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도로스 LEE: 외옹치와 대포항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그 힘들다는 홍게 잡이 배를 탄다고 한다.

 

 

 

 

 

* 속초해변트레킹 코스: 빨간색으로 그려진 부분으로 이동한다.

 

 

 

 

*갯배: 배 삯이 200원인 갯배. 시내 중심부와 아바이 마을을 연결해주던 갯배는 이제 속초의 또다른 명물이 되었다.

 

 

 

 

 

* 조도: 속초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조도.

 

 

 

* 외옹치항의 야경: 철책선 위로 불빛이 비취고 그 반대편에는 보름달이 떠올랐다. 동해바다와 어루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 수로: 설악대교 밑으로 새롭게 난 수로. 예전에는 이 곳이 바게트 빵처럼 길게 늘어진 육지였으나 작년에 새롭게 수로를 개통했다. 그래서 이 수로가 개통되기 전에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보면 차이가 있다. 설악대교 양편으로는 유명한 아바이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설악대교 넘어로 보이는 산은 설악산이다.

 

 

 

* 외옹치: 외옹치는 해안가로 툭 튀어나온 형상을 하고 있다.

 

 

 

*속초해수욕장: 외옹치에서 바라본 속초해수욕장. 황토빛 모래사장과 푸른 동해바다가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 주어 더 아름다워 보인다.

 

 

 

* 속초해수욕장

 

 

 

*대포항: 오토바이 오징어. 오토바이에 걸려 있는 오징어의 모습이 흥미롭다.

 

 

 

* 외옹치: 외옹치를 배경으로 촬영을 하는 모습.

 

 

 

* 설악대교: 수로가 생기기 전에 모습이다. 가운데 있는 다리가 설악대교이고 다리 위, 아래로 있는 동네가 아바이마을이 있는 청호동이다.  수로가 생기기 전에는 사진에서처럼 아바이마을에도 모래사장이 있었다. 수로가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포털에 있는 위성 사진은 옛날 모습을 담고 있다. 빨리 업데이트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전편에 이어서

 

 

 

 



 

기사 관련 사진
▲ 전 목사님 필자 같은 가난한 여행객에게 따뜻함을 선사해 주신 분이다. 사진에 나온 녀석들은 전 목사님을 큰 아버지라고 부른다. 보라색 옷을 입은 꼬마 숙녀는 내게 '모르는 아저씨한테 함부러 이름 알려주는 거 아니에요'라며 도도함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자고 하니 저렇게 활달한 포즈를 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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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은 센스쟁이

여러번 공을 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은 춘천시 동산면 조양리라는 곳이었다. 이곳 마을회관 앞쪽에 공간이 있어 그곳에다 텐트를 치려는데 걸림돌이 하나 있었다. 그 공간 바로 앞이 이면 도로였던 것이다. 텐트가 도로 바로 옆에 설치되는 형상이었다. 그런 난감한 상황이 전 목사님의 배려로 한 방에 해결됐다. 목사님은 센스쟁이!

그렇게 하여 여행 첫째 날은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다. 야음을 틈타(?) 전 목사님의 교회 앞마당에서 시원하게 샤워를 했다. 대충 콘플레이크로 저녁을 떼운 후,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었다. 그곳에서 이장님 같은 목사님을 뵙지 못했다면 영락없이 날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날.

전 목사님이 티타임이나 갖자며 교회로 초대를 해주셨다. 전날 들이닥쳤던 도보 순례단은 이미 떠나고 없던 터였다.

"작년 겨울인가, 그때도 학생들이 우리 교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간 적이 있어요."
"그때도 도보여행자들이었어요?"
"그랬어요. 대학생 두 명이서 도보 여행을 하는데 우리 교회로 왔더라고요. 겨울이라 해는 빨리 졌고, 갈 곳은 없고 했는데 마침 교회가 있어서 그냥 무작정 들어왔대요."
"그 친구들도 무척 준비가 안 된 상태였나 보네요."
"그랬던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아무나 막 다 받아주실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어쩌겠어요. 날씨는 춥고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또 1층은 공간이 넓어서 여러 명이 와도 다 잘 수 있어요."

아침에 기상해서 주위를 살펴봤는데 그곳 근처는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도를 보니 동산면은 춘천시에 속했지만 지리적으로는 홍천군에 더 가까웠다. '되도록이면 춘천 도심지에서 멀리 벗어나보자'라는 첫날 계획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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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통 춘천시도 시가지만 벗어나면 전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홍천군과의 경계 지역에서 찍은 벌통들이다. 원거리에서 찍어 화질이 선명하지는 않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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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이 '전두환 코드'

"목사님. 그런데 걸려 있는 사진들을 보니까 젊은 시절에 유학을 다녀오셨나 봐요."
"맞아요. 젊었을 때 독일에 좀 있었어요."

1980년대 목사님 내외분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오랫동안 유학을 하셨다. 목사님은 신학, 부인은 성악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그때는 참 답답하고 징글징글 했지."
"뭐가요?"

그때 사모님께서 필자에게 빵을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전두환 때요.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아나 모르겠네."
"이분은 알 거 같은데. 87년에 선거가 그렇게 끝나고 나니까 독일 친구들도 이상하게 이야기를 했었지."
"하여간 그 꼴 보기 싫어서... 아니 내가 손님 앞에 두고 쓸데없는 말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사모님 괜찮습니다. 저는 여행중에 만난 분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해요. 또 그런 걸 여행기로 쓰기도 하고요."

젊은 시절 '외국물'을 드셔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목사님 내외분은 환갑 언저리에 연배가 놓여있었음에도 필자에게 고리타분한 '설교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런 편안한 분위기가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커피가 맛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연거푸 커피 리필을 요청했다. 주는 거 없이 받기만 하는 게 '거시기'해서 필자는 썰렁한 농담을 하나 띄었다.

"이 빵이랑 커피 그 분한테 갖다 줄까 봐요. 29만 원 밖에 없다니까 얼마나 배고프겠어요."

필자는 전 목사께서 어떤 방식으로 교회 사역을 하는지 잘 모르고 묻지도 않았다. 더불어 그 분의 정치적, 사회적 견해가 어느쪽에 맞춰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 역시 알 필요가 없는 사안이다. 하지만 목사님 내외분과 나는 전두환에 대한 '코드'가 정확히 일치하였기에 서로 느긋하게 환담을 나눌 수 있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런 맛에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판 모르는 분들과 차를 마시며, 또는 술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 그게 여행의 또다른 매력이 아니겠는가.

 

 

 

 

 

 

 

 

 

자전거 여행서 만난 목사님, '전두환 코드'로 통했네

[중부내륙자전거여행②] 춘천에서 만난 센스쟁이 목사님

13.11.25 10:17l최종 업데이트 13.11.25 10:57l
         
여행은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이동 경로는 강원도 춘천→홍천→횡성→영월→충북 단양→제천→경북 문경→경남 거창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다녀왔습니다. 여행수첩과 사진기록을 토대 삼아 약 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여행 1일째 : 2013년 8월 15일

용산역에서 ITX 열차를 탄 후, 한 1시간 가량을 달려 남춘천역에서 하차했다. 북한강 자전거 도로를 따라 춘천까지 올 수도 있었지만 그냥 편하게 ITX로 이동을 했다. 일명 '청춘열차'라고도 불리는 ITX는 영업 속도가 시속 180km에 이른다. KTX 다음으로 쾌속 질주를 한다.

 



# ITX와 동서고속철도

경춘선의 복선화와 그에 따른 전철화로 '춘천 가는 기차'식의 낭만이 많이 사그라진 게 사실이다. 복선화 이후 터널이 많아져 창문 밖 경치 구경도 '끊김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복선화가 경춘선의 신비감을 떨어뜨렸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나도 일정 정도 그 푸념에 동의를 한다. 분명 단선일 때, 경춘선은 터널도 적었고, 역사(驛舍)도 아담했다. 옛 김유정역 같은 경우는 아담하다 못해 앙증맞을 정도였다.  

