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샛강 생태공원: 샛강 생태공원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   * 샛강 생태공원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거의 3년 만에 처음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10월 4일에 행한 한강 역사트레킹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선유도에서부터 여의도에 있는 샛강 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저는 한강 역사트레킹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한강 트레킹을 마지막으로 행했을 때가 2013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저도 이 길을 걷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트레킹을 앞두고 좀 긴장을 했답니다.


"잘 되야 하는데... 또 오늘이 4학기 첫 수업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날은 2016년 4학기의 첫 수업이었습니다. 렛츠런 문화센터의 2016년 4학기의 첫 수업이었죠. 3학기가 잘 끝났으니 4학기는 더 잘 해야 하잖아요. 그런 심적 부담을 좀 안고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첫 수업이라서 그랬는지 수강생들도 거의 다 참석을 해주신 것 같더군요. 약 2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모였답니다.


10월의 하늘은 참 맑고 청명했습니다. 햇살이 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걷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


한강 역사트레킹은 서울에 있는 트레킹 코스치고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합니다. 선유도를 걷는 것도 좋고, 샛강 생태공원을 걷는 것도 좋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의도 옆에 위치한 샛강 생태공원은 빌딩 숲과 푸른 수목이 어우러져 있어 무척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낸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색적인 트레킹 코스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답니다. 바로 소음 때문입니다. 길 옆 쪽으로 88도로가 지나가는데 그래서 자동차 소음이 상당히 심하다는 것이죠. 리딩하는 내내 그 점이 마음이 걸리더군요.


그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트레킹은 무사히 잘 종료가 됐답니다.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렇게 호평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4학기는 가을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트레킹하기 정말 좋은 학기라고 생각합니다. 수강생들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트레킹에 임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런 만큼 제 어깨도 무척 무겁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죠. 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다음 강의 때도 날씨가 받혀줬으면 정말 좋겠네요~

 







​ * 샛강교: 샛강교에서 한 컷. 뒤로 여의도 금융가의 빌딩 숲들이 보인다.


 



   * 뱀 조심: 뱀 조심 표지판. 샛강 생태공원에 뱀이 나타나는가 보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샛강에서 뱀을 본 적이 없다.








* 절두산: 당산역에서 바라 본 절두산. 뒤에 보이는 산은 북한산이다.









이승만이 한강 다리를 끊었다고요?

 

- 한강 따라가는 한강역사트레킹

    

 


그게 정말이에요? 저 한강대교가 폭파됐었다고요? 그게 언젠데요?”

 

어느 가을날, 한강 역사트레킹을 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참가자 중 한 분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저런 질문을 던지더군요. 다른 분들의 표정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강대교와 한강철교가 폭발해서 폭삭 주저앉았다는 제 설명에 대한 반응들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KTX 한 대가 미끄러지듯 한강철교 위로 속도를 내고 지나가고 있더군요. 강제적(?)으로 묶인 침묵의 시간이 흘렀고, 저는 입을 뗐습니다.

 

한국전쟁 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폭발시킨 주체가 인민군이 아닌 우리 국군이었다는 점입니다. 인민군의 남하를 막겠다고 다리를 폭파시킨 거죠. 전쟁 때는 일부러 시설물을 파괴해서 적군의 행군 속도를 늦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강대교 폭파는 문제가 아주 많았어요. 다리 폭파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거든요.”

 

무슨 피해가 있었는데요?”

 

사전 예고 없이 폭파가 실시돼서 당시 다리를 건너던 피난민들이 많이 죽었어요. 수 백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더 황당한 일은 다리가 끊기기 몇 시간 전까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힘찬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는 겁니다.”

 




* 노들텃밭: 노들섬, 노들텃밭에서 바라 본 한강대교 아치형 교각.






그럼 대통령이 서울에 남아 있었는데 다리를 끊었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 없었어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수뇌부들은 멀리 대전까지 피난을 간 상태였습니다. 미리 녹음했던 음성으로 계속 돌려 됐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 그 방송 내용을 믿고 피난을 안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웃기는 거죠.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을 간 건 그렇다 쳐도 왜 거짓말을 합니까? 서울에 있지도 않으면서 서울에 있다고 구라쳐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고...”

