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경에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여행플랫폼에 역사트레킹을 런칭했다. 3년 정도 5060세대들을 집중 타겟으로 트레킹을 진행했었는데 그것을 좀 탈피해보고자 그렇게 한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많아 좀 놀랬다. 기존 수강생들은 대다수가 단독으로 참가를 하거나 친구끼리 참여를 했었기 때문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모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고, 일가족이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가족 단위로 트레킹을 행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좋았다.

 

오늘 마이리얼트립에서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리뷰 메일을 받았다. 내가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문서 형식의 리뷰를 보니 좀 신기한 느낌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런 방식의 리뷰는 흔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잘 보시라! 성적이 꽤 괜찮지 않나? 올 A+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못하고 성적도 꽝이었는데... 역사트레킹 때문에 좋은 성적표도 받아보네~^^

 

ps. 코로나 때문에 아주 버라이어티했던 2020년도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 저런 뜻하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니 기분은 좋다. 좋은 성적 받았으니 누가 표창장 안 주나...ㅋ

 

 

 

 

 

 

 

 

 

 

 

*** 사람들이 많이 묻는다. 맨날 역사트레킹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럼 그 역사트레킹을 어떻게

참가할 수 있냐고. 혼자만 가지 말고 함께 가자는 말이다. 그래서 광고한다. 같이 가보자, 역사트레킹!

뭐 먹고 살려고 광고하는 것이니까 좀 봐주시라~^^;

 

필자는 <마이리얼트립>이라는 플랫폼에서 역사트레킹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 트레킹들은 필자가 여행기를 작성한 것들이다. 글로 읽는 재미를 넘어 직접 해당하는 곳에 가보면 더 재미나지 않겠는가!

직접 해당 코스를 탐방한 후 여행기를 읽고 복습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추석 명절이 지나면 이제 10월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것이다.

걷기에 딱 좋은 시기가 찾아왔다.

 

이런 걷기 좋은 계절을 그냥 흘려보내실건가? 하지만 길을 잘 알지 못해서 쉽게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막걸리부터 꺼내드는 산악회나 트레킹카페에

가입하는 것도 꺼려진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코로나시대에 쌩판 모르는 사람들이랑

침 튀기며 섞이고 싶으실텐가???

 

그런 의미로 역사트레킹은 언택트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여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1. 소규모로 모집하고 이동한다. 모객 인원이 최대 15명을 넘지 않는다. 요즘은 시기가 시기인지라 최대 인원이 10명 정도다.

 

2. 리딩자인 본인은 예전부터 사람 많은 장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산도 메인 등산로가 아닌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어떤 수강생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가 숲을 전세낸 거 같아요."

 

3. 역사트레킹은 역사를 배우는 재미가 있다. 주구장창 걷기만 하며... 막걸리 잔부터 돌리는 산악회나 트레킹 카페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걷기를 한다. 그들은 산을 술판으로 생각하지만 역사트레킹은 산을 배움의 장소로 생각한다.

 

4. 가족 단위 트레킹도 많이 신청하신다. 가족과 함께 트레킹을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이더라. 가족 소풍이라고 해야 하나?

 

 

길게 늘어서 썼는데.. 한마디로 역사트레킹에 참여를 해주셨으면 하는 것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그에 걸맞게 코스를 배치했으니 마음에 드는게 있으시면 바로 참가를! 물론 유료다. 공짜는 없다...ㅋ

 

아래 링크들은 필자가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트레킹 상품들이다.

 

 

 

 

*** 진관사 역사트레킹:https://www.myrealtrip.com/offers/81535<- 참가신청

 

 

* 진관사역사트레킹 여행기:https://brunch.co.kr/@historytrekking/190

 

 

 

 

 

 

 

 

*** 성북동 역사트레킹:https://www.myrealtrip.com/offers/85361<- 참가신청

 

 

* 성북동역사트레킹 여행기: https://brunch.co.kr/@historytrekking/187

 

 

 

 

 

 

 

 

 

*** 인왕산 역사트레킹: https://www.myrealtrip.com/offers/85137<- 참가신청

* 인왕산 역사트레킹 여행기: https://brunch.co.kr/@historytrekking/180

 

- 인왕산 역사트레킹은 10월 17일 토요일에도 실시될 예정이다.

