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기의 보물탑: 왼쪽편이 하리 3층석탑. 오른쪽편이 창리 3층석탑.

 

 

 

 

 

 

 

 

2021년 5월 28일 금요일

 

이날은 경기도 여주 영월루 일대를 탐방했다. 여주는 남한강이 유유히 중심부를 흐르고 있다. 그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세종대왕이 잠들어계신 영릉과 신륵사가 자리잡고 있다. 그 두 곳은 약 6km 정도 떨어져있는데 여주시에서 조성한 도보여행길인 여강길을 따라 이동할 수 있다.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은 시야는 트여서 좋은데 좀 밋밋한 감이 있다. 서울에서 한강을 걸어보시라. 시간이 흐를수록 좀 따분해질 것이다. 6km면 짧은 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중간에 좀 시야 전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보인다.

 

그런 역할을 영월루와 영월공원이 해준다. 영월공원은 여주대교 옆 언덕배기에 조성을 했는데 그 정상부에 영월루가 자리잡고 있다. 멀리서보면 언덕배기에 누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 영월루 위에 올라서면 높은 위치에서 남한강 일대를 조망할 수 있게된다. 강 건너편에 있는 신륵사 관광지 일대도 한 눈에 들어온다. 강변길에서 보는 풍광과는 또다른 이미지가 펼쳐지는 것이다.

 

영월공원에 들어서면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린 벽화가 눈길을 끈다. 그런데 이 벽화는 도자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계도자기엑스포2001>을 맞이하여 세종대왕의 업적을 도자기 벽화로 그려낸 것이다. 상당히 이색적인 설치물이었다. 참고로 <세계도자기엑스포2001>은 2001년도에 경기도 여주, 이천, 광주에서 개최되었다. 3곳 다 도자기와 관련이 많은 도시들이다.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둘러본 후 영월루에 올라섰다. 원래 영월루는 여주군청의 정문이었다. 1925년에 군청 건물을 새로지을 때 당시 군수였던 신현태가 현재의 자리로 이건을 했다. 이건이라고는 하지만 새로 지을 정도로 손을 많이봤다고 한다. 현재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3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누각이 군청의 정문이 될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만 궁금하나...ㅋ

 

 

 

 

 

 

 

 

* 영월루

 

 

 

 

 

 

 

 

 

 

 

 

* 남한강: 마암 일대에서 바라본 모습. 강 건너편이 신륵사 관광지구다.

 

 

 

 

 

 

 

격이 높은 사찰같은 곳을 생각해보자. 본당이 있는 중심지 앞에 누각이 있을 것이다. 이런 누각은 통상 1층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2층은 법회 장소로 쓰인다. 이런 본당앞 누각을 보통 보제루라고 부른다. 하지만 꼭 그 이름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누각은 안양루다. 서울의 명찰 진관사에서는 홍제루라고 부른다.

 

이렇게 누각 형식으로 문을 낸 것을 두고 누문이라고 칭한다. 같은 누문이지만 사찰과 관청은 좀 달랐다. 관청은 문짝이 달려있어 시간이 되면 문을 닫았고, 그 앞에 횃불을 밝히고 포졸들이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하지만 사찰은 부처님의 가피가 만방에 펼쳐지듯이 문짝이 달리지 않고 항상 오픈되어 있다.

 

영월루가 자리잡고 있는 언덕배기 아래에는 '마암'이라는 큰 바위가 있다. 마암의 진면목을 관찰하려면 강 건너편이나 여주대교 중간쯤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잔잔한 강물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마암은 풍류객들의 발걸음을 모으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이다.

 

영월루를 내려 오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기의 탑을 볼 수 있다. 두 기가 나란히 있어 얼핏보면 쌍둥이탑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보면 서로 다른 외형을 가진 탑임을 알 수 있다. 뭐 눈썰미가 없는 분이면 좀 시간이 걸리려나...ㅋ

 

먼저 하리 삼층석탑을 살펴보자. 하리 삼층석탑은 보물 제92호로 지정됐는데 1958년 11월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높이가 3.7미터에 달하는 하리 삼층석탑은 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계승한 탑으로 고려 후기에 만들어졌다. 1층 탑신부가 날씬하고 길죽한 것이 특징인데 아쉽게도 상륜부는 완전히 멸실된 상태다.

 

하리 삼층석탑을 조사하다가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기단부를 두고 책마다 다른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두산백과>는 기단을 2층 기단으로 설명하고 있고, <답사여행의 길잡이>라는 책에서는 1층 기단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하리 삼층석탑은 2층기단이 될 수 없어보인다. 단층 기단의 석탑인 것이다. 석탑 앞에 설치된 설명문에도 1층 기단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그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이 잘못 기술된 것인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여간 역사트레킹을 하다보면 이렇게 어긋난 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생긴다.

 

바로 옆에 있는 창리 삼층석탑을 살펴보자. 창리 삼층석탑도 하리 삼층석탑과 함께 1958년 11월에 이곳으로 이전된다. 보물 제91호로 지정되어 있는 창리 삼층석탑이야말로 기단부가 2층으로 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이 탑은 신라 석탑 양식에서 벗어나 좀 더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1층 기단을 굄돌이 받치고 있는데 이 굄돌들은 단일 석재가 아니라 여러개의 돌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얼핏보면 그 부분이 금이 간 것처럼 보인다. 하리 삼층석탑처럼 창리 삼층석탑도 상륜부가 다 멸실됐다. 아쉽다.

