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라클레스기둥: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다. 왼쪽에 바다 건너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지브롤터다.

 

 

 

<재미난 스페인 1편> 세우타

매운맛일줄 알았는데 섞인맛이었네!

 

'세우타? 새우탕이 아니고?'

처음 세우타(Ceuta)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평소에 워낙 새우탕 사발면을 좋아해서 저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입맛을 다시며 스페인이 포함된 이베리아 반도 지도를 찾아보았다. 마드리드, 바로셀로나, 세비야, 빌바오 등등...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팀들의 연고지 위주로 찾아보았다. 없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서 찾아보았다. 팜플로냐, 부르고스, 레온 등등... 역시 없다. 옆나라 포르투갈까지 샅샅이 찾아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니가 거기 왜 있어. 그러니까 찾기가 힘들지!'

세우타는 이베리아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히는 모로코 땅 한 켠에 섬이 아닌 섬처럼 고립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영토이지만 다른나라 안에 있는 땅을 두고 비지(飛地)라고 부른다. 한자 '날비(飛)'가 쓰인 것처럼 본국과는 떨어져 있는 영토다. 참고로 비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다.

세우타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롤터(Gibraltar)해협에 위치해 있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쪽으로는 영국령 지브롤터가 있고, 북아프리카쪽으로는 세우타가 있는 것이다. 지브롤터 해협은 좁은 곳은 폭이 20km가 안 될 정도다. 대서양과 지중해가 교차하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손에 닿을 듯 바라다보이니 지브롤터해협 일대가 얼마나 중요하겠나! 지정학적인 눈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딱보면 알 정도일 거다.

그런 세우타에 항구를 건설한 이들은 카르타고인들이었다. 카르타고인들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데 그게 바로 포에니 전쟁이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그 유명한 한니발이 활약한다. 한니발이 기세를 올렸지만 카르타고는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다. 세우타도 로마의 세력권 안에 놓이게 된다.

대륙과 대륙이 만나는 문명의 교차점이어서 그랬나? 세우타는 반달족들이 쳐들어 오기도 했고, 비잔틴제국이 점령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가 이슬람화가 된 이후에는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더불어 711년, 이베리아반도에 이슬람 무어인들이 침공하여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때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그리스도교 왕국들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고 불리는 국토회복운동에 나선다.

15세기가 됐고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먼저 돛을 높이 달고 대서양으로 향한 건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이었다. 당시 스페인 남부에는 이슬람 무어인들의 나라가 계속해서 항전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그라나다 왕국이 바로 그것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으로 향한 때가 1492년이었다. 이 해에 그라나다 왕국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레콩키스타도 종료된다.

1415년 세우타는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된다. 세우타 공략에는 항해왕 엔히크(Henrique)가 앞장섰는데 그는 포르투갈왕 주앙 1세의 셋째 아들이었다. 포르투갈은 세우타를 통해 북아프리카에서의 세력 확장에 나서게됐다. 대항해시대의 서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참고로 엔히크는 '항해왕'이었지만 진짜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다음 왕위는 첫째 아들인 두아르테가 이어받았다.

 

 

 

* Royal Walls: 직역하면 '왕립장벽'이 될 것이다. 애초 이 성벽은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스페인이 세우타를 점령했고, 왕립장벽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계속 보강되었다. 성체에 여기저기 탄환의 흔적들이 있다. 보기만해도 참 치열하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카르타고는 왜 나왔고, 레콩키스타는 또 무엇인가? 더군다나 스페인 땅이라면서 포르투갈 항해왕은 왜 또 불쑥나왔는가?

익숙지 않은 지명에 낯선 이름까지... 세계사 공부를 제대로 안 했던 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다. 그래도 세우타로 가는 여객선은 지브롤터 해협을 시원스럽게 내달리고 있었다. 객실밖으로 나갔더니 그 유명한 지브롤터 암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1578년이었다.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1세(Sebastião I)가 모로코인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만다. 당시 세바스티앙 1세의 나이가 24살이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아 왕비도 없었고, 후사도 없었다.

1580년, 이런 권력 공백을 틈타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을 병합하기에 이른다. 이후로 세우타는 스페인의 통치하에 놓인다. 60년간의 합병을 뒤로 하고, 1640년에 포르투갈이 스페인에서 독립했을 때도 세우타는 계속 스페인령으로 남게 된다.

미끄러지듯 여객선이 세우타항에 들어선다. 그런데 방파제 끝단 부분을 보니 기둥 두 개를 들고 서있는 헤라클레스(Heracles)상이 보였다. 좀 작았다. 이게 전부인가? 육중한 몸매에 천하장사의 기운을 가진 헤라클레스의 동상을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알고보니 세우타의 중심지역에 큰 동상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국기를 보면 기둥 두 개가 들어가있는데 그게 바로 헤라클레스가 들고 서 있는 기둥들이다.

세우타말고도 모로코땅에는 멜리야(Melilla)라는 스페인의 비지가 하나 더 있다. 멜리야도 지정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곳에 위치해있다. 스페인이 영국으로부터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하듯이 모로코는 스페인에게 세우타와 멜리야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까지 세우타에 대해서 이야기해봤다. 처음에는 새우탕면처럼 얼큰한 맛을 기대했는데 온갖 재료가 뒤섞인 잡탕면을 먹은 느낌이다. 대륙이 교차하고 해양이 연결된 문명의 십자로여서 그런 풍미가 발현됐을 것이다. 매운맛이든 섞인맛이든 맛나게 즐겨보자 배고프면 여행도 잘 안되는 법이니까!

 

 

 

 

* 세우타 헤라클레스 기둥: 이게 진짜 헤라클레스 기둥 조형물이다.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 이베리아반도 지도: 글씨를 제외하고 직접 손으로 그렸다.

 

 

 

 

 

 

 

 

 

 

*로마극장과 신전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로마원형경기장

 

 

 

 

* 2024년 1월 19일 금요일: 37차 / 비

- 아침부터 또 비가 쏟아졌다. 메리다에서는 계속 비를 만났다. 이날은 메리다 로마극장(Teatro Romana de Merida)을 방문했다. 메리다 로마극장은 메리다 탐방의 클라이막스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입장료가 13유로나 됐다. 통합권이 17유로였으니 그 비중을 가늠할 수 있었다.

-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거추장스러운 우비를 쓰고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방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렸다. 빗물 때문에 렌즈 촛점이 잘 안 잡혀 손가락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닦고 또 닦았다. 비가 와서 사진 찍는데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그림자 없이 나름 잘 찍은 거 같다.

- 메리다 로마극장은 신전과 극장이 한 공간에 있었다. 극장도 탐방하고, 신전도 탐방하고...

