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6편>

이번 편에는 센(?) 분을 만나러 간다. 부제부터 파워가 느껴지지 않는가? 태종 이방원 역사트레킹이니까!

태종 이방원 역사트레킹은 할미산이라고도 불리는 대모산 일대에서 진행된다. 대모산의 남쪽에서 시작해서 북쪽으로 넘어가 광평대군 묘역에서 종료가 된다. 산을 하나 넘어가는 형태지만 물리적으로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대모산의 해발고도가 293미터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상을 찍지도 않는다. 역사트레킹은 숲길을 찾아 산을 향해가지만 정상을 찍지는 않는다. 역사트레킹은 등산모임이 아니니까.

태종 이방원 역사트레킹의 첫 번째 탐방지는 헌인릉이 있는 강남구 내곡동이다. 하지만 트레킹팀은 지하철 3호선과 신분당선이 만나는 양재역에서 집합을 한 후 헌인릉행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헌인릉을 가보시면 알겠지만 여기가 강남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좀 허한 느낌이다. 그 흔한 편의점 하나가 안 보인다. 길이 엇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예 양재역에서 함께 모여 이동하는 것으로 정했다. 버스를 약 20분 정도 타고 가는데 차창 밖 풍경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 자식 복이 없었던 정조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로 향하는데 홍살문이 보이고 그 너머에 봉분이 보인다. 들어서자마자 태종 이방원이 잠든 헌릉을 마주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곳은 인릉이다. 인릉은 조선의 23대왕인 순조와 그의 부인인 순원왕후의 능이다. 이방원을 만나러왔는데 뜻밖에 인물부터 마주하게 된 것이다. 태강릉을 생각해보시라. 문정왕후가 잠든 태릉을 보러 왔는데 그의 아들인 명종이 잠든 강릉까지 탐방하지 않았던가.

순조는 정조의 차남으로 1790년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수빈 박 씨였는데 성품이 온화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여 현빈(賢嬪)이라고 불렸다. 순조는 정조가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는데 그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성군이라 불리는 정조대왕이었지만 자식복은 무척이나 없었다. 총 5명의 부인으로부터 2남 2녀를 얻었는데 그마저도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어려서 죽게 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정비였던 효의왕후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어 후궁인 원빈 홍씨와 화빈 윤씨를 연이어 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후사를 얻지 못한다.

그러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의빈 성씨를 후궁으로 맞이하게 된다. 의빈 성씨는 원래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자식같이 대하던 궁녀였었다. 성씨가 정조보다 1살 많았는데 10살 경에 입궁을 했으니 정조와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마주쳤던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찼고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났을 것이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선남선녀들이 한 공간에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다. 불꽃이 팍팍!

의빈 성씨는 1남 1녀를 낳았는데 그 아들이 문효세자였다. 문효세자는 정조의 첫 번째 자식으로 1782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박복하게도 다섯 살도 안 된 1786년에 홍역을 걸려 요절을 한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픔 때문인지 당시 임산부였던 의빈 성씨도 몇 개월 후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나마 있던 딸인 옹주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마감한다. 연이어 이어진 부인과 자식들의 죽음에 정조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 인릉 정자각

 

● 농산 스님이 정조의 아들?

1787년(정조11)에 수빈 박씨가 후궁으로 간택된다. 하지만 바로 순조를 낳지는 못했다. 왕위를 계승할 후손이 없었으니 정조는 얼마나 마음이 타들어갔겠는가. 그런 상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순조의 탄생과 관련하여 주술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용파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용파 스님은 당시 부과되는 부역이 너무 과하여 불교계가 피폐해지자 이를 타파하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셨다. 학수고대한 끝에 임금을 만났으니 그가 바로 정조였다. 대왕 앞에 나가 자초지정을 설명하니 그 부역을 면하게 됐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걸렸다. 왕위를 이을 왕자를 낳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정조께서는 용파가 보통 승려가 아니었음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후사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문제가 해결됐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임금과의 거래의 산물이니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용파 스님은 이 일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삼각산(북한산) 금선사에 있는 농산 스님을 찾아갔다. 자초지정을 들은 농산 스님은 금선사에 있는 목정굴에서, 용파 스님은 수락산에 있는 내원암에서 300일 관음기도를 올리게 된다.

