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남길 장군봉이라는 곳이다. 작은 산이지만 그 곳에 올라서면 평야와 산들이 어우러진 강진군 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사진에서 나타나듯 장군봉에서 바라다보는 남도 일대는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사진에 등장한 분들은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과 장덕진 팀장이다.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7일 동안 90km 걸으며 삼남길 보수작업 여행기___2편

 

 

 

 

 

# 공구가방을 둘러메고 보수작업에 나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개척이 아닌 보수공사를 하러갔다. 이미 개척이 완료된 구간의 설비들을 재정비하는 것이 필자의 임무였다. 보수작업은 개척작업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래서 개척작업과 보수작업을 이란성 쌍둥이로 표현할 수도 있다.

도보여행 코스는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는 한 번쯤 전수 조사를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안내판 재정비 같은 작업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훼손된 방향표지판을 새로 교체해 주고, 수풀이 우거진 곳은 낫으로 통행로를 확보하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지니고 움직여야 할 장구들도 한가득이었다. 방향지시판, 스티커, 리본, 전동드릴, 실리콘총 등등…. 이렇게 가지고 다녀야 할 공구들이 많으니 작업팀들은 허리에 공구가방을 둘러야 했다. 군대에서 쓰는 탄띠를 응용해서 만든 가방이었다. 그 많은 장비들을 공구가방에 담았더니 허리가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보수작업의 첫 시작점은 해남 땅끝 마을이었다. 삼남길의 시작점이 땅끝 마을이기 때문이다. 보수작업은 할 만했다. 필자도 트래킹 코스를 직접 개척한 경험도 있었고, 개별적으로 삼남길을 여행한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필자는 아웃도어 여행가가 아닌가!

'그냥 산보 하듯이 살랑살랑 걷다가 맛있게 남도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겠군. 푸하핫, 간만에 일주일 동안 포식하겠군!'

 

 

 

 

 

▲ 화장실에 붙여진 삼남길 스티커: 녹색이 서울 방면이고 빨간색이 해남 방면이다. 사단법인이 돈이 없는 관계로 값비싼 방향표지판 대신 스티커를 붙여야 했다. 한편 저 화장실은 스티커를 붙이는데는 제격이었지만 볼 일을 보기에는 꽝이었다. 무척 지저분 했기 때문이다. 아마 화장실 귀신도 도망갔을지 모른다.

 너무 지저분해서.

 

 

 

 

 

도보여행 길 보수 작업의 핵심은 올바른 표지판 설치에 있다. 단방향 길처럼 중간에 진·출입이 없는 곳이면 표지판 설치에 드는 수고가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남길은 그렇게 단순한 길이 아니다. 바다와 만나고, 산을 둘러가고, 농로를 질러가고, 강을 건너는 길이 바로 삼남길이기 때문이다. 해안길만 타고 가는 길이야 그냥 바다를 기준 삼아 계속 나아갈 수 있지만 삼남길은 그렇게 단순하게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말이다.

혹자는 '그렇게 단순한 길이 아니면,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나무 푯대 같은 것을 갈림길 곳곳에 세워두면 되지 않냐'고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삼남길 개척을 주관하는 손성일 대장의 고심이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돈이 문제지. 나무 푯대 하나 설치하는데 인건비 포함해서 100만 원 정도 든다는데 그 비용이면…. 아휴."

 

 

 

 

 

▲ 점재 삼나무 숲길: 삼남길 6코스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지나 점재를 넘는다. 1970년대 포장도로가 들어서기 전까지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 산 아래 주민들은 점재를 넘어 강진 읍내로 왕래했다고 한다. 포장도로 개설 이후 사람들이 자동차만 타고 다니니, 자연스럽게 산길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다 삼남길 개척으로 옛길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아마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저 점재를 넘어 강진 읍내로 왕래를 하셨을 것 같다.

저렇게 시원스럽게 뻗은 늠름한 삼나무에 감탄을 하시면서.

