는 점이다.

그렇게 컬러풀한 백불 아래 많은 이들이 합장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 중에는 태조 이성계도 있었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할 때쯤에 이곳에 와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트레킹팀도 각자 하나씩 기원을 올렸다. 무슨 기원을 드렸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뭘 비셨어요? 로또 대박?”

사실 로또 대박은 필자의 기원이었다. 1편 선바위에서도 똑같이 빌었던 기원이었다.





* 보도각 백불




● 방치되어 있는 탕춘대성 암문


이후 트레킹 팀은 탕춘대성 암문을 향해 이동했다. 암문은 말 그대로 적 몰래 은밀하게 성 밖으로 나가는 출구이다.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특공대를 파견하고, 식량을 조달하는 통로이다. 그래서 암문의 존재는 일급비밀이었다. 지도상에도 그려 넣지 않았다. 탕춘대성 암문은 한양도성 암문과 달리 좀 방치된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아직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탕춘대성 암문을 지난 후부터는 드문드문 북한산의 남쪽면이 나타난다. 북한산 남쪽면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보현봉이다. 북한산의 원래 이름은 삼각산인데 세 개의 봉우리가 삼각뿔 형태를 나타낸다고 해서 삼각산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그 세 개의 봉우리는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인데 북한산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해 비해 보현봉을 위시한 비봉 등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렇게 트레킹 팀은 병풍처럼 펼쳐진 북한산의 남쪽면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북한산 남쪽 봉우리들이 진짜 손에 잡힐 거 같아요. 정말 멋지네요!”




* 탕춘대성 암문





● 현장에 답이 있다!


홍지문과 오간수문, 보도각백불, 탕춘대성 암문 등등...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마당바위 전망대까지.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은 답사패키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탐방한다.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은 교통카드 비용만으로 고려와 조선시대의 유물을 만날 수 있는데다 숲길 탐방도 행할 수 있어 참 매력적이다. 전망은 또 어떤가. 트레킹이 마무리될 즈음에 방문하는 마당바위의 전망은 산과 도심지가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라 독특한 풍광을 선사한다. 마당바위에 앉아 포즈를 취하면 그것 자체가 인생샷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 사람들은 참 복 받은 사람들이다.


탕춘대성 역사트레킹 코스를 만들기 위해 필자는 그 인근을 수십 번씩 오갔다. 물론 사전답사는 숙명 같은 것이다. 10km 코스를 만들기 위해 100km 이상을 오가야 하는 것이 필자의 임무인 것이다. 갔던 길 또 가고, 또 갔다가 다시 고치고. 이런 식으로 수없이 발걸음을 하다 보니 결국 호평 받는 코스가 나오더라.


발바닥에 땀나도록 걸어 다녀야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런 말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탕춘대성 성벽





■ 탕춘대성 역사트레킹


1. 코스: 홍지문(오간수문) ▶ 보도각백불 ▶ 탕춘대성 암문 ▶ 마당바위 ▶ 실록어린이공원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쉬는 시간 포함)

4. In: 홍지문 / Out: 실록어린이공원 ☞ 3호선 경복궁역에서 상명대행 버스 탑승, 상명대 하차 / 실록어린이공원에서는 3호선 홍제역이 가까움.






* 탕춘대성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지난 일요일 오후 1시 30분경.


경복궁역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습니다.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을 하기 위해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카페 회원 분들이 모인 것이죠.


두 달 만에 다시 트레킹을 행하느라 제 마음도 좀 셀랬답니다. 여름 동안 답사는 많이 다녔어도 다시 프로그램을 행하려고 하니 좀 두근거렸답니다. 더군다나 이 날은 새로 제작한 우리 카페의 명찰과 깃발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날이었으니...ㅋ


경북궁역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몇 방울씩 빗방울이 내리더군요. 그래서 몇몇 분들은 우비를 준비하느라 급하게 다이소를 다녀오시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후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답니다. 다이소에 다녀오신 분들은 비상용 우비를 준비했다고 생각하심이...^^


트레킹팀의 첫 번째 탐방지는 탕춘대성과 홍지문이었습니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서로 연결하기 위한 익성이었습니다. 약 4km 정도 되는 성인데 도성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성이라고도 불렸답니다. 홍지문은 그 탕춘대성의 성문이었습니다. 성이 있으면 당연히 성문이 있어야 하잖아요. 성문이 없으면 그냥 성벽을 뛰어넘어야 했나... ㅋ


홍지문 옆으로는 사천이라고 불리는 홍제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탕춘대성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설명을 하지요.