드디어 300일이 되던 날이었다. 이날 수빈 박씨는 한 스님이 나타나 음력 6월 18일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일러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때 금선사 목정굴에서 기도를 올리던 농산 스님이 가부좌를 튼 채로 열반에 들게 된다. 마침내 음력 6월 18일이 됐고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왕자 아기씨가 태어났다. 이를 두고 농산 스님이 환생을 하여 수빈 박씨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 설화로 따지면 농산 스님이 정조대왕이 아들이 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어쨌든 왕위를 이을 왕자가 태어났고, 금선사에서는 매해 6월 18일에 순조의 탄신제를 올리고 있다. 더불어 금선사와 내원암은 정조 재위 기간에 크게 중창된다.

정조의 자식과 그의 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나열해봤다. 개혁군주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조선은 급격하게 퇴보를 하게 된다. 세도정치로 인해 사회는 극심하게 혼탁해지고 민초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 정조대왕이 좀 더 길게 사셨으면...

- 순조가 좀 더 일찍 태어났으면...

 

순조가 11살이 아닌 좀 더 성장한 후에 왕위에 올랐으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부질없지만 그런 상상을 해본다. 세도세력이 덜 맹위를 떨쳤을 거 같고, 서양 열강들과의 관계도 좀 더 슬기롭게 대처했을... 말 그대로 쓸데없는 역사적 가정인가? 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다.

* 목정굴: 북한산 금선사에 있는 목정굴. 계곡 옆에 있어 여름철에는 무척 시원하다. 대모산이 아니라 북한산에 있다.

 

● 한 번 옮겨진 인릉

순조가 잠들어 있는 곳에서 그의 탄생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였다. 자 이제 순조가 잠들어있는 인릉을 살펴보자. 원래 인릉은 1835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장릉(長陵) 곁에 모셔졌었다. 장릉은 인조의 능이다. 그러다 20년 후에 능지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이곳 헌릉 옆으로 천릉(遷陵)하게 된다. ‘옮길천(遷)’자에서도 보듯 천릉은 이장(移葬)을 뜻한다. 그래서 천장(遷葬)이라고도 부른다. 천릉을 해서 그런지 인릉의 비각 안에는 구표석과 신표석 2기가 있다.

인릉은 순조와 함께 정비 순원왕후가 함께 묻힌 합장릉이다. 단릉과 같은 형식이라 단출한 모습을 띄고 있다. 옆에 있는 태종 이방원의 헌릉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 소박해보일 정도다.

순조가 1834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재위 기간은 34년이나 됐다. 적지 않은 기간이다. 아버지 정조보다 10년이나 더 왕위에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용상에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왕위는 손자인 헌종에게로 전해졌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던 아들 효명세자가 일찍 죽음을 맞이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간단한 퀴즈 하나.

 

“조선 역사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왕은 누구?”

단종이라고 많이 말씀하실 거 같은데 틀린 말이다. 답은 바로 헌종이다. 헌종은 8살 나이에 즉위하였다. 할아버지인 순조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용상에 오른 것이다. 참고로 단종은 12살에 즉위를 했다.

 

* 인릉: 옆에서 본 모습.

 

 

● 진짜 쎈 분을 만나러 간다!

 

이제 진짜 ‘쎈’분을 만나러 갈 차례다. 인릉에서 숲길을 따라 잠깐 걸으면 헌릉이 나온다. 헌릉 홍살문에 가기 전에 이런 멘트를 날렸었다.

 

“이제 진짜 센 분 만나러가니 옷 좀 잘 추스르세요.”

“네?”

“잘못하면 그 분한테 혼날 수도 있으니까요.”

“...”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지만 확실히 인릉보다는 헌릉을 탐방할 때 좀 더 긴장을 했던 거 같다. 기가 더 세게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조선 왕 중에서 가장 순(純)했던 왕을 만나고 뒤이어 가장 ‘쎈’ 왕을 알현하니 필자의 몸에서 기가 파도를 치는 느낌이었다.

헌릉은 조선의 3대 왕인 태종과 그의 정비인 원경왕후가 잠들어있는 곳이다. 인릉처럼 봉분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봉분이 나란히 안치된 쌍봉 형태로 이루어졌다. 대신 곡장은 트여있어 두 개의 봉분을 가지런히 감싸고 있다. 곡장은 무덤 뒤에 쌓은 낮은 담을 말한다.

헌릉에 먼저 무덤을 쓴 사람은 원경왕후 민씨였다. 원경왕후는 1420년(세종2)에 이곳에 묻히게 된다. 당시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난 상태였는데 원경왕후가 이승을 떠난 2년 후인 1422년(세종4)에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고 헌릉에 묻히게 된다.