그런 시각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낭만을 따지기에는 강원도 지역의 SOC(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단선철도 시절,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거리가 80km 정도인 춘천까지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거리가 약 90km 정도이고 무궁화호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춘천까지 얼마나 거북이 걸음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춘천이 이런 상황인데 다른 곳은 어땠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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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X ITX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칸이 있다. 그나저나 왼쪽에 있는 자전거와 필자의 자전거가 너무 비교된다. 필자의 자전거는 뒤태가 너무 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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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역사에 들어선 장애인, 노약자 편의 시설들은 기존의 옛 역사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도 철도 건널목을 건너듯 맞은편 플랫폼으로 이동을 해야 기차를 탈 수 있는 역이 있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야 철로를 건너 맞은편으로 느긋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횡단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맥락에서 나는 춘천에서 속초까지 이어지는 동서고속철도를 찬성한다. 동서고속철도는 강원도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으로, 선거철만 되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거의 30년 동안이나. 이렇게 오랫동안 동서고속철도가 활로를 찾지 못했던 건, 이 사업이 경제 타당성이 낮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악산이 수도권의 '외곽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원도 지역은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수도권과의 거리가 많이 좁혀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간의 동서고속화철도에 대한 박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낡은 경제 방식이지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현상을 경춘선 복선화와 중앙선(용산-용문) 전철화로 확인을 이미 한 바 있다.

북한-중국-러시아를 잇는 환동해권 물류 '파이프라인'으로도 동서고속화철도가 이용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선적된 물류들이 속초항을 거쳐 수도권으로 직접 올 수 있게 될 것이다. 남북 교류뿐 아니라 극동아시아 물류 운송 등에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동서고속화철도를 찬성하지만 그건 조건부다. 백두대간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조건 말이다. 허울뿐이지만 그래도 필자가 명색이 역사트레킹 마스터인데 백두대간이 다치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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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랭이논 다랭이논은 경작지가 협소한 산촌이나 섬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남해군, 청산도, 지리산에 있는 다랭이논들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 다랭이 논은 좀 규모가 작지만 경작구간과 비경작구간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춘천에서 홍천으로 넘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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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님 같은 목사님


남춘천역에 하차했을 때가 오후 6시께였으니 많이 달려봐야 2시간 정도를 주행할 수 있을 터. 애초 첫날 계획은 춘천 시내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벗어나 홍천 부근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춘천의 도심부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보다는 군이나 읍 단위가 야영하기에 더 느긋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 자전거가 '거북이'였다는 것이다. 180km가 아니라 그저 시속 18km 정도만 됐어도 좋았을 텐데... 현실은 8km였다. 그나마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보다 끌고 가는게 더 많았다. 그리고 춘천-홍천 간에는 왜 그리 고개들이 많던지!

결국 야간주행을 하게 됐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하려고 보니 고심이 앞섰다. 통상 3일 정도는 페달을 굴려줘야 다리가 풀리는데 아직 다리가 덜 풀린 상태에서 행하는 야간주행이었기 때문이다. 갓길이 거의 없는 도로 사정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공친 거 같다. 빨리 마을회관 같은데 가서 텐트나 쳐야겠어!'

당시 나는 제대로 공을 쳤다. 농로길로 들어섰다 공동묘지로 빠져나왔고 논두렁에 자전거가 엎어지기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야간주행이라 적응이 안됐던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다. 그저 하룻밤 캠핑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적시해 줄 그런 고마운 손길.

"실례하지만 이 동네 이장님이세요?"
"아니에요. 저는 저쪽에 있는 교회 목사예요."
"예... 아... 그러세요."

영락없는 동네 이장님 같은 분이셨는데 교회 목사님이란다.

"오늘은 손님들이 많네."
"손님이요?"
"좀 전에도 대안학교 학생들이 도보 순례를 한다고 왔어요. 숙소가 없다고 해서 우리교회 1층에 자리를 마련해 줬어요."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분은 춘천시 동산면에서 교회 사역을 담당하고 계신, 전 목사님이셨다.

"텐트 칠 자리가 필요하다고요? 우리 교회에 앞마당이 있는데..."
"그건 제가 좀 불편하고요. 저기 마을회관 앞에다 텐트를 좀 칠게요."
"여기는 바로 앞에 차들이 다녀서 좀 정신없을 텐데요."
"그게 좀 걸리긴 하네요."
"그럼 제가 차를 앞쪽에다 댈게요. 그럼 차가 방패막이 역할을 할테니까."
"그럼 저야 감사하죠. 앞이 뻥 뚫린 것보다 훨씬 낫죠."

 

 

 

 

 

시작은 백두대간 종단이었으나 끝은 대폭 수정

[중부내륙자전거 여행 2편] 실패(?)한 여행의 기록들___ 2부 

 

 

 

 

 

 

 

 

 

나는 춘천 도심지를 떠나 홍천으로 길을 잡았다. 역시 첫 날이라 그런지 몸이 풀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춘천에서 홍천가는 길에는 왜그리 오르막이 많던지! 당시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오후 8시에 원창고개 도착, 오후 9시 40분 모래재 도착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래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위는 암흑으로 변한 뒤였다. 달빛도 없어 한 치 앞도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갓길도 없는 춘천-홍천간 국도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달빛도 없어 적막한데...'

콘플레이크를 두유에 말아 저녁식사를 했다. 서울에서부터 품고 왔던 그 우쭐함과 시건방은 이미 어둠속으로 사그러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근사한 야영지에서 멋진 '파티'를 벌이겠다는 계획도 이미 암흑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자칫하면 캠핑은커녕 야산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장거리 여행 경력이 풍부한 나에게 노숙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모기였다. 모기와 정면 승부를 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새벽에 강원도 모기와 맞대결을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웬만한 공포영화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소름이 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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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내륙자전거여행 시작은 우쭐했으나 끝은 쪼글아 들었다. 백두대간-남해바다횡단이 중부내륙자전거여행으로 축소 변경되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경북 문경에서 경남 거창까지는 시외버스를 타고 '점핑'을 했다. 라이더로서 반칙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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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많이 잘못됐어. 첫날부터 꼬여버렸어. 완전 꼬여버렸어!'

그랬다.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지니 마지막까지 엉켰던 것이다. 여정도 대폭 축소가 되었고, 몸도 종합병원으로 변하고 말았다. 실제로 여행 중에 나는 허리가 아파서 드러누웠고, 위장병 때문에 밤잠을 설쳤으며, 이빨에 이상이 생겨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이동을 해야 했다. 한마디로 여행 내내 약봉지를 달고 살았던 셈이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건 여정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중간에 경남 거창에서 사과작업을 했는데 그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졌던 것이다. 사과작업을 하느라 에너지도 많이 허비됐고, 추석은 코 앞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되다보니 중간 기착지가 종착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결국 여행 명칭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에서 '중부내륙자전거여행'으로 바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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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 영월의 서강이다. 영월 지역은 자전거여행이 아닌 도보여행으로 많이 방문을 한 지역이었다. 트레킹 여행을 했던 곳을 자전거여행으로 다시 왔으니 그 감회가 새로웠다. 이 서강은 그 유명한 동강과 합수되어 남한강을 이룬다. 남한강은 단양을 거쳐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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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지고 있는 퍼즐 조각

그러고보면 여행도 우리들의 인생살이처럼 딱, 딱 안 떨어진다. 그런면에서 우리들의 손에 들린 건 네모가 반듯한 벽돌이 아니라 모양도 제각각인 퍼즐이 아닌가 싶다. 차곡차곡 반듯하고 미끈하게 나의 성을 쌓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외형이 울퉁불퉁한 퍼즐 조각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 퍼즐 조각을 긁어모아다 하나하나 끼워 넣기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그렇게 고생해서 맞춘 퍼즐의 최종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대박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끼워 맞췄는데 쪽박을 찰 수도 있고, 쪽박만 면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끼웠는데 예상치 못한 대박으로 '해피엔딩'을 맞을 수도 있는게 우리들의 인생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이번 여름 정기 투어는 쪽박이었다. 엉뚱한 퍼즐 조각들을 긁어모아 가지고 와서 대박이 나올 것처럼 우쭐해 있었던 것이다. 쪽박을 찼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열심히 여행기를 작성해서 문제점을 찾아야지! 그래야 다음에는 대박을 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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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조라떼 녹조가 일어났다는 것은 수질이 개선됐다는 것'이라는 MB 말씀에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 말대로 녹조가 수질 개선의 징표라면 깊은 산 속 청정계곡에도 녹조가 발생하길 간절히 기원해야 할 판이다. 8월 하순경, 충북 단양군 고수교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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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강 남한강 단양군의 고수교. 필자는 강원도 영월을 거쳐 단양으로 입성했다. 한편 바로 위에 사진처럼 녹조가 낀 남한강은 흉물스럽다. 같은 강인데 왜 4대강 사업이 진행된 남한강은 '녹조라떼'가 되고,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된 영월 서강은 푸른 물결을 드러내고 있을까? 둘 중에 어느 강이 더 수질이 좋은가?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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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사실 이 여행기는 이미 한 달 전 쯤에 작성된 것이다. 처음 기사를 작성했을 때는 바로 송고를 할 셈이었는데 중간에 계속 일이 생겨 송고시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인생사 타이밍'이라고 기사 작성도 타이밍이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필자는 허송세월을 보내다 그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본 기사와 이후에 나올 후속 여행기들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굳이 좋은 이야기 거리를 사장시킬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시기를 놓쳤든 아니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물에 대한 판단은 독자가 하겠지만...        

