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로: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린 홍로

 

 

 

* 8월 초순의 홍로: 9월 초순이면 홍로는 먹음직스럽게 붉은 빛을 드러내지만 8월 초순의 홍로는 아직 여물지도 않은 그런 모습을 나타낸다.  

 

 

 

---> 2편에 이어서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나는 여러농장을 다니면서 사과작업을 했는데, 여러명의 농장주분들이 이구동성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달라는 그 말에 농부님들이 바라보는 사과에 대한 애착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봄부터 계속된 고된 작업의 결실이 가을 추수 기간에 사과라는 아기로 그들 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농장주 분들의 피와 땀이 대변된 말이 내게는 좀 부담이었다. 투박한 내가 사과를 아기처럼 다루어야 하다니!

사과 수확 작업은 단순했다. 일단 사과 나무에서 색이 제대로 든 녀석을 골라 사과가위로 잘라내고, 무작위로 프라스틱 콘테이너에 담았다. 그런 후 선별장에서 '과'라는 단위로, 크기별로 골라낸다. 통상 선별장에서는 10과에서부터 20과까지 걸러내는데, 10과가 가장 큰 녀석이고 20과 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얼핏보면, 10과 짜리 홍로는 빨간색 호박처럼 보일 정도로 상당히 컸다.

 

 

 

 

 

* 사과나무: 아래에 깔린 은박지는 반사 필름이다. 사과 하단면에도 태양빛을 받게 하기 위해 반사 필름을 까는 것이다. 태양빛을 잘 받지 못하는 부분은 홍로 특유의 붉은 빛이 감돌지 않게 된다. 위쪽은 새빨갛게 붉은 빛이 잘 영글었지만 아래쪽은 히물건한 홍로들이 가끔 발견되곤 했다.

 

 

 

* 컨테이너에 담긴 사과: 사과나무에서 떼어낸 사과를 이렇게 무작위로 담아 선별장으로 나간다.

 

 

 

 

그렇게 과별로 선별된 사과들은 박스 포장이 되어 영농조합으로 넘겨지거나 택배로 도시민들에게 직접 배송이 된다. 이렇듯 사과 수확 작업은 무척 단순한 진행 과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행 과정이 단순하다고 노동 강도도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난 거창 귀농학교에 2주 동안 머물렀는데, 16호 태풍 산바가 들이닥친 날을 제외하고는 계속 사과작업을 했고, 잘 때마다 계속 파스를 발라대야 했다. 한마디로 '파스빨'로 버틴 것이다. 나는 '파스스타일'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사과작업을 하다보니 농부님들의 피와 땀이 저절로 내게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B급으로 분류된 홍로도 난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다. B급은 점이 있거나 멍이 든 사과를 말하는데 상품성이 떨어질 뿐 맛과 품질에는 하등 문제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점있는 거 점빼서 먹고, 멍든거 멍파서 먹고. 아삭아삭, 얼마나 맛있던지!

 

내가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섬세하게 사과작업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욕은 안 먹으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내가 모난 짓을 하면, 거창귀농학교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긴장감 있게 작업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하여 2주간의 나의 거창 고제면 사과작업은 무사히 마무리 됐다. 평소에 안쓰는 근육을 썼던 터라 온 삭신이 다 쑤셨지만 작업이 마무리 될 무렵에는 나도 사과를 아기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말을 내 입에서 스스럼 없이 하게 되었다. 허리가 욱씬거리기는 했지만, 농촌 사과체험을 제대로 했던 것이다.  

   

 

 

 

* 사과농장: '사과를 애기 다루듯이 해달라'고 하셨던 농장주 분이다.

두 분 다 거창귀농학교 출신으로 대도시에서 거주하다 최근에 귀농을 하신 분들이다.

 

 

 

 

* 사과작업: 사과작업을 하는 와중에 곽작가도 한 컷 찍어봤다.

 

 

 

* 구절초: 거창 귀농학교 운동장에 피어 있어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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