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선대: 미륵봉, 형제봉, 선녀봉

 

 

 

 

 

 

 

글이 넘쳐서 신흥사 포스팅을 이어서 적어본다. 앞선 신흥사 포스팅에서 필자의 마음속의 계곡은 단연 천불동계곡이라고 언급했다. 그만큼 필자에게 천불동계곡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독특한 자태를 뽐내는 각양각색의 기암괴석들이 좌우로 펼쳐져있고 그 사이를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으니...! 더군다나 설악산의 단풍은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그 천불동계곡 사이로 곱게 오색단풍이 든다고 생각해보시라. 장면 장면이 다 환상적인 풍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설악산의 신선이 있다면 그 신선은 가을에는 낙엽을 밟으며 천불동계곡에서 노닐지 모른다. 기왕 노니는 거 선녀탕 근청에서 노닐 거 같다. 어깨빨 좋은 나뭇꾼과 경쟁을 하면서...ㅋ

 

천불동계곡은 골짜기 곳곳에 있는 기암괴석들이 마치 천 분의 부처님 같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또 천불동계곡은 설악골계곡이라고도 불린다. 지난 2013년 3월 11일에 명승 제101호로 지정되었는데 지리산의 칠선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국내 3대 계곡으로 불린다.

 

이렇게 강한 인상을 준 천불동계곡이었지만 사실 이번 방문을 제외하면 딱 한 번밖에 가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쯤에 갔었던 거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도 않는다. 당시에 대청봉에서 일출까지 봤었는데 후기다운 후기를 기록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싸이월드에 기록해서... 해당 포스팅을 거의 방치했었다. 이래서 후기가 중요한 것이다. 제대로된 후기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세월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천불동계곡에서 큰 감흥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제껏 두 번 밖에 방문을 하지 않았다니... 더군다나 후기다운 후기도 없다니... 설악산 마니아들에게 한소리 듣겠다!ㅋ

 

신흥사에서 빠져나와 숲에 들어서면 호젓하게 길을 걸을 수 있다. 숲길이 참 좋다. 그렇게 숲길을 걷다보면 와선대가 보인다. 마고선이라는 신선이 있었다. 필자 같으면 기를 쓰고 선녀탕 근처에서 노닐었을텐데 마고선은 와선대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와선대에서 누워 설악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즐겼다는 것이다.

 

 

 

 

 

 

* 천불동계곡

 

 

 

 

 

 

 

* 와선대

 

 

 

 

 

 

 

와선대를 넘어가면 계곡물은 더욱더 푸르러진다. 누가 일부러 청옥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물색깔이 아주 곱다. 비선대가 가까워지자 계곡은 폭이 좁아져 협곡이 되어갔고 숨겨져있던 비경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흥사 일대가 초입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진정한 천불동계곡의 시작은 비선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비선대의 풍광은 옛 선인들의 마음도 요동치게 했나보다. 바위 곳곳에 각자가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의 글씨도 있다. 한자로 쓰여있으니 잘 찾아봐야 한다.

 

와선대에서 느긋하게 풍광을 즐기던 마고선이 신선이 되어 올라간 곳도 바로 비선대라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비선대 일대를 바라다보면 어디선가 신선이 쓰~윽하고 나타날 거 같은 느낌이들기도 한다. 고개를 들어 우뚝 솟아있는 미륵봉, 형제봉, 선녀봉을 보니 마고선이 하늘로 승천할 때 세 봉우리를 지나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들더라. 기왕 승천하는거 우뚝 솟은 봉우리 위로 올라가야 더 아름다운 승천이 될테니까.

 

미륵봉 중턱에는 자연굴인 금강굴이 있다. 원효대사가 수도를 했다고 전해지는 곳인데 길이가 약 18미터 정도된다. 금강굴에 올라서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또다른 장관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설악산이다!

 

이렇게하여 비선대까지 가는 설악산신흥사 역사트레킹이 종료된다. 천불동계곡에 대해서 강조하면서 기술을 했지만 사실 이 코스는 천불동계곡을 맛배기만 본다. 딱 초입인 비선대에서 종료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천불동계곡의 핵심부를 지나 대청봉까지 올라가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트레킹은 무리를 하지 않는다.

 

향성사지 삼층석탑 -> 설악소공원 -> 신흥사 -> 와선대 -> 비선대(금강굴)

 

편도로 약 6km 정도가 되는 코스다. 설악산의 특성상 그대로 왔던 길로 다시 돌아와야 하니 왕복 약 12km 정도가 될 것이다. 설악산이지만 이 구간은 순하니 길을 걷는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비선대를 넘어 천불동계곡의 핵심부를 보시려면 좀 각오를 하셔야 할 거다. 다리에 파스도 많이 뿌려야 할 거다...ㅋ

 

이제 곧 가을이다. 가을날의 천불동계곡! 생각만해도 몸이 아주 들썩거린다. 이렇게 산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아주 좋게!

