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6월 4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의 원문글입니다. 오마이뉴스 측은 제 원문을 많이 수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바뀌었고, 원고 분량도 많이 줄어 들었지요. 오마이뉴스나 저나 더 많은 클릭수가 유인되기를 원할 겁니다.  사실 저도 욕 먹어도 괜찮으니까, 제 글이 많이 클릭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낚시성 기사에 대한 유혹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유혹에 쉽게 굴복하면 안되겠지요. 하지만 언제 그런 유혹들에 넘어갈지 모르죠~ㅋㅋㅋ

 

원문글이 많이 수정되고, 가위질 당하다보니 문맥이나 글의 흐름이 많이 어그러졌더군요. 저는 글을 작성할 때 흐름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어감 하나하나에도 무척 신경을 씁니다.  제가 독자의 입장에 섰을 때도 글의 흐름이 매끄러운 글들에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오마이뉴스는 기사분량을 줄이려는 측면에만 맞춰서 편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점을 찍으며 강조하려던 부분도 들어내버렸더군요. 그렇게되니 제 글은 뜀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애초 저는 탄탄한 다리를 놓을 생각을 갖고 글을 작성했는데 오마이에서 발행된 글을 보니 중간중간이 짤린 징검다리가 되어버렸더군요. 그나마 그 징검다리도 일정한 간극을 유지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예전부터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편집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항의도 해보고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게 무명 시민기자의 설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유명인들의 칼럼이나 에세이도 윤문을 거쳐 편집됩니다. 하지만 무명작가들의 글처럼 확 짤리지는 않습니다.

뭐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가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확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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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인 루소와 보수적인 고승덕의 공통점

 

필자는 장자크 루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친딸에게서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적합하지 않다고 거명된,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보고 있자니 장자크 루소의 생애부터 떠올랐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 장자크 루소와 <에밀>

 

장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 <인간불평등의 기원> 같은 역작들을 출간하여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혁명적인 인물이 아닌가? 그에 비해 고승덕 교육감 후보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까지 지냈고, 또한 BBK 사건에서 MB쪽 변호사로 일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렇다. 고 후보자는 말 그대로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럼 도대체 프랑스 대혁명에 큰 영감을 준 혁명적 사상가와 보수 교육감 후보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완전 다른 스타일의 삶의 궤적을 가진 분들 같은데... 둘 다 교육과 관련된 업적을 쌓거나 쌓으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고,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다는 점이 그 둘의 공통점이다.

 

루소는 1762년에 <에밀>을 출간하게 된다. 소설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근대교육학의 한 획을 그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루소 시대의 아동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받지 못했다.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에 루소는 <에밀>에서 아동중심주의를 역설한다. ‘아동의 발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에밀>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아동 교육 문화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낸 아동중심 교육자

 

이토록 아동중심주의 교육방법을 역설했던 루소의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루소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루소는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고 말았다. 루소의 아이들은 그의 아버지가 역설한 아동중심주의 교육을 구경도 못해 봤던 것이다. 대단히 역설적이다. 아동중심주의 교육법을 강력히 주장했던 이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으니

 

태어나마자 어머니를 잃는 등, 루소가 아무리 불후하게 성장을 했고, 또한 그 이후의 삶도 팍팍했다고 하지만 다섯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더 많이 손가락질을 했다. ? 그가 <에밀>이라는 아동중심주의 서적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붙이도 잘 양육하지 못한 인물이 교육에 대해서 운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남에 애들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말고, 당신 애들이나 잘 챙겨!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그래...!”

 

이런 비판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실제로 루소가 직면했던 비판의 화살들이다. 또한 지금까지도 그에게 붙여진 꼬리표다. 쉽게 떼어지지 않는 꼬리표.

 

그럼 저런 비판의 화살들이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게 조준된다면? 저런 비판들 앞에서 고승덕 후보가 느긋할 수 있을까? 물론 프랑스 부르봉 왕가 시절을 살았던 루소와 2014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고 후보의 처지를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재벌가에서는 고시 3관왕도 그저 그런 스펙?

