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덕 대게 조형물






* 2019년 8월 19일~ 8월 27일 9일간의 남도여행기

* 본 여행기는 2019년 8월 19일~ 8월 27일 9일간에 걸쳐 행해진 남도여행기다. 예전에는 자전거로 남도를 돌아봤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시외버스를 많이 이용하였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봤을 때는 국내 배낭여행을 행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올 여름(2019년)에 발병된 왼쪽 다리 햄스트링(정확히는 햄스트링 건염) 이상으로 장거리 도보여행을 행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시외버스+도보여행'이었다. 그러다보니 배낭여행 형식이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재미났다. 오랜만에 남도여행을 해서 그런지 설래기도 했다. 바다를 끼고 걷다보니 시원한 맛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꼬리표처럼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햄스트링이 다시 올라오면 어쩔거야?'

다리로 먹고 살아서 그럴까? 다리에 이상이 생기니 공포감까지 들 정도였다. 

건강이 최고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여기에 기록한다. 별 내용은 없다. 하지만 여행의 기록은 필요하다. 그 자체가 나의 역사가 될테니...
 


* 8월 19일 일요일: 1일째 / 저녁에 비 내림

1. 동대구역을 거쳐 경북 포항 도착. 포항 호미곶 탐방




* 호미곶 조형물








* 8월 20일 화요일: 2일째 / 맑음

1. 경북 영덕 강구항 탐방, 블루로드 트레킹.
2. 영덕 해맞이 축구장 인근 정자에서 캠핑. 오랜만에 행하는 캠핑이라 재미났음.
3. 커다란 풍력발전기 인근에 텐트를 쳐서 그런가? 발전기가 돌면서 내는 소음을 고스란히 듣고 잤음. 웅웅웅~~. 한 밤중에 들으니 무슨 귀신 소리같았음... 무언가 외로움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
4. 영덕 해맞이공원 인근에 있는 창포말 등대가 인상적이었음. 등대보다는 그곳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가 좋았고, 매점에서 틀어주는 7080 노래가 좋았음.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를 보면서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니 그곳에서 발걸음을 못 떼겠더라. 오랜만에 감상에 젖어보았음. 싸구려 커피 한 잔을 들고 있어도 멋이 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음.





* 영덕의 푸른 바다





* 캠핑







*  8월 21일 수요일: 3일째 / 저녁부터 비 옴

1. 영덕 강구터미널에서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으로 이동함.
2. 언양읍에서 반구대까지 버스가 있다기에 바로 이동했음. 시내버스가 있긴 있었는데 '반구대 입구'였음. 언양읍에서 '반구대 입구'까지는 약 5km였고, '반구대입구'에서 반구대까지는 약 3km정도였음. 3km 정도를 열심히 걸어갔음.
3. 내가 눈이 나빠서 그런지 반구대에 그려진 암각화가 눈에 잘 띄지 않았음.
4. DB 자동차보험 아저씨가 언양읍까지 픽업을 해주셔서 감사히 잘 타고 왔음. 비도 내리고 그랬는데...





*반구대

 











8월 19일부터 27일까지 9일간 남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휴가 겸 도보여행 겸 답사여행 겸... ^^

대략적인 경로는 이렇습니다. 

포항 -> 영덕 -> 언양(반구대) -> 양산(통도사) -> 부산 -> 통영 -> 여수 -> 전주

주로 시외버스로 이동했더니 9일 동안 꽤 많은 곳을 다녀갔네요.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장소도 꽤 됩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여행일지 식으로 풀어서 작성할게요. 오늘은 비렁길로 유명한 금오도 사진만 살포시 놓고갑니다. '비렁'은 그 지역 방언으로 '벼랑'이라는 뜻입니다.  

금오도는 예전부터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비렁길이 개통되고 나서는 더욱더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딛는 섬이됐습니다. 제가 금오도에 입도했을 때는 평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비렁길을 탐방하더군요. 뭐 늦은 휴가를 오는 사람도 있긴 있었겠죠. 하여간 비렁길은 금오도를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관광자원으로 자림매김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금오도, 아름다운 비렁길!


그런데 한가지! 
비렁길이 좋기는 하지만 금오도까지 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여수까지 온 후 배를 타고 금오도까지 가야하니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비렁길을 걷기에는...ㅋ



















* 다산 정약용: 다산 유물전시관에 서 있는 다산 선생 동상.







