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덥다 했을 때가 불과 엊그제인데, 갑자기 가을이 찾아온 듯하네요. 마치 도둑 같이 찾아온 듯합니다. 제가 있는 곳이 경남 거창의 산골짜기라서 그런지 계절 변화의 폭이 크게 느껴지네요. 아는 분은 벌써 보일러를 틀었다고도 하던데...

산골짜기에 찾아 온 가을은 색깔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붉은 빛이 곱게 든 오미자, 연두색에서 빨간색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는 사과.
 

그렇습니다. 이곳의 특산품인 오미자와 사과에는 벌써 가을의 색깔이 깊게 배이고 있습니다. 농부들의 땀과 노력이 붉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고보니 벌써 추석이 코 앞이네요.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뎠으니, 올 추석은 더욱더 풍성했으면 합니다. 모든이들의 마음에 한가위 보름달 같은 넉넉함이 스며들었으면 하네요.



 




    

 





봄이 왔지만 장작을 패는 이유


16.04.17 15:06 최종 업데이트 16.04.17 15:06

      곽동운(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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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백두대간이 올려다 보이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의 산골짜기. 계절이 계절인지라 이 곳도 봄기운이 화사하게 퍼져있지요.

그런데 왠 도끼질이냐고요? 아무리 봄기운이 올라왔다고 해도 이 곳은 아직 한기가 서려있답니다. 몇 해 전에는 5월 달에도 눈발이 날렸다고 하니 말 다 했죠.

강원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산악기후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 고제면입니다. 그냥 착한 강원도 날씨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래서 언제든 추위에 대비해야 하는게 이 동네 사람들의 숙명입니다. 장작을 패고 보일러를 손 보고... 저도 다가올 올 겨울을 위해 열심히 도끼질을 했답니다. 오랜만에 하는 도끼질이라 왼쪽 어깨가 많이 쑤시네요.

땔감이 넉넉해지니 마음도 넉넉해집니다. 불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마음에 온기가 스미는 것 같습니다.

아참 마지막 사진은 결이 잘 나는 나무와 결이 잘 나지 않은 나무를 비교한 것입니다. 보통 옹이가 있는 나무는 도끼질이 잘 되지 않습니다. 한 눈에 딱 봐도 오른쪽 나무는 도끼질 하기 어려워 보이지 않나요?





 

신을 부르짖었던 공포의 시간들

 

지리산 성삼재에서 맞은 거짓말 같았던 순간

 

15.03.20 18:01   최종 업데이트 15.03.20 18:01

 

 

 

 

 

 

 

2013년 여름, 경남 거창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느님 살려주세요!"

 


2013년 8월의 어느 날. 필자는 경남 거창군 웅양면에서 고제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당시 필자는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고갯길에서 그만 브레이크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짐을 주렁주렁 매단 고물자전거가 '빛의 속도'로 고갯길을 내달리는데 정말 아찔했다. 회전을 할 때는 반대편 중앙선을 크게 넘어갈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신을 찾으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겠는가? 한편으로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타박상 정도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간 참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문득 도로 끝단에 피어나 있던 잡초들이 눈에 들어 왔다.

 


'저 잡초들 위로 바퀴를 굴리면 속도가 죽을 수도 있겠지. 흙들도 깔려 있으니 그냥 아스팔트보다는 노면이 거칠 거야'

 


신께서 가호를 베풀었던 것일까? 그렇게 잡초 더미와 거친 노면을 질주하다보니 예상대로 속도가 확 감속되었다. 또 다행이었던 것은 양편 모두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찔한 순간을 운 좋게 넘긴 셈이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그렇게 무모한 행위를 했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자전거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급경사를 내려왔단 말인가?

 

 

 



 
▲ 지리산 정렴치에서 촬영했다. 주렁주렁 짐을 많이 실었는데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 자전거가 중심을 못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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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진입하니 태풍이


2011년 8월. 그때도 필자는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었다. 일명 제2차 국토종단여행. 그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었다. 당시를 기록한 여행수첩에는 거의 매일 비가 왔다고 적혀있었다.

비만 맞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태풍(무위파)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리산 성삼재에서 맞았다. 분명 전북 남원에서 지리산 관통도로로 진입했을 때는 해가 쨍쨍했었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상이 나빠졌던 것이다. 비는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태풍이 지리산을 빗겨가거나 소멸된다는 예보를 믿고 지리산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낭패를 당했던 것이다.

