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 트레킹 리딩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홀로 트레킹을 했을 때는 타인의 시선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거창한(?) 직함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트레킹을 리딩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더 짙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곽 작가님, 좀 웃어요. 아침부터 찡그리고 있어요.”

 

역사트레킹은 주로 오전 10시 30분에 실시한다. 출근 시간을 피하고자 그 시간으로 정한 것이다. 좋아서 하는 역사트레킹이지만 얼굴에는 월요병에 걸린 회사원의 표정이 묻어났나보다.

 

사실 저런 말을 한 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표정관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저런 소리를 들었으니까...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 그렇다, 리딩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렇다 등등... 나름대로 변명도 해보았지만 말 그대로 변명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필자의 직업도 서비스업이 아닌가. 말이야 있어보이게 역사트레킹 마스터지 여행가이드와 별 차이가 없다. 서비스업종에 있는 사람이 얼굴을 찡그린다? 업계 관행으로 봤을 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오전에 찡그리던 모습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풀려간다. 어떻게 아느냐? 사진을 찍으면서 카메라 LCD창에 비쳐진 모습을 그때그때 체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필자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해진다. 역시 필자는 트레킹 팔자인 거 같다. 좀처럼 웃을 일이 없다는 요즘인데 트레킹만 하면 함박웃음을 얼굴에 걸고 있으니...

 

 

 

 

 

* 남자하동계곡

 

 

 

 

 

 

 

● 과천골 역사트레킹

 

이번편에는 과천골 역사트레킹을 소개한다. 과천골 역사트레킹은 말 그대로 경기도 과천시 일원에서 행해진다. 앞선 프롤로그에서도 언급됐듯이 이 원고의 원래 명칭은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다. 필자와 대화를 주고받는 트레킹팀도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프로그램에서 모집하여 꾸려진 모임이다.

 

이번편 과천골 역사트레킹도 마찬가지고, 안양시에서 행한 정조대왕 역사트레킹도 경기도에서 행한다. 그렇다면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란 명칭과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과천시나 안양시가 경기도에 있지 서울에 있는 게 아니니까.

 

도성을 관할했던 한성부는 도성뿐 아니라 성 밖 십리지역(4km)까지 그 행정 영역 안에 두었다. 이를 두고 성저십리(城底十里)라고 칭했다. 필자는 성저십리 개념을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 적용했는데 지금의 서울에서 반경 40km까지를 서울학개론의 범위로 삼은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필자는 수도권 전철이 닿는 곳을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의 영역으로 삼았다.

 

 

 

 

● 역사트레킹 한국학개론?

 

지금이야 필자가 무명이기에 과천을 가든, 남양주를 가든, 춘천을 가든 서울학개론이란 명칭을 써도 누구 하나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 필자가 거물급(?)이 된다면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 과천골 역사트레킹이 포함된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곽 작가님, 왜 과천시에서 트레킹을 했으면서 서울학개론이라고 하세요? 그 말이 틀린 거잖아요.”

“맞습니다. 그 명칭은 분명 틀린 거예요.”

“그럼 빨리 고쳐주세요. 이름은 제대로 써야지요! 경기도청에서도 난리에요.”

“그래서 바꿨습니다.”

“뭘로요?”

“역사트레킹 한국학개론!”

 

이런 대화가 현실화 됐으면 좋겠다. 필자라고 거물급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교통정리용 설명이 길어졌다. 빨리 진도를 나가자.

 

과천골 역사트레킹의 시작은 우면산 남쪽 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소가 졸고 있다는 뜻의 우면산(牛眠山)은 해발 293m로, 이웃산인 관악산(632m)보다 훨씬 키가 작은 산이다.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라 그런지 관악산보다 오르기도 수월하고 코스도 짧다.

 

우면산의 북쪽은 서울 서초구이고, 남쪽은 과천시에 속하는데 확실히 남쪽면보다는 북쪽면이 편의시설이나 표식들이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우면산의 남쪽면은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관리가 안 되어 있다. 편의시설도 전무하고 안내표식도 띄엄띄엄 있다. 그래서인지 우면산 남쪽면을 찾는 이들도 별로 없다. 무슨 이유일까? 우면산 남쪽면도 분명 좋은 트레킹 코스인데... 이유는 남태령과 관련 있다.