 

 

 

 

 

 

 

 

 

2020년 9월 19일 토요일.

코로나19가 아무리 맹위를 떨친다고 해도 트레킹에 대한 열의를 꺾을 수 없는법! 더군다나 날씨도 화창한데 이런날 그냥 있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길을 나섰다. 누구와? 중학생 5명과 초등6년 1명, 그리고 그들의 엄마들(5명)과.

한마디로 학생 6명과 그들의 엄마 5명이 모여 함께 트레킹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부모님 한 분이 올 여름경에 메일을 보내주셨다. 학생들이 역사트레킹을 행하고 싶다고... 처음에는 학교 소모임이나 체험학습 차원의 프로그램을 요청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이 서로 친목을 더하는 것을 원하셨고, 그게 트레킹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다. 자연을 느끼며 운동도 하고, 역사체험을 하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사실 좀 의아했다. 아이들의 친교를 위한 트레킹? 이런 식의 요청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다 당일날 의문이 풀렸다. 아이들은 하키팀이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학교가 나눠졌고, 그래서 모일 계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트레킹이 모임의 장을 제공한 것이네~ 어쨌든 내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기특하다고 토닥토닥...ㅋ

그건 그렇고 이렇게 부모님 동반 트레킹을 행하면 자연스럽게 팀이 갈라진다. 아이들팀 / 부모님팀... 물론 여기서는 아이들이 메인이다. 하지만 그건 명목상이다. 사실 역사트레킹은 아이들보다 부모님들이 더 좋아하신다. 오늘 오신 어머니들도 열심히 사진을 찍으셨다. 또한 곳곳에서 웃음꽃을 피우셨다.

코로나 때문에 너무 갑갑하셨던 것이다. 그러다 풍광이 수려하고 걷기 좋은 인왕산 트레킹에 나서셨으니 얼마나 좋으셨겠는가! 그렇다. 메인인 아이들보다 더 재미나게 즐기셨던 것이다.

주말이고, 날씨가 화창해서 그랬는지 인왕산에는 등산과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 실내에서만 묶여 있었으니 엄청 갑갑했을 것이다. 사회적거리 두기를 유지하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면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트레킹이라도 해서 갑갑함을 좀 날려버려야지!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가 사라져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마음껏 트레킹을 행하며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12월 8일 일요일.

이우학교라는 대안학교 학생들과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나섰다. 
이우학교 학부모 모임(1학년)에서 의뢰를 하여 행해진 트레킹이었다. 
중학교 1학년들과 그 학부모들로 이루어진 트레킹팀이 꾸려졌다. 
나를 포함하여 총 25명이라는 대규모 팀이 꾸려진 것이다. 

12월에 행하는 트레킹이라 좀 걱정을 했었다.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면 어쩌나 하는...
그래서 처음에는 11월 중순경에 하는게 어떠냐고 역제안을 했었다. 그때는 날씨도 좀 온화할테고
단풍놀이도 하면 더 좋을 테니까.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게 외부행사다. 의뢰하신 분들도 
일부러 12월에 날짜를 잡고 싶지는 않으셨다고 했다. 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지.

다행스럽게도 이날은 덜 추웠다. 전날까지도 비바람이 불며 날씨가 쌀쌀했는데 이날은 
햇살이 좋았다. 미세먼지도 덜했다. 날씨 덕을 좀 봤다. 3대가 덕업을 쌓은 참가자가 있었나...^^

대안학교라지만 중학생들은 중학생들이다. 더구나 이제 곧 있으면 그 무시무시하다는 중2가 되는...!

