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폭포

 

 

 

 

 

 

 

2021년 5월 24일 월요일

 

전날 강릉에서 동해로 이동하여 숙박을 했다. 이날은 동해시의 자랑인 두타산 무릉계곡을 탐방하는 날이다.

도대체 얼마나 멋들어졌으면 무릉계곡(武陵溪谷)이라고 불렸을까! 명칭만으로도 풍유객들의 발걸음을 확 이끈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무릉반석(금란정) -> 삼화사 -> 학소대 -> 관음폭포 -> 쌍폭포 -> 용추폭포

 

무릉계곡은 두타산(1,352m)과 청옥산(1,403m)이 빚어놓은 천혜의 절경이다. 둘 다 해발고도가 천 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이라 자칫 무릉계곡도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무릉계곡은 느긋하게 계곡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풍경 하나하나가 다 아름답고 귀해서 일부러라도 발걸음 하나하나도 천천히 두고 싶은 곳이다. 그런 곳이기에 1977년 3월 17일에 국민관광지1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2008년 2월 5일에는 명승 제 37호로 지정되었다.

 

동해시내에서 무릉계곡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는 상당히 많다. 대신 시내권에서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이동시간은 30분 이상이 소요됐다. 잘 확인을 하고 이동을 하시기 바란다.

 

매표를 한 후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금란정과 무릉반석이라고 불리는 너럭바위다. 금란정은 금란계(金蘭契) 회원들이 세운 정자인데 좀 사연이 있는 건축물이다.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으로 이 지역의 향교가 폐쇄가 됐다. 이에 울분에 찬 유림들이 금란계를 조직한 후 모임 장소로 쓰일 수 있는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일제의 방해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해방 이후에야 금란정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금란정은 북평에 있었다. 혹시 들어보셨을지도 모른다. 북평 5일장. 바로 그 북평에 금란정에 서 있었는데 1956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을 했다. 북평은 동해항과 가까운데 직선거리로 약 2km도 되지 않는다.

예전 2012년도에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강릉을 거쳐 동해로 이동을 했는데 북평에서 1박을 했었다. 숙소에서 잔 게 아니라 후미진 곳에서 텐트치고 잤었다. 그곳이 바로 북평 성당이었다. 성당 내에 공터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 관계자분에게 사정 말씀을 드렸을 때 필자를 좀 기특하게 보셨던 걸로 기억을 한다. 별로 안 기특한데...ㅋ

 

금란정을 지나 무릉반석을 보러갔다. 계곡의 너럭바위가 이렇게도 평평하고 크다니! 자연이 빚은 천연의 대운동장 같다. 한 천 명 정도가 동시에 앉아도 끄떡없을 거 같다.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주위를 감싸고 유유히 계곡물이 흐르고 있으니 누구나 다 풍유객이 될 수밖에... 그래서인지 무릉반석 곳곳에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풍유객들이 이런 평평한 바위를 그냥 지나쳤겠는가! 그렇게 흔적을 남긴 이 중에는 매월당 김시습 선생도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 명필 중에 한 명이었던 양봉래의 글씨도 있다. 양봉래는 '무릉선경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境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는 풍경과 지명에 딱 걸맞은 글씨를 남겼다.

 

 

 

 

 

 

 

* 삼화사: 철조노사나좌불

 

 

 

 

 

 

 

* 삼화사3층석탑

 

 

 

 

 

 

 

이제 삼화사(三和寺)를 보러가자. 신라 자장율사에 의해 건립된 삼화사는 그 창건 시기가 642년(선덕여왕 11)에 이른다. 삼화사는 흑연대(黑連臺) 혹은 삼공사(三公寺)으로도 불렸는데 이와 관련하여 각기 다른 창건설화가 있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가 동해안 일대를 두루 다니다 두타산에 이르러 절을 지으니 그것이 바로 흑연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찰이라하면 '~사', '~암', '~정사'로 끝나야 하는데 '~대'로 끝나니까. 이에 약사불삼형제의 이야기가 있다. 병을 치유해주는 약사부처님이 삼형제로 오셨다는 이야기인데 SF 어드벤처같은 스토리지만 잠깐 언급해본다.

