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부르짖었던 공포의 시간들

 

지리산 성삼재에서 맞은 거짓말 같았던 순간

 

15.03.20 18:01   최종 업데이트 15.03.20 18:01

 

 

 

 

 

 

 

2013년 여름, 경남 거창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느님 살려주세요!"

 


2013년 8월의 어느 날. 필자는 경남 거창군 웅양면에서 고제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당시 필자는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고갯길에서 그만 브레이크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짐을 주렁주렁 매단 고물자전거가 '빛의 속도'로 고갯길을 내달리는데 정말 아찔했다. 회전을 할 때는 반대편 중앙선을 크게 넘어갈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신을 찾으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겠는가? 한편으로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타박상 정도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간 참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문득 도로 끝단에 피어나 있던 잡초들이 눈에 들어 왔다.

 


'저 잡초들 위로 바퀴를 굴리면 속도가 죽을 수도 있겠지. 흙들도 깔려 있으니 그냥 아스팔트보다는 노면이 거칠 거야'

 


신께서 가호를 베풀었던 것일까? 그렇게 잡초 더미와 거친 노면을 질주하다보니 예상대로 속도가 확 감속되었다. 또 다행이었던 것은 양편 모두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찔한 순간을 운 좋게 넘긴 셈이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그렇게 무모한 행위를 했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자전거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급경사를 내려왔단 말인가?

 

 

 



 
▲ 지리산 정렴치에서 촬영했다. 주렁주렁 짐을 많이 실었는데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 자전거가 중심을 못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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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진입하니 태풍이


2011년 8월. 그때도 필자는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었다. 일명 제2차 국토종단여행. 그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었다. 당시를 기록한 여행수첩에는 거의 매일 비가 왔다고 적혀있었다.

비만 맞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태풍(무위파)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리산 성삼재에서 맞았다. 분명 전북 남원에서 지리산 관통도로로 진입했을 때는 해가 쨍쨍했었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상이 나빠졌던 것이다. 비는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태풍이 지리산을 빗겨가거나 소멸된다는 예보를 믿고 지리산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낭패를 당했던 것이다.

이미 너무 높이 올라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애초 계획했던 대로 성삼재를 찍고 전남 구례로 내려가기로 했다. 필자의 애 타는 마음도 몰라주고 더 거센 빗줄기와 더 강력한 바람이 성삼재 일대를 강타했다. 침낭은 물론  모든 옷가지는 싹 다 젖었고, 휴대하던 전자기기들도 모두 침수 피해를 입어 작동에 큰 이상이 생겼다. 몸 상태도 문제였다. 계속 거센 비바람에 노출되다 보니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빨리 쉴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구례 방면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시작한 여행이라 그랬는지 지리산 성삼재에 이르렀을 때는 자전거도 거의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싸구려 고물자전거가 한계치에 다다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계속된 비로 인해 관통도로의 노면은 무척 미끄러웠다. 그 길을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리산 관통도로는 한계령 관통도로보다 훨씬 더 험하다.

 






 
▲ 만해 한용운 충남 홍성에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관 앞에서 한 컷. 2011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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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갈 수도 저쪽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태풍이 물러갈 때까지 성삼재에 머물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싶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이 그냥 다 거짓말 같았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내려가기로. 그런데 그때 어떻게 내려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하강을 했으니 그냥 공포스러웠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나마 성삼재로 올라오는 차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차들이 반대편에서 많이 올라왔다면 필자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2013년에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그 당시에는 부처님의 자비(?)를 입었었다. 공포에 떨며 겨우겨우 도로 하단인 천은사에 도착했는데 그곳 인근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주차장 앞쪽에 빈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곳이 필자에게 쉴 곳이 되어 준 것이다. 덕분에 몸을 좀 추스를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도 비바람이 거셌는데 맑은 날은 본 건 3일 후였다.

지리산에서 태풍을 맞으며 하강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렇게 거창에서 무모하게 페달을 굴렸던 것이다. 앞선 경험이 독이 될 뻔한 경우였다.

필자의 거짓말 같았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도보여행이든 자전거여행이든 안전이 최우선이다. 목숨 걸고 여행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필자와 같이 거짓말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안전제일!


 


 

 

 

천상의 맛 '지리산 잡탕라면', 들어보셨나요?

 

준비소홀이 만들어낸 지리산 에피소드

 

 

14.09.18 19:06l최종 업데이트 14.09.18 19:06

 

 

 

 

 

 

 

 

 
 
▲ 지리산 천은사 옆 호수 지리산 천은사 옆에 있는 호수. 천은사는 전남 구례 방면에 있다. 2012년 촬영. 잡탕라면 산행 사진이 없어 2012년에 촬영한 지리산 사진들로 대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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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구역 전남 구례구역. 지리산을 탐방한 뒤 구례구역 부근에서 사진을 찍었다. 앞에 보이는 강은 섬진강이다. 2012년 백두대간 여행 당시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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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소리에 홀려 떠나다!

 


그 때도 딱 이 시기였던 것 같다. 한 낮의 뜨거움은 어느덧 사라져 가고, 선선한 바람이 따뜻한 차 한 잔을 품게 하는 계절. 한 밤 중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어디론가 불쑥 떠나고 싶은 계절.

십 몇 년 전. 필자는 귀뚜라미 소리에 혹해(?) 진짜 배낭을 메고 떠났다. 그렇게 떠난 곳은 바로 다름 아닌 지리산이었다. 그렇게 '번개불에 콩 구워 먹듯' 떠난 지리산 등산여행을 내 아웃도어 활동의 시초로 삼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등산을 해왔지만 등산다운 등산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3일 동안 계속 산 중을 헤맸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요한 산행이었지만 준비는 철저하지 못했다. 준비소홀을 귀뚜라미 탓으로 돌리고 싶을 정도로 준비가 꽝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미흡한 준비 덕에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많이 생겨났다.  

