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체육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서울스포츠> 7+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진은 마땅한게 없어서 그냥 한강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한강 백두대간 모래사장

금빛 모래가 펼쳐져 있던 한강의 강수욕장

필자는 한 때 한강에 미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문화센터에서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래서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과 마주치는데 그 폭이 워낙 커서 종종 ‘3대가 같이 트레킹’을 한다고 표현하곤 했었다. 수강생 중 가장 어린 막내가 9살이었고, 가장 최고참은 84세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와 만나다 보니 종종 귀중한 정보들을 공짜로 얻을 수도 있었다. 트레킹을 행하다보면 사람들이 술술 입을 여는데 녹취만 하지 않았지 마치 로드 인터뷰 같은 형태를 띠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구술 내용 중에는 텍스트 자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함 같은 것들도 있었다.

● 해수욕? 아니 강수욕

예전에 한강에서 트레킹을 진행했을 때였다. 용산쪽을 가리키면서 예전 서울 시민들은 해수욕이 아닌 강수욕(江水浴)을 즐겼다고 설명을 했었다. 젊은 수강생들은 거의 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강수욕’이 무엇이냐며 묻기부터 했다. 바다에서 하는 물놀이가 해수욕이라면 강물에서 하는 물놀이를 강수욕이라고 부른다는 해설을 마칠 즈음, 나이가 지긋한 수강생 A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강수욕 체험기를 풀어내셨다.

“그때는 여름만 되면 한강으로 물놀이하러 갔었어요. 노들강변에 모래사장이 기가 막히게 펼쳐졌거든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

그렇다. 변변한 냉방장치도 없었던 그 시절, 한강은 서울 시민들의 좋은 피서지였다. 사람들은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수영도 하고, 모래찜질도 하며 물놀이를 즐겼다.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 동해안의 어느 해수욕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한강이 물놀이 장소로 애용됐을까?

 

 

 

 

 

 

● 한강 백두대간 모래사장

해수욕이든 강수욕이든 모래사장이 있어야 입수(入水)를 할 수 있다. 거친 돌밭에서 물에 뛰어들었다가는 자칫 피투성이가 될 수도 있다. 물가에 있는 바위에서는 낚시를 하지 물놀이를 하지 않는 법이다.

하드웨어(?)로 보자면 한강은 아주 오래전부터 강수욕장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지금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예전 항공 사진을 보면 이게 한강이 맞나 싶을 정도로 드넓은 금빛 모래사장이 한강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대표적으로 용산, 뚝섬, 광나루가 그런 곳이다.

이렇게 모래사장이 발달할 수 있었던 건 서울이 한강의 하류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금강산 내금강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합수되어 한강이 된다. 남한강이 375㎞, 북한강이 317㎞이니 강물이 흘러 오는 와중에 수 많은 퇴적물들도 함께 실어 온다. 그렇게 켜켜이 퇴적물이 쌓여 어떤 곳은 습지가 되고, 어떤 곳은 모래사장이 된다. 백두대간에서 떨어져 나온 돌덩어리가 강물 속에서 깎이고 깎여 모래가 되었고, 그 모래가 서울 한강변에 쌓였으니 ‘서울 한강 백두대간 모래사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런데 당시 한강의 모습을 보면 강변 양쪽에 다 모래가 쌓이지는 않았다. 북쪽에 모래사장이 있으면 남쪽은 습지가 있는 식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한강대교의 북단인 용산구 이촌동에는 해운대 같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지만 이에 반해 남단인 노량진(鷺梁津)에는 모래사장이 발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량진은 물살이 빨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자에도 좁은 해역을 뜻하는 ‘기장량(梁)’이 쓰였다. 이 한자는 명량(鳴梁), 견내량(見內梁), 칠전량(漆川梁) 등 좁고, 물살이 빠른 곳을 지칭할 때 쓰인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의 한강이 일직선이 아닌 W형태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굽이쳐 흐르는 구간은 원심력이 작용하여 물살이 강해 퇴적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반대쪽은 구심력으로 인해 퇴적물들이 층층이 쌓이게 된다.

물놀이에 대한 글에 지형과 퇴적에 대한 이야기를 한 필자에게 핀잔을 주시려나? 하지만 꼭 이 부분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당시의 한강 강수욕을 신기하게 보는 관점이 아닌 어떻게 강수욕을 할 수 있었는지를 따져보고 싶었다. 짠맛이 나는 바다모래가 아닌 금빛의 강모래에서 모래찜질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 하며...

 

 

 

 

 

 

● 강수욕장을 기억하는 사람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울은 급격하게 확장한다. 1960년대 이미 인구가 350만 명에 이른다. 드넓게 펼쳐진 한강의 모래사장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수강생 A씨는 이렇게 회고를 했다.

“그때 전차를 타고 갔었을 거야. 어디서 왔는지 백사장에 사람들이 가득했어. 가족단위도 왔었고, 같은 또래들끼리도 왔었어요. 거기서 아이스께끼(아이스크림)도 팔고, 냉차도 팔고 그랬지. 그때 찬 거 먹고 배탈나서 아주 혼난적도 있어요.”

