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필자의 제 3의 장소는 만화방이었다. 만화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만화방에서 먹는 라면이 일품이었기에 그곳을 즐겨찾기를 했었다. 삐거덕거리는 만화방 쇼파에 느긋하게 앉아 책장을 잡으려고 할 때였다. 항상 그 때였다. 콧속을 파고드는 그 진한 라면 냄새! 이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옆 테이블의 라면 냄새! 그 냄새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분명 만화방에 오기 전에 두둑하게 식사를 하고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장님 라면 하나에 공기밥 추가요!”

미국의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는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제 3장소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 집이 제 1장소라면, 직장은 제 2장소이다. 그렇다면 제 3장소는 무엇일까?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공간을 제 3의 장소라고 설명한다.

집과 직장에서 충족될 수 없는 본원적인 욕구를 제 3의 장소에서 사회적 교류를 통해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이 올든버그는 이런 교류들을 ‘비공식적 공공생활’이라고 칭했고, 그런 교류들을 위한 필수적인 공간을 제 3의 장소라고 명명했다. 대표적인 제 3의 장소는 어디일까? 아마도 도서관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The Great Good Place>에서 제시한 제 3의 장소는 지역사회의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공간으로 시민참여를 증대시키는 공공장소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제 3의 장소를 굳이 공공영역에서만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제 3의 공간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배불리 라면을 먹었던 만화방을 제 3의 장소로 언급한 것이다.

*화계사 일주문

 

● 흥선대원군과 화계사

이번편에는 화계사 역사트레킹을 소개한다. 화계사는 북한산 동쪽편에 있는 명찰이다. 경내가 크지는 않지만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주위 풍광이 수려하여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원래 화계사는 고려 광종 때 창건된 보덕암이 그 시초였다. 이후 152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며 이름을 화계사로 고쳐 불렀다. 화계사는 조선 후기에 크게 그 사세를 확장하게 됐는데 그 시점이 흥선대원군의 집권기였다. 이후 궁(宮) 절’이라고 불릴 만큼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데 지금 남아있는 대웅전, 명부전, 대방 등이 모두 19세기 후반에 중건되거나 만들어진 것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명부전의 편액을 쓰는 등 화계사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화계사 경내에는 까마귀가 돌을 쪼아서 물이 나오게 했다는 오탁천(烏啄泉)이라는 샘물이 있다. 흥선대원군은 이 샘물에서 피부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 화계사: 화계사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명부전이다.

 

● 번잡한 화계사 범종루

일주문을 지나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큰 느티나무가 보이고, 그 옆으로 주차장이 있다. 주차된 차들 위쪽으로 범종루가 있는데 이곳이 화계사 탐방의 첫 번째 포인트다. 참고로 범종이 단층으로 이루어진 곳은 범종각(梵鐘閣)이고, 2층의 누각 형식으로 된 곳은 범종루(梵鐘樓)라고 부른다.

이곳의 범종루는 다른 사찰의 범종각이나 범종루보다 좀 더 번잡하게 보인다. 무언가 오밀조밀하게 밀집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번잡함을 이해하려면 먼저 불구사물(佛具四物)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불구사물은 범종각이나 범종루에 있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네 가지를 지칭한다. 법고는 북이고, 범종은 종이라 누구나 다 그 쓰임새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운판과 목어는 무엇일까? 먼저 대판(大版)이라고도 불리는 운판을 알아보자. 운판(雲版)은 구름운(雲)자에서 보듯 구름을 형상화하여 만든 것이다. 청동이나 철제로 만든 평판인데 두드리면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난다. 목어(木魚)는 어고(魚鼓) 또는 어판(魚板)으로도 불리는데 나무로 만든 물고기의 배를 파내고 그 부분을 두들겨서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그냥 물고기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몸은 물고기지만 머리는 용의 형상을 한 용두어신 형태가 대세로 자리를 잡아갔다.

통상적으로 불구사물은 각각 하나씩 있다. 하지만 화계사 범종루에는 범종이 두 개가 있고, 목어도 두 개가 있다. 그래서 트레킹팀에게 항상 숙제를 내준다.

“자 눈을 크게 뜨고, 범종 두 개와 목어 두 개를 찾아보세요! 특히 범종은 보물이에요.”

* 화계사 목어: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느라 많이 삭았다. 얼핏보면 무슨 외계인같다. 못 먹어서 바싹 마른...