나 같은 아재가 아무리 날고 뛰고 한다고 하더라도 중딩들을 이길 수는 없다. 더군다나 썰렁한 나의 아재 개그는 5060세대들을 위한 것이니...ㅋ

청소년들과 함께 트레킹을 행하다보면 마치 모험을 하는 느낌이든다. 그만큼 흥미진지하다는 뜻이다. 역사트레킹의 주 향유 세대들인 5060세대들과는 다른 반응이 나오니까.

그렇게 4시간 정도 진행된 이우학교 학생들과의 인왕산 역사트레킹! 무사히 잘 종료됐다. 모험 하나
제대로 마쳤다. 그런데 한가지!!!

힘들어서 집에서 뻗었다. 나같은 아재가 중딩들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라니까! ㅋ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기원이 행해지는 곳이 어딜까? 정답은 서울이다. 사람들이 많이 사니까.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나 다 기원을 한다. 건강, 학업, 승진, 시험... 누구는 로또.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원을 올린다.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기도를 드리겠지만 단어가 달라진다고 내용까지 달라지지는 않는다. 성경책 위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과 불경 위에 올려진 합장한 손은 종교적인 구분만 있을 뿐 그 속에 담은 마음만은 동일하다.


무속신앙도 마찬가지다. 정화수를 떠놓고 바퀴 굴리듯 손을 비벼대며 올리는 기원도 외형만 다를 뿐이다. 잘 되라고, 건강하라고, 사랑하라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정성인 것이다.

오늘 탐방할 곳은 서울의 우백호 인왕산이다. 이곳 인왕산에는 한국에서 가장 기도빨이 잘 받는 기도터가 있다.

 




* 인왕산역사트레킹





서울의 우백호 인왕산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울에도 좌청룡·우백호가 있다.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이 풍수지리에 의거해 기획된 도시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좌청룡·우백호가 있고,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인왕산이 우백호라면 좌청룡은 어디일까? 낙산이다. 혜화동 뒤편에 나지막하게 서 있는 낙산이 바로 서울의 좌청룡인 것이다.


인왕산과 낙산, 거기에 남산과 북악산을 더해 내사산(內四山)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안쪽의 4개의 산이라는 뜻이다. 이 내사산을 기반으로 18.6km의 성벽을 쌓았으니 그것이 바로 한양도성이다.


외사산(外四山)도 있다. 남쪽에서 주작 역할을 하는 관악산, 북쪽에서 현무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산, 여기에 동쪽의 아차산과 서쪽의 덕양산(행주산성) 4개의 산을 일컬어 외사산이라고 칭한다. 이를 두고 필자는 트레킹팀에게 이렇게 설명을 하곤 했다.

 

내사산이니 외사산이니 하는 말들이 감이 잘 안 오시죠.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사산은 작은 서울, 외사산은 큰 서울. 지도 놓고 보시면 더 감이 잘 올 거예요.”

 





* 내사산 외사산







사직단은 '종묘사직'할 때, '사직'이다

 

인왕산 역사트레킹은 사직단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선조들은 삼국시대부터 사직단을 세워 기원을 올렸다. 그것도 한 곳에만 세우지 않고 여러 곳에 세웠다. 우편번호를 검색해보면 사직동이라는 지명이 꽤 여러 곳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부산에 사직야구장이 있지 않던가.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신(社神)과 오곡의 신인 직신(稷神)에게 제례를 올리는 곳이다. '종묘사직'할 때 '사직'이 바로 사직단인 것이다. 농경을 중시했던 조선왕조였기에 사직단의 의미는 종묘보다 더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았다. 실제로 조선의 왕들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일들이 닥쳤을 때 사직단에 직접 나아가 제사를 올렸다. 지역에 있는 사직단에는 해당지역 수령이 왕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렸다.


