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내륙자전거여행 3편] 아웃도어 스펙 조작하기

여행 후기, 걸러서 보세요

13.12.16 15:40   최종 업데이트 13.12.16 15:4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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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금계천에서 캠핑을 했을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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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째 : 2013년 8월 16일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을 출발한 필자는 홍천을 거쳐 횡성군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낮 12시에 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전날 야간주행의 여파로 너무 밤늦게 잠이 든 게 원인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몸상태가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적합할 정도로 달아오른(?) 것도 아니었으니 삭신이 다 쑤실 정도였다. 그래서 필자는 묘한 신음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아~ 정말 적응 안 되네. 몇 년을 달렸어도 여행 첫날이랑 그 다음날은 죽음이란 말이야! 오늘은 기필코 해 떨어지기 전에 텐트 치고 자야지. 오늘 저녁은 두부 송송 썰어서 김치찌개 해먹어야겠다. 푸하핫! 오늘은 캠핑 특별식이다!'

 

 

#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라는 소리다. 그렇다. 이 속담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깊게 새겨 들여야 하는 격언일 것이다. 그건 자전거 여행이든 도보 여행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의 체력, 장비의 한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진격! 진격"만 외치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여행을 통해 하나라도 배워가야지 여행이 '중노동'으로 변질된다면 곤란해진다.

스스로에게 적합한 일일 적정 주행거리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이동을 한다면 보다 더 즐겁고 재밌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일일 적정 이동거리는 자전거 여행일 때는 50~60km, 도보 여행일 때는 20~25km이다. 둘 다 취사와 캠핑장비로 완전무장한 상태를 가정한 것이다.

자전거 여행일 때는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달 수 있어서 상황이 좀 낫다. 하지만 도보 여행일 때는 거의 2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배낭을 온전히 자신의 신체만으로 버텨야 한다. 그래서 장거리 도보 여행을 떠날 때는 5~6일을 이동했으면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좀 더 여유롭게 여행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에 기울어져 있다. 필자의 경험과 아웃도어 선배들의 의견들을 한 데 모아서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의 체력이 좋으면 하루에 100km 이상을 주행할 수도 있고, '천리행군' 빰칠 정도로 수십 킬로를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고유의 특색이 중노동으로 변질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타협책이 바로 일일 적정 이동거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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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골터널 홍천군 북방면에서 홍천 읍내를 향해 갈 때 이용했던 잿골터널.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한쪽에 보행자 통행로가 있다. 방음벽까지 갖춘 보행자 통로가 인상적이어서 한 컷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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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리어 '뻥튀기'의 유혹


전에 어떤 유명 여행 블로그를 눈팅하면서 혀를 찬 적이 있었다. 4개월 동안 무려 1800km의 거리를 도보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여름인 6월에서 9월 사이에 그랬다는 것이다. 억지로 하면 할 수도 있을 듯싶지만 그래도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았다.

'이 분은 장맛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트레킹을 하셨나? 한 여름에는 제대로 아웃도어를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신규 진입을 하는 여행판. 더 정확히는 여행작가판에서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의 스펙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려고 무진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그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한 곳이라도 여행지를 더 다니려고 발품을 팔고, 글감을 뽑아내려고 에피소드 찾는 데 혈안이 된다.

그런 와중에 유혹도 생긴다. 커리어를 '뻥튀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웃도어 스펙을 조작하는 것이다. 500km짜리 도보여행을 했는데 거기에 한 300km를 더 붙여서 800km 정도로 늘려 잡는 것이다. 딱히 검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500이 고무줄처럼 800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500보다는 800이, 5000보다는 8000이 더 장사가 잘 되는 법이다. 5000을 뛴 것보다는 8000을 뛰었다고 하면 방송이나 언론에서 더 주목을 받지 않겠는가? 카메라는 조금이라도 더 드라마틱한 그림을 요구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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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강 강원도 홍천군을 흐르고 있는 홍천강. 이 강은 북한강의 지류이다. 앞쪽에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는 곳에 들어선 아파트가 눈에 띄어서 한 번 찍어보았다. 그러고보면 이곳도 강변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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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원웨이(편도) 티켓만으로 세상을 누볐다는 이야기도 필자는 물음표를 붙인다. 이런 식으로.


'여비나 생활비는 그렇다 쳐도, 비자 받을 때도 공짜로 받을 수 있나?'

누군가는 필자에게 이렇게 질책을 하실 수도 있겠다.

"너는 그렇게 잘났냐? 넌 네가 주장하는 커리어가 딱 일치하냐? GPS로 다 찍어봤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GPS로 다 찍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의 GPS는 싸구려라서 그런지 기록이 고무줄로 나온다. 간간이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웃도어 여행을 하는 필자가 왜 이런 제살 깎아먹기(?)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가. 커리어 '뻥튀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필자가 왜 이런 동업자 정신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는가. 이런 주문을 드리고 싶어서다.

'걸러서 보세요. 너무 액면 그대로 믿지 마시고! 아웃도어도 따라쟁이 식으로 하지 마시고 주체적으로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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