● 2층에 걸려있는 사인비구의 동종

정확히는 보물 11-5이다. 11이면 11이지 왜 11-5인가? 그 이유를 알려면 화계사 범종을 제작한 사인비구에 대해서 언급해야 한다. 주종장이었던 사인비구는 조선 후기 숙종 시대에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승려였다. 그의 실력이 뛰어나서인지 그가 제작한 동종 8개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강화 동종만 1963년에 지정됐는데 이후 2000년에 나머지 7개가 일괄로 지정되어 총 8개가 된 것이다. 그중 화계사 동종은 보물 11-5로 지정받았다. 이 동종은 원래 경상북도 풍기(지금의 영주시) 희방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고종 때 이곳 화계사로 옮겨지게 된다.

화계사 동종은 무게가 300근으로 무게도 덜 나가고 크기도 작다. 1근이 0.6kg이니 300근이면 180kg 정도가 된다. 기계적으로 비교하는데 무리가 있지만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이 19톤이니 그 크기가 크지 않다는 것을 단 번에 아실 것이다. 화계사 동종은 범종루 2층에 걸려있고 지금은 타종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후에 제작된 크기가 큰 범종이 타종을 한다. 2층에 걸려 있고, 크기도 작아서인지 사인비구의 동종을 단 번에 찾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목어도 좀처럼 단 번에 두 개를 다 확실하게 알아채시는 분들이 많지 않았다. 목어 중 하나가 삭아서 으스러질 거 같은 형태로 걸려 있기 때문이다. 으스러질 거 같은 나무덩어리가 걸려있어 그것이 목어인지 아닌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저거는 도대체 왜 저렇게 팍 삭았어요? 누가 일부러 썩은 나무라도 걸어놨어요?”

“저 목어가 천년을 버틴 목어라서 그래요. 화계사의 시초가 고려 광종 때 만든 보덕암이거든요. 그러니 저 나무토막은 천년을 버틴 거에요.”

화계사 범종루에 걸린 불구사물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를 해봤다. 아직도 할 말이 더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겠다. 나머지는 마지막에 이야기하겠다. 글 서두에 언급된 제 3공간과 관련해서 꼭 언급해야 할 게 있으니까.

* 화계사 범종: 사인비구가 만든 보물 11-5 동종은 어느 것일까? 큰 종일까? 아니다. 2층에 걸려 있는 작은종이다.

 

● 안 가보면 서운한 화계사 명부전

화계사를 빠져나오기 전에 꼭 명부전에 들러보자. 명부전은 저승세계인 유명계의 교주 지장보살께서 계신 곳이다. 지장보살은 그린톤으로 염색한 것처럼 녹색 민머리를 드러낸다. 그래서 보관을 쓴 다른 보살들과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 지장보살 옆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좌우로 협시한다.

그밖에도 사후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을 심판하는 시왕(十王)이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염라대왕도 바로 그 시왕 중에 하나다. 열 명의 왕 중에 다섯 번째 왕이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보신 분이라면 지옥을 관장하는 열 명의 왕들이 눈에 그려질 것이다.

화계사 명부전이 이목을 끄는 것은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과 시왕상이 더 주목을 받는다. 불상과 시왕상이 고려 말에 활동한 나옹화상이 조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옹화상이 누구인가? 바로 그 유명한 무학대사의 스승이다. 고려 말에, 그것도 나옹화상이 제작한 불상과 시왕상이 있으니 화계사 명부전을 빼놓고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삼성암 일주문: 현판에는 삼각산 삼성사라고 적혀 있다. 북한산이 바로 삼각산이다.

● 홀로 깨달은 나반존자

이제 화계사 경내를 빠져나와 숲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북한산둘레길 3코스인 흰구름길 구간에 속하는데 트레킹팀은 둘레길을 따라가지 않고 산 위쪽으로 올라간다.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한참 올라가다보면 갑자기 차도가 나온다. 산길을 열심히 올라왔는데 갑자기 차도가 나와 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게 다음 탐방지인 삼성암에 당도하게 된다.

북한산 칼바위능선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삼성암은 나반존자를 위해 지어진 사찰이다. 독성수(獨聖修) 또는 독성존자(獨聖尊者)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나반존자는 소승불교에서 중시되는 인물로 홀로 깨달음을 얻은 분이라고 한다. 우리 사찰에서 나반존자는 독성각에 모셔지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독립된 신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같은 대승불교인데도 우리와 중국, 일본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나반존자는 중국이나 일본 불교에서는 그 이름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불경에도 그 이름이 없고, 부처님 제자 중에도 그런 인물이 없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 불교에서만 나반존자가 등장할까? 이와 관련하여 나반존자가 단군을 모시는 우리 고유 민족신앙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단군신앙을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으로 연결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이 설에 대한 반론도 있다. 너무 늦게 신앙화 됐다는 것이다. 독성각이 본격적으로 지어진 시기는 조선 후기인데 단군신앙은 4천년이 넘고,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도 1천 7백년 정도 된다. 단군이 나반존자라면 조선 후기가 아닌 훨씬 그 이전 시기에 불교 신앙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시기상으로 너무 늦었다.

