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천 암수바위: 다랭이논 탐방로 중간에 있었다. 남근석은 그 형상이 독특하여, 여성 탐방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 가천 다랭이논: 명승 지정 이후, 다랭이논 주변으로 산책로와 휴게시설이 정비 되었다.

 

 

 

 

# 피와 땀, 그리고 똥으로 일군 가천 다랭이논

다랭이논과 같은 계단식 경작지는 널찍한 평야가 없는 지역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고산지대나 도서지역에 주로 분포되고 있다. 산의 비탈면을 깎고, 돌 축대를 쌓아 한 뼘이라도 더 농작물을 심을 수 있게 옛 농부들이 피땀을 흘렸던 것이다. 세찬 바닷바람을 견디며 돌이 박힌 척박한 땅을 고르고, 또 골랐던 것이다.

특히 염분이 많이 함유된 도서 지역의 토양 성분 때문에 일부러 육지에서 똥을 퍼 나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육지의 똥을 실은 '똥배'까지 운항을 했을 정도로 가천 다랭이논에는 남해사람들의 생생한 '스토리텔링'이 토양 속에 스며들어가 있던 것이다.

비록 똥지게를 메고 가파른 산비탈을 오갔겠지만 남해 사람들은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척박한 땅을 옥토로 개간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는 현재 가천 다랭이논의 농업 생산성을 잘 모른다. 그 땅이 소출이 넉넉한 '금싸라기' 땅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천 다랭이논은 옥토가 맞다. 왜? 연평균 20만 명 이상이 그 곳을 다녀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경작지가 연평균 2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가?

 

 

 

 

 

* 가천 다랭이논: 명승 지정 이후, 다랭이논 인근에 현대식 설비를 갖춘 팬션이나 민박집도 많이 들어섰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농가를 리모델링 해서 팬션으로 개조한 집들도 여러채 있었다.

 

 

* 가천 다랭이논: 다랭이 논의 외형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공중에서 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항공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노릇이니, 뒷산인 설흘산에 올라가서 다랭이논을 내려다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다랭이논 하나 지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비탈이 져서 그런가, 다랭이논에서의 농사일은 일반 논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또한 지형적인 한계상 기계영농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농사지을 사람이 노인들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놀고 있는 땅도 많다고 한다. 이렇듯 다랭이논을 지키는 것이 힘든 일이다.

인분을 실고 오던 '똥배'들이 오갔던 뱃길에는 거대한 컨테이너선과 유조선들이 푸른 물결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저멀리 건너편 여수 앞바다에는 여수항 입항을 기다리는 큰 배들이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렇듯 남해바다는 그간 많이 변해왔다.

무엇이든 변하기 마련이고, 또 변해야 하겠지만 변하지 않고 우리곁에 계속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가천 다랭이논은 그냥 그대로 있어 주었으면 한다. 그냥 그렇게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 달품 게스트하우스: 가천 다랭이논과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월포 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주인장께서 문화 활동을 하시다 게스트 하우스를 오픈했다고 한다. 여행에 대한 주인장의 마인드가 참 좋아서 추천해 본다. 비용도 무척 저렴해서 좋다.

 

 

 

 

 

▲ 뱀: 본 기사와는 상관없지만 계사년 뱀띠의 해를 맞아 뱀 사진을 하나 올려본다. 이 사진은 필자가 2011년 여름,

충남 서산시 아라메길 탐방중에 촬영한 것이다.녀석은 누가 지나가던지 말던지, 그냥 저렇게 누워 있었다.

마치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뱀꼬리 부근에 똥파리가 한마리 앉아 있다는 것이다. 사진 왼쪽 하단부를 보시라

 

 

 

 

 

* 가천 다랭이논: 다랭인논 앞쪽은 푸른 남해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 남해군 가천 다랭이논: 층층이 쌓아 올려진 모습이다.

 

 

 

 

옛말에 벼농사는 '팔십팔(八十八)', 즉 88번의 손이 간다고 할 만큼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영농의 기계화로 말미암아 그 수고가 훨씬 덜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벼농사는 막걸리와 줄담배를 떠올리게 하는 고된 작업이다.