 

 

 

 

 

 

 

 

시작은 백두대간 종단이었으나 끝은 대폭 수정

[중부내륙자전거 여행 1] 실패(?)한 여행의 기록들

13.10.31 17:23l최종 업데이트 13.11.03 08:34l
곽동운(artpunk)             

 

 

 

여행은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이동 경로는 강원도 춘천 -> 홍천 -> 횡성 -> 영월 -> 충북 단양 -> 제천 -> 경북 문경 -> 경남 거창을 자전거로 다녀왔습니다. 여행수첩과 사진기록을 토대 삼아 약 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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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군의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 옆으로 관광용 뗏목선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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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5일 오후 4시.

나는 우쭐해 있었다. 왜? 여름 정기 투어에 나서려고 용산역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몰골은 '우쭐'하지 못했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중고자전거에 짐을 잔뜩 실었는데 그나마 패킹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것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뒤에서 보면 자전거의 뒤태가 완전히 껑뚱했던 것이다.

나의 신발도 문제였다. 어차피 장거리 여행을 끝내고 나면 새로 산 신발도 망가지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나는 자전거만 타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트레킹과 등산을 병행한다. 그래서 2012년에 행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때에도 신고 갔던 트레킹화는 서울로 복귀하자마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그런 점을 잘 알기에 나는 아예 '빵구' 난 트레킹화를 신고 갔던 것이다. 자전거 뒤태는 껑뚱하지, 신발은 옆면이 터져 양말이 보이지...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관련기사:
흥미진진했던 56일, 나는 '백두대간'을 달렸다)

"자전거... 노숙자...?
"정말...?"

 


광복절을 맞아 시작한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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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태가 구린 여행자전거 내 여행자전거의 이름은 블루야크. 모 아웃도어 회사의 이름을 빗대서 네이밍을 해 본 것이다. 그나저나 무슨 여행 자전거가 저렇게 뒤태가 안 이쁜가? 패킹을 잘못해서 그런지 짐이 한쪽 편으로 쏠려 있다. 사고 나기 딱 좋은 모습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사고가 안 났다. 필자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홍천군 방면으로 길을 잡을 때 찍은 사진.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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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런 괄시를 쿨하게 받아넘겼다.

'난 지금 백두대간을 종단하고 거기다 남해를 횡단할 거다. 푸하핫! 이거 아무나 못하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쉽게 못 덤빌걸. 억만장자 워런 버핏도 쉽게는 못 덤빌 거야!'

워런 버핏도 못할 일을 시작한다고 그렇게 한참 우쭐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행의 시작일이 또 8·15 광복절이 아닌가? 광복절 맞이 국토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백두대간을 횡단하고 남해바다를 횡단할 테니 이름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이라고 붙이면 되겠군! 푸하핫!'

백두대간 종단과 남해바다 횡단? 호기는 좋았으나 내 앞에 놓인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횡단에 1200Km 이상, 남해바다 횡단에 흑산도까지 입도하려면 600Km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약 1800km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자전거를 다 떨어진 트레킹화로 페달을 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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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의 도깨비 도로. 이 도로는 하도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이 뜸했다. 그래서 '신기하고 재밌기'보다는 그냥 무척 힘든 도로로 기억된다. 도깨비도로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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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가 넘는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도 내가 느긋할 수 있었던 건 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첫 장거리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런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지리산에서 태풍도 맞아봤고, 공동묘지에서도 홀로 밤을 지새웠는데 겁날 게 뭐있겠어. 한두 번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이런 시건방은 아웃도어 여행에서는 독이다. 철저한 준비와 다부진 마음가짐을 갖고 떠나도 될까 말까인데, 시건방부터 떤다면 여행의 성공 여부를 떠나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악사고도 보면 초심자들보다는 '산 좀 탔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당한다. 네팔도 다녀오고 했는데 해발고도가 낮은 우리나라 산 쯤이야, 하다가 큰 낭패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여간 나의 시건방은 열차 출발 시각에서도 표출됐다. 여행의 시작점을 춘천으로 잡기 위해 용산역에서 ITX를 탔는데 그 시간이 오후 4시였던 것이다. 남춘천역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첫 페달을 굴린 시각이 오후 6시 경이 되고 말았다. 여름에는 해가 길다고 하지만 그래도 오후 6시가 가까이 된 시각에 여행을 시작하면 그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시건방은 장거리여행의 독(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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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 자전거여행 중에 가장 난감할 때는 터널을 통과할 때다. 강렬한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질때의 그 느낌이란! 강원도 횡성에서 영월로 넘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이 터널은 극히 교통량이 적었기에 이와 같은 사진 촬영이 가능했음을 밝혀 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터널 중간에 정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위험한 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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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에 템플스테이 발우 공양 문화를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⑨] 태백산 2편

13.01.02 08:35l최종 업데이트 13.01.02 08:35l

 

 

 

 

 

 

▲ 태백산캠핑장 일명 당골캠핑장이라고도 불린다. 아침에 눈을 뜬 후, 바라보는 태백산의 전경이 일품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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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태백산캠핑장에서 3일을 머물렀다. 이번편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다.


# 물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는 태백산 캠핑장

"야영비 받으러 왔습니다."

태백산 산신령님이 달콤한 잠을 내려 단잠에 빠져 있는데, 아침부터 누가 돈 타령을 하고 있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내일 받으러 와요."
"..."

나는 당골매표소 아래쪽에 위치한 태백산캠핑장(일명 당골야영장)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당시가 장마철이라서 그랬는지 캠핑장에는 야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화장실 문을 잠가 놓고 샤워를 했다. 원래는 캠핑장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놈의 돈이 원수지!

필자가 보기에 태백산 캠핑장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내부는 숲이 둘러싸고 있고, 외부는 산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말 그대로 숲 속에서 캠핑을 하는 식이었다. 또 캠핑장 옆으로 당골천이 흐르고 있어, 밤에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잠자리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작은 소음에도 잠을 뒤척일 수 있지만 태백산 캠핑장은 당골천이 소음을 중화시키기에, 민감한 사람도 비교적 편하게 취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밤에 산 새 소리와 함께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핑장이라면, 정말 좋은 캠핑장이 아니겠는가? 물론 갈수기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태백산 베이스캠프 저렇게 태백산캠핑장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참 단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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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텐트 내 텐트와 비교하면 저 텐트는 궁궐 같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나도 저런 멋진 텐트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

 

 

 

 

 


그렇게 좋은 태백산 캠핑장에서 필자는 3일을 머물렀다. 하지만 돈 한푼 안냈다. 처음 수금하러 온 이후에는 징수원들이 다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규칙을 위반하고, 사용료도 지불하지 않는 등 민폐를 끼쳤다고 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필자는 민폐를 끼쳤으면 그만큼의 값을 한다.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했고, 캠핑장 식수대를 말끔히 치웠다.

어느 캠핑장을 가나 식수대는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로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퇴수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찌꺼기들을 손으로 직접 다 끄집어내, 퇴수가 잘 되도록 하고 나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행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골든보이 캠핑장에 가면 색다른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 '골든보이' 이 친구도 태백산캠핑장에서 만났다. 그는 3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여행했다고 한다. 3개월 동안 강원도를 돌아다닌 터라 그의 허벅지는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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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장에 템플스테이 식문화를 이식시키자


한편 그 음식물 찌꺼기는 필자가 버린 것이 아니었다. 음식물을 왜 남기는가? 넉넉히 먹고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캠퍼들이 종종 눈에 보인다. 숨 가쁜 도시생활을 벗어나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은 정말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의 안락함을 캠핑에서까지 이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필자는 답답함부터 느낀다.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 주말 섹션에 겨울캠핑과 관련하여 전기장판에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됐다. 필자는 그 기사를 보고 혀를 찼다.