원경왕후는 1398년에 있었던 1차 왕자의 난 때 크게 도움을 주는 등 이방원이 권력을 쟁취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태종은 왕권강화를 위해 외척세력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원경왕후의 남동생 4명은 죽음을 당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원경왕후도 폐위에 위기에 몰렸다. 트레킹팀에게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연산군 때처럼 세종대왕도 생모가 폐위가 됐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런 가정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요.”

어쨌든 극과 극을 달렸던 태종과 원경왕후는 현재는 나란히 누워 고이 잠들어 있다. 살아생전의 태종의 모습처럼 헌릉은 에너지가 넘쳐난다. 옆에 있는 인릉의 석물들이 소박한 모습이라면 헌릉의 석물들은 기개가 넘치는 모습이다.

* 헌릉: 정자각 방면에서 바라본 헌릉. 뒤로 대모산 정상부가 보인다.

● 원래 세종대왕의 능이 헌릉 옆이었다고?

 

이 헌릉 근처에 원래는 세종대왕도 묻혔었다. 효자였던 세종대왕은 헌릉 서편에 왕비였던 소헌왕후와 함께 합장되었다. 이를 두고 영릉(英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현재 영릉은 경기도 여주시에 자리 잡고 있다. 경강선 세종대왕릉역에 내려서 탐방할 수 있다.

그럼 왜 영릉은 대모산에 있다가 저 멀리 여주땅으로 옮겨갔을까? 세종이 승하한 후 흉사가 연이어 일어난다. 문종이 일찍 숨을 거두고, 단종이 안타까운 일을 당한다. 단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세조도 그 흉사를 피해가지 못한다. 장남인 의경세자가 20살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모산의 영릉 자리가 나쁘다며 1469년(예종1)에 여주땅으로 천장하게 된 것이다.

헌릉의 서쪽에는 희릉(禧陵)도 있었다. 희릉은 중종의 제1계비였던 장경왕후의 능이다. <태릉 역사트레킹>편에서도 언급됐듯이 장경왕후는 1515년(중종10)에 아들을 낳다 산통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그때 낳은 아들이 인종이다. 인조 말고 인종. 장경왕후 이후 왕비가 된 이는 그 유명한 문정왕후이다. 이후 희릉은 풍수상 안 좋다는 의견이 있어 1537년(중종32)에 고양 서삼릉 능역으로 천장한다.

* 헌릉: 헌릉 바로 옆에서 찍은 모습. 화려한 석물들이 눈길을 끈다.

 

● 조선의 초기와 후기를 동시에 만나다!

 

태종 이방원은 함부로 자신의 옆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순조의 인릉이 들어선 것도 의아할 정도다. 철권 통치자와 유약한 통치자, 서로 잘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동거를 뒤로 하고 헌인릉을 빠져나왔다.

대모산을 넘어 세종의 5남인 광평대군 묘역까지 탐방을 하면 태종이방원 역사트레킹은 종료가 된다. 이때 대모산 숲길을 걸어가는데 이 숲길도 정말 좋다. 명품 숲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종 이방원 역사트레킹이라고 해놓고선 순조를 비롯한 조선 후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 거 같다. 이방원의 네임 파워를 이용해 먹은 것이다. 꼼수를 썼다고 너무 질책하시지는 마시라. 이런 식으로라도 조선 후기 시대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이렇듯 태종 이방원 역사트레킹에서는 조선 전기와 후기를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할머니 같은 대모산의 숲길도 태종 이방원 역사트레킹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에 한 가지다. 그러니 안 가면 너무 섭섭할 거에요!

 


■ 태종이방원 역사트레킹

1. 코스: 헌인릉 ▶ 대모산숲길 ▶ 수서동가마터 ▶ 광평대군묘역

2. 이동거리: 약 7km

3. 예상시간: 4시간(휴식시간 포함)

4. In: 지하철 3호선 양재역 9번 출구 / OUT: 광평대군묘역 ☞ 출발시 ‘헌인릉’행 버스탑승 / 약 15분 정도 소요됨.

 

 

 

 

* 태종이방원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지난 7월 1일 일요일.

비가 너무 많이 내렸습니다. 야외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내렸습니다. 

"한 명도 안 나오겠네. 이러면 문화센터에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양재역에서 저는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이렇게 혼자 궁시렁거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날은 태종이방원 역사트레킹이라는 독특한 트레킹 강의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한겨레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는데... 아주 딱 강의하는 날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던 것이죠. 사진에서도 보듯 빗줄기가 아주 굵었습니다. 강수량도 상당했고요. 그래서 트레킹을 취소하는 게 옳았습니다. 