보통 '사직'은 궁을 중심으로 서쪽, '종묘'는 동쪽에 들어선다. 실제로 사직단은 경복궁의 서편인 서촌에 위치에 있고, 종묘는 경복궁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직단은 동쪽에 사신을 모시는 사단, 서쪽에는 직신을 모시는 직단이 있다. 큰 담 안에 작은 담이 둘러져 있는데, 그 작은 담은 ''라고 불린다. 그 유 안에 사단과 직단이 있는 것이다.

이번편의 주제는 기원이다. 사직단은 국가적인 기원, 즉 풍작을 기원하는 곳이니 주제 적합도가 딱 맞아 떨어진다.

 




* 사직단





그래도 국가적인 기원은 계속될 것이다

 

조선이 망국의 길로 들어서자 사직단에도 일제의 마수가 뻗치게 된다. 1911년에 사직단이 폐사됐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1922년에는 원래 부지에다 인근의 땅들을 합쳐서 공원을 만든다. 사직단을 공원화하여 격하시켰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사직단은 아픔을 겪었다. 도시계획에 따라 신문(神門)이라고 불린 정문이 원 위치보다 14미터 뒤로 후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영역 안에 차례로 도서관, 어린이 놀이공간, 단군성전 등이 세워지게 된다. 심지어 수영장도 들어섰다. 애초 사직단의 근본 취지와 동떨어진 건물들이 자리를 잡게 됐다.


그렇게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이 떠난(?) 예전 사직공원은 몸살을 앓았다. 취객들이 술김에 울타리를 넘어 가기도 하고, 아이들은 제단에서 씨름을 하기도 했다.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는 '부비부비'를 즐긴 남녀들도 넘쳐났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기원을 드렸던 곳인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현재 사직단은 복원정비사업 중이다. 2015년에 시작한 복원 사업은 2027년에 완료될 예정이다. 무려 12년 동안 진행된다. 상처가 깊었던 만큼 복원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는 셈이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현대에는 왕도 없고, 국가적으로 제례를 드리지도 않는다. 농업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더 이상 사신과 직신은 한물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적인 기원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소녀상을 두고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바라는 것과 세월호를 두고 진실규명을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 선바위






승복을 입은 선바위?

 

국가적인 기원을 올렸던 사직단을 탐방했으니 이제 개인적인 기원을 드리는 곳으로 가보자. 그곳이 어디인가? 바로 선바위다.


인왕산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선바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도빨이 잘 받는 곳 중에 하나다. 특히 아이를 잘 잉태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트레킹팀에게 이런 말을 간간이 건넸다.

 

늦둥이를 낳고 싶으신 분들은 시주 한 번 하시고 간절히 기원하세요!”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

 

지금 있는 것들도 징글징글한데 무슨 놈의 늦둥이야!”

 

본전도 못 찾고 핀잔만 잔뜩 들었다.

 

선바위는 높이 7미터, 가로 10미터 정도가 되는 바위로 산 중턱에 불쑥 솟아 있다. 그렇게 바위의 규모가 크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선바위를 한자로 쓰면 '선암(禪岩)'으로 '스님바위'라는 뜻이 된다. 승복을 입은 선승이 참선을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선바위를 자세히 보면 단일 암석이 아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것을 두고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영혼이 나란히 깃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렇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보니 선바위는 예로부터 아이를 갖기 원하는 이들의 좋은 기도처였다고 한다. 쌍둥이 바위는 다산을 뜻하니까. 요즘같이 저출산 시대에는 애국자 바위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암석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을 두고 거석숭배문화라고 한다. 이 거석숭배문화는 우리 민간신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선바위는 이런 거석숭배문화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산악신앙이다.