 

 

 

 

 

 

* 남태령옛길 표지석

 

 

 

 

 

 

 

● 남태령으로 개명한 여우고개

 

남태령(南泰嶺)은 관악산과 우면산 중간에 위치한 고개로 해발은 183m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워낙 해발이 높은 고개들이 많아 183m의 높이면 명함도 못 내미는 게 맞지만, 한자어에서도 보이듯 이 고개는 당당히 ‘남쪽의 큰 고개’로 명명되어 있다.

 

처음에 이 곳은 여우고개, 혹은 여시고개로 불렸다. 한자어 명칭도 ‘여우호’자를 써서 호현(狐峴)이라고 쓰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여우가 많이 출몰했다고 한다. 그 옛날 관악산과 우면산의 울창한 수풀은 여우들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일대에서는 여우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우 굴들이 발견됐다. 그런 배경들 때문인지 이곳에는 천 년 묵은 여우가 사람을 홀리고 다녔다는 ‘전설의 고향’도 전승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곳은 왜 여우고개에서 남태령으로 개명을 하게 됐을까? 가장 유력한 설은 정조대왕 시대에 행했던 화산 능행차와 관련이 있다. 지난 정조대왕 역사트레킹편을 다시 복기하면서 읽어보자.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양주에서 수원 화산으로 이장을 한 후, 정조대왕은 참배에 나섰다. 이를 ‘화산 능행차’라고 불렀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 꼭 넘어야 했던 이 고개의 이름을 정조대왕께서 물으셨다. 이때 과천현의 이방이 여우고개라는 이름 대신 남태령이란 명칭으로 대답을 했다고 한다. 상감께서 행차하는 고개가 ‘여우고개’라는 요망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런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여우고개가 토속적인 이름이기는 하지만 요망스러운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고개의 명칭이 한 사람에 의해 급작스럽게 변경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조대왕 이전 시대부터 여우고개가 아닌 남태령으로 불렸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한강 이남에는 정조대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혹시 남태령도 그에 편승된 것이 아닐까? 정조대왕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태령은 이미 보통 이상의 고개가 될 수 있으니까.

 

정조대왕이 남태령을 넘은 것은 5년 밖에 되지 않았다. 1794년 이후부터 능행차 노선이 시흥-안양 방면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남태령 길이 협소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과천에 김상로와 그의 형 김약로의 묘가 있어 일부러 남태령-과천 코스를 버렸다고 한다. 김상로는 영의정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사도세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자이다.

 

현재 남태령에는 ‘과천루’라고 불리는 망루가 설치되어 있다. 남태령이 삼남지방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만큼 망루를 설치하여 감시를 했던 것이다. 과천루는 현재 과천 8경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지역의 명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은 이들이 찾지는 않는다.

 

 

 

 

 

 

*과천루: 남태령망루라고도 불린다.

 

 

 

 

 

 

● 군대생활 생각나게 하는 남태령 참호와 벙커

 

천년 묵은 여우가 사람을 홀리고(?), 정조대왕이 능행차를 하러 다녔던 남태령. 현재 남태령에는 곳곳에 참호가 놓여 있다. 벙커도 있다. 남태령처럼 서울 인근에서 그렇게 많은 참호와 벙커들이 정열 되어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안보(?)시설들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면산의 남쪽면이다. 그 참호와 벙커들을 파고,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군인아저씨들이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 시설들을 무심히 지나치기는 했지만 필자도 군대 생활이 생각나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렇게 우면산 남쪽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둘레길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전무하다. 팔각정은커녕 그 흔한 벤치조차도 찾기 어렵다. 화장실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면산 남쪽 숲길은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도보여행자들의 눈높이로 보자면 이 코스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둘레길 트렌드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 이 숲길 정말 울창한데요.

- 서초구쪽 우면산은 가봤는데... 여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여기가 더 좋아요.

- 숲길도 좋고 사람도 거의 없어서 걷기에 더 좋은 거 같아요.

 

트레킹팀은 저렇게 환호성을 외쳤다. 거의 한 시간 이상 이어진 울창한 숲길에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특히 이곳은 완경사로 계속 이어지다보니 사색을 하면서 걷기에 ‘딱’이었던 것이다. 묵언수행을 하기에도 제격인 곳이었다.

