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역사트레킹 마스터


필자는 삼남길 개척단 이외에도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역사트레킹 마스터가 바로 그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최근에 카페(http://cafe.daum.net/historytrekking)도 하나 개설했다.

역사트레킹? 숲길트레킹이나 오지트레킹이란 말은 들어보셨어도 역사트레킹이라는 용어는 생소하실 것이다. 하지만 역사트레킹은 익숙한 것들의 결합체이다. '역사'와 '트레킹'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형태라는 것이다. 즉, 유물답사를 한 후에 10Km 정도 되는 거리를 걷는 것이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문화재를 관람하면 편리하다. 느긋하게 맛집 탐방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역사트레킹은 그런 수학여행식의 '버스 뺑뺑이'를 자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해당 문화재를 방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보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넉넉히 살찌우자는 것이 역사트레킹의 대원칙이다.

하지만 필자가 역사트레킹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기까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능력도 없는데 괜히 나섰다가 트레킹에 나선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고등학생의 뉴스 인터뷰를 보았고, 그 이후 필자는 역사트레킹의 마스터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야스쿠니 신사요? 야스쿠니 젠틀맨을 말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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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현무암 이진 항구에는 저렇게 제주산 현무암이 즐비했다. 이 돌들은 제주도에서 군마를 실어올 때 배에 함께 실린 돌들이라고 한다. 항해에 익숙지 않은 말들이 요동을 치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배의 중량을 늘이려고 저런 돌들을 갑판 아래에 실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저 현무암들은 중심돌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해남에 와서 역할을 다한 현무암은 이진 항구의 갯벌에 버려졌다. 그래서 이진항 일대는 제주도가 아닌 육지 항구에서 가장 많은 현무암들이 발견된다.
ⓒ 곽동운

 

 

 

 


자신이 TV에 나온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떴는지 그 학생의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하지만 필자의 마음은 무척 어두웠다. 아무리 역사 교육이 내팽겨 쳐졌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것 중, 또 하나가 걸그룹 시크릿의 멤버인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이었다. '민주화'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알고 있고, 또한 '농락'거리로 내뱉었던 그녀의 언사에 경악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 말이 부정적인 말이라면, 민주화를 요구하며 피를 흘렸던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은 무엇이었나? 또한 얼마전에 방한했던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91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는데 '민주화'라는 부정적인 일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노벨상이 수여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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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성터 이진성터는 현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한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된 옛 이진성은 해안방어 기지로 이용되었다. 이 담장은 성의 일부였다고 판단되는 석축인데 지금은 농가의 돌담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왼쪽처럼 석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역사트레킹은 이런 현장들을 탐방한다.
ⓒ 곽동운

 

 

 

 

 


#역사트레킹의 예시: 삼남길 '해들길'에서



문화재 앞에서는 역사해설가가 되고, 트레일에서는 대장 역할을 해야 하는게 마스터의 주된 임무다. 또한 준비운동이나 응급처치도 마스터의 몫이다. 이렇듯 역사트레킹 마스터의 어깨는 무척 무겁다. 하지만 제일 곤혹스러운 것은 트레킹 코스의 개발이다. 필드가 있어야 역사트레킹이 가능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삼남길은 필자에게 좋은 필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왜? 현재 삼남길은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창지대였던 삼남(전라, 경상, 충청)지역이 조선왕조 물산의 중심축 역할을 했듯, 한양에서 해남 지역으로 향했던 삼남대로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그렇게 때문에 옛 삼남대로 인근에는 역사적인 유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렇다. 현재의 삼남길은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고 있기에 느긋하게 트레킹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역사공부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삼남길은 역사트레킹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남길에서 역사트레킹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짤막한 예를 들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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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들길 해들길은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의 애칭이다.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600Km에 걸쳐 조성되는 국토종단형 트레킹 코스로 도보여행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걷기여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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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 북평면에는 이진성터가 있다. 현재 이진성터는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해들길)에 놓여 있다. 옛 이진성은 이진항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된 방어기지였는데 항구는 제주도를 향하는 배가 출항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진 항구 위쪽으로는 남창이라 하여 제주도에서 수취한 공물들을 축적하는 창고가 있었다. 현재의 지명은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이다.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종점은 옛 이진성이었다. 땅끝 전망대가 있는 땅끝마을이 삼남대로의 종점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땅끝 개념은 근래에 들어선 개념이다. 해남 사람들은 땅끝을 갈두리로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굳이 땅끝 개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진항이 더 좋은 지리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진항 바로 옆으로 완도의 부속섬인 달도가 있고, 그 뒤쪽으로는 완도 본섬이 있기 때문이다. 완도로 내왕하기도 편했고 제주도로 나아가기에도 수월했던 곳이 바로 옛 이진항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종착점도 이진항이었던 것이다. 옛 이진성은 그런 전략적 요충지인 이진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됐다고 한다. 또한 조선 후기에 수군만호부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러다 제주도로 출발하는 배가 수심이 더 깊은 목포항 쪽으로 바뀌고, 완도에 다리가 놓이게 되니 이진항의 위상은 급격하게 추락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해들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역사공부도 되고, 느긋하게 트레킹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거리가 10Km 남짓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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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구가방을 두른 필자 지난 3월 16일자 기사에 쓰인 사진이다. 사진 왼쪽이 손성일 대장이고, 오른쪽이 필자다. 허리에 공구가방을 두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계속된 작업에 지쳐서 그랬는지 뒷모습이 좀 '껑뚱'하다. 방송은 이런 길을 만드는 '하드웨어 작업'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어떤 방식으로 길이 개척되고, 어떻게 작업이 진행되는지에 대해 집중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럴만도 한게 우리나라에 도보여행 길이 600개가 넘지만 '하드웨어 작업' 자체가 소개된 길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개척하는 주체도 관리하는 주체도 불분명하여 개통 이후 방치된 트레킹코스가 많은게 우리의 현실이다.
ⓒ 곽동운