 

마지막 설명을 할 때는 저도 비속어를 써가며 좀 흥분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침도 튀기면서... 마지막 설명이 끝나자 분위기가 좀 가라앉는 듯 보이더군요. 그래서 영화이야기로 방향을 좀 틀어봤습니다.

 

“<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 기억나시죠? 그 영화에서 신하균이 육군 소위로 나오잖아요. 영화에서 신하균은 탈영을 하고 자살까지 시도를 했는데 그게 다 죄책감 때문에 그랬더라고요. 피란민들이 몰려든 다리를 폭파시켰는데 담당자가 신하균이었던 거죠. 그래서 신하균은 죄책감에 시달렸던 거고요. 그 부분은 한강대교 폭파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 아닌가 하네요.”

 

그때 다시 한강철교 위로 무궁화호가 한 대 지나가더군요. 무궁화호가 느린 걸음을 하는 동안 트레킹 팀은 또 한 번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풍 같은 역사트레킹이라는 리딩 원칙이 어긋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하더군요.

 

아픈 우리 현대사네요.”

 









 * 샛강생태공원: 여의도에 숨어 있는 보물인 샛강생태공원.

 







 

# 선유도가 되어버린 선유봉?

 

한강. 매일 보는 한강인데. 매일 같이 출근하러 다리를 넘고, 퇴근하면 복실이랑 같이 산책하는 그런 곳인데. 그런 한강에도 역사트레킹을 할 곳이 있는 걸까요? , 그렇습니다. 있습니다.


한강역사트레킹의 첫 번째 도착지는 절두산 성지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선유도부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사실 선유도와 절두산은 하나의 권역으로 묶일 수 있기에 선유도부터 이야기하는 전개 방식이 틀린 것만은 아니죠.


원래 선유도는 섬이 아니었습니다. 선유봉(仙遊峰)이라고 불렸던 봉우리였습니다. 높이는 해발 40미터 정도였습니다. 해발 40미터면 썩 높은 편은 아니지요. 하지만 푸른 나무들을 품고 있는 봉우리가 강가 가까운 쪽에 우뚝 서 있었으니,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중국 사신들도 조선에 오면 꼭 선유봉이 있는 양화 일대를 유람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겸재 정선도 선유봉을 사랑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선생도 한 풍류하시지 않습니까? 그런 겸재 선생이 선유봉이 자리잡고 있는 양천현의 현령으로 부임을 하게 됩니다. 그때가 1740, 조선 영조 때였죠

 

겸재 선생은 1741년에 <양화환도>, <금성평사>, <소악후월>3편의 진경산수화를 화폭에 담았답니다. 지금의 선유도 일대의 한강 유역을 사실감 넘치는 필치로 담아낸 것이죠. 특히 <양화환도>에서는 선유봉과 함께 잠두봉이라고 불렸던 지금의 절두산이 등장합니다. 또한 그 잠두봉 아래에는 양화진(지금의 합정동)의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선유봉과 잠두봉 사이의 물길을 느긋하게 노를 저으며 건너가는 뱃사공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양화환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림 속에 뛰어들어 신선놀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유봉(仙遊峰)은 한자 풀이대로 신선이 노닌다는 봉우리입니다. 만약 진짜 그림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면 선유봉 꼭대기에 서 있는 노송 아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네요. 막걸리 말고.


그렇다면 왜 선유봉은 졸지에 선유도로 내려앉았을까요? 누가 파먹었나요?

일제에 의해 여의도에 비행장이 들어설 무렵이었습니다. 일제는 활주로를 닦고 제방을 쌓는다며 명목으로 선유봉을 깎아냈습니다. 채석을 한 것이죠. 그렇게 선유봉은 채석장이 되어버렸고 봉우리는 점점 더 깎여나갔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선유봉은 계속해서 채석장으로 이용되었는데 선유봉에서 캔 돌들은 지금의 강변북로 공사 등에 이용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깎이다보니 선유봉은 납작하게 되어버렸고, 이후 한강이 개발되어 강폭이 넓어졌을 때 영등포쪽과 분리되어 결국 섬이 되고 맙니다.