정약용 선생 만나러 갑시다_2편


강진 정약용 역사트레킹

    


 

남도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 , 바다가 서로 어우러진 풍광들은 여행자들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 넉넉한 남도의 풍광들을 벗 삼아 길을 걷다보면 발걸음도 가벼워질 겁니다. 그렇게 걷다가 꼬르륵소리가 나면 푸짐한 남도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도 있겠지요. 상다리가 부러질 듯이, 한 상 가득 채워진 음식들을 먹다보면 콧노래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환호성을 터뜨리면서요.

 

~ 풍광 좋고, 음식 좋고...! 이 맛에 남도 트레킹한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남도로 떠납니다. , 그럼 아기자기한 풍광과 맛깔 나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남도로 우리 함께 길을 나서보죠!


제가 찾은 곳은 전남 강진군입니다. ‘남도 답사 1번지라고 불리는 강진군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다산 선생은 만덕산 기슭에다 다산초당을 짓고 그곳에서 집필 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강진에서 무려 18년 동안이나 생활 하셨던 만큼 강진 곳곳에는 다산 선생의 자취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답니다. 그런 자취를 따라서 강진을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산 선생의 자취를 따라서 도보여행을 했습니다. 일명 강진 정약용역사트레킹을 행했답니다. 이번화는 그 강진 정약용트레킹을 담았습니다. 이전 9화가 남양주 정약용역사트레킹이었으니, 이번 10화는 9화의 후속편이 되는 셈입니다.

    



* 다산 정약용: 안경을 쓰신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산유물전시관.


 


 

정약용과 강진

 

영월군은 단종이 먹여 살리고 있어요!”

 

제가 영월강변둘레길을 리딩 했을 때였습니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를 앞에 두고 참석자들에게 저 말을 했답니다. 좀 과장된 면이 있긴 했지만 제가 했던 말이 영 틀린 표현은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참가자들이 거의 다 고개를 끄떡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한 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강진도 그래요. 전남 강진도 정약용 선생이 먹여 살리고 있어요!”

 

이 말에는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을 넘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쳐주더군요. 그래서 저는 첨언을 했습니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청령포가 지금처럼 많은 이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강진도 마찬가지죠. 다산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오지 않으셨다면, 강진이 지금처럼 남도답사 1번지라는 수식어를 부여받지 못했을 겁니다.”

 

여행지로서의 강진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고려청자의 고장이자, 도요새의 고장인 전남 강진! 그런 지역적 명물들이 강진을 빛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진을 강진답게 해주는 건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입니다. 정약용 선생이 없는 강진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산 선생의 생가가 경기도 남양주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더군요. 하지만 다산 선생의 유배지가 강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드물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다산 선생과 강진을 한 묶음으로 묶어서 생각하고 있더군요. 한마디로 다산 선생과 강진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 수원 화성 축조: 기중기를 이용하여 성을 쌓고 있는 모습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산유물전시관.




 

 

다산유물전시관

 

강진 정약용 역사트레킹은 다산유물전시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강진군 도암면에 위치한 다산유물전시관은 만덕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답니다. 유명한 다산초당은 다산유물전시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가면 다산초당에 닿을 수 있지요.


다산유물기념관은 다산 선생과 관련된 유물과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산 선생이 500여권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기록한 만큼 기념관은 다산 선생이 기술한 책들로 가득했습니다. 다산 선생이 직접 기록한 책이 아닌 필사본이라 아쉽기는 했지만 옛 고서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제 눈을 사로잡은 서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기중가도설>이었습니다. <기중가도설>은 중국의<기기도설>을 토대로 다산 선생이 저술한 것인데 한마디로 기중기설계도였습니다. 수원 화성 축조 시, 다산 선생이 기중기를 제작하여 큰 성과를 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요.


<기중가도설>에는 그런 기중기의 도면이 직접 그려져 있었습니다. 꼼꼼하게 그려진 설계도를 보니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오더군요. 그 밖에도 다산유물기념관에는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공짜로 본다는 게 미안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전시물들이 꽤 많았답니다.


다산유물기념관 위쪽으로는 다산 정약용 말씀의 숲이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말씀의 숲은 큰 석상에다 선생의 어록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 전 그 어록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울림이 큰 말씀들이더군요. 세상의 지혜들을 모두 다 옮겨 놓은 것처럼 보였답니다.


어쩌면 따분한 도덕선생님같은 글귀들에 하품부터 내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그 말씀들이 죽비소리처럼 들렸답니다. 아주 큰 울림을 내는 그런 죽비소리.

    

 

    


* 다산 정약용 말씀의 숲.





