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답게 산다

- 한 박자 늦어도 상관없어

- 내 마음의 종소리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제까지 <트레킹은 생각창고>에 실린 제목들이다. 나머지 제목들도 있지만 지면관계상 5개 정도만 가져와봤다.

이렇게 제목들만 놓고 보니 이 원고가 역사트레킹을 담고 있는 것이 맞나 할 정도로 트레킹이나 아웃도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트레킹 원고라면 올레길, 둘레길을 전면에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책표지는 수려한 풍광 속을 한들한들 걷고 있는 도보여행자의 원거리샷 사진이 빠지지 않고 장식한다.

그런점에서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통상적인 면에서 벗어나있다.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동네 뒷산’ , ‘내 아웃도어의 베이스캠프 관악산’처럼 직접적으로 트레킹을 드러내는 제목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두 편에 불과할 뿐이다. 그 외에는 다 저런 식으로 트레킹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저런 제목들만 보면 명상이나 종교 코너로 분류될지 모른다. 책표지도 홀로 고독에 휩싸인 수행자의 모습이 담겨질 거 같다. 사진이 아닌 펜화로.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듯이 <트레킹은 생각창고>의 포지션은 ‘반반치킨’이다. 역사와 트레킹을 반반으로 했고, 사색을 양념장으로 삼았다. 트레킹을 하면서 곱씹었던 생각들을 해당 유적지의 역사와 매칭을 시켜서 풀어냈던 것이다. 걷다보면 생각들이 피어올랐고, 그것들을 담아내고자 했다. 막걸리 잔부터 돌리는 트레킹이 아니라 걷기를 통해 정신영역의 확장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개똥철학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다. 필자는 이런 생각까지 한다.

 

‘위대한 철학은 걷기로부터 생성된다!’

 

 

* 원효봉

 

● 북한산성 역사트레킹의 몇 가지 포인트

벌써 마지막 여정이다. 이번편은 북한산성 역사트레킹이다. 북한산성 역사트레킹은 강의 커리큘럼에서 마지막으로 배치하곤 했었다. 그래서 본 원고의 마지막편도 북한산성 역사트레킹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북한산성 역사트레킹은 몇 개의 탐방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1. 대서문과 중성문

2. 산영루

3. 북한산성계곡

4. 덕암사

진관사 역사트레킹, 화계사 역사트레킹을 통해 이미 북한산과 관련된 글을 소개했다. 이번편 북한산성 역사트레킹까지 합치면 벌써 3개나 된다. 북한산을 두고 아주 우려먹는다. 그만큼 북한산은 관악산과 더불어 서울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고마운 산이다. 필자에게는 직장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트레킹팀을 이끌고 역사트레킹을 행하니까.

다시 복기를 해보자. 화계사 역사트레킹이 북한산 동쪽편을 누볐다면, 진관사 역사트레킹은 서쪽편에서 행해졌다. 북한산성 역사트레킹도 서쪽편에서 행해지는데 진관사보다는 좀 더 북쪽에서 움직인다.

북한산은 일명 삼각산이라고 불린다. 만경대(800m), 백운대(837m), 인수봉(810m) 세 개의 봉우리가 삼각뿔의 형태를 지녔다고 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저 세 개의 봉우리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서 ‘만백인’으로 앞 글자를 따서 외웠다. 머리가 나쁘면 이렇게 고생하는 거다. 높이에서 보이듯 북한산의 최고봉은 백운대다. 워낙 인수봉이 유명해서 가장 높은 봉우리고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그게 아니다.

삼각뿔은 동쪽편에 치우쳐있다. 지역으로 따지면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방면이다. 그 삼각뿔은 서울에서 보는 것보다는 경기도 파주나 고양쪽에서 보면 그 생김새가 두드러져 보인다. 예전 조선시대 때 개성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이들은 삼각산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했다고 한다. 참고로 파주 오두산 부근이 삼각산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 북한산: 원효봉쪽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고봉들.

● 한반도의 요충지 북한산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북한산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축성되기에 이른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북한산성은 1711년(숙종37)에 쌓은 성으로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를 연결해서 축성됐다. 성벽의 길이는 12.7km에 달한다.

백제시대에는 위례성의 북쪽 방어성으로 산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후 본격적인 삼국 항쟁시기에는 북한산을 두고 각국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었다. 그 항쟁의 증거 중에 하나인 진흥왕 순수비가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있다.

정확히는 지금 비봉에 세워진 순수비는 진품이 아니고, 순수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석이다. 진품은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로 비봉은 앞서 언급한 진관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도는 상당히 가파르다. 답사에 참고하시라!