그러고보면 선유도는 참 사연이 많은 섬이네요. 깎이고, 부서지고, 졸지에 섬이 되고... 그렇게 섬이 된 선유도는 지금 서울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휴식처 중에 한 곳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와서 신선놀음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척화비: 절두산 성지에 있다.







 

# 절두산으로 개명한 잠두봉

 

이제 절두산 이야기를 해보죠. 앞서 언급한 <양화환도>에서 절두산, 즉 잠두봉은 선유봉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뽕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잠두봉은 그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고 하여 용두봉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왔을 때 꼭 들렀다는 잠두봉이, 겸제 정선이 화폭으로 담아낼 정도로 비경을 자랑하던 잠두봉이 왜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을까요? 그것도 머리가 잘린다는 의미의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살벌한 이름으로

   

1866.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이루어진 병인박해 때문에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죽음을 당합니다. 이때 주교인 베르뇌를 포함한 9명의 프랑스인들이 처형을 당했는데 그들은 절두산이 아닌 새남터(현재의 용산구 이촌동)와 충남 보령 갈매못 등지에서 죽었습니다.


이 병인박해가 원인이 되어 병인양요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자국의 선교사가 처형됐다는 소식에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의 로즈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프랑스 함대는 본격적인 공세에 앞서 정찰선을 파견하는데 그 정찰선이 한강 깊숙이까지 올라온 것이죠. 양화진을 넘어 서강까지 침범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원군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대원군은 아주 격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악한 서양 세력의 흔적들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씻어내겠다며 잠두봉에 새로운 처형지를 만든 것입니다. 잠두봉이 양화진이나 서강과 가깝다는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이죠. 그렇게 하여 뽕나무들이 우거졌던 잠두봉은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는 뜻의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150년 전, 그렇게 절두산은 수 천 명의 천주교인들의 목이 잘려나간 비극의 땅이었습니다. 또한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감시견처럼 서 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런 흐름은 흥선대원군도 막을 수는 없었겠지요.


현재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는 절두산 한쪽에 꿔다둔 보릿자루 마냥 껑뚱하게 서있지만 절두산은 그 자체가 우리 천주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성지 중에 성지가 됐습니다. 절두산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 쯤은 가볼만한 곳입니다. ‘피의 역사가 서린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소인 만큼 직접 탐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척화비를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고요

 

그러고 보면 절두산이나 선유도나 공통점이 많네요. 예전에 사랑을 많이 받은 것도 똑같고, 본의 아니게 이름이 바뀐 것도 똑같고.

 






* 한강철교: 63빌딩 쪽에서 바라본 한강철교. KTX가 지나고 있다.







 

 

# 이승만이 끊은 한강대교

 

다시 한강대교 이야기.

한강대교 폭파로 인해 군사적인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한강 북부에 남아 있던 국군의 퇴각로가 봉쇄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순차적인 퇴각이 이루어졌다면 국군은 한강 이남에서 전열을 정비하여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할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1950714일에 전격적으로 이양된 전시작전통제권도 그렇게 쉽게 이양되지 않았을 겁니다. 아직까지도 우리에게는 전시작전권이 없습니다.


분명 한강대교 폭파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실들을 모르고 있더군요. 대다수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리가 끊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절단한 주체를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교량이 폭파되지 않았냐고 물었던 참가자도 있었으니까요.


좋은 역사든 아픈 역사든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름이 바뀌었으면 왜 바뀌었는지, 다리가 끊어졌다면 왜 끊어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지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막을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강역사트레킹을 마칠 때 항상 이런 말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인민군의 남침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강대교 폭파에 대한 면죄부가 부여될 수 없지요. 자기는 안전하게 대전에 내려가 있으면서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거짓말이나 해대고... 그게 바로 이승만입니다.”