- 세차게 내리던 비가 탐방이 끝나니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딱 그쳤다! 이거 참 웃긴다. 메리다성 앞에 있는 로마교를 통해 다시 메리다 터미널로 갔다. 이제 마드리드로 갈 시간이다. 약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는데 요금은 약 33유로였다. 좀 비싼 편이다.

- 메리다 탐방을 끝으로 공식적인 스페인 도시 투어는 종료됐다. 나름 많이 잘 다닌 거 같다. 이제 비행기를 타도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떠날 시간이다. 여행이 끝나가니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느낌이다. 숙제가 있으면 해내면 그만이지!

 

 

 

* 로마신전

 

 

 

 

* 2024년 1월 20일 토요일: 38차 / 마드리드: 맑음, 이스탄불: 비

- 마드리드 호스텔에서 일찍 체크아웃을 했다. 오전 11시 50분 비행기라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조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15유로로 알아들었다. 알고보니 5.50유로였다. 스태프의 발음이 안 좋은 거야 아니면 내가 잘못 들은거야?

- 이런 실수는 공항에서도 또 했다. 마드리드 공항은 공항이용료 3유로를 따로 내야 한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다 삽입을 해서 한참을 헤맸다. 뒤에서 줄 선 사람이 비웃지 않았을까?

- 11시 50분경에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떠나는 터키항공을 탔다. 비행시간은 4시간 정도였지만 시차 -1시간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약 3시간 정도였다. 저가항공이었으면 수하물도 추가해야 했고, 기내식도 안 줬을텐데... 대형 항공사라 그런지 수하물 무료에 기내식도 먹을만 했다.

- 이스탄불 신공항에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근래에 개장한 이스탄불 신공항은 세계 최대규모의 공항이라고 불린다. 그런 이름에 걸맞게 이스탄불 신공항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 터키의 통화인 리라를 ATM기에서 뽑았다. 1,000리라(TL)를 뽑는데 수수료가 8%다. 뭐 이러냐! 170리라를 주고 공항버스를 탔다. 구도심 인근인 Aksaray 지하철역까지 운행하는 버스였다. 거대한 신공항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신공항-구도심간의 거리차가 무려 40km 정도다. 전에는 10~20km 정도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인천공항-서울간의 거리는 거의 60km에 달하니 이스탄불 신공항에 이긴 것인가?

- Aksaray역에 내리니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그냥 인근에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 Best house hotel이었다. 별 3개짜리 3성급 호텔이었다. 그래 호텔에도 묵어보고 그래야지! 생각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조식 포함 28유로. 이렇게 이스탄불에서의 일정이 시작됐다.

 

 

 

 

* 로마신전: 오른쪽부터 황제 아우구스투스, 군인 드루소, 황제 티베리우스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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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라그로스수도교(Acueducto de los Milagros): 유명한 세고비아 수도교와는 달리 많이 파괴가 됐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메리다 로마교(Puente Romano de Merida): 유유히 흐르는 과디아나강 위에 놓여 있다. 과디아나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하류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 2024년 1월 17일 수요일: 35일차 / 소나기

- 몸이 슬슬 회복되는 느낌이다. 역시 여행하면서 얻는 병은 쉬면 거의 다 낫더라. 역시 여행하면서 얻는 병은 쉬면 거의 다 낫더라. 이제 세비야를 뒤로 하고 메리다(Merida)로 떠날 시간이다. 메리다는 세비야에서 북쪽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 세비야에서 메리다로 가려면 아르마스(estacion de autobuses plaza de armas) 터미널을 이용해야 한다. 예전 리스본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내린 그 터미널이다. 터미널을 가기 전에 황금의 탑(Torre del oro)을 보러 갔다. 1220년대에 만들어진 탑으로 세비야 구도심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돌풍을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진 것이다. 겨울비가 세차게 내렸다. 정말 짧은 순간에 비바람이 몰아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결국 비를 쫄딱 다 맞았다. 겉옷은 그렇다쳐도 배낭까지 젖으니 당혹할 수밖에... 황금의 탑 인근에 있는 바르(bar)로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온 몸이 다 젖은 상태였지만...ㅋ

- 터미널에 가니 따로 메리다로 가는 티켓을 파는 곳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안내실에 물어보니 메리다행 버스는 기사한테 직접 현금을 주고 타라고 했다. 메리다로 가는 버스편도 많지 않고 티켓 창구도 따로 없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세비야 - 메리다행은 인기가 없나 보더라.

- 오후 1시 30분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는 구글 지도상에는 표시되지 않는 버스였다. 구글에서는 알사버스 위주로 표시됐다.

- 메리다 터미널에 내리니 큰 다리가 보였다. 과디아나강(Rio Guadiana)에 놓인 루시타니아(Lusitania Bridge)라는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 구도심쪽으로 향했는데 남쪽을 보니 메리다 로마교(Puente Romano de Merida)가 보이는 것이다. 그 로마교가 끝나는 지점에는 메리다성(Alcazaba de Merida)도 보였다. 감기는 낫지 않고 배낭은 젖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답사를 해야 할 때는 답사를 해야 한다!

- 열심히 메리다 로마교 일대를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왕복으로 로마교를 걸었다. 생각보다 로마교는 꽤 길었다. 과디아나강의 폭도 넓었다. 그 옛날에 이렇게 넓은 강물에 돌다리를 건설하다니... 로마인들도 참 대단했다!

- 메리다에는 도미토리 호스텔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일반 호스텔로 예약을 했다. 호스텔 이름은 La Flor de Al-Andalus였다. 메리다는 안달루시아 지역이 아닌 중부지역으로 분류되는데 , 왜 안달루시아가 들어가지?

- 원래는 스페인 탐방을 마치면 그리스-튀르키예를 여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 여건상 그리스를 건너 뛰고 터키로 가기로 했다. 막판에 감기몸살만 아니였다면 그리스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런면에서 참 아쉬웠다. 하지만 어차피 이것도 여행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 메리다성: 성 안에 물 저장소가 있다. 처음에는 무슨 목욕탕인 줄 알았다.

 

 

 

* 2024년 1월 18일 목요일: 36일차 / 소나기

-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이슬비 정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래도 전날의 기억이 있어 별로 맞고 싶지 않았다.

- 중심가에 있는 바르에 가서 아침을 먹는데 가격이 정말 저렴했다. 바게트샌드위치와 커피를 함께 주문해서 먹었는데 겨우 2.4유로였다. 다른 곳 같으면 4~5유로가 나왔을 것이다. 이때 쓰이는 스페인어가 있다. 바라타(barata)이다. 저렴하다는 뜻이다. 참고로 스페인식 샌드위치는 보카디요(bacadillo)라고 부른다. 바게트빵에 토마토, 치즈, 베이컨 등을 넣은 후에 먹는 것이다. 가벼운 식사로 딱이다.