 

다산초당

 

다음 탐방지는 다산초당(茶山草堂)입니다.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중턱에 자리 잡은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였습니다. 다산 선생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하셨는데 그중 후반부 10년 정도를 다산초당에서 기거하시며 집필과 후학양성에 매진하셨습니다. 유배에서 풀리는 것을 해배(解配)라고 하는데, 그 초당에서 다산선생은 해배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무리 초당이 유배지였다지만 10년 동안 그곳에 기거하시다보니 정이 많이 드셨나 봅니다. 선생께서 고향땅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강진에 있는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초당의 안부를 물으시곤 했으니까요.


현재의 다산초당은 기와집입니다. 초당(草堂)이라 하면 초가집이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현재의 다산초당을 복원하면서, 보다 위엄을 살리기 위해 초가가 아닌 기와집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 다산초당: 현판에 걸린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다산초당은 만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기에 주변이 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숲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입니다. 초당 위쪽인 만덕산 중턱 부근에는 천년고찰인 백련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다산 선생께서는 백련사 스님들과도 활발하게 교유하셨기에 그 길을 자주 걸으셨답니다.


유학자였지만 다산 선생께서는 서학(천주교)에도 일가견이 있으셨습니다. 도교에도 문외한이 아니셨죠. 또한 스님들과도 활발하게 교류를 하셨습니다. 그럼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을까요?

 

다산 선생은 유···서를 두루 섭력하신 학자였다

 

다산(茶山) 선생은 자신의 호처럼 차를 즐기셨습니다. 또 백련사 승려들과 활발하게 불교에 대해서 토론을 하셨습니다. 간간이 강진 읍내도 다녀가셨고, 인근 영암에 있는 월출산에도 오르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다산 선생도 한 풍류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어쩌면 다산 선생의 일생 자체가 바람과 같은 삶이었을지 모릅니다. 계속되는 반대파들의 견제와 탄압, 그리고 억울한 귀향살이. 무려 18년이나 계속된 귀향살이. 하지만 그런 운명에 굴하지 않고 유배지를 도서관으로 만든 그 꿋꿋함.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못 다한 일을 잘 마무리하기까지.

 

드라마틱한 다산 선생의 일생을 들여다 볼 때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매일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제 자신이니까요. 얼마전에도 예정된 트레킹이 펑크가 났다고 며칠간 궁시렁거렸답니다. 조금만 궁시렁거려도 될 걸...


하지만 다산 선생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은 정말 기쁘고 행복하네요. 딱 꼬집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하나 배워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제 발걸음이 계속해서 다산 선생에게로 가는 것이겠죠. 강진이든 남양주든, 혹은 수원이든. 그 곳이 어디든지 상관없습니다. 다산 선생의 뜻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제 발걸음도 함께 것이니까요.






* 다산초당 가는 길: 저렇게 한적한 숲길을 지나면 다산초당에 닿을 수 있다. 한편 왼쪽에 삼남길이라는 표식이 보인다. 삼남길은 서울에서부터 해남까지 걸을 수 있게 만든 도보여행길인데 그 길이가 무려 600km에 달한다.






강진 정약용역사트레킹

 

1. 코스: 다산수련원 다산초당 백련사 뚝방길 강진읍내

 

2. 이동거리: 11km

 

3. 예상시간: 4시간 30(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 백련사: 천년고찰 백련사.



 












 

 

 

 

 

 

 

<가는 곳마다 추억꾸러미 보는 것마다 이야기꽃> 이라는 긴 제목의 전남여행 가이드북이 발간되었다. 이 책자는 올 3월에 발간된 터라 아주 따끈따근하다~ <가는 곳마다 추억꾸러미 보는 것마다 이야기꽃>이라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해당 여행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중심에 놓고 여행정보를 첨가하는 식으로 작성되었다. 여행정보 전달이 우선시되던 기존의 가이드북하고는 방향성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동부권, 중남부권 등... 전남지역을 권역별로 나누었는데 해당 꼭지마다 다른 필진들이 기용되어 여행에세이를 작성하였다. 물론 필자인 곽작가도 이 작업에 참여를 하였다. 필자가 참여를 했으니 이런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다....ㅋ

필자가 여행한 곳은 강진이었고, 글 제목은 <삼남길 따라 가는 남도 역사트레킹>이다.

 

기성 여행작가와 여행기자들이 필진으로 참여를 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이 가이드북의 완성도는 높았다. 책자든, 신문기사든 여행과 관련된 글은 그것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배낭을 꾸리게 해야 한다. 글이 좋든 사진이 좋든 독자에게 해당 지역을 가보게 할만큼 충동질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은 여행기는 여행기로서 낙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자에 기고한 필진들의 글과 사진은 퀄리티가 확실히 높았다. 필자도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고 배낭을 만지막거렸으니까...

