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각 새벽 2시 30분 경. 

이제 몇 시간 후면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탐방한다. 이후로는 버스 여행도 하고.

작년에도, 2014년에도 다녀왔던 순례길을 또 가는 것이다. 그냥 얌전하게 순례길을
걸을 것이지... 그때 왜 자전거 타는 순례객들에게 시선을 빼앗겨서...ㅋ

2010년도 전후로 해서 자전거여행을 참 많이다녔었다. 국토종단 4회, 국토횡단 2회.
여름만 되면 고물자전거 끌고 그렇게 다녔었다. 장마철에 여행을 시작했으니 비도 엄청맞았다.

자전거만 고물인가? 텐트도 고물이었다. 텐트에 계곡이 생길 정도로 내 장비들은 참으로 열악했다. 5만원 짜리 고물 자전거에 2만원 짜리 텐트, 1만원 짜리 침낭... 돈을 아끼려 밥은 당연히 해 먹었고. 그러다보니 짐은 엄청나게 불었다. 자전거 자체가 무게가 꽤 나가는 철TB에다 이것저것 짐을 때려 넣었더니 약 무게가 약 40킬로 정도가 됐다. 물론 자전거 무게 포함이다. 또 약간의 뻥이 들어가서...ㅋ

그때도 비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비싼 자전거를 타며 전국일주에 나선 라이딩족들도 많이 만났다. 

"꼭 비싸고 좋은 자전거로만 여행을 다니나요? 이런 중고 자전거도 쌩쌩 잘 달립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좀 쪽팔렸다. 여행 중에 만난 대학생들보다도 더 장비가 열악했다. 자격지심이라는 말은 이때 쓰는 거겠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칭하기에는 당시 내 상황이 좀 애매했다.  그때 내 나이는 이미 서른 중반이 넘은 상태였으니까. 변변한 직업없이, 마땅한 돈벌이도 없이... 그렇게 내 삼십대 중반은 바닥이었다. 뭐 그 이전이라고 잘 나간건 아니었고...ㅋ

그런 바닥 같은 삶에 한줄기 빛 같은 게 있었으니 바로 자전거 타기였다. 텐트를 칠 수만 있다면 공동묘지에서도 잘 잤으니 매년 여름만 되면 페달을 열심히 굴렸던 것이다. 장비빨이 떨어져 좀 쪽팔기는 했지만 페달을 굴릴 때만큼은 그냥 모든게 잊혀졌다. 요즘 숲길 트레킹을 하다보면 가끔 무아지경 비스무리하게 빠지는게 있다. 그런 무아지경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좀 느꼈었던 것 같다.  

엄청난 무게를 싣고 갔으니 언덕길은 당연히 자전거를 끌고 갔다. 사진에 나온 곳은 한계령인데 2012년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때 끌고 올라갔었다. 여름이라 제설장비를 모아 둔 곳이 놀고 있었고, 그곳에다 텐트를 쳤었다. 하루밤을 아주 잘 자고 그 다음날 한계령을 찾은 관광객이 찍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원도 인제군 읍내에서 열심히 자전거를 끌고 약 4시간 만에 도착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계령 초입에서 정상부까지. 고갯길에서 자전거를 끌고 갈 때는 몸이 뒤로 밀리기도 한다. 급경한 경사도에 질려서 도로변에 그냥 자전거랑 같이 털썩 넘어진 적도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정상부에 오르면!!! 엄청난 쾌감이든다. 등산할 때 정상을 찍는 맛과는 다르다. 정말 그 쾌감은 짜릿할 정도다. 그런 맛이 내 삼십대 중반을 버티게 해주었던 것 같다. 몸을 혹사시켜서 얻는 그런 맛? 혹시 변태?ㅋ

산티아고 순례길은 지형이 완경사라서 자전거를 끌고 갈 일은 거의 없을 거 같다. 몇 군데가 있기는 한데... 한계령도 가고 지리산 관통도로(노고단)도 가 본 적이 있기에 그렇게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비 오는 거에 대한 걱정이 더 많다. 

지금도 살림살이가 넉넉하지가 않다. 통장은 '텅'장이 되려고 준비중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10년 전 보다는 확실히 더 낫다. '강사'님이라는 호칭도 듣고 있고, 나만 잘하면 꾸준히 강의도 할 수 있으니까. 많이는 못 벌어도 나 혼자 묵을 거는 마련할 수 있다. 

자전거여행이든 트레킹이든, 아니면 배낭여행이든. 안전하게 행해야 한다. 이번 여행도 안전하게 잘 하고 와야겠다. 

좋은 기운 팍팍 받고, 2020년에는 더욱더 활기차게 생활해야겠다! 아자아자 파이팅!
 



 

 

 

 

 

 

캠핑할 때 만난 밥도둑들___ 2편

예천 밥 '할매'와 검은 고양이


 


 

 
▲ 경북 예천의 삼막주막 예천에는 삼막주막이라는 유명한 주막터가 있다. 그 곳은 하천 세 곳이 만나는 곳이라 수로 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룻터가 생기고 주막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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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 이어서
 

 

 

 

# 예천 '할매'가 주신 밥 한 그릇

 

 

 

2012년 7월 18일.

당시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었다. 경북 안동을 거쳐 내성천이 흐르는 예천군으로 향했을 때다. 유명한 회룡포를 가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아댔지만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기에 다음날을 기약하며 예천군 풍양면에 있는 작은 마을로 진입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좀 불안했지만 다행히 마을회관 앞에 있던 오두막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낯선 여행객이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는 걸까? 다음날 아침부터 '할매'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어디서 왔노?"
"밥은 묵고 다니나?"

할매들의 그런 관심이 고마웠다. 외로운 여행길을 도닥여주는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관심들이었으니까. 그런데 할매들은 이구동성으로 식사문제를 물었다. 그러면서 옥수수나 고구마 같은 간식거리들을 주시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밑반찬까지 건네줄 정도였다.

"이거 괜히 제가 와서 마을분들한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입으로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손으로는 감사히 받았다. 애써 집에서 가져오신 귀한 음식을 그냥 돌려보낸다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그런 할매중에는 아예 밥을 주신 분도 계셨다. 족히 2인분이 넘을 것 같은 밥을 그릇에 담아 전해주셨다. 보관을 잘 하라고 랩으로 잘 덮어주시기까지 했다.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그때 필자는 아침을 막 먹었던 터라 밥그릇을 오두막 한편에 잘 놓아두었다.

"할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녁 밥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렇게 감사를 표시한 후 간단히 짐을 꾸려 회룡포로 향할 준비를 했다. 전날은 비가 와서 그냥 텐트에서 대기를 했지만 그날은 햇살이 센 것 이외에는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였다. 오두막 주위에다 묵혀 놓았던 빨래들을 널어놓고 출발했다. 

 

 

 





 

 
▲ 회룡포 색깔이 있는 벼를 심어 저렇게 논에다 '벼그림'을 그렸다. 논을 도화지 삼아 벼로 모양을 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당시 내가 예천군을 방문했을 때는 <예천 곤충엑스포>를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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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내 밥을 도둑질 했나?

 

 

 

회룡포로 향하는 길에는 유명한 삼강주막과 내성천이 있었다. 내성천의 금빛 모래에 경탄하며 회룡포를 향해 열심히 페달을 굴렸다. 삼강주막, 내성천, 회룡포 탐방까지 했더니 예정시간보다 훨씬 늦게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아까 할머니가 주신 밥이 있었지. 그거 잡탕국에다 말아먹으면 되겠다. 따로 밥 하기 귀찮았는데 잘됐네!'

텐트로 돌아왔더니 좀 이상했다. 널어두었던 빨래는 한 쪽에 쌓아 있었고, 밥그릇은 내가 애초 놓았던 자리에서 빗겨나 있었다. 또 랩은 살짝 벗겨져 있고 누군가 한 숟가락 크게 떠먹은 듯 밥이 덜어져 있었다.

'동네 분들 중에 배고픈 분이 한 숟가락 드셨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누가 내 밥을 먹었지?'

그 순간 필자의 시야에 확 들어오는 물체가 하나 있었다.

'저 녀석이다! 저 녀석이 분명 내 밥을 훔쳐 먹었을 거야!'

시커먼 고양이 녀석이었다. 어제부터 내 텐트 근처를 기웃기웃 거린 녀석이었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어. 대낮에도 밥도둑들이 들끓을 줄이야!'