 

 

 

 

 

 

* 용마골: 일명 너럭바위 계곡

 

 

 

 

 

 

● 너럭바위와 온온사

 

이제 트레킹팀은 우면산에서 관악산으로 넘어간다. 용담골이라는 곳을 통해 관악산에 진입을 하게 되는데 무척 흥미로운 풍광을 맞이하게 된다. 카펫이 깔려 있듯 너럭바위가 보기 좋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일부러 깎아놓은 것처럼 평평한 너럭바위가 길이 돼주기도 했고, 의자가 돼주기도 했다.

 

그 위에다 식탁보를 깔면 밥상이 되기도 한다. 그랬다. 트레킹팀은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노닐기 좋은 곳에서 배를 채웠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너럭바위 계곡을 지난 트레킹팀은 과천현의 옛 객사였던 온온사(穩穩舍)를 탐방하게 된다. 객사는 한마디로 관사를 말한다. 유명한 전주 객사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1649년(인조27)에 창건된 이 건물은 정조대왕에 의해 ‘온온사’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된다. 잠깐 한자를 살펴보자. ‘평안할 온(穩)’자가 하나도 아닌 두 개나 들어가 있다. 정조대왕은 평화, 아름다움, 휴식이라는 개념들을 이름에 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실제로 정조대왕은 화산 능행차를 하러가면서 과천현 객사에 머물렀는데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휴식하기에 좋았다고 하여 ‘온온사’라는 현판을 친필로 하사하셨다. 그 현판이 지금도 온온사에 잘 붙여져 있다.

 

지금이야 일대가 많이 개발이 되어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휴식하기에 좋은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온온사 뒤편 숲길은 꽤 아름답고 산보하기에 좋다는 것이다. 그 숲길을 따라 트레킹팀은 마지막 탐방지인 자하동 계곡으로 향했다. 드디어 추사 선생 글씨를 만나게 된다.

 

 

 

 

 

 

* 온온사

 

 

 

 

 

 

 

● 자하 신위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

 

돌산인 관악산에도 경치가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이 계곡은 자하동이라고 불리는데 조선후기 시·서·화에 능했던 자하 신위(1769~1847) 선생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자하(紫霞) 신위 선생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렸는데 그런 소문을 듣고 정조대왕이 궁궐로 불러 크게 칭찬을 했을 정도였다. 신위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편인 관악산 역사트레킹에서 한 번 언급했었다. 역시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읽어보자.

 

시(詩)·서(書)·화(畫) 모두에 능한 사람을 시·서·화 삼절이라고 부르는데 그 칭호를 얻었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당연한 말일 것이다. 시와 글씨와 그림, 이 세 가지를 모두 다 잘하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신위 선생은 참 대단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왜 관악산에 신위 선생의 호를 딴 계곡이 있는 것일까? 신동이었으며 시·서·화 삼절로 불리기까지 한 신위 선생과 관악산이 무슨 연관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늘 그렇듯 천재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신위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게 된다. 지방토호들의 횡포에 의해 파직 당하고, 당쟁의 여파로 인해 파직 당한다. 이에 세상의 환멸을 느낀 자하 신위 선생은 관악산에 은거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관악산에는 자하동이란 명칭이 생긴 것이다. 참고로 과천에 있는 자하동은 ‘남자하동’이라 부르고, 서울대 옆에 있는 자하동은 ‘북자하동’이라고 불린다.

 

 

 

 

 

* 남자하동계곡

 

 

 

 

 

 

● 천재가 천재를 알아봤다!

 

과천의 남자하동 계곡 바위면에는 단하시경(丹霞詩境), 자하동문(紫霞洞門), 백운산인 자하동천(白雲山人 紫霞洞天),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등 4개의 바위글씨가 있다. 계곡을 따라 새겨진 이 바위글씨들은 예전에는 접근성이 많이 떨어졌다.