 

 

 

 

 

 

그런데 한가지!

 

이렇게 공동필진으로 기획된 책은 각 필진의 필력 때문에 밸런스가 상이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마디로 잘 쓰는 사람은 잘 쓰고, 못 쓰는 사람들은 못 써서 책 전체의 균질성이 감소된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이 책의 완성도가 높다고 하더니, 지금은 밸런스가 깨졌다고? 한 입 가지고 두 말 한다고 필자에게 질책을 가하지는 마시라!

전체적으로 좋다고 했지, 모두다 좋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기성작가라고 하는데 기본적인 문장력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분의 글들이 몇 편 보여서 그랬다. 기본적인 팩트도 어긋난 부분이 있어서 지적하는 것이다. 상당히 치명적인 팩트의 오류라 그냥 넘기기에는 거시기 하더라...

 

어떻게 보면 여행작가라는 직업은 진입장벽이 거의 없는 직업이다. 여행블로그를 하다가, 어디 오지 여행을 하다가 책을 내고 언론에 등장하면, 그 사람이 바로 여행작가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작가 판은 지금도 계속해서 신규 인원들이 진입을 하고 있다. 물론 그만큼 빠져나가는 사람도 아주 많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뭘 내세울 게 있어서 여행작가니, 여행프리랜서니 하고 다니겠는가? 겨우 무동력 여행으로 몇 천 킬로미터 찍은 거, 역사트레킹을 리딩하는 거... 뭐 그런 것들이다. 얼핏보면 좀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다.

       

이렇게 진입장벽이 거의 없거나 낮다보니 필력이 의심되는 분들의 여행기도 간간이 접하게 된다. 또한 기본적인 팩트가 어긋나는 글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든다.

 

"여행작가 지망생들아! 너무 쫄지 마라. 이런 사람들도 여행작가라고 여행기를 생산해낸다! 너희들도 할 수 있어! 파이팅! 나도 파이팅!"

 

ㅋㅋㅋ

 

글이 길어졌다. 그럼 필자가 작성한 <삼남길 따라 가는 남도 역사트레킹>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 문장력이 제대로 갖추어졌고, 기본 팩트가 일치하는가? 문장력은 모르겠는데, 기본 팩트는 일치한다. 필자는 왠만하면 크로스체킹을 통해 서너번 이상 오류 감시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각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여행 공모전을 시행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결과물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들이 있다. 공모전들이 휘발성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는 곳마다 추억꾸러미 보는 것마다 이야기꽃>은 잘 활용되어 결과물의 '자기복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휴대하기 편하기 만들어진 이 책자를 가지고 남도 땅을 여행하고, 그 여행이야기가 더욱더 많이 퍼지는 식으로 '자기복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야 지리산 자전거 질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마지막] 민족의 영산 지리산

13.03.21 18:21l최종 업데이트 13.03.21 18:21l

 

 

 

▲ 성삼재 성삼재에서 바라본 전남 구례. 앞에 보이는 도로가 지리산 관통도로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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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는 타이밍이다. 여행기의 작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다고 하더라도 발표 시기를 놓친다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여행기는 묵혀 놓으면 놓을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골동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 기사는 시급을 다퉈 발표하는 성격의 뉴스가 아니다. 사진도 잘 선별해야 하고, 이동 중에 기록한 메모들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사를 송고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여행에 대한 여행기이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시간의 소요가 느긋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느긋함을 부리다가 기사 작성이 계속 뒤로 미뤄지고, 그러다 아예 전체 기사분에서 누락되는 원고가 생기게 된다. 내가 연재 아닌 연재를 하고 있는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여행기에도 그렇게 누락분이 발생했다. 삼척·동해·예천·거창·김천 등등 시간에 쫓기다 보니 좀 더 오래 머물고, 좀 더 많은 에피소드를 경험한 지역을 취사선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뜀뛰기를 하듯 여행기를 작성했지만 한 번 꼬인 '스텝'은 잘 풀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다녀왔던 이야기가 엄동설한에 발표됐던 것이다. 계절감이 전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 도계삼거리 달궁삼거리를 도계삼거리라고도 부른다. 저 표지판처럼 그 곳은 분명 아름다운 곳이지만... 필자에게는 너무나 험난한 곳이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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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주의보에 보는 반소매 사진

 

 

특정 주제를 놓고 공모를 하는 여행기 공모전이나 옛 추억을 회고하는 방식의 포토에세이라면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처럼 특정 시기에 행하고 동선이 명확한 여행기는 계절감이라는 족쇄에 묶일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31일에 발행된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 여행기를 본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글도 사진도 꽤 쓸 만한데, 반소매 입은 사진은 좀 추워 보인다. 지금 한파주의보라는데…."