 

약사삼불인 백(伯)·중(仲)·계(季) 삼형제가 멀리 이국에서 무릉계곡으로 들어온다. 삼형제는 각기 색깔이 다른 연꽃을 들고 왔는데 첫째는 흑련(黑蓮), 둘째는 청련(靑蓮), 셋째는 금련(金蓮)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후 삼형제가 머무른 곳은 각각 흑련대, 청련대, 금련대가 됐다. 자장율사가 흑련대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는 약사불 삼형제 중 첫째의 스토리와 서로 맞물린다.

 

두번째는 삼공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불교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신라 말기에 유행했던 구산선문에 대해서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이다. 구산선문은 경전 위주의 교종과는 달리 수행에 중심을 둔 선종의 9개 선문을 말한다. 한마디로 신라 말기에 9개의 선종 문파가 산을 중심으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수행하기에는 산이 딱이지 않은가.

 

구산선문 중 사굴산파를 연 범일국사라는 분이 계시다. 범일국사가 개창한 굴산사는 강릉에 위치해있는데 도보여행길인 강릉바우길 6구간을 걷다보면 닿을 수 있다. 강릉바우길 6구간의 다른 명칭은 '굴산사지가는길'인데 네이밍에서도 보이듯 현재 굴산사는 폐사가되었다. 그래도 그곳에 가보면 굴산사지 당간지주가 우뚝하게 서서 도보여행자들을 반겨준다.

 

범일국사가 무릉계곡에 사찰을 창건하니 그곳이 바로 삼공사였다. 고려 건국 이후 삼공사는 드디어 삼화사(三和寺)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름을 바꾼 이는 왕건이었다. 왕건이 삼공사에서 후삼국의 통일을 기원하였고 이후 '세 나라를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의 삼화사로 개칭을 한 것이다.

 

그렇게 좋은 뜻을 가진 삼화사지만 아픔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계곡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그런지 홍수 피해를 입기도 했고, 화재를 당해 다시 고쳐짓기도 했다. 1907년도에는 방화에 의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사찰이야 목조건물이 대대수라 화재에 항상 취약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방화라니! 누가 감히 천년고찰에 불을 질렀단 말인가!

 

일제가 불을 질렀다. 1907년이었다. 동해안 지역에서 활동했던 의병들이 삼화사에서 도움을 받게된다. 이에 일본군은 삼화사를 불태워버린 것이다. 이런 만행을 저지르다니! 부처님이 노할 일이다. 산길로 한 시간 정도 올라가면 두타산성이 있는데 조일전쟁(임진왜란) 때 이 지역 의병들의 거점이라고 하니 삼화사 일대는 일본과 연관이 많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 두타산 무릉계곡 숲길

 

 

 

 

 

 

 

* 학소대

 

 

 

 

 

 

 

삼화사의 시련은 여기가 끝이아니다. 사실 삼화사는 1977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을 했다. 원래 자리는 동쪽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이곳에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게 되어 옮기게 된 것이다. 수많은 시련을 견뎌냈던 천년고찰이 시멘트 공장에 밀려나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사천왕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가면 본전인 적광전이 있고 그 앞에 3층 석탑이 보인다. 보물 제1277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화사 3층석탑인데 이 탑도 사연이 많다. 1977년 시멘트 공장을 피해 삼화사가 이전을 했을 때 함께 이동을 한다. 하지만 터를 잘못 잡았는지 그 뒤 20년 후인 1997년에 현재의 자리로 다시 이건을 한다.

두 번이나 자리를 옮겨서 그런가? 현재의 자리가 제자리인 거 같다. 높이 4.8미터짜리 3층석탑이 본당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보니 중심이 꽉 잡힌 느낌이다.