이미 너무 높이 올라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애초 계획했던 대로 성삼재를 찍고 전남 구례로 내려가기로 했다. 필자의 애 타는 마음도 몰라주고 더 거센 빗줄기와 더 강력한 바람이 성삼재 일대를 강타했다. 침낭은 물론  모든 옷가지는 싹 다 젖었고, 휴대하던 전자기기들도 모두 침수 피해를 입어 작동에 큰 이상이 생겼다. 몸 상태도 문제였다. 계속 거센 비바람에 노출되다 보니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빨리 쉴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구례 방면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시작한 여행이라 그랬는지 지리산 성삼재에 이르렀을 때는 자전거도 거의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싸구려 고물자전거가 한계치에 다다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계속된 비로 인해 관통도로의 노면은 무척 미끄러웠다. 그 길을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리산 관통도로는 한계령 관통도로보다 훨씬 더 험하다.

 






 
▲ 만해 한용운 충남 홍성에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관 앞에서 한 컷. 2011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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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갈 수도 저쪽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태풍이 물러갈 때까지 성삼재에 머물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싶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이 그냥 다 거짓말 같았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내려가기로. 그런데 그때 어떻게 내려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하강을 했으니 그냥 공포스러웠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나마 성삼재로 올라오는 차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차들이 반대편에서 많이 올라왔다면 필자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2013년에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그 당시에는 부처님의 자비(?)를 입었었다. 공포에 떨며 겨우겨우 도로 하단인 천은사에 도착했는데 그곳 인근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주차장 앞쪽에 빈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곳이 필자에게 쉴 곳이 되어 준 것이다. 덕분에 몸을 좀 추스를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도 비바람이 거셌는데 맑은 날은 본 건 3일 후였다.

지리산에서 태풍을 맞으며 하강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렇게 거창에서 무모하게 페달을 굴렸던 것이다. 앞선 경험이 독이 될 뻔한 경우였다.

필자의 거짓말 같았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도보여행이든 자전거여행이든 안전이 최우선이다. 목숨 걸고 여행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필자와 같이 거짓말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안전제일!


 


 

 

 

차례상 사과의 붉은 빛깔, 이렇게 만들어진다 2편

일조량 높이기 위해 잎따기 작업도... 온 몸에 파스를 붙이며 한 사과 출하

 

14.09.08 16:37
최종 업데이트 14.09.08 16:37

 

 

 

 

---> 전편에 이어서

 

 

 

# 잎사귀 따다가 사과를 날려 먹기도...

색깔이 안 난 건 일조량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8월의 뜨거운 햇살이 스며들어야 백설공주가 먹었던, 그 빨간 사과처럼 홍로가 붉은 색을 띤다. 하지만 올해 8월은 일조량이 적었고, 그만큼 사과에 붉은 기운이 들지 않았다. 이런 '색깔의 문제' 때문에 농장주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떤 농장주는 하늘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색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장주들은 갖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색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강한 햇살이 최고다. 하지만 그건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잎따기'를 해준다. 사과 주변에 달려있는 잎사귀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성하게 감싸고 있는 잎사귀들을 제거함으로써 사과에 직접 도달하는 햇볕의 양을 높여주는 것이다.

 

 

 

▲ 홍로 색이 잘 든 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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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따기는 매해 수확에 앞서 꼭 진행되는 작업이다. 하지만 올해는 잎따기가 더 강화됐다고 한다. 색깔이 안 났던 만큼 잎사귀 제거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그런 잎사귀 제거가 필자의 첫 번째 사과작업이었다.

햇살을 더 잘 받도록 하기 위하여 열심히 잎사귀들을 제거했다. 그러다 애꿎은 가지도 몇 개 '제거'했다. 또한 알이 굵은 멀쩡한 사과들도 날려먹었다. 농장주의 시선이 싸늘했다. 

 

 

# 사과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색깔이 안 났다고 사과 따기를 계속 미룰 수는 없는 법! 농장주들은 8월 마지막 주를 기점으로 사과수확에 나섰다. 이제 고제면은 면 전체가 사과 수확에 매달리게 됐던 것이다. 필자는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고 사과밭으로 향했다.

"열심히 일해서 사람들한테 누를 끼치지 않겠어. 내 명예를 지키겠어!"

하지만 저렇게 아침마다 한 다짐은 밤이 되면 달라졌다. 허리와 팔에 붙인 파스를 갈며 조용히 혼자말을 했다.

'내일 비가 왕창 와서 작업이나 취소됐으면...'

그만큼 사과 작업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매일밤 숙소에 돌아와 허리와 팔다리를 주물러야 했을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사과수확 작업에서 가장 고역이었던 건 컨테이너 박스를 옮기는 일이었다. 일단 사과나무에서 딴 사과는 일괄적으로 컨테이너 박스에 담기게 된다. 그렇게 쌓인 컨테이너를 화물차에 적재시키고 선별장으로 향했다. 선별장에서는 선별을 위해 컨테이너를 잘 쌓아 놓았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계속 컨테이너를 상차, 하차하는 것이 내 임무였던 것이다.