길 닦아 놓으니 뭐가 먼저 지나간다고, 할매들이 나 먹으라고 한 밥을 정체불명의 고양이가 먼저 입을 댄 것이다. 분노(?)를 삭이며 나머지 밥을 잡탕국에다 말아서 맛있게 먹었다. 할매들이 주신 귀한 밥이니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입 댄 자리를 덜어내 버릴까 하다가 그것도 다 말아먹었다. 그날만큼은 그 고양이와 한솥밥 식구라고 생각하고 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 당시 검은 고양이는 억울했을지 모른다. 심증만 있지 확실한 물증이 있냐고 성토했을지 모른다. '시커먼 고양이가 나 혼자 뿐이냐!'며 앙칼지게 반론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밥도둑이라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였다. 그건 다음날 내게 밥을 주신 할매가 직접 말씀해주셨다. 

 

"이제 가려고?"

나는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내게 밥을 주신 할매가 다시 오셨다.

"예 이제 가려고요. 덕분에 밥도 잘 먹고 잘 쉬었다 갑니다. 근데 어제 제 빨래 걷어주셨죠? 안 그러셔도 됐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
"뭘 그거 가지고... 근데 어제 시커먼 고양이가 밥을 훔쳐 먹더라고."
"그렇죠. 고양이가 먹은 거 맞죠? 어쩐지 사람이 먹은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내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절대 밥도둑들에게 밥을 빼앗기지 말자고, 굳게 다짐을 하며 길을 나섰다. 하지만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난 밥도둑들의 계속된 타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나도 먹고, 너도 먹자'라는 식으로 생각을 고쳐먹기도 했다.

이렇게 현지분들에게 환대를 받고, 또한 음식물을 빼앗기는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있기에 여행은 항상 나를 설레게 한다. 그래서 또 배낭을 꾸리고 지도를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이번에는 어떤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를 가지며...

 

 

 

 
▲ 내성천 황금빛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내성천. 내륙 하천에서 저렇게 고운 모래사장을 보기가 쉬운 일인가? 그런데 영주댐이 건설된다면 저런 금빛모래사장도 사라질지 모른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다.

 

 

 

 

 

 

 

 

 

 

 

 

 

캠핑할 때 만난 밥도둑들___ 1편

 

예천 밥 '할매'와 검은 고양이

 

14.08.09 14:46l최종 업데이트 14.08.09 14:46

 

 

 

 

 

 

 

 

 

 

 

▲ 추자도 필자는 저렇게 캠핑을 하고 다녔다. 저렇게 다녔으니 야생동물들에게 밥을 많이 빼앗기지... 이 곳은 추자도다. 2011년 여름에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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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다니면 캠핑도 많이 하겠다."

"그렇지 뭐."
"어디서 캠핑하는 게 좋냐? 그냥 강가 같은 데서 하는 게 좋냐, 아니면 정식 캠핑장 가서 하는 게 좋냐?"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지인들이 이런저런 아웃도어 정보를 물어온다. 하지만 나는 속시원한 대답을 해줄 입장이 못 된다.

 

 

 

# 술판 벌이는 캠핑장보다는 궁벽진 곳에다 야영을...

 


그간 텐트를 쳤던 장소들은 공동묘지, 동네 야산, 마을회관 공터 등이었다. 정식 캠핑장을 잘 이용하지 못했던 건, 돈이 없어 그러기도 했지만 시끌벅적한 캠핑장이 싫어서 일부러 피하기도 했었다.

"위하여! 먹고 죽자!"
"피박에 쓰리고네! 거기다가 독박까지 썼어!"

다음날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먼데 옆 텐트에서 이런 소리가 나면 그날은 잠을 다 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이 오지 않는 궁벽진 곳에다 텐트를 구축했다.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잘 만했다. 서울에서는 들을 수 없는 산새소리들을 벗 삼아 잠을 청하면 그만이었다. 샤워문제나 식수조달 문제가 걸리기는 했지만 궁벽진 곳에서의 캠핑은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내 캠핑은 매번 같은 방식으로 제동이 걸리곤 했었다. 사람이 제동을 건 게 아니었다. 동물들이 방해를 한 것이다. 녀석들은 항상 내 텐트 주위를 맴돌았다. 텐트 안에 있던 침낭에 느긋하게 누워있던 너구리, 내 텐트가 자기 집인양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던 왕거미 등등. 하지만 이 정도는 애교다. 너구리는 쫓아버리면 되고, 거미줄은 날려버리면 됐으니까.

 

 

 


 
▲ 경북 예천군 풍양면 풍양면 청운리에서 인심 좋은 '할매'들을 만났다. 저렇게 묵은 빨래들을 널어두고 회룡포를 다녀왔는데 할매가 빨래까지 거두워주셨다. 정말 몸둘 봐를 모를 정도로 감사했다. 그런 사람냄새나는 인심이 그리워 여행을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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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탕국을 맛있게 먹던 누렁이

 

 

문제는 내 음식물을 노리는 녀석들이었다. 어차피 필자나 동물들이나 배고픈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내 음식을 빼앗길 수 없었다. 자비심을 베풀 수 없었다. 가뜩이나 가난뱅이 여행을 하는데 음식물까지 녀석들에게 빼앗겨 봐라. 얼마나 서글프겠는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녀석들에게 많이 빼앗겼다. 어느 동네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저녁을 준비할 때 다음날 아침밥까지 같이 준비한다. 그래야 아침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저녁을 지어 먹고, 나머지 음식물이 담긴 코펠들을 한쪽 구석에 놔두었다. 그리고는 동네 한 바퀴를 걷고 왔다.

그런데 다시 텐트로 돌아올 때 어떤 누렁이 한 마리가 코펠에 고개를 쳐박고 맛있게 음식물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녀석이 먹고 있던 것은 잡탕국이었다. 몇몇 장거리 여행자들은 점심을 식당에서 해결한 후 먹고 남은 반찬들을 쓸어 담아온다.

그렇게 담아온 음식물들은 저녁시간에 라면과 어우러져 잡탕국이 된다. 이 잡탕국은 그날 점심에 어떤 반찬들을 쓸어 담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얼큰할 때도 있고, 시원할 때도 있다. 그래서 잡탕국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것을 고려해 넉넉하게 준비를 했는데 그 누렁이 녀석이 아침용 잡탕국을 '짭짭'거리며 먹고 있었던 것이다.

"저 망할 녀석 같으니! 감히 내 아침 음식을 건드려!"

아쉽지만 나머지 잡탕국을 버려야 했다. 정체 모를 누렁이와 같은 음식을 먹기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아예 텐트 안에다 남은 음식물이 담긴 코펠을 들여 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방법도 유용하지 않았다. 밤에 뒤척이며 자다가 코펠을 건드려 잡탕국이 침낭에 쏟아진 것이다. 가뜩이나 좁은 텐트에 코펠까지 들여놨다가 그렇게 낭패를 당한 것이다.

 

 

 

 


 

 

 

 

 

 

 

 

 

 

 

 

 

 

 

심야 지리산 자전거 질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마지막] 민족의 영산 지리산

13.03.21 18:21l최종 업데이트 13.03.21 18:21l

 

 

 

▲ 성삼재 성삼재에서 바라본 전남 구례. 앞에 보이는 도로가 지리산 관통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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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는 타이밍이다. 여행기의 작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다고 하더라도 발표 시기를 놓친다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여행기는 묵혀 놓으면 놓을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골동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 기사는 시급을 다퉈 발표하는 성격의 뉴스가 아니다. 사진도 잘 선별해야 하고, 이동 중에 기록한 메모들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사를 송고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여행에 대한 여행기이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시간의 소요가 느긋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느긋함을 부리다가 기사 작성이 계속 뒤로 미뤄지고, 그러다 아예 전체 기사분에서 누락되는 원고가 생기게 된다. 내가 연재 아닌 연재를 하고 있는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여행기에도 그렇게 누락분이 발생했다. 삼척·동해·예천·거창·김천 등등 시간에 쫓기다 보니 좀 더 오래 머물고, 좀 더 많은 에피소드를 경험한 지역을 취사선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뜀뛰기를 하듯 여행기를 작성했지만 한 번 꼬인 '스텝'은 잘 풀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다녀왔던 이야기가 엄동설한에 발표됐던 것이다. 계절감이 전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 도계삼거리 달궁삼거리를 도계삼거리라고도 부른다. 저 표지판처럼 그 곳은 분명 아름다운 곳이지만... 필자에게는 너무나 험난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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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주의보에 보는 반소매 사진

 

 

특정 주제를 놓고 공모를 하는 여행기 공모전이나 옛 추억을 회고하는 방식의 포토에세이라면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처럼 특정 시기에 행하고 동선이 명확한 여행기는 계절감이라는 족쇄에 묶일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31일에 발행된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 여행기를 본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글도 사진도 꽤 쓸 만한데, 반소매 입은 사진은 좀 추워 보인다. 지금 한파주의보라는데…."

아무리 좋은 글을 쓰고, 아무리 멋진 사진을 게재하더라도 한파주의보를 체감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반소매 사진은 '아니올시다'를 유발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필자도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뜀뛰기를 하듯 여행지를 취사선택을 할 필요도 없게 됐다. 이번 편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마지막 편이기 때문이다.