우리 옛 선인들은 산을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였다. 물이 샘솟고, 과실과 약초들이 산재해 있으며, 연료인 나무들을 채취할 수 있으니 산은 인간에게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산을 마냥 좋은 것만 주는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사나운 맹수들이나 험준한 지형이 항상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 국사당






국사당과 산악신앙

 

그래서 그들은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인 산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드렸다. 산에 사는 신령, 즉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산악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런 산악신앙은 우리 무속신앙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바위 아래에는 국사당(國師堂)이라는 신당이 있다. 이 국사당은 원래 남산에 있던 신당이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395(태조4), 이성계는 목멱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호국의 신으로 삼았다. 그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졌는데 이것을 국사당, 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 불렀다.


이 목멱신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국가의 공식행사로 제례를 올렸다. 유교중심주의를 표방하며 건국된 조선에서조차도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렇게 목멱대왕을 모셨던 국사당은 192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된다. 일제가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세웠는데 자기들의 신궁 위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것이다. 국사당이 선바위 부근으로 옮겨오게 된 건, 인왕산이 무학대사의 기도처였기 때문이었다. 국사당(國師堂)에서 '국사(國師)'는 무학대사를 뜻한다.


그렇게 아래쪽에 국사당이 자리 잡게 되니 선바위는 거석숭배문화에다 산악신앙까지 더해지게 된다. 선바위에서 기원을 드리는 사람들이 국사당 앞에서도 두 손을 모으게 됐다는 것이다.

사직단에서 선바위, 그리고 국사당까지. 인왕산 남쪽은 굵직굵직한 기원 장소가 즐비하다.

 

 

무학대사와 정도전, 그리고 선바위

 

선바위는 한양도성에서 직선거리로 3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두냐 마냐를 두고 무학대사와 정도전 간에 격론이 오갔다. 불교세력을 대변했던 무학대사는 당연히 선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교세력을 대변했던 정도전은 이 스님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오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선바위가 들어오면 도성 안에 불교가 융성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첨예하게 오갔던 격론은 이성계에 의해 결론이 났다. 선바위가 도성 밖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불심이 깊은 이성계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유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에 무학대사는 200년 안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이고, 국운이 기울 것이라는 큰 저주(?)를 내뱉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이 선바위를 두고 오갔다던 무학대사 VS 정도전간의 갈등은 정사가 아닌 야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선바위를 두고 오갔던 두 사람의 갈등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적인 사료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일까? 선바위 논쟁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나왔던 건, 실제로 조선이 건국한 후 약 200년 뒤에 일어난 조일전쟁(임진왜란) 때문이었다


당시의 민중들이 어떤 식으로든 전란에 대한 유학자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선바위와 무학대사를 무대로 등판시켰다는 것이다. 도성을 버리고 떠난 왕과 사대부들에 대한 원망을 선바위와 무학대사에 기대어 풀고자 했던 것이다.


선바위를 빠져나오면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을 걸을 수 있다. 최근 성곽 밖의 순성로도 잘 정비되어 성곽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이다. 인왕산 성곽도 좌청룡인 낙산 성곽길처럼 성돌의 변천사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더군다나 이 성곽길의 반대편은 자락길로 유명한 서대문 안산이기에 양 옆의 시선이 다 즐거운 곳이다.

 





* 수성동계곡






인왕산의 숨어 있는 보석, 수성동 계곡

 

다음 탐방지는 수성동 계곡이다.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의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다. 아랫동네 서촌의 번잡함은 싹 사라지고, 계곡이 주는 청량감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곳이 바로 수성동 계곡인 것이다.


수성동(水聲洞)의 명성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한경지략>에는 수성동을 명승지로 소개하고 있고, 겸재 정선은 <수성동>을 그려 이곳의 아름다움을 수묵으로 옮겨놓았다. 또한 이곳은 중인들이 모여 시를 짓고 노닐던 곳이다. 조선후기 중인들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위항문학(委巷文學)의 본거지였던 셈이다. 그러니 문학사적인 측면에서도 무척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수성동 계곡은 20127월에 복원한 것인데 복원 전에는 1971년에 지어진 시민아파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후 안전문제로 아파트는 철거가 됐고, 그 위치를 옛 모습으로 돌려놨던 것이다.