'과연 이 엄동설한에 뭐 하러 전기장판까지 준비해서 캠핑에 나서는가? 전기 꼽을 곳은 있나? 그렇게 갖출 거 다 갖추고 싶으면, 동네 찜질방에서 몸을 지지는 게 최고일 텐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캠핑시장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그런가?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캠퍼들이 기본적인 캠핑 매너도 안 지키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같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캠핑장을 애용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캠핑장 사용을 매우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다음 일정을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먹고, 마시자, 죽자'라는 캠퍼들의 소음에 새벽까지 잠을 설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 태백산 캠핑장 필자가 손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끄집어 낸 식수대. 그 뒤로 필자가 몰래 샤워를 한 화장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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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최첨단 장비에 걸맞게 캠핑문화도 최첨단으로 향상 시킬 때가 됐다. 성숙한 캠핑문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할 때가 됐다. 이제 캠핑장에서는 좀 덜 먹고, 덜 마시는 분위기가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 같아서는 '템플스테이'와 같은 식문화와 정숙함이 전국 캠핑장에 만발했으면 좋겠다. 이건 너무 급진적인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이 있다. 캠핑장에서 수금 징수원을 가장해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기꾼들이 있으니 주의를 요망한다. 대규모 캠핑장 같은 경우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기에 사기꾼들의 좋은 활동처가 되곤 한다. 그들은 캠핑장 직원과 동일한 복장과 동일한 영수증 용지를 들고 다니며 캠퍼들을 현혹시킨다. 그런 사기에 넘어간 캠퍼들은 사기꾼과 정식 수금요원에게 두 번 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캠핑의 낭만은 사라지고 불쾌지수만 높아질 것이다.

 

 

 
▲ 백캠핑 대형오토 캠핑도 좋지만 요즘은 호젓하게 백캠핑을 하는 캠퍼들도 많이 늘어났다. 백캠핑은 배낭에다 캠핑장비를 짊어 지고 다니며, 캠핑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백캠핑의 관건은 짐의 경량화에 달려 있다. 필자가 행한 캠핑도 백캠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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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비를 받아서 얼마나 남겠냐고, 의문을 표시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형텐트의 경우는 통상 2만 원 정도의 요금을 지불한다. 그런 텐트가 10동 이상 있다고 생각해보시라. 한 시간도 안 되서 사기꾼들은 수십 만원을 챙길 수가 있는 셈이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캠퍼 자신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가지 팁을 제시해 본다.


1. 영수증을 꼭 확인한다.
2. 징수원의 직원증을 확인한다.
3. 쓰레기봉투를 요청한다.

2번 직원증 확인의 경우는 쉽지 않다. 수금요원이 직원증이 없는 단순 아르바이트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면, 사전에 캠핑장 관리사무소의 전화번호를 메모해뒀다가 전화를 걸어 수금 요원의 신분을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요즘은 웬만한 대형캠핑장은 사용료를 지불하면 해당 지자체에서 발행한 쓰레기봉투를 지급하니, 쓰레기봉투 지급여부도 잘 확인을 해보면 가짜 징수원들의 사기 행각의 덫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캠핑장 요금도 안 내고 도망간 주제에 말이 많다고, 아직도 필자를 질책할 분이 있을지 모른다. 여행이 다 그런 거지 뭐. 여행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그리고 캠핑장 팁도 알려드렸으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캠핑 적기에 맞춰 이런 팁을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엄동설한에 이런 글을 쓰니, 필자도 그게 참 아쉽다.

 

 

 

 

 

 

 

 

 

 

 

 

 

 

 

 

 

 

 

 

 

 

 

 

 

 

 

 

 

 

 

 

 

 

 

인생사 타이밍, 강릉항에서 타이밍을 잘 잡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5] 강릉항에서 울릉도행 배를 타다

 

 

 

 

 

12.10.22 21:23l최종 업데이트 12.10.22 21:2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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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항의 블르야크 ?산에 갔다, 바다에도 갔다 내 자전거인 블루야크 종횡무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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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3일 토요일: 여행 10일차



설악산 한계령이 '원통'함을 풀어주어서 그랬는지 다음 일정은 좀 수월한 편이었다. 이전 여행기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계령, 특히 양양군 방면의 경사도는 상당했다. 가뜩이나 브레이크가 잘 안 드는 중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지라,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내 마음은 콩닥콩닥했다. 난 자전거 속도 측정용 GPS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는데 당시 순간 시속이 65km까지 찍혀 있었다. 그런 한계령을 사고 없이 무사히 통과했으니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무사히 강원도 양양군에 도착한 나는 양양군 현남면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강릉항(구 안목항)을 향해 출발했다. 일명 낭만가도라고 불리는 7번 국도를 따라 양양군에서 강릉시로 이동을 한 것이다.

 

 

 


▲ 주문진항 주문진항의 오징어잡이 배들. 그냥 주문진항은 '항구 한바퀴'놀이를 해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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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에게는 낭만, 자전거에게는 비낭만

낭만가도. 물론 그곳이 낭만 가도이기는 했다. 푸른 동해바다를 배경삼아 시원하게 내달리는 것 자체가 낭만적인 일이 아닌가? 그때 옆에 사랑하는 이가 동승하고 있다면 그 낭만은 두 배, 세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낭만가도를 짐 40Kg이 실린 블루야크(내 자전거 이름)를 끌고 혼자 낑낑거리며 페달을 굴린다고 생각해보라! 낭만이 아니라 낭패지!

필자는 7번 국도를 달리는 이들의 낭만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7번 국도는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부산까지 연결된 종단 국도로 유명 해수욕장과 리조트들을 많이 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비수도권 국도치고는 교통량이 상당히 많고 차들도 과속을 많이 하고 있었다. 또한 유명해수욕장 주변에는 교통정체 현상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갓길이 잘 발달이 되어 있냐? 그것도 아니다. 자동차들과 노면을 같이 써야 하는, 나 같은 자전거족들에게 7번 국도는 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도로였던 것이다. 물론 군데군데 자전거도로가 놓이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일부 구간에 한정된 시설이었다. 나도 낭만을 느끼고 싶어 가끔 느긋하게 주행을 했는데 그때마다 뒤에서 나는 '빵빵' 소리에 산통을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편 흉하게 서있는 동해안 철책선도 낭만가도의 낭만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푸른 동해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을 철책선와 함께 감상해야 하는 게 썩 유쾌하지가 않았었다. 철조망 너머의 동해바다는 그저 해류의 흐름이 있을 뿐 남북으로 갈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 주문진오징어 문제의 그 오징어다. 한편, 이 사진을 보니 그때의 오징어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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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천 원에 두 마리, 주문진항에서 오징어로 배를 채우다

그런 비낭만적인 난관들을 뚫고 강릉시 주문진항에 도착했다. 주문진항에 도착을 하니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오징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맥주를 마실 때도 새우깡보다는 오징어땅콩을 선택할 정도로 오징어를 좋아한다. 그런 차에 주문진항까지 왔으면서 그냥 갈 수 있겠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주문진항은 매년 10월경에 <오징어축제>를 개최할 만큼 오징어 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오전 10시 30분 경에 주문진항에 도착했었다. 이리저리 주문진항과 어시장 구경을 하며 '시장 한 바퀴 놀이'를 했다. 부산의 자갈치 시장 자체가 좋은 관광명소인 것처럼 주문진항과 어시장 자체도 좋은 볼거리였다. 시장 한 바퀴 놀이를 끝낸 후 난 오징어 회를 파는 곳으로 갔다. 항구에서는 통상 만 원에 4마리를 팔았는데,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아주머니들이 내게만 5천원에 2마리를 팔았다. 거기에 회 뜨는 비용 천 원이 추가됐다. 항구를 둘러보니 거의 다 가족단위나 연인단위였지 '뻘쭘'하게 혼자 다니는 사람은 나 말고는 거의 없는 듯싶었다. 더군다나 혼자 와서 오징어를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초라하면 어떤가? 오징어가 맛있는데. 초장에 착착 찍어 맛나게 먹었다. 혼자서 두 마리를 다 먹기에는 버거웠지만 '우구적거리며' 그냥 다 먹었다. 그 아까운 걸 그냥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오징어로 뱃속을 든든히 채운 후, 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강릉항에 가서 울릉도로 향하는 쾌속선을 타야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울릉도로 가려고 몇 번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돈이 없어서 발길을 돌려야 했고, 태풍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제주행 여객선보다 비싼 배 삯에 쓴 입맛을 다시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한반도 상공을 뒤덮은 태풍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만큼 울릉도는 쉽게 나를 반겨주지 않는 곳이었다.