 

 



# 2011년 여름에 만난 태풍의 기억

여행 43일 차 2012년 7월 26일

나는 경남 함양군을 출발했다. 이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리산!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민족의 영산.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 관문인 지리산. 그렇게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나는 이미 2011년에 관통도로를 통해 지리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국토종단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다.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힘들게 올라갔는데 나를 반긴 것은 '덴무'라는 태풍이었다.

무척 억울했다. 여러 번에 걸친 위기를 넘기고 성삼재에 도착했더니, 태풍이 필자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구절양장 같은 꾸불꾸불한 지리산 관통도로를 40시간에 걸쳐 이동을 했는데 말이다.

겨우 태풍이나 만나려고 그 고생을 하며 성삼재에 올랐던 것인가. 힘 좋은 4륜 구동 자동차로도 오르기 힘들다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자전거로, 그것도 40kg나 되는 짐을 싣고 올라섰건만. 이름도 이상한 태풍이나 만났으니! 더군다나 당시 내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둘 다 작동 불능 상태였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지, 자전거 브레이크는 망가졌지, 체력은 다 빠졌지.

 

 

 


 
▲ 지리산 관통도로 꼬불꼬불 구절양장 같은 지리산 관통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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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결점을 다시 지리산 성삼재로 잡은 것은 2011년의 '리벤지 매치'의 성격이 강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성삼재에 올라서 등산객들에게 제대로 환대와 격려도 좀 받고, 노고단에도 오를 생각이었다.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를 끌고 가는 내내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푸하핫, 태풍도 안 오고 날씨 참 좋네. 이번에는 성삼재에 올라가서 목에 힘 좀 주고 다녀도 되겠군. 백두대간자전거 여행의 마지막이 지리산이라고 등산객들한테 자랑하고 다녀야지!'

나는 시간 계산을 잘못해, 야간주행을 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했지만 당시 마음은 뭔지 모를 뿌듯함이 넘쳤다. 불빛 하나 없는 산 한복판에서 오직 달빛에 의존해 주행하는 것도 '판타스틱'했고, 그런 '판타스틱'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지리산이라는 점도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당시 여행일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해서 그런지 몸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그냥 눈이 감길 정도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상쾌하다. 왜? 이곳은 지리산이니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니까!"(7월 26일 오후 11시 뱀사골 야영장에서)

 

 

 

 


# 땀 뻘뻘 흘리며 페달 밟는데, 옆에서는 맥주가...

다음날. 지리산 산신령께서 단잠을 내려 주셔서 그랬는지, 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까지 잠이 들었다. 여행 막바지라고 여유를 좀 부렸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그곳 지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시간당 이동 거리도 가늠할 수 있었기에 그런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그 전년도의 경험도 한몫했다.

한여름의 지리산은 생기가 흘러넘쳤다. 덩달아 탐방객들이나 캠핑족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러넘쳤다. 달궁 캠핑장을 지날 때였다. 한무리의 가족들이 둘러앉아 수박을 쪼개 먹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도 한 잔 걸치면서... 불타오르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던 나로서는 그런 광경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천하절경 속에서 음식과 술잔이 도니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지만 술 한 잔 받아먹지 못하는 내 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느긋한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서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리산 지리를 안다고 하지만, 야간에 지리산 관통도로를 이동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성삼재에 오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 노고단에서의 아침 첩첩 산 중을 배경으로 한 컷! 일출 즈음이라 그런지 사진이 잘 안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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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에서의 결심 '자랑 좀 해야겠다'

 

 

7월 27일 오후 7시


드디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진입했다. 유명한 달궁 삼거리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관통도로의 경사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팔라졌다.

보통 산행을 할 때 자신의 에너지 중 30%는 비축해놔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비상시라도 체력이 남아 있다면 훨씬 더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행 가이드'는 내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젖 먹던 힘까지 내뿜어야 할 시기였던 것이다.

그냥 등산 배낭을 메고 그 도로를 타고 오르는 것도 힘든데 40kg 정도 되는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그곳을 올라가야 하다니…. 어느 구간은 너무 경사도가 심해서 자전거가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 내 에너지는 0%에 가까웠을 것이다. 에너지 30% 비축론은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성삼재로 향했고, 지리산은 어둠으로 덮였다. 이제 슬슬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도 보이기 시작했다.

'푸하핫, 드디어 내 여행도 끝이 보이는구나. 성삼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분에게 인사하고 여행 자랑 좀 해야지!'

내 발걸음과 블루야크의 바퀴질도 더 분주해졌다. 빨리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노고단이 눈앞에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성삼재 드디어 성삼재에 도달했다. 어두운 시각에 도착했던 터라 사진도 잘 안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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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오후 8시


성삼재에 도착했다. 드디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난 해냈다. 결국 여행의 끝을 본 것이다. 어둠 속 성삼재는 고요했다. 밤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필자는 성삼재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성삼재 이곳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쳤습니다. 여행을 마치자마자 처음으로 뵙는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주차관리소에서 급히 나오셨다. 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자랑은 고사하고 꾸지람부터 듣다니

"안녕하세요."
"아니 이 밤에 여기는 뭐하러 올라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는, 서둘러 쇠사슬로 자동차 진입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뭐해요. 당장 가요."
"……."

역시 또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난 당혹스러웠다. 힘든 여행을 종결짓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소리가 퉁명스러운 꾸짖음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이런 괄시나 당하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지리산에 왔단 말인가? 내 여행이 이렇게 멸시를 당할 정도로 하찮았단 말인가?'

2011년에 태풍을 맞았던 것보다 훨씬 더 억울했다. 그나마 태풍을 맞았을 때는 관리소 직원이 직접 커피를 타주며 필자의 '무사귀환'을 염려해줬다. 그런 고마운 기억이 있었기에 일부러 국립공원 직원분을 찾아 먼저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작은 소망은 퉁명스러운 꾸짖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렇게 혼자 오버 하냐. 뭐 대단한 여행이라고…. 대충 정리하고 빨리 서울 갈 생각이나 해야겠다.'

심신이 다 지쳤다. 그냥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심야고속버스라도 있으면 잡아타고 곧장 서울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지리산 관통도로를 타고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동이 좋은 자동차도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는 '죽음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그곳을 내려간다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야 했다. 그 직원이 퇴거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멸시를 당했더니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걸 어쩌지? 가긴 가야 하는데, 내려갔다가는 바로 골로 갈 텐데….'



▲ 노고단 탐방소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저렇게 노고 할매가 반겨주었다. 사진에서 보여지듯 내 자전거는 해발 1,380m까지 올라갔다.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참 멀리도 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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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가 딱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내려갈 수 없으면 올라가면 되지 않던가? 그냥 노고단으로 가면 되지 않던가?


현재 노고단-성삼재 구간은 임도로 돼 있다. 그래서 1톤 트럭도 통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전거는 통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일몰 후 야간에는 산행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개의 규칙을 어기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한밤중 지리산은 고요했다.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랜턴을 끄고 달빛에 의존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해봤다. 한밤중 지리산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가니 노고단에서 빛나는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어떤 젊은 국립공원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간 산행에, 자전거까지…. 이러시면 안 돼죠. 과태료 딱지를 맞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했다.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규칙을 꼭 지켜주십시오. 어쨌든 여행이 완료된 건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무사히 종료됐다. 성삼재에서 빰 맞고 노고단에서 화풀이 한 경우이지만, 어쨌든 지리산에서 무사히 여행을 종료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 육십령 지리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있는 육십령 고개. 육십령도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고개이다. 지리산까지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지선 개념으로 육십령을 거쳐 남덕유산까지 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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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동안 재미는 없고, 분량만 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덧글. 내 자전거 블루야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인 노고단 탐방소(1380m)에 오른 여행 자전거로 기록될 것이다. 만약 그 주차관리소 직원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블루야크의 고지대 기록은 성삼재(1090m)에서 멈췄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만항재(1330m)다. 한마디로 자전거도 만항재까지밖에 못 올라간다.

