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브롤터암벽: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재미난 스페인 2편> 지브롤터

신화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먹방적 상상력!

 

 

지브롤터 VS 세우타

둘 중 어느 곳이 더 익숙한가? 당연히 지브롤터일 것이다. 지브롤터해협이란 지명이 워낙 유명하니까. 이에 비해 세우타는 새우탕과 발음만 비슷하지 처음 접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세우타보다는 지브롤터를 앞세우는 것이 맞다. 하지만 본 매거진의 명칭이 명색히 <재미난 스페인>이 아닌가? 아무리 인지도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더라도, 스페인 땅이 아닌 지브롤터를 앞쪽에 배치할 수가 없었다.

세우타가 모로코 땅에 있는 스페인령 비지라면, 지브롤터는 스페인 땅에 있는 영국령 비지이다. 지브롤터는 우뚝 솟아있는 암벽이 인상적인데 이를 두고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칭한다. 이외에도 '자발 타리크'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타리크의 산'이라는 뜻으로 지브롤터의 어원이 됐다.

지브롤터에서 건너편 아프리카까지는 채 20km도 되지 않는다. 폭이 협소한 지브롤터해협을 두고 북쪽으로는 지브롤터, 남쪽으로는 세우타가 위치해 있는 것이다. 이런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고대시대부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1700년, 스페인왕 까를로스 2세(Carlos II, 재위 1665-1700)가 사망한다. 그는 4살에 재위에 올랐는데 어려서부터 병약했고, 왕위를 이을 자식도 없었다. 카를로스 2세는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공 펠리페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루이 14세는 카를로스 2세의 매형이었다. 유명한 펠리페 2세를 포함한 16~17세기 스페인왕들은 합스부르크 혈통이었지만 이제 부르봉 왕가로 왕위가 넘어갈 판이었다. 프랑스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든 태양왕 루이 14세! 루이 14세의 혈통이 스페인땅도 통치할 기세였다.

그러나 당시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황제의 아들인 카를 대공이 왕위 계승권을 요구했다. 레오폴트 황제도 역시 카를로스 2세의 매형이었다. 정리하자면 첫번째 누이는 루이14세, 두번째 누이는 레오폴트 황제에 시집을 간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가 더욱더 강성해지는 걸 두려워한 유럽의 주요국들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를 두고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1701년부터 1714년까지 이어졌다.

 

 

 

 

* 넬슨제독상: 넬슨 제독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스페인-프랑스 함대에 맞서 큰 승리를 거두웠다. 트라팔가 해전은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 아니라 나폴레옹과의 전쟁 중(1805년)에 벌어졌다. 트라팔가와 지브롤터는 약 60km 정도 떨어져 있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영국은 어느 편에 섰을까? 프랑스-스페인 연합의 반대편에 섰다.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1704년에 영국은 지브롤터를 점령하게 된다. 유럽을 뒤흔든 전쟁은 1714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인해 일단락 됐고 스페인은 큰 영토의 손실을 입게 됐다.

왕위는 어떻게 됐을까? 루이 14세의 손자 앙주공이 스페인왕 펠리페 5세가 됐다. 대신 프랑스왕을 겸임할 수 없다는 조건이 걸렸다. 루이 14세가 간절히 원했던 프랑스와 스페인이 결합되는 연합왕국은 탄생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때부터 스페인 왕실은 부르봉 왕가가 된다.

가까이에서 바라다보니 지브롤터 암벽은 삼각뿔 형태로 암반면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왕산 역사트레킹이 생각났다.

"인왕산 치마바위쪽을 보세요. 암반면이 잘 노출됐죠? 계속 보시다보면 에너지 넘치는 돌산의 기운이 느껴질 겁니다!"

강의에 집중시키기 위해 저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히려 더 떠들썩해졌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돌산의 강한 기운 때문인가? 이곳 지브롤터는 세우타와 함께 헤라클레스(Heracles)가 괴력을 발휘했던 곳이다.

힘의 상징인 헤라클레스는 서양에서는 허큘리스라고도 불린다. 그는 제우스가 바람을 펴서 낳은 아들이라 제우스의 정실 부인인 헤라의 시기를 태어날 때부터 받게 된다. 헤라의 저주는 헤라클레스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됐는데 급기야는 그가 광기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다. 미쳐버린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손으로 부인과 아이들을 죽이고 만다.