 

 

 

 



▲ 동해바다 여름바다이긴 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시즌이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좀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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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0분경.

강릉항에서 출발하는 울릉도행 배는 오전에 딱 한 편만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객터미널 방향으로 향했다. 배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지 물어도 보고, 사전에 동선도 파악할 생각이었다.

"배 타시려고요?"
"지금 출발하는 배가 있어요?"
"네. 편도 4만 9천원이에요."

대합실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온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매표소 아줌마가 퉁명스럽게 말을 건냈다.

 

 

 

 

# 인생사 타이밍! 여행도 타이밍! 


배가 있단다. 그런데 배에서 먹을 간식거리 같은 필요 물품들을 구매하지 않았는데. 강릉항 근처에서 1박을 하면서 그때 마트에 가서 물품들을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터미널 구조나 알아보려고 들어왔는데 바로 배가 있다니. 어차피 물품이야 울등도에 가서 구매를 하면 되지 않은가? 물론 울릉도 물가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말야. 인생사 타이밍아닌가! 지금 안 잡으면 또 언제 타이밍을 잡을 것인가.

나는 그 즉시 배에 올랐다. 알고 보니 그 배는 부정기편이었는데 그래서 승선 인원도 적었다. 나를 포함해서 40명도 안 되는 인원이 탑승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자전거를 적재할 수 있는 공간도 여유가 있었다. 강릉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차량 탑승이 안 되는 밀폐형 배다. 일명 박스(box)배로 불리는 쾌속정으로 선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속 50Km 이상의 속도로 해상을 질주를 하는 터라 승객 안전을 위해 그런 구조로 배를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속도가 빠른 만큼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울렁증이 심하게 생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출항 직전에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구토용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눠줄 정도였다.

까짓것 무슨 배멀미인가! 내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배를 타봤는데. 그동안 섬여행을 얼마나 많이 다녔는데. 난 받아든 비닐봉지를 하찮게 여기며 그냥 쓰레기 비닐봉지로 사용을 할 생각을 했었다.

 

 

 



▲ 시스타(sea star)호 울릉도와 강릉항(구 안목항) 구간을 운항하는 쾌속정이다. 배수량 590톤에 433명을 태우고 3시간 정도로 강릉-울릉 구간을 주파한다. 한편 밀폐형 배라서 그런지 배멀미가 심하다. 사전에 배멀리 약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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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여행의 팁: 멀리약을 챙기자!

깜빡 잠이 들었다 깼다.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왜이리 속이 울렁거리지? 울릉도에 간다고 이렇게 울렁거리나. 역시 울릉도는 내게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올 기세였다. 난 당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윀. 해상 날씨가 안 좋았던지 배가 요동을 쳤다. 다시 우윀. 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아까 주문진에서 먹은 오징어가 꿈틀대며 내 몸에서 빠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또다시 우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승선 인원이 별로 없어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도 구토를 심하게 하다 보니, 난 오기가 생겼다. 그래 몇 번까지 하냐, 한 번 카운팅을 해보자. 또 우윀. 총 여섯 번이었다. 총 여섯 번에 걸쳐 구토를 했다. 나중에는 개어낼 것이 없어서 그냥 위액이 쏟아졌다. 아까운 내 주문진 오징어들이 변기통으로 싹 다 쓸려 내려간 것이다.

필자도 느껴진다. 내게 가해지는 따가운 시선들. 좋은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이렇게 세밀하게 '우윀' 장면을 묘사 하냐고 항의를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만약 이 기사를 식사 시간 전후로 읽으신 분들은 필자에게 엄청난 저주를 퍼부으실 것이다.

 

 


▲ 울릉도 저동항 배에서 구토를 6번이나 해서 그런지 넋이 빠진 모습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저동항에서 정신 좀 차리고 하다보니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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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뱅이들을 위한 울릉도여행!

 

하지만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필자는 몇 가지 당부를 하려고 이 부분을 세밀하게 그린 것이다. 그렇다. 배멀미를 주의하라는 것이다. 꼭 배멀미 약을 준비하신 후에 승선을 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자신이 배멀미에 강하다고 과신하지 마시고 미리 약을 준비하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배멀미를 앓으면 그만큼 자신도 괴롭고 향후 여행 일정에도 막대한 차질이 생기게 된다. 필자처럼 56일 동안 여행을 하실 시간적 여유가 없으신 분들은 돈 2~3천원 들여서 멀미약을 복용하신 후에 승선을 하시면, 더 기분 좋게 울릉도 여행을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게 필자가 독자들에게 드리는 첫 번째 울릉도 여행 팁이다.

여기서 잠깐! 당시 필자는 울릉도에 입도를 할 때까지 여행 경비로 110,000원을 지출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때가 여행 10일차였었다. 하루에 만 원 정도 썼는데, 7일을 머물렀던 울릉도에서는 얼마를 지출했을까? 항간에는 울릉도 여행이 제주도여행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그만큼 울릉도의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다. 그럼 주머니가 가벼운 필자가 7일 동안 울릉도 곳곳을 다니면서 쓴 돈이 얼마일까? 필자는 놀 거 다 놀고, 볼 거 다 보면서 울릉도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을 텐데, 이거 경비 부족으로 울릉도가 자전거여행의 마지막이 되는 건가?

다음편을 기대해주시라. 울릉도에서 쓴 경비내역들을 올릴 생각이다. 가난뱅이 여행가가 고물가 지역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드릴 생각이다. 아웃도어여행 앞에 모든이들이 공평하다는 게 내 여행 철학인만큼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도 울릉도 여행을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생각이다.

 

 

 



▲ 시스타호 저렇게 시스타호 후미 부근에 자전거를 적재했다. 원칙적으로는 자전거 탑승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출항 당시 워낙 사람들이 적게 승선해서 그냥 승무원들이 탑승을 시켜줬다. 본 사진은 창문 넘어로 찍었다. 운항중에는 승무원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선실밖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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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바우길 강릉에도 도보여행 길이 있다. 일명 바우길이다. 소설가 이순원씨가 이 바우길 개척에 참여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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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어시장 주문진항 바로 옆에 있는 어시장이다. 그냥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구경거리다. 우리동네 낭만고양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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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오두막 내가 오징어회를 먹고 있는데 대가족이 몰려왔다. 그래서 난 냉큼 자리를 비켜줬다. 꿔다 둔 보리자루 마냥 내 자전거가 저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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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울릉도는 그 자체가 출사지가 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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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이 나의 '원통' 함을 달래주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④] 한계령 편
12.10.12 20:59l최종 업데이트 12.12.18 22:0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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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령 한계령에 자신이 올라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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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월요일

나는 강원도 양구와 인제에 있는 광치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입성했다. 광치령은 660고지였는데, 역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힘든 기색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 곧 한계령을 넘어야 했으니까!

"실례하지만, 여기 읍사무소가 어디에요?"

힘들게 광치령을 넘었던 터라, 읍사무소에서 물도 얻어 마시고, 인제군 여행지도도 얻어갈 생각이었다.

"읍사무소는 남쪽으로 한참 가야 하고,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면사무소가 있어요."
"예? 여기가 원통읍이 아닌가요?"
"원통은 원통리이고, 여기는 읍이 아니라 북면이에요. 인제군 북면."

 

 

 

# 원통이 읍이였어?... '광천김'은 A급 밥도둑

'읔! 원통읍이 아니라 원통리였다니! 원통의 정확한 행정상 지명이 인제군 북면 원통(元通)리였다니!'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원통이 행정구역상 '리' 단위였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았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은 내 얇은 지식이 들통이 나서 더 창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칭 아웃도어 여행가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다니!'

