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센 눈꽃산행: 뜻하지 않게 일본에서, 겨울 산행의 백미인 눈꽃 산행을 했다.

 

 

 

 

▲ 다이센의 설국: 산 중턱 부근에 오르자 저렇게 설국(雪國)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겨울 눈꽃 산행을 제대로 해보았다.

 

 

 

 

# 겨울산행은 만만치가 않아!

 

하지만 필자도 한 가지 고민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겨울산행인데, 그에 걸맞은 장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 흔한 스틱도 안 챙겨왔고, 신발도 등산화가 아닌 그냥 트래킹화를 신고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행 진입로를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서 그렇게 미끄러울 것 같지 않았고 쿠션감도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충 지형을 파악해보니 특별히 난코스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까짓것 아웃도어맨이 어디를 못 가겠는가? 낙엽 쌓인 산길을 사뿐히 갔다가 내려오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리고 하산하면 상금이 기다리고 있는데. 푸하하!'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일정 정도 고도에 이르자 눈길이 시작됐다. 난 좀 당황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겨울 산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리! 세상의 모든 일들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예상외의 난관들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고도가 높아질수록 적설량도 많아졌다. 눈이 발목 이상으로 쌓여 있던 것이다. 덕분에 내 바지 밑단은 다 젖어있었다. 계속 나아가다보니 아예 눈 속에 발이 푹푹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날 비가 내렸는지 어떤 곳은 물웅덩이도 있었다. 눈길에 빠져, 물웅덩이에 빠져, 진흙탕에 빠져... 내 바지는 아주 거지꼴이 되어 갔다.

 

산길을 오르면 오를수록 세상은 새하얀 설국(雪國)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이 흰색으로 변해갈수록 상금에 대한 생각도 서서히 희석되어 갔다. 이미 페이스 조절은 실패했고 선두권과의 격차도 상당히 벌어진 상태였다.

 

 

 

 

 

▲ 미즈키시게로 로드: 돗도리현 미즈키시게로 거리에서 만난 일본 처자들. 이 거리는 요괴만화로 유명한 미즈키시게로 화백의 작품에 등장한 요괴들을 형상화한 거리다. 미즈키시게로 로드에는 총 134개의 요괴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이센을 등반 하기 전에 잠깐 그 곳을 방문했었다. 그나저나 저 요괴들은 무섭기보다는 우수꽝스럽다. 사람을 혼비백산 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이 사람들한테 놀라서 줄행랑을 칠 거 같다. 

 

 

 

 

 

 

▲ 외눈박이 요괴: 미즈키시게로 로드에서 만난 외눈박이 요괴. 역시 이 요괴도 무섭기보다는 좀 우수꽝스럽다

 

 

 

 

 

 

 

# 상금을 포기하니, 설국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아니 벌써 반환점 찍고 내려오시는 거예요?"

"예. 쫌만 올라가면 반환점이에요. 고생하세요."

 

1등으로 보이는 분이었다. 마치 산악마라톤을 하듯 쏜살같이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얼마 안 남 았어요. 고생하세요."

 

2등 권으로 보이는 분들이 재빨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분들도 산악 마라톤 하는 것처럼 빠른 스피드로 하산을 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시네. 저런 분들을 어떻게 이겨!'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나는 그 분들에 비하면 아주 세 발의 피였던 것이다. 선두권 분들이 대여섯 명이었으니까 이미 상금은 물 건너 간 셈이었다.  울고 싶은데 빰 때려준 격이라고, 나는 그 분들이 미운 게 아니라 아주 고마웠다. 상금에 대한 생각을 싹 다 정리를 해주셨으니까. 그렇게 상금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니 제대로 겨울 눈꽃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진짜 느긋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에 멈춰 서서 사진도 찍고, 꼬마 눈사람도 만들며 느릿느릿하게 산행을 했다. 느리게 산행을 하다 보니 더 많은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더 즐겁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상금도 좋지만 산행이 목적이라면 빠름보다는 느림이 더 알찬 산행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등반대회가 끝나고 난 후에 대충 필자 나름대로 등수를 매겨보았다. 다행히 난 중간 순위 정도에 들었다. 맨 마지막으로 출발을 했고, 겨울산행 장비도 갖추지 않은 것치고는 나름대로 선전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의 다이센 등반대회는 무사히 종료가 됐다. 참가상으로 만족을 해야 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다. 자연 앞에 겸손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격언들을 새삼스럽게 떠올려보았던 산행이었으니까.

 

 

 

 

 

 

 

 

 * 요괴들: 이 녀석들도 별로 변변치가 않은 듯~ㅋ

 

 

 

 

▲ 우리나라 도깨비: 아무리 미즈키시게로 화백의 요괴들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난 이 도깨비 녀석들이 더 좋다.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려 있는 도깨비들.

 

 

 

 

*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해발고도가 높은 고제면에는 이렇듯 탐스러운 홍로가  재배된다.