 

 

 

 

 

 


# 오마이뉴스에 기사 썼다, 방송물 먹었다!

 

이런 삼남길에 대한 역사성과 개인적인 작업 참여 등을 종합하여, 필자는 지난 3월 16일에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이라는 기사를 작성했었다. 당시 기사는 개척이 아닌 보수작업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냈었다. 그 기사에서 필자는 일부러 사람 얼굴이 나오지 않은, 등 돌린 사진만 게재를 했었다. 제목처럼 무척 힘든 작업이 연속됐기에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었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니 얼굴이 정면으로 응시된 사진도 쓸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다시 그 기사를 읽어봤을 때는 좀 낯선 감이 있었다. 필자의 예전 기사들이 사물에 근접하게 포커스를 맞췄다면, 그 기사는 좀 멀찍이 떨어져서 초점을 맞춘 셈이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사안을 바라보니 작성 범위도 넓었던 것 같았다. 분량이 무려 원고지 34매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노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은 메인탑, 즉 오름기사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필자가 작성한 그 기사를 보고 <MBC 시사매거진 2580> 측에서 손성일 대장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내 기사가 디딤돌이 되어 또 하나의 콘텐츠가 생성됐고, 덕분에 '바람잡이'였지만 필자도 나름대로 TV에 등장했던 것이다.

삼남길 관련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 메인톱에도 게재가 됐고, 또한 거기에 더해 '방송물'도 먹었더니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자리 잡는다.

'이 기사도 메인에 오르면, 다른 방송국에서 섭외 들어오는 거 아니야? 푸하핫!'

 

 

 


# 도보여행길 개척이 토목공사?



글을 마치기 전에 걷기 열풍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한 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600여 개에 달하는 도보여행길이 있다. 제주 올레의 열풍을 타고 전국 각지에 트레킹 코스가 앞 다투어 개설된 것이다. 최근에 한 풀 꺾였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개설중인 길들이 많이 있다.

그런 길들 중에는 명품 코스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면, 도보여행에 적합하지 않은 길들도 부지기수다.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거나 아스팔트 비율이 높은 곳들이 바로 그런 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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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재 삼나무 숲길 아스팔트를 계속 걷는다면 도보여행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여름에 아스팔트의 열기를 느끼며 트레킹을 한다면 자칫 일사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트레킹은 숲길을 걷는게 제격이다. 사진은 삼남길 전남구간 6코스 점재다. 저 길을 걸으면 그윽한 삼나무 향을 느낄 수 있다.
ⓒ 곽동운

 

 

 

 


한편 '친환경 사업'이라고 불리는 트레킹 코스 개설에 너무 많은 예산이 소요된 사례도 있다. 해파랑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연결된 해안걷기 길인데 그 거리만도 770Km에 이를 예정이라고 한다. 해파랑길은 2014년, 완전 개통을 목표로 개척되고 있다.

아웃도어 여행가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해파랑길 개척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냈다. 삼남길과 같이 국토종단형 도보여행길이 개설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무려 770Km에 이르는 대장정이 아닌가? 하지만 필자는 해파랑길의 예산 투입 금액을 보고 경악했다.

'무슨 4대강 사업하나? 도보여행 길 개척에, 왜 170억원이란 엄청난 거금이 집행돼야 하지?'

삼남길 전라도 구간(228Km)과 경기도 구간(91Km) 개통에 총 3억 남짓한 돈이 든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삼남길 600Km 개척에 채 8억도 안 드는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도보여행 길 개척이 삼남길처럼, 개척단의 희생을 발판 삼아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엄청난 혈세가 트레킹 코스에 투입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해파랑길은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해안누리길과 거의 일치하여 예산의 중복투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파랑길은 '낭만가도'라고 불리는 7번 국도를 기반 삼고 있기에 특별하게 수백억의 예산이 집행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도보여행길 개척이 또다른 형식의 토목공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평소 지론이다. 돈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이 도보여행을 바라보는 필자의 기본 시각인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필자가 삼남길 개척단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돈은 아주 적게 들면서 여행의 효과도 있고, 역사트레킹도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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