 

 

 

 

 

#'초' 저비용으로 개척되고 있는 삼남길

그렇게 손성일 대장이 한탄을 할 만했다. 오죽했으면 고급(?) 인력인 필자까지 자원봉사로 삼남길 보수공사에 참여를 했겠는가. 그렇다. 역시 돈이 문제였다. 사단법인이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헝그리 정신'은 삼남길 개척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전남구간 228km 개통에 3억 원 남짓한 비용밖에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km당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이 투입됐던 다른 도보여행 길들의 예산 집행과정과 삼남길의 개척비용을 일대일로 비교해보면, 그 '헝그리 정신'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걷기여행의 열풍을 타고 각 지자체에서 앞 다투어 개설했던 도보여행 길들에 적게는 수십 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삼남길은 확실히 저비용이라는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개발비용이 저렴하다는 말은 달리 말해 개척자들이 엄청난 '생고생'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랬다. 개척초기에 삼남길 개척단은 매일 같이 텐트 생활을 해야 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했다. 돈이라고는 지인들이 모아준 후원금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용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개척단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백이 되어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피로가 가중됐고, 황소도 때려잡게 생긴 사람도 몸살을 앓고 '픽픽' 쓰러졌다고 한다.

 

 

 

 

*삼남길 작업: 삼남길 작업에 쓰인 리본

 

 

 

 

#'이거 도망가야 하나?', 야반도주를 생각하게 됐다

문제는 필자도 그렇게 '픽픽'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작업 3일째가 되자 출발 전에 품었던 느긋함은 싹 다 사라졌다. 작업 장구를 지니고 하루 평균 15km 이상의 거리를 속보를 통해 이동을 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피지컬을 염두에 두고 이동하는 일반적인 도보여행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균형이 깨졌던 것이다. 자신만의 페이스라는 게 있다. 아웃도어 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한 번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적지까지 잘게 썰어서 도착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두 가지를 절충해서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삼남길 보수 작업에서는 그런 통상적인 페이스 조절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왜? 말 그대로 작업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작업지점에 멈춰 서서 작업을 하고, 또 이동하다 작업하고. 그렇게 불규칙적으로 이동과 작업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 수많은 돌발 변수들이 발생했다. 예전에 설치했던 표식들이 사라졌거나 길 자체가 훼손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새롭게 코스를 재정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유지를 통과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땅 주인이 철문을 새로 달아 놓으면 그 길은 더 이상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엔 국도가 4차선으로 확·포장 되어서 기존의 트래킹 코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필자만의 페이스를 발휘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균형도 깨졌다. 일반적인 도보여행보다 피로도가 2~3배는 더한 것 같았다. 작업 당시 남도는 봄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지만 내 몸에는 한기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식은땀이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온 삭신이 다 녹아나는 느낌이었다. 파스로 버틸 수위를 넘어선 것이다. 야반도주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내 마음을 간파했는지 손성일 대장이 몸살약을 건네며 이런 말을 했다. 

"정말 만만치가 않지…. 이 일 하다 여럿 도망갔어."

 

 

 

 

 

 

 

▲ 공구가방을 두른 필자 사진 왼쪽이 손성일 대장이고, 오른쪽이 필자다. 허리에 공구가방을 두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계속된 작업에 지쳐서 그랬는지 뒷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공구가방이 축 처져있다. 자켓에 달린 모자도 지퍼가 좀 풀려있다. 뒤에 있는 산은 영암 월출산이다.

 

 

 

 

 

#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도망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배신자도 되고 싶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전 일정을 다 참가한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 달릴 때까지 달려보는 거야. 중간에 그만 둘 수는 없잖아!'

오기 때문인지, 몸살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필자는 전 일정을 다 소화 할 수 있었다. 무척 고단한 작업이었고 체력적으로도 힘겨웠지만 전 일정이 무사히 완료됐다. 멤버들도 모두 무탈하게 귀가 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7일 동안 90km 정도를 이동했던 것 같다. 100km에는 못 미쳤다. 오전 작업만 한 적도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단기간 내에 참 많이 걸었던 셈이다.

새삼스럽게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지 말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했던 여행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체력적으로 충만하다고 해도 아웃도어 현장에서는 돌발 변수라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피로는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아웃도어를 하다가 골병이 들면 안 되지 않나?