 

 

 

 

 

 

 

* 천불동계곡: 숲길

 

 

 

 

 

 

 

*천불동계곡: 비선대 일원

 

 

 

 

 

 

 

 

 

 

* 신흥사: 비가 그친 후. 산 안개가 설악산 봉우리를 두르고 있다.

 

 

 

 

 

 

 

2021년 6월 30일 수요일

 

누구나 다 자신만의 계곡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기암괴석이 그려낸 갖가지 기이한 형상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 그곳에 들어서면 어느 순간 신선이 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경을 간직한 곳! 필자에게는 설악산 천불동계곡이 바로 그런 곳이다. 무척 매력적인 다른 계곡들도 많이 다녀봤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는 천불동계곡이었다.

 

그 천불동계곡 초입에 있는 신흥사(新興寺)에 대한 이야기다. 이 포스팅은 천불동계곡이 아닌 신흥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천불동계곡 이야기하다 갑자기 신흥사로 바꾸다니... 이거 글쓰기가 왜이래!ㅋ

 

신흥사는 2번에 걸쳐 자리 이동을 했고, 역시 2번에 걸쳐 이름을 바꿨다. 그 첫번째 이름은 향성사였다. 향성사는 652년(진덕여왕6)에 자장율사가 개창을 했는데 중향성불국토(衆香城佛國土)라는 뜻을 따서 지은 것이다. '불국토'는 알겠는데 '중향성'이라는 말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중국집 이름인가?ㅋ

 

중향성은 법기(法起)보살이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법기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다르모가타(Dharmogata)로 불리우는데 한자에서도 보이듯 '불법을 세우는 보살'을 말한다. 불법, 합법할 때 그게 아니라 불도를 세운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보살이 바로 법기보살이고, 그가 거처하는 곳이 중향성이라는 곳이다. 짜장면집이 아니고. 이렇듯 향성사는 법기보살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중향성은 금강산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불교에서는 법기보살이 금강산에 거주한다고 말한다.

 

 

 

 

 

 

 

* 신흥사: 안개가 낀 설악산

 

 

 

 

 

 

 

향성사는 원래 지금의 켄싱턴스타호텔 앞에 위치해있었다. 현재의 신흥사에서 동쪽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위치다. 그곳에는 지금도 향성사지 삼층석탑이 자리를 잡고 있다. 버스정류장 앞에 석탑이 있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향성사지 삼층석탑 정류장은 버스종점 한 정거장 전이라 신흥사 매표소까지 그리 멀지 않다. 그래서 설악산신흥사 역사트레킹은 향성사지 삼층석탑에서 시작된다.

 

삼층석탑은 2층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높이가 약 4.3미터에 달한다. 상륜부가 훼손된 터라 온전히 보존이 됐다면 4.3미터 이상이 됐을 것이다. 9세기경에 제작된 삼층석탑은 후기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계승했다. 그래서 국보 443호로 지정되었다. 9세기경에 만들어졌으니 자장율사 시대에 만들어진게 아니다. 이 시기에는 향성사가 선정사로 불릴 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흥사는 두 번이나 이름이 바뀌었다. 향성사가 첫번째 이름이었고, 두번째가 선정사였다. 그렇게 이름이 바뀌게 된 건 향성사에 화재가 발생해 폐허가 됐기 때문이다. 개창한 지 40년이 지난 후였는데 이후 의상대사가 지금의 내원암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재건을 한다. 이때가 701년이었는데 재건을 하면서 사찰 이름을 선정사로 바꾼 것이다. 선정사는 이후 천년동안 번창하게 된다. 그러다 조일전쟁(임진왜란)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642년(인조20)에는 또 화재가 발생해 경내 전체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 향성사지 삼층석탑

 

 

 

 

 

 

 

 

내원암은 현재의 신흥사에서 울산바위 방면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해 있다. 약 2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나저나 향성사지 삼층석탑은 자신의 이름이 맞는지 좀 의아스럽다. 의문점들을 적어본다.

 

1. 690년경에 향성사가 폐허가 됐다. 이후 향성사지에서 북쪽으로 3km 이상 떨어진 곳에 의상대사가 사찰을 재건함. 이때가 701년이었는데 이름을 선정사로 바꾸었음.