삼각뿔인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도 북한산성의 일부다. 그런데 그 삼각뿔에는 성벽이 없다. 성벽이 없는 게 당연한 게 그 험한 삼각뿔을 어떤 멍청한 군대가 기어 올라오겠나. 삼각뿔 자체가 워낙 험하니 인공적인 성벽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자연물 자체가 성벽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곳은 백운대 말고도 의상봉과 용암봉이 있다. 북한산 산행을 해보신 분들은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실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 않은가? 지형이 너무 평탄하여 적들의 공격으로 취약한 곳도 있을 것이다. 그곳이 바로 북한산성의 서쪽 구간이다. 그래서 이곳은 중성문을 쌓아 이중 방어 구조를 만들었다. 즉, 대서문 -> 중성문 식이 된다.

대서문은 북한산성에 있는 14개의 성문 중 서쪽에 있는 성문을 말한다.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는 대동문, 대남문 등과 달리 대서문은 해발고도가 낮아 접근성이 매우 좋다. 북한산둘레길 코스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거리가 가까워, 둘레길과 묶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 대서문

● 총 맞은 성문?

중성문 밖은 외성, 중성문 안쪽은 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중성문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예전에 북한산성 행궁터가 있다. 행궁은 복원중이다. 이 중성문에 가보면 눈을 크게 뜨고 보셔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옆 수풀 속에 가려진 암문을 보셔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거 말고 중성문 육축에 쌓여 있는 총탄 자국을 보셨으면 한다.

육축은 문루 하부에 돌로 쌓은 부분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성문에 쌓인 성돌인데 성문에 쌓인 돌이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고, 정교하게 쌓였다. 그 부분이 총을 맞은 것인데 한국전쟁 때 피탄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이런 설명을 했었다.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서 빨치산이 활동을 했다는 건 잘 아실 테지요. 그런데 빨치산이 지리산에만 있었을까요. 북한산에는 없었을까요? 어쨌든 북한산도 한국전쟁 때 격전지였습니다. 이 총탄 자국이 그날의 참상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 중성문

* 중성문: 구멍이 난 성돌이 보인다.

● 풍류객들의 발걸음을 모은 산영루

북한산성 서쪽편은 길이 순해서 백운대를 가는 코스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힘들이지 않고 찰랑찰랑 걸을 수 있는데다 옆쪽으로는 시원하게 북한산성 계곡(북한천)이 흐르고 있어 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이다.

계곡이 있어서 이 코스는 여름에 많이 왔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렇게 트레킹을 행할 때마다 전날에 비가 내렸고, 덕분에 북한산성 계곡은 풍부한 유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있는 계곡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북한산성 계곡은 나름 호평을 받는 계곡이다. 공룡알 같은 큰 바위도 많고, 선녀탕 같은 여울도 꽤 있다. 서울 인근에서 이렇게 시원한 계곡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그렇게 찰랑찰랑 걷다보면 반환점인 산영루에 도착한다.

산영루(山映樓)는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누각이다. 자연 암반 위에다 키가 큰 장대석주를 세우고 거기에 누각을 올렸다. 산 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친다는 의미의 산영루는 워낙 풍광이 수려하여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았었다. 성호 이익, 추사 김정희 등등... 당대에 내로라하는 풍류객들은 이곳을 한 번쯤 다 다녀갔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1794년 가을, 둘째형인 정약전 선생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 후 ‘산영루’라는 누각과 같은 이름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영루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아픔이 있다. 산영루 앞에는 비석들이 서있는 비석거리가 있다. 북한산성과 관련하여 공로를 세운 이들의 공덕비가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잘 보면 몇몇의 비석은 깨지거나 큰 구멍이 나있다.

 

“아니 도대체 소중한 문화재에 누가 감히 이런...!”

트레킹팀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저런 멘트를 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면서.

“누가 비석을 깨뜨리기라도 했나요? 드릴로 뚫었어요?”

“아니요. 이 비석들도 총 맞았어요. 한국전쟁 때 중성문처럼요.”

그러자 누군가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외적 방어하라고 산성 만들었더니 같은 민족끼리 치고받았네...”

산영루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망실됐다. 그러다 2014년에 복원이 되었다.

 

* 산영루

 

 

* 비석거리 비석: 곳곳에 총탄 자국이 있다.

 

 

● 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에서

“우리 북한산계곡에 와 있습니다. 정말 시원스럽지 않습니까?”