 

고승덕 후보의 경우는 루소의 경우와 달리 이혼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가족사의 아픔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고 후보는 고시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스펙을 쌓았고, 이후 재벌가인 박태준의 사위가 됐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나 보다. 고 후보자가 61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재벌가의 사위되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시 3관왕도 재벌가 앞에서는 그저 그런 스펙이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고 후보자는 동정표를 얻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미국 시민권자로 키우려고 했던 재벌가와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사위간의 다툼에서 처절하게 패배를 하여, 그로 인해 아이들을 빼앗겼다면 그것 자체가 동정 여론일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길래 제 딸과 아들을 빼앗아갔나 하는 생각에 저는 미국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인간 고승덕의 고뇌까지 읽혀질 정도였다. 박태준가()와의 갈등의 골이 그랜드캐넌보다 깊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한편 그 대목만 얼핏 보면 반미를 부르짖는 종북좌파라고 색깔론 공격을 당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인간적인 고뇌의 대목을 읊조리며 고승덕 후보가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서 사퇴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진짜 동정여론을 얻었을지 모른다. 차기 광역단체 후보 등, 더 큰 정치적인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광작 목사가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어째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라며 망언을 했을 때, 그 자리에 고승덕 후보자가 있었는지 아닌지 하는 진실공방도 사퇴기자 회견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다. 또한 전교조만큼은 손을 보겠다라고 언급을 했느니, 안 했느니 하는 다툼도 저편으로 날라 갔을 것이다.

 

하지만 고승덕 후보는 문용린-박태준의 정치공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후보직 사퇴를 거부했다. 이로써 고승덕의 딸, 캔디 고는 문용린-박태준고승덕 낙선커넥션의 돌격대원이 되었다.

권력이 무섭기는 무섭다. 자신의 혈육도 반대편 후보의 정치공작원으로 돌려세울 만큼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자신의 혈육과 대척점에 서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쟁취를 해야 하는 것이 권력에 내재된 습성일지도 모른다.

 

 

 

 

 

 

 

 

 

#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VS 딸이 폭로한 고승덕

 

장자크 루소가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외부의 폭로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폭로를 했던 것이다. 루소는 말년에 <고백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의 참회록들을 연이어 저술하는데 그런 서적들에서 자신의 치부와 모순을 스스로 드러냈던 것이다. 이런 자신의 모순에 대한 스스로의비판과 성찰은 오히려 루소의 사상과 작품을 더 빛나게 해주었다. 그런 참회를 통해 루소는 그저 그런입 진보들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승덕의 경우는? 자신의 딸이 직접 페이스북에서 폭로를 했다. 고승덕의 모순을 자신의 혈육이 폭로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인데, 그런 아버지가 서울시의 교육감이 된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미국에서 터를 잡은 캔디 고 입장에서는 보수 후보가 되던 진보 후보가 되던 무슨 상관이 있겠냐, 이 말이다.

 

 

 

 

 

 

만약 61일에 고승덕 후보자가 깨끗이 사퇴를 했으면 이 기사도 작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선거판에 나온 정치인이라지만 그들의 가족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것이 무척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필자는 유명한 정치 평론가도 아니고, 그저 역사트레킹을 행하는 여행작가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여행작가가 너무 정치색이 강한 기사를 작성한 것 같다.

기왕 정치색이 강한 발언을 한 김에 하나 더 해보자. 필자는 고승덕 후보가 교육감으로 선출되는 것이 무척 우려스럽다. 재임기간 내내 이런 꼬리표가 따라 붙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에 애들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말고, 당신 애들이나 잘 챙겼어야지!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고 그래...!”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

오마이뉴스|입력2014.06.03 22:59

 

 

 

[오마이뉴스 곽동운 기자]

자신의 친딸로부터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 받은,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보고 있자니 장 자크 루소의 생애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프랑스 대혁명에 큰 영감을 준 혁명적 사상가와 보수 교육감 후보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둘 다 교육과 관련된 업적을 쌓거나 쌓으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고,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루소는 1762년에 < 에밀 > 을 출간한다. 소설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근대교육의 한 획을 그은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루소 시대의 아동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 받지 못했다.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에 루소는 < 에밀 > 에서 아동중심주의를 역설한다. '아동의 발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 에밀 > 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아동 교육 문화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낸 '아동중심 교육자'



▲ 에밀루소는 < 에밀 > 에서 아동중심주의 교육을 역설한다.