우리나라에서 '읍' 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군' 단위와 차별화되어 자체적 '네이밍' 파워를 가진 곳이 몇 군데 있다. 가야, 강경, 광천, 삼랑진, 벌교 등이 그곳이다. 강경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광천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 삼랑진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벌교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공식적인 행정 지명이다. 고대연맹 국가인 가야국에서 지명을 따온 가야읍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속해 있는 곳으로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벌교도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였으니, 잘 알 것이다.

강경과 삼랑진은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 이후, 쌀의 집산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강경은 금강을 통해, 삼랑진은 낙동강을 통해 바다로 출항할 수 있는 곳인데, 그만큼 내륙 수운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광천은 '광천김'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1년 자전거여행 당시 난 그곳에 들러 '광천김'을 한가득 샀었다. 장거리여행을 할 때는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여행자와 궁합이 잘 맞는 밥도둑들을 데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광천김'은 A급 밥도둑이었다.

이렇듯 읍 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나 군만큼 입에 자주 언급되는 경우는 종종 봐 왔지만, 리 단위의 지명이 군 단위의 '브랜드 파워'와 필적하는 경우는 원통리가 유일할 것으로 여겨진다.

 

 




▲ 원통종합복지타운 저 곳에는 도서관, 공공회의실, 보건지소 등 공공시설이 입주해 있는데 우리동네에 있는 곳보다 시설이 더 좋았다. 저 사진은 복지타운의 담당자님이 찍어 주셨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인제군 북면은 인구가 8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면단위 인구 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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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럼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원통리가 인제군과 짝을 이루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애절한 슬로건 대명사를 낳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원도 군번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아리랑 곡조보다도 더 애절한 이 말의 출현시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사실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에도 원통리가 있다. 하지만 인제군의 원통리와 비교하면 그 존재감이 덜해서 일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청원 가서 원통하다!'라는 말은 없으니까.

인제군 원통리의 지형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북쪽으로는 명당산(764m)이 있긴 하지만, 동쪽으로는 소양강을 향해 가는 북천이 흐르고 있어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원통리에는 원통체육공원도 자리 잡고 있다. 차라리 한계령을 품고 있는 한계리의 지형이 험하면 더 험한 듯싶었다.

원통(元通)은 원래 원산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설악산과 금강산을 넘으면 바로 원산이니 그런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인 의미의 명칭은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군사도시로 변모한 인제군의 모습 속에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마음속에 '슬픈 아리랑' 한 곡조씩을 품고 사는 강원도 군번들에게 '인제'와 '원통'이란 명칭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푸념거리의 소스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원통에 대해서 '왜 그리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느냐'고 필자에게 질책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것인지 '명칭 따라 삼천리'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비판의 화살을 내게 발사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필자는 원통을 보면서 한국전쟁과 뒤이은 분단으로 인해 해당 지역 명칭이 일반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각인되는지에 대해서 주목해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지리산 피아골 같은 경우도 원래는 곡식인 피가 많이 재배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리산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골짜기가 피로 넘쳐 났다는 변형된 의미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게 됐다는 것이다.

 



▲ 설악산 산봉우리의 걸린 흰구름을 보니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해지더라!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배 맛 탱크보이가 그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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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한계령으로 향하다!  


한계령 초입에 해당하는 한계교차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2시 경이었다. 40Kg 달하는 자전거를 끌고 한계령을 넘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행동식은 준비가 됐는가? 식수는 몇 통을 챙겼는가? 만약 밤샘 이동을 한다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등등의 물음에 대한 답을 충족시키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한계령이 어떤 곳인가? 설악산을 가로질러 동해로 나아갈 수 있는 높디높은 고개가 아니던가!

한계교차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미시령 고개를 넘을 수 있고, 44번 국도를 타면 한계령에 다다를 수 있다. 인제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인접 도시인 속초로 갈 때 주로 미시령 도로를 이용한다고 했다. 미시령은 터널로 연결됐기 때문에 보다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꼬불꼬불한 한계령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서울에서 속초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주로 미시령을 이용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아갔지만, 설악산 속살을 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더군다나 차가운 개천이라는 뜻의 한계(寒溪)로 들어가는데, 그 정도의 노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확실히 자동차 여행과 자전거 여행은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계령이 험하다고 하지만, 자동차로 1시간 정도면 반대편 양양군에 입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공간을 빨리 이동할수록 인간의 두뇌가 '패스'시키는 지리적 장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긴 운전에 집중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수많은 자연풍광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지켜보겠는가.

 

 



▲ 한계령 관통도로 표지판에 있는 고라니처럼 껑충껑충 뛰어올라 한계령에 도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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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 야크' 타고, 한계령을 10시간 만에 주파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엄연히 내 자전거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 블루야크. 내 자전거가 푸른색이라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 명칭을 빗대서 그렇게 지어본 것이다. 내 자전거가 무적 철TB라 히말라야 야크들처럼 튼튼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네이밍을 붙여본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니까.

산중에서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어차피 야간 이동을 각오했지만, 밤이 되니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시간이 더 지체 됐던 것이다. 나도 블루야크도 지쳐갔다. 이전의 여행들을 통해 많은 경험이 쌓였지만, 한밤중 산중에서의 이동은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지친다고 안 갈 수 있겠는가! 무거운 블루야크를 끌고 걸음에 걸음을 계속했다. 이렇게 걷다보면 언젠가는 한계령에 올라서서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블루야크에게 '채찍'을 가하며 재촉했다. 칠흑 같은 어두운 산중에서 홀로 고독과 탈진 사이를 오가며 계속 걸음에 걸음을 더했다. 그런 외로운 길에도 친구는 있는 법이다. 뻐꾸기, 소쩍새 등등의 산새들이 내 귀를 밝게 해주었다. 시각적으로는 어두웠으나 청각적으로는 무척 경쾌했다.

가고, 또 가고 하다보니 결국 한계령 정상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고도 920m인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난 쾌재를 불렀다. 애초 예정했던 시각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반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러고보면 여행하면서 어떤 이동수단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지는 듯 싶다. 10시간이면 고속버스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왕복 2번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 한계령 정상 참 힘들게 올라왔다. 어두웠을 때 도착했더니 사진도 잘 안 찍혔다. 수 십방을 찍은 후에 겨우 건진게 이 사진이다. 흐릿하게 나왔지만 이 사진 하나가 내게는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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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태순이 말하는 한계령

 

 만약 누군가가 자동차로 한계교차로에서 한계령까지 오는데 10시간이 걸렸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을 했을까? 그 운전자가 설악산에 사는 신선이 아닌 이상 무슨 큰 사단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적어도 동승한 사람은 10시간 동안 운전자의 짜증과 욕설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거리를 10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 교통수단에 따른 '여행시간 체감변동법칙'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애초 한계령 관통도로는 1972년에 군사용 도로로 개통된다. 그러다 한 공병부대가 6년간의 노력 끝에 1978년 포장도로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반 국민들이 자동차로 한계령까지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소설가 박태순씨가 쓴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에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한 내용이 있어 잠시 인용해본다.

"공병부대원들의 노고와는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애당초 잘못 설계되고 아울러 무리한 산복도로 공정으로 사고가 발생되곤 한다. 절개와 절삭, 백두대간의 산세와 지세를 아예 무시하고 묵살시켜 벼랑길을 내게 한 것이다."

박태순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70년대, 그것도 공병부대에 의해 개설된 도로이기에 지금의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것은 아예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환경적인 면은 그렇다 하더라도 '벼랑길'은 눈에 보이는 현재적인 위협이 된다. 이 부분은 필자도 제대로 경험을 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제군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안전상 문제로 인해 한계령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하지 않던가! 한계령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해준 것은 인정되나 그만큼 '목숨 걸고' 한계령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 한계령 이 사진은 나처럼 자전거여행을 하던 어떤 대학생이 찍어준 것이다. 나는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길이었고, 그는 반대로 양양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참 멋진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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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내 텐트로 찾아온 한계령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한계령은 그 말뜻대로 정말 서늘했다. 준비해 둔 잠바를 꺼내 입었는데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 정도였다. 변덕스럽게 끼고 지고를 반복하는 안개를 보고 있자니 몽롱한 기운도 느껴졌다. 가수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한 곡 제대로 뽑고 싶었지만, 한여름에 맞는 추위에 입이 얼어붙었는지 난 그저 따뜻한 커피만 홀짝였다. 제설장비를 모아두는 창고에다 베이스캠프를 친 후 나는 싸늘한 한계령의 날씨를 원통해하며 잠이 들었다. 잠결이었나? 누군가 내게 말을 이런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인제서라도 와줘서 고맙습니다. 원통한 마음은 거두고 편하게 잘 쉬었다 가세요!"