벼농사는 그동안 우리 땅에서 농업의 근간으로 받들어져 왔다. 하지만 형편없는 식량 자급률과 그보다 더 형편없는 농협 수매가가 말해주듯 그 근간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화 현상, 농촌 인구의 감소, 농업 생산성 저하 등. 이런 누구나 다 아는 내용들을 필자까지 나서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한 가지는 언급할 부분이 있다. 필자는 여행 프리랜서이기에 그동안 많은 지역을 탐방해 왔고, 현지에 있는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에는 귀농하신 분들도 많았다.

그렇게 귀농자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벼농사를 짓겠다는 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존부터 농촌을 지켜오던 분들은 물론 신규 진입을 원하는 분들도 벼농사에 대해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도시가 변해가듯, 농촌도 변해가기 마련이다. 쌀이 주곡으로 자리 잡아 농업의 중심을 이루기 시작한 건 조선 후기부터였지만, 지금은 주곡의 개념부터가 완전히 바뀐 시대다. 탐관오리들이 놋그릇 하나까지도 수탈해 가던 시대는 역사책으로 존재할 뿐, 지금은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각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시대다.

그렇듯 변화의 물결은 농촌에도 불어 닥쳤고, 그 변화로 인해 벼농사 감소 추세는 더욱 더 가팔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변화의 추세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가천 다랭이논의 명승지 지정이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농사를 짓던 땅을 명승지로 지정하여 보전해야 될 만큼 이제 벼농사는 그 입지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 가천 다랭이논: 돌 축대를 쌓아 층층이 계단 식으로 논을 만들었다.

 

 

* 가천 다랭이논: 농한기라서 그런지, 다른 밭작물을 심었다. 파를 심은 것 같다. 아니면 마늘인가? 남해군은 마늘로 유명한 곳이다.

 

 

 

 

 

# 계단식논과 남해바다가 어우러진, 가천 다랭이논

필자가 다랭이논을 방문했을 때는 지난 1월 27일이었다. 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논(국가지정 명승 15호)은 우리가 보아왔던 통상적인 육지 논과는 다른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비탈진 경사면에 층층이 이어진 계단식 논과 푸른 남해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은 그 자체가 명승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다랭이논은 미국 CNN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3위'에 선정했다. 물론 외부적 권위를 끌어와서, 우리 명소의 경중을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판타스틱'한 풍광에 대한 감흥은 미국 사람이든, 영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동일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CNN이든, BBC든, NHK든 세계 각국의 유수의 언론들이 많이 몰려와서 다랭이논을 비롯한, 우리의 명소와 문화재에 대해 다각도로 취재를 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바로 돈 안들이고 한류를 퍼트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필자가 한겨울에 그곳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논에 벼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계절에 갔으면 더욱더 생생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녹색의 싱그러움을 담고 있는 다랭이논과 쪽빛 남해바다가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준다는 여름에, 다시 한번 남해군을 방문해볼 생각이다.   

 

 

 

* 다랭이논: 논에서 벼들이 파릇파릇하게 자라는 계절에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겨울에 가니, 다랭이논도 농한기였다.

녹색의 색감이 없어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다시 한 번 방문할 생각이다.

 

 

 

*홍로: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린 홍로

 

 

 

* 8월 초순의 홍로: 9월 초순이면 홍로는 먹음직스럽게 붉은 빛을 드러내지만 8월 초순의 홍로는 아직 여물지도 않은 그런 모습을 나타낸다.  

 

 

 

---> 2편에 이어서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나는 여러농장을 다니면서 사과작업을 했는데, 여러명의 농장주분들이 이구동성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달라는 그 말에 농부님들이 바라보는 사과에 대한 애착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봄부터 계속된 고된 작업의 결실이 가을 추수 기간에 사과라는 아기로 그들 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농장주 분들의 피와 땀이 대변된 말이 내게는 좀 부담이었다. 투박한 내가 사과를 아기처럼 다루어야 하다니!