ⓒ 미네르바

 


이토록 아동중심주의 교육방법을 역설했던 루소의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루소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루소는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고 말았다. 루소의 아이들은 그의 아버지가 역설한 '아동중심주의 교육'을 구경도 못해 봤던 것이다. 대단히 역설적이다. 아동중심주의 교육법을 강력히 주장했던 이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으니.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는 등 루소가 아무리 불후하게 성장을 했고, 또한 그 이후의 삶도 팍팍했다고 하지만 다섯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손가락질을 했다.

왜? 그가 < 에밀 > 이라는 아동중심주의 서적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붙이도 잘 양육하지 못한 인물이 교육에 대해서 운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의 애들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말고, 당신 애들이나 잘 챙겨!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그래!"

이런 비판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제로 루소가 직면했던 비판의 화살들이다. 또한 지금까지도 그에게 붙여진 꼬리표다. 쉽게 떼어지지 않는 꼬리표.

그럼 이러한 비판의 화살들이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게 조준된다면? 고승덕 후보가 느긋할 수 있을까? 물론 프랑스 부르봉 왕가 시절을 살았던 루소와 2014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고 후보의 처지를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딸의 폭로를 '정치공작'으로 만든 고승덕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

ⓒ 고승덕 후보 홈페이지

 

고승덕 후보의 경우는 루소의 경우와 달리 이혼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가족사의 아픔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고 후보는 '고시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스펙을 쌓았고, 이후 재벌가인 포스코 박태준 회장의 사위가 됐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나 보다.


고 후보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재벌가의 사위되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시 3관왕도 재벌가 앞에서는 그저 그런 '스펙'이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고 후보는 동정표를 얻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미국 시민권자로 키우려고 했던 재벌가와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사위간의 다툼에서 처절하게 패배해, 그로 인해 아이들을 빼앗겼다면 그것 자체가 동정 여론일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길래 제 딸과 아들을 빼앗아갔나 하는 생각에 저는 미국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인간 고승덕의 고뇌까지 읽혀질 정도였다. 그런 인간적인 고뇌의 대목을 읊조리며 고승덕 후보가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서 사퇴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진짜 동정여론을 얻었을지 모른다. 차기 광역단체 후보 등 더 큰 정치적인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승덕 후보는 문용린-박태준가의 '정치공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후보직 사퇴를 거부했다.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vs. 딸이 폭로한 고승덕

 


장 자크 루소가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외부의 폭로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폭로를 했던 것이다. 루소는 말년에 < 고백록 > ,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 등의 참회록들을 연이어 저술하는데 그런 서적들에서 자신의 치부와 모순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런 자신의 모순에 대한 스스로의 비판과 성찰은 오히려 루소의 사상과 작품을 더 빛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고승덕 후보의 경우는? 자신의 딸이 직접 페이스북에서 폭로를 했다.

필자는 고승덕 후보가 교육감으로 선출되는 것이 무척 우려스럽다. 재임기간 내내 이런 꼬리표가 따라 붙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의 애들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말고, 당신 애들이나 잘 챙겨!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그래!"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제가 작성한 <혁명적인 루소와 보수적인 고승덕의 공통점>이라는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배치됐더군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서 발행이 됐네요. 더군다나 본문 내용도 많이 바뀌어졌더군요. 메인에 걸어줘서 고맙기는한데 그래도 최대한 원작성자의 의도대로 원문을 살려줘야 하지 않을까?

 

제가 작성한 원문글은 원고지 21매 분량으로 감상적인 면이 많은 에세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는 <정치적 주장>으로 바꿔버렸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그 신문사의 편집권을 존중하지만 필자의 의도대로 글을 최대한 살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힘없는 시민기자의 서러움이라고 할까요?

 

위에 보시면 빨간색 네모난 박스처리를 된 것이 제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캡처를 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더 큰 것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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