아무리 좋은 글을 쓰고, 아무리 멋진 사진을 게재하더라도 한파주의보를 체감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반소매 사진은 '아니올시다'를 유발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필자도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뜀뛰기를 하듯 여행지를 취사선택을 할 필요도 없게 됐다. 이번 편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마지막 편이기 때문이다.

 

 



# 2011년 여름에 만난 태풍의 기억

여행 43일 차 2012년 7월 26일

나는 경남 함양군을 출발했다. 이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리산!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민족의 영산.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 관문인 지리산. 그렇게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나는 이미 2011년에 관통도로를 통해 지리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국토종단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다.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힘들게 올라갔는데 나를 반긴 것은 '덴무'라는 태풍이었다.

무척 억울했다. 여러 번에 걸친 위기를 넘기고 성삼재에 도착했더니, 태풍이 필자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구절양장 같은 꾸불꾸불한 지리산 관통도로를 40시간에 걸쳐 이동을 했는데 말이다.

겨우 태풍이나 만나려고 그 고생을 하며 성삼재에 올랐던 것인가. 힘 좋은 4륜 구동 자동차로도 오르기 힘들다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자전거로, 그것도 40kg나 되는 짐을 싣고 올라섰건만. 이름도 이상한 태풍이나 만났으니! 더군다나 당시 내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둘 다 작동 불능 상태였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지, 자전거 브레이크는 망가졌지, 체력은 다 빠졌지.

 

 

 


 
▲ 지리산 관통도로 꼬불꼬불 구절양장 같은 지리산 관통도로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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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결점을 다시 지리산 성삼재로 잡은 것은 2011년의 '리벤지 매치'의 성격이 강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성삼재에 올라서 등산객들에게 제대로 환대와 격려도 좀 받고, 노고단에도 오를 생각이었다.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를 끌고 가는 내내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푸하핫, 태풍도 안 오고 날씨 참 좋네. 이번에는 성삼재에 올라가서 목에 힘 좀 주고 다녀도 되겠군. 백두대간자전거 여행의 마지막이 지리산이라고 등산객들한테 자랑하고 다녀야지!'

나는 시간 계산을 잘못해, 야간주행을 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했지만 당시 마음은 뭔지 모를 뿌듯함이 넘쳤다. 불빛 하나 없는 산 한복판에서 오직 달빛에 의존해 주행하는 것도 '판타스틱'했고, 그런 '판타스틱'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지리산이라는 점도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당시 여행일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해서 그런지 몸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그냥 눈이 감길 정도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상쾌하다. 왜? 이곳은 지리산이니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니까!"(7월 26일 오후 11시 뱀사골 야영장에서)

 

 

 

 


# 땀 뻘뻘 흘리며 페달 밟는데, 옆에서는 맥주가...

다음날. 지리산 산신령께서 단잠을 내려 주셔서 그랬는지, 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까지 잠이 들었다. 여행 막바지라고 여유를 좀 부렸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그곳 지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시간당 이동 거리도 가늠할 수 있었기에 그런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그 전년도의 경험도 한몫했다.

한여름의 지리산은 생기가 흘러넘쳤다. 덩달아 탐방객들이나 캠핑족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러넘쳤다. 달궁 캠핑장을 지날 때였다. 한무리의 가족들이 둘러앉아 수박을 쪼개 먹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도 한 잔 걸치면서... 불타오르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던 나로서는 그런 광경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천하절경 속에서 음식과 술잔이 도니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지만 술 한 잔 받아먹지 못하는 내 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느긋한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서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리산 지리를 안다고 하지만, 야간에 지리산 관통도로를 이동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성삼재에 오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 노고단에서의 아침 첩첩 산 중을 배경으로 한 컷! 일출 즈음이라 그런지 사진이 잘 안 찍혔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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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에서의 결심 '자랑 좀 해야겠다'

 

 

7월 27일 오후 7시


드디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진입했다. 유명한 달궁 삼거리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관통도로의 경사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팔라졌다.

보통 산행을 할 때 자신의 에너지 중 30%는 비축해놔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비상시라도 체력이 남아 있다면 훨씬 더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행 가이드'는 내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젖 먹던 힘까지 내뿜어야 할 시기였던 것이다.