- 어제 누볐던 과디아나강 주변을 다시 거닐었다. 밀라그로스수도교(Acueducto de los Milagros)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밀라그로스 수도교도 메리다성처럼 로마시대 다리와 인접해 있었다. 이 다리는 알바레가스 다리(Puente Romano sobre El Albarregas)이다. 알베레가천(Arroyo de Albarregas) 위에 놓였다하여 알바레가스 다리다. arroyo는 스페인어로 하천을 말한다. 도림천, 중랑천 등을 연상하면 된다. 알베레가스천은 알바레가스 다리에서 서쪽으로 500미터를 더 흐른 후에 과딜아나강에 합수된다.

- 밀라그로스 수도교도 많이 훼손이 됐다. 상부 수로 구간은 거의 다 망실되고 기둥들만 남은 상태였다. 덜하기는 했지만 기둥들도 파손된 곳들이 많았다. 그런 상태라도 남아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 밀라그로스 수도교 탐방 이전에 메리다성을 먼저 탐방했다. 메리다성도 많이 파괴가 됐다. 그냥 폐허 상태로 있는 걸 안전장치를 한 후 관람을 시키는 형식이었다. 그런데도 6유로나 받았다.

- 처음에는 티켓 창구에서 17유로 짜리 통합 티켓을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통합 티켓에 포함된 장소들을 다 둘러보지 못할 거 같아 메리다성 단일 티켓만 구매한 것이다. 시간이 되고 여유가 된다면 퉁합티켓을 구매해서 다 둘러보면 좋을 거 같다.

- 메리다성은 훼손이 심했다. 로마시대부터 무어인시대까지 중개축을 여러번 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메리다성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물 저장고였다. 계단을 다라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데 처음에는 목욕탕인 줄 알았다. 과디아나강의 물을 끌어와 필터링을 한 후 저장한 것이다. 강물을 끌어오니 물이 마르지 않았을 것이다.

- 이후 로마 신전인 디아나신전(Temple of Diana)를 찾아갔다. 골목을 도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신전을 만난 것이다. 역시 메리다는 작은 로마가 맞는 듯하다. 여기가 스페인인지 로마인지 헤깔릴 정도였다.

- 디아나 신전 옆 골목으로 빠지니 그 저렴한 바르가 나왔다. 늦은 점심, 혹은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 메리다성: 성 내부 시설물들. 망실된 채로 전시되어 있다.

 

 

* 밀라그로스교와 알바레가스다리

 

 

 

* 디아나신전

 

 

 

 

* 세비야대성당: 오른쪽에 히랄다(giralda)탑이 보인다. 무어인들의 통치 시기에 모스크의 첨탑(minaret)으로 만들어졌다가 이후 기독교인들이 세비야를 탈환한 후에 성당의 종탑으로 변형된다. 약 100미터 높이로 처음에는 르네상스식으로 만들어졌다 뾰족뾰족한 고딕 양식으로 변경된다. 탑 최정상부에 풍향계를 든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히랄다(giralda)는 스페인어로 '바람개비' 혹은 '풍향계'를 뜻한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스페인광장: 스페인광장은 마리아루시아 공원 안에 있다. 1929년 라틴아메리카 박람회가 열렸던 곳에 큰 광장이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는 세비야대성당의 히랄다탑을 본 떠 만든 탑이 양 옆으로 두 개가 있다. 안쪽에 수로가 있어 뱃놀이도 즐길 수 있다.

 

 

 

*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32일차 / 맑음(춥다)

- 전날 카디스에서 버스를 타고 세비야 세바스티안터미널(estacion de autobuses prado de san sebastian)에 하차했다. 세비야에는 이곳 말고도 아르마스터미널(estacion de autobuses plaza de armas)이라는 곳도 있다. 생각해보니 2019년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넘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르마스터미널을 이용했다.

- 세바스티안터미널에서 스페인광장(plaza de Espana)까지는 가까웠다. 어차피 세비야에 온 이유도 전에 못봤던 스페인광장을 보기 위해서였기에 그냥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했다. 가보니 왜 스페인광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지 알겠더라. 거대한 단일 건물이 곡선을 그리고 서 있는데 그 모습 자체가 큰 장관이었다.

- 몸이 안 좋았다. 사실 카디스 때부터 감기몸살 기운이 있었다. 특히 목감기에 몸살이 같이 왔다. 공용도미토리에 있어서는 안 될 거 같아 호텔 싱글룸으로 옮겼다. hotel patio de cruces였는데 말만 호텔이지 호스텔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37유로에 그 정도면...

- 목감기가 심한 거 같아 약을 사라갔다. 일요일인데도 약국이 문을 연 곳이 있었다. 약사가 스트렙실을 주었는데... 역시 약값이 비싸더라. 약 12유로였다. 9유로 정도를 주고 빨래방에서 빨래를 했다. 이날은 그냥 쉬기로 했다.

 

 

* 세비야알카사르(Real Alcázar de Sevilla): 스페인과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무데하르(mudéjar)양식으로 만들어진 궁전. 스페인에서는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을 대상으로 한 국토회복운동이 벌어지는데 그 시기 가톨릭 왕조 안에 사는 이슬람인들을 '무데하르'라고 칭했다. 세비야 알카사르는 원래 무어인들의 방어 요새였던 곳이었다. 그런데 카스티야왕 페드로 1세가 그 요새에 화려한 장식의 문양과 회랑 등을 만들어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물을 만들게 된다.

 

 

 

* 2024년 1월 15일 월요일: 33일차 / 맑음

- 호스텔을 다시 도미토리로 옮겼다. U-sense for you hostel sevilla였는데 이 호스텔에 딱 들어서니 꽤 눈에 익은 것이다. 알고보니 2019년 초 세비야 여행을 할 때도 딱 이곳에서 숙박을 했었다. 그때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좋은 기억이 있길 바라며!

- 목감기가 더 심해지는 거 같다. 쉴 때는 셔줘야 한다!

 

*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34일차 / 비

- 목감기에 몸살에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아서 이날도 호스텔에서 그냥 쉬기로 했다. U-sense for you hostel sevilla는 도미토리이기는 했지만 침대가 벙커침대라 그런대로 사생활이 유지가 됐다.

- 슬슬 스페인 여행을 정리하고 그리스나 튀르키에로 넘어가야 해서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었다. 항공권을 알아본다고 노트북을 꺼냈다. 지난 30일 동안 한 번도 안 열어보다 이제서야 꺼냈다. 이 무거운 걸 들고 순례길도 걷고, 버스 여행도 했다니...!

 

* 세비야대성당과 세비야알카사르

 

 

 

.* 황금의탑(Torre del Oro): 1220년대 만들어진 탑. 과달키비르강에 딱 붙어 있다. 강 주변을 감시하는 탑으로 이용됐다. 이후 행정사무소, 감옥, 해군사령부 등등... 꽤 다양하게 쓰였다. 탑의 둘레가 4각이나 8각이 아닌 12각이다. 과달키비르강은 안달루시아 지역을 동서로 흐르는 강으로 그 길이가 657km에 달한다. 세비야에서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코르도바가 나오고, 하류로 내려가면 카디스가 나온다. 과달키비르강은 카디스에서 대서양으로 합수된다. 스페인어로 oro는 황금이란 뜻이다.