 





 

한강역사트레킹

 

1. 코스: 절두산성지 양화대교 선유도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63빌딩 한강철교 노들텃밭(한강대교)


2. 이동거리: 10km


3. 예상시간: 4시간 정도(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5. 교통편: IN - 지하철 2호선 합정역 / OUT - 노들텃밭 노들텃밭에서 노량진역으로 가는 버스를 탑승할 수 있음.

 

 

 

 

 


 

 

 

* 샛강생태공원: 여의도의 숨어 있는 진주 샛강생태공원.

 

 

 

 

 

 

 

 

* 코스명: 여의도샛강길

 

 

* 이동경로: 당산역 ▶ 선유도 ▶ 샛강(여의도) ▶ 한강대교 ▶ 한강텃밭

 

* 역사유적: 선유도, 절두산 성지, 한강대교, 한강철교, 양화대교

1. 선유도(선유봉): 근대화 이전 시기의 한강 하구에 대한 설명. 선유도의 불운의 역사 설명.

2. 절두산(잠두봉): 선유봉과 잠두봉을 엮어서 설명. 절두산 성지에 대한 이야기 설명.

3. 한강대교, 한강철교, 양화대교: 각 다리에 얽혀 있는 이야기 설명.

4. 그 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한강 텃밭

 

 

* 이동거리: 약 8.5km

 

 

* 예상 소요시간: 약 3시간(쉬는 시간 포함 등)

 

 

* 난이도: 하 ---> 초보자 가능

 

 

* 방향찾기: 표지판 있음. 한강, 여의도에 위치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음.

 

 

* 이용불가 계절: 없음. 4계절 이용 가능함.

 

 

* 특이사항: 당산역에서 샛강생태공원으로 이동할 때 자전거를 조심해야 함.

 

 

* 교통편: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을 이용. 트레킹을 마친후에는 한강대교 근처에 있는

        지하철 9호선 노들역을 이용할 수 있음.

 

 

 

 

 

 

 

 

 

 

* 여의도 샛강길: 여의도 샛강 트레킹 코스 지도.

 

 

 

 

 

 

 

 

* 절두산 성지: 절두산은 직접 가지 않고, 양화대교에서 구두로 설명한다.

 

 

 

 

 

 

 

* 양화대교: 선유도에서 바라본 양화대교

 

 

 

 

 

 

 

 

* 샛강생태공원: 생태공원에는 저렇게 흙길이 있다.

 

 

 

 

 

 

여의도샛강 역사트레킹 후기 보러 가기

 

---> 클릭

 

 

 

 

 

 

 

 

 

 

 

 

 

 

청명한 가을날에 떠난 한강 역사트레킹

13.10.17 14:10l최종 업데이트 13.10.17 21:43l
곽동운(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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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고층건물들과 습지가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 상당히 이채로운 곳이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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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다리

"그게 정말이에요? 저 한강대교가 폭파됐었다고요? 그게 언젠데요?"

누군가 놀란 듯 큰 목소리로 필자에게 물었다. 나머지 팀원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필자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끊은 주체가 인민군이 아닌 우리 국군이었다는 점입니다. 인민군의 남하를 막겠다고 다리를 폭파시킨 거죠. 전쟁 때는 일부러 시설물을 파괴해서 적군의 행군 속도를 늦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강대교 폭파는 문제가 아주 많았어요. 다리 절단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죠."

 


"무슨 피해가 있었는데요?"

 


"사전 예고 없이 폭파가 실시돼서 당시 다리를 건너던 피난민들이 많이 죽었어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더 황당한 일은 다리가 끊기기 몇 시간 전까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힘찬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는 겁니다."
"그럼 대통령이 서울에 남아 있었는데 다리를 끊었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 없었어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수뇌부들은 멀리 대전까지 피난을 간 상태였습니다. 미리 녹음했던 음성으로 계속 돌려 됐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 그 방송 내용을 믿고 피난을 안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웃기는 거죠.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을 간 건 그렇다 쳐도 왜 거짓말을 합니까? 서울에 있지도 않으면서 서울에 있다고 구라쳐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고."