 

2. 9세기경에 삼층석탑을 만들었음. 그럼 선정사 삼층석탑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그것보다 더 의아한 것은 왜 이미 폐허가 된 곳에 석탑을 세웠을까? 가보시면 알겠지만 삼층석탑이 있는 곳과 신흥사는 같은 경내로 묶기에는 꽤 거리가 있다. 더군다나 당시는 더 먼 내원암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3. 그럼 향성사가 불에 타기 이전에 삼층석탑이 만들어진 것인가? 그럼 9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건 잘못된 이야기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곳에 있다가 지금의 자리로 이건을 한 것인가?

 

4. 향성사 시절에 9층 석탑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처럼 3층만 남게됐다는 주장을 하는 자료도 있다. 그런데 기단이나 상승률을 고려해 볼 때 9층 석탑의 규모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목탑도 아닌 석탑으로 9층을 쌓는다? 석탑 한 두 번 보나!

 

아이고 머리가 아프다. 가뜩이나 머리도 안 좋은데...ㅋ 이렇게 석탑 하나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우리 문화재는 스토리텔링의 보고 같은 곳이다.

 

향성사지 삼층석탑은 신라계 석탑중에서 가장 최북단에 위치한다는 지리적인 특색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버스에서 꼭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향성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가자.

 

 

 

 

 

 

 

* 신흥사: 극락보전

 

 

 

 

 

 

 

* 신흥사: 통일대불

 

 

 

 

 

 

 

이제 신흥사를 향해 본격적으로 이동하자. 설악소공원과 설악케이블카를 지나가다보면 푸른색의 거대한 부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신흥사 통일대불이다. 통일대불은 좌대 4.3미터, 좌대둘레 13미터 위에 만들어져 있다. 앉아있는 좌상이지만 그 높이가 14.6미터에 달한다. 여기에 머리 뒤에 장식된 두광까지 포함시키면 높이가 무려 17.5미터가 된다. 통일대불은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청동이 약 108톤 정도가 사용됐다고 한다.

 

거대한 불상이니 제작하는데도 오래 걸렸다. 1987년 8월부터 만들기 시작해 10년이 지난 1997년 10월 25일에 점안식(點眼式)을 거행한 것이다. 개안식(開眼式)으로도 불리우는 점안식은 불상에 눈을 그려넣는 것을 말한다. 눈을 그려넣음으로써 신앙의 대상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용의 눈을 그려넣는 화룡정점을 연상해보자. 그러고보면 점안식은 거칠게 말해 불교식 준공식인 셈이다.

 

통일대불 앞에서 경건하게 삼배를 한 후 신흥사 중심공간으로 향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보제루가 나온다.

보통 큰 사찰에는 절의 중심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거대한 누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누각은 통상 1층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2층은 법회 장소로 쓰인다. 이런 누각을 보통 보제루라고 부른다. 하지만 꼭 그 이름으로만 불리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누각은 안양루다. 서울의 명찰 진관사에서는 홍제루라고 부른다.

 

정면7칸 측면2칸으로 만들어진 신흥사(神興寺) 보제루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신흥사 보제루는 1644년(인조22)에 만들어졌는데 이 해에 드디어 신흥사라는 이름이 자리잡게 된다. 천년동안 번성하던 선정사가 1642년에 불 탄 후, 2년 뒤인 164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건을 했고 드디어 신흥사라는 이름표가 생긴 것이다.

 

향성사 -> 선정사 -> 신흥사

 

무슨 사찰이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신흥사 보제루는 강원도 시도문화재유형문화재 제 10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동네 팔각정처럼 사방이 다 오픈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1971년에 분합문을 달아서 현재와 같은 구조로 변했다.

 

보제루에는 향성사 시절에 만든 범종이 있다. 무려 14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범종은 무게가 약 600kg 정도 된다. 1748년, 1758년, 1788년 세 번에 걸쳐 개주를 하기도 했다. '개주'는 활자나 주물, 즉 금속물을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화포는 대다수 청동으로 만들어졌는데 화포를 다시 만드는 것도 개주라 하였다. 활발하게 북방 개척에 나섰던 세종대왕 시기에 화포를 개주했다는 내용이 실록에 기재되기도 했다.

 

보제루 이야기하다 개주이야기까지. 얼핏 들으면 곗돈 모으는 계주 같다.ㅋ

 

 

 

 

 

 

 

 

* 신흥사: 보제루

 

 

 

 

 

 

 

* 신흥사: 극락보전. 왼쪽에 명부전이 보인다.