 

 

 

▲ 컨테이너 저 노란색 박스를 컨테이너라고 부른다. 저 컨테이너를 '들었다 놨다'했다. 아주 삭신이 다 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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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다 놨다'를 계속하다 보니 사람이 무척 단순해졌다. 컨테이너 중에는 사과가 덜 담긴 것들도 있었고, 많이 담긴 것들도 있었다. 적게 담긴 것에는 콧노래를 불렀고, 가득 담긴 것에는 속으로 욕을 해댔다. 컨테이너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콧노래와 욕을 번갈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들었다 놨다'를 무한반복한 날은 밥숟가락도 잘 잡히지 않았다. 음식을 뜨다가 실제로 숟가락을 놓친 적도 있었다. 또한 펜을 잡기 힘든 날도 있었다. 작업일지를 작성하려다 손가락이 시큰거려 그만 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직접 작업한 사과라 그건가? 더 맛있네!

그래도 버텼다. 매일밤 온 몸을 파스로 도배하며 버텼다. 사과 농장주들은 매년 이렇게 고되게 작업을 해왔는데... 겨우 이거 가지고...

그렇게 그렇게 버티다 보니 마침내 필자가 잡아두었던 서울 상경일이 다가왔다. 잘 버텼던 셈이다. 어떤 농장주는 필자에게 일당 이외에 사과 한 박스를 선물로 보내주셨다. 또 어떤 농장주는 다음해에도 꼭 같이 자기와 사과작업을 하자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이런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필자가 일을 못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들었다 놨다'의 역경을 뚫고 애초 다짐했던 명예를 사수했던 것이다.

추석 과일의 대명사 사과. 그 사과가 식탁, 혹은 차례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사과작업은 그 땀과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필자의 집 한 편에는 '들었다 놨다'하며 작업했던 사과들이 놓여 있다. 식사를 한 후 후식으로 베어 먹는 사과 맛이 좋다. 아삭아삭... 소리까지 맛있다. 내가 작업한 사과라서 더 맛있는 건가?

 


 

 
▲ 사과작업 사과작업을 하는 분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멀리 삼봉산 자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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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차례상 사과의 붉은 빛깔, 이렇게 만들어진다 1편

 

일조량 높이기 위해 잎따기 작업도... 온 몸에 파스를 붙이며 한 사과 출하

 

14.09.08 16:37
최종 업데이트 14.09.08 16:37

 

 

 

 

 

 

 
 
▲ 수승대 트레킹 표지판 사과 캐릭터를 이용한 트레킹 표지판. 유명한 거창의 수승대 트레킹 코스를 알리는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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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 좀 발랐다. 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허리와 팔목이 욱신거린다. 손끝도 시려서 키보드가 부자연스럽게 터치된다. 이게 다 10여 일간의 사과작업 때문에 얻은(?) 증상이다.

지난 8월 21일. 필자는 전라북도 무주를 통해 경남 거창군 고제면으로 진입했다. 일명 '무진장'의 하나로 불리는 무주군은 백두대간인 덕유산과 삼봉산 등을 두고 거창군과 남북으로 맞닿아 있다. 그래서 무주 읍내에서 출발하는 무진장 시골버스를 타면 거창군 접경지역에 닿을 수 있다.

 

 

# 사과로 유명한 무주군 무풍면과 거창군 고제면


이렇게 두 지역이 인접해 있으니 특산품도 유사하다. 삼봉산 북쪽에 있는 무주군 무풍면과 남쪽에 있는 거창군 고제면 둘 다 사과가 특산품이다. 무주 무풍 사과의 명성을 잘 아실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거창군 고제 사과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일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고제면'이라는 지명도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행여나 이런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거창하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한국전쟁 때 일어난 거창 신원 민간인 학살은 알겠는데... 그나저나 거창이 사과 산지였어?"

 

 

 
▲ 사과 가로등 거창군 고제면에 위치한 사과테마파크의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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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거창은 사과 산지다. 그 거창 사과의 중심에 고제면이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고제면에는 삼봉산이 자리잡고 있다. 해발 1254미터인 삼봉산은 거창의 주산으로 그 일대는 큰 일교차를 이용한 고랭지 농업이 발달해 있다. 그렇게 큰 일교차는 사과의 당도를 현격히 높여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준다.


그렇게 삼봉산 아래 자락에 위치한 거창군 고제면을 방문했던 건 사과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한참 손이 부족할 시기이기에 기꺼이 가서 손발 노릇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품삯은 받았다. 대신 일당 이상의 값어치를 해준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올해로 벌써 사과따기 3년 차! 농장주들한테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겠어!'

