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종교다원주의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했었는데 그때 큰 감흥을 느꼈었다. 사찰을 탐방하는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는 합장부터 하며 가람을 누볐다. 또한 간간이 교회도 갔고, 그 곳에서 이웃 사랑에 대해서 곱씹어 보기도 했다.

 

무속신앙도 빠질 수 없다. 친분이 있는 무속인이 있는데 작두를 아주 잘 탔다. 그 분 따라 작두잡이를 여러 번 해봤다. 작두잡이를 할 때는 절대 말을 해서는 안 되기에 입에다 ‘함’을 물린다. 작두굿은 유혈이 낭자하는 경우가 많기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작두굿은 종료가 되고 관객들은 한 명씩 차례로 공수를 받는다. 공수는 신이 무당의 입을 빌려 전하는 메시지이다.

그때서야 작두잡이들도 긴장감에서 해방이 되어 입에 문 함을 뱉어낸다. 침방울로 범벅이 된 함을 그냥 태울 것인가? 안 된다. 함을 열어봐야한다.

“앗싸 돈 들어있다! 작두잡이 값이다.”

* 인왕산 성곽길

● 바위산인 인왕산

이번에는 우리나라 무속 신앙의 메카 같은 곳을 향해 간다. 그곳은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다.

인왕산은 바위산이라 그런지 돌이 많기로 유명하다. 호랑이바위, 투구바위, 해골바위 등등... 독특한 형상을 한 바위들이 참 많다. 원래 인간은 자연이 빚어놓은 형상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이 바위에도 투영되니 거석숭배문화가 발생했다. 인왕산 선바위는 그런 애니미즘적인 거석숭배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선바위는 가로 7미터, 세로 10미터 정도로 인왕산의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가 큰 바위인데다 워낙 독특하게 생겨서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인왕산에 다른 바위들이 많은 터라 좀 자세히 봐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선바위를 비롯해 인왕산의 남서부 일대를 한 발짝 떨어서져 조망하고 싶다면 인왕산이 아닌 그 앞쪽에 있는 안산(鞍山)에 올라가보자. 안산은 무악재 고개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이다. 서대문 형무소가 위치해있을뿐더러 유명한 안산자락길이 있어 도보여행자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는 산이다. 그 무악재에는 2017년에 무악재하늘다리가 놓여서 두 산을 연결하고 있다.

안산은 ‘편안한 안(安)’이 아닌 ‘안장 안(鞍)’을 쓴다. 산이 말 안장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 안장 형상을 제대로 인지하려면 인왕산, 그 중에서도 선바위 인근에서 바라봐야 한다. 가까이에서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있고, 반대로 멀리서 봐야 그 전체 틀거리를 알 수 있는 게 있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닌가? 상황에 따라 줌인 / 줌아웃을 적절히 해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선바위

 

 

● 선바위와 국사당

선바위를 한자로 쓰면 '선암(禪岩)'으로 '스님바위'라는 뜻이 된다. 승복을 입은 선승이 참선을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선바위를 자세히 보면 단일 암석이 아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것을 두고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영혼이 나란히 깃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렇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보니 선바위는 예로부터 아이를 갖기 원하는 이들의 좋은 기도처였다고 한다. 쌍둥이 바위는 다산을 뜻하니까. 요즘같이 저출산 시대에는 ‘애국자 바위’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암석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을 두고 거석숭배문화라고 한다. 이 거석숭배문화는 우리 민간신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선바위는 이런 거석숭배문화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산악신앙이다.

우리 옛 선인들은 산을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였다. 물이 샘솟고, 과실과 약초들이 산재해 있으며, 연료인 나무들을 채취할 수 있으니 산은 인간에게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산을 마냥 좋은 것만 주는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사나운 맹수들이나 험준한 지형이 항상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인 산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드렸다. 산에 사는 신령, 즉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산악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런 산악신앙은 우리 무속신앙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바위 아래에는 국사당(國師堂)이라는 신당이 있다. 이 국사당은 원래 남산에 있던 신당이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395년(태조4), 이성계는 목멱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호국의 신으로 삼았다. 그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졌는데 이것을 국사당, 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 불렀다.

이 목멱신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국가의 공식행사로 제례를 올렸다. 유교중심주의를 표방하며 건국된 조선에서조차도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렇게 목멱대왕을 모셨던 국사당은 192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된다. 일제가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세웠는데 자기들의 신궁 위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것이다. 국사당이 선바위 부근으로 옮겨오게 된 건, 인왕산이 무학대사의 기도처였기 때문이었다. 국사당(國師堂)에서 '국사(國師)'는 무학대사를 뜻한다.