 

원효봉이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계곡에서 필자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기 성벽 구간, 무너진 성벽 구간이 보이시죠? 원래 이 곳에는 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문을 통해서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산성에는 대서문 같은 7개의 대문과 6개의 암문, 그리고 한 개의 수문이 있었다. 이를 두고 북한산성 14성문이라고 말한다. 대문과 암문은 복원이 되고 해서 실재하고 있지만 수문은 소실된 상태다. 수문도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망실됐다.

“아참, 북한산성은 포곡식 산성입니다. 포곡식이라는 건 계곡을 끼고 있는 산성이라는 뜻이죠. 성이 만들어지면 음용수 때문에 골치를 썩잖아요. 그런면에서 계곡을 끼고 있는 북한산성은 물 공급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죠.”

“진짜 그랬겠네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계곡이 있다 보니 풍수해에 취약해요. 그래서 저 앞에 수문이 떠내려가 버렸잖아요.”

 

의상봉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덕암사까지 탐방한 후 북한산성 역사트레킹은 종료가 된다. 덕암사의 대웅전은 자연 석굴에다 법당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덕암사 대웅전의 실내 천장은 돌로 되어 있다. 이 석굴에서 원효대사가 수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덕암사는 메인 탐방로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데 북한산 마니아라면 한 번쯤은 방문해 볼만한 곳이다. 특히 덕암사에서 바라보는 의상봉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한편 덕암사는 아미타사라고도 불린다.

 

* 덕암사: 덕암사에서 바라본 의상봉

 

● 위대한 철학은 걷기로부터 생성된다!

 

북한산성 역사트레킹을 이 원고도 마감된다. 물론 에필로그편이 있긴 하지만... 트레킹을 행하다보면 좋은 생각들이 계속 떠오른다. 그런 생각들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서 <트레킹은 생각창고>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 생각들은 아름다운 풍광에서 더욱더 활성화된다. 북한산성 입구, 원효봉이 보이는 전망대도 그런 곳 중에 하나다. 그곳에 서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 제대로 찾아온 거야.’

북한산의 암봉들이 보여주는 시원한 풍광으로 머리가 맑아진다. 그리고는 다시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위대한 철학은 걷기로부터 생성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 북한산성 계곡

 


 

■ 북한산성 역사트레킹

1. 코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대서문 ▶ 중성문 ▶ 산영루 ▶ 덕암사 ▶ 북한산성 계곡 ☞ 덕암사를 잠시 방문한 후 왔던 길로 돌아와, 다시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것이 좋다.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4시간(휴식시간 포함)

4. IN: 구파발역 ☞ 구파발역에서 북한산성 입구행 버스 탑승(약 15분간 이동) / OUT: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 북한산성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 대서문: 북한산성 대서문





펀딩해서 돈 좀 만지셨수?

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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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펀딩과 함께 했다. 이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난 올 한 해 스토리펀딩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323일부터 108일 동안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을 진행했었고, 91일부터는 본 프로젝트인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을 무려 111일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 종료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까지도 난 가끔 이런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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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펀딩을 한 게 잘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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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트레킹이라는 주제는 스토리펀딩에 적합하지 않은 테마일 수 있다. 아무리 앞쪽에 역사혹은 서울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고 하더라도 트레킹이 주는 그 자체의 무게감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공익적으로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눈가에 감동의 폭포수를 흐르게 할 수 있는 주제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반응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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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다 펀딩질 하며 돈 구걸하네. 너희 놀고먹는 일에 돈까지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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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해들이야 애초부터 감수를 했지만 그래도 막상 그런 반응들을 접하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글을 발행하는 것밖에. 그래서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에서는 17편의 글을 발행했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게으름 때문인지 6편 밖에 작성하지 못했다.

이번 글은 7편째다. 지난 1113일에 행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은 천년 고찰인 진관사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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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팀: 숲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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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스토리가 숨어 있는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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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4대 명찰이 있다. 동쪽에 불암사, 남쪽에 삼막사, 북쪽에 승가사. 그럼 서쪽은? 진관사다.

천년 고찰인 진관사(津寬寺)는 고려 현종 때인 1010년에 만들어졌다.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이 직접 창건한 이 절은 진관대사를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태조 왕건의 손자였던 현종, 즉 왕순은 어릴 적에는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왕건의 손녀였던 천추태후로부터 어릴 적부터 박해를 받은 왕순은 한때 강제로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천추태후가 그의 이모가 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당시 얽히고설킨 왕실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같은 왕건의 혈통이자 이모뻘의 천추태후로부터 살해위협까지 받게 된 건 그가 왕위계승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천추태후는 애인인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왕으로 등극시킬 셈이었다.