내가 잠든 사이 한계령이 내게 와서 속삭이듯 이 말을 남기고 간 듯싶었다.

 

 



▲ 한계령 정상에 차린 베이스캠프 제설장비들을 적재시켜 놓은 창고에다 한계령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한여름에 눈이 올 것도 아닌데.. 하룻밤 신세 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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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항 설악산에도 올라가고, 동해바다도 달리고... 나의 자전거인 블루야크는 어디든 종횡무진이다! 다음은 울릉도로 향해 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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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강원도 화천에서 행한 <평화안보백일장>의 쓰라린 패배를 뒤로하고, 나는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 방문을 접목하는 방식은 확실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몸은 많이 축났다. 그저 방문객의 입장에서 보고 즐기는 축제에 참가했으면 모르겠는데, 능동적으로 움직여야하는 글쓰기 대회에 참여했으니, 예상치 못한 체력의 소진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난 1등을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1등은커녕 가작에도 못 들어, 인건비도 못 건졌으니 강원랜드에서 '한 판 땡길' 이유도 없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기념으로 정선에도 가보고, 가리왕산도 탐방할 생각이었는데 애초 계획이 어긋난 것이다. 그래서 여행 경로를 수정했다.

 



▲ 북한강의 자전거도로 화천에서 양구를 향해 가는 길. 이 길을 따라 시원하게 강변을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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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 양구 -> 인제 -> 양양 -> 강릉 ->울릉도

이 코스로 길을 잡았고, 실제로 이 코스로 주행을 했다. 그런데 이 코스에는 중간에 한계령이 자리 잡고 있다. 한계령! 그 이름만으로도 아웃도어 여행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설악산 한계령!

일단 자전거를 타고 설악산을 넘는다는 것이 무척 '환상'적인 일인데, 게다가 다른 고개도 아닌 한계령을 넘어간다는 것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화천에서 한계령으로 가려면 양구를 거쳐 가야 한다.

'국토중앙 양구'

위의 명칭은 양구군에서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지역을 두루 다니다 보면 각 지자체마다 자신들의 특색을 슬로건화 해, 네이밍 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천시는 '대한민국 생태도시 순천', 거창군은 '거창한 거창', 장흥군은 '정남진 장흥' 등으로 브랜드화했다. 거창군의 '거창한 거창'이야 지역 명칭을 브랜드화 시켰음을 단 번에 알아낼 수 있지만 장흥군의 '정남진'이나 양구군의 '국토중앙 양구'는 쉽게 그 뜻이 와 닿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남진은 장흥군이 서울에서 정남쪽으로 있다고 하여 정남진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했는데, 정동진을 빗대서 생각해보니 그 뜻을 쉽게 이해하게 됐다.

그럼 국토중앙 양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양구군은 DMZ를 끼고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북한인데...

 

 



▲ 국토중앙 양구 한반도 중앙에 양구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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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배꼽 양구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남한, 북한을 뛰어넘는 한반도적인 슬로건이다. 휴전선 남쪽이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양구는 철책선에 갇힌 변방에 불과하지만 철책선을 걷어낸 후의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미래지향적이고 통일지향적인 구호라고 할 만하다.

남쪽만 나와 있는 교통지도와 남쪽지역 날씨만 알려주고, 북한 지역은 '언저리'로 알려주는 날씨방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죽비소리와도 같은 일침을 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구글 어스에는 북한지역 정보가 나오지 않지만, 옛날 <대동여지도>에는 남북한의 구분이 없지 않았던가?

지리적으로 남과 북을 구분하는 사고도 극복해야 할 분단고착적인 사고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려있다고 하지만 백두대간이 갈렸는가? 남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고, 북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겠는가? 다 똑같이 소중한 우리의 백두대간이지 뭐!

 

 



▲ 파로호 화천에서 양구로 넘어가기 위해서 파로호 인근을 지나야 했다. 멀리 파로호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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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령 터널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진 양구

 

국토의 정중앙이라서 그런가? 양구를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최근에 양구는 도로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다. 올봄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됐기 때문이다. 5.1Km라는 국내 최장거리 터널이 개통되어 양구와 화천을 오가는 길이 많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기존의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어 도로교통이 무척 불편했었다.


그 두 호수가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길이 그곳을 '뼁~'하고 돌아가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차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되었으니 화천과 양구에 사시는 분들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난 왜 양구를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말을 했나? 이율배반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5.1Km나 되는 터널을 통과한다고 생각을 해봐라. 그거 정말 못할 짓이다.


400~500m 짜리 터널을 지나는 것도 정말 괴로운 일인데 무려 5.1km에 달하는 터널 구간을 지날 때의 고통이란! 내 고막을 도려낼 것 같은 자동차의 소음은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그나마 뒤에서 오는 차가 승용차면 다행이지, 22톤짜리 바퀴 8개 달린 덤프트럭이 뒤따라온다고 생각해봐라!

그 긴 장거리 터널을 지나고 나니, 탈진할 정도로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어둠 속에서도 야영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여행일지를 보니, 난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사명산 양구학생 캠핑장에서 텐트를 쳤었다. 도착 시간을 보니 23시였다.

 






▲ 박수근 공원 박수근 미술관 앞에 있는 박수근 공원. 산책하거나 사색하기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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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만난 박수근 화백

 


다음날.

난 양구읍내로 진입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다. 그래서 호반의 도시로 보이기도 한다. 양구 읍내에서 가까운 곳에 박수근미술관이 있었다. 양구 읍내에서 걸어갈 수도 있을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좋은 감흥을 받고 왔다.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가 접목되고, 또 미술관 탐방까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박수근(1914~1965)은 양구군 양구면(현 양구읍) 정림리에서 출생을 했다. 가난했던 그는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런 성장배경은 박수근의 작품들에 오롯이 스며들게 된다. 그는 화강암처럼 두툼하고 거친 풍의 질감으로 작품들을 많이 제작을 했는데 그런 작품들은 서민적이면서도 소박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악〉(1932),〈나무와 여인〉(1950년대),〈행인〉(1964), <할아버지와 손자〉(1964) 등등... 작품명만 봐도 한국적이지 않은가? 그런 박수근미술관은 선생의 작품들과 함께 일대기를 기록한 공간이었다. 2002년에 개관한, 비교적 최근에 개관한 곳이라 그런지 전시공간과 편의시설도 합격점을 줄 만 했다. 

 

 




▲ 박수근 선생 좌상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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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선생 생가터에 200여 평 규모로 건립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은 그 자체로 문화공간이었다. 앞산이 보이는 확 트인 공간에 있는 미술관은 전면에 공원과 함께 야외전시장이 있었다.

그냥 얼핏 봐도 산책하기도 좋고, 사색하기도 좋은 공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나는 공원에 앉아 야외전시물들을 감상하며 식사를 했다. 왜 이상하게, 난 그렇게 멋진 문화공간에 들어서면 허기가 지는지 모르겠다. 야유회를 가면 도시락부터 챙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긴 잘 먹어야지. 그래야 구비구비 돌아가는 한계령을 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는 '인제'로 향하는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느냐고? 원통해서 어찌하라고? 그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가서 물어보시라.
 

 

 



▲ 고구려이야기 가난했던 박수근 화백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직접 역사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감옥에서 역사편지를 썼던 인도의 네루 총리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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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의 고구려이야기 박수근 고구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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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화백 작품 박수근 화백이 이런 작품도 그렸다. 박수근 화백에게서는 서양 화풍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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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과 자전거 박수근 미술관에 가면 무언가 작품을 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되는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 번 설치미술(?)을 해보았다. 박수근 선생은 내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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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 이외수 작가와 필자 이외수 작가님의 패션 감각은 남달랐다. 파란색 바지가 상당히 눈에 띄었다. 필자의 파란색 티셔츠와 묘하게 매치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당시 내 자전거에는 태극기와 함께 영국 국기인, 유니온잭이 걸려있었는데 한국 대표팀의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전을 기원하며서 달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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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4일 목요일.