“제가 예전에 작두 좀 탔습니다.”

국사당 앞에는 작두를 타는 단이 있는데 그 앞에서 좀 있어 보이려고 저런 멘트를 했었다.

 

“정말요? 무섭지 않았어요?”

“작두날이 날카롭지 않아요? 피 날 거 같은데.”

“아니 제가 탔다는 게 아니라... 전 작두잡이를 하면서요... 작두잡이 하면 돈도 입에다 물려줘요. 공수도 받고, 돈도 받고...”

돌아오는 반응은 항상 작두의 날만큼 매서웠다. 그럼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궁색해져 돈 타령으로 급히 마무리 할 수밖에...

 

 

* 국사당: 국사당에는 당연히 주차장이 없다. 그래서 제사 물품을 지게로 나른다. 최첨단 시대이지만 한편으로는 올드 스타일도 존재하는 법이다.

 

● 무학대사와 정도전, 그리고 선바위

선바위는 한양도성에서 직선거리로 3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두냐 마냐를 두고 무학대사와 정도전 간에 격론이 오갔다. 불교세력을 대변했던 무학대사는 당연히 선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교세력을 대변했던 정도전은 이 스님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오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선바위가 들어오면 도성 안에 불교가 융성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첨예하게 오갔던 격론은 이성계에 의해 결론이 났다. 선바위가 도성 밖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불심이 깊은 이성계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유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에 무학대사는 200년 안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이고, 국운이 기울 것이라는 큰 저주(?)를 내뱉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이 선바위를 두고 오갔다던 ‘무학대사 VS 정도전’ 간의 갈등은 정사가 아닌 야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선바위를 두고 오갔던 두 사람의 갈등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적인 사료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일까? 선바위 논쟁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나왔던 건, 실제로 조선이 건국한 후 약 200년 뒤에 일어난 조일전쟁(임진왜란) 때문이었다. 당시의 민중들이 어떤 식으로든 전란에 대한 유학자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선바위와 무학대사를 무대로 등판시켰다는 것이다. 도성을 버리고 떠난 왕과 사대부들에 대한 원망을 선바위와 무학대사에 기대어 풀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무속의 메카답게 오늘도 선바위에는 많은 이들이 와서 기도를 올린다. 아이를 낳게 해 줄 수 있는 바위라 그런지 확실히 여성들이 더 많다. 신엄마, 신딸로 보이는 무속인 무리들도 자주 보인다. 심지어는 외국인 여성도 와서 기원을 드리더라. 확실히 선바위의 기도빨이 좋긴 좋나보다. 그 여성 외국인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 꽤 오랫동안 묵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선바위 앞에서 필자도 조심스럽게 합장을 하였다. 무슨 기원을 드렸을까? 로또대박? 역사트레킹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역사트레킹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으니까!

 

* 선바위와 한양도성: 선바위의 뒷모습. 선바위가 한양도성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 눈내린 인왕산 성곽

 


■ 선바위

1. 코스: 안산자락길 ▶ 무악재하늘다리 ▶ 선바위 ▶ 국사당

2. 가는법: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한 후 선바위로 바로 올라갈 수 있음. 하지만 안산자락길을 좀 걸은 후 무악재하늘다리를 통해 선바위를 탐방하는 코스를 추천함. 길도 예쁘고 완만해서 부담없이 걸을 수 있음.

3. 같이 가면 좋을 곳: 인왕산 수성동계곡

* 선바위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파랑새가 정말 있을까?’

 

불혹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철이 들지 않아서인가? 요즘도 가끔가다 저런 동화 같은 상상을 해본다. 그렇다고 필자만 파랑새를 찾고 있지는 않은 듯싶다. 우리사회가 무한경쟁 속에 놓이다보니 역설적으로 파랑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짙어지고 있는 듯싶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더 많이 입에 오를수록 파랑새도 더 많이 언급될 것이다.

잠깐 정리를 해보자. <파랑새>는 벨기에 출신인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가 쓴 동화이다. 주인공인 틸틸과 미틸의 꿈속에 요정 할매가 나타났다. 할매는 자신의 아픈 딸을 위해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틸틸과 미틸에게 부탁을 했다. 이제까지 치르치르와 미치르로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는 틸틸(tyltyl)과 미틸(mytyl)이더라.