 

 



 
▲ 도계 삼거리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도 경계를 가르는 도계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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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너무 우습게 봤다!

 


당시 필자는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승기를 잡을 수 없는 전쟁이었다. 매일 패배하고, 또 패배하고. 그런 전쟁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야 했다. 귀뚜라미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액션'을 취해야 했다. 어쨌든 액션은 등산으로 표출됐다. 기왕 하는 거 '빡세게' 하자며 지리산을 택했다. 험하게 산을 타다보면 내 머릿속을 흔들고 있는 번뇌들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던 것이다.

단독산행이었다. 그런 만큼 각오도 대단했다. 천왕봉 밑에서 비박을 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밤하늘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다보니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추웠다. 초가을에 동상에 걸리는 줄 알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식사였다. 준비가 안 된 산행의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짐을 가볍게 하자는 의미에서 일부러 초코바 같은 행동식만 챙겨갔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산행에 나섰지만 허기가 진 상태로 산행을 했던 것이다.

지리산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었다. 누구는 당일치기 산행에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난다는데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오르면서 초콜릿과 과자부스러기가 전부였다면 그거 정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그나마 먹던 초콜릿은 다 떨어지고 배낭 속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허기가 지니 기운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주 넘어지기까지 했다. 삼일 동안 산행을 한데다 여러 차례 넘어졌더니 옷은 진흙투성이였다. 갈아입을 옷이 있기 만무했다. 영락없는 지리산 노숙자였다.

 

 

 

 

 
▲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을 탐방할 때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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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끼 정도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더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인적도 끊겼다. 멀리서 '웅~' 하고 반달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 무섭지도 않았다. 그 소리를 내뱉는 반달곰이라도 잡아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겨우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배는 너무 고프고, 돈은 한 푼도 없고. 초췌한 모습으로 산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한 번씩 다 쳐다보는 것 같았다. 마치 조난자 취급하듯 그런 측은한 눈빛으로 필자를 대했다. 그런 조롱 섞인 주위 눈빛을 물리치고 벤치에 누워버렸다. 탈진 일보 직전이었다.

'지리산이고 뭐고, 그냥 누워있자! 정 안되면 산신령한테 배고프다고 하소연을 하던가!'

 

 



 

천상의 맛, 지리산 잡탕라면!

 


산 중에서 허기가 지니 망상까지 들었던 같다. 그렇게 허상에 사로잡혀 벤치에 누워 있는데 솔솔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그냥 냄새가 아니었다. 천상(?)에서나 맡을 수 있는, 그런 너무나 맛있는 냄새였다. 혹시 지리산 산신령께서 식사를 하시고 계시나?

"야! 섞을 거 다 섞었더니 더 맛있는 거 같아!"
"역시 산에서는 잡탕라면이 최고야."
"맞아요. 집에서 먹으면 이 맛이 안 나죠."

동호인으로 보이는 성인 남자 네 명이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5~6인용 코펠에다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어 잡탕라면을 끓인 것 같았다. 라면, 참치, 햇반, 김가루, 북어... 식사 당번이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그들은 환한 미소를 띠우며 음식을 떠먹고 있었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침이 꿀꺽 넘어갔다. 발걸음이 그 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치 뭐에 홀린 듯이.

"정말 잘 먹었다. 근데 이거 많이 남았네."
"이거 여기다 버리면 안 되잖아요. 환경오염 될 텐데..."

 

 

 

 
▲ 아웃도어 음식 저렇게 푸짐한 김치는 누가 주었을까? 충남 서산을 방문했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주셨다. 빛깔도 일품. 맛도 일품이었다. 오른쪽에 있는 소시지 반찬은 필자가 만든 것이다. 2011년 국토종단 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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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남은거 좀 주세요"... 아까운 음식을 버리다니요

 

 


" 저 그거 남은 거 좀 주세요!"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이 필자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냥 들이댄 것이다. 산 중에서 허기가 져, 탈진 상태에 놓이게 됐는데 앞뒤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정신없이 먹었다. 허겁지겁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배고픈 누렁이 개 밥그릇 닥닥 긁어 먹듯이 단 한 방울의 국물조차 남김없이 먹었다. 옆에서 그 분들이 체한다고 천천히 먹으라고 했지만 그 소리는 그냥 소화제로 삼았다.  

 

 

 

산행 중에는 많이 먹어야 한다!


 

그 잡탕라면의 힘 때문인지 필자는 지리산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대성동 계곡쪽으로 내려왔는데 별 탈 없이 하산을 한 것이다. 하산하다 넘어지지도 않았다. 그 동호인 분들은 필자에게 음식으로'셀파'역할을 해주셨던 것이다. 어쩌면 그 잡탕라면은 지리산 산신령께서 내려주신 '천상의 음식'이었을지 모른다.


그 잡탕라면의 맛은 아직까지도 필자의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평소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산해진미를 맛보았지만 아직까지도 '지리산 잡탕라면'을 뛰어넘는 음식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 그 잡탕라면이 그립다. 언젠가는 꼭 다시 한 번 그 잡탕라면을 맛보고 싶다. 그 '천상의 음식'을.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당부드릴 것이 있다. 이제 곧 있으면 단풍산행 철이라 산으로 들로 많이 나가실 것이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다.

산행에 나설 때는 충분히 식량을 챙겨야 한다. 트레킹도 마찬가지다. 좀 많다 싶을 정도로 챙겨도 상관없다. 좀 넉넉하다 싶으면 산행 중에 만난 이들과 나눠 먹으면 된다. 그렇다.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한 산행, 안전한 트레킹을 할 수 있다. 필자처럼 준비 없는 산행을 하면 에피소드는 많이 생성될 수는 있지만 그만큼 허기가 져서 탈진 할 수도 있다.