복원 과정에서 겸재 정선의 <수성동>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수성동>에 나오는 것처럼 기린교라는 통돌다리도 그대로 복원이 됐다. 어쩌면 겸재의 그림이 없었다면 지금의 수성동 계곡은 평범한 도시 공원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재개발로 사라졌던지.

 





* 창의문







창의문 밖에는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인왕산에도 자락길이 있다. 걷기에 부담이 없는 길이다.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지와 가까운 곳에 이렇게 부드러운(?) 길이 있다는 게 참 좋다. 그렇게 부드럽게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인왕산 역사트레킹의 마지막 구간인 창의문을 만나게 된다.


창의문(彰義門)은 사소문중 하나로 자하문(紫霞門)으로 더 많이 알려진 문이다. 북대문인 숙정문이 있었음에도 실질적으로 북문(北門) 역할을 했던 건 바로 창의문이었다. 북악산의 험한 지형 위에 세워진 숙정문은 사람의 발길이 뜸했을 뿐더러 1413년부터는 그마저도 폐쇄를 시켰기 때문이다. 숙정문이 오른팔이 되어 경복궁을 내리누른다는 풍수학적인 의미 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때 창의문도 폐쇄가 되는데 왼팔의 역할을 하여 경복궁의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죄명때문이었다. 하지만 숙정문과 달리 교통의 요충지 위에 놓여 있던 창의문은 1506(중종 1)에 다시 통행이 재개된다. 그래서 소문(小門), 창의문이 북문 역할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했다는 것은 그 문 아래로 수많은 역사적 발걸음이 오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조반정 때 능양군(인조)을 옹립하던 세력들은 이 문을 통해 도성을 점령했고, 광해군을 쫓아낸 후 권력을 잡게 된다. 현재의 문루는 조일전쟁 때 불 타 사라진 것을 영조 때(1740) 건립한 것이다.


창의문의 천장에는 큰 새가 그려져 있다. 필자는 창의문을 지날 때마다 트레킹팀에게 묻는다.

 

저기 위에 그려진 새가 뭐로 보이세요?”

봉황 아니에요?”

주작이요. 주작!”

 

봉황에 주작까지 나왔다. 하지만 꽝! 정답은 닭이다. 이 일대가 풍수적으로 지네의 기운을 가졌다하여 천적인 닭을 창의문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창의문 밖인 부암동 일대가 치킨으로 유명한 것이다. 창의문 밖을 나서면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 냄새를 맡은 도보여행자들은 더 이상 길을 나설 수 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트레킹도 종료되게 된다. 대신 입이 즐거워진다.


사직단, 선바위, 국사당, 성곽길, 수성동계곡, 창의문까지... 거기에 이번 글에 언급하지 않은 윤동주문학관(시인의 언덕)과 이빨바위, 출렁다리까지... 이처럼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인왕산을 소개할 수 있어서 필자도 참 기쁘게 생각한다.

 




* 인왕산 성곽길





난 타인의 기원을 실현시켜주는 사람

 

트레킹팀과 함께 열심히 걷다보니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내가 타인의 기원을 실현시켜주는 기특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레킹에 오신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육체건강이든 정신건강이든 건강에 대한 간절함이 강렬하셨다.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역사트레킹이 거기에 이라는 것이다.


숲길도 걷고, 답사도 하고, 만 보 이상 걸으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튼튼해졌다고 필자에게 신앙고백을 하셨던 분들도 계셨다. 그런 말씀들을 하실 때마다 참 고마웠다. 어쨌든 필자가 건강에 대한 기원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으니까. 좀 우쭐하기도 했다. 복 받을 일을 했으니 이 정도 우쭐함은 괜찮지 않나.