그런 천추태후의 마수가 진관사에까지 뻗치게 됐다. 원래 진관사 자리에는 신혈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진관이라는 승려가 홀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승려가 홀로 거처하는 곳이라 천추태후 입장에서는 무언가 거사를 치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랬다. 천추태후는 신혈사에 자객을 보내 왕순을 죽일 셈이었다.

천추태후의 의도대로 왕순이 자객에 손에 비명횡사를 했다면, 현종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진관사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진관사: 대웅전









천추태후의 의도를 눈치 챈 진관은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굴을 파서 왕손을 숨기는 기지를 발휘한다. 수미단은 불상을 올려놓는 단을 말한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산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진관에 의해 목숨을 건진 왕순은 3년 뒤, 개경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려 8대 왕 현종이다. 현종은 1010,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진관 대사의 이름을 본 따서 사찰 이름을 지으니 그 사찰이 바로 지금의 진관사다.

 

조선시대 진관사는 사가독서제로 애용된 곳이다. 사가독서제란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정진하게 만든 제도로 세종시대에 처음 도입되었다. 풍광이 수려하고 계곡이 시원한 진관사라면 학문을 닦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가독서제로 진관사를 다년간 이들은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이었다.

진관사는 한국전쟁동안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다. 그래서 지금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의 웅장함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관사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는 사찰이다. 진관사 숲길과 계곡을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느낌들이 좋아서 발걸음들이 진관사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트레킹팀도 그런 좋은 기운을 받으며 다음 코스인 대서문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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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관사: 아름다운 북한산과 어우러진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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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에서

 

대서문은 북한산성에 있는 14개의 성문 중 서쪽에 있는 성문을 말한다.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는 대동문, 대남문 등과 달리 대서문은 해발고도가 낮아 접근성이 매우 좋다. 북한산둘레길 코스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거리가 가까워, 둘레길과 묶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트레킹팀이 그렇게 탐방을 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북한산성은 1711(숙종37)에 축조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북한산에는 산성이 존재했었다. 백제시대에는 위례성의 북쪽 방어성으로 산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후 본격적인 삼국 항쟁시기에는 북한산을 두고 각국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었다.

그 항쟁의 증거 중에 하나인 진흥왕 순수비가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있다. 정확히는 지금 비봉에 세워진 순수비는 진품이 아니고, 순수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석이다. 진품은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로 비봉은 앞서 언급한 진관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도는 상당히 가파르다. 답사에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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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계곡




 

우리 북한산계곡에 와 있습니다. 정말 시원스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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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이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계곡에서 나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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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성벽 구간, 무너진 성벽 구간이 보이시죠? 원래 이 곳에는 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문을 통해서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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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에는 대서문 같은 7개의 대문과 6개의 암문, 그리고 한 개의 수문이 있었다. 이를 두고 북한산성 14성문이라고 말한다. 대문과 암문은 복원이 되고 해서 실재하고 있지만 수문은 소실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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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북한산성은 포곡식 산성입니다. 포곡식이라는 건 계곡을 끼고 있는 산성이라는 뜻이죠. 성이 만들어지면 음용수 때문에 골치를 썩잖아요. 그런면에서 계곡을 끼고 있는 북한산성은 물 공급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죠.”

진짜 그랬겠네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계곡이 있다 보니 풍수해에 취약해요. 그래서 저 앞에 수문이 떠내려가 버렸잖아요.”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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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성 수문터: 북한산성 수문은 북한산계곡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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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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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 탐방을 끝으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더불어 후원자들과 5번에 걸쳐 함께한 리워드 트레킹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이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도 마칠 때가 됐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2016년 한 해는 펀딩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프로젝트들과 달리 리워드를 트레킹 초대형식으로 제공했다. 에코백이나 머그컵 같은 것을 드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잘하는 것을 리워드로 제시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5번에 걸쳐 직접 후원자들과 만나 트레킹을 행했었다. 내 리딩 방식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중에는 중복 참여를 하신 분들도 여럿 계셨다. 어떤 분은 5번 다 참가를 해주시기까지 했다. 내년에도 스토리펀딩에 트레킹 프로젝트를 개설해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분도 계셨다.

글을 끝내기 전에... 누군가 이렇게 물으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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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으로 올 한 해를 때웠다고 하는데... 그래서 돈 좀 만지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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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대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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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펀딩합니까? 그냥 사람들이 좋아서 펀딩한 거지. 어차피 실비 빼면 마이너스에요. 그래도 하는 건 트레킹이 좋고,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거에요. 그런 게 세상사는 맛 아니겠어요? 당신도 기회 되시면 서울트레킹에 참여해보세요. 제가 김밥이랑 물 챙겨 드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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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팀: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원효봉이다.









        * 대서문: 대서문의 여장. 특이하게도 일체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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