 

 

 


 
▲ 지리산의 한 찻집 지리산 천은사 앞 쪽에는 '이속'이라는 운치 좋은 찻집이 하나 있었다. 이속(離俗)은 속세를 떠난다는 뜻이다. 2011년에 방문했을 때 공짜로 차 대접을 받았었는데... 2012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주인장은 떠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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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지리산 종주 같은 장거리 산행에 나설 때는 예측된 식량보다 더 챙겨가자. 비상식량으로 2~3끼 정도를 더 휴대하면 좋을 것이다.

 


2. 바로 꺼내 먹을 수 있게 행동식은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보관한다. 필자는 허리에 작은 보조가방을 메는데 그 곳에 비상용 영양바 하나를 항상 넣어두고 다닌다.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심야 지리산 자전거 질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마지막] 민족의 영산 지리산

13.03.21 18:21l최종 업데이트 13.03.21 18:21l

 

 

 

▲ 성삼재 성삼재에서 바라본 전남 구례. 앞에 보이는 도로가 지리산 관통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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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는 타이밍이다. 여행기의 작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다고 하더라도 발표 시기를 놓친다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여행기는 묵혀 놓으면 놓을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골동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 기사는 시급을 다퉈 발표하는 성격의 뉴스가 아니다. 사진도 잘 선별해야 하고, 이동 중에 기록한 메모들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사를 송고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여행에 대한 여행기이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시간의 소요가 느긋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느긋함을 부리다가 기사 작성이 계속 뒤로 미뤄지고, 그러다 아예 전체 기사분에서 누락되는 원고가 생기게 된다. 내가 연재 아닌 연재를 하고 있는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여행기에도 그렇게 누락분이 발생했다. 삼척·동해·예천·거창·김천 등등 시간에 쫓기다 보니 좀 더 오래 머물고, 좀 더 많은 에피소드를 경험한 지역을 취사선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뜀뛰기를 하듯 여행기를 작성했지만 한 번 꼬인 '스텝'은 잘 풀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다녀왔던 이야기가 엄동설한에 발표됐던 것이다. 계절감이 전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 도계삼거리 달궁삼거리를 도계삼거리라고도 부른다. 저 표지판처럼 그 곳은 분명 아름다운 곳이지만... 필자에게는 너무나 험난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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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주의보에 보는 반소매 사진

 

 

특정 주제를 놓고 공모를 하는 여행기 공모전이나 옛 추억을 회고하는 방식의 포토에세이라면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처럼 특정 시기에 행하고 동선이 명확한 여행기는 계절감이라는 족쇄에 묶일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31일에 발행된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 여행기를 본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글도 사진도 꽤 쓸 만한데, 반소매 입은 사진은 좀 추워 보인다. 지금 한파주의보라는데…."

아무리 좋은 글을 쓰고, 아무리 멋진 사진을 게재하더라도 한파주의보를 체감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반소매 사진은 '아니올시다'를 유발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필자도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뜀뛰기를 하듯 여행지를 취사선택을 할 필요도 없게 됐다. 이번 편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마지막 편이기 때문이다.

 

 



# 2011년 여름에 만난 태풍의 기억

여행 43일 차 2012년 7월 26일

나는 경남 함양군을 출발했다. 이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리산!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민족의 영산.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 관문인 지리산. 그렇게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나는 이미 2011년에 관통도로를 통해 지리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국토종단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다.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힘들게 올라갔는데 나를 반긴 것은 '덴무'라는 태풍이었다.

무척 억울했다. 여러 번에 걸친 위기를 넘기고 성삼재에 도착했더니, 태풍이 필자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구절양장 같은 꾸불꾸불한 지리산 관통도로를 40시간에 걸쳐 이동을 했는데 말이다.

겨우 태풍이나 만나려고 그 고생을 하며 성삼재에 올랐던 것인가. 힘 좋은 4륜 구동 자동차로도 오르기 힘들다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자전거로, 그것도 40kg나 되는 짐을 싣고 올라섰건만. 이름도 이상한 태풍이나 만났으니! 더군다나 당시 내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둘 다 작동 불능 상태였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지, 자전거 브레이크는 망가졌지, 체력은 다 빠졌지.

 

 

 


 
▲ 지리산 관통도로 꼬불꼬불 구절양장 같은 지리산 관통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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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결점을 다시 지리산 성삼재로 잡은 것은 2011년의 '리벤지 매치'의 성격이 강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성삼재에 올라서 등산객들에게 제대로 환대와 격려도 좀 받고, 노고단에도 오를 생각이었다.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를 끌고 가는 내내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푸하핫, 태풍도 안 오고 날씨 참 좋네. 이번에는 성삼재에 올라가서 목에 힘 좀 주고 다녀도 되겠군. 백두대간자전거 여행의 마지막이 지리산이라고 등산객들한테 자랑하고 다녀야지!'

나는 시간 계산을 잘못해, 야간주행을 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했지만 당시 마음은 뭔지 모를 뿌듯함이 넘쳤다. 불빛 하나 없는 산 한복판에서 오직 달빛에 의존해 주행하는 것도 '판타스틱'했고, 그런 '판타스틱'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지리산이라는 점도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당시 여행일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해서 그런지 몸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그냥 눈이 감길 정도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상쾌하다. 왜? 이곳은 지리산이니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니까!"(7월 26일 오후 11시 뱀사골 야영장에서)

 

 

 

 


# 땀 뻘뻘 흘리며 페달 밟는데, 옆에서는 맥주가...

다음날. 지리산 산신령께서 단잠을 내려 주셔서 그랬는지, 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까지 잠이 들었다. 여행 막바지라고 여유를 좀 부렸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그곳 지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시간당 이동 거리도 가늠할 수 있었기에 그런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그 전년도의 경험도 한몫했다.