 






 

인왕산 역사트레킹

 

1. 코스: 사직단 선바위(국사당) 성곽길 수성동계곡 출렁다리 윤동주문학관 창의문

2. 이동거리: 7km

3. 예상시간: 3시간 30(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5. In: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 Out: 창의문(부암동)





* 인왕산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희망찬 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8년 황금 개띠 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저는 어제... 그러고보니 벌써 작년이네요.^^;

 

2017년을 마무리 하는 의미로 다리를 하나 넘었답니다. 무슨 다리냐고요? 인왕산과 안산을 연결하는 무악재하늘다리를 넘었답니다. 무악재하늘다리는 말 그대로 무악재에 놓여 있는 생태다리입니다. 저는 이 생태다리의 완공을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뭐 평창올림픽 때문에 강원도민들은 서울-강릉간(경강선) KTX 개통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강원도민들에게 경강선은 숙원사업이었죠. 저한테는 이 무악재하늘다리 개통이 숙원사업이었답니다. 무악재를 지나다니며 '저 다리가 언제 개통되나'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숙원사업이 해결된 것이죠.

 

무악재하늘다리는 정확히 20171213일에 개통되었습니다. 저는 2017년의 마지막날에 다리를 밟았으니 좀 늦게 온 게 사실입니다. 늦게 당도한 만큼 다리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답니다. 원거리샷으로도 찍고, 아래쪽에서도 찍고, 안산쪽에서도, 인왕산 쪽에서도...

 

무악재하늘다리가 개통되서 안산-인왕산 트레킹 코스가 훨씬 더 풍성해졌답니다. 반대편으로 넘나들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터라 두 산을 연계코스로 잡고 트레킹 코스를 기획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아예 인왕산과 안산을 하나로 연결해서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태다리가 놓임으로서 동물들만 좋은 게 아니지요? 인왕산-안산의 동물들보다 사람들이 더 좋아하네요!^^; 이렇게 생태다리 완공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서오릉 생태다리도 빨리 완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오릉 생태다리도 정말 기대됩니다!

 

저는 정말 이 무악재하늘다리가 좋습니다. 빨리 봄이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이 다리를 건너보고 싶네요. 또 달라진 인왕산 역사트레킹 코스도 함께 걸어보고 싶네요!

 

아니 봄날이 아니더라도 냉큼 한 번 다녀와 볼까요?^^;









































9월 24일 토요일.


제게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예전에 포스팅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이 날은 제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트레킹 강의를 첫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한겨레 문화센터면 왠만한 백화점 문화센터보다도 더 인지도가 있지 않습니까!


날씨도 좋더군요. 수강생들도 많이 오셨고. 저를 포함해서 총 19명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을 지날 때, '아차'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더군요.


가을날의 광화문은 축제의 연속입니다. 그 축제의 장으로 트레킹팀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소음과 번잡함 속으로 들어갔으니 정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제가 좀 말려버렸습니다. 9월의 광화문에 대해서 미리 판단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니 참가자분들도 제가 좀 미더웠을 겁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황은 좀 나아지는 것 같더군요. 일단 길이 예쁘고, 한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트레킹의 묘미는 한적함입니다. 한들한들 거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야 참가자들도 저도 숨통이 트이니까요.


첫 트레킹은 그저그렇게 끝났지만 다음부터는 더 잘해보고 싶네요. 수강생들의 열화가 같은 박수를 받는


그런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추신: 한겨레문화센터 강의에 너무 신경을 곤두 세웠나 봐요. 그날 트레킹 끝나고 그냥 뻗어버렸답니다.~ 

트레킹 한 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신경을 많이 썼나 봅니다. 잘해보려고 하는 욕심도 컸고요.  











 



 



 







더운 요즘입니다. 수박 한 덩이가 간절하게 그리운 계절이네요.


휴가철이라 많은 분들이 피서를 떠나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휴가를 못 떠납니다.


명색이 역사트레킹 마스터고, 여행작가이기도 한데... -_-


하지만 며칠 전에 저에게 시원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역사트레킹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정식으로 런칭을 했고, 모집 공지도 문화센터 홈페지에 정식으로 올라왔더군요.


