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 다원 월출산을 뒷배경 삼은 강진 다원. 5월에 촬영한 사진이라 녹차밭도 푸르고 월출산도 푸르다. 강진 다원은 삼남길 전남구간 8코스(산내들길)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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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 다원 같은 강진 다원 사진인데도 계절에 따른 색감이 다르다. 녹차밭도 월출산도 녹음이 들지 않은 모습이다. 2월에 찍은 사진이라서 그런지 월출산에는 잔설이 남아 있기까지 했다. 이렇게 같은 장소지만 자연이 옷을 갈아 입는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삼남길이다.
ⓒ 곽동운

 

 

 

 

 

 


# 필자도 한 때 '전문 대타'였다

필자도 한 때 '방송물'을 먹은 적이 있었다.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공중파 고정출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구색을 갖춘다고 매주 '꽃단장'을 하며 '오빠 피부'를 만들어야 했다. 명색이 공중파 출연인데 신경 좀 써야 하지 않겠나?

100분 토론이었다. 필자가 매주 '고정출연'한 프로그램이 100분 토론이었던 것이다. 물론 필자가 패널로 참여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방청객으로 자리를 지켰다.

처음에는 아는 지인 분께서 '언론 개혁'과 관련된 토론에 패널로 참가하셔서 얼떨결에 그 뒷자리를 지켰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매주 MBC를 방문해야 했는데 이유인 즉, 방청객들 중에서도 종종 '펑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공간을 필자가 '대타'로 채워 넣었던 것이다. 100분 토론이 워낙 늦은 심야 시간에 종료가 되니 패널 섭외만큼 방청객 섭외도 어렵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쥐꼬리만한 방청료를 가지고 심야의 택시 할증을 방어할 수 있는 일반인들이 거의 없었기에 필자 같은 사람이 '전문 대타' 역할을 해야 했던 것이다. MBC가 있는 여의도에서 집이 있는 신도림까지는 걸어서 갈 만했다. 또 쥐꼬리만한 방청료지만 그렇게 모아두니 쓸 만 했다. 그렇다. 그렇게 심야 프로그램을 채워줄 필자만한 '대타'가 없었던 셈이다.

당시는 손석희씨가 진행을 했던 초창기였으니, 한 10년도 더 넘은 일인 듯싶다. 가끔은 그 때가 그리워진다. 방송 나온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다녔으니까...

그러다 얼마 전에 진짜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MBC 시사매거진 2580>에 필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19일 방영분, 세 번째 꼭지인 <삼남길을 아십니까?>편에 당당히 얼굴을 내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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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바가지를 든 필자 우물 물을 한 바가지 들이키는 설정 샷! 좀 껑뚱하게 나온 듯싶다!
ⓒ MBC화면캡처

 

 

 


물론 필자가 해당 꼭지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삼남길을 필자가 주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삼남길 개척의 주도자인 손성일 대장 뒤편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바람잡이'를 잘해야 방송이 산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명품 조연'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잠깐! 여기까지 기사를 읽으신 독자들 중에서는 필자에게 이런 의문을 표시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싶다.

'겨우 바람잡이 역할 한 거 가지고 이렇게 왈가왈부 하나? 그리고 삼남길은 또 뭐야?'

 

 



# 서울에서 해남까지 삼남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삼남길? 해당 방송을 시청하지 못하신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 <삼남길 개척단>이라는 직함을 가진 필자가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딱 반이 지났다. 지난 5월 25일 개통한 경기도 구간으로 인해 삼남길은 이제 딱 절반 구간이 정식으로 얼굴을 내밀게 됐다. 2012년 4월 전라도 구간 개통(228Km)과 경기도 구간(91Km) 개통으로 삼남길 전체 구간 중 319Km가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충남구간과 전북 구간이 연결되면 서울에서 해남까지 장장 600Km에 이르는 도보여행길이 개설된다. 

그렇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듯이 한국에는 삼남길이 있다. 서울 숭례문에서부터 해남 땅끝 마을까지 트레일(trail:오솔길) 코스가 개설되고 있다. 그 머나먼 도보여행길이, 민간단체인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에 의해서 개척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삼남길은 전남과 경기도 구간이 개통됐고, 2014년 후반기에 완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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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성일 대장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
ⓒ MBC화면캡처

 

 

 


이 작업의 선봉에는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 서 있다. 2008년부터 삼남길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길에 미친 사나이'라고 칭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는 분명 '미친 사나이'였다. 도보여행에 넋이 나가지 않고서야 5년이 넘는 기간을 온전히 트레일 코스 개척에 다 쏟아 부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매일같이 텐트 생활을 하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개척 초기 인고(忍苦)의 시절도 그런 열정으로 버텼던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괄시나 당했던 그 서러운 시절을 미치지 않고 어떻게 극복했겠는가?