어쨌든 나반존자를 모시는 독성 신앙은 우리 불교의 고유한 면이다. 우리 불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니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삼성암은 이런 독성 기도 도량으로서 매우 중시되는 곳이다. 삼성암 말고도 경북 청도에 있는 운문사의 부속암자 사리암이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 삼성암 독성각: 다른 계절도 좋지만 가을에 가면 더 좋은 곳이다. 조용히 기도를 하기에도 좋다.

● 불교에 녹아든 우리의 고유 신앙

독성각 말고도 칠성각과 산신각은 우리 불교에만 있는 전각이다. 칠성각은 수명의 신인 칠성신을 모신 곳이고, 산신각은 여러분들도 다 아는 산신령을 모신 곳이다. 이들 전각이 독성각, 칠성각, 산신각으로 따로따로 3개의 독립 건물로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 곳이 하나로 뭉쳐지기도 한다. 그러면 삼성각(三聖閣)이 된다. 그래서 삼성각은 독성, 칠성, 산신 신앙이 함께 공존한다. 복잡하다. 그래서 트레킹팀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독성각, 칠성각, 산신각 이 3개는 우리 불교에만 있는 것이죠. 우리 민족신앙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이런 형태로 나타났어요. 그런데 그 전각을 하나로 뭉쳐놓으면 삼성각이 됩니다.”

“무슨 소리에요?”

사실 해설하는 필자도 머리가 복잡하다. 그래서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설명했다.

 

“독성각, 칠성각, 산신각 이 세 건물을 삼성각 하나로 퉁칩니다!”

나반존자와 독성신앙, 불교에 흡수된 민족신앙 등등... 풀어내야 할 것이 많아 머리가 복잡하다. 하지만 정작 삼성암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삼성암이 칼바위 능선 쪽에 있다 보니 주위 풍광을 둘러볼 수 있는데 아래쪽 화계사에서 바라보는 풍광하고는 또 다른 멋이 난다. 독성각을 탐방하는 것도 잊지 말자. 삼성암에 왔으니 당연히 독성각에 가봐야 한다.

생각해보니 화계사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는 항상 가을이었다.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바람을 타고 경내에 흩날릴 때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그런 산사의 풍광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고즈넉하게 만든다. 그런 감흥에 취하다보면 불자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할 것이다.

* 빨래골: 빨래골 계곡

● 내 마음 속에 종소리가 울린다!

숲 속의 숲이라 불릴 수 있는 북한산 생태 숲 탐방을 끝으로 화계사 역사트레킹은 종료가 된다. 생소한 불교 용어들이 많이 언급되어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자 그럼 다시 제 3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만화방은 한 때 필자의 제 3의 장소였다. 만화방에서 맡는 라면 냄새는 필자를 무아지경에 빠뜨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만화방에 가지 않는다. 굳이 만화방 라면 냄새가 아니더라도 무아지경에 빠질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종소리다. 산사의 범종소리.

서양종이 경쾌한 소리를 낸다면 동양종은 장엄한 소리가 난다. 그래서 서양종은 아침에 들으면 좋고 동양종은 석양이 지는 저녁 경에 들으면 인상적이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갈 때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를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것이다.

필자의 머릿속에 뭉쳐있던 번뇌들은 범종 소리를 타고 저 멀리로 사라져간다. 내 마음 속에 종소리가 울린다.

개인의 제 3의 공간을 굳이 물리적인 영역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 3의 공간이 후각의 영역이 될 수도 있고, 청각의 영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어떻게 쉼표를 찍느냐다. 제 3의 공간에서는 제대로 좀 기분을 전환해보자. 쉼표를 제대로 찍고 나오는 곳이 바로 제 3의 공간이니까.

 

 

 


 

■ 화계사 역사트레킹

1. 코스: 화계사 ▶ 삼성암 ▶ 빨래골 ▶ 북한산생태숲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쉬는 시간 포함)

4. IN: 경전철 우이신설선 화계역 2번 출구 / OUT: 북한산생태숲

 

 

*화계사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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