 

 

 


 

 

 

 

 

 

 

 

 

 

 

 

 

 

 

 

 

 

 

 

 

 

 

 

 

 

 

 

 

 

 

석불 앞에 서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12] 안동 이천동 석불 앞에서 '깔깔'거리며 웃다

 

 

13.02.21 13:43l최종 업데이트 13.02.21 18:20l
▲ 국제탈춤공연장 안동 시내에 국제탈춤공연장이 있다. 그 입구에 하회탈 석상이 방문객들을 환영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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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4일: 여행 31일차


# 안동 이천동 석불 앞에서 크게 웃어댔다!

누구는 여행을 직접 할 때보다 여행 계획을 꾸릴 때가 더 흥분된다고 한다. 지도를 보며 동선을 그리고 검색을 통해 탐방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 계획을 꾸리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정된 시간과 뻔한 예산을 가진 가난뱅이 여행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다녀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으나 시간과 경비 제약 때문에 가보고 싶은 탐방지를 뺄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난뱅이 여행자들이라면 더 많은 뺄셈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여행자들이 그렇듯, 필자도 절경과 유적지를 양대 축으로 삼아 여행 계획을 수립한다.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풍광에 매혹되고, 또 한편에서는 찬란한 우리 문화유산에 감탄사를 내뱉는다는 말이다. 양대 축을 동시에 누리면 금상첨화겠지만 따로 따로 체험한다고 해도 큰 불만은 없다. 이번 여행기에 소개할 안동 이천동 석불은 후자 쪽에 속할 것이다. 이천동 석불은 감탄사를 유발시키는 훌륭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었던 것이다.

 

 

 

▲ 안동 이천동 석불 멀리서 보면 이천동 석불은 망토를 두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천동 석불은 몸통에 따로 제작한 머리를 올린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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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필자는 이천동 석불 앞에서 '깔깔깔'하고 연신 웃음보를 터뜨렸다. 석불 앞에서 경망스럽게 웃었더니,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필자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그럼 필자는 왜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망동된 행동을 했던 것일까? 혹시 필자는 불교에 대한 존중심이 없던 것이 아닐까?

 


# 거인 같은 고려 전기시대 석불들

전편인 경북 봉화 여행기에서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을 만나 뵙고 왔다고 했다. 청량산에 있는 청량사에서 세상을 시원스럽게 굽어보시는 석불 좌상을 두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 말에 빗대보자면 안동 이천동 석불은 세상을 즐겁게 해주시는 부처님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멀리서 보았을 때 이천동 석불은 망토를 두른 모습이었다. 큰 망토를 두르고 얼굴을 불쑥 내민 형상이었다. 그런 독특한 형상의 석불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엉뚱한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부처님이 누더기 같은 도포를 두르고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고행의 길을 가시다 안동 이천동에서 석상이 되신 것이 아닐까?'

 

▲ 안동 이천동 석불 망토를 두르고 수풀 속에서 그 앞을 지나는 중생들을 굽어 보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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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이천동 석불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석불이다. 몸통 부분과 머리 부분이 별개의 암석으로 제작된 독특한 형상을 갖고 있는 것이 이 석불의 특징이다. 몸통 부분, 즉 필자가 망토를 둘렀다고 지칭한 큰 바위 상단 중앙에 머리 부분을 조각한 별개의 돌을 얹었다는 것이다. 단지 머리 부분만 조각하여 올렸을 뿐인데도 자연석인 몸통 부분이 서로 어우러져 일체형의 거대한 석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석불 제작자의 지혜와 구성 감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안동 이천동 석불은 고려 전기 작품이다. 파주 용미리마애이불입상(일명 파주 쌍미륵 석불)이나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이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석상들이다. 이 시기에 세워진 석불들은 하나 같이 다 엄청난 크기들을 자랑하고 있다. 신체비례에 맞춰 정교함을 구현하는 방식이 아닌, 선이 굵은 방식으로 '키다리 아저씨' 같은 큰 석불을 조각했던 것이다. 일례로 대조사 석불은 인체비례로 따지면 4등신에 가깝고, 얼굴은 '얼큰이'다. 정교성보다는 투박함이, 조화미보다는 개성이 넘치는 석불들이 탄생했던 시기가 바로 고려 전기였던 것이다.

그럼 왜 고려 사람들은 선이 굵으면서 개성이 넘치는 큰 석불들을 제작했을까?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사람들보다 세공기술이 덜 해서 그런 식으로 석불을 제작했단 말인가? 고려 전기 시대에는 마을의 안녕에서부터 개인적 기복까지 다 받아주는 수호신과 같은 '키다리 아저씨'가 대표적인 석불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런 대형 석불들은 해당 지역의 민간 신앙이 접목된 형태라고 한다. 마치 큰 장승을 세운 것처럼 거인 같은 수호신이 마을 입구나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으니 해당 지역 사람들은 얼마나 든든했겠는가?

 

▲ 안동 이천동 석불 안동 이천동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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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쌍미륵과 안동 이천동 석불


더불어 파주 쌍미륵은 잉태까지 '책임'져 준다고 하지 않던가? 파주 쌍미륵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남녀 쌍미륵 형상이라 잉태와 관련된 기도들이 많이 올려진다는 것이다. 즉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부부들이 많이 와서 기원을 드리고 간다고 한다. 실제로 이 쌍미륵과 관련된 설화도 잉태와 관련이 있었다.

파주 쌍미륵도 안동 이천동 석불처럼 자연석을 몸통으로 이용하였고, 얼굴 부위도 따로 제작하여 올렸다고 한다. 쌍미륵이 있는 용미사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쌍미륵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경내에서 그것도 석불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웃는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짓이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스님이었다. 누가 뒤에 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웃었던 것이다.

"쌍석불을 보니까 좋네요. 그냥 보기만 해도 복이 오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 파주 용미리마애이불입상 일명 파주용미리석불입상 또는 쌍미륵석불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쌍둥 석불 형식을 띄고 있다. 왼쪽에 원립불을 쓰고 있는 상은 손에 연꽃을 들었는데 남성을 뜻한다고 한다. 오른쪽 방립불을 쓰고, 손을 합장한 상은 여성을 뜻한다고 한다. 원립불은 말그대로 둥근 모자 형태이고, 방립모는 그에 비해 각이 진 모자 형태라고 한다. 용미리마애이불입상은 보물 93호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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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이천동 석불 이천동 석불이 있는 곳은 제비원이라는 하여, 조선시대 국영여관이 있었던 곳이다. 즉 석불이 세워진 제비원 일대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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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짓을 했지만 웃음소리가 나쁘지 않게 들렸는지, 스님은 필자를 꾸짖지 않고 그냥 거처로 돌아가셨다. 필자는 그런 큰 웃음을 안동 이천동 석불 앞에서도 터뜨리고 만 것이다. 망토를 두른 듯한 모습이 재밌었고, 수풀 사이로 몸을 쑤욱 내민 듯한 모습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하느라 심신이 다 지쳐있었지만 석불을 보고 있을 때만큼은 근심 걱정을 다 내려놓고 크게 웃었다.

그런 '불경'한 모습을 보고 어떤 불심이 깊은 분이 손가락질을 해댔지만 필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마을의 수호신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석불 앞에서 경망스럽게 '깔깔'거리며 웃었던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안동 이천동 석불이 준 큰 기쁨 덕택에 나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계속 해서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천동 석불을 보기 위해 거의 20Km 이상을 돌아갔지만 200Km 이상을 갈 수 있는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충전시킨 느낌이었다.

글을 마치기 전에 4대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잠깐 언급해 보겠다.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4대강에 대해서, 필자까지 나서서 왈가불가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가 스스로 느낀 감상 정도만 언급해 보겠다.

필자는 경북 안동에서부터 구미까지 낙동강 자전거도로를 타고 이동을 했다. 필자는 예전부터 국토를 종단하는 자전거 도로가 하나 개설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자전거도로든 도보여행길이든 무동력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이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개설됐으면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의 부속시설로 만들어진 현재의 4대강 자전거도로 방식은 반대한다. 필자가 직접 주행을 한 결과 4대강 자전거도로는 안전성이 결여된 구간이 상당히 많았다. 4대강을 중심축에 두고 억지로 설계를 해서 그랬는지 급경사가 다반사였다. 기존의 산길과 농로길을 끌어 와서 4대강 자전거도로 탈바꿈을 시키느라 그런 무리수가 나왔던 것으로 판단된다. 급경사가 진 농로길은 굴곡이 심한 일반국도 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도로폭이 좁을뿐더러 안전시설물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를 가장 당혹시켰던 것은 강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보였다. 그런 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아름다운 이곳에 이런 시설물이 있어야 하지? 굳이 이런 시설물이 여기 있을 필요가 있을까?'

자연석을 이용하여 석불을 제작함으로써 주위사물들과 혼연일체가 된 안동 이천동 석불을 보다 '쌩뚱맞게' 낙동강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입맛이 무척 씁쓸했다.

 
▲ 낙단보 경북 군위군에 위치한 낙단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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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낙동강 상류의 사진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보를 쌓고, 콘크리트를 바르면서 4대강이 친환경적이라고 하면 그걸 누가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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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을 만나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11] 경북 봉화 여행기②

13.02.02 09:56l최종 업데이트 13.02.02 09:56l
▲ 청량사 청량산 중턱에 있는 청량사. 사찰 한 가운데에는 석탑과 함께 부처님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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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사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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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하늘다리에서 스릴을 즐기다!