한여름의 지리산은 생기가 흘러넘쳤다. 덩달아 탐방객들이나 캠핑족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러넘쳤다. 달궁 캠핑장을 지날 때였다. 한무리의 가족들이 둘러앉아 수박을 쪼개 먹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도 한 잔 걸치면서... 불타오르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던 나로서는 그런 광경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천하절경 속에서 음식과 술잔이 도니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지만 술 한 잔 받아먹지 못하는 내 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느긋한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서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리산 지리를 안다고 하지만, 야간에 지리산 관통도로를 이동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성삼재에 오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 노고단에서의 아침 첩첩 산 중을 배경으로 한 컷! 일출 즈음이라 그런지 사진이 잘 안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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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에서의 결심 '자랑 좀 해야겠다'

 

 

7월 27일 오후 7시


드디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진입했다. 유명한 달궁 삼거리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관통도로의 경사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팔라졌다.

보통 산행을 할 때 자신의 에너지 중 30%는 비축해놔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비상시라도 체력이 남아 있다면 훨씬 더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행 가이드'는 내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젖 먹던 힘까지 내뿜어야 할 시기였던 것이다.

그냥 등산 배낭을 메고 그 도로를 타고 오르는 것도 힘든데 40kg 정도 되는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그곳을 올라가야 하다니…. 어느 구간은 너무 경사도가 심해서 자전거가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 내 에너지는 0%에 가까웠을 것이다. 에너지 30% 비축론은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성삼재로 향했고, 지리산은 어둠으로 덮였다. 이제 슬슬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도 보이기 시작했다.

'푸하핫, 드디어 내 여행도 끝이 보이는구나. 성삼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분에게 인사하고 여행 자랑 좀 해야지!'

내 발걸음과 블루야크의 바퀴질도 더 분주해졌다. 빨리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노고단이 눈앞에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성삼재 드디어 성삼재에 도달했다. 어두운 시각에 도착했던 터라 사진도 잘 안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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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오후 8시


성삼재에 도착했다. 드디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난 해냈다. 결국 여행의 끝을 본 것이다. 어둠 속 성삼재는 고요했다. 밤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필자는 성삼재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성삼재 이곳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쳤습니다. 여행을 마치자마자 처음으로 뵙는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주차관리소에서 급히 나오셨다. 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자랑은 고사하고 꾸지람부터 듣다니

"안녕하세요."
"아니 이 밤에 여기는 뭐하러 올라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는, 서둘러 쇠사슬로 자동차 진입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뭐해요. 당장 가요."
"……."

역시 또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난 당혹스러웠다. 힘든 여행을 종결짓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소리가 퉁명스러운 꾸짖음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이런 괄시나 당하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지리산에 왔단 말인가? 내 여행이 이렇게 멸시를 당할 정도로 하찮았단 말인가?'

2011년에 태풍을 맞았던 것보다 훨씬 더 억울했다. 그나마 태풍을 맞았을 때는 관리소 직원이 직접 커피를 타주며 필자의 '무사귀환'을 염려해줬다. 그런 고마운 기억이 있었기에 일부러 국립공원 직원분을 찾아 먼저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작은 소망은 퉁명스러운 꾸짖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렇게 혼자 오버 하냐. 뭐 대단한 여행이라고…. 대충 정리하고 빨리 서울 갈 생각이나 해야겠다.'

심신이 다 지쳤다. 그냥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심야고속버스라도 있으면 잡아타고 곧장 서울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지리산 관통도로를 타고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동이 좋은 자동차도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는 '죽음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그곳을 내려간다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야 했다. 그 직원이 퇴거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멸시를 당했더니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걸 어쩌지? 가긴 가야 하는데, 내려갔다가는 바로 골로 갈 텐데….'



▲ 노고단 탐방소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저렇게 노고 할매가 반겨주었다. 사진에서 보여지듯 내 자전거는 해발 1,380m까지 올라갔다.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참 멀리도 간 셈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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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가 딱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내려갈 수 없으면 올라가면 되지 않던가? 그냥 노고단으로 가면 되지 않던가?


현재 노고단-성삼재 구간은 임도로 돼 있다. 그래서 1톤 트럭도 통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전거는 통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일몰 후 야간에는 산행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개의 규칙을 어기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한밤중 지리산은 고요했다.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랜턴을 끄고 달빛에 의존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해봤다. 한밤중 지리산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가니 노고단에서 빛나는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어떤 젊은 국립공원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간 산행에, 자전거까지…. 이러시면 안 돼죠. 과태료 딱지를 맞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했다.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규칙을 꼭 지켜주십시오. 어쨌든 여행이 완료된 건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무사히 종료됐다. 성삼재에서 빰 맞고 노고단에서 화풀이 한 경우이지만, 어쨌든 지리산에서 무사히 여행을 종료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 육십령 지리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있는 육십령 고개. 육십령도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고개이다. 지리산까지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지선 개념으로 육십령을 거쳐 남덕유산까지 달려보았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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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동안 재미는 없고, 분량만 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덧글. 내 자전거 블루야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인 노고단 탐방소(1380m)에 오른 여행 자전거로 기록될 것이다. 만약 그 주차관리소 직원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블루야크의 고지대 기록은 성삼재(1090m)에서 멈췄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만항재(1330m)다. 한마디로 자전거도 만항재까지밖에 못 올라간다.

 

 

 


 

 

* 달궁삼거리: 여기서 직진을 하면 성삼재가 나오고, 우회전을 하면 정령치가 나온다.

 

 

 

 

# 성삼재에서 여행 자랑을 해야겠다!

 

7월 27일 오후 7시

드디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진입했다. 유명한 달궁 삼거리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관통도로의 경사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팔라졌다.

보통 산행을 할 때 자신의 에너지 중 30%는 비축해놔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비상시라도 체력이 남아 있다면 훨씬 더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행 가이드'는 내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젖 먹던 힘까지 내뿜어야 할 시기였던 것이다. 

그냥 등산 배낭을 메고 그 도로를 타고 오르는 것도 힘든데 40kg 정도 되는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그곳을 올라가야 하다니…. 어느 구간은 너무 경사도가 심해서 자전거가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 내 에너지는 0%에 가까웠을 것이다. 에너지 30% 비축론은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성삼재로 향했고, 지리산은 어둠으로 덮였다. 이제 슬슬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도 보이기 시작했다.