 

실제로 최근에 설치된 탐방데크와 흔들다리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문화재였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바위글씨들을 지나갔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늦게나마 탐방시설들이 확충되어 바위글씨들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 나온 김에 바위글씨에 대해서 살펴보자. 지면 관계상 단하시경(丹霞詩境) 하나만 이야기하겠다. 이 ‘단하시경’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글씨다. ‘단하’는 신위 선생의 다른 호로 추정되고, ‘시경’은 시흥을 불러일으키는 경지라는 뜻이다. 신위 선생이 관악산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고 지은 시를, 추사 김정희 선생이 ‘단하시경’이라는 바위글씨로 새겨 넣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추사 선생은 관악산에 은거했던 신위 선생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그런 돈독함이 ‘단하시경’이라는 바위글씨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추사 선생도 시·서·화 삼절이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봤던 것이다.

 

자하동 계곡 탐방을 끝으로 과천골 역사트레킹도 종료가 된다. 트레킹 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계곡물에 발 좀 담그고 바위에 새겨진 글씨도 감상해보자. 이런 것이 풍류 아니겠는가? 시·서·화에 능하지 않더라도 풍류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법이지!

 

 

 

 

 

 

*단하시경(丹霞詩境) 각자바위

 

 

 

 

 

 

 

● 오늘도 즐겁게 역사트레킹해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 아니다. 타인과 끊임없이 호흡을 해야 벌어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시선에 익숙해져야한다. 어쩌면 즐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선에 노출되는 것이 나답게 살기와 배치되지도 않는다. 물론 여기서의 타인의 시선은 갑질의 시선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모습을 더 멋지게 하면 좋은 일이 아닌가. 필자의 출근 장소는 트레킹 집합장소인데 해당 집합지에 미소를 띠며 도착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겁게 역사트레킹해요!”

 

 

 

 

 

 

*과천향교

 

 

 

 

 

 


 

 

 

 

 

과천골 역사트레킹

 

1. 코스: 남태령망루(남태령옛길) ▶ 너럭바위계곡 ▶ 온온사 ▶ 남자하동계곡(과천향교)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하

5. In: 선바위역 3번 출구(지하철4호선) / Out: 과천역(지하철4호선)

 

 

 

 

 

 

* 과천골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코스명

  남태령 역사트레킹

세부코스

선바위미술관 ▶ 남태령 ▶ 부대앞 ▶ 예술의전당

모임일시

4월 23일 일요일 오전 10시 10분

집합장소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 3번 출구

이동시간

약 4시간

이동거리

약 7km

IN / OUT

In: 남태령역 3번 출구

Out: 예술의 전당

난이도

모집인원

10명

최소출발인원

4명 ▶ 4월 20일까지 최소 인원 미달시 자동으로 취소됨.

참가비

1만 5천원

참가비 사용처

생수, 행동식, 리딩비

참가비 납부방법

 

15천원 -> 송금( 곽동운 / 우리은행/ 129-08-530255)

참고) 부득이 한 경우 현장 납부 가능

 

참가방법

 

댓글로 참가신청 -> (참가번호 / 참가자 / 하고 싶은 말)에 맞춰 참가신청

(. 참가1 / 곽작가 / 즐겁게 해 보아요~)

 

준비물

생수, 모자, 편한신발(트레킹화), 선크림 등등...

참고

4월 20일 오후 10시까지 최소인원 미달시, 자동 취소됨.

주의사항

비가 와도 진행합니다. 우비는 개별로 준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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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사항

 

1. 배려와 존중, 재미와 유익함을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2. 역사트레킹 시에는 금연과 금주를 해주세요.

3. 마스터는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 점 양지하시고 신중하게 참가 신청을 해주세요.

4. 카페에서는 단체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사태에 대비하신다면 개별적으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시는 걸 권합니다.

5. 안전사고에 대비를 해주세요. 모임 시에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은 참가자 본인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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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 역사트레킹갑니다. 남태령은 예로부터 무척 중요한 고개 중에 하나였습니다.
서울에서 삼남지방으로 갈 때 꼭 넘어야 했던 고개였기 때문입니다.

남태령 고개를 두고 북쪽은 서울이 되고, 남쪽은 과천이 됩니다. 그 고개를 따라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유생들은 청운의 꿈을 안고 남태령을 넘었고, 보부상들은 장사가 잘 되길 기원하며 이 고개를 넘었습니다.

정조대왕도 이 고개를 넘었습니다. 남태령을 넘어 과천을 향한 후 수원까지 나아갔던 것입니다.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화산으로 능행차를 떠났던 것이지요.

