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승대

 

 

 

 

 

우두산 y자형 출렁다리, 창포원 등등... 근래에 들어 경남 거창에는 주목받는 관광자원들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역시 거창하면 수승대다. 계곡을 따라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고 거대한 거북바위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곳이 바로 수승대다. 워낙 빼어난 풍광을 자랑해서 그런지 수승대에서는 여름에 국제연극제까지 펼쳐진다. 시원한 계곡이 흐르는 그곳, 명승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는 거창 수승대 일대를 탐방해보자.

 

 

● 안의삼동이라고 불렸던 수승대 계곡

 

수승대는 널찍한 바위와 그 옆을 흐르는 맑은 물, 푸른 숲이 어우러져 일품 풍광을 자랑한다. 그 물의 발원지는 덕유산이다. 원학동(猿鶴洞)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수승대는 거창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한 곳이다. 거창을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바로 수승대라는 것이다.

 

원학동 계곡은 함양의 화림동(花林洞) 계곡, 용추계곡이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심진동(尋眞洞) 계곡과 더불어 안의삼동(安義三洞)이라고 불렸다. 원학동, 화림동, 심진동이 안의 지방의 3대 계곡이라는 뜻이다. 안의는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으로, 면 단위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안의현이라 불리며 함양, 거창과 함께 그 어깨를 나란히 했다다. 이후 행정구역이 개편됐고, 그래서 현재 수승대는 거창군 소속이 됐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를 논할 때, 흔히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여기서 '우 함양'을 '우 안의'로 바꿔도 될 만큼 안의 지역은 풍부한 선비문화를 창달했던 곳이다. 수승대가 안의삼동이었던 만큼 수승대도 선비 문화와 궤를 같이 했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 명칭을 둘러싼 이야기부터 아주 선비적이었다.

 

 

 

 

 

* 관수루: 구연서원의 정문

 

 

 

 

 

 

 

 

● 수승대의 옛 이름 '수송대'

 

수승대의 옛날 명칭은 수송대(愁送臺)였다. 한자를 풀어보면 근심 수(愁), 보낼 송(送), 돈대 대(臺)다. 한자에서도 보이듯 수송대라는 명칭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다. 보낼 송(送)자에서 보듯 '근심을 떨쳐낸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학동 계곡은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였다. 백제는 나날이 쇠락해졌고, 반대로 신라는 점점 더 강성해질 무렵이었다. 백제 사신들은 신라 조정에 가서 수모를 당했다. 심지어는 목숨을 잃고 영영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

기도 했다.

 

이렇듯 먼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술 한 잔 건네며 위로를 해 주었던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마침 국경과 가까운 곳에 풍광이 수려한 곳이 있으니, 그 곳에서 위로주를 건냈을 것이다. 그곳이 바로 거북바위로 유명한 수송대라는 거다.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일대에서 백제와 신라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오갔다는 사실이다. 원학동에서 동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에 거열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산 정상부근에는 거열성이라는 산성이 있다. 삼국시대 말기, 거열성은 신라군에 의해 함락되기도 했고, 이후에는 백제 부흥 운동이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일대는 백제와 신라의 격전장이었다. 그렇게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거북바위는 그 이후로도 약 천 년 동안 수송대라고 불리게 됐다.

 

 

 

 

 

 

* 요수정: 거북바위 건너편에 있다.

 

 

 

 

 

 

 

● 풍류객(?) 이황이 지어준 '수승대'라는 이름

 

거북바위가 수승대(搜勝臺)라는 현재의 명칭을 얻게 된 건 퇴계 이황이 지은 시 한 수 때문이었다. 그 시를 수취한 이는 요수(樂水) 신권(愼權)이라는 분이었다. 신권 선생은 일찍부터 벼슬길을 마다하고 원학