 

 

# 무척 중요한 사과의 색깔


필자는 앞서 무주군 무풍면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거창군 고제면으로 진입했다고 언급했다. 차창 밖으로나마 무풍면의 사과농장들을 관찰할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관찰을 하다보니 좀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사과에 '색깔'이 안 났던 것이다. 색

깔? 무슨 색깔?

 

 

무풍면과 마찬가지로 고제면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홍로라는 품종이다. 홍옥과는 다른 품종인 홍로는 차례상에 오르는 사과로 추석을 앞두고 수확을 한다. '홍동백서'할 때 '홍'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홍로인 것이다. 한가위 차례상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가을걷이로 얻어진 재료들을 올려야 하기에, 추석 직전에 출하되는 홍로는 자연스럽게 차례상에 오르는 과일 품목 1순위에 속한다.

 
▲ 홍로 홍로는 새빨간 사과다. 한 여름 일조량을 풍부하게 받아야 빨게진다. 사진에 등장한 사과는 색이 아직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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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차례상에 올려지는 과일이기에 홍로는 출하시기가 명확하다. 이를 다르게 이야기하면 모든 생산 역량을 추석이라는 한계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추석을 넘겨 생산이 된다면 그만큼 시장에서의 가치는 감소될 수 있다. 사람들이 택배로 받아볼 수 있게 최소한 추석 연휴 이틀 전에는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홍로는 시간에 쫓기며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품종이다.

 

 

 

 

 


 

사설.칼럼

렌즈세상

[렌즈세상] 죽방울놀이

등록 : 2013.08.26 18:12수정 : 2013.08.26 18:12

 

 

 

 

 

 

 

 

 

 

 

 

 

 

 

 

 

 

 

 

 

 

 

 

 

 

 

우리문화연구소 이원하 소장이 아이들 앞에서 죽방울놀이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소장은 충남 공주에서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에 대한 연구와 보존에 힘쓰고 있는데요. 죽방울놀이는 보부상단의 볼거리 문화에서

 

전해 내려왔다고 합니다.

 

8월2일 ‘거창아시아1인극제’에서 찍었습니다.

 

곽동운/ 여행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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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7일자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란에 필자가 찍은 사진이 게재됐다. 죽방울놀이라고,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놀이에 대한 사진이 게재된 것이다. 이 사진에 등장한 이원하 소장은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에 대한 애정이 강한 분이다. 이 소장과 잠깐 인터뷰를 했을때 필자는 그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우리나라 전통놀이 문화를 통해 제 삶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제 얼굴이 많이 험상 궂잖아요. 그런데 우리 놀이문화를 알고, 접하고, 연구하다보니 어느새 제 얼굴이 부드러워졌다고 하더군요~"

 

이 소장의 얼굴에서 부드러움이 묻어 나오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전통놀이 문화에 대한 이 소장의 신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제가 충남 공주의 한 아파트에서 사는데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도 흙이 없어요. 아이들이 다친다고 놀이터에 우레탄을 깔아 놓은 겁니다. 공주시에 사는 아이들이 이 정도인데 다른 대도시의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도대체 유년기에 흙이나 땅을 만지고 놀 기회가 없는 거에요.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면서 얻는 정서적인 느낌들이 애초부터 박탈 당하는 것이죠.'

 

그렇다. 이 소장의 말처럼 흙 장난을 하면서 얻는 정서적인 감흥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 유년시절의 경험과 느낌들은 소리소문 없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크게 각인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경험과 느낌들은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것들이다. 황혼에 잠긴 어르신들이 50~60년도 더 지난 자신의 유년기 시절을 미소를 띄우며, 바로 엊그제 이야기처럼 떠올리는 것을 보면 그 유년시절의 기억들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귀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학원에 쫓겨, 스마트폰에 쫓겨 어른들보다 더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흙을 되돌려주자. 흙에서 놀다 무릎팍이 좀 까진다고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상처나면 소독연고 좀 발라주면 되지 뭐. 자신의 아이가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고 자라기를 원하시나? 왠만한 부모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실 것이다. 그럼 아이들에게 숨 쉴 공간을, 또한 정서의 공간을 내주시라. 그냥 흙에서 재밌게 놀 수 있게 짬을 주시라~!    

 

 

 

 

 

 

 

 

 

 

 

 

 

 

 

* 거창귀농학교: 거창귀농학교를 배경으로 한 컷

 

 

 

 


 

* 앤젤리: 홍콩에서 온 앤젤리. 귀농학교 황토방을 혼자 차지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안녕하세요?emoticon

저는 자칭 거창귀농학교의 미디어 담당인 곽작가라고 합니다.

가을비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9월 14일 오전에,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있어 이렇게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봅니다.