하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젓으라'는 말이 있듯이 할 때 확 해버려야 합니다.그래서 저는 참가자들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안전 문제도 있으니까, 헌인릉 위주로 탐방을 할게요. 우중트레킹 하면서 능 구경해요."

문자를 저렇게 보냈어도 노심초사했지요. 사람들이 한 명도 안 오면 어쩌나 하고...

하지만 올 사람들은 오게 되어 있더군요. 인증샷에서 보듯 악천후를 뚫고 무려 네 분이나 태종이방원 역사트레킹에 참여를 해주셨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태종이방원 트레킹은 태종이 묻힌 헌릉을 탐방한 후 대모산 숲길을 넘는 코스로 짜였습니다. 종착지는 세종대왕의 다섯번째 아들인 광평대군 묘역이지요. 대모산 숲길이 상당히 괜찮아서 저도 나름대로 기대를 한 코스였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빗줄기에 아주 산통이 다 깨졌지요. 안전문제 때문에 대모산 숲길은 입구만 탐방을 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헌인릉을 탐방하다보니 아주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봉분에 방수포가 씌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력한 빗줄기에 의해 능침이 손상되지 말라고 방수포를 씌었던 것입니다. 능침은 봉분을 말합니다. 능침은 능상이라고도 불리고요. 

사진에 은빛 방수포가 이색적이죠? 헌릉은 은빛 방수포로 덮어져 있더군요. 헌릉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무덤으로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상징한 태종이었기에 능 주변에 있는 석물들도 큼직큼직합니다. 

이에 비해 인릉은 아주 아담하지요. 녹색 방수포로 씌어진 인릉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무덤으로 합장릉입니다. 그래서 능침이 하나입니다. 형식이 단릉 형식이라는 거지요.

하여간 비 맞으면서 트레킹을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능에 방수포를 씌우는 이색적인 모습도 관찰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흥미는 있었지요? 특히 은빛 방수포가 덮어진 헌릉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쌍릉이었으니... 더 크게 느껴졌지요! 























오늘도 덥네요. 땀이 쭈욱쭈욱 흘러내립니다. 


이럴 때 일수록 건강 관리에 더 힘을 써야겠지요. 그래야 다음 트레킹 할 때 즐겁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얼마전에 헌인릉을 다녀왔습니다. 아래 표지판에도 나와 있듯이 헌인릉은 태종 이방원과 정조의 아들은 순조가 모셔진 곳입니다. 

강력한 왕권의 상징인 태종과 유약했던 순조! 극과 극에 해당되는 임금 두 분께서 함께 모셔져 있으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뒤편에 대모산을 주산으로 삼은 이 곳은 태종의 능을 헌릉이라 부르고, 순조의 능은 인릉이라고 부른답니다. 동쪽에 헌릉이 자리잡고 있고, 서쪽에는 인릉이 위치해 있지요. 매표를 하고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인릉이 보인답니다. 

강력한 왕권을 상징했던 태종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들 세종대왕께서 정성을 다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헌릉은 인릉에 비해 의리의리합니다. 인릉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이 각각 한 쌍인데 비해 헌릉은 각각 두 쌍입니다. 쪽수부터 차이가 나네요...ㅋ

석호와 석양도 엄청 많고요.이런 점들 때문에 헌릉은 조선 초기 능역에 대한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헌인릉에 가면 조선 초기의 능역과 후기의 능역을 비교해 보면서 관찰할 수 있답니다. 물론 줄이 쳐져 있어 조금 떨어져서 탐방을 해야 하지만...

뭐 그건 그렇고.

제가 헌인릉, 그중에서도 헌릉을 탐방을 할 때 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답니다. 무언가 좋은 느낌 같은 거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가 느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헌릉 탐방을 마친 다음에 주위에 계신 관리자분께 이런 말을 건냈습니다.

"여기 오니까 무언가 기운이 세게 느껴지네요! 무언가가 확 끄는 느낌 그런거요. 그냥 제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관리자 분은 그냥 웃으시는데, 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을 받았답니다. 

왕릉은 길지에 조성되다보니 분명 다른 곳보다는 풍수가 좋을 테지요. 그런 좋은 길운을 저는 트레킹에 담아내야 할 거고요.

그래서 '헌인릉 태종이방원 역사트레킹'을 기획해 봅니다. 이름 참 길죠...ㅋ

지금 당장 해보고 싶지만 아직 날씨가 더우니 올 가을을 기대해 보죠. 많이 오셔야 하는데... 그때도 미달되면 안 되는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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