그냥 등산 배낭을 메고 그 도로를 타고 오르는 것도 힘든데 40kg 정도 되는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그곳을 올라가야 하다니…. 어느 구간은 너무 경사도가 심해서 자전거가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 내 에너지는 0%에 가까웠을 것이다. 에너지 30% 비축론은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성삼재로 향했고, 지리산은 어둠으로 덮였다. 이제 슬슬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도 보이기 시작했다.

'푸하핫, 드디어 내 여행도 끝이 보이는구나. 성삼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분에게 인사하고 여행 자랑 좀 해야지!'

내 발걸음과 블루야크의 바퀴질도 더 분주해졌다. 빨리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노고단이 눈앞에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성삼재 드디어 성삼재에 도달했다. 어두운 시각에 도착했던 터라 사진도 잘 안 찍혔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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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오후 8시


성삼재에 도착했다. 드디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난 해냈다. 결국 여행의 끝을 본 것이다. 어둠 속 성삼재는 고요했다. 밤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필자는 성삼재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성삼재 이곳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쳤습니다. 여행을 마치자마자 처음으로 뵙는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주차관리소에서 급히 나오셨다. 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자랑은 고사하고 꾸지람부터 듣다니

"안녕하세요."
"아니 이 밤에 여기는 뭐하러 올라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는, 서둘러 쇠사슬로 자동차 진입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뭐해요. 당장 가요."
"……."

역시 또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난 당혹스러웠다. 힘든 여행을 종결짓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소리가 퉁명스러운 꾸짖음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이런 괄시나 당하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지리산에 왔단 말인가? 내 여행이 이렇게 멸시를 당할 정도로 하찮았단 말인가?'

2011년에 태풍을 맞았던 것보다 훨씬 더 억울했다. 그나마 태풍을 맞았을 때는 관리소 직원이 직접 커피를 타주며 필자의 '무사귀환'을 염려해줬다. 그런 고마운 기억이 있었기에 일부러 국립공원 직원분을 찾아 먼저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작은 소망은 퉁명스러운 꾸짖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렇게 혼자 오버 하냐. 뭐 대단한 여행이라고…. 대충 정리하고 빨리 서울 갈 생각이나 해야겠다.'

심신이 다 지쳤다. 그냥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심야고속버스라도 있으면 잡아타고 곧장 서울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지리산 관통도로를 타고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동이 좋은 자동차도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는 '죽음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그곳을 내려간다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야 했다. 그 직원이 퇴거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멸시를 당했더니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걸 어쩌지? 가긴 가야 하는데, 내려갔다가는 바로 골로 갈 텐데….'



▲ 노고단 탐방소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저렇게 노고 할매가 반겨주었다. 사진에서 보여지듯 내 자전거는 해발 1,380m까지 올라갔다.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참 멀리도 간 셈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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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가 딱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내려갈 수 없으면 올라가면 되지 않던가? 그냥 노고단으로 가면 되지 않던가?


현재 노고단-성삼재 구간은 임도로 돼 있다. 그래서 1톤 트럭도 통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전거는 통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일몰 후 야간에는 산행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개의 규칙을 어기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한밤중 지리산은 고요했다.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랜턴을 끄고 달빛에 의존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해봤다. 한밤중 지리산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가니 노고단에서 빛나는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어떤 젊은 국립공원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간 산행에, 자전거까지…. 이러시면 안 돼죠. 과태료 딱지를 맞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했다.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규칙을 꼭 지켜주십시오. 어쨌든 여행이 완료된 건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무사히 종료됐다. 성삼재에서 빰 맞고 노고단에서 화풀이 한 경우이지만, 어쨌든 지리산에서 무사히 여행을 종료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 육십령 지리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있는 육십령 고개. 육십령도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고개이다. 지리산까지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지선 개념으로 육십령을 거쳐 남덕유산까지 달려보았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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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동안 재미는 없고, 분량만 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덧글. 내 자전거 블루야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인 노고단 탐방소(1380m)에 오른 여행 자전거로 기록될 것이다. 만약 그 주차관리소 직원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블루야크의 고지대 기록은 성삼재(1090m)에서 멈췄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만항재(1330m)다. 한마디로 자전거도 만항재까지밖에 못 올라간다.

 

 

 


 

 

* 달궁삼거리: 여기서 직진을 하면 성삼재가 나오고, 우회전을 하면 정령치가 나온다.