우프코리아라를 통해 홍콩에서 온 젊은 처자가 거창귀농학교에
약 4일간 머무르고 갔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보려고 합니다.

아참 우프가 무엇이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우프(WWOOF: Willing Workers on Organic Farms) 는 세계 각국의
유기농 농가들이 가입되어 있는 전세계적인 모임입니다.

한국 유기농 농가나 서구의 유기농 농가나 일손이 딸리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사람의 손발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그런 부분을 우프가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프 지원자들은 4~6시간 정도의 노동력을 투여하고, 그에 대한 댓가로
농가들은 지원자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노동의 댓가로 임금을 받는 워킹홀리데이하고는 다른게 우프는 원칙적으로
임금을 받지 못한답니다.  뭐 일을 잘한다면 농장주가 차비 같은 거마금 정도는 주지 않을까요???ㅋ

지금까지 많은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거창귀농학교를 다녀갔답니다.
우프를 통해서요. 가까운 아시아 뿐아니라 미국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고,
심지어 동유럽인 불가리아에서 온 친구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들은 우프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하더군요.
지금 소개하는 앤젤리도 한국의 문화와 농촌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에 왔고, 이곳 거창 귀농학교까지 찾아 왔다고 하더군요.



* 앤젤리: 귀농학교에 와서 앤젤리는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하고 갔답니다. 효소 담기 작업, 풀베기 작업 등을 잘 해주더군요.



* 사과작업: 앤젤리가 귀농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한참 홍로 사과 수확 작업으로 바쁠 때였습니다.
한편 앤젤리는 고제 사과가 맛있다고 '아삭아삭' 거리며 맛있게 잘 먹더군요



 


더불어 거창귀농학교와 관련된 소식이 하나 더 있어 이 자리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추석을 코 앞에 앞 둔 9월 14일 오전 9시,
거창귀농학교에서는 경사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둠반 14기 수료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곳 거창군 고제면은
홍로 사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홍로는 붉은 빛깔이
일품인 품종으로 추석 차례상에 올려 지는 좋은 사과입니다.

그 홍로를 추석을 앞두고 수확하는 터라 9월 초순이 되면
고제면은 전체가 정신이 없을 정도가 됩니다.
오죽하면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렇게 바쁠 시기에 모집된 기수라서 그런지
14기분들은 매일같이 사과농장에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사과를 따고, 선별을 하고, 포장을 하고...

이번 기수들은 이론적인 면보다는 과수 농가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수료를 한 셈입니다. 한마디로 현장 교육을 제대로 수행한 셈입니다.

이번 모둠반 14기는 총6명이 입교하여 아무러 사고 없이 6명 전부가
수료를 했답니다. 이제는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구체적인 귀농에 대한
설계도를 그리실 겁니다. 그 설계도가 잘 그려져서 성공적인 귀농, 귀촌을
이루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 마임: 조명과 함께 모닥불이 소품으로 쓰였다. 마임의 소품으로 모닥불이 이용되는 건 처음 보았다.

그만큼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품격 높은 공연을 많이 선보인다.

 

 

 

 

 

 

# '다시 서야 할 아시아1인극제'

그렇다. 돈이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여름에 수박을 쪼개먹던 큰 평상 4개를 붙여서 무대를 만들 정도였을까. 또한 손·발이 턱없이 부족하여 필자와 같은 고급인력(?)이 화장실 청소를 하며 자원활동을 해야 했다. 필자는 계획했던 '여름 정기투어'를 잠시 접어두기까지 했다. 그러다 뒷마무리까지 마친 후, 8월 6일에서야 서울로 귀가할 수 있었다.

사실 2013년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칫 했으면 아시아1인극제의 명맥이 끊길 뻔했다. 그런 상황을 반영하듯 이번 대회의 부제는 '다시 서야할 아시아1인극제'였다. 그렇지만 십시일반이라고 공연자들이 무료공연을 펼치고, 뜻있는 분들이 격려금을 전달해 주셔서 어려운 상황에서나마 대회를 잘 마칠 수가 있었다.