그런 '미친 사나이' 대열에 필자도 뒤늦게 합류했다. 필자가 처음 삼남길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0년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개척에 참여한 것은 올 초부터다. 자동차도로도 마찬가지겠지만 도보여행 길도 개설만큼 유지․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척과 보수 둘 다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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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성터 옛 이진성은 구릉지대를 이용하여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해남에서 제주도로 들어가는 항구였던 이진에 성을 축조했던 것이 이진성이었던 것이다. 뒤쪽으로 보이는 섬은 완도의 부속섬인 달도다.

ⓒ 곽동운

 

 

 

 

 

 

 

▲ 청령포와 청령포 나룻터: 단종이 겨울철에 유배를 왔으면 저 얼음을 넘어서 다시 한양땅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단종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단종의 유배기간도 자신의 운명처럼 무척 짧았던 셈이다.

 

 

 

 

▲ 청령포 터널 청령포에서 방절산(야산)을 넘어가면 청령포역이라고 간이역이 나온다. 그 길 중간에 저 터널이 있었다.

산 중간에 배꼽처럼 뚫린 터널 속으로 기차가 오가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 걷기 열풍의 빛과 그림자

행정도 유행을 타는 걸까. 제주 올레길의 인기를 벤치마킹한 길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그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 놓은 트레킹 코스들을 많이 탐방해봤다. 물론 좋은 길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도보여행길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부실한 곳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화장실이나 안내판 같은 기본적인 편의 시설 부족은 둘째 치고, 자동차들이 쌩쌩 다니는 도로를 횡단해야 다음 코스로 진행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도 여러 곳 만날 수 있었다.

다른 형식의 여행도 마찬가지겠지만 도보여행의 기본 덕목은 안전이다. 목숨을 내놓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도보여행은 비교적 아웃도어에서 소외되었던 이동권 약자들이 더 많이 선호하는 여행이 아니던가. 남성보다는 여성, 젊은층보다는 장년·노년층이 선호하는 아웃도어 방식이 걷기 여행이라면, 그에 걸맞은 안전시설과 편의시설들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기승전결이 잘 맞아떨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필자는 이 지면에서 '단종 유배길'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을 기반이 확실히 잡힌 도보여행 코스에 빗대서 비판을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영월군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기왕 좋은 길을 만들었으면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편의 시설도 갖추어서 도보꾼들의 발걸음을 불러들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동차 없이도 영월 지역에서 부담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버스편 증편 등 제반 시설 확충에 힘써 달라는 말이다.

 

 

 

 

 

 

* 빨간다리: 영월읍에서 청령포 나룻터까지는 약 2Km 정도 걸린다. 얼마전 청령포 입구쪽에 저류지 공사가 있었다.

저류지에는 각종 운동시설이 들어섰는데, 난 개인적으로 저 빨간다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동강 철로길: 동강 위로 철로길이 놓여 있었다. 이 철로길은 영월역과 청령포역(무인역, 기차 정차 안 함) 사이에 놓여 있었다.

뒤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은 태화산이다. 상당히 멋진 산이라는데...

 

 

 

 

 

 

# 단종이 겨울에 유배를 왔었다면 저 얼음을 넘어 한양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덧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도달하게 됐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배후면에는 가파른 산이 놓여 있는 곳이라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그래서 청령포는 배가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지난 가을에 방문했을 때는 필자도 배를 타고 청령포에 입장했다. 

다시 영월을 방문했던 1월 중순께에는 '얼음 트레킹'이라는 말에 걸맞게 청령포 앞을 흐르는 서강이 얼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음 위를 걸어가 청령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배가 오갔던 서강 강물이 강추위로 꽁꽁 언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미끄러지듯 그 얼음 위로 청령포를 오가는 방문객들의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종은 청령포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했다. 1457년 6월 하순에 청령포에 왔다 그해 여름 홍수를 피해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 갔고, 그해 10월 하순에 관풍헌에서 숙부인 세조에 의해 사사됐다. 그러고 보면 단종의 유배기간도 자신의 운명처럼 짧았던 셈이다.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관풍헌을 오가는 탐방객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종이 겨울에 유배를 왔으면 저 얼음을 넘어서 다시 한양 땅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태백산에서는 산신령으로 만났던 단종 임금을 영월 얼음 트레킹을 통해 다시 만났던 것은 뜻 깊은 일이었다. 그 외에도 필자는 청령포를 넘어가는 방절산(야산)과 동강 철로길을 탐방했다. 방절산에는 청령포역이라고 지금은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작은 간이역이 있는데 그곳도 탐방하고 왔다.

약 12km 정도 되는 비교적 짧은 트레킹이었지만 겨울철에 하는 아웃도어라 만만치는 않았다. 눈 속에 발이 파묻히기도 했고, 얼음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도 여러 번 찧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영월 얼음 트레킹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 동강대교: 현재 영월군에서는 '영월 동강 겨울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1월 11일부터 시작된 축제는 2월 3일까지 계속 된다고 한다.

필자가 영월을 방문했을 때는 축제 준비로 동강 일대가 분주했었다. 한편 사진에 나온 동강 대교는 영월의 또다른 자랑 거리이다.

확 트인 동강 둔치와 그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이 동강대교와 어우러진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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