틸틸과 미틸은 파랑새를 찾아 여러나라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파랑새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들은 지친나머지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그건 꿈이었다. 그 꿈에서 깨어나 집에 있던 새장을 보니 기르던 새가 파랑새였던 것을 깨닫는다.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온갖 고생을 하며 여러나라를 돌아다녔는데 정작 파랑새는 자신의 집에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제까지 <파랑새>가 안데르센의 작품인 줄 알았다. 여기서 필자의 독서 실력이 확 노출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필자의 어렸을 때 친구들 중에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간간이 파랑새를 입에 올리기는 했지만 원작자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냥 단순하게 ‘명작동화=안데르센’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파랑새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 대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해본다.

 

 

 

 

 

* 안산자락길: 로고

 

 

 

 

● 경기도 안산? 아니 서대문 안산!

누구나 다 아는 사실 하나! 인구 천 만 명이 모여 사는 서울이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이라는 사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실 하나! 서울에 정말 산이 많다는 사실!

초고층 빌딩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있지만 서울 스카이라인의 최고점은 인공물이 아니다. 최고점은 항상 북한산과 관악산이 차지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한다. 이렇듯 산은 서울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였다. 현무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산과 주작 역할을 하고 있는 관악산이 두드러졌지만 키가 작은 산들도 자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서대문 안산이다. 이번 편에서는 이동순서에 따라 기술하지 않았다. 그래서 코스 상으로는 맨 뒤쪽에 놓이는 무악재하늘다리가 앞부분에 소개됐다.

문화센터에서 안산역사트레킹 강의 공지를 올렸을 때,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안산 트레킹이요? 서울학개론이라면서 경기도 안산까지 가요?”

“아닙니다. 서대문 안산으로 갑니다. 서대문 안산(鞍山)하고 경기도 안산(安山)은 위치도 다르고 한자도 다릅니다.”

그렇다. 서대문 안산은 ‘안장안(鞍)’ 자를 사용한다. 산이 말 안장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명칭을 얻은 것이다. 실제로 안산은 완경사를 타고 가다가 정상부근에서 불쑥 튀어나와 있다. 멀리서보면 얼핏 말안장처럼 보인다. 그런 안산의 윤곽을 확인하려면 건너편에 있는 인왕산에서 바라보는 게 좋다.

안산은 인왕산과 무악(毋岳)재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안산과 인왕산은 지질구조가 비슷한 점이 많다. 지난 1편에 등장한 인왕산 선바위를 기억하시는가? ‘기도빨이 잘 받는’ 스님바위 말이다. 선바위를 보면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기이한 형태의 그런 구멍들은 풍화혈이라고 부른다. 벌집구조 형태로 작용하는 풍화혈은 화강암이 차별침식을 받았을 때 생성된다. 이 풍화혈은 타포니(taffoni)라고도 불리는데 ‘타포내라’라는 코르시카의 말이 그 어원이다.

“타포니는 프랑스 코르시카에서 나온 말입니다. 코르시카는 나폴레옹의 출생지고요. 하여간 이런 벌집 구조는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서울에서 이런 지형을 볼 수 있는게 참 고마운 일이죠.”

 

애꿎은 나폴레옹까지 끌어오면서 타포니 지형을 설명하지만 필자의 전달력이 딸려서 그러는 건지 수강생들의 표정은 ‘뚱’해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지질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있겠는가? 아무리 수강생들이 하품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야기할 건 이야기해야지.

“인왕산에서 봤던 타포니 지형을 이곳 안산에서도 볼 수 있답니다. 안산에도 해골바위가 있거든요. 구멍이 뻥뻥 뚫리는 타포니 지형이 그런 해골바위를 만들었지요. 인왕산에도 해골바위가 있고, 안산에도 해골바위가 있고...”

 

 

 

 

 

* 무악재하늘다리

 

 

 

 

 

●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생태다리, 무악재하늘다리

그렇게 비슷한 점이 많은 안산과 인왕산은 1972년 통일로 확장으로 인해 녹지축이 끊기게 된다. 무악재 위를 달리고 있는 도로가 바로 통일로다. 통일로 이전에는 의주길이었다. 의주길을 따라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들이 왔고, 조선의 문무백관들이 중국으로 향했다. 그 길은 매우 중요한 기간 도로였던 셈이다.

그렇게 약 40년 이상 끊겨있던 두 산에 생태다리가 놓였다. 무악재하늘다리가 놓인 것이다. 그 다리가 놓임으로서 두 지역을 오가는 코스가 다양해졌다. 생태다리 하나 때문에 트레킹 코스가 풍부해진 셈이다. 동물들보다 사람들이 더 즐겁게 된 것이다.