지역의 문화행사가 돈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큰 문제일 것이다. 지원금의 유·무에 의해서 대회 개최의 유·무가 결정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문화 행사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과 관심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 무대: 돈이 없어서 큰 평상 4개를 붙여서 무대를 만들었다. 큰 느티나무가 뒷배경으로 쓰인터라 환상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야간 조명이 무대 뒤 나무들을 비추었을 때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환상적인 무대 덕택인지 모르겠지만 올해<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그런 의미에서, 입장료는커녕 오히려 동네 분들에게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대접하는 <거창아시아1인극제>에 대한 안정적인 예산 집행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면소재지에 짜장면집 하나 없는 '깡촌'에서 마을 주민들이 언제 그런 수준 높은 문화예술 활동을 접할 수 있겠는가! 소외지역 문화행사 지원 차원에서라도 적절한 지원금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왕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언급하고 가겠다.
2012년 <거창아시아1인극제>에서는 부대행사로 거창·함양지역의 다문화 가정들의 1박 2일 캠프가 개최됐었다. 참가자들은 국적도 다양하고, 피부색도 조금 다르긴 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그저 축제를 재밌게 즐기면 그만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지 꼬맹이들의 장난 때문에 거창귀농학교의 운동장은 떠들썩했다. 그들의 엄마인 이주여성들도 조금은 느긋한 모습이었다. 공연을 즐기며 하룻밤 야영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던지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 거창아시아1인극제

 

 

 

 

당시에는 아시아 각국에서 온 공연자들이 자국의 전통무를 공연했었다. 필리핀에서 온 공연자들이 필리핀 이주 여성들 앞에서 공연을 펼쳤고, 인도네시아 온 공연자들이 인도네시아 이주 여성들 앞에서 춤사위를 펼쳤다. 이주 여성들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낯선 곳에서 자국의 전통무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감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공연중에 눈물을 훔치던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괜히 쓸데없는 토목 공사 하느라 세금 낭비하지 말고 이런 문화축제에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거창귀농학교

 

 

 

 

 

 

 

 

# <고제 사과길>

앞서도 언급했듯이 거창군 고제면은 홍로 사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8월 말 경에 가보면 '새빨간' 사과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멀리서보면 마치 녹색의 그라운드에 빨간색 점들이 뿌려진 것처럼 보인다. 녹색과 빨간색이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 시각적으로 장관을 이루는 것이다.

필자가 누군가? 역사트레킹 마스터 아닌가! 자원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트레킹 코스를 하나 개척해보았다. 약 6km 정도 되는 짧은 코스인데 사과와 관련된 도보여행길이다. 이름하여 <고제 사과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탐스러운 사과와 함께 백두대간 삼봉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감상할 수 있다.

이제 추석이 한 달 남짓 남았다. 그럼 사과 수확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음에 사과 작업하러 거창귀농학교에 갈 때는 '뺑끼'를 쓰지 않고 일을 좀 열심히 할 생각이다. 특히 화장실 청소에 역점을 둘 것이다. 그럼 이모님에게 이런 소리를 듣지 않을까?

'곽 작가. 조단조단 일 잘 하네. 이 막걸리 한 잔 묵고 하그래!'

 

 

 

 

 

 

 

 

* 거창군 고제면: 고제면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의 모습을 보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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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제 사과길>: 거창아시아1인극제 자원활동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고제 사과길>이라는 트레킹 코스를 하나 개척해 보았다.

 

 

 

 

 

* 홍로: 거창군 고제면은 홍로하는 사과 품종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사과들이 푸른 빛을 띠지만 8월 말 정도 되면 아주 '새빨간' 사과가 된다.

뒤쪽에 보이는 산은 삼봉산이다.  

 

 

 

 

 

 

 

"곽 작가, 그딴 식으로 할라믄 다시는 여그 오지마라. 그라케 일하믄 여러사람 욕본데이..."

날카로운 이모님의 음성이 내 머릿속을 한바퀴 휘돌아 나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지?

'아, 맞다. 1층 화장실 청소 때문에 그러시는구나!'

솔로 변기를 구석구석 세척해야 했지만 필자는 귀찮다는 이유로 물만 들입다 뿌려댔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화장실 청소가 말끔히 되지 않았고, 그 일이 이모님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뺑끼' 좀 썼다가 제대로 혼쭐이 났던 셈이다.

 

 

 

 

 

 

 

 

 

* 사과: 8월 말이 되면 이렇게 사과는 새빨갛게 된다. 이 사진은 작년 9월 달에 촬영했다.

 

 

 

 

 

 

# 거창귀농학교

필자가 혼쭐이 났던 곳은 거창귀농학교였다. 거창귀농학교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에 있는 곳인데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설립되었다. 고제면은 거창 읍내에서 북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져있는데 백두대간인 삼봉산과 덕유산이 자리잡고 있어 말그대로 '깡촌'인 곳이다. 이곳의 농업형태도 논농사보다는 고랭지 작물 위주로 경작된다.

특히 이곳은 홍로라고 불리는 사과 산지로 유명한데 이 홍로라는 품종은 잘 영글면 <백설공주>에 나오는 그 '새빨간' 사과처럼 아주 먹음직스럽고, 빛깔도 무척 고운 품종이다. 이런 환경적 특성 때문에 거창귀농학교는 사과나 오미자 같은 특산 작물에 대한 현장실습 교육을 많이 실시한다고 한다.