필자의 설명이 끝나자 분위기는 한층 더 가라앉았다. 그래서 영화 이야기로 방향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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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의 코스 당산역 ->선유도공원 -> 샛강생태공원 -> 노들텃밭(한강대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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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 기억나시죠? 그 영화에서 신하균이 육군 소위로 나오잖아요. 영화에서 신하균은 탈영을 하고 자살까지 시도를 했는데 그게 다 죄책감 때문에 그랬더라고요. 피란민들이 몰려든 다리를 폭파시켰는데 담당자가 신하균이었던 거죠. 그래서 신하균은 죄책감에 시달렸던 거고요. 그 부분은 한강대교 폭파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 아닌가 하네요."

씁쓸한 적막감이 바람에 실려 온 듯 우리 한강 역사트레킹팀을 크게 흔들고 지나간 듯싶었다. 누군가 소리 낮춰 이야기 내뱉었다.

"아픈 우리 현대사네요."

 


"그렇죠.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니까 마치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연상되더군요. 상판이 떨어져 나가서 강물에 둥둥 떠 있고요…."

 


# 한강에 뭐 볼 게 있는가?

10월 13일 오후. 가을날의 한강은 청명함이 더해가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의 느긋함을 만끽하려는 듯 한강시민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우리 한강역사트레킹 팀의 얼굴 표정에서도 그런 청명한 가을 날씨가 살아 숨쉬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팀은 진지함까지 묻어 있었다. 하나라도 더 배워가려는 듯 필자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런 진지함이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필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거 괜히 버벅대서 팩트 전달이 꼬이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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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 여복이 터졌나? 필자만 뺴고 모두 젊은 처자들이었다. 이 분들 덕분에 재미난 역사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뒤에 보이는 곳이 선유도와 양화대교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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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역사트레킹 마스터다. 이 직함은 우리나라에서는 필자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즉,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한 직함이라는 것이다. 역사트레킹 마스터는 역사 유물 앞에서는 유홍준 선생이 되어야 하고, 필드에서는 엄홍길 대장이 되어야 한다. 또 직접 트레킹 코스도 개척해야 하기에 손발이 무척 분주한 직업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게 무척 대단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지적인 면과 아웃도어적인 면이 동시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동안 그 직함에 어울리는 활동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역사트레킹 마스터라고 그냥 폼만 잡고 다녔던 것이다.

그랬다. 그간 필자의 손발은 무척 한가했다. 또한 필자가 주인장으로 있는 역사트레킹 카페도 파리만 날렸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얼마전 위즈돔이라는 지식 공유 사이트에 <한강역사트레킹>이라는 코너를 하나 개설했다. 운이 좋았는지 코너는 매진이 되었고, 10월 13일에 역사트레킹의 첫 항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강에 무슨 볼거리라 있다고, 거창하게 '역사트레킹'을 하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강이야 산책하고, 운동하는 그러는 곳이잖아. 그렇게 친숙한 곳에 '한강역사트레킹'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이는 거 오버 아니야? 괜히 있어 보이려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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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화대교 선유도공원에서 바라본 양화대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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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의 코스: 당산역 ->선유도공원 -> 샛강생태공원 -> 노들텃밭(한강대교)

 

 

 

 

 

* 척화비: 절두산 성지 한 쪽 편에 있었다.

 

 

 

 

 

* 절두산 성지: 당산역 방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절두산 성지 뒤로 북한산이 보인다.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고층건물들과 습지가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 상당히 이채로운 곳이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노들텃밭: 노들텃밭에는 저렇게 오두막이 많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한강 역사트레킹: 샛강생태공원을 걷고 있는 모습.