한겨레문화센터는 제가 수강생 입장으로 방문을 했던 곳인데... 이제 저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강사 타이틀을 얻게 됐네요.





 

* 한겨레문화센터: 역사트레킹 패키지. 이번 가을 학기에는 총 5회 실시한다. 패키지를 구매하면 10%를 할인 받는다.









물론 저는 다른 문화센터에서도 역사트레킹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문화센터는 인지도 면에서나 영향력에서나 다른 문화센터보다는 좀 남다르잖아요.


그래서인지 한겨레문화센터에 역사트레킹이 런칭된 것이 정말 감격스럽더군요!


런칭이 확정됐을 때는 좀 울컼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삼 시 새끼를 빵 뜯어 먹으며 답사다녔던 기억들, 당사자는 무심코 내뱉었지만 내게는 비수가 되었던 이야기들,


지독하게 내렸던 빗줄기 때문에 어느 마을회관 처마에서 오도가도 못했던 그 때, 그때 내 얼굴에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그 때의 기억들...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더니만 기어이 그런 기억들이 제 눈 앞에 떠오르더군요.









* 인왕산 역사트레킹:  이번 가을 학기의 첫번째 스타트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이 끊는다. 9월 24일에 실시된다.








세상 참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제가 문화센터에서 강연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정말 세상일 알다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역사트레킹을 해왔으니까요. 대신 자만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더 열심히 길을 걷고, 자료를 더 많이 습득해야겠습니다.


또한 열심히 아재 개그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참가자들이 은근히 아재 개그를 좋아하거든요... ㅋ



클릭 ---> 역사트레킹         













* 광화문: 해태상 앞에서 참가자 분들.






 

​   * 전단: 역사트레킹을 알리는 렛츠런문화공감센터의 전단 










7월 12일 화요일.


일기예보에는 분명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진다고 했지만... 날씨가 화창했습니다. 기상청 예보대로 움직였으면 그날 트레킹을 못할 뻔했지요.


이날 저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을 리딩했습니다. 제가 7월 달부터 렛츠런문화공감센터에서 역사트레킹을 런칭했는데 이날이 첫 시작일이었습니다.  사실은 일주일 전인 5일 날이 첫 개강일이었지만 그날 호우경보가 내려서 한 주 연기가  것이지요. 


어렵게 시작한 만큼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가 문화센터 강의는 처음이라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는 역사트레킹을 많이 리딩을 했지만요...


좀 덥기는 했지만 그래도 트레킹 하는데 양호한 날씨였습니다. 또한 인왕산 트레킹의 특징이 전반부만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숲길로 갑니다. 그래서 초반 30분 정도만 버티면 때양볕 걱정은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이날 참가를 해주신 분들은 트레킹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으셨습니다. 제가 바짝 긴장을 할 만큼...^^;


트레킹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서 제가 다 감사할 정도였습니다. 부족한 저의 설명도 경청을 해주셔서 감사했고요. 그래서인지 한 분의 낙오자도 없이 모든 분들이 다 완주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얼마나 저를 잘 챙겨주시는지... 먹을 것도 엄청 얻고 먹었습니다. 또 어떤 분께서는 제게 모자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날 제가 모자를 쓰고 가지 않았거든요. 제가 챙겨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제가 넉넉한 인심을 누리고 온 것이죠.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이 맛에 트레킹 리딩을 하는 거겠죠! 카아~!



이 포스팅은 간략한 스케치입니다.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정식 포스팅이 궁금하신다면


 

클릭 ☞ http://blog.naver.com/kwakmaster/220736534015


 









* 성곽길: 곡선미가 넘치는 서울성곽






* 수성동 계곡: 수성동 계곡에서. 뒤로 인왕산이 보인다.





​*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 뒤쪽에 있는 시인의 언덕에서.




* 창의문: 창의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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