 

다음날.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정신없이 잠에 빠져 있었는지 늦잠을 잔 것이다. 세면을 하고 난 후에 어제 내가 '물아일체'를 했던 곳을 찾아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그 곳을 찾았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는 좀 움푹 파인 곳처럼 보였다. 선녀탕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충의 틀은 나왔다. 그래서 난 내식대로 이름을 지어보았다. 신선탕으로.

그런데 신선탕 주변에 쓰레기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누군가가 먹다 남은 술병과 안주거리들을 그대로 놓고 간 것이다. 어제밤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난 좀 짜증이 났다. 자연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유명관광지 티'를 내고 갔기 때문이었다. 어떤이들이 '유명관광지 티'를 내던 곳에서 난 좋다고 물아일체를 했던 것이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청량사 산들이 병풍처럼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부처님이 계신 곳은 주위가 확 트여 있어, 풍광이 시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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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까지 와서 등산을 하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와 텐트를 잘 놓아두고 등산 버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등산을 하기 전에 신선탕 근처에 있는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갔다. 내가 전날 물아일체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풍기문란도 했기에 그 벌로 환경미화를 자청했던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즐겼던 만큼 남들도 재밌게 놀 수 있게 뒷정리를 깨끗이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청량산도 국립공원 클럽의 물망에 오를 정도로 절경을 뽐내는 산이다. 낙동강 상류와 어우러진 청량산의 모습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산 중턱에 있는 청량사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도 만나 뵐 수 있다.

한편 청량산에는 하늘다리가 있다. 그 곳에 서면 자신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산바람이 세게 분다. 스릴을 느끼고 싶지만 번지점프를 할 용기가 나지 않는 분들은 청량산 하늘다리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가 구름다리를 통과할 때, 갑작스럽게 돌풍이 불었는데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다리가 요동을 쳤다. 스릴 만점이었다.

 

 

▲ 청량산 하늘다리 저 하늘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스릴이 넘친다. 다리를 건널때 강력한 횡풍이 불면 그 스릴감은 공포감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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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산 하늘다리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고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의 계곡'에 하늘다리를 걸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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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물귀신, 오늘은 고기귀신의 유혹에 넘어가다!


즐겁게 청량산 산행을 마치고 난 후, 필자가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경이었다. 그런데 내 베이스캠프 옆쪽에 승용차와 함께 작은 텐트가 하나 쳐져 있었고, 수염을 기른 어떤 아저씨가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겹살을 굽는지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내 코를 자극시켰다. 어제는 물귀신이 나를 유혹하더니만 오늘은 고기귀신이 나를 유혹하나?

"자전거여행 다니시나 봐요? 여기 와서 같이 식사 하시겠어요?"

서울에서 봉화군으로 귀농을 하셨다는 분이셨다. 자신도 젊었을 때 자전거여행을 많이 다녔던 터라 자전거 여행족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했다.

"아참, 아까 저 아래에서 쓰레기를 줍던데..."
"그거요. 제가 먹은 건 아니고요. 그냥 보기 흉해서 제가 환경미화 좀 했죠."
"아, 역시 그랬구나! 진짜 자전거여행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야."

별 뜻 없이 쓰레기를 주었을 뿐인데, 그 덕에 난 푸짐하게 삼겹살과 술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착한 일을 해서 내가 상을 받았던 것일까? 그 귀농아저씨도 그날 같이 캠핑을 했다. 젊은 시절 캠핑을 자주했던 분이라 귀농 이후에도 종종 캠핑을 해오셨다고 한다.

"그 팔각정 명당자리에요. 그 자리 내가 좋아하는 자리인데..."

알고 보니 내가 아저씨의 명당자리를 '선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량산 등반에서 오는 피로감에다 푸짐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받았더니 노곤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은 자리에 눕자마자 그냥 눈이 감겼던 것 같다.

다음날.

 


그토록 예쁘게 안개가 낀 산을, 난 난생처음 보았다. 낙동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청량산 봉우리들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장관중의 장관이었다. 마치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맛에 강변 캠핑을 하는 거구나!

그렇게 진기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뒤로 하고 나는 계속 자전거여행을 이어갔다. 외롭고 힘든 길이었지만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으니, 난 행운아였던 셈이다.

 

▲ 차 한 잔 청량사 같은 고즈넉한 사찰에서 느긋하게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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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사 청량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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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해가 졌네"... 이럴 때 최고의 야영지는?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10] 경북 봉화 여행기①

 

13.02.01 11:01l최종 업데이트 13.02.01 13:24l

 

 

 

 

 

 

 

▲ 낙동강과 청량산 필자가 봉화를 방문했을 때는 장마철이라 그랬는지 무척 유량이 풍부했다. 물소리가 아주 거세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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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낙동강은 청량산을 굽이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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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바라보면서 잠이 드는 것처럼 로맨틱한 '굿나잇'이 또 있을까? 나는 바다도 좋아하지만 강변에서의 하룻밤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는 강변이 갖고 있는 아기자기함 때문이다. 난 광활한 망망대해를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 주는 각성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독여 주는 입체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강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 강촌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모꼬지를 가고, 캔 맥주 하나 들고 홀로 한강에 나가 실연의 아픔을 강물에 실어 보내고...


이런 강변에 산이 어우러지면 그 입체성은 더욱더 강조될 것이다. 경쾌하게 흐르는 강물 소리에 산 새 소리가 어우러지면, 최소한 사운드면에서는 이미 무릉도원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이번 여행기는 강변 캠핑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매일같이 텐트를 쳤다. 한계령 도로 정상에서 텐트를 쳤고, 울릉도 북면 천부항에도 쳤다. 또 수많은 초등학교와 폐교, 개활지에도 쳤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최고의 캠핑지에 대한 순위가 매겨졌다. 그럼 최고의 캠핑지 1순위는 어디일까.

 

 





▲ 청량산 베이스캠프 낙동강가에 세운 청량산 베이스캠프. 청량산을 병풍 삼고, 낙동강 끌어 안을 수 있었던 최고의 캠핑지였다! 한편 저렇게 정자 아래에 텐트를 치니 밤새 비가 내려도 물난리를 겪을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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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베이스캠프

 

당시 나는 경북 봉화를 거쳐 안동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강원도 태백을 통해 봉화군으로 입성을 했는데, 내가 보기에 봉화는 행정상으로는 경상북도이지만 지형적으로는 강원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험준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봉화지역은 '심산유곡'의 절경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명소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명호면에 있는 낙동강시발지공원에서부터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까지의 길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병풍처럼 서 있는 청량산을 따라 낙동강이 시원하게 내달리는 모습은 장관 중에 장관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근처에 캠핑장이 있나요?"

나는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청했다. 낙동강과 청량산이 뽐내는 절경을 카메라로 담아내느라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그러다 덜컥 일몰 시간을 맞았기 때문. 설상가상이라고 그때 빗줄기가 한 두 방울씩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 여기는 근처에 캠핑장이 없는데... 여유가 있으면 민박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비수기라 민박 요금이 비싸지는 않을 텐데요."

자신도 아웃도어를 무척 좋아한다고 밝힌, 관리사무소의 한 젊은 직원은 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비수기에는 민박 요금이 비싸지 않다고 하지만, 내게는 비쌌다. 하루를 만 원으로 버텼던 내게 5만 원 짜리 펜션 숙박은 사치였기 때문이었다.

"아참,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여기에서 쭈욱 가다보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비를 막을 수 있는 오두막이 있거든요. 거기다가 텐트를 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장마철이라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요."

 

 


 

▲ 청량산 도립공원 주자창 필자가 청량산을 방문했을 때는 장마철이라 그랬는지 주자창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최고의 캠핑을 즐길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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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아웃도어 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러면서 손수 커피 한 잔을 타서 내게 건네주었다. 역시 아웃도어를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다르긴 다른 듯싶었다.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자칫하면 숙소도 못 잡고 노숙을 할 판이었는데 말이다. 시골 인심에 아웃도어 인심까지 더해진 행운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의존하여 그 직원이 알려준 곳을 찾아갔다. 그 곳은 팔각정 같은 곳으로 나무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해두고 있었다. 좋은 풍광을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장소인 듯싶었지만 내 시야는 가로등 불빛 너머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주위 풍광만 지레짐작 할 수밖에 없었다. 난 서둘러 의자와 테이블을 한 쪽으로 몰아 텐트 칠 공간을 마련했다. 그것들이 돌처럼 무거워서 힘을 좀 쓴 후에야 그럭저럭 비가 들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드디어 나의 '청량산 베이스캠프'가 완성될 수 있었다.