'푸하핫, 드디어 내 여행도 끝이 보이는구나. 성삼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분에게 인사하고 여행 자랑 좀 해야지!'

내 발걸음과 블루야크의 바퀴질도 더 분주해졌다. 빨리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노고단이 눈앞에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성삼재: 드디어 성삼재에 도달했다. 어두운 시각에 도착했던 터라 사진도 잘 안 찍혔다.

 

 

 

 

7월 27일 오후 8시

성삼재에 도착했다. 드디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난 해냈다. 결국 여행의 끝을 본 것이다. 어둠 속 성삼재는 고요했다. 밤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필자는 성삼재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성삼재 이곳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쳤습니다. 여행을 마치자마자 처음으로 뵙는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주차관리소에서 급히 나오셨다. 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칭찬은커녕 꾸지람부터 듣다!

 

"안녕하세요."
"아니 이 밤에 여기는 뭐하러 올라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는, 서둘러 쇠사슬로 자동차 진입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뭐해요. 당장 가요."
"……."

역시 또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난 당혹스러웠다. 힘든 여행을 종결짓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소리가 퉁명스러운 꾸짖음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이런 괄시나 당하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지리산에 왔단 말인가? 내 여행이 이렇게 멸시를 당할 정도로 하찮았단 말인가?'

2011년에 태풍을 맞았던 것보다 훨씬 더 억울했다. 그나마 태풍을 맞았을 때는 관리소 직원이 직접 커피를 타주며 필자의 '무사귀환'을 염려해줬다. 그런 고마운 기억이 있었기에 일부러 국립공원 직원분을 찾아 먼저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작은 소망은 퉁명스러운 꾸짖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렇게 혼자 오버 하냐. 뭐 대단한 여행이라고…. 대충 정리하고 빨리 서울 갈 생각이나 해야겠다.'

심신이 다 지쳤다. 그냥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심야고속버스라도 있으면 잡아타고 곧장 서울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지리산 관통도로를 타고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동이 좋은 자동차도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는 '죽음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그곳을 내려간다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야 했다. 그 직원이 퇴거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멸시를 당했더니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걸 어쩌지? 가긴 가야 하는데, 내려갔다가는 바로 골로 갈 텐데….'

 

 

 

 

 

 

* 노고단 탐방소: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저렇게 노고 할매가 반겨주었다. 사진에서 보여지듯 내 자전거는 해발 1,380m까지 올라갔다.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참 멀리도 간 셈이다.

 

 

 

 

 

# "이러다 과태료 딱지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내려갈 수 없으면 올라가면 되지 않던가? 그냥 노고단으로 가면 되지 않던가?

현재 노고단-성삼재 구간은 임도로 돼 있다. 그래서 1톤 트럭도 통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전거는 통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일몰 후 야간에는 산행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개의 규칙을 어기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한밤중 지리산은 고요했다.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랜턴을 끄고 달빛에 의존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해봤다. 한밤중 지리산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가니 노고단에서 빛나는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어떤 젊은 국립공원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간 산행에, 자전거까지…. 이러시면 안 돼죠. 과태료 딱지를 맞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했다.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규칙을 꼭 지켜주십시오. 어쨌든 여행이 완료된 건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무사히 종료됐다. 성삼재에서 빰 맞고 노고단에서 화풀이 한 경우이지만, 어쨌든 지리산에서 무사히 여행을 종료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 육십령: 지리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있는 육십령 고개. 육십령도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고개이다.

 지리산까지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지선 개념으로 육십령을 거쳐 남덕유산까지 달려보았다.

 

 

 

 

 

 

* 성삼재: 성삼재에서 전남 구례 방면을 찍어보았다.

 

 

 

 

# 인생사 타이밍, 여행기 작성도 타이밍

 

인생사는 타이밍이다. 여행기의 작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다고 하더라도 발표 시기를 놓친다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여행기는 묵혀 놓으면 놓을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골동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 기사는 시급을 다퉈 발표하는 성격의 뉴스가 아니다. 사진도 잘 선별해야 하고, 이동 중에 기록한 메모들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사를 송고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여행에 대한 여행기이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시간의 소요가 느긋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느긋함을 부리다가 기사 작성이 계속 뒤로 미뤄지고, 그러다 아예 전체 기사분에서 누락되는 원고가 생기게 된다. 내가 연재 아닌 연재를 하고 있는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여행기에도 그렇게 누락분이 발생했다. 삼척·동해·예천·거창·김천 등등 시간에 쫓기다 보니 좀 더 오래 머물고, 좀 더 많은 에피소드를 경험한 지역을 취사선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뜀뛰기를 하듯 여행기를 작성했지만 한 번 꼬인 '스텝'은 잘 풀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다녀왔던 이야기가 엄동설한에 발표됐던 것이다. 계절감이 전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 지리산 관통도로: 꼬불꼬불 구절양장 같은 지리산 관통도로

 

 

 

 

# 한파주의보에 보는 반소매 사진
 

 

특정 주제를 놓고 공모를 하는 여행기 공모전이나 옛 추억을 회고하는 방식의 포토에세이라면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처럼 특정 시기에 행하고 동선이 명확한 여행기는 계절감이라는 족쇄에 묶일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31일에 발행된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 여행기를 본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글도 사진도 꽤 쓸 만한데, 반소매 입은 사진은 좀 추워 보인다. 지금 한파주의보라는데…."

아무리 좋은 글을 쓰고, 아무리 멋진 사진을 게재하더라도 한파주의보를 체감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반소매 사진은 '아니올시다'를 유발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필자도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뜀뛰기를 하듯 여행지를 취사선택을 할 필요도 없게 됐다. 이번 편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마지막 편이기 때문이다.