도보여행 객들을 위해 좋은 길을 만드시는 분들의 노고도 새삼스럽게 되새겨 보았다. 가장 걷기 좋게, 가장 친환경적으로 트래킹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숱한 몸살과 골병들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개척자들의 피땀 어린 노고가 있었기에 도보꾼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을 것이다.

 

 

▲ 삼남길 8코스 태평양 다원 여기서 조금만 더가면 유명한 월남사지 3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 강진 태평양 다원 삼남길 전남구간 8코스에 있는 태평양 다원. 멀리 보이는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을 병풍 삼아 펼쳐진 강진의 녹차밭은 보성 녹차밭과는 또다른 멋이 있었다.

 

 

 

 

 

▲ 해남의 갈대밭 삼남길 3코스는 해안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삼남길은 바다를 만나고, 산을 둘러가고, 강을 넘는 길이다. 멀리 보이는 섬은 완도다.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7일 동안 90km 걸으며 삼남길 보수작업 여행기____1편

 

 

 

일주일 동안 100km를, 도보를 통해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필자는 개의치 않았다. 차라리 느긋해 있었다. 물론 자동차가 아닌 도보를 통해 100km를 이동해야 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할 일은 길의 보수·정비였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걷는 일반적인 도보여행이 아니었다. 각종 장구들을 지니고 주요 지점에 멈춰 서서 길을 정비하는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 필자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여행가이기 때문이다. 5600km라는 무동력 여행 기록을 가지고 있으니, 100km 정도는 그리 큰 숫자로 보이지 않았다.

'하핫, 까짓것 파스 좀 바르면 거뜬하게 버틸 수 있겠군. 오랜만에 남도여행이나 재밌게 해보는 거야!'

지난 2월 21일. 필자는 그런 느긋한 생각을 품고 해남 땅끝 마을로 향하는 승합차에 탑승했다. 승합차 뒤편에는 전동드릴, 실리콘 총, 리본, 스티커 등등…. 각종 작업 장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곽 작가, 오랜만이야. 자원봉사 고마워. 그런데 이번 삼남길 보수작업 만만치 않을 거야."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었다.

"무슨 말씀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전문가 아닙니까?"

 

 

 

* 삼남길 보수작업: 보수작업에 쓰여던 각종 공구와 도구들.

 

 

 

 

 

 #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삼남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랬다. 필자가 이번에 소개할 여행기는 삼남길 전남 구간 보수·정비에 대한 이야기다.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삼남길에 대해서 소개해본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듯이 한국에도 삼남길이 있다. 서울에서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걷기 편한 트레일(trail:오솔길) 코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장장 700km가 넘는 도보여행길이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에 의해서 개척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현재의 삼남길 개척은 조선시대 십대대로 중에 하나였던 삼남대로를 계승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곡창지대였던 삼남(전라, 경상, 충청)이 조선왕조 물산(物産)의 중심축 역할을 했듯, 한양에서 호남지역으로 향했던 삼남대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길을 따라 수많은 관헌들이 말을 달렸고, 그 길을 따라 수많은 보부상단과 남사당패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한 수많은 수레들이 힘 좋은 황소들에 이끌려 그 길에 바퀴자국을 냈다. 
 
그 길에서는 희망과 참담함이 서로 교차되기도 했다. 호남과 충청지역 자제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갔던 길이 삼남대로였고, 중앙권력에서 밀려난 선비들이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며 귀양길을 떠나야 했던 길도 삼남대로였기 때문이다. 정약용·정약전 형제가 귀양길을 올랐던 곳도 삼남대로였고,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인 제주도로 향할 때 걸었던 길도 삼남대로였다. 이렇듯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는 삼남길은 단순히 국토종단 도보여행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적인 길이 오늘날 느림의 미학과 결부되어 행복과 치유의 도구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삼남길은 현재 전남구간(해남~장성) 14코스 228km가 개통되어 있고, 올해 5월에는 경기도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다. 아직 충남과 전북지역은 미개통 상태로 남아 있다.

 

 

 

 

▲ 삼남길 보수작업의 작업팀 맨 왼쪽은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다. 나머지 두 분은 보수작업을 위해서 자원봉사를 하시러 왔다.