드디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강원도 화천이었다.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6월이라 좀 이르긴 했지만, 당시 강원도 화천에서는 <2012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이라는 문화 행사가 개최되었다.

평화와 안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상 '평화'와 '안보'는 서로 접합 점을 찾을 수 없는 각 세력들이, 대표적으로 부르짖는 '프로파간다(어떤 것의 존재나 효능 또는 주장 따위를 남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일이나 활동. 주로 사상이나 교의 따위의 선전을 이른다.)'처럼 보인다. 소위 진보와 보수, 각 진영에서 그 낱말들을 중심으로 구심점을 삼아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고 피력한다는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쉽게 섞일 것 같지 않은 두 명칭을 내걸고 문화행사를 한다고 했으니 나도 처음에는 의심부터 품었다. 더군다나 문학축전 메인 행사는 <2012세계평화안보 백일장>이었는 데, 통상적인 백일장 행사는 반 나절 치기로 족하지 않던가? 그런데 2박 3일 동안 행사가 진행된다고 하니, 그것 또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것들 사짜 아니야?'

 

 



▲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 홈페이지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을 알리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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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와 안보가 공존한 <세계평화안보축전>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그저 그런 행사가 아닌, 꽤 의미 있는 행사였다. DMZ을 끼고 있는 최전방 강원도 화천이라면 평화와 안보가 공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결정적으로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기획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다. 난 '이외수'라는 이름 석자를 믿고 화천으로 나아갔다. 백일장 최고 상금이 천만 원인 터라 잘하면 여행비용 충당은 물론 유럽 여행까지 '한방에' 해결될 수도 있었다.

또 나는 자전거로 화천까지 왔고,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초반부를 문학축전에서 보낸 만큼 적어도 지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을 두고 1타 3피라고 해야 할까?

<2012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은 6월 15일(금요일)부터 2박 3일간 '평화의 종' 공원과 붕어섬 일원에서 진행됐다. 강원도 화천은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산천어 축제는 한겨울에 진행되는 대표적인 얼음낚시 축제인데 군부대로 둘러싸인 화천의 이미지를 좀 더 활기차고 밝게 바꾸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붕어섬은 화천 읍내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야외무대 및 편의시설이 있어 산천어 축제의 부대행사도 이 곳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붕어섬은 서울의 선유도 공원 정도의 규모였다. 그런데 거기에 야외공연장, 공원, 운동시설, 수상레포츠, 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강원도 화천을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산보 삼아 붕어섬을 탐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북한강의 시원한 풍광을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소풍을 즐기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실제로 인근 군부대에서 외박을 나온 군인 아저씨들과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분들이 붕어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많이 포착됐다.

 

 

 



▲ 붕어섬 북한강을 뒷배경하여 붕어섬에서 한 컷 찍어봤다. 이렇듯 붕어섬은 상당히 좋은 출사지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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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여름에 붕어섬에서 캠핑하다 얼어 죽을 뻔 했다! 

 

그런 붕어섬에서 3일을 캠핑했다. 지갑이 얇은 관계로 숙소를 잡는 것은 내게 사치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2박 3일을 펜션이나 민박집에서 보냈다면 바로 여행 예산이 바닥났을 것이다.

한편, 화천은 군부대가 몰려 있어 주말에는 외박 나오는 군인들 때문에 숙소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문학 축전에는 500명의 예비문학인과 그 가족들이 참관하는 터라 가뜩이나 수용력이 한정된 화천의 숙소 문제를 더욱더 가중시켰을 것이다. 나도 그런 의문이 들어 행사 스태프들이나 군청 관계자분들에게 관련 사항을 문의해 보았다.

나의 '민원'이 잘 받아들여졌던 것일까? 원래 붕어섬은 야영과 취사가 금지된 곳이지만, 나는 행사 기간 내내 캠핑을 하고 밥을 지어 먹었다. 북한강의 시원한 풍광을 바라보며 낭만의 섬, 붕어섬에서 캠핑을 하는 그 맛이란!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나를 무척 부러워하실지 모른다. 아담하고 예쁜 붕어섬에서 '합법적'으로 캠핑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부러워하실 거 없다. 6월 중순이었지만, 붕어섬의 밤은 무척이나 추웠다. 새벽에는 얼어 죽는 줄 알았다.

 



▲ 평화토크 왼쪽부터 공연기획자 탁현민, 작가 이외수, 개그맨 전유성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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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의 공원에서 행한 백일장대회

 첫째 날인 15일에는 사전 행사로 '평화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기획자 탁현민씨가 사회를 맡았는데 오프닝 멘트로 이런 말을 했었다.

"이외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외수한테 빚진 사람들은 다 화천으로 와라!"

그렇게 이외수 선생님에게 빚진 사람들이 많았는지 16일에 있은 '평화의 종 콘서트'에는 김제동, 김C, YB 등 국내의 유명 뮤지션과 방송인이 출현하여 축제의 밤을 불태웠다. 달리 보면 이것이 소설가 이외수의 힘인 것 같다. 강원도 화천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학을 테마로 하여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지 않았던가?

문학축전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세계평화안보백일장'은 화천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평화의 종 공원 일대에서 진행됐다. 평화의 종 공원은 2009년도에 평화의 댐 바로 옆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그 곳 중심부에는 평화의 종이 걸려있었다.

평화의 종은 높이 4.7미터에 무게가 무려 35톤에 달하는 거대한 종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만든 무척 특별한 종이다. 현재도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지구촌을 위해 그 평화의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백일장을 치르고 있을 때 종을 치니까 그건 별로였다. 전날 붕어섬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잤던 터라 집중이 안 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땡~'하고 종을 치니, 어쩌란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나는 원고를 제출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하지만 1등이 아니더라도 2,3등 정도만 되도 여행비가 빠지고도 남으니, 한편으로는 느긋해 있었다.

 

 

 



▲ 평화의 종 평화의 종은 세계 분쟁지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만든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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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장이 '꽝' 됐어도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계속해야...

 


'2등 상금이 기백만 원 정도 되니까, 남은 여행을 좀 풍족하게 보낼 수 있겠군! 시간되면 정선에 있는 카지노에서 한판 땡기고 가야겠어! 푸하하!'

개뿔, 땡기길 뭘 땡겨! 결과는 꽝이었다. 붕어섬에서 벌벌 떨며 버텼던 지난 시간이 너무나 허무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승복을 해야지. 재미나게 화천 구경도 하고 했으니, 그렇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십 몇 년 전의 약속을 깨고 다시 와서 화천과 재회를 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실 난 강원도 화천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그래서 아웃도어를 하면서도 화천 쪽은 계속 누락을 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화천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화천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천국이었던 것이다. 아참, 공연기획자 탁현민씨도 화천에서 군대 생활했다고 한다.

그렇게 <2012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마무리 됐다. 하지만 처음 시작되는 행사라 그런지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수상자들에게 미리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는지 상을 수여받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덤덤했다. 하물며 천 만 원의 상금을 받는 1등 당첨자의 모습은 덤덤하다 못해 무척 차분해보였다. 명색히 수상식이라면  '와!'라는 함성과 '어머 어떡해'라는 놀라움이 교차해야 하는데, <세계평화안보 백일장>의 수상식은 긴장감은커녕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 김C와 뜨거운 남자 평화의 종 콘서트에 오프닝을 맡았던 밴드 뜨거운 감자. 뜨거운 감자에서 김C는 기타 겸 리드보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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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자들이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을 것을 우려한 주최측이 미리 수상자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 같은데, 다음 대회부터는 그런 편법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본인은 백일장에 떨어졌다는 충격과 수상식에서 받은 허무감 때문에 화천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고 말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게 컸기에 그냥 화천에서 하루를 더 보내며 체력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 북한강가의 캠핑장 숙박 시설이 부족한 화천에서는 이렇게 군청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 있었다. 붕어섬의 맞은편에 있는 캠핑장인데 군청에서 운영하는 터라 비용이 무료였다. 그날 캠핑장에는 나 혼자였다. 무척 쓸쓸하고 추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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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동시에 게재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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