 

 

 


# 2011년 여름에 만난 태풍의 기억

여행 43일 차 2012년 7월 26일

나는 경남 함양군을 출발했다. 이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리산!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민족의 영산.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 관문인 지리산. 그렇게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나는 이미 2011년에 관통도로를 통해 지리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국토종단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다.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힘들게 올라갔는데 나를 반긴 것은 '덴무'라는 태풍이었다.

무척 억울했다. 여러 번에 걸친 위기를 넘기고 성삼재에 도착했더니, 태풍이 필자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구절양장 같은 꾸불꾸불한 지리산 관통도로를 40시간에 걸쳐 이동을 했는데 말이다.

겨우 태풍이나 만나려고 그 고생을 하며 성삼재에 올랐던 것인가. 힘 좋은 4륜 구동 자동차로도 오르기 힘들다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자전거로, 그것도 40kg나 되는 짐을 싣고 올라섰건만. 이름도 이상한 태풍이나 만났으니! 더군다나 당시 내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둘 다 작동 불능 상태였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지, 자전거 브레이크는 망가졌지, 체력은 다 빠졌지.

 

 

 

 

* 도계삼거리: 달궁삼거리를  도계삼거리라고도 부른다. 저 표지판처럼 그 곳은 분명 아름다운 곳이지만... 필자에게는 너무나 험난한 곳이었다!

 

 

 

 

그런 면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결점을 다시 지리산 성삼재로 잡은 것은 2011년의 '리벤지 매치'의 성격이 강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성삼재에 올라서 등산객들에게 제대로 환대와 격려도 좀 받고, 노고단에도 오를 생각이었다.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를 끌고 가는 내내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푸하핫, 태풍도 안 오고 날씨 참 좋네. 이번에는 성삼재에 올라가서 목에 힘 좀 주고 다녀도 되겠군. 백두대간자전거 여행의 마지막이 지리산이라고 등산객들한테 자랑하고 다녀야지!'

나는 시간 계산을 잘못해, 야간주행을 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했지만 당시 마음은 뭔지 모를 뿌듯함이 넘쳤다. 불빛 하나 없는 산 한복판에서 오직 달빛에 의존해 주행하는 것도 '판타스틱'했고, 그런 '판타스틱'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지리산이라는 점도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당시 여행일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해서 그런지 몸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그냥 눈이 감길 정도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상쾌하다. 왜? 이곳은 지리산이니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니까!"(7월 26일 오후 11시 뱀사골 야영장에서)

 

 



# 땀 뻘뻘 흘리며 페달 밟는데, 옆에서는 맥주가...

다음날. 지리산 산신령께서 단잠을 내려 주셔서 그랬는지, 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까지 잠이 들었다. 여행 막바지라고 여유를 좀 부렸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그곳 지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시간당 이동 거리도 가늠할 수 있었기에 그런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그 전년도의 경험도 한몫했다.

한여름의 지리산은 생기가 흘러넘쳤다. 덩달아 탐방객들이나 캠핑족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러넘쳤다. 달궁 캠핑장을 지날 때였다. 한무리의 가족들이 둘러앉아 수박을 쪼개 먹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도 한 잔 걸치면서... 불타오르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던 나로서는 그런 광경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천하절경 속에서 음식과 술잔이 도니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지만 술 한 잔 받아먹지 못하는 내 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느긋한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서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리산 지리를 안다고 하지만, 야간에 지리산 관통도로를 이동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성삼재에 오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 노고단에서의 아침: 노고단 가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서 한 컷. 일출 즈음이라 그런지 사진이 잘 안 찍혔다. 

 

 

 

 

 

 

 

 

 

 

 

 

 

 

 

 

* 충남 서산의 아라메길 중: 서산마애삼존석불 보러 가는 길에 있는 어느 호수 

 

 

 

 * 서울 신도림 근처 안양천: 제가 처음에는 저렇게 배낭을 짊어 메고 도보여행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 기간: 2011년 7월 19일~ 8월 22일, 총 35일간

 

   * 코스: 서울 신도림역 출발 -> 경기도 안양 -> 군포 -> 안산 -> 화성 -> 평택 -> 충남 아산 -> 당진 -> 서산 -> 홍성   -> 보령 -> 서천 -> 전북 군산 -> 익산 -> 전주 -> 완산 -> 진안 -> 임실 -> 남원 -> 지리산 -> 전남 구례 -> 순천 -> 보성 -> 장흥 -> 강진 -> 해남: 땅끝마을 도착, 여행 임무완수

 

 

   * 보너스: 전남 진도군 일대 탐방, 진도 본 섬과 조도면 일대 탐방( 1박 2일에 나온 관매도도 갔다 왔지요) 

 

 

   * 여행종류: 자전거 여행+ 도보여행, 자전거도보여행

 

   * 총 이동거리: 약 1300Km -> 서울에서 지리산까지 카운팅을 했었음 당시 약 750Km 정도였음. 그 이후로는 속도계 고장으로 측정 불가함. 대충의 거리를 어림잡았음.

 

  * 일일 최장 이동거리: 70Km -> 출발 첫날 서울 신도림에서 경기도 화성시까지

  * 일일 최소 이동거리: 7Km -> 지리산 횡단도로에서, 사실 자전거 주행이 아닌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이었음. 그 날 이후 자전거 속도계 고장남.

 

 

  * 애로사항: 올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음. 덕분에 물난리도 많이 겪어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음. 더군다나 물에 취약한 전자기기들이 망가져 버렸음. 디지털카메라 고장, 자전거 속도계 고장, 텐트 고장 등등...

 

 

  * 가장 기억에 남을 일: 지리산에서 태풍 맞은 일!

 

 

 

 

 

* 지리산 횡단도로: 지리산 정렴치 가는길. 이미 이때 전부터 카메라가 맛이 갔네요.

사진이 아주 흐리게 나옵니다. 그나저나 저 자건거는 왜 산 길에 우둑하니 있다냐...ㅋ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 그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저는 얼마전에 다녀온 제2차

 국토종단 자전거도보여행을 정리해서 포스팅을 해 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온지도 벌써 20일 정도가 됐네요.