처자식을 죽인 죄를 씻기 위해서 그는 12가지 과업을 이행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서쪽 바다에 있는 에리페리아라는 섬에 가서 게리온의 소를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게리온은 머리가 3개, 몸통도 3개인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고 하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게리온이 사는 에리페리아는 가기도 험난했다. 가는 길목에 험준한 아틀라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괴력이 발휘된다. 아틀라스 산맥의 산줄기를 지워버린 것이다. 이때 바다를 막고 있던 산맥이 둘로 갈라지면서 새로운 바닷길이 열린다. 그 바다가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지브롤터해협이었다. 둘로 갈라진 산 기둥은 하나가 유럽쪽 지브롤터이고, 또 하나가 아프리카쪽 세우타이다. 그 두 기둥은 스페인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헤라클레스는 게리온을 때려잡았고, 그의 소를 끌고 갔다. 이후 나머지 과업들도 잘 마무리했는데 죽어서는 승천하여 올림포스의 신이 된다.

 

 

 

* 지브롤터 헤라클레스 기둥: 세우타에 있는 기둥상보다 못하다.

 

 

 

한편 그리스 신화를 통해 옛 그리스인들의 지리적 세계관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들은 서쪽으로는 아틀라스 산맥, 동으로는 캅카스 산맥까지를 인식 범위로 두고 있었다. 캅카스 산맥은 코카서스 지방에 있는데 그곳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있다고 전해진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줘 제우스의 미움을 사게 됐고, 벌로 독수리에 의해 심장이 쪼이는 형벌을 받게 된다. 나중에 헤라클레스가 그 독수리를 때려잡아 프로메테우스를 자유롭게 해 준다.

아틀라스 산맥에는 아틀라스가 우주를 떠받드는 형벌을 받고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과업중에 아틀라스의 딸들이 지키는 황금사과를 얻어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이에 아틀라스는 우주를 떠받드는 일을 잠시 헤라클레스에게 맡기고 황금사과를 얻어온다.

케이블카를 타고 지브롤터 암벽 정상부에 올라섰다. 푸른빛의 지중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왜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인지 알 수 있었다. 바다건너 북아프리카 모로코가 보였다. 스페인령 세우타도 보였다.

모로코가 세우타의 반환을 요구하듯이 스페인도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한다. 프랑코 정권 시절인 1969년에는 경제적 고립을 노리고 국경을 봉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2002년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영국령 잔류에 대한 비율이 98%가 나왔다. 지브롤터 주민들은 스페인의 정치적 혼란, 경제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들어 잔류에 표를 던진 것이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지브롤터 갈등이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말하는 브렉시트로 다시 부상했다. 지브롤터 주민들은 본국과는 달리 95%가 유럽연합 잔류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공동주권을 주장하며 'EU 잔류'를 회유책으로 제시했다. 영국정부는 당연히 반발했다.

스페인 땅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모로코 땅에 있는 스페인령 세우타를 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이 든다. 자신의 기둥이 박힌 두 도시가 모두 영유권 분쟁에 휩싸여 있다니! 헤라클레스는 어떤 느낌을 가질까? 이건 신화적 상상력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일일테지...

답사를 열심히했더니 배가 고프다. 지브롤터 암벽이 삼각김밥처럼 보인다. 신화적 상상력은 빈약하더라도 먹방적 사고가 넘쳐나는 순간이다.

 

 

 

* 지브롤터해협 일대 지도

 

 

 

 

* 헤라클레스기둥: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다. 왼쪽에 바다 건너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지브롤터다.

 

 

 

<재미난 스페인 1편> 세우타

매운맛일줄 알았는데 섞인맛이었네!

 

'세우타? 새우탕이 아니고?'

처음 세우타(Ceuta)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평소에 워낙 새우탕 사발면을 좋아해서 저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입맛을 다시며 스페인이 포함된 이베리아 반도 지도를 찾아보았다. 마드리드, 바로셀로나, 세비야, 빌바오 등등...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팀들의 연고지 위주로 찾아보았다. 없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서 찾아보았다. 팜플로냐, 부르고스, 레온 등등... 역시 없다. 옆나라 포르투갈까지 샅샅이 찾아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니가 거기 왜 있어. 그러니까 찾기가 힘들지!'

세우타는 이베리아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히는 모로코 땅 한 켠에 섬이 아닌 섬처럼 고립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영토이지만 다른나라 안에 있는 땅을 두고 비지(飛地)라고 부른다. 한자 '날비(飛)'가 쓰인 것처럼 본국과는 떨어져 있는 영토다. 참고로 비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다.