 

▲ 청량폭포 등산로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량폭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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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프팅 낙동강 상류는 물살이 급해 래프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청량산 도립공원 인근에는 래프팅 업체들이 산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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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 템플스테이 발우 공양 문화를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⑨] 태백산 2편

13.01.02 08:35l최종 업데이트 13.01.02 08:35l

 

 

 

 

 

 

▲ 태백산캠핑장 일명 당골캠핑장이라고도 불린다. 아침에 눈을 뜬 후, 바라보는 태백산의 전경이 일품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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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태백산캠핑장에서 3일을 머물렀다. 이번편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다.


# 물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는 태백산 캠핑장

"야영비 받으러 왔습니다."

태백산 산신령님이 달콤한 잠을 내려 단잠에 빠져 있는데, 아침부터 누가 돈 타령을 하고 있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내일 받으러 와요."
"..."

나는 당골매표소 아래쪽에 위치한 태백산캠핑장(일명 당골야영장)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당시가 장마철이라서 그랬는지 캠핑장에는 야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화장실 문을 잠가 놓고 샤워를 했다. 원래는 캠핑장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놈의 돈이 원수지!

필자가 보기에 태백산 캠핑장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내부는 숲이 둘러싸고 있고, 외부는 산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말 그대로 숲 속에서 캠핑을 하는 식이었다. 또 캠핑장 옆으로 당골천이 흐르고 있어, 밤에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잠자리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작은 소음에도 잠을 뒤척일 수 있지만 태백산 캠핑장은 당골천이 소음을 중화시키기에, 민감한 사람도 비교적 편하게 취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밤에 산 새 소리와 함께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핑장이라면, 정말 좋은 캠핑장이 아니겠는가? 물론 갈수기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태백산 베이스캠프 저렇게 태백산캠핑장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참 단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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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텐트 내 텐트와 비교하면 저 텐트는 궁궐 같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나도 저런 멋진 텐트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

 

 

 

 

 


그렇게 좋은 태백산 캠핑장에서 필자는 3일을 머물렀다. 하지만 돈 한푼 안냈다. 처음 수금하러 온 이후에는 징수원들이 다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규칙을 위반하고, 사용료도 지불하지 않는 등 민폐를 끼쳤다고 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필자는 민폐를 끼쳤으면 그만큼의 값을 한다.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했고, 캠핑장 식수대를 말끔히 치웠다.

어느 캠핑장을 가나 식수대는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로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퇴수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찌꺼기들을 손으로 직접 다 끄집어내, 퇴수가 잘 되도록 하고 나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행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골든보이 캠핑장에 가면 색다른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 '골든보이' 이 친구도 태백산캠핑장에서 만났다. 그는 3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여행했다고 한다. 3개월 동안 강원도를 돌아다닌 터라 그의 허벅지는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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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장에 템플스테이 식문화를 이식시키자


한편 그 음식물 찌꺼기는 필자가 버린 것이 아니었다. 음식물을 왜 남기는가? 넉넉히 먹고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캠퍼들이 종종 눈에 보인다. 숨 가쁜 도시생활을 벗어나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은 정말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의 안락함을 캠핑에서까지 이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필자는 답답함부터 느낀다.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 주말 섹션에 겨울캠핑과 관련하여 전기장판에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됐다. 필자는 그 기사를 보고 혀를 찼다.

'과연 이 엄동설한에 뭐 하러 전기장판까지 준비해서 캠핑에 나서는가? 전기 꼽을 곳은 있나? 그렇게 갖출 거 다 갖추고 싶으면, 동네 찜질방에서 몸을 지지는 게 최고일 텐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캠핑시장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그런가?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캠퍼들이 기본적인 캠핑 매너도 안 지키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같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캠핑장을 애용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캠핑장 사용을 매우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다음 일정을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먹고, 마시자, 죽자'라는 캠퍼들의 소음에 새벽까지 잠을 설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 태백산 캠핑장 필자가 손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끄집어 낸 식수대. 그 뒤로 필자가 몰래 샤워를 한 화장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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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최첨단 장비에 걸맞게 캠핑문화도 최첨단으로 향상 시킬 때가 됐다. 성숙한 캠핑문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할 때가 됐다. 이제 캠핑장에서는 좀 덜 먹고, 덜 마시는 분위기가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 같아서는 '템플스테이'와 같은 식문화와 정숙함이 전국 캠핑장에 만발했으면 좋겠다. 이건 너무 급진적인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이 있다. 캠핑장에서 수금 징수원을 가장해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기꾼들이 있으니 주의를 요망한다. 대규모 캠핑장 같은 경우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기에 사기꾼들의 좋은 활동처가 되곤 한다. 그들은 캠핑장 직원과 동일한 복장과 동일한 영수증 용지를 들고 다니며 캠퍼들을 현혹시킨다. 그런 사기에 넘어간 캠퍼들은 사기꾼과 정식 수금요원에게 두 번 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캠핑의 낭만은 사라지고 불쾌지수만 높아질 것이다.

 

 

 
▲ 백캠핑 대형오토 캠핑도 좋지만 요즘은 호젓하게 백캠핑을 하는 캠퍼들도 많이 늘어났다. 백캠핑은 배낭에다 캠핑장비를 짊어 지고 다니며, 캠핑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백캠핑의 관건은 짐의 경량화에 달려 있다. 필자가 행한 캠핑도 백캠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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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비를 받아서 얼마나 남겠냐고, 의문을 표시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형텐트의 경우는 통상 2만 원 정도의 요금을 지불한다. 그런 텐트가 10동 이상 있다고 생각해보시라. 한 시간도 안 되서 사기꾼들은 수십 만원을 챙길 수가 있는 셈이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캠퍼 자신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가지 팁을 제시해 본다.


1. 영수증을 꼭 확인한다.
2. 징수원의 직원증을 확인한다.
3. 쓰레기봉투를 요청한다.

2번 직원증 확인의 경우는 쉽지 않다. 수금요원이 직원증이 없는 단순 아르바이트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면, 사전에 캠핑장 관리사무소의 전화번호를 메모해뒀다가 전화를 걸어 수금 요원의 신분을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요즘은 웬만한 대형캠핑장은 사용료를 지불하면 해당 지자체에서 발행한 쓰레기봉투를 지급하니, 쓰레기봉투 지급여부도 잘 확인을 해보면 가짜 징수원들의 사기 행각의 덫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캠핑장 요금도 안 내고 도망간 주제에 말이 많다고, 아직도 필자를 질책할 분이 있을지 모른다. 여행이 다 그런 거지 뭐. 여행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그리고 캠핑장 팁도 알려드렸으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캠핑 적기에 맞춰 이런 팁을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엄동설한에 이런 글을 쓰니, 필자도 그게 참 아쉽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8편]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

태백산여행기 1편

 

 

12.12.31 20:23l최종 업데이트 12.12.31 20:23l

 

 

 

 

▲ 태백산 주목 죽은 것 중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있을까? 죽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흉하게 썩고 만다. 그건 식물도 마찬가지다. 죽은 나무는 껍질이 썩어들어가 종국에는 흰개미가 득실거리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그래서 썩은 나무는 땔감용으로 쓰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태백산 주목은 다르다. 오히려 죽어서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 같다. 죽어서 더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 같다. 생(生)과 사(死)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태백산 주목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든다. '혹시 태백산의 진짜 산신령은 주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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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은 언제 국립공원으로 승격을 할까?

지난 7월 5일, 울릉도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온 나는 '태백산 산신령'을 만나러 강원도 태백시로 향했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 개천절이면 산 정상부에 있는 천제단에서 단군을 위해 제례를 들이는 곳. 예로부터 계룡산과 더불어 민간신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곳. 신라 오악(五嶽) 중 하나로 북악(北嶽)이라 불렸던 곳. 이렇듯 태백산(1567m)은 예로부터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축적되어 온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태백산이, 국립공원이 아닌 도립공원 '품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뻘인 소백산(1440m)도 국립공원인데 태백산이 아직도 도립공원으로 묶여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의문을 표하는 사람 중에 필자도 포함되어 있다.