 시간 참 빠르죠. 불과 20일 전까지만 해도 '제발 비만 내리지 마라' 라고 매일같이

 기원을 했었는데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가을 날씨가 됐으니까요.

 

 

 참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렸습니다. 비 때문에 고생을 하신 분들도 참 많았죠.

 저도 고생을 좀 했답니다. 사실 저 거리가 35일 동안 여행 할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매일 같이 손수 밥을 지어 먹고, 텐트를 치고, 무거운 짐(약 40Kg)을 싣고 갔다는

 것을 감안을 한다고 해도 너무 늘어진 여행이었습니다.

 

 

 그만큼 비 때문에 엄청난 차질이 생긴 것이죠. 비가 와도 적당히 와야지 비가 너무 싫어.....ㅋ

 좀 덥기는 해도 저는 때양볕이 좋더군요. 여름에는 해가 쨍쨍해야 제 맛 아닙니까?

 

 

* 경기도 평택: 제가 주로 저렇게 야영을 했답니다. 텐트가 부실해서 지붕이 달린 저런 오두막이나

팔각정에 자리를 잡았죠. 그나마 저 텐트도 얼마 안 가서 망가졌답니다.

 

 

 

 

앞서 제가 여행종류를 '자전거도보'여행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 이 말은 제가 직접 지은 말입니다.

 

 

  '자전거도보여행'은 말 그대로 자전거타기와 도보여행을 짬뽕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탄한 4차선

국도에서는 페달을 열심히 밟아 주행거리를 늘리고, 대신 경사도가 심한 고바위 길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사진에서도 보듯 저는 자전거 앞뒤로 짐을 잔뜩 실어서 고바위

길에서는 무조건 자전거를 끌고 올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럼 그랬냐? 저는 도보여행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한편 이번 여행에도 어김없이

도보여행자를 만났답니다. 무자게 부럽더군요. 그 분은 제주도에 거주하시는 분인데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온전히 도보로 이동하신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분도 단독여행, 저도 단독여행이었죠.

 

 

자전거여행은 그나마 자전거에 의지라도 하면서 가는데... 도보여행, 그것도 단독도보여행이면

오직 자신만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하잖아요. 그런 매력 때문에 저도

한 번 도보여행을 시도해 봤답니다. 그런데 역시 도보여행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군요.

 

 

* 충남 당진: 충남 당진에 있는 면천향교 인근에 있는 <건곤일초정>.

실학 사상가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이 이 곳에서 군수로 있으면서 저 정자를 지었다고 합니다.

 

 

 

도보여행을 하려면 일단 배낭부터 좋은 것을 구매해야 할 것 같더군요. 최소한 60리터 짜리

어깨끈이 튼실한 배낭을 짊어져야 스타트를 끊을 것 같더군요. 하여간 도보로 국토종단

단독여행을 하려면 체력적으로 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숙소를 이용하거나 밥을 해먹지

않으면 사정이 많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그런데 여행에 정답이 있습니까? 자신이 정답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자전거도 타고 도보여행도 하는 식으로 여행 테마를 잡았답니다. 국토종단여행을 하되 전북 쪽에서

길을 확 틀어 고원지대로 가자 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고원지대인 '무진장'으로

가서 지리산으로 '입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 충남 서산: 해미읍성 내부의 한옥건물.

 

 

 

 

고원지대로 가면 제 자전거에 짐이 많은 관계로 자연스럽게 도보여행이 되는 거니까요.

마냥 편해지려고 하는 인간의 간사함을 억제하고자 '고바위' 정책을 쓴 것이지요.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매연이 없는 둘레길이나 올레길 같은 A등급의 아닌 아스팔트

길이었지만 그래도 갈 만 하더군요. 해발고도가 높아지면 차량 소통도 좀 더 뜸해지고,

대신 공기는 좀 더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도보로 국토종단여행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국도로 가야했을 겁니다. 40Kg 정도 되는 배낭을 메고

산길을 가기에는 좀 무리니까요.

 

 

이번 여행은 정말 비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고생도 정말 했답니다. 하루는 전북 전주와 완주의

 경계지역에서 캠핑을 했을 때였습니다. 그날 분명히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말만 믿고 노상에다 텐트를 쳤답니다. 사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답니다.

당시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런데 그날 저는 엄청난 물폭탄을 맞았지요.  그때 저는 모기장 텐트에다

위에는 방수천을 씌우고 잠을 청했거든요. 서울에서 가지고 온 텐트가 망가져서

고육지책으로 그렇게 한 것이죠. 새로운 텐트를 살 돈은 없고.

 

 

 

 

* 충남 서산: 해미읍성 정문. 문지기 역할을 하시는 분이 제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시네요!

 

 

 

 

 

구멍이 뻥뻥 뚫린 모기장 텐트에서 물폭탄을 맞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나는 왜 한치 앞도 못 보고 이렇게 물난리를 겪을까?'

'왜 나는 미리미리 야영지를 물색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낭패를 당하나?'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한 만큼 현지분들의 도움의 손길이 제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어 주었답니다.

서산할머니, 보령 선생님들, 지리산할머니, 보성 선생님, 장흥 이장님, 진도할머니들,

경주 선생님, 천안 선생님 등등... 참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도대체 제가 무슨 '이쁜'짓을 했다고

 마을회관 문을 열어 주시고, 김치를 주시고, 쌀을 주셨는지... 김치나 쌀을 주시는 분들은

꼭 과일이나 야채까지 얹어 주시더군요.

이런 것 이외에 사소한 것들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빵을 주시는 분,

인절미를 주시는 분, 과일을 주시는 분 등등...

 

 

 

* 전북 진안 마이산: 남쪽 입구에서 떡방아를 찧는 할머니. 요즘 보기 드물게 직접 떡방아를 찧으시네요.