한편 무악재는 무학재로도 불린다. 이처럼 한끝의 차이는 왜 나타났을까? ‘무악’이나 ‘무학’이나 똑같아 보이는데. 조선이 개국할 즈음에 천도 예정지로 거론된 곳은 한양, 계룡산, 안산 세 곳이었다. 당시 경기도 관찰사 하륜은 안산 주산론을 펼치며 안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

만약 하륜의 주장대로 안산을 주산으로 삼았다면 한강의 이용가치는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한 경강상인들의 상행위는 더욱더 활발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조선이 교조적인 성리학에 묶이지 않고 훨씬 더 개방적인 나라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의 나라였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업활동을 천시하던 사회였다.

 

어쨌든 안산 주산론은 안산의 남쪽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이유로 폐기되고, 무학대사의 의견에 따라 북악산 남쪽이 도읍지로 결정된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있어서인지 무악재가 무학재로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무악재는 말안장 같은 안산 기슭을 따라 넘는 고개라고 하여 길마재라고도 불렸다.

 

 

 

 

 

*메타세쿼이아 숲

 

 

 

 

● 서대문형무소와 다크투어리즘

안산 역사트레킹의 출발점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서대문형무소는 처음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1908년)으로 출발했는데 이후 서대문감옥(1912년), 서대문형무소(1923년)로 개명을 한다. 이름을 바꿨다고 해도 그 기능은 뻔했다. 독립지사들에 대한 탄압과 수감이 그 역할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조국독립을 외치며 피눈물을 흘렸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서울형무소(1945년), 서울교도소(1961년), 서울구치소(1967년)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감옥의 기능은 계속됐다. 드라마틱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반영하듯 이곳은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됐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작고한 김근태 의원 같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었다.

형무소의 담장이 걷어지고 주변지역이 공원화 된 것은 1992년이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포함한 이 일대가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명명된 것이다. 시설이 잘 정비가 되어서 그런지 서대문독립공원은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렸던 서대문형무소에는 체험학습 나온 초등학생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재개발 문제로 말이 많았던 서대문 옥바라지 골목 일대는 이제 고급아파트가 들어섰다. 현재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대는 확실히 어두운 색채가 옅어져있다.

어두운 면을 찾아볼 수 없다고 역사의 교훈까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럴 때는 다크투어리즘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크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천연재해(쓰나미) 등을 당한 곳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다크투어리즘은 아픈 기억을 가진 지역을 탐방함으로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19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테마 여행의 한 형태다. 아우슈비츠, 체르노빌, 히로시마 같은 곳을 탐방한다면 다크투어리즘 여행을 행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대문 형무소가 다트투어리즘(dark tourism)의 대표적인 장소로 손꼽힌다.

다크투어리즘을 확대해보면, 서울도 곳곳이 다 그 탐방지에 속할 수가 있다.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던 경복궁, 한국전쟁 중에 폭파가 됐던 한강철교 등등... 서울만 그러겠는가? 다른 곳들도 다크 투어리즘 천지다. 제주 4·3, 5·18 민주화운동, 노근리 학살 등등... 동학농민군이 몰살을 당한 공주 우금티도 다크투어리즘의 최적지일 것이다.

 

 

 

 

 

* 서대문형무소

 

 

 

 

● 나무데크는 이제 그만!

도보여행자들에게 안산은 상당히 인기가 있는 곳이다. 안산자락길이 있기 때문이다. 무장애길이라 하여 유모차나 휠체어도 통행할 수 있다는 게 안산자락길의 특징이다. 나무데크를 사용하여 경사도를 완곡하게 해 이동권 약자들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정말 유모차나 휠체어도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을까? 필자는 수 십 차례에 걸쳐 안산 역사트레킹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안산자락길에서 휠체어나 유모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안산(296m)이 키가 낮은 산이라고 해도 산은 산이다. 아무리 무장애길이라고 칭해도 경사도가 있기 마련이다.

‘무장애’라는 말에 부합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안산자락길에는 나무데크가 과도하게 사용됐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텅텅’거리는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이동권 약자들이 더 손쉽게 트레킹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수단이 나무데크의 과도한 사용이라면 곤란하다. 나무데크도 적재적소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으로 그쳐야한다. 도보여행자들은 흙길을 걸으려고 길을 나서는 것이지 나무데크를 걸으려고 발걸음을 떼는 것이 아니니까.

