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위로받고 싶어서 걸었다 ___1편

 

식구들과 함께 한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

14.05.02 19:00l최종 업데이트 14.05.0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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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내역 2008년 복선화된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능내역은 폐역사가 됐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여지듯 능내역은 많은 나들이객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공간으로 재탄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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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6일 토요일.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을 행하는 길. 마음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그런 가벼운 발걸음에 미안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 백 명의 꽃다운 생명들이 차디찬 물 속에서 삶을 마감했는데 팔자 좋게 트레킹이라니! 또 그 내용을 기사화해서 <오마이뉴스>에 송고를 하다니! 그런 무거운 자책들이 필자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다산 선생의 손을 붙잡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필자는 비판의 화살이 날아올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이번 트레킹을 강행하였다. 그것도 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끌어 모아 함께 트레킹을 했다.

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받은 충격을 어떤 식으로든 누그러뜨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위로의 손길을 같이 받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누구의 손길에 의탁했는가? 누구에게 그런 마음의 짐을 풀어 놓았는가?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다산 선생에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다산 선생의 손을 붙잡고, 치유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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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재성지 마재성지는 다산 정약용의 셋째형 정약종의 생가다. 대개 천주교 성지는 순교와 관련된 곳이 많다. 절두산, 새남터, 황새울 등등... 하지만 이 곳은 독특하게도 한 인물의 생가가 성역화 됐다. 그만큼 우리 천주교에서 정약종의 업적과 희생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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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에 참여를 한 사람은 총 7명이었는데 소셜다이닝 사이트 <집밥>에서 만난 이들이다.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의 코스는 다음과 같다.

팔당역 ▲(시내버스 이동) ▲능내역(폐역) ▲마재성지 ▲다산 생가(여유당) ▲연꽃 공원 ▲다산 삼거리 ▲조안면사무소 ▲진둥산 ▲솔개고개 ▲운길산역

2008년 중앙선 복선화로 인하여 폐역이 된 능내역은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간이역의 색깔을 그대로 남겨두어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공간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정취를 쫓아 주말이 되면 많은 이들이 능내역으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단선철도 시절, 옛 중앙선의 일일 수송량보다 더 많은 인파가 주말이면 능내역 인근으로 몰려와 트레킹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그런 북적북적한 능내역을 뒤로 하고 우리는 천주교 성지인 마재성지로 향했다. 마재성지는 능내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지만 그 주변 분위기는 능내역과는 완전 달랐다. 무척 차분했다. 성지는 성지였던 것이다. 


정약종의 생가, 마재성지

마재성지는 다산 선생의 셋째형인 정약종의 생가다. 새남터, 절두산, 해미읍성 등 일반적인 천주교 성지는 거의가 순교, 즉 신자들의 죽음과 관련된 곳이 대대수지만 마재성지는 한 집안의 살림집이 성지가 된 독특한 사례다.

그럼 정약종은 누구인가? <자산어보>를 저술한, 정약용의 둘째형인 정약전은 잘 알고 있는데 정약종이란 이름 석 자는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정약종은 정약용의 셋째형이었다. 바로 윗형이었다. 도교에 심취해있던 정약종은 다른 형제들보다 늦게 천주교에 입문하게 된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진산사건으로 인해 다른 형제들이 천주교를 멀리할 때도 그는 강건하게 신앙을 지켜냈다.

1791년(신해년)에 발생한 진산사건은 윤지충이란 사람이 제례를 거부하고 위폐를 불사른 사건을 말하는데 이 사건의 파장으로 다산 선생도 벽파세력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다. 신유박해(1801년) 이후 또다시 피바람을 몰고 왔던, 황사영의 백서(帛書)에도 '신해년 박해 이후에 형제나 친구들로서 여전히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정약종만 홀로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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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재성지 마재성지에 있는 예수상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묵념을 하고 있는 역사트레킹 참가자들. 이 예수상은 특이하게도 한복을 입은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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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형제들조차도 정약종의 강건한 신앙을 환영하지 않았다. 당시 조선의 천주교는 외국 선교사에 의해 포교된 것이 아니라 남인 계열의 선비들이 서학을 토대로 자생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유교적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혁명적 도구로 천주신앙을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상의 위폐를 불태운 진산 사건에 반발해 천주교를 떠난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배교를 한 이들은 조상의 제사도 지내지 않는 천주 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정약종이 계속 굳건하게 신앙을 지키면 지킬수록 집안 형제들과의 사이는 멀어져갔다. 그래서 나중에는 정약종만 홀로 강 건너 분원리(현 광주시 남종면)에 살게 될 정도였다.

그런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뒤로 하고, 역사트레킹 팀은 마재성지에 있는 '한복 입은 예수상' 앞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묵념을 올렸다. 참가자 중에는 다른 종교를 가진 분도 있었고, 무신론자도 있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종교를 뛰어 넘어 경건의 시간을 함께했다. 필자도 나지막이 묵념을 올렸다.

'희생자들 모두 좋은 곳으로 가시길, 그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말길. 나도 당할 수 있는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이 땅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역사트레킹팀은 다산 정약용 생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산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은 마재성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능내역 ▶ 마재성지 ▶ 다산 생가(여유당)에 연꽃 공원까지, 이들 지역이 도보로 20분 이내의 거리에 묶여 있다. 이런 명소들이 집중적으로 밀집해 있으니, 앞서 언급한대로 주말이 되면 많은 이들이 이곳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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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 동상 정약용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날은 햇살이 강해서 그랬는지, 참가자들은 선글라스나 창모자 등으로 햇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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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과 정약용

매번 와도 느낌이 좋은 곳. 돌아가는 발걸음이 아쉬운 곳. 다산 선생의 뜻을 되새기고 싶은 곳... 필자는 이곳에 올 때마다 항상 좋은 감흥을 받았고, 그런 감흥을 다른이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했다. 결국, 그 날이 왔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떠났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뭐 다들 아시겠지만... 1799년, 당시 시파의 영수였던 체제공이 그해 1월에 서거를 했다. 반대파였던 벽파로서는 체제공의 뒤를 잇는 시파 거물 정치인의 등장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했다.

