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라클레스기둥: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다. 왼쪽에 바다 건너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지브롤터다.

 

 

 

<재미난 스페인 1편> 세우타

매운맛일줄 알았는데 섞인맛이었네!

 

'세우타? 새우탕이 아니고?'

처음 세우타(Ceuta)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평소에 워낙 새우탕 사발면을 좋아해서 저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입맛을 다시며 스페인이 포함된 이베리아 반도 지도를 찾아보았다. 마드리드, 바로셀로나, 세비야, 빌바오 등등...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팀들의 연고지 위주로 찾아보았다. 없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서 찾아보았다. 팜플로냐, 부르고스, 레온 등등... 역시 없다. 옆나라 포르투갈까지 샅샅이 찾아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니가 거기 왜 있어. 그러니까 찾기가 힘들지!'

세우타는 이베리아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히는 모로코 땅 한 켠에 섬이 아닌 섬처럼 고립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영토이지만 다른나라 안에 있는 땅을 두고 비지(飛地)라고 부른다. 한자 '날비(飛)'가 쓰인 것처럼 본국과는 떨어져 있는 영토다. 참고로 비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다.

세우타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롤터(Gibraltar)해협에 위치해 있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쪽으로는 영국령 지브롤터가 있고, 북아프리카쪽으로는 세우타가 있는 것이다. 지브롤터 해협은 좁은 곳은 폭이 20km가 안 될 정도다. 대서양과 지중해가 교차하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손에 닿을 듯 바라다보이니 지브롤터해협 일대가 얼마나 중요하겠나! 지정학적인 눈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딱보면 알 정도일 거다.

그런 세우타에 항구를 건설한 이들은 카르타고인들이었다. 카르타고인들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데 그게 바로 포에니 전쟁이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그 유명한 한니발이 활약한다. 한니발이 기세를 올렸지만 카르타고는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다. 세우타도 로마의 세력권 안에 놓이게 된다.

대륙과 대륙이 만나는 문명의 교차점이어서 그랬나? 세우타는 반달족들이 쳐들어 오기도 했고, 비잔틴제국이 점령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가 이슬람화가 된 이후에는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더불어 711년, 이베리아반도에 이슬람 무어인들이 침공하여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때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그리스도교 왕국들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고 불리는 국토회복운동에 나선다.

15세기가 됐고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먼저 돛을 높이 달고 대서양으로 향한 건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이었다. 당시 스페인 남부에는 이슬람 무어인들의 나라가 계속해서 항전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그라나다 왕국이 바로 그것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으로 향한 때가 1492년이었다. 이 해에 그라나다 왕국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레콩키스타도 종료된다.

1415년 세우타는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된다. 세우타 공략에는 항해왕 엔히크(Henrique)가 앞장섰는데 그는 포르투갈왕 주앙 1세의 셋째 아들이었다. 포르투갈은 세우타를 통해 북아프리카에서의 세력 확장에 나서게됐다. 대항해시대의 서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참고로 엔히크는 '항해왕'이었지만 진짜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다음 왕위는 첫째 아들인 두아르테가 이어받았다.

 

 

 

* Royal Walls: 직역하면 '왕립장벽'이 될 것이다. 애초 이 성벽은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스페인이 세우타를 점령했고, 왕립장벽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계속 보강되었다. 성체에 여기저기 탄환의 흔적들이 있다. 보기만해도 참 치열하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카르타고는 왜 나왔고, 레콩키스타는 또 무엇인가? 더군다나 스페인 땅이라면서 포르투갈 항해왕은 왜 또 불쑥나왔는가?

익숙지 않은 지명에 낯선 이름까지... 세계사 공부를 제대로 안 했던 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다. 그래도 세우타로 가는 여객선은 지브롤터 해협을 시원스럽게 내달리고 있었다. 객실밖으로 나갔더니 그 유명한 지브롤터 암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1578년이었다.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1세(Sebastião I)가 모로코인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만다. 당시 세바스티앙 1세의 나이가 24살이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아 왕비도 없었고, 후사도 없었다.

1580년, 이런 권력 공백을 틈타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을 병합하기에 이른다. 이후로 세우타는 스페인의 통치하에 놓인다. 60년간의 합병을 뒤로 하고, 1640년에 포르투갈이 스페인에서 독립했을 때도 세우타는 계속 스페인령으로 남게 된다.

미끄러지듯 여객선이 세우타항에 들어선다. 그런데 방파제 끝단 부분을 보니 기둥 두 개를 들고 서있는 헤라클레스(Heracles)상이 보였다. 좀 작았다. 이게 전부인가? 육중한 몸매에 천하장사의 기운을 가진 헤라클레스의 동상을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알고보니 세우타의 중심지역에 큰 동상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국기를 보면 기둥 두 개가 들어가있는데 그게 바로 헤라클레스가 들고 서 있는 기둥들이다.

세우타말고도 모로코땅에는 멜리야(Melilla)라는 스페인의 비지가 하나 더 있다. 멜리야도 지정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곳에 위치해있다. 스페인이 영국으로부터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하듯이 모로코는 스페인에게 세우타와 멜리야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까지 세우타에 대해서 이야기해봤다. 처음에는 새우탕면처럼 얼큰한 맛을 기대했는데 온갖 재료가 뒤섞인 잡탕면을 먹은 느낌이다. 대륙이 교차하고 해양이 연결된 문명의 십자로여서 그런 풍미가 발현됐을 것이다. 매운맛이든 섞인맛이든 맛나게 즐겨보자 배고프면 여행도 잘 안되는 법이니까!

 

 

 

 

* 세우타 헤라클레스 기둥: 이게 진짜 헤라클레스 기둥 조형물이다.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 이베리아반도 지도: 글씨를 제외하고 직접 손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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