어쨌든 안산은 경사도가 완만하여 초급자들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2달 과정의 강의가 있을 때, 수강생들의 체력을 알기 위해 테스트 과정이 필요한데 안산은 좋은 테스트장이 되어준다.

● 누구나 로맨티스트가 되는 그 곳!

이제 정상을 향해 가야한다. 안산자락길이 평지처럼 순한 길이었다면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좀 험할 수 있다. 이 부근은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데 앞서 말한 타포니 지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조심스럽게 정상을 향해가다 보면 해골바위를 만날 수 있다.

안산 정상에는 동봉과 서봉이 있는데 이곳에는 예전에 봉화가 설치됐던 곳이다. 동봉수대는 평안도 강계에서 시작된 봉수를 받았고, 서봉수대는 평안도 의주에서 시작된 봉수를 받았다. 둘 다 최종목적지는 남산 봉수대였다. 현재는 동봉수대만 복원이 됐다. 서봉수대 자리에는 통신 회사의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안산 봉수대에 올라서면 사대문 안쪽의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인왕산의 성곽길이 선명하게 보이고, 뒤쪽의 북한산의 봉우리들도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인왕산이나 북악산에서 바라보는 광경과는 또 다른 멋이 있는 것이다. 특히 한강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게 안산의 매력인데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서울시내,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강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 더욱더 매력적이다.

그렇게 한강쪽을 바라다보면서 왜 경기관찰사였던 하륜이 안산 주산론을 펼쳤는지 생각해보자. 필자는 가끔 수강생들에게 그 숙제를 내줬다. 하지만 그 숙제에 관심 있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대신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여기 낙조가 장난이 아니겠는데요. 노을 질 때 한강에 유람선이라도 다니면 정말 판타스틱 하겠네요!”

말 그대로다. 안산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정말 일품이다. 낙조가 진후에도 멋있다. 야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낙조와 야경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로맨티스트가 될 것이다. 그만큼 매력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하늘높이 쭉쭉 뻗어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이 트레킹팀을 맞이한다. 서울에서 그렇게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숲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게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안산역사트레킹은 지루할 틈이 없다. 300미터도 안 되는 작은 산이 이렇게 많은 것들을 안겨줄 수 있다니! 도보여행자로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 안산봉수대

 

 

 

 

● 가장 트레킹하기 좋은 곳은 어디?

“트레킹하기 가장 좋은 곳이 어디에요?”

은근히 많이 저런 질문을 받는다. ‘어디가 여행하기 좋아요?’ 이런 질문도 많이 받는다. 트레킹 강사인 필자에게 저런 질문들은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콕 집어 달라는 것이다. 트레킹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전에 생태 공부가 하고 싶어서 숲체험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었다. 숲체험 교실도 현장이 중요하다. 그래서 강사분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숲 체험하기 가장 좋은 곳이 어디에요?”

수강생 분들에게 들었던 질문을 필자가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이 질문을 했을 때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좀 놀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트레킹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은 바로 여러분이 사시는 동네 뒷산이에요.”

필자가 내놓은 대답은 동네 뒷산이었다. 그렇다면 숲체험 강사분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그 대답을 들었을 때는 더 제 발이 저렸던 것 같다.

“숲 체험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은 바로 여러분이 사시는 동네 뒷산이에요.”

숲체험을 하려면 창덕궁의 비원이나 수목원 정도는 가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트레킹도 마찬가지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가장 좋은 트레킹 코스일까? 아니다. 바로 발걸음을 뗄 수 있는 동네 뒷산이 가장 좋은 곳이다.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에 있다.

그런 면에서 서대문구에 사는 사람들은 참 복 받았다. 안산이 바로 동네 뒷산이니까. 전망, 숲길, 역사 등등... 안산이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다 가지고 있으니까.

 

서대문 사람들은 파랑새를 제대로 기르고 있는 셈이다.

 

 

 

 

 

* 서대문 안산 숲길

 

 

 

 

 

 

 

■ 안산역사트레킹

1. IN: 지하철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2. OUT: 홍제천

3. 세부코스: 서대문독립공원 ▶해골바위 ▶ 봉수대 ▶메타세쿼이아숲길 ▶ 서대문독립공원(순환형태)

4. 길이: 약 8km

5. 예상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

 

 

 

 

 

* 안산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안산 자락길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변형해서 이동함.