"인왕산에서 내려온 성벽이 사천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북한산 줄기를 따라 급하게 올라갑니다."


홍지문 아래로는 오간수문이 있는데 트레킹팀은 오간수문 통과하여 홍제천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이동을 하니 보도각 백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도각 백불! 한마디로 흰 부처님을 만난 것입니다. 보도각 백불은 자연 암반에 부처님을 새긴 것으로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답니다. 다른 마애불과는 달리 보도각 백불은 조개껍질에다 흰 색 성분이 섞인 안료로 바위에 칠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보도각 백불은 '백불'이지만 살짝 회색빛을 띄고 있답니다. 


이 백불은 예로부터 유명한 기도처 중에 한 곳이었습니다. 태조 이성계도 이 곳에서 기원을 많이 드렸습니다. 우리 트레킹팀도 각자 기원을 올렸습니다. 무슨 기원을 올렸을까요? 좋은 기원? 로또 대박? ㅋㅋㅋ


이후 트레킹팀은 탕춘대성 암문을 탐방했습니다. 탕춘대성 암문은 한양도성 암문과 달리 좀 폐허로 방치된 느낌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직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트레킹은 계속됐습니다. 산책로가 좋다고 칭찬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리딩자로서 기분이 좋더군요...ㅋ


트레킹팀은 장군바위(?)에 올라서서 인생사진(?)들을 찍었습니다. 풍광이 너무 좋아 셔터를 누르면 바로 명품사진이 되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있겠습니까! 사진이 다 말을 해주는데!


그렇게 하여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은 무사히 잘 종료가 됐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트레킹을 행한 것이 좋았고, 맛나게 저녁 식사를 한 것도 좋았습니다. 커피도 맛있었고요. 


이 맛에 트레킹 하는 것 같습니다~! 





일시: 2017년 8월 27일 

참가자: 우보님, 도토리님, 봄맞이님, 심스틸러님, 곽작가

이동거리: 약 8km

이동시간: 약 4시간






























안녕하세요?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시원한 수박 한 덩이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

더워도 트레킹은 계속됩니다. 덥다고 트레킹을 안 할 수가 있나요. 산이 있고, 숲이 있는데... 더군다나 여름은 치노치드가 다른 계절보다도 훨씬 더 많이 생산되는 시기이니까요. 그래서 여름숲이 좋은 거지요.

태양이 작렬하는 계절인 만큼 숲을 방패 삼아 움직인다면 여름 트레킹도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떠납니다. 어디로?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을 하러요. 탕춘대성과 보도각 백불, 그리고 울창한 숲길까지... 역사와 숲길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환영합니다!!!












● 탕춘대성 역사트레킹

 
조선 숙종 시기에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길이 4km의 성이 만들어집니다이 성을 두고 탕춘대성(湯春大城)이라고 불렀습니다성 이름이 중국집 이름 같나요인근에 탕춘대라는 돈대가 있다 해서 탕춘대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중국집 이름이 아니라...
 
성이 들어섰으니 성문도 있어야 했습니다그래서 생긴 것이 홍지문입니다인왕산 줄기를 타고 내려온 탕춘대성의 성벽은 홍제천에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으로 그 형태를 달리합니다홍제천을 건넌(?) 이후에는 가파른 비탈을 타고 북한산 방면으로 향합니다.

홍지문에 서면 지형을 따라 오르는 성곽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답니다홍지문 탐방을 마친 트레킹팀은 옥천암에 있는 백색의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백색의 부처님은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백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합니다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합장을 하게 만듭니다슬쩍 시주함에 시줏돈을 넣게까지 합니다

처음 보는 백불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기도를 하실 생각입니까사업성공로또대박저는 역사트레킹에 참가하시는 모든 분들의 안전과 재미유익함을 위해 기도를 할 생각입니다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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