 

 

 

 

# 성삼재에서 여행 자랑을 해야겠다!

 

7월 27일 오후 7시

드디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진입했다. 유명한 달궁 삼거리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관통도로의 경사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팔라졌다.

보통 산행을 할 때 자신의 에너지 중 30%는 비축해놔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비상시라도 체력이 남아 있다면 훨씬 더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행 가이드'는 내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젖 먹던 힘까지 내뿜어야 할 시기였던 것이다. 

그냥 등산 배낭을 메고 그 도로를 타고 오르는 것도 힘든데 40kg 정도 되는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그곳을 올라가야 하다니…. 어느 구간은 너무 경사도가 심해서 자전거가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 내 에너지는 0%에 가까웠을 것이다. 에너지 30% 비축론은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성삼재로 향했고, 지리산은 어둠으로 덮였다. 이제 슬슬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도 보이기 시작했다.

'푸하핫, 드디어 내 여행도 끝이 보이는구나. 성삼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분에게 인사하고 여행 자랑 좀 해야지!'

내 발걸음과 블루야크의 바퀴질도 더 분주해졌다. 빨리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노고단이 눈앞에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성삼재: 드디어 성삼재에 도달했다. 어두운 시각에 도착했던 터라 사진도 잘 안 찍혔다.

 

 

 

 

7월 27일 오후 8시

성삼재에 도착했다. 드디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난 해냈다. 결국 여행의 끝을 본 것이다. 어둠 속 성삼재는 고요했다. 밤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필자는 성삼재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성삼재 이곳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쳤습니다. 여행을 마치자마자 처음으로 뵙는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주차관리소에서 급히 나오셨다. 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칭찬은커녕 꾸지람부터 듣다!

 

"안녕하세요."
"아니 이 밤에 여기는 뭐하러 올라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는, 서둘러 쇠사슬로 자동차 진입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뭐해요. 당장 가요."
"……."

역시 또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난 당혹스러웠다. 힘든 여행을 종결짓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소리가 퉁명스러운 꾸짖음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이런 괄시나 당하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지리산에 왔단 말인가? 내 여행이 이렇게 멸시를 당할 정도로 하찮았단 말인가?'

2011년에 태풍을 맞았던 것보다 훨씬 더 억울했다. 그나마 태풍을 맞았을 때는 관리소 직원이 직접 커피를 타주며 필자의 '무사귀환'을 염려해줬다. 그런 고마운 기억이 있었기에 일부러 국립공원 직원분을 찾아 먼저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작은 소망은 퉁명스러운 꾸짖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렇게 혼자 오버 하냐. 뭐 대단한 여행이라고…. 대충 정리하고 빨리 서울 갈 생각이나 해야겠다.'

심신이 다 지쳤다. 그냥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심야고속버스라도 있으면 잡아타고 곧장 서울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지리산 관통도로를 타고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동이 좋은 자동차도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는 '죽음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그곳을 내려간다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야 했다. 그 직원이 퇴거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멸시를 당했더니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걸 어쩌지? 가긴 가야 하는데, 내려갔다가는 바로 골로 갈 텐데….'

 

 

 

 

 

 

* 노고단 탐방소: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저렇게 노고 할매가 반겨주었다. 사진에서 보여지듯 내 자전거는 해발 1,380m까지 올라갔다.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참 멀리도 간 셈이다.

 

 

 

 

 

# "이러다 과태료 딱지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내려갈 수 없으면 올라가면 되지 않던가? 그냥 노고단으로 가면 되지 않던가?

현재 노고단-성삼재 구간은 임도로 돼 있다. 그래서 1톤 트럭도 통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전거는 통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일몰 후 야간에는 산행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개의 규칙을 어기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한밤중 지리산은 고요했다.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랜턴을 끄고 달빛에 의존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해봤다. 한밤중 지리산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가니 노고단에서 빛나는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어떤 젊은 국립공원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간 산행에, 자전거까지…. 이러시면 안 돼죠. 과태료 딱지를 맞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했다.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규칙을 꼭 지켜주십시오. 어쨌든 여행이 완료된 건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무사히 종료됐다. 성삼재에서 빰 맞고 노고단에서 화풀이 한 경우이지만, 어쨌든 지리산에서 무사히 여행을 종료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 육십령: 지리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있는 육십령 고개. 육십령도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고개이다.

 지리산까지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지선 개념으로 육십령을 거쳐 남덕유산까지 달려보았다.