사과 수확 작업은 단순했다. 일단 사과 나무에서 색이 제대로 든 녀석을 골라 사과가위로 잘라내고, 무작위로 프라스틱 콘테이너에 담았다. 그런 후 선별장에서 '과'라는 단위로, 크기별로 골라낸다. 통상 선별장에서는 10과에서부터 20과까지 걸러내는데, 10과가 가장 큰 녀석이고 20과 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얼핏보면, 10과 짜리 홍로는 빨간색 호박처럼 보일 정도로 상당히 컸다.

 

 

 

 

 

* 사과나무: 아래에 깔린 은박지는 반사 필름이다. 사과 하단면에도 태양빛을 받게 하기 위해 반사 필름을 까는 것이다. 태양빛을 잘 받지 못하는 부분은 홍로 특유의 붉은 빛이 감돌지 않게 된다. 위쪽은 새빨갛게 붉은 빛이 잘 영글었지만 아래쪽은 히물건한 홍로들이 가끔 발견되곤 했다.

 

 

 

* 컨테이너에 담긴 사과: 사과나무에서 떼어낸 사과를 이렇게 무작위로 담아 선별장으로 나간다.

 

 

 

 

그렇게 과별로 선별된 사과들은 박스 포장이 되어 영농조합으로 넘겨지거나 택배로 도시민들에게 직접 배송이 된다. 이렇듯 사과 수확 작업은 무척 단순한 진행 과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행 과정이 단순하다고 노동 강도도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난 거창 귀농학교에 2주 동안 머물렀는데, 16호 태풍 산바가 들이닥친 날을 제외하고는 계속 사과작업을 했고, 잘 때마다 계속 파스를 발라대야 했다. 한마디로 '파스빨'로 버틴 것이다. 나는 '파스스타일'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사과작업을 하다보니 농부님들의 피와 땀이 저절로 내게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B급으로 분류된 홍로도 난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다. B급은 점이 있거나 멍이 든 사과를 말하는데 상품성이 떨어질 뿐 맛과 품질에는 하등 문제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점있는 거 점빼서 먹고, 멍든거 멍파서 먹고. 아삭아삭, 얼마나 맛있던지!

 

내가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섬세하게 사과작업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욕은 안 먹으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내가 모난 짓을 하면, 거창귀농학교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긴장감 있게 작업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하여 2주간의 나의 거창 고제면 사과작업은 무사히 마무리 됐다. 평소에 안쓰는 근육을 썼던 터라 온 삭신이 다 쑤셨지만 작업이 마무리 될 무렵에는 나도 사과를 아기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말을 내 입에서 스스럼 없이 하게 되었다. 허리가 욱씬거리기는 했지만, 농촌 사과체험을 제대로 했던 것이다.  

   

 

 

 

* 사과농장: '사과를 애기 다루듯이 해달라'고 하셨던 농장주 분이다.

두 분 다 거창귀농학교 출신으로 대도시에서 거주하다 최근에 귀농을 하신 분들이다.

 

 

 

 

* 사과작업: 사과작업을 하는 와중에 곽작가도 한 컷 찍어봤다.

 

 

 

* 구절초: 거창 귀농학교 운동장에 피어 있어서 한 컷!

 

*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해발고도가 높은 고제면에는 이렇듯 탐스러운 홍로가  재배된다.

 

 

 

 

 

* 홍로: 빨갛게 잘 영근 홍로가 탐스러워 보인다. 색깔만큼이나 맛도 좋다.

 

 

 

 

 

내게 경상남도 거창은 무척 흥미로운 지역으로 각인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과 맞닿아 있어 조금만 이동을 하면 도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서울로 복귀할 때, 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무려 4개나 되는 도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였다.

 

경남 거창 -> 전북 무주 -> 경북 김천 -> (또다시) 전북 무주 -> 충북 영동 

 

실제로 서편으로는 덕유산, 동편으로는 합천 가야산, 남쪽으로는 함양 지리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이, 경남 거창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듯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거창이지만 읍내 만큼은 쑥 내려앉은 지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거창 외곽은 해발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거창의 다운타운(?)은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창에 난 베이스캠프(?)가 하나 있다. 그곳이 어디냐? 바로 고제면에 있는 거창귀농학교이다. 거창귀농학교는 1996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 하여 귀농학교로 탈바꿈을 시켰는데 현장 위주의 노작 활동이 강점인 곳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거창귀농학교는 고제면 면소재지에서도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을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만큼 실제 농업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창귀농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나에게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다.