A씨는 지금의 이촌동, 즉 용산 노들 강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노들 모래사장은 세계 최대의 강수욕장이었다고 한다. 수강생 B씨는 뚝섬 유원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뚝섬유원지까지 궤도차를 타고 갔어요. 뚝섬이 좋은게 거기는 수영장도 있었어요. 백사장도 있었고, 아주머니들이 빨래도 했었고, 아참 거기는 나루터도 있었어요. 그때는 강남이 개발되기 전이라 다리가 없었거든. 동력선을 타면 봉은사까지도 갈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

궤도차는 전차의 일종인데 당시 동대문역에서 뚝섬을 거쳐 광나루까지 운행을 했었다. 전차역에 나루터까지 있었으니 당시 뚝섬은 교통의 요지였던 셈이다. 그러니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붐빌 수밖에. 자료를 찾아보니 뚝섬이 인기가 좋았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나무그늘 때문이었다.

다른 강수욕장들은 숲이 거의 없었지만 뚝섬 일대는 나무숲이 있어 천연의 파라솔 역할을 해주었다. 그런 자취가 남아서인지 뚝섬에는 현재 서울숲이 자리잡고 있다. 참고로 서울에서 전차는 1968년을 끝으로 운행을 종료했다.

 

 

 

 

● 생명력이 길지 않았던 강수욕장

한강의 강수욕은 생명력이 길지 않았다. 1950~1960년대까지 반짝 개장(?)을 했을 뿐이다. 앞으로 시기를 당겨보아도 기껏 일제강점기까지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조선시대에는 강수욕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한복은 수영을 하는데 적합한 복장이 아니다.

앞쪽 시기는 늘어날 수 있지만 뒤쪽은 고정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한강 개발로 인해 모래사장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강모래는 염분이 많은 바다모래보다 질이 더 좋아 훌륭한 건설자재로 쓰였다.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한강 일대는 큰 공사장처럼 변했다. 강수욕장이 있던 모래사장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시멘트로 채워진 인공 제방들이 들어섰다. ‘한강 강수욕장’이라는 말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뚝섬에서 조금만 배타고 들어가면 저자도라는 섬이 나와요. 거기도 백사장이 아주 넓었어요. 거기서도 물놀이를 재밌게 했지. 튜브랑 파라솔 빌려주는 행상도 있었고. 그런데 한강 개발한다고 모래를 퍼 올리더라고. 어느 순간 가보니 섬도 없어지고, 백사장도 없어졌어요. 그때 이후로는 한강에서 수영을 못 했지. 흙탕물이 돼서 물에 들어갈 생각을 못 했죠.”

B씨는 이렇게 아쉬워했다. 한강종합개발은 1986년에 종료됐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한강의 모습이 그때 골격을 갖추게 된다.

 

● 오리배는 페달을 굴리고, 카약과 패들보드는 노를 젓고

하지만 한강이 피서지로서의 매력을 상실한 건 아니었다. 강수욕이 사라지긴 했지만 물놀이용 보트는 계속 둥둥 떠 있었다. 노를 젓는 일반적인 보트도 있었고, 위에 가림막을 쳐서 햇빛이나 비를 막을 수 있는 보트도 있었다. 이후 보트들은 유람용 오리배로 바뀌게 된다. 1990년대 초반 오리배를 탔던 수강생 C씨는 이렇게 회고를 했다.

“한강에서 오리배 페달 좀 굴렸죠. 저희는 주로 여의도쪽에서 많이 탔는데 사실 오리배 타는게 주 목적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연애 좀 해볼까 그게 더...”

성공했을까? C씨는 그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이제 그런 오리배들은 뒷전으로 물러 나고 2010년도 이후부터는 카약, 패들보드(sup) 같은 수상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들이 한강에서 노를 저었다. 카약이 앉아서 노를 젓는다면 패들보드는 일어서서 노를 젓는 방식이다. 이전에 보트나 오리배가 유람의 목적이 강했다면 카약이나 패들보드는 레저에 운동까지 겸비한 활동이다. 그래서인지 카약이나 패들보드는 시작 전에 안전에 대한 강습을 받아야 한다. 페달부터 굴리는 오리배와는 많이 다르다.

 

 

 

● 한강의 수영장

한강의 물놀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야외수영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서울 한강변에는 뚝섬, 여의도, 광나루, 망원, 잠실, 잠원 등 6개의 수영장과 난지, 양화 2곳에 물놀이장이 있다. 강수욕장보다는 못 하지만 한강의 수영장들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탁 트인 한강을 바라보며 헤엄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실내수영장은 범접할 수 없는 ‘한강뷰’를 배경삼아 물놀이를 할 수 있다는게 정말 매력이지 않은가?

그렇게 시원함을 선사한 수영장 중 일부가 노후화되어 간다. 이에 서울시는 현대적 기술과 감각을 적용하여 새로운 개념의 물놀이 공간을 선보일 예정이다. 일명 자연형 물놀이장이다. 자연형 물놀이장은 생태적인 의미를 더한 곳으로 자연친화적인 물놀이 공간이 될 예정이다. 2024년에 기존에 잠실수영장이 먼저 자연형 물놀이장으로 변신을 하고 광나루, 잠원, 망원까지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연형 물놀이장이 어떤식으로 꾸며질지 궁금하다.

이제까지 한강의 물놀이에 대해서 정리해봤다. 일부는 수강생들의 입을 빌려 전개를 하기도 했다. 딱딱한 문헌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것보다 더 좋지 않은가?

이제 여름이다. 내친김에 수영복 입고 한강에 풍덩 해볼까? 그런데 불룩한 똥배가 앞을 가리고 있어서...

 


 

*** 글쓴이 곽동운은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현재 백화점 문화센터와 서울시50플러스에서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역사트레킹 공동체’를 꾸리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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