 

 

 

* 플라멩고: 플라멩고 거리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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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즈만엘부에노성(castillo de Guzeman el Bueno)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구즈만엘부에노성 내부: 훼손된 형태를 그대로 남겨두었다.

 

 

 

*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30일차 / 맑음(강한 바람)

- 타리파에 있는 La cocotera boutique hostel & coworking에서 진짜 체크아웃을 했다. 타리파는 그저 거쳐가는 곳으로만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3박을 하게 됐다.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이다!

- 타리파항에서 가까운 구즈만엘부에노성(castillo de Guzeman el Bueno)를 탐방했다. 이 성은 외형적으로 많이 훼손됐다. 그래서 '답사할 꺼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입장하기로 했다. 입장료도 4유로라 부담이 없었다.

- 역시 안으로 들어가니 구즈만부에노성의 훼손된 부분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안전을 고려한 동선을 그리기는 했겠지만 일부 구간은 성채가 무너져 내릴 거 같았다. 그래도 성의 타워에 오르니 타리파항구 일대를 비롯해 타리파섬까지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정말 시원하게 바람이 세게 불었다.

- 타리파터미널에서 카디스행 버스를 탔다. 카디스(Cadiz)까지는 약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정도였다. 카디스 대성당을 지나 예약한 숙소를 향했다. 숙소 이름은 planeta Cadiz hostel.

 

 

 

 

* 구즈만엘부에노성: 이 성도 일부 구간이 겹성 형태이다. 그래서 이 문은 중문으로 사용되었다.

 

 

 

* 타리파섬: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출발한 페리가 타리파항으로 입항하고 있다. 저 등대가 있는 곳이 유럽의 최남단이다.

 

 

 

*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31일차 /맑음

- 카디스에서 가장 탐방하고 싶은 곳은 1812헌법제정탑(monumento a la constitucion de 1812)이었다. 1812년에 카디스 헌법이 공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물로 카디스 성당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사실 1812년헌법제정탑은 전날 밤에 탐방을 했었다. 숙소랑 가까운 곳에 있어서 사전 탐방을 한 것이다. 조명 속에 비친 기념탑은 묘한 웅장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1812년 카디스 헌법이 주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한 후 카디스카를로스장벽(Murallas de san Carlos)을 보러갔다. 역시 카디스가 항구 도시이기에 장벽은 바다에서 침입하는 세력들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다른 해안 도시처럼 시커멓고 길쭉한 옛날 대포들이 바다를 향해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안가를 중심으로 탐방했고, 마지막으로 전통시장인 카디스 중앙시장(mercado central Cadiz)을 방문했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수산물과 농산물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랬는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 이제는 세비야로 갈 시간이다. 카디스에서 세비야까지는 약 12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버스로는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매표소는 다 닫았다. 그래서 기사에게 직접 요금을 내야했다. 약 15유로.

- 세비야 남쪽터미널에 내리니 그 유명한 스페인광장과 무척 가까웠다. 그래서 숙소로 바로 가지 않고 스페인 광장을 탐방했다.

 

 

 

* 카디스1812헌법제정탑: 야간에 촬영하여 선명하게 나오지 못했다.

 

 

 

* 카디스카를로스장벽: 초소와 대포가 나란히 있다.

 

 

 

* 카디스대성당: 뒤쪽에서 본 모습

 

 

 

* 카디스 중앙시장

 

 

 

 

 

 

* 지중해: 지브롤터해협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지브롤터해협: 뒤로 타리파 도심과 항구가 보인다.

 

 

 

 

*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28일차 / 맑음

- 어제는 비가 엄청내렸지만 이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쇼를 했다. 개인 사물함에 카메라를 넣고 잠궈두었는데 열쇠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저기 계속 찾았는데도 없는 것이다. 패킹한 배낭을 싹 다 다시 꺼내 주머니마다 검사를 했다. 침대 주변을 비롯해 손이 닿는 곳을 전부 다 뒤졌다. 하지만 없는 것이다. 결국 스태프에게 '절단기가 있냐'고 물을 지경까지 됐다. 하지만 절단기가 없다고 했고, 공구상에 가서 구매를 해야할 판이었다.

-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인 곳이 뻔한데 더군다나 내가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있는가? 마지막으로 침대 아래부분을 찾아보려 매트리스까지 들어보았다. 그냥 공구상에 가서 절단기를 사야겠다 하고, 다시 매트리스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손에 닿았다. 잃어버린 열쇠였다. 이거 찾느라, 정말 이거 찾느라 1시간을 허비했다. 그런 내 모습에 스태프들이 좀 한심하게 보더라~ㅋ

- 검색을 해보니 근처에 로마시대의 신전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탐방하기로 했다. 왕복 1시간 정도 거리인 듯해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호스텔에서 벗어나 해안길로 접어 들었다. 순례길 표식이 있어 그걸 길잡이 삼아 이동했다. 잠시 숲길을 지나니 멋진 풍광이 펼쳐진 해안길이 나타났다. 푸른 바다를 벗삼아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깎아질듯한 해안 절벽 위로 길이 이어졌는데 바다 너머로 북아프리카 모로코 땅이 가깝게 보였다. 직선거리로 대충 20킬로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는 듯했다.

- 해안가 절벽 위를 걷다보니 여수 금오도 비렁길도 생각나고, 제주 올레길도 떠올랐다. 이곳이 지브롤터해협 일대이다보니 곳곳에 벙커들이 산재해있었다. 전략적으로 엄청 중요한 곳이다보니 그런 시설물들이 있던 것이다. 오래된 군사보호구역 표지판도 보았는데 예전에는 이곳을 민간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막아 놓았을 것이다. 옛 유물처럼 군사시설물들은 방치되고 훼손됐다. 지브롤터해협 일대의 중요성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그곳을 지키는 감시시스템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 열쇠 소동 때문에 정신없이 체크아웃을 해서 그런지 준비가 소홀했다. 생수도, 행동식도 챙기질 못했다. 1월이었는데 스페인 남부의 햇살은 뜨거웠다. 마시지 못하고, 먹지 못한 상태로 2시간 이상을 걸으니 좀 아니다 싶었다. 배낭 무게도 무시 못했다. 줄인다고 줄였어도 순례길 구간 때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아니 기념품 사느라 더 무거워진 듯했다.

- 신전 건물 찾는 것은 일단 접고, 다시 타리파 호스텔로 돌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호스텔에 연박을 하고, 배낭도 두고 올 걸... 열쇠 소동부터 신전 건물 못 찾는 거까지 이날은 좀 일정이 꼬였다. 내일은 좀 좋아지려나?