 

 

 

 

 

* 홍로: 빨갛게 잘 영근 홍로가 탐스러워 보인다. 색깔만큼이나 맛도 좋다.

 

 

 

 

 

내게 경상남도 거창은 무척 흥미로운 지역으로 각인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과 맞닿아 있어 조금만 이동을 하면 도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서울로 복귀할 때, 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무려 4개나 되는 도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였다.

 

경남 거창 -> 전북 무주 -> 경북 김천 -> (또다시) 전북 무주 -> 충북 영동 

 

실제로 서편으로는 덕유산, 동편으로는 합천 가야산, 남쪽으로는 함양 지리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이, 경남 거창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듯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거창이지만 읍내 만큼은 쑥 내려앉은 지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거창 외곽은 해발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거창의 다운타운(?)은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창에 난 베이스캠프(?)가 하나 있다. 그곳이 어디냐? 바로 고제면에 있는 거창귀농학교이다. 거창귀농학교는 1996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 하여 귀농학교로 탈바꿈을 시켰는데 현장 위주의 노작 활동이 강점인 곳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거창귀농학교는 고제면 면소재지에서도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을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만큼 실제 농업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창귀농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나에게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다.

 

 

 

* 황토방: 거창귀농학교 운동장 한 켠에 황토방이 있다. 저 곳은 왠만한 고급 폔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시설과 전망을 자랑한다.

 

 

 

여기서 잠깐! 베이스 캠프를 언급하다 갑자기 뚱딴지 같이 귀농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질책을 가하실 분도 있을 듯싶다. 결론적으로 거창귀농학교가 내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거창 귀농학교는 백두대간인 삼봉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해 있다. 거창귀농학교는 삼봉산 예술학교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분명 지역명에서 네이밍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또 거창귀농학교에서 조금만 더 가면 대덕산이 있다. 이렇게 아웃도어 접근성이 강한 곳인데 어떻게 내가 그곳을 베이스캠프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베이스캠프 선언은 개인적으로 거창귀농학교 교장선생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골인심이 좋다지만 뚱딴지 같이 불쑥 '베이스캠프 선언'을 한다면, 그 지역분들에게 볼기짝을 훅씬 두들겨 맞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런 거창귀농학교를 난 지난 9월 중순경에 방문을 했다. 왜? 사과작업을 하려고! 아웃도어는 잠시 접어두고 말야.

귀농학교의 정확한 위치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이다. 고제면은 읍내에서 북서방면으로 25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무주군의 무풍이 어떤 곳인가? 덕유산의 무주 구천동을 끼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 덕유산의 기운이 넘쳐 흐르는 백두대간에 고제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제면도 해발이 높은 곳이다.

 

그렇게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기에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해 거창 읍내는 해발고도도 낮고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터라 고제면보다는 더 기온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볼 일이 있어 잠시 읍내에 다녀온 후 다시 고제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도 변화를 피부적으로 체감했을 정도다. 그런 지형적인 특성 때문인지 고제면 지역은 고랭지 농업이 잘 발달되었다. 과수원과 밭이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고랭지 사과 재배가 유명한 곳이었는데 큰 일교차가 사과의 당도를 현격히 높여주는 듯싶었다. 그런 고제 사과 중에서도 홍로 품종이 농가 소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홍옥과는 다른 품종인 홍로는 추석 차례상에 올려지는 사과로 9월 초순경에 수확을 한다. 그렇다. 홍로는 '홍동백서'할 때 쓰이는 그 사과다. 한가위 차례상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가을걷이로 얻어진 재료들을 올려야 하기에, 추석 직전에 출하되는 홍로는 자연스럽게 차례상에 올려지는 과일 품목 1순위에 속하는 것이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삼봉산과 사과농장: 앞쪽에 보이는 산이 삼봉산이다. 사진에 등장하신 분들은

당시 거창귀농학교에서 본격적인 귀농교육을 받으시는 귀농희망자 분들이었다.

 

 

 

 

* 강물이 범람한 거창 읍내: 16호 태풍 산바는 15호 태풍 볼라벤과 달리 한반도에 폭우를 뿌리고 갔다. 

산바가 지나간 후 거창 읍내를 흐르는 위천이 수위가 높아져 범람하고 있다.

 

 

 

*수위가 높아진 거창군의 위천

 

 

 

* 홍콩 아가씨들:  '우프'를 통해 전세계에서 한국의 농촌문화를 탐방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거창귀농학교까지 찾아 왔다.  우프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가에 집적 가서 일손을 돕는 국제 조직을 말한다. 우프지원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에 농장주는 식사와 숙소를 제공한다.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임금을 받지 않는 관계로 워킹홀리데이와는 차별화가 되는 것이다. 거창귀농학교도 우프에 조직되어 있어 이렇게 홍콩아가씨들도 멀리 거창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도깨비: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린 도깨비들이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수꽝스러운 모습에 친근한 감정까지 들 정도다.

 힘든 사과작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저 녀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거창 귀농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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