벽파 입장에서는 누가 가장 위협적으로 보였을까? 정약용이 1순위였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체제공 서거 이후 정약용은 더 많은 모함과 박해를 받게 된다. 하지만 딱히 정약용의 손발을 묶을 방법이 없었다. 그만큼 정약용에게 흠결이 없었다는 것이다.

벽파는 꼼수를 썼다. 외곽 때리기를 했던 것이다. 정약용의 흠을 잡는데 실패한 그들은 둘째형인 정약전 때리기에 나섰다. 결국 정약전은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를 지켜본 정약용도 격분하며 고향인 마현(현 능내리)으로 낙향하게 된다.

체제공과 정약용이란 '원투펀치'가 조정을 떠난 두 달 후, 개혁군주였던 정조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정조대왕이 승하했다는 소식을 들은 선생은, 임금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크게 스스로를 책망했다고 한다. 그때가 1800년 6월이었다.

정조의 승하는 벽파에게는 더할 수 없는 호재였다. 벽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조를 따르던 인사들을 축출하게 된다. 1801년 2월에 있은 신유박해가 바로 그것이다.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남인 계열 시파 100여 명이 사사됐고, 400여 명이 유배길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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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공원 팔당호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뒤편으로 보이는 곳은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으로,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진 정약종 선생이 따로 떨어져 살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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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내역: 2008년 복선화된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능내역은 폐역사가 됐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여지듯 능내역은 많은 나들이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재탄생(?) 되었다.

 

 

 

 

 * 마재성지

 

 

 

 


즐겁게 트레킹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이 스며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라 전체가 슬픔에 휩싸여 있는데 뭐가 좋다고 트레킹 행하는지...

더군다나 혼자도 아니고 여러명이서 같이했으니...


하지만 저도 무언가 멍~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여객선을 많이 타야 하는 팔자인지라

언젠가는 저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남양주 정약용 트레킹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다산 선생 앞에서 미주알 고주알, 

제 감정들을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다산 선생 앞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도 가능했을 겁니다.


참된 목민관이었던 다산 정약용 선생! 

다산 선생께서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셨을까요?

독자분들의 한 번 상상해 보시죠?

 









 

 

* 마재성지: 마재성지는 다산 정약용의 셋째형 정약종의 생가다. 대개 천주교 성지는 순교와 관련된 곳이 많다. 절두산, 새남터, 황새울 등등...

하지만 이 곳은 독특하게도 한 인물의 생가가 성역화 됐다. 그만큼 우리 천주교에서 정약종의 업적과 희생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 마재성지: 마재성지에 있는 예수상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묵념을 하고 있는 역사트레킹 참가자들. 이 예수상은 특이하게도 한복을 입은 상이다.   

 

 

 

* 정약용 동상: 정약용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날은 햇살이 강해서 그랬는지, 참가자들은 선글라스나 창모자 등으로 햇살을 가렸다.

 

 

 

 

 

 

 *연꽃 공원: 팔당호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뒤편으로 있는 곳은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으로,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진 정약종 선생이 따로 떨어져 살았던 곳이다.  

 

* 진둥산: 남한강 자전거 도로만 따라가면 재미가 없다. 잘 닦인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이런 비포장 도로를 걷는 것이 더 재미나다.

 

 

 

* 솔개 고개

 

 

* 연꽃공원: 연꽃 공원에 서 있는 다산 선생의 저작을 모은 조형물 

 

 

* 정약용 선생: 다시 정약용 선생에게로... 만약 다산 선생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도 호통을 치셨을 것 같다. 그것도 아주 크게 호통을 치셨을 것 같다.

 

 

 

* 마재 성지

 

 

 

*능내역

 

 

 

 

 

이 포스팅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에서 만나게 될 장면들을 모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포스팅은 사진으로 보는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입니다.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은 능내역, 마재성지, 다산 생가, 연꽃공원, 중앙선 자전거길, 진둥산, 솔개고개 등등... 많은 볼거리들로 풍성한 트레킹 코스입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나들이객들로 그 주위가 북적북적 해지는 곳이랍니다.

 

우리는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 하며 다산 선생의 실학 정신과 초기 천주교에 대해서 곱씹어 볼 수 있을 겁니다.

수려한 풍광은 당연합니다. 그래야 시간내서 트레킹 하는 재미가 있죠. 너무 인공적인, 너무 잘 닦인 길들만 다닌다는 것은 트레킹 정신과는 좀 동떨어진 게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 곳은 남양주시에 개설한 <다산길>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기반하여 걷습니다. 하지만 좀 다르게 걸어보려고요. 왜? 능내역부터 운길산역까지 자전거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하는데 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들과 경합하는 것이 썩 좋지 않거든요!

 

진둥산과 솔개고개 코스는 다산길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입니다. 이 부분은 마스터인 제가 개설했답니다. 너무 인공적이고, 너무 잘 닦인 길보다는 조금은 다른, 좀 덜 닦인 길을 가보는 것도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답니다!!!

 

 

 

 

* 마재 성지

 

 

 

 

* 마재 성지

 

 

 

 

 

* 연꽃 공원

 

 

 

 

*능내역 기차카페

 

 

*진둥산

 

 

 

*솔개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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