거창귀농학교? 귀농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욕을 먹었다? 그렇다면 필자에게 귀농을 준비하냐고 물으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사과 농사나 지으면서 말이다... 아니다. 필자는 귀농할 의사가 없다. 나이가 들면 백두대간 아래에 터를 잡고 누렁이들을 기르며 살고 싶기는 하지만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 농사는 아무나 짓나? 필자처럼 게으른 사람은 남의 집 소작도 못 부칠지 모른다.

 

 

 

 

 

 

 

* 죽방울놀이: 우리놀이문화연구회 이원하 소장이 아이들 앞에서 죽방울놀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 자전거여행하다 자원 활동했다!

필자는 2012년 여름에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행했다. 강원도를 거쳐 경상북도를 종단한 후 경남 거창에 진입했는데 문득 한대수 선생이 떠올랐다. '물 좀 주소'를 부른 가수 한대수 말고 거창 민예총을 이끈 연극인 한대수 선생이 떠올랐던 것이다. 거창 한대수 선생은 민속무(民俗舞)로 유명한 분인데 그중에서도 살풀이와 관련된 춤사위가 일품인 연극인이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7년 만에 다시 뵈었는데 한대수 선생은 변한게 거의 없으셨다. 오히려 7년 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보이셨다.

"백두대간 여행한다고? 그라지말고 아시아1인극제나 와서 도와라."

그렇게 하여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잠시 멈추고 <거창아시아1인극제>와 인연을 맺게 됐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으로 자전거여행을 하다가 연극제 자원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 삼봉산이면 백두대간인데 그곳에서 숨 좀 돌려보지 뭐!'

 

 

 

* 죽방울놀이

 

 

 

 


# <거창아시아1인극제>

거창아시아1인극제? 혹시 수승대라는 명승지에서 개최되는 <거창국제연극제>의 다른 이름인가? 아니다.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거창국제연극제>와 별개의 행사다. 둘은 단지 '거창'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합치되는 면이 없다. 더구나 수승대는 위천면에 소재해 있고, 아시아1인극제가 열렸던 거창귀농학교는 고제면에 소재해 있다. 서로 지역적으로도 거리가 있는 셈이다.

<아시아1인극제>는 민속극의 대가인 심우성 선생의 주관으로 1988년 서울에서 1회 대회가 개최됐다. 1회 대회 이후부터는 아시아 각국을 돌며 공연이 계속되었다. 남사당패처럼 유랑을 하며 공연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1996년, 충남 공주에 안착하게 된다. 공주민속박물관이 들어섰는데 거기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래서 명칭에 '공주'가 들어가 <공주아시아1인극제>가 된다. 하지만 아시아1인극제의 '유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7년에 거창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거창귀농학교의 다른 이름은 삼봉산문화예술학교인데 그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시아1인극제는 거창에서 개최됐다. 그래서 명칭도 <거창아시아1인극제>로 변경되었다.

 

 

 

 

 

 

 

* 2013년 <거창아시아1인극제>: 한 여름밤,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공연은 신명이 넘쳤다.

 

 

 

 

 

1인극의 영어 명칭은 monodrama다. 즉, 무대에 오른 한 명의 배우가 무대 밖의 객관적 실체들을 내적 자아에 투영시켜 각양각색의 극중 인물상들을 풀어내듯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배우 1인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는 말인데 연극 <버지니아모놀로그>가 좋은 예이다.

하지만 아시아1인극제에서는 서구 연극계의 'monodrama'의 정의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 왔다. 유언극과 함께 무언극도 공연됐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모노드라마가 공연되는가 하면, 민간신앙에서나 볼 수 있는 무속무도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판소리의 거장 박동진 명창의 <진국명산>이 울려 퍼졌고, 공옥진 여사의 <심청전>이 무대에서 조용히 날갯짓을 펼쳤었다. 그 외에도 내로라하는 아시아 각국의 수많은 공연자들이 아시아1인극제의 무대를 수놓았다.

하지만 그건 옛날 말이 되어버렸다. 올해 8월 2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2013년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아시아'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국내파'들로만 꾸려졌다. 더욱이 초청된 국내파들은 공연료도 받지 않고 재능기부를 해주었다.

 

 

 

 

 

 

 

 

 

 

 

 

*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해발고도가 높은 고제면에는 이렇듯 탐스러운 홍로가  재배된다.

 

 

 

 

 

* 홍로: 빨갛게 잘 영근 홍로가 탐스러워 보인다. 색깔만큼이나 맛도 좋다.

 

 

 

 

 

내게 경상남도 거창은 무척 흥미로운 지역으로 각인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과 맞닿아 있어 조금만 이동을 하면 도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서울로 복귀할 때, 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무려 4개나 되는 도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였다.