 

 

 

* 지브롤터해협: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곳곳에 해안 벙커가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용을 하지 않음. 바다 멀리 보이는 곳이 북아프리카임.

 

 

 

* 2024년 1월 11일 목요일: 29일차 / 맑음

- 전날 해안가 길을 가다가 중단한 것이 영~ 찜찜했다. 준비 소홀로 가던 길을 되돌아 간 게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지브롤터 해협을 위시한 지중해 일대를 마음껏 둘러보기로 했다.

- 전날 탐방을 중단한 '개조심'집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호스텔에서 개조심 집까지는 꽤 멀었다. 약 4~5km 정도 떨어져 있는 듯싶었다. 자세히보니 이 길은 윗길, 아랫길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랫길은 말그대로 좁은 소로길로 절벽 바로 옆을 걷는 길이다. 이에 비해 윗길은 자전거는 물론 자동차도 운행이 가능한 길이었다. 대신 비포장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산악자전거를 타는 자전거족들이 많이 보였다.

- 윗길은 예전에 군사작전도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해안 벙커를 비롯한 시설물들은 폐쇄됐고, 도로도 관광, 레저용으로 그 기능이 변형됐다. 푸른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옛 군사시설물 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평화로운 풍광 속에 숨은 그림처럼 군사실설물들이 숨어 있는 모습이었다.

- 이 해안길은 트라팔가(Trafalgar) - 타리파(Tarifa) - 알헤시라스(Algeciras)로 연결된다. 그 중 타리파에서 알헤시라스 구간을 걸었던 것이다. 트라팔가에서 타리파가 약 60km, 타리파에서 알헤시라스까지가 약 25km 정도다. 트라팔가는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를 패퇴시킨, 그 트라팔가 해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 날씨가 좋아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중에서 과달메시탑(Torre de Guadalmesi)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두드러지게 잘 나오더라. 지중해를 향해 늠름하게 서있는 과달메시탑을 보니 첨성대가 생각이 났다. 과달메시탑은 수백년간 지중해의 해풍을 묵묵히 다 맞으면서도 보존 상태는 꽤 좋았다. 그런데 출입구가 안 보이는 거다. 있긴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높이 있었다.

- 과달메시탑 이후로는 해안가에서 벗어나 산길로 들어섰다. 전날 준비소홀을 만회하려고 음료수, 행동식을 듬뿍 준비했더니 배낭이 뚱뚱했다. 그 뚱뚱한 배낭을 메고 산길을 오르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파이팅이다.

- 역시 20km가 넘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알헤시라스로 진입할 무렵 해가져 세상이 컴컴했다.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 이상 산길이 이어졌다. 그나마 포장도로였다. 불빛 하나없는 산길을 1시간 이상 걸으니 눈이 감길 정도로 피곤해졌다. 그렇게 피곤한 상태였지만 열심히 걸었고, 결국은 알헤시라스 도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충 8시간 정도 걸은 거 같다. 물론 사진을 찍으며 느릿느릿 걸어서 그렇게 오래 소요된 거 같다.

- 알헤시라스에 있는 호스텔로 갈까하다가 그냥 타리파행 버스를 탔다. 8시간 동안 걸었던 거리를 버스를 타니 약 40분 만에 도달하더라. 읔~ 허탈함!ㅋ

- 그냥 스쳐갈 거라고 생각했던 타리파에서 3박을 하게됐다. 타리파 호스텔 스태프가 또 왔냐는 식으로 씨~익 웃더라!

 

 

 

* 과달메시탑: 1588년 경에 만들어진 과달메시탑. 해안 감시용 망루로 만들어졌다. 오래됐지만 훼손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해안경비시설

 

 

 

* 지브롤터해협: 과달메시탑이 보인다.

 

 

 

* 지브롤터해협: 저 배낭을 메고 27킬로 정도를 걸었으니...ㅋ

 

 

 

 

 

* Royal Walls: 직역하면 '왕립장벽'이 될 것이다. 애초 이 성벽은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스페인이 세우타를 점령했고, 왕립장벽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계속 보강되었다. 성체에 여기저기 탄환의 흔적들이 있다. 보기만해도 참 치열하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항해클럽등대(Faro del Club Nautico): 세우타항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등대. 항해클럽에는 값비싼 요트들이 즐비했다.

 

 

 

 

 

* 2024년 1월 8일 월요일: 26일차 / 맑음

- 알헤시라스에 있는 hospedaje Lisboa Algeciras 호스텔에 또 1박을 하기로 했음. 이날은 세우타(Ceuta)에 가기로 했는데 세우타에서 1박을 하기보다 그냥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 좋을 거 같아 그렇게 했음.

- 오전 10시 배편을 타고 약 1시간 30분 정도 지브롤터 해협을 가로질러갔다. 항구에서 떠날때보니 어제 탐방한 지브롤터가 한 눈에 펼쳐졌다. 해안선 위에 거대한 암벽이 불쑥 솟아오른 형상이었다. 반대편에서 보니 왜 지브롤터가 그렇게 중요한 곳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 알헤시라스 항구에서 여객선을 탈 때 공항과 동일한 수속을 밟았다. 테러 방지 때문인가?

- 세우타에 내리니 날씨가 더운 것이다. 스페인 남부보다 더 더웠다. 그렇다, 아곳은 북아프리카다. 세우타는 Foso de san Felip 해자를 통해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뉘었다. Royal Walls라는 도시장벽이 있었는데 그곳에 바닷물이 드나들고 있었다. 해자를 지중해 바닷물로 채운 셈이다.

- 일부 구간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Royal Wall는 철옹성의 이미지를 하고 있었다. 해안가와 맞닿아 있는 성벽의 모습이 어떤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고보면 Royal Walls은 그냥 도시장벽이기 보다는 도시장벽과 전략적 요새가 합쳐진 모습이었다.

- 세우타 대성당과 그 앞쪽에 서 있는 아프리카 광장을 탐방한 후 해안가 방면으로 이동했다. 세우타에 있다는 헤라클래스 기둥상을 찾았다. 지브롤터에서 본 헤라클래스 기둥상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세우타 기둥상에 대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세우타 항구 방파제에 헤라클래스 기둥상이 있긴 했다. 배를 타고 방파제를 지날 때, 저거 말고 다른게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 요트 선착장 앞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헤라클래스 기둥상이 떡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레카였다! 지브롤터 기둥상이나 세우타 항구 앞 기둥상과는 다른 힘찬 기운이 감돌았다. 사실 세우타에 온 이유가 헤라클래스 기둥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 시계를 보니 시간이 좀 남았다. 돌아가는 배편은 밤 8시 30분이었다. 구글 지도를 보니 Monolith Llano Amarillo Ceuta라는 조형물이 있었다. 원래 모로코 땅에 있었던 것인데 1962년 세우타로 옮겨졌다고 한다. 대충 찾아보니 1936년에 있은 군사반란과 관련된 조형물이라고 했다. 딱 봐도 좀 헛군기가 들어가 있는 조형물이었다. 그런데 그 주위가 너무 더러웠다. 낙서도 있었고... 이것이 군사반란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생각일지 모른다. 1936년에 있던 군사반란이 스페인 내전의 시초였다.