이렇듯 고개길은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았고, 그에 따라 수많은 스토리텔링들도 피어 오르게 됩니다.

화창한 봄날입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는 남태령을 떠날볼까요?

남태령 역사트레킹으로 해보는 겁니다! 




 









 

강남주민 오들오들 떨게 한 우면산 '그 물건'

 

[여행] 남태령-우면산 '안보 트레킹'

 

15.03.19 09:08    최종 업데이트 15.03.19 09:08

 

 

 

 

 

 

* 남태령

 

 

 

 

 

 

 

 

 
▲ 지뢰지대 과거에 지뢰지대였음을 알리는 경고판. 아직 미수거된 지뢰들이 남아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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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적대적 공생관계, 공포의 균형, 안보상업주의 같은 냉전시대 맹위를 떨쳤던 개념들이 어지럽게 난무해 있으면서도 그 나름대로 질서를 갖추고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는 적대관계에 있는 두 세력들이 서로를 비방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키우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강경파와 이란의 강경파들이 서로에게 비난을 해대며 자신들의 몸집을 불리는 것이 좋은 예이다.


공포의 균형은 공포나 두려움을 통해서 쌍방 간에 균형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냉전시대 미소 양국이 보유한 핵무기들은 지구를 수십 번 파괴하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녔다. 그래서 핵무기의 발사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쪽이든 저쪽이든 모두 괴멸된다. 그런 공포감이 역설적으로 '균형자' 역할을 하게 됐는데 이를 두고 공포의 균형이라고 칭했다. 안보상업주의는 문자 그대로 안보를 가지고 상품화 시켰다는 의미이다.

남한의 강경파와 북한의 강경파가 서로 윽박을 질러 자신들의 입지를 키우고,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한의 전력 70%, 북한의 전력 90%가 몰려 있고, 안보를 상품화하여 계속해서 송출하는 방송국들이 있으니 앞서 언급한 필자의 판단이 꼭 억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것들이 어지럽게 난무하지만 '종북몰이'에서는 진영을 갖춰 질서정연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공포의 균형 정도만 최신무기 획득이라는 방향으로 변주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근 회자와 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가 바로 그 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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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태령 옛길 남태령 옛길을 알리는 표지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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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으로 개명한 여우고개


자자, 서설이 너무 길어졌다. 뚱딴지같이 여행기사에 냉전시대에나 통용되던 개념들을 끌어와 어지럽히지 말라는 독자들의 원성도 들리는 듯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좋아 주말에 갈 봄 소풍 장소를 알아보려고 <오마이뉴스>에 접속했는데 '종북' 같은 신물 나는 단어를 여행면에서까지 볼 줄이야, 하고...

필자가 이번에 소개할 곳은 서울 남태령-우면산 구간이다. 남태령(南泰嶺)은 관악산과 우면산 중간에 위치한 고개로 해발은 183m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워낙 해발이 높은 고개들이 많아 183m의 높이면 명함도 못 내미는 게 맞지만, 한자어에서도 보이듯 이 고개는 당당히 '남쪽의 큰 고개'로 명명되어 있다.

처음에 이 곳은 여우고개, 혹은 여시고개로 불렸다. 한자어 명칭도 '여우호'자를 써서 호현(狐峴)이라고 쓰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여우가 많이 출몰했다고 한다. 그 옛날 관악산과 우면산의 울창한 수풀은 여우들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일대에서는 여우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우 굴들이 발견됐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이곳에는 천 년 묵은 여우가 사람을 홀리고 다녔다는 '전설의 고향'도 전승된다.

 
▲ 과천루 남태령에 위치해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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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곳은 왜 여우고개에서 남태령으로 개명을 하게 됐을까? 가장 유력한 설은 정조대왕 시대에 행했던 화산 능행차와 관련이 있다.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양주에서 수원 화산으로 이장을 한 후, 정조대왕은 참배에 나서게 된다. 이를 '화산 능행차'라고 불렀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 꼭 넘어야 했던 이 고개의 이름을 정조대왕께서 물으셨다. 이때 과천현의 이방이 여우고개라는 이름 대신 남태령이란 명칭으로 대답을 했다고 한다. 상감께서 행차하는 고개가 '여우고개'라는 요망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런 답변을 했다는 것이다.