 

 

 

* 황토방: 거창귀농학교 운동장 한 켠에 황토방이 있다. 저 곳은 왠만한 고급 폔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시설과 전망을 자랑한다.

 

 

 

여기서 잠깐! 베이스 캠프를 언급하다 갑자기 뚱딴지 같이 귀농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질책을 가하실 분도 있을 듯싶다. 결론적으로 거창귀농학교가 내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거창 귀농학교는 백두대간인 삼봉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해 있다. 거창귀농학교는 삼봉산 예술학교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분명 지역명에서 네이밍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또 거창귀농학교에서 조금만 더 가면 대덕산이 있다. 이렇게 아웃도어 접근성이 강한 곳인데 어떻게 내가 그곳을 베이스캠프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베이스캠프 선언은 개인적으로 거창귀농학교 교장선생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골인심이 좋다지만 뚱딴지 같이 불쑥 '베이스캠프 선언'을 한다면, 그 지역분들에게 볼기짝을 훅씬 두들겨 맞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런 거창귀농학교를 난 지난 9월 중순경에 방문을 했다. 왜? 사과작업을 하려고! 아웃도어는 잠시 접어두고 말야.

귀농학교의 정확한 위치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이다. 고제면은 읍내에서 북서방면으로 25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무주군의 무풍이 어떤 곳인가? 덕유산의 무주 구천동을 끼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 덕유산의 기운이 넘쳐 흐르는 백두대간에 고제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제면도 해발이 높은 곳이다.

 

그렇게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기에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해 거창 읍내는 해발고도도 낮고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터라 고제면보다는 더 기온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볼 일이 있어 잠시 읍내에 다녀온 후 다시 고제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도 변화를 피부적으로 체감했을 정도다. 그런 지형적인 특성 때문인지 고제면 지역은 고랭지 농업이 잘 발달되었다. 과수원과 밭이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고랭지 사과 재배가 유명한 곳이었는데 큰 일교차가 사과의 당도를 현격히 높여주는 듯싶었다. 그런 고제 사과 중에서도 홍로 품종이 농가 소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홍옥과는 다른 품종인 홍로는 추석 차례상에 올려지는 사과로 9월 초순경에 수확을 한다. 그렇다. 홍로는 '홍동백서'할 때 쓰이는 그 사과다. 한가위 차례상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가을걷이로 얻어진 재료들을 올려야 하기에, 추석 직전에 출하되는 홍로는 자연스럽게 차례상에 올려지는 과일 품목 1순위에 속하는 것이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삼봉산과 사과농장: 앞쪽에 보이는 산이 삼봉산이다. 사진에 등장하신 분들은

당시 거창귀농학교에서 본격적인 귀농교육을 받으시는 귀농희망자 분들이었다.

 

 

 

 

* 강물이 범람한 거창 읍내: 16호 태풍 산바는 15호 태풍 볼라벤과 달리 한반도에 폭우를 뿌리고 갔다. 

산바가 지나간 후 거창 읍내를 흐르는 위천이 수위가 높아져 범람하고 있다.

 

 

 

*수위가 높아진 거창군의 위천

 

 

 

* 홍콩 아가씨들:  '우프'를 통해 전세계에서 한국의 농촌문화를 탐방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거창귀농학교까지 찾아 왔다.  우프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가에 집적 가서 일손을 돕는 국제 조직을 말한다. 우프지원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에 농장주는 식사와 숙소를 제공한다.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임금을 받지 않는 관계로 워킹홀리데이와는 차별화가 되는 것이다. 거창귀농학교도 우프에 조직되어 있어 이렇게 홍콩아가씨들도 멀리 거창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도깨비: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린 도깨비들이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수꽝스러운 모습에 친근한 감정까지 들 정도다.

 힘든 사과작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저 녀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거창 귀농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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