- 세우타가 모로코로 둘러쌓여 있긴 했지만 이곳이 아프리카 땅이라는 사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스페인 남부의 어느 도시를 거닐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브롤터가 유로파를 강조하며 유로화도 유통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 밤 8시 30분경 세우타항에서 알헤시라스행 여객선을 탔다. 왕복으로 끊으니 약 60유로였는데 운항거리가 편도로 약 30km에 달하는 거에 비해서는 좀 비싼편이었다.

- 지중해의 야경, 특히 지브롤터의 야경에 취해있었는데 누가 내 배낭의 지퍼를 열었던 거 같다. 당시 난 큰 배낭을 호스텔에 두고, 작은 배낭을 둘러메고 있었다. 배 뒤쪽 모서리에서 바람을 맞으니 뒤에서 누가 뭐를 해도 모를 정도이긴 했다. 별로 돈 값어치도 없는 것들만 배낭에 넣어두었는데... 도대체 왜?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담배 핀 그 놈이 그랬나?

참고) 세우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페인령으로 모로코에 둘러쌓여 있다. 지브롤터가 스페인에 둘러쌓인 영국령인 것과 같은 이치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지브롤터와 세우타가 나란히 위치해 있다. 그만큼 이 지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편 세우타 이외에도 모로코 땅에 있는 스페인령 도시가 하나 더 있다. 멜리야(Melilla)라는 도시이다. 멜리야는 이전에 탐방했던 알메리아에서 가는 배편이 있다.

 

 

 

* 헤라클래스기둥: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다. 아차하면 놓칠 수 있다. 바로 왼쪽에 바다 건너 봉우리 두 개가 바로 지브롤터이다.

 

 

 

* 세우타 헤라클래스 기둥: 이게 진짜 헤라클래스 기둥 조형물이다.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 2024년 1월 9일 화요일: 27일차 / 비

-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오랜만에 우비를 꺼내 입었다. 전날 밤에 잠시 보았던 유적지를 가려고 알헤시라스의 중심인 알타광장(plaza Alta)으로 갔다. 그 광장 앞에는 parroquia of our lady of la palma 교회가 있었다. 알헤시라스가 북아프리카와 가까워서 그런가? 알타광장은 화려한 타일로 장식된 벤치가 늘어서 있었다. 이후 마리아 크리스티나 공원(parque maría Cristina)에서 빗물에 젖은 나무들을 바라본 후 Murallas Merinies로 향했다. 유적들을 복원하지 않고 발굴한 채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성 이름이 지브롤터문(puerta de Gibraltar)이다.

- Murallas는 스페인어로 '벽'이란 뜻이다. 영어로 Wall이 스페인어로는 Murallas이다.

- 그냥 그칠 비가 아니었다. 빵 가게에서 빵과 커피를 사 먹은 후 고민을 했다. 다음 일정은 카디스(Cadiz)였는데 알헤시라스에서 카디스까지는 약 100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멀리가기 보다 가까이에 있는 타리파(Tarifa)로 가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리파는 이베리아반도의 최남단으로 우리나라 땅끝마을과 비슷한 개념의 도시이다.

- 알헤시라스에서 타리파까지는 약 25km 정도 떨어져있다. 가까워서 그런지 소요시간은 약 40분 정도였고, 요금도 2.5유로였다. 또 시외버스가 아니라 시내버스 개념이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

- 타리파에 있는 La cocotera boutique hostel & coworking에 체크인을 했다. 비가 좀 그치는 것 같았다. 근처에 해수욕장이 있어서 한 번 가봤다. 타리파가 서핑의 성지라고 불리던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치카해수욕장(playa chica)이 있는데 서핑보드를 타는 서퍼들이 많이 보였다. 아무리 남부 스페인이라고 하지만 1월, 한 겨울이 아닌가! 더군다나 바람도 세게 불고, 파도도 크게 일렁이는데...

- 파도 넘어 섬이 하나 있었다. 타리파섬(Isla de Tarifa)이었다. 요새와도 같은 이 섬에는 이베리아반도의 최남단 끝점(punto masal al sur de la peninsula iberico)이 있다.

- 치카해수욕장 뒤에 있는 산타 카탈리나성(castillo de Santa Catalina)와 타리파항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구스만성(castillo de Guzman de Bueno)을 탐방한 후 호스텔로 돌아왔다.

- 이 타리파 호스텔은 협업(coworking) 공간이 있어서 그런지 호스텔 죽돌이들이 있는 거 같았다. 호스텔이 무척 소란스러웠다. 뭐 호스텔이 다 그런거지만...

 

 

 

* Royal Walls: 독특하게도 해자를 지중해 바닷물로 채웠다.

 

 

 

* Royal walls: 끝단에 달린 둥그런 초소(sentry box)가 이색적이다.

 

 

 

* Monolith Llano Amarillo Ceuta: 1936년 모로코 주둔 스페인군이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그걸 기념하기 위해 모로코땅에 세운 조형탑. 모로코땅에 있다 1962년경에 세우타로 이건을 했다. 좀 외떨어져 있는데다 주변도 지저분했다. 낙서도 많았다. 1936년 군사반란은 스페인 내전의 도화선과 같은 역활을 했다.

 

 

 

* 알헤시라스 알타광장(plaza Alta)

 

 

 

 

 

 

 
 

* 론다 누에보다리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론다 구도심

 

 

 

 

 

* 2024년 1월 6일 토요일: 24일차 / 맑음

- 호스텔 doña carmen에서 체크아웃을 했음. 하지만 짐 보관 서비스가 있어 배낭을 호스텔에 맡기고 간단한 장비들만 챙겨서 문을 나섰다.

- 론다 여행은 유명한 누에보다리(centro de interpretacion del puente nuevo)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placa Cristobal aguilar barea 공원에 갔다. 이곳에 가니 론다 구시가지 서쪽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뒤쪽으로는 산들이 펼쳐져 있고, 그 앞으로는 관광객들이 무언가를 살펴보는 것 같았다. '저기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무언가 둥글뽀족하게 생긴 바위가 보였다. 선돌처럼 생긴 바위였다. 강원도 영월에서 보던 선돌을 스페인 론다에서 비슷하게나마 보게된 것이다. 저 아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보면 더 자세히 론다 선돌을 바라볼 수 있을 거 같았다.

