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 태평양 다원 삼남길 전남구간 8코스에 있는 태평양 다원. 멀리 보이는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을 병풍 삼아 펼쳐진 강진의 녹차밭은 보성 녹차밭과는 또다른 멋이 있었다.

 

 

 

 

 

▲ 해남의 갈대밭 삼남길 3코스는 해안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삼남길은 바다를 만나고, 산을 둘러가고, 강을 넘는 길이다. 멀리 보이는 섬은 완도다.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7일 동안 90km 걸으며 삼남길 보수작업 여행기____1편

 

 

 

일주일 동안 100km를, 도보를 통해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필자는 개의치 않았다. 차라리 느긋해 있었다. 물론 자동차가 아닌 도보를 통해 100km를 이동해야 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할 일은 길의 보수·정비였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걷는 일반적인 도보여행이 아니었다. 각종 장구들을 지니고 주요 지점에 멈춰 서서 길을 정비하는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 필자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여행가이기 때문이다. 5600km라는 무동력 여행 기록을 가지고 있으니, 100km 정도는 그리 큰 숫자로 보이지 않았다.

'하핫, 까짓것 파스 좀 바르면 거뜬하게 버틸 수 있겠군. 오랜만에 남도여행이나 재밌게 해보는 거야!'

지난 2월 21일. 필자는 그런 느긋한 생각을 품고 해남 땅끝 마을로 향하는 승합차에 탑승했다. 승합차 뒤편에는 전동드릴, 실리콘 총, 리본, 스티커 등등…. 각종 작업 장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곽 작가, 오랜만이야. 자원봉사 고마워. 그런데 이번 삼남길 보수작업 만만치 않을 거야."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었다.

"무슨 말씀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전문가 아닙니까?"

 

 

 

* 삼남길 보수작업: 보수작업에 쓰여던 각종 공구와 도구들.

 

 

 

 

 

 #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삼남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랬다. 필자가 이번에 소개할 여행기는 삼남길 전남 구간 보수·정비에 대한 이야기다.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삼남길에 대해서 소개해본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듯이 한국에도 삼남길이 있다. 서울에서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걷기 편한 트레일(trail:오솔길) 코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장장 700km가 넘는 도보여행길이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에 의해서 개척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현재의 삼남길 개척은 조선시대 십대대로 중에 하나였던 삼남대로를 계승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곡창지대였던 삼남(전라, 경상, 충청)이 조선왕조 물산(物産)의 중심축 역할을 했듯, 한양에서 호남지역으로 향했던 삼남대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길을 따라 수많은 관헌들이 말을 달렸고, 그 길을 따라 수많은 보부상단과 남사당패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한 수많은 수레들이 힘 좋은 황소들에 이끌려 그 길에 바퀴자국을 냈다. 
 
그 길에서는 희망과 참담함이 서로 교차되기도 했다. 호남과 충청지역 자제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갔던 길이 삼남대로였고, 중앙권력에서 밀려난 선비들이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며 귀양길을 떠나야 했던 길도 삼남대로였기 때문이다. 정약용·정약전 형제가 귀양길을 올랐던 곳도 삼남대로였고,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인 제주도로 향할 때 걸었던 길도 삼남대로였다. 이렇듯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는 삼남길은 단순히 국토종단 도보여행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적인 길이 오늘날 느림의 미학과 결부되어 행복과 치유의 도구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삼남길은 현재 전남구간(해남~장성) 14코스 228km가 개통되어 있고, 올해 5월에는 경기도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다. 아직 충남과 전북지역은 미개통 상태로 남아 있다.

 

 

 

 

▲ 삼남길 보수작업의 작업팀 맨 왼쪽은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다. 나머지 두 분은 보수작업을 위해서 자원봉사를 하시러 왔다.

두 분 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다. 도보여행에 대한 애착과 경력은 이미 전문가급을 넘어서고 있었다.

 

 

 

 

 

 #매연을 먹으면서 '힐링'을 할 수 있는가?

한편 현재 개척되고 있는 삼남길이 조선시대에 발간된 지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필자는 이런 주장이 좀 우려스럽다. 삼남길에 대해서 기계적인 접근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사기로 복사하듯 옛날 길을 복원하라는 건 현실적인 상황을 아예 무시하는 태도라고 판단된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교통혁명을 겪었다. 인력과 축력, 즉 무동력 시대에서 동력기관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교통혁명은 시간에 대한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무동력 시대에는 해남에서 한양까지 30일이었지만 지금은 고속도로로 5시간이다. 현재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이 해남으로 출장을 가면 1박 2일이 걸리지만 조선시대 관헌은 왕복하는데 족히 2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교통혁명은 옛 삼남대로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흙길이었던 곳에 신작로가 닦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신작로가 지금은 국도나 고속도로로 변한 곳도 있다. 군부대가 들어선 곳도 있다.

옛 삼남대로를 기계적으로 복원하면,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바퀴 열 개짜리 24톤 트레일러와 함께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군부대 연병장을 가로질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길은 걸을 필요가 없다. 매연을 먹으면서 '힐링'하려고? 소음을 들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려고?

 

 

 

 

 

▲ 삼남길 삼남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남도의 정취에 물들게 된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풍광이 삼남길 곳곳에 즐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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