 이 할머니가 내게 공짜로 떡을 주셨답니다. 이런 할머니들 덕분에 제가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받기만 하니 저도 무언가를 드려야 할 것 같더군요. 뭐 하지만 제가 해드릴 건 딱히 별로 없었고

그냥 짐 나르기 정도만 해드렸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이렇게라도 제가 받은 값은 해야겠지요!

 

 

 

* 지리산: 지리산에서 태풍 '무이파'를 만났답니다. 자전거에 걸린 노란색 깃발이 강풍에 날라갈 것 같네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여행지는 역시 지리산이었습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역시 지리산은 제게는 정말 큰 스승과도 같은 산이었습니다. 자동차로 오르기도 힘들다는

지리산을 앞뒤로 짐을 꽉 채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으니 그것 자체로도 제게는 큰 도전이었답니다. 

그러다 정렴치와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으니... 지리산을 지나며 참 많은 것을 느꼈답니다. 

많이 힘들었던 만큼 많이 느꼈던 것이지요.

 

 

애석하게도 지리산에서 디지털카메라와 자전거속도계가 고장이 났답니다. 빗방울이 워낙 거세서

전자기기가 망가진 것이지요. 뭐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겠죠.

 

 

전남 구례에서 진도까지, 그 이후로도 여행은 계속됐지만 아쉽게도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답니다.

진도군 조도는 처음 방문을 해봤는데 섬 전체가 아기자기 했는데 사진으로 못 담아 내서 참 아쉽더군요.  

그래서 여행 고수들은 장거리여행 할 때는 사진기를 두 대씩 가지고 다니나 봅니다. 

사이드 개념으로요. 조도는 나중에 다시 한 번 방문해서 꼭 사진으로 담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내용이 무척 많이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나 봅니다.

하긴 35일 동안 객지에서 떠돌았는데 할 말이 별로 없다면 그것도 참 이상할 것 같군요.

 

 

* 전북 진안 마이산: 돌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화질이 안 좋아 정말 아쉽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길 위에 남기고 지난 35일 간의 나무들의 <제2차 국토종단 자전거도보여행>은

무사히 종료되었답니다.

 

 

아참! 여행하는 동안 저는 이런 말을 많이 읇조렸습니다.

 

 

"비를 맞는 것도 여행의 일부다."

"자전거가 넘어져 다치는 것도 여행의 일부다."

 

 

이제 일상으로 복귀하니 이런 말을 자주 읇조리네요.

 

 

"일이 잘 안 풀리는 것도 생활의 일부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하루하루를 잘 사는 것이 바로 생활 그 자체다!"

 

 

여행을 갔다왔더니 이런 변화가 있네요! 참 좋은 변화인 듯합니다!

 

 

 

 

 

*전북 전주 전주천: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부럽더군요.

 

 

 

 

* 지리산 정렴치: 해발고도 1172m 나도 참 별난 넘이다. 저 곳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생각을 하다니!ㅋ

 

 

* 지리산 성삼재: 태풍의 영향으로 당시 지리산은 입산이 금지가 되었답니다.

 

 

 

* 충남 서산시 기포리: 온 나라가 물난리를 겪었던 7월 27일에 저도 물난리를 겪었답니다. 빨래 말리듯 마을회관 난간에

젖은 옷가지와 물품들을 말렸답니다.

 

 

 

* 충남 서산 해미읍성: 해미읍성 내부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시는 분들. 저런게 바로 진정한 휴식이겠죠.

<나무들>이 추구하는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 지리산 정렴치: 태풍 무위파의 영향으로 당시 지리산은 폭우와 함께 강한 돌풍이 불었음. 워낙 강한 바람이 부니 자전거가 넘어갈 정도였음.

 

 

 

 

여행기간 총 35일. 이동거리 약 1300km.

서울에서 해남 땅끝을 찍고 전남 진도군으로 방향을 틀어 그 곳에서 마친 여행.

 

서울에서 계속 남진을 하다 일부러 찾은 백두대간... 그 백두대간에 우뚝하게

솟아 있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

 

나는 왜 한 짐 가득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올랐는가?

애초 계획했던 순수 도보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꺼리낌을 타파하려고?

도보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차피 고바위 길이면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하니... 자연스럽게 도보여행 형식이 되겠지.

그래서 해발고도가 높은 전북 진안, 임실, 남원으로 코스를 잡았잖아.

 

또한 정말 그런... 내 안의 존재하는 약간의 건방을 지리산에서 표출하려고?

그간 아웃도어 좀 해봤다는 자신감을 지리산에서 떨쳐보려고? 

 

그러다 결국 지리산에서 태풍을 만났지. 건방 떨다 제대로 당한 셈이지.

역시 지리산은 지리산이었어. 역시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었지.

 

그런 만큼 지리산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어. 소박하지만 큰 가르침이었지.

 

 

건방떨지 말고 굳은 다짐에 실행을 더하라!

 

지리산에서 얻은 가르침과 다짐을 고이 간직해서 하루하루 잘 살자고.

그게 바로 정답 아니겠어!!!

 

 

 

 

* 지리산 성삼재: 저 자전거를 끌고 성삼재를 올랐다. 오직 내 팔과 내 다리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랬으니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무동력으로 지리산 관통도로를, 그것도 약 40kg 정도 되는 짐을 싣은 철TB를 끌고 올라갔으니 말이다. 내가 성삼재에 도착하니 지리산은 전면적으로 입산통제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삼재 코 앞에 있는 노고단도 오르지 못했다. 하긴 그 폭풍우가 부는데 지리산에 입산이 가능하겠는가? 내가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성삼재까지 갔더니 국립공원 직원들도 참 이상하게 보더라. 그 폭풍우 덕택(?)에 내 사진기도 망가졌다. 그래서 지리산 이후로는 전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장거리 여행시에는 무겁더라도 카메라를 두 대 이상 가지고 가는게 현명한 것 같다.

메인과 서브..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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