- 일단은 누에보 다리 탐방이 우선이라 누에보 다리 방향으로 이동했다. 가까이 가서보니 왜 누에보 다리가 론다의 명물인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과달레빈강(rio Guadalevin)이 만든 협곡 위에 들어선 누에보 다리는 그 높이가 무려 120미터에 달한다. 협곡으로 이루어진 자연경관과 돌로 쌓아 만든 인공물이 서로 배치되지 않고 하나의 미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 내친김에 비에호다리(puente viejo)와 로마노다리(puente romano)까지 탐방했다. 누에보 다리가 18세기에 만들어졌으니 그 이전에는 비에호다리와 로마노다리를 통해서 왕래를 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마노다리를 인근에 론다성벽(walls of ronda)의 흔적이 숨어있었다.

- 시하라문(puerta de la cijara)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론다 성벽은 곳곳이 훼손됐고 무너져 있었다. 무너진 성벽 위에 집을 지은 곳도 있었다. 그 흔적들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성문을 만났다. 알모카바르문(puerta de la almocabar)이었다. 성체는 훼손이 되도 성문은 그 틀을 온전히 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 성과 성문이 떠올랐다. 참고로 알모카바르성문은 13세기에 만들어졌는데 둥근 쌍둥이 타워가 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성문이다.

- 시간이 좀 남아서 론다베스트뷰(ronda best viewpoint)라는 곳을 향해갔다. 얼마나 좋기에 베스트류라는 칭호를 사용했을까? 보아하니 누에보다리를 서쪽 방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비에호다리에서 보는 방면이 동쪽이니 그 반대편인 것이다.

베스트뷰에 가보니 론다 선돌이 가깝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placa cristobal aquilar barea의 전망대에서 본 아래 부근에 내가 서있던 것이다. 결국 그곳에 내가 갔던 것이다.

- 동쪽과는 다른 모습의 누에보 다리도 감상하고 론다 선돌도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았다. 선돌을 근접해서 바라보니 북한산 인수봉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누에보다리도 보고 론다 선돌도 봤으니 론다 여행은 잘 마무리됐다.

- 다음날은 지브롤터로 갈 예정이라 라리네아데라콘셉시온(La linea de la concepcion:약칭 라리네아)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리네아의 숙소가 마땅치가 않아서 알헤시라스(Algeciras)까지 이동했다. 처음에는 라리네아행 버스편을 구매했다가 알헤시라느행 버스로 바꾼 것이다.이렇게 버스를 기다리고 티켓도 교환한 곳은 마르베야 버스터미널이었다. 마르베야는 연이틀 환승만한 동네였다.

 

 

 

* 누에보다리: 협곡에서 바라본 모습. 높이가 무려 120미터에 달한다.

 

 

 

* 누에보다리: 협곡의 반대편에서 바라본 모습. 론다베스트뷰 방면이다.

 

 

 

* 알모카바르문: 13세기에 만들어진 문이다.

 

 

 

* 론다 선돌: 강원도 영월의 선돌이 연상되서, 론다 선돌이라고... 마음대로 네이밍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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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르도바수변성: 과달키비르강을 따라 건설된 도시장벽이다. 곳곳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산책하기에는 딱이었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로마신전

 

 

 

 

* 2024년 1월 4일 목요일: 22일차 / 이슬비

-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비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안경에 빗물이 튀는게 싫어서 모자를 사러 갔다. 전에 있던 모자는 알라칸테에서 잃어버렸다. 못생긴 모자였지만 나름 쓸만한 모자였다. 귀돌이도 붙어있고... 데카트론이 숙소 근처에 있어 가봤더니 창이 달린모자는 안 팔았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만물상에 가서 4.5유로 모자를 구매했다.

- 코르도바(cordoba)에 왔으니 당연히 메스키타대성당(mezquita-catedral de cordoba)부터 보러갔다. 메스키타대성당은 과달키비르강 옆에 있는데 이곳을 보려면 코르도바 로마다리(puente romano de cordoba) 반대편에서 바라보는게 제일 나은거 같더라.

-코르도바 로마다리의 끝부분에는 칼라오라탑(torre de la calahorra)이 있다. 이곳도 입장료를 받더라. 메스키타 입장료는 이해가 되는데 그 조그마한 칼라오라탑도 입장료라니!

- 비오는 날의 메스키타는 무척 아름다웠다. 방문객도 엄청 많았다.

- 메스키타에서 사진을 넉넉히 찍은 후 코르도바 알카사르(Patio Morisco - Alcázar de los Reyes Cristianos) 부근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코르도바 알카사르 뿐아니라 강변쪽으로도 성곽이 있었다. 하지만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천천히 그곳을 둘러본 후 코르도바 알카사르성에 입장했다. 입장료는 5유로였다. 코르도바 알카사르는 여러모로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을 연상시켰다. 성곽의 중심 공간을 둘러본 후 성체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Jardines del alcazar de los reyes cristinos 정원을 둘러보았다. 잘 가꾸어져 그런지 그냥 한들한들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곳이었다. 빗물을 머금은 나뭇잎들이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한겨울에 녹색의 싱그러움이라니! 스페인 남부는 남부인가보다!

- 코르도바 로마다리 한편에는 칼라오라탑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puerta del puente가 있었다. puerta del puente를 직역하면 '다리문'이다. 처음에는 로마시대 문이라고 했는데 16세기 경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여기도 티켓을 구매해야 정상부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어젯밤에 봤던 로마신전(templo romano)를 다시 봤다. 낮에 보는 것과 밤에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 호스텔로 돌아왔다.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어제 체크인을 해주었던 스태프인, 다비드가 친절히 맞아주었다. 알고 보니 다비드는 역사선생님이라고 했다. 지금은 호스텔에서 돈을 벌어 학업을 이어갈 거라고 했다. 전날 스페인 역사책 한 권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이날은 스페인 지리책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소개만, 누가 읽는데...ㅋ

- 하여간 다비드는 꽤 유쾌한 녀석이었다. 또한 Libere cordoba patio santa marta호스텔도 꽤나 정감가는 호스텔이었다. 어떤 호스텔에서는 사기를 당했지만 어떤 호스텔에서는 환대를 받았다. 이것도 다 여행의 일부 아니겠는가!

 

 

 

* 로마다리와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

 

 

 

참고)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에 있는 도시로 과달키비르강(rio de guadalquivir)이라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코르도바는 로마시대부터 도시가 들어섰는데 과달키비르강 위에 세워진 로마시대 다리도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

로마다리를 건너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mezquita-catedral de cordoba)을 가보자. 메스키타(mezquita)는 스페인어로 모스크를 뜻하는 보통 명사다. 고유명사로 쓰면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을 뜻한다. 그만큼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의 상징성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풀어쓰면 모스크대성당이라는 말인데, 모스크와 성당이 붙어 있나? 애초에 그곳에는 로마시대 신전이 있었다. 이후 서고트 시대에 성당이 들어서게 된다. 711년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후, 성당 자리에 모스크가 지어지게 된다. 여기서가 끝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도들이 무어인들을 물리친 뒤, 그 모스크 자리에 다시 대성당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로마신전 -> 성당 -> 모스크 -> 대성당

이렇게 복잡한 역사가 있다보니 '모스크대성당'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

 

 

* 코르도바성: 안쪽에 근사한 정원이 있다.