특정 지역의 국립공원 지정은 첨예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교통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이해관계 중에서 단연 두드러진 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 제약이다. 군립공원보다는 도립공원이, 도립공원보다는 국립공원이 더 많은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 망경사 용정 당골매표소에서 천제단 방면으로 오르다보면 8부 능선 즈음에 망경사가 나온다. 망경사 옆쪽으는 '용정'이라는 시원한 샘물이 있다. 한편 사진 오른쪽에 있는 가부좌를 튼 보살상이 이채롭다. 용정에서 조금만 더 오르다보면, 단종 임금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단종비각에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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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은 국립공원, 태백산은 도립공원 


지난 12월 27일에 지정된 21번째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국립공원이 지정된 해는 1988년이다. 그해, 변산반도와 월출산이 지정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이 1967년에 지정됐고 20호인 월출산이 1988년에 지정됐으니, 21년 만에 무려 20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 24년 동안 새로운 국립공원 지정이 전무했던 것은 시대상황의 변화 때문으로 판단된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같은 권위주의적인 정권하에서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을 거라는 건 불 보듯 빤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로는 재산권 행사와 관련해서 국민들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국립공원 지정에 대한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그 수위가 높아졌을 거라는 걸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2월 27일에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경우는 참 반가운 사례다. 서울의 북한산과 더불어 무등산은 광주광역시라는 대도시에 인접해 있는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순번 대기를 하고 있는 국립공원 후보군들이 재산권 제약이라는 난관을 뚫고 '국립공원 클럽'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을 무등산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번호표를 뽑고 '국립공원 클럽' 앞에서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 몇 명 보인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린 '녀석'은 단연 태백산이다. 도대체 언제쯤 태백산은 국립공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 태백산 주목 이 사진을 보니 비룡이 용솟음 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장면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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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서도 아름다운 태백산 주목
 


태백산은 태백시내에서 약 5~6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강원도에 있는 다른 큰 산들에 비해 접근성이 더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태백시내에서  도립공원 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운행을 하는데, 그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하면 바로 등산로에 진입할 수 있다.

태백산의 등산로는 잘 정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매표소 입구에서 부지런히 걸으면 정상까지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당골매표소-반재-망경사-단종비각-천제단 코스가 바로 그것이다. 하산을 할 때면 그 반대편인 유일사매표사 코스로 내려가면 되는데 그 코스도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태백산 산 정상부는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그 능선길 양 옆으로는 장구한 세월을 올곧게 서 있는 주목들이 있다. 그 중에서 단연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목의 고사목들이다.

주목은 색깔이 붉다고 하여 적목(赤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생하는 고산 식물이다. 그래서 백두대간 고산 지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편, 주목은 가장 오래 사는 식물들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또 주목은 한약재로 쓰이는 좋은 나무라고 한다. 주목이 약재에 좋은 나무라는 것이 잘 알려져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많이 벌목이 됐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소백산 정상에 있는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 태백산 주목 이 주목은 큰 수사슴의 뿔처럼 여겨진다. 이 기사가 발행되는 시점이 한겨울이라 태백산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주목 사진이 더 시의성에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새해 2013년을 기약하는 마음과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사진을 바라본다면, 그것 자체로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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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이 오래 살고, 약재에도 좋다고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그저 '죽은 주목'만이 눈에 뛸 뿐이었다. 왜? 주목의 고사목처럼 죽어서 아름다운 나무들은 거의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죽었지만 주목의 올 곧은 자태는 태백산의 정기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도 등산 중에 나무를 몇 그루 쓰러뜨린 적이 있다. 필자가 힘이 센 '슈퍼맨 나무꾼'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두께가 얇은 나무는 죽으면 쉽게 쓰러진다. 그 쓰러질 타이밍에 필자가 손을 댔던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 우쭐해 하며 내 힘 자랑을 떠벌렸다. 산행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보고 나를 진짜 슈퍼맨으로 알겠지만 노련한 등산가들은 필자를 허풍쟁이로 몰아붙일 것이다.

이렇듯 죽은 나무는 가벼운 외부 충격에도 제 본 모습을 잃고 흉하게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죽은 나무는 땔감용으로 쓰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태백산 정상에 서 있는 주목 고사목들은 기품이 있었다. 죽었으나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은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주목의 자태를 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죽어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있구나! 혹시 태백산 산신령이 있다면 이 주목들이 아닐까?'

 

 



▲ 태백산 천제단 태백산은 태고적부터 우리조상들이 신성시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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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 그런 신성스러운 공간에 필자가 올랐다. 자전거는 저 산 아래 태백산캠핑장에 주차시켜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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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의 산신령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태백산은 우리민간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속설에 의하면 태백산이 내뿜는 기가 매우 강렬하여 무속인들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샛길로 빠졌는데, 그 곳에서 형형색색의 비단으로 치장한 나무 성황단을 만나게 됐다. 그곳은 그나마 있던 샛길도 끝나는 후미진 곳에 있던 나무 성황단이었다.

아무래도 태백산 산신령을 모시기 위한 제단처럼 여겨졌다. 제단이 후미진 곳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아지트와 같은 곳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제단에는 지폐 몇 장과 동전이 쌓여 있었다. 싹 쓸어 담으면 한 2만 원 돈 이상이 되는 듯했다.

 



▲ 나무 성황단 태백산은 계룡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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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한테는 죄송한데, 저걸 가져다 여행 경비로 써? 어차피 지폐는 비 맞고 하면 훼손 되잖아. 이참에 한 번 조폐공

사에서 감사패 한 번 받아봐?'

그 순간 갑자기 푸드득 거리며 내 앞으로 새가 한 마리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좀 놀랐다. 아무래도 그 짓을 하지 말라는 '산신령의 계시'인 것 같았다. 뒤가 밟혔던 나는 돈은 그대로 두고, 제단 주위에 있는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웠다. 그리고는 생수 하나를 개봉하여 정화수로 올렸다. 괜히 제단에 있는 재물을 탐했다가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하긴 앞으로도 수많은 '백두대간 산신령'들을 만나뵐 텐데 괜히 거기서 밑보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 태백산은 참 복받은 산 등산 중에 배수로 작업을 하시는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도립공원 직원이 아니었다. 그냥 자진해서 등산로 배수로 작업을 하시고 계셨다. 그냥 태백산이 좋아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작업을 하신다고 했다. 극구 사진 찍는 걸 원하지 않으셨지만 난 살짝 '몰카'를 찍었다. 그러고보면 태백산은 참 복 받은 산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분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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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도 울릉도를 여행할 권리가 있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7편] 울릉도 여행 가이드

 

 

12.11.19 11:47l최종 업데이트 12.12.07 15:36l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에서 바라보는 울릉도 북면 일대의 해안선. 눈도 마음도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오른쪽 방면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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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하등대 모노레일을 타고 태하등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태하등대가 있는 서면 부근은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태하등대에서 그 유명한 태하 낙조를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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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는 울릉도 여행에서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본다. 또 필자가 추천하는 저렴하게 울릉도를 여행하는 방법도 소개해본다.

 


# 기억에 남을 명소: 태하 등대와 대풍감

하지만 필자는 7일이나 머물렀지만 울릉도 곳곳을 다 다녀보지 못했다. 아무리 자전거여행이라고 해도, 통상적인 울릉도여행이 2박3일인 것을 감안하면 좀 오래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울릉도의 지붕인 성인봉도 못 가봤다. 입산을 하려고 나리분지까지 갔었는데 마침 그때 비가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울릉도의 구석구석까지 다 탐방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몇몇 곳을 소개해보겠다.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서면 태하 대풍감이다. 이곳은 태하 등대가 있는 곳인데 한 아웃도어 잡지에서 우리나라의 10대 비경으로 꼽은 곳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사실 필자는 아직까지도 태하 대풍감이 눈에 아른거린다. 대풍(待風)은 '바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큰 바람이라는 대풍(大風)으로 뜻을 고쳐도 무방할 만큼 태하 대풍감 일대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었다.

그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깎아질 듯한 절벽 위에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시라! 그런 해안 절벽은 암벽타기를 하지 않는 이상 도저히 육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런 해안절벽 위로 유유히 갈매기 떼들이 춤을 추듯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시라! 진짜 태하 대풍감은 그런 상상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울릉도의 곳곳이 다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곳만을 찍으라고 하면 태하 대풍감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의 왼쪽편 해안선이다. 깎아지는 듯한 해안절벽이 자아내는 풍광은 한마디로 명품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위를 유유히 비행하고 있던 갈매기들이 부러웠다. 저런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삼아 날개짓을 할 수 있는 울릉도 갈매기들은 정말 복받은 갈매기들이다. 한편 태하대풍감은 천연기념물 제49호 '대풍감향나무'의 자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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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 등대까지는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서 왕복비용 4000원만 지불하면, 그곳까지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탑승하지 않아도 그 곳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해발 309미터를 6분 만에 주파하는 모노레일을 타는 게 체력에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태하를 위시한 서면과 북면 지역의 일몰도 장관 중에 장관이다. 노을이 지는 서편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은 육지의 일몰 명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듯했다. 어둠 속에 붉게 채색된 일몰이 스며드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묘한 황홀감까지 들 정도였다. 필자는 그 광경을 울릉도 군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았다. 운이 좋았는지 시간대가 맞았는데, 그 버스는 내게 일몰을 감상하는 '관광버스'가 된 셈이다.

 

 



▲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이다. 석포전망대에 오르면 저런 멋진 풍광들을 볼 수 있다. 한편 관음도에는 다리가 놓였지만, 필자가 입구에 갔을 때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관음도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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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을 명소: 석포

두 번째 추천할 곳은 북면 석포리 일대다. 석포는 울릉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석포의 해안도로에서는 삼선암이나 딴바위 같은 큰바위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고, 전망대에 오르면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기암괴석과 항구가 어우러진 북면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석포 전망대는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석포전망대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망루로 쓰였다고 한다. 석포에는 전망대가 하나 더 있는데 그 곳은 '석포독도전망대'라고 불린다.