 

 

 

 

 

 

 

 

* 샛강생태공원: 샛강생태공원은 억새가 많은 곳이다. 그 억새들을 배경으로 한 컷 찍었다.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 한강역사트레킹: 여복이 터졌나? 필자만 뺴고 모두 젊은 처자들이었다. 이 분들 덕분에 재미난 역사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 선유도에서 바라본 양화대교

 

 

 
 
 
 
 
 

 

 

 

 

 

 

 

 

 

 

 

 

 

 

 

 

 

 

 

 

 

 

 

 

 

 

 

 

 

 

 

 

 

 

 

 

 

아세요?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시민리포터 곽동운 | 2013.01.24

 

 

 

 

 

# 작지만 매력적인 '깍두기' 공원

 

1월 22일. 흐리기는 했으나 동장군의 위세가 주춤한 듯, 서울의 날씨는 포근함이 느껴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샛강도보교를 건너갔다. 그렇다. 필자가 향한 곳은 영등포구 여의도와 신길동 사이를 흐르고 있는 샛강이었다.

 

한강시민공원이 한강을 따라 수 십 킬로에 걸쳐 이루어졌다면, 샛강생태공원은 여의도에 국한된 공원이다. 샛강공원은 한강시민공원하고는 좀 차이가 난다. 한강공원이 휴식과 레저,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대규모의 '멀티플렉스' 공간이라면 샛강공원은 소규모의 생태공간이라고 보면 적절할 것이다. '샛강'이라는 어감에서도 나타나듯이 실제로 샛강생태공원은 한강시민공원에 비하면 '깍두기'에 불과하다. 심지어 안양천 구간보다도 더 작다. KBS에서부터 63빌딩까지의 구간을 걷는데 채 1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거리를 따진다고 해도 기껏해야 4KM 남짓이다.

 

그래서일까, 샛강생태공원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한강시민 공원은 워낙 유명하니 외국인까지 몰려들지만 샛강공원은 그냥 아는 현지 주민들이나 여의도의 사무실 직원들이 많이 이용하는 듯싶었다. 그러고 보면 샛강은 해당 지역 주민들과 인근 직장인들이 함께 어울려 산책을 하는 서울에 몇 안 되는 생태공원인 것 같다.

샛강생태공원은 1997년 9월경에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트레킹 코스나 자전거도로가 닦인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앞쪽의 한강이 보기 좋게 정비가 됐다면, 뒤쪽의 샛강은 그렇지 못했다. 생태탐방로나 나무데크 같은 시설이, 또 자전거 도로 같은 인프라가 갖추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S라인을 강조하며 여의도와 신길역을 연결하는 샛강도보교가 개통된 지도 겨우 1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2011년 4월 12일에 개통했다고 한다. 역으로 말하면 샛강의 접근성은 최근에 와서야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리, 왜가리, 토끼 그리고…

 

샛강생태공원이 무슨 대단한 절경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샛강은 상당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여의도의 고층건물과 습지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여의도라는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첨단 구역에 샛강생태공원이라는 허파와도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실제로 샛강의 생태환경은 상당히 호조건이라고 한다. 청둥오리 뿐 아니라 왜가리 같은 대형 조류의 서식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누가 의도적으로 방사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토끼 한 마리도 눈에 띄었다. 그 만큼 샛강의 생태조건이 동물들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뜻일 게다.

 

샛강 곳곳에는 아직 얼음이 얼어 있었다. 하지만 추위가 한 풀 꺾인 탓인지 생태탐방을 하러 나온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도 간간이 눈에 보였다. 오리, 왜가리, 토끼와 같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고, 느긋하게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샛강은 생태탐방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춥다고 움츠리지 말고, 문 밖으로 나가 아웃도어를 행하는 것이 진짜 겨울을 이기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을 때, 그럼 전철 1호선 신길역 2번 출구에서 하차한 후 샛강도보교를 건너 샛강 생태공원을 탐방하는 걸 어떨까? 아참 9호선 샛강역 4번 출구와 1호선 대방역 4번 출구에서도 샛강생태공원으로 진입할 수 있다.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 교통 : 1호선 신길역 2번 출구, 대방역 4번 출구
              9호선 샛강역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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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운 시민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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