 

 

 

 

* 2024년 1월 5일 금요일: 23일차 / 맑음

- 코르도바 구시가지를 다시 둘러봤다. 비오는 날의 모습과는 또다른 모습이었다. 코르도바성(alcazar de los reyes cristianos) 주위는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 또한 그 앞에 있는 코르도바수변성(Huerta del Alcázar de Córdoba)으로 번역될 수 있는 도시장벽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코르도바수변성은 코르도바의 옛 도심지역을 크게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일부 구간은 망실됐고, 한양도성 신당동 구간처럼 성곽 위에 집이 들어서기도 했다.

- 스페인 남부는 확실히 북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1월이었지만 무척 더웠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배낭 위에 빨래를 널 수 있을 정도였다.

- 이제 론다(Ronda)로 가야한다. 코르도바에서 론다를 가려면 일단 말라가(Malaga)로 가는게 좋을 거 같았다. 말라가에서 론다로 가는 편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갈 때는 끊겼고, 마르베야(Marbella)라는 도시를 거쳐가는 버스편은 있었다. 이미 어두운 상태였다. 마르베야에서 1박을 할까 하다가 늦더라도 론다에 가는게 낫다는 생각에 버스표를 끊었다. 그런데 중간에 버스를 갈아탔다. 기사는 같았는데 갑자기 하차해 다른 버스로 갈아탄 것이다. 좀 웃기는 상황이었다.

- 론다에 있는 hostal doña carmen에 예약을 했는데 체크인 시간이 밤 12시까지였다. 겨우 11시가 넘은 시간에 호스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두운 밤길, 그것도 꾸불꾸불한 산길을 달리느라 버스는 거북이 걸음이었다. 대충 계산해보니 말라가에서 론다까지 거의 2시간 40분 이상이 걸렸다. 거리로만 따져보면 120km 정도였지만 돌아돌아, 그것도 산길을 돌아돌아 가니 2시간 40분이 걸린 것이다. 물론 말라가에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버스도 있다고 한다.

- 말라가에서 마르베야까지 큰 리조트와 대형호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쪽 해변이 그 유명한 태양해안(Costa del Sol)이다. 이 말라가 주변에 위치한 태양해안은 안달루시아 관광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곳이다. 연간 17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이용할 정도로 태양해안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게 좋은 해안가에서 숙박도 하고 그래야 하는디...ㅋ

 

 

 

*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 아랍풍의 외벽 장식.

 

 

 

 

 

*다리문(puerta del puente)

 

 

 

*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 종탑

 

 

 

* 코르도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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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메리아성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알메리아성

 

 

 

* 2024년 1월 3일 수요일: 21일차 / 맑음

- 숙박 사기를 당하고 난 후에 잡은 delpin verde 호스텔에서 잘 쉬었다. 급하게 잡았지만 주인장도 좋았고 하룻밤 묵기에 제격이었다. 처음부터 이쪽으로 올 걸 그랬다. 그러고보니 스페인어로 돌고래가 'delpin'이다. 숙박 사기를 친 viejo hostal B&B는 간판도 없이 장사를 하는 곳인데...이제 간판없이 장사하는 호스텔은 예약하지 말아야겠다. 간판도 없이 무슨 숙박업을 하는지...

- 숙박사기를 당했다고 여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알메리라 탐방의 메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primer recinto de la alcazaba de Almeria라는 다소 긴 이름의 성을 탐방했다. 간단히 말하면 알메리아성이다.

- 알메리아성은 한쪽에서는 탐방을 할 수 있게 해놓았고, 다른 쪽에서는 복원 공사를 하고 있었다. 복원이 완료되면 유료 입장으로 바뀔 수도 있을 듯싶었다. 알메리아성은 꽤 멋스러운 성이었다. 특히 알메리아방어장벽(almeria defensive walls)이라는 익성이 보조성으로 역할을 해서 더 눈에 띄었다. 언뜻 우리나라 탕춘대성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 무거운 배낭을 계속 둘러메고 성 안쪽 곳곳을 누볐다. 좁은 통로를 피해가기도 하고, 좁은 계단을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진짜 좁고 경사가 심한 타워를 앞에 두고 배낭을 벗어 한쪽 구석에 놓았다.

그런데 보안 요원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배낭 메는 시늉을 하면서 빨리 아래로 내려가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배낭쪽으로 갔더니 다른 보안요원 둘이서 내 배낭을 둘러싸고 있었다. 혹시 폭발물로 신고가 들어간 것일까? 혹시 나를 테러범으로...?

- 성곽 구조물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배틀멘트에 구멍이 뚫린 것을 보았다. 구멍이 뚫린 것도 있고, 안 뚫린 것도 있었다. 총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안내소에 문의를 했더니 화살 쏘는 구멍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그럴만도 했다. 화살을 쏘면서도 몸을 숨길 수 있는 구조였다.

- 알메리아를 떠나서 코르도바를 향해갔다. 알메리아에서 코르도바까지는 약 370km 정도 떨어져있는데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렸다. 밤 11시경에 코르도바에 있는 Libere cordoba patio santa marta호스텔에 체크인을 했음.

참고) 알메리아성은 995년경, 무어인들이 알메리아를 지배했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알메리아 항구가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알메리아성은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군사시설 뿐아니라 지방 행정 시설까지 성 안에 자리잡았다. 한편 외부에 장벽을 설치하여 방어력을 증강시키기도 했다.

 

 

 

* 알메리아 방어장벽: 본성과 외성을 연결해주고 있다. 이를 두고 날개성, 혹은 익성이라고 말한다. 서울에도 탕춘대성이라고 하여 익성이 있다. 얼핏 탕수육 잘하는 중국집이 생각는 이름이지만...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서로 연결해준다.

 

 

 

* 알메리아 방어장벽: 장벽 안쪽에는 예수상이 있다.

 

 

 

* 알메리아성: 현재도 복원중이다.

 

 

 

* 화살구멍: 영어로는 arrowslit 혹은 loophole이라고 부른다. 위에는 밋밋한 1자형이지만 어떤 화살구멍은 십자가처럼 만들기도 했다.

 

 

 

* 화살구멍: 화살구멍을 가까이에서 찍어봤다. 이 구멍 안으로 화살을 쏘기보다는 적들의 동태를 살펴보는 게 더 나을 거 같다. 구멍이 작아서 조준이라도 제대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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