 

후기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니 3층석탑도 천 년의 시간을 버틴 셈이다. 삼화사 석탑은 좀 특이한 점이 있다. 석재가 석회암이다. 우리나라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화강암이 아닌 석회암으로 석탑을 쌓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1977년도 삼화사가 이전을 했던 일을 생각해보시라. 시멘트 생산한다고 천년고찰을 이전을 시키지 않았던가. 시멘트의 원료가 바로 석회암이다.

 

석재의 특성상 화강암보다 석회암이 더 풍화에 취약하다. 삼화사 3층석탑도 마찬가지다. 군데군데 훼손이 됐다. 하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큰 훼손없이 잘 드러나있다. 상륜부인 찰주 부분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꺾인 찰주에 걸린 보주 하나가 인상적이다. 찰주는 탑의 상륜부에 장식물들을 꽂기 위해 세운 쇠로 만든 기둥이다. 마치 피뢰침처럼 생겼다. 보주는 상륜부를 구성하는 장식물로 찰주에 쏙 끼어넣는다. 잘 연상이 안되면 여의주를 생각하시면 된다. 삼화사 3층석탑의 찰주에는 보주 하나가 달랑 하나 걸려있다. 얼핏보면 까치밥처럼 보인다.

 

이제 본당인 적광전에 가보자.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곳이다. 꼭 대웅전이 사찰의 본당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극락전이 본당이 될 수도 있고, 약사전이 본전이 될 수도 있다. 부처님은 한 분만 계시는게 아니니까. 불교는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지 않은가.

 

삼화사 적광전에는 보물 제1292호로 지정된 철조노사나좌불이 있다. 은은한 미소를 짓는 부처님을 잘 표현됐다. 어떤 솜씨좋은 이가 만들었을까. 구부리기도 쉽지 않은 거친 질감의 철로 저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니. 그저 감탄사가 나올 뿐이다. 한편 노사나불은 비로자나불의 다른 이름이다.

 

삼화사를 나오면 본격적으로 무릉계곡을 걷게 된다. 두타산과 청옥산이 품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무릉계곡 일대에는 폭포가 많다. 관음폭포, 쌍폭포, 용추폭포 등등... 기암괴석들도 만날 수 있다. 학소대, 병풍바위, 만물상 등등... 울창한 계곡숲길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폭포는 탐방객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기암괴석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무릉계곡 탐방은 쌍폭포와 용추폭포에서 절정에 이른다. 부드럽게 완경사로 이어진 탐방로를 따라가다 쌍폭포를 만나고, 이후 용추폭포에 다다른다.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수 소리를 눈을 감고 들어본다. 귓전을 때리는 폭포 소리에 속이 다 시원해진다. 유량이 많으면 더 경쾌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으니 비가 온 뒤에 무릉계곡을 탐방하면 더 다이나믹할 거 같다.

 

이렇게하여 신선놀음같던 두타산 무릉계곡 트레킹이 끝이났다. 원점회귀형 코스라 왔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하지만 그것조차도 좋다. 워낙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 올라가는 길도 내려가는 길도 모두 다 즐겁기 때문이다. 그냥 가기가 아쉬울 정도다. 이참에 그냥 무릉도원에서 자리깔고 신선이나 되볼까?ㅋ

 

 

 

 

 

 

* 용추폭포

 

 

 

 

 

 

* 쌍폭포: 쌍폭포중 계단식으로 낙수되는 폭포.

 

 

 

 

 

 

*관음폭포

 

 

 

 

 

 

* 무릉반석

 

 

 

 

 

 

*** 두타산 무릉계곡 가는법

1. 동해시내나 동해역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무릉계곡행 시내버스탑승

2. 동해역 기준으로 이동시간은 약 20~30분 정도 소요됨. 배차간격은 약 30분 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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