 

두 개의 탑까지 봤으면 영월공원 탐방이 종료된다. 영월루에서 시원한 남한강변도 보고, 보물로 지정된 두 개의 탑도 볼 수 있는 영월공원... 여주를 방문하실 기회가 있으시면 꼭 한 번 가보셨으면 좋겠다.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 입장료도 없다...ㅋ

 

 

 

 

 

 

* 두 개의 탑

 

 

 

 

 

 

 

* 남한강

 

 

 

 

 

 

 

 

 

 

 

 

* 신륵사 삼층석탑과 강월헌

 

 

 

 

 

 

 

 

2021년 3월 9일 화요일.

 

세종대왕릉 탐방 후기에 이어서 신륵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둘 다 같은 날 탐방을 했는데 후기는 따로 나눠서 쓴다. 보시다시피 여행을 다녀온지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 이제서야 쓴다. 이거 이렇게 게으름을 부려도 되는거야?^^

 

여주 여행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종대왕릉과 신륵사는 패키지로 묶인다. 그만큼 세종대왕릉과 신륵사는 여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탐방지인 것이다. 신륵사는 세종대왕릉과 직선거리로 약 6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여강길이라는 도보여행길을 이용하여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여강길은 여주시에서 만든 트레킹 코스로 여강은 남한강의 다른 이름이다.

 

신륵사(神勒寺)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그 연혁이 확실하지가 않아 좀 더 고증이 필요하다고 한다. 남한강변의 야트마한 언덕인 봉미산에 자리잡고 있는 신륵사는 강변 트레킹과 묶어서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친 수변적이다. 유명한 삼층석탑과 그 옆에 있는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모습은 정말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할까. 강월헌은 나옹선사의 호를 따서 만든 정자다.

 

신륵사는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서 탐방했던 사찰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큰 사찰이다. 대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입장료도 받는다. 3000원. 공짜로 사찰에 드나들다 돈을 내려니까 좀 머뭇거렸다. 왕릉 요금처럼 1000원으로 해주지. 더군다나 세종대왕릉은 500원이었는데...

 

 

 

 

 

 

 

 

* 신륵사 다층석탑: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신륵사가 큰 사찰이 된 건 고려 말에 활약했던 나옹선사가 이 신륵사에서 열반에 드셨기 때문이다. 나옹선사는 당대의 고승으로 지금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의 지주로 계셨다. 회암사에 계셨던 분이 왜 신륵사에서 숨을 거두셨을까? 당시 고려는 외적의 침략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비해 나옹선사의 명성 때문인지 회암사는 백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고려 조정은 부담을 느꼈다. 회암사가 도읍지인 개성과 가까운 양주땅에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이에 고려 조정은 나옹선사를 멀리 밀양에 있는 사찰로 보내기로 한다. 왕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나옹선사는 짐을 꾸려 길을 나서야했다. 고려시대에도 남한강은 조운로로써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그래서 나옹선사도 그 남한강 수계를 따라 충주로 간 후 영남지역으로 넘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이미 회암사를 나올 때부터 나옹선사는 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병이 악화되어 신륵사에서 열반을 들었다. 강월루 옆에 있는 삼층석탑은 나옹선사의 다비식을 했던 곳에 세워졌다. 이 때문인지 나옹선사의 부도도는 신륵사에도 있고, 회암사지에도 있다. 참고로 회암사는 폐사됐기에 회암사지라는 명칭을 썼다.

 

조선이 건국됐고, 이후 세종대왕릉이 여주에 들어서면서 신륵사는 세종대왕릉(영릉)의 원찰이 된다. 왕실과 연관된 사찰이 되어 그런지 억불 정책하에서도 신륵사는 가람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사찰답게 신륵사는 아주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본당 앞에 있는 대리석으로 만든 다층석탑(보물225호), 남한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벽돌로 만든 다층전탑(보물226호), 나옹선사 부도탑인 보제존자석종(보물228호) 등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마치 문화재 집산지 같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신륵사의 가장 큰 매력은 남한강이다. 경내에 앉아 남한강을 굽어보면 세상의 시름이 다 날아갈 거 같다. 사찰이 이렇게 수변과 잘 어울릴지 그 누구도 잘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사찰은 산과 강, 그 어떤 자연하고도 서로 잘 어우러진다.

 

 

 

 

 

 

 

* 극락보전: 신륵사의 본당은 극락보전이다. 대웅전이 아니다.

 

 

 

 

 

 

 

 

* 구룡루: 구룡루에서 바라본 극락보전

 

 

 

 

 

 

 

 

 

* 보제존자석종: 나옹선사의 부도탑이다. 오른쪽으로는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이 보인다. 이 아름다운 석등은 보물23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신륵사 다층전탑: 전탑은 벽돌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신륵사 다층전탑은 그 형상이 온전히 남은 전탑이기에 무척이나 소중한 문화재이다.

 

 

 

 

 

 

 

 

* 신륵사 삼층석탑과 다층전탑: 한 플레임으로 찍으려고 아주 용을 썼다. 너럭바위에 누워서 찍었는디... 누가 그 모습을 봤으면 바위에서 뒹굴거린다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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