 

경남 거창 -> 전북 무주 -> 경북 김천 -> (또다시) 전북 무주 -> 충북 영동 

 

실제로 서편으로는 덕유산, 동편으로는 합천 가야산, 남쪽으로는 함양 지리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이, 경남 거창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듯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거창이지만 읍내 만큼은 쑥 내려앉은 지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거창 외곽은 해발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거창의 다운타운(?)은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창에 난 베이스캠프(?)가 하나 있다. 그곳이 어디냐? 바로 고제면에 있는 거창귀농학교이다. 거창귀농학교는 1996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 하여 귀농학교로 탈바꿈을 시켰는데 현장 위주의 노작 활동이 강점인 곳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거창귀농학교는 고제면 면소재지에서도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을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만큼 실제 농업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창귀농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나에게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다.

 

 

 

* 황토방: 거창귀농학교 운동장 한 켠에 황토방이 있다. 저 곳은 왠만한 고급 폔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시설과 전망을 자랑한다.

 

 

 

여기서 잠깐! 베이스 캠프를 언급하다 갑자기 뚱딴지 같이 귀농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질책을 가하실 분도 있을 듯싶다. 결론적으로 거창귀농학교가 내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거창 귀농학교는 백두대간인 삼봉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해 있다. 거창귀농학교는 삼봉산 예술학교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분명 지역명에서 네이밍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또 거창귀농학교에서 조금만 더 가면 대덕산이 있다. 이렇게 아웃도어 접근성이 강한 곳인데 어떻게 내가 그곳을 베이스캠프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베이스캠프 선언은 개인적으로 거창귀농학교 교장선생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골인심이 좋다지만 뚱딴지 같이 불쑥 '베이스캠프 선언'을 한다면, 그 지역분들에게 볼기짝을 훅씬 두들겨 맞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런 거창귀농학교를 난 지난 9월 중순경에 방문을 했다. 왜? 사과작업을 하려고! 아웃도어는 잠시 접어두고 말야.

귀농학교의 정확한 위치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이다. 고제면은 읍내에서 북서방면으로 25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무주군의 무풍이 어떤 곳인가? 덕유산의 무주 구천동을 끼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 덕유산의 기운이 넘쳐 흐르는 백두대간에 고제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제면도 해발이 높은 곳이다.

 

그렇게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기에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해 거창 읍내는 해발고도도 낮고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터라 고제면보다는 더 기온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볼 일이 있어 잠시 읍내에 다녀온 후 다시 고제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도 변화를 피부적으로 체감했을 정도다. 그런 지형적인 특성 때문인지 고제면 지역은 고랭지 농업이 잘 발달되었다. 과수원과 밭이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고랭지 사과 재배가 유명한 곳이었는데 큰 일교차가 사과의 당도를 현격히 높여주는 듯싶었다. 그런 고제 사과 중에서도 홍로 품종이 농가 소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홍옥과는 다른 품종인 홍로는 추석 차례상에 올려지는 사과로 9월 초순경에 수확을 한다. 그렇다. 홍로는 '홍동백서'할 때 쓰이는 그 사과다. 한가위 차례상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가을걷이로 얻어진 재료들을 올려야 하기에, 추석 직전에 출하되는 홍로는 자연스럽게 차례상에 올려지는 과일 품목 1순위에 속하는 것이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삼봉산과 사과농장: 앞쪽에 보이는 산이 삼봉산이다. 사진에 등장하신 분들은

당시 거창귀농학교에서 본격적인 귀농교육을 받으시는 귀농희망자 분들이었다.

 

 

 

 

* 강물이 범람한 거창 읍내: 16호 태풍 산바는 15호 태풍 볼라벤과 달리 한반도에 폭우를 뿌리고 갔다. 

산바가 지나간 후 거창 읍내를 흐르는 위천이 수위가 높아져 범람하고 있다.

 

 

 

*수위가 높아진 거창군의 위천

 

 

 

* 홍콩 아가씨들:  '우프'를 통해 전세계에서 한국의 농촌문화를 탐방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거창귀농학교까지 찾아 왔다.  우프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가에 집적 가서 일손을 돕는 국제 조직을 말한다. 우프지원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에 농장주는 식사와 숙소를 제공한다.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임금을 받지 않는 관계로 워킹홀리데이와는 차별화가 되는 것이다. 거창귀농학교도 우프에 조직되어 있어 이렇게 홍콩아가씨들도 멀리 거창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도깨비: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린 도깨비들이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수꽝스러운 모습에 친근한 감정까지 들 정도다.

 힘든 사과작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저 녀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거창 귀농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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