석포전망대는 두루봉(281m) 일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해안가에서 올라가려면 좀 시간도 걸리고 힘도 많이 든다. 태하 대풍감처럼 모노레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석포전망대에 올라서면 호젓하게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그 길을 걷다보면 멀리 있는 관음도의 모습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 북면 석포 인근의 해안가 석포 인근에는 삼선암이나 딴바위 같은 큰 바위들이 해안도로 주변에 위치해 있다. 사진에 나오는 '물개바위'도 석포 일대에서 볼 수 있다. '물개바위' 뒤편으로 보이는 섬은 관음도이다. 석포전망대에서 보는 관음도의 풍광은 일품이었다. 한편 '물개바위'는 필자가 임의적으로 네이밍을 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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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을 항로: 섬목-저동 간 여객선

석포 독도 전망대 아래쪽으로 하산을 하면 섬목항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섬목-저동 간 여객선이 운항을 했다. 앞선 여행기에도 언급했듯이 울릉도 일주도로는 섬목-저동 간의 구간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섬목까지 탐방한 사람들은 차를 돌려 왔던 길을 고스란히 돌아가야 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야 느긋하지만, 나같이 철TB에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무시무시한 항목령에서 '시시포스 놀이'를 또 하라고! 시시포스 놀이는 한 번으로 족했다. 섬목-저동 간의 여객선을 타면 느긋하게 저동항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탑재도 가능한 여객선이라 자전거 탑승은 문제 없었다. 배 삯은 1인당 5000원이었고, 자전거는 3000원의 추가 운임을 받았다. 전남 완도-청산도의 여객선 운항거리가 30km 정도이고 배 삯이 8000원 안팎인 것에 비하면 섬목-저동 간의 배 삯은 좀 비싼 편이다. 총 운항거리가 10Km도 안 되기 때문이다.

 

 



▲ 섬목-저동간의 여객선 울릉도 일주도로는 섬목에서 끊긴다. 그래서 울릉도 동북쪽인 섬목에서 읍사무소가 있는 도동까지 가려면, 왔던길을 다시 또 가야 한다. 하지만 저 배를 타면 저동항까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배를 타면서 아름다운 울릉도의 동쪽 해안을 느긋하게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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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섬목-저동 간의 여객선을 타보라고 권해드린다. 바닷가 위에 우뚝 솟은 울릉도의 기암절벽들을 스쳐지나가듯 배를 타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가며 울릉도 동쪽 해안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 배를 타고 가면, 왜 아직까지 섬목-저동 구간 도로가 개설되지 않은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 곳은 지형이 험하다. 다시 말하면 그런 해안가 기암괴석들을 배를 타고 느긋하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석포에서는 산길을 따라 내수전으로 갈 수 있다. 석포와 내수전을 잇는 산길은 동편 울릉둘레길이다. 동편 울릉둘레길을 따라가면 정매화골을 지난다. 내수전에도  전망대가 있는데 이름하여 '내수전 일출전망대'라고 불린다. 내수전 코스도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울릉도의 절경 중에 한 곳으로 꼽힌다.

 

 

 


#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팁

필자는 2012년 6월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울릉도에 머물렀다. 6월 29일까지 쓴 비용은 29만7000원이었다. 이를 다시 울릉도에서만 지출한 비용을 계산해보니 19만6000원이었다. 여기에 강릉-울릉도 여객선 왕복요금인 9만8000원을 빼보니 9만8000원이 되었다. 즉 약 7일간 울릉도에 있으면서 9만8000원으로 여행을 한 것이다. 이 비용에는 태하 모노레일 비용, 섬목-저동 구간 배 삯, 울릉도 군내버스 비용 등이 다 포함된 것이다.

물론 필자는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으며 여행을 하는 터라 위와 같은 저렴한 비용으로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저렇게 가난뱅이처럼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울릉도 탐방에 대한 팁을 드리려고 한다.

울릉도는 숙박이나 음식점의 90%가 울릉읍 저동-도동-사동에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읍내를 빠져나오면 호젓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울릉도도 성수기 시즌에는 민박 잡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성수기 시즌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 중심가만 빠져나오면 텐트 칠 곳은 아주 많기에 캠핑 장비를 완비했다면 여름에도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 울릉도의 단방향터널 울릉도 남부지역 해안가도로에는 단방향터널이 상당히 많았다. 단방향터널 앞에는 신호등이 있어, 양측방면의 차량소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신호를 제때 받으면 저런 터널을 몇개씩 통과했기에 차들이 터널 안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도보로 터널을 넘어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입구가 흰색인 단방향터널 3개를 동시에 렌즈 속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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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그래서 울릉도의 일주도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일주도로가 해안가를 끼고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주도로를 걷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일주도로가 걷기에 편한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보면 입출입이 한 곳인 단방향 터널이 나온다. 그런 터널을 걸어서 넘어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필자는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넘었는데, 어찌나 차들이 빨리 다니는지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울릉도에는 단방향 터널이 여러 곳이 있는데, 신호를 잘 받으면 한 번에 여러 터널을 쉽게 건널 수 있는 구조였다. 반면 신호를 놓치면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터널에서 차들이 빨리 지나갔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도보로 터널을 지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해안가 걷기는 북면 일대가 최적이었다. 내가 시시포스 놀이를 했던 항목령을 넘으면 북면 현포항이 나온다. 이곳부터 섬목까지는 걷기도 좋고, 풍광도 멋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코끼리 바위나 삼선암, 관음도 같은 멋진 풍광을 시원스럽게 볼 수 있다.

울릉도는 버스 운행이 자주 있는 터라 버스와 도보를 결합하는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버스가 1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데 시골버스치고는 상당히 자주 운행하는 편이다. 중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다음 관광지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여행 중에 만난 대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 태하 산책길에서 서면 태하 모노레일 인근에는 소라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타고 오르면 해안산책길을 만날 수 있다. 바위투성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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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요금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울릉도 시내버스의 기점인 도동 읍사무소 입구에서 북면 면사무소 소재지인 천부까지 거리는 30Km가 넘는다.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6월 26일(여행13일차)에 나는 천부항 인근에 텐트와 자전거를 주차해 놓고 도동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앞서 언급한 '일몰 관광버스'를 이용했던 것이다. 당시 왕복요금으로 3000원 정도를 지불했으니 무척 저렴하게 여행했던 셈이다.

다른 지역의 시골버스 같은 경우는, 30Km 이상 이동했으면 편도 요금만 3000원이 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울릉도 버스-도보를 결합한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면 굳이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고도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이런 방식은 단독이거나 소규모 팀으로 움직여야 가능할 것이다. 

걷기를 하다 식사를 못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울릉도의 경우 면소재지 정도에 가야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전거여행 중에 거의 매일 5끼를 먹었다. 영양보충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중에 3식은 시리얼과 두유로 해결을 했다. 우유보다는 두유가 보관하기가 편하고 유통기간이 길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니 무척 간편했다. 또 시리얼과 두유를 섭취하면 영양공급 문제가 해결이 되는 장점도 있었다.

 

 


▲ 내수전 가는 길 저동항에서 내수전 가는 길이다. 내수전 전망대에 오르면 바닷가 쪽으로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죽도를 볼 수 있고 내륙 쪽으로는 성인봉 일대를 바라볼 수 있다. 필자가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있어 원활한 관찰을 할 수 없었다. 사진 중앙에 조그맣게 있는 섬은 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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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하는 여행, 맛집도 다니고 그래야 하지 않냐고? 맛집 기행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무슨 재미냐고? 혼자 몸으로 식당에 들어가면 식당 주인이 별로 안 좋아한다. 서울이야 혼자 밥먹는 사람도 많지만 유명관광지는 단체손님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냥 눈치 보면서 밥먹는 것보다 시리얼로 때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끼 식사 정도는 그런 식의 행동식을 섭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맛집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남이 맛있다고 해도 나한테는 별로일 수 있는 게  음식이다. 음식 맛이라는 건 매우 주관적인 개념 아니겠는가?

전쟁 때는 주먹밥 먹고도 전투를 잘 했다고 하지 않던가! 주먹밥보다는 두유나 우유에 시리얼 둥둥 띄어서 먹는 게 더 맛있을 것이다. 가난뱅이 여행자라면 이런 정도는 감수를 해줘야지!

 

 


▲ 현포항 일대 북면 현포항. 이국적인 모습이 들 정도로 참 아름다운 풍광이다. 저런 곳에서 낙조를 본다면 더욱더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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