여우고개가 토속적인 이름이기는 하지만 요망스러운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고개의 명칭이 한 사람에 의해 급작스럽게 변경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조대왕 이전 시대부터 여우고개가 아닌 남태령으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한강 이남에는 정조대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혹시 남태령도 그에 편승된 것이 아닐까? 정조대왕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태령은 이미 보통 이상의 고개가 될 수 있으니까.

정조대왕이 남태령을 넘어서 다닌 기간은 5년 밖에 되지 않았다. 1794년 이후부터 능행차 노선이 시흥-안양 방면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남태령 길이 협소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과천에 김상로와 그의 형 김약로의 묘가 있어 일부러 남태령-과천 코스를 버렸다고 한다. 김상로는 영의정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사도세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자이다.

 

 



 
▲ 벙커 벙커 입구를 막아 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저런 벙커나 참호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용변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몰상식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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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생활 생각나게 하는 남태령 참호와 벙커


천년 묵은 여우가 사람을 홀리고(?), 정조대왕이 능행차를 하러 다녔던 남태령. 현재 남태령 곳곳에는 참호가 놓여 있다. 벙커도 있다. 서울 인근에서 이렇게 많은 참호와 벙커들이 정열되어 있는 곳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안보(?)시설들을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남태령-우면산 코스다. 그 참호와 벙커들을 파고,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군인 아저씨들이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 시설들을 무심히 지나치기는 했지만 필자도 군대 생활이 생각나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군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필자는 요즘에도 가끔 이등병 시절의 꿈을 꾼다. 군복을 벗고, 예비군도 끝난 지가 한참인데 아직까지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뒤에는 항상 식은땀을 닦으며 이런 혼잣말을 하곤 했다.

"혹시 죽을 때까지 이등병 꿈을 꾸는 거 아니야?"

 
▲ 우면산 참호 서울시계인 우면산쪽의 참호는 저렇게 나무데크로 덮어 놓았다. 유사시에 나무데크는 열리고, 그 참호에 군인들이 배치된다. 나무데크가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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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뒷산에 걸려 있는 지뢰표식


남태령의 많은 참호와 벙커들을 뒤로 하고 우면산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소가 졸고 있다는 뜻의 우면산(牛眠山)은 해발 293m로, 이웃산인 관악산(620m)보다 훨씬 키가 작은 산이다.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라 그런지 관악산보다 오르기도 수월하고 코스도 짧다.

우면산은 '서울보다 더 서울'적인 강남의 뒷산이다. 그래서 전망대에 오르면 관악산에서 보는 광경과는 좀 차이가 있다. 관악산이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고시촌의 풍광을 품고 있다면 우면산은 타워팰리스 같은 초고층 주거시설을 보여준다.

 

 

 

* 우면산 벙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욕망이 발현되는 곳이자 가장 먼저 앞서가는 곳의 뒷산이기에, 그 표식을 우면산에서 봤다는 것만으로도 필자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강남과 그 표식이 우리사회의 냉혹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언제든지 파괴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다는 그 엄혹한 현실!

그럼 그 표식이 무엇이냐? 바로 '지뢰' 지대를 알리는 표식이었다. 우면산 정상부에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고 그 부대의 방어를 위해 1980년대 대인지뢰가 매설됐다. 이후 순차적으로 지뢰가 제거됐지만 그 중 일부가 수거가 안 돼 울타리를 쳐놓고 지뢰 표식을 걸어둔 것이다.

지난 2011년 7월, 우면산에 큰 물난리가 났다. 물난리로 큰 고초를 겪은 인근 주민들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지뢰 유실까지 이중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민통선 인근에서나 일어날 줄 알았던 지뢰 유실을 강남 주민들이 걱정했던 셈이다. 

 

 



 
▲ 지뢰밭에 토끼 토끼 한 마리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곳이 지뢰밭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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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것처럼 남태령-우면산 코스는 '안보 트레킹'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당장이라도 총을 든 군인들이 자리를 잡을 것 같은 참호와 벙커들, DMZ이나 민통선 인근에서나 볼 수 있는 '지뢰' 표식까지... 더군다나 트레킹을 마치고 강남에 가서 맛집 탐방도 할 수 있다.