두 분 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다. 도보여행에 대한 애착과 경력은 이미 전문가급을 넘어서고 있었다.

 

 

 

 

 

 #매연을 먹으면서 '힐링'을 할 수 있는가?

한편 현재 개척되고 있는 삼남길이 조선시대에 발간된 지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필자는 이런 주장이 좀 우려스럽다. 삼남길에 대해서 기계적인 접근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사기로 복사하듯 옛날 길을 복원하라는 건 현실적인 상황을 아예 무시하는 태도라고 판단된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교통혁명을 겪었다. 인력과 축력, 즉 무동력 시대에서 동력기관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교통혁명은 시간에 대한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무동력 시대에는 해남에서 한양까지 30일이었지만 지금은 고속도로로 5시간이다. 현재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이 해남으로 출장을 가면 1박 2일이 걸리지만 조선시대 관헌은 왕복하는데 족히 2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교통혁명은 옛 삼남대로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흙길이었던 곳에 신작로가 닦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신작로가 지금은 국도나 고속도로로 변한 곳도 있다. 군부대가 들어선 곳도 있다.

옛 삼남대로를 기계적으로 복원하면,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바퀴 열 개짜리 24톤 트레일러와 함께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군부대 연병장을 가로질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길은 걸을 필요가 없다. 매연을 먹으면서 '힐링'하려고? 소음을 들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려고?

 

 

 

 

 

▲ 삼남길 삼남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남도의 정취에 물들게 된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풍광이 삼남길 곳곳에 즐비해 있다.

 

 

 

 

 

 

 

 

 

 

 

 

 

 

 

 

 

 

 

 

 

 

 

 

 

 

 

* 지리산 정렴치: 태풍 무위파의 영향으로 당시 지리산은 폭우와 함께 강한 돌풍이 불었음. 워낙 강한 바람이 부니 자전거가 넘어갈 정도였음.

 

 

 

 

여행기간 총 35일. 이동거리 약 1300km.

서울에서 해남 땅끝을 찍고 전남 진도군으로 방향을 틀어 그 곳에서 마친 여행.

 

서울에서 계속 남진을 하다 일부러 찾은 백두대간... 그 백두대간에 우뚝하게

솟아 있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

 

나는 왜 한 짐 가득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올랐는가?

애초 계획했던 순수 도보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꺼리낌을 타파하려고?

도보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차피 고바위 길이면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하니... 자연스럽게 도보여행 형식이 되겠지.

그래서 해발고도가 높은 전북 진안, 임실, 남원으로 코스를 잡았잖아.

 

또한 정말 그런... 내 안의 존재하는 약간의 건방을 지리산에서 표출하려고?

그간 아웃도어 좀 해봤다는 자신감을 지리산에서 떨쳐보려고? 

 

그러다 결국 지리산에서 태풍을 만났지. 건방 떨다 제대로 당한 셈이지.

역시 지리산은 지리산이었어. 역시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었지.

 

그런 만큼 지리산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어. 소박하지만 큰 가르침이었지.

 

 

건방떨지 말고 굳은 다짐에 실행을 더하라!

 

지리산에서 얻은 가르침과 다짐을 고이 간직해서 하루하루 잘 살자고.

그게 바로 정답 아니겠어!!!

 

 

 

 

* 지리산 성삼재: 저 자전거를 끌고 성삼재를 올랐다. 오직 내 팔과 내 다리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랬으니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무동력으로 지리산 관통도로를, 그것도 약 40kg 정도 되는 짐을 싣은 철TB를 끌고 올라갔으니 말이다. 내가 성삼재에 도착하니 지리산은 전면적으로 입산통제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삼재 코 앞에 있는 노고단도 오르지 못했다. 하긴 그 폭풍우가 부는데 지리산에 입산이 가능하겠는가? 내가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성삼재까지 갔더니 국립공원 직원들도 참 이상하게 보더라. 그 폭풍우 덕택(?)에 내 사진기도 망가졌다. 그래서 지리산 이후로는 전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장거리 여행시에는 무겁더라도 카메라를 두 대 이상 가지고 가는게 현명한 것 같다.

메인과 서브..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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