세우타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롤터(Gibraltar)해협에 위치해 있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쪽으로는 영국령 지브롤터가 있고, 북아프리카쪽으로는 세우타가 있는 것이다. 지브롤터 해협은 좁은 곳은 폭이 20km가 안 될 정도다. 대서양과 지중해가 교차하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손에 닿을 듯 바라다보이니 지브롤터해협 일대가 얼마나 중요하겠나! 지정학적인 눈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딱보면 알 정도일 거다.

그런 세우타에 항구를 건설한 이들은 카르타고인들이었다. 카르타고인들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데 그게 바로 포에니 전쟁이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그 유명한 한니발이 활약한다. 한니발이 기세를 올렸지만 카르타고는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다. 세우타도 로마의 세력권 안에 놓이게 된다.

대륙과 대륙이 만나는 문명의 교차점이어서 그랬나? 세우타는 반달족들이 쳐들어 오기도 했고, 비잔틴제국이 점령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가 이슬람화가 된 이후에는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더불어 711년, 이베리아반도에 이슬람 무어인들이 침공하여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때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그리스도교 왕국들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고 불리는 국토회복운동에 나선다.

15세기가 됐고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먼저 돛을 높이 달고 대서양으로 향한 건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이었다. 당시 스페인 남부에는 이슬람 무어인들의 나라가 계속해서 항전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그라나다 왕국이 바로 그것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으로 향한 때가 1492년이었다. 이 해에 그라나다 왕국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레콩키스타도 종료된다.

1415년 세우타는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된다. 세우타 공략에는 항해왕 엔히크(Henrique)가 앞장섰는데 그는 포르투갈왕 주앙 1세의 셋째 아들이었다. 포르투갈은 세우타를 통해 북아프리카에서의 세력 확장에 나서게됐다. 대항해시대의 서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참고로 엔히크는 '항해왕'이었지만 진짜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다음 왕위는 첫째 아들인 두아르테가 이어받았다.

 

 

 

* Royal Walls: 직역하면 '왕립장벽'이 될 것이다. 애초 이 성벽은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스페인이 세우타를 점령했고, 왕립장벽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계속 보강되었다. 성체에 여기저기 탄환의 흔적들이 있다. 보기만해도 참 치열하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카르타고는 왜 나왔고, 레콩키스타는 또 무엇인가? 더군다나 스페인 땅이라면서 포르투갈 항해왕은 왜 또 불쑥나왔는가?

익숙지 않은 지명에 낯선 이름까지... 세계사 공부를 제대로 안 했던 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다. 그래도 세우타로 가는 여객선은 지브롤터 해협을 시원스럽게 내달리고 있었다. 객실밖으로 나갔더니 그 유명한 지브롤터 암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1578년이었다.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1세(Sebastião I)가 모로코인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만다. 당시 세바스티앙 1세의 나이가 24살이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아 왕비도 없었고, 후사도 없었다.

1580년, 이런 권력 공백을 틈타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을 병합하기에 이른다. 이후로 세우타는 스페인의 통치하에 놓인다. 60년간의 합병을 뒤로 하고, 1640년에 포르투갈이 스페인에서 독립했을 때도 세우타는 계속 스페인령으로 남게 된다.

미끄러지듯 여객선이 세우타항에 들어선다. 그런데 방파제 끝단 부분을 보니 기둥 두 개를 들고 서있는 헤라클레스(Heracles)상이 보였다. 좀 작았다. 이게 전부인가? 육중한 몸매에 천하장사의 기운을 가진 헤라클레스의 동상을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알고보니 세우타의 중심지역에 큰 동상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국기를 보면 기둥 두 개가 들어가있는데 그게 바로 헤라클레스가 들고 서 있는 기둥들이다.

세우타말고도 모로코땅에는 멜리야(Melilla)라는 스페인의 비지가 하나 더 있다. 멜리야도 지정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곳에 위치해있다. 스페인이 영국으로부터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하듯이 모로코는 스페인에게 세우타와 멜리야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까지 세우타에 대해서 이야기해봤다. 처음에는 새우탕면처럼 얼큰한 맛을 기대했는데 온갖 재료가 뒤섞인 잡탕면을 먹은 느낌이다. 대륙이 교차하고 해양이 연결된 문명의 십자로여서 그런 풍미가 발현됐을 것이다. 매운맛이든 섞인맛이든 맛나게 즐겨보자 배고프면 여행도 잘 안되는 법이니까!

 

 

 

 

* 세우타 헤라클레스 기둥: 이게 진짜 헤라클레스 기둥 조형물이다.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 이베리아반도 지도: 글씨를 제외하고 직접 손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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