그 참호와 벙커가 실전에서 작동되는 순간 한반도는 석기시대로 돌아갈지 모른다. 남북한이 모두 공멸할지 모른다. 그러니 그 시설물들은 계속 '안보 트레킹'으로만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원히!

 


 
▲ 남태령-우면산 트레킹 남태령-우면산 트레킹 코스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호젓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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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태령-우면산: 이 코스는 산악자선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다.

 

 

 

 

 

◆ 도움말

1. 코스:  선바위 미술관 ▶ 삼거리 ▶ 남태령 ▶ 군부대 ▶ 약수터 ▶ 예술의 전당
2. 이동거리: 약 7km / 이동시간: 약 3시간 (쉬는 시간 포함)
3. 교통편: 시작점 -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  / 종료점 - 3호선 남부터미널역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3월 21일 토요일에 남태령-우면산 역사트레킹 하러 갑니다!

 

참여를 하시려면 ---> 클릭

 

 

 

 

 

 

 

 

 

 

 

 

 

 

 

 

 

 

 

 

 

*남태령, 우면산 역사트레킹: 남우 역사트레킹에 참가한 멤버들

 

 

 

* 우면산 길

 

 

 

 

 

일시: 2014년 2월 22일 오후 1시

장소: 남태령, 우면산 일대

참여인원: 마스터를 포함한 7명 ---> 소셜다이닝'집밥'에서 모객을 하였음.

기상: 아직은 겨울이었지만 포근한 날씨였음.

특이사항: 각자 나름대로 아웃도어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오셔서 즐거운 트레킹을 할 수 있었음.

광고: 3월 8일에는 <관악산 역사트레킹>이 예정되어 있음.

 

 

 

 

 

 

 

 

* 남태령 옛길: 남태령 옛길을 알리는 비석

 

 

 

 

 

 

남태령: 남태령에 있는 벙커. 아쉬운 남북 분단의 현실.

 

 

 

 

 

 

* 남태령: 남태령의 오솔길

 

 

 

 

 

 

 

 

 

 

날짜가 바뀌어서 이제는 2014년이 됐습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겨울이라 많이 춥네요. 하지만 방 안에서만 웅크리고 있으면

더욱더 쓸쓸할지 모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활짝 기지개를 펴 보는 건 어떨까요?

'추울수록 밖으로~'라는 한 아웃도어 업체의 광고 멘트처럼

우리도 한 번 겨울산행을 한 번 해보는 거에요!

 

남태령과 우면산 일대를 탐방하는 것입니다. 우면산 쪽은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이 많아서 설국과 같은 분위기도 난답니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산행중에 미끄러 지는 것입니다.

엉덩방아를 많이 찧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엉덩방아도 찧어 보고,

좀 스타일도 구겨보고 그러는 거지요.

 

그래서 오실 때 꼭 배낭을 메고 오셨으면 합니다. 미끄러질 때

배낭쪽으로 넘어지면 그나마 좀 충격흡수가 될 수 있거든요.

아이젠이 있으신 분들은 아이젠을 가지고 오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회비는 음료수 구매에 쓰일 예정입니다.


* 일시: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집결장소: 서울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 ---> 남태령역 다음 역입니다.

 

*이동경로: 선바위역▶ 선바위미술관 ▶ 삼거리 ▶ 남태령옛길 ▶ 과천망루 ▶ 군부대 ▶ 약수터 ▶ 예술의 전당

 

*이동거리: 약 8.5km /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 예상(쉬는 시간 포함)


*난이도: 중 ---> 우면산 코스에서는 산행을 합니다. 대신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닙니다.

 

*준비물: 장갑, 모자 등 방한용품. 우면산이 키가 작은 산이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산행은 겨울산행입니다. 여분의 옷을 등을 챙기는 것이 좋겠지요.

 

* 주의점: 우면산 방면은 해가 지는 쪽이라서 그런지 아직 눈이 많이 남아 있더군요. 그래서 좀 설국(?) 분위기가 납니다. 대신 무척 미끄럽습니다. 그래서 엉덩방아 찧는 것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 엉덩방아를 찧고 싶지 않다면 아이젠을 구비하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집밥>, <위즈돔>에 올라간 남태령, 우면산 역사트레킹 모집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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