 

 

 

 

 

 

 

 

보제루를 지나 본전인 극락보전으로 가보자. 독특한 계단돌과 형형색색의 창살이 인상적인 극락보전이 탐방객들을 반길 것이다. 정면3칸, 측면3칸으로 이루어진 극락보전은 1648년(인조 25)에 만들어졌다. 이후 여러번 보수를 했지만 그래도 그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2018년 6월 4일에 보물 제1981호로 승격된다. 그 이전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14호였다. 검색을 해보니 아직까지도 몇몇 백과사전은 보물이 아닌 유형문화재로 표기하고 있었다. 문화재 데이터베이스는 좀 늦나?ㅋ

 

신흥사는 효종이 향로를 순종이 청동시루를 하사하는 등 조선왕실과 연계가 깊은 사찰이었다. 가신이의 명복을 비는 원찰이었다. 그래서 일반사찰과는 다른 모습의 형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극락보전 돌계단 옆을 보시라. 일반 태극이 아닌 삼태극이 있다. 삼태극은 조선왕릉의 정자각 돌계단에서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일반 사찰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모양이다.

 

삼태극 옆에 치우천왕처럼 생긴 귀면이나 아랫쪽에 조각된 용머리도 무척 인상적이다. 이렇게 장식된 부분을 계단의 소맷돌이라고 부른다. 신흥사 극락보전의 계단 소맷돌은 정말 멋지다! 이외에도 극락보전의 창살도 참 독특하다. 창살에 꽃 장식을 했는데 이걸 솟을빗꽃살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어렵지만 어쨌든 참 아름답다.

 

극락보전의 외관이 이렇게 아름다운만큼 실내에도 귀중한 보물이 모셔져 있다. 바로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1651년에 제작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각승 무염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안정된 비례미와 세련된 기교미가 조화된 여래좌상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9월 5일에 보물 제 1721호로 지정된다.

 

이승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비는 곳, 명부전을 둘러볼 차례다. 1737년(영조 13) 지어진 신흥사 명부전은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1651년에 제작된 신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도 무염이 제작하였다. 기법이 뛰어나고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밝혀진 작품이기에 2012년 2월 22일에 보물 제1749호로 지정되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나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둘 다 조각승 무염이 1651년에 제작했고, 1년의 간격을 두고 모두 보물로 승격됐다. 그만큼 조각승 무염의 예술미가 뛰어났다는 뜻일 거다.

 

 

 

 

 

 

 

* 신흥사: 명부전

 

 

 

 

 

 

 

 

신흥사 명부전도 외관이 독특한 면이 있다. 조선 후기인 1737년(영조 13)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외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보면 중앙의 문은 건물 높이에 맞게 큼직한데 좌우칸에 달린 문은 크기가 작다. 좌우칸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는 머리를 쿵하고 부딪히기 쉽상이다. 일부러 그랬을까? 일부러 그랬다. 안내문을 보니 아래를 둘러보자는 '하심(下心)'을 생각하며 명부전에 출입하라는 뜻이다. 하심은 자기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

 

하심과 유사한 말로 조고각하(照顧脚下)도 많이 쓰인다. 자신의 발밑을 잘 보라는 뜻으로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하심이든 조고각하든 불가에서는 겸손과 겸양을 중시한다. 신흥사 명부전에서는 알아서 하심이 발휘될 거다. 그렇지 않으면 헤딩을 하는 것이고. 문 하나를 드나들면서도 삶의 지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빗줄기가 내리는 날에 신흥사를 탐방했다. 덕분에 산 안개를 걸친 설악산의 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신흥사의 한옥 지붕들과 엮어서 사진을 찍으니 한 편의 예술이 탄생하는 느낌이었다. 기암괴석과 그것을 두르고 있는 안개, 그것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한옥들... 혹시 저기에 신선이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사진찍고 내가 감탄하고!ㅋ

 

이제 신흥사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선다. 오른쪽에 있는 울산바위가 자꾸 손짓을 하지만 천불동계곡으로 방향을 잡고 간다. 일단 신흥사 옆 숲길에 발을 디디면 천불동계곡 입구에 들어선 것이다.

 

글이 넘치니 천불동계곡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으로...

 

 

 

 

 

 

* 신흥사: 극락보전의 계단 소맷돌. 용머리가 인상적이다.

 

 

 

 

 

 

* 신흥사: 명부전. 중앙칸의 문보다 좌우측의 문이 높이가 낮다. 중앙은 부처님이나 스님이 출입하는 문이고, 좌우측 문은 일반 신도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하심을 생각하지 않고 들어가다가는 쿵하고 헤딩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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