 

 

 











트레킹도 하고, 밥도 먹고, 클래식 공연도... 1석 3조?


제가 <문화공간 온>에서 트레킹 리딩을 하고 있답니다. 전에도 한 번 광고를 한 적이 있었지요.
오늘도 광고 하나 하려고 이렇게 포스팅을 해봅니다. ^^;


웹자보 내용 그대로입니다. 2월 21일 수요일날 '무악재하늘다리'에서 시작하여 '광화문'까지 가는 코스입니다. 그리고 <문화공간 온>에 가서 맛나게 식사와 음료를 드시는 것이지요. 모임비가 2만원인데 식사비가 포함된 가격이랍니다. 


여기서 잠깐, 문화공간 온에 대한 설명입니다!
문화공간 온은 말그대로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입니다. 인문학 강의도 개최하고, 클래식 음반도 듣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공간입니다. 문화에 목마른 사람들한테는 딱 좋은 아지트와 같은 곳이죠. 협동조합 형식으로 운영되서 그런지 이윤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딱 자기가 즐긴 만큼, 먹은 만큼만 지출하는 곳이죠. 


그런 문화공간에서 강의를 하다보니 협업 아닌 협업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트레킹이 끝나고 문화공간으로 이동해서 밥을 같이 먹고, 클래식 음악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제 트레킹 강의가 오후 2시 30분 쯤에 종료가 되고, 이어서 오후 3시부터는 클래식 음악 듣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니까요. 


트레킹 종료 지점이 문화공간 온이라 기존 코스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인왕산역사트레킹이니 '북악산역사트레킹'이니 하는 통상적인 네이밍을 쓰지 않고, '선바위-광화문' 코스라고 명명을 했네요.


아직까지 한 명도 신청자가 없어 잘못하면 2월달 모임은 아웃이 될 거 같아 열심히 홍보해보렵니다. 뭐 주중 낮시간에 하는터라 사람 모으기가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계속 줄기차게 광고해보렵니다~!!!

  
날짜:  2월 21일 수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30분
신청: 010-9955-1968
입금계좌: 1005-202-976616 우리은행 문화공간 온



*** 전화나 문자로 참여신청을 해주시고, 입금까지 해주시면 참여가 완료됩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 





 

 

 

안녕하세요?

 

 

2018년 새해 계획은 잘 지키고 계신가요? 혹시 작심삼일? ^^;

 

 

다른건 다 작심삼일하셔도 트레킹만큼은 그렇게 하지 마옵소서! 그래야 건강해질 수 있답니다.

 

 

~ 이전 포스팅에서 인왕산과 안산을 연결하는 '무악재하늘다리'가 개통됐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이 다리는 서울에 있는 생태다리 중에서 가장 멋진 다리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 우리도 한 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진짜 멋진 다리인지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하잖아요. 여러분들의 감상평을 한 번 기대해봅니다.

 

 

무악재하늘다리의 개통으로 인해 인왕산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트레킹 코스가 조정이 됐습니다. 더 정확히는 세분화가 된 것이죠. 128일에 행하게 되는 '경희궁선바위 역사트레킹' 코스는 기존의 '선바위 -> 한양도성 인왕산구간 -> 수성동계곡 -> 윤동주시인의 언덕 -> 창의문' 에서 변경된 코스입니다. '무악재하늘다리 선바위(국사당) 한양도성(인왕산구간) 달쿠샤 경희궁'으로 변경된 것이죠.

 

 

본 경희궁선바위 역사트레킹은 인왕산 서쪽편을 집중적으로 걷습니다. 먼저 서대문 안산 자락길을 따라 걸으며 인왕산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신 후, 무악재하늘다리를 건너 인왕산으로 진입합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에서 기도발 잘 받기로 소문난 선바위와 국사당을 탐방하는 것이죠. 이후 한양도성을 따라 달쿠샤를 만나고, 마지막으로 경희궁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본 경희궁선바위 역사트레킹은 다양한 역사유적을 탐방하게 됩니다. 그중 선바위와 경희궁을 동시에 탐방하는 게 이채롭지요? 무속신앙의 메카 같은 곳과 왕이 기거했던 궁궐을 동시에 탐방하니까요.

 

 

이렇듯 올해부터는 궁궐을 함께 탐방하는 트레킹을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궁궐을 알아야 서울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많이 오셨으면 좋겠네요. 아참 경희궁은 입장료가 빵원입니다. 부담이 참 좋아요^^;



http://cafe.naver.com/trekkingmaster/147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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