 

 

 

 

 

 

 

 

 

 

 

 

 

 

 

 

 

 

 

 

 

 

 

 

 

       *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서 : 중앙부 하단에 있는 저 자전거를 타고 남도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짐이 주렁주렁 달려있네요^^;

 

 

 

 

        * 순천만: 순천만은 참 아름다운 곳이더군요. 안 갔으면 무척 후회할 뻔했답니다.

 

 

 

 

 

 

 

기간: 2011년 6월 7일~ 6월 27일

 

코스: 광주광역시 출발 -> 나주시 -> 영암군 -> 해남군 -> 완도군(청산도) -> 강진군 -> 장흥군 -> 보성군 -> 고흥군 -> 순천시 -> 광양시 -> 경남 하동군 -> 진주시 -> 함안군 -> 통합 창원시 -> 김해시 -> 밀양시 -> 경북 청도군 -> 경주시 -> 포항시 -> 영덕군 -> 서울(동서울터미널) : 자전거는 앞바퀴를 분리하여 고속버스에 실었음.

 

여행종류: 자전거 여행

 

총 이동거리: 900Km -> 자전거 속도계에 이동거리 측정 기능이 있음

 

순간 최고속도: 65Km -> 완도군 청산도에서 기록됨. 죽는 줄 알았음. ㅋㅋㅋ

 

일일 최장 이동거리: 80Km

 

 

 

 

* 순천만 옆에 있는 순천 문학관: 제가 요렇게 하고 숙식을 해결했답니다. ㅋㅋㅋ

 

 

 

눈치를 채셨겠지만 제가 다녀온 여행은 1박 2일 같은 통상적인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20일 정도 됐던 여행이었고, 순수하게 자전거로 주행한 여행이었습니다. 제 자전거에 속도계를 달아서 카운팅을 해보았답니다.

 

자전거도 별로 안 좋은데 짐을 40Kg를 달고 주행을 했으니 아주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오르막 길은 그냥 자전거를 질질

끌고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자전거 여행을 하는데, 왜 팔뚝에 근육이 붙었을까요? ㅋㅋㅋ

 

서울에 와서 체크를 해보니 제가 경북 코스를 지날 때는 백두대간의 꼬리 부분을 지났더군요. 한마디로 자전거를 끌고 백두대간을 넘은 셈입니다. 예전에 지인들에게 얼핏 백두대간을 자전거로 한 번 넘어보고 싶다고 흘리듯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렇게 훌쩍 넘은 셈입니다. 말이 씨가 되는 건가요? 어쨌든 씨가 좋은 싹으로 꽃 피워졌네요!

 

뭐 대충 간파는 하셨겠지만 돈도 별로 들지 않은 여행이었습니다. 제가 별로 돈이 없어서리...ㅋㅋㅋ

사실 카드빚 내서 갔습니다. 다음달 결제 대금이 얼마가 나올지-_-

그러고보면 식수는 거의 받아 마신 것 같군요. 어디서? 정수기에서. 이런 겁니다. 면사무소나 읍사무서에 들어가면 정수기가 있잖아요. 거기에서 그냥 드립다 물을 받는 겁니다. ㅋㅋㅋ

면사무소나 읍사무소 탐방을 하다보니 공통적으로 느껴지던게 있더군요. 역시 지역에서도 여성 파워가 느껴지더군요.

 

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것은 역시 우리나라는 아직 인심이 넉넉한 곳이라는 겁니다. 현지분들에게 제가 예의를 갖추고 요구를 하면 왠만한 것은 다 들어주시더군요.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에도, 참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는게 확 느껴지더군요. 제가 다 민망할 정도로요.

 

 

야간주행 하다가 국도변에서 사고 나서 죽을 뻔한 기억, 급경사를 내려오다 핸들 이상으로 살 떨렸던 기억 등등... 참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런 기억들이 있었기에 더 유익한 여행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 순천만의 외곽지역

 

 

 

 

 

       *주남저수지: 람사르 총회가 열렸던 통합창원시의 주남저수지

 

 

 

 

   *  지리산과 섬진강의 고장 하동군: 오른쪽 중간에 붉은색은 기차입니다. 경전선이죠. 저거 타면 섬진강을 넘을 수 있답니다.

 경전선은 그냥 타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되는 것 같더군요.

 

 

 

 

* 경주 경동마을: 최근에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죠.

 

 

덧붙임: 본 포스팅은 본 남도여행의 스케치 정도에 불과합니다. 당연하죠. 20일 동안의 여행 동안 제가 찍은 사진만 해도

1000장 가까이 됐으니까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20일 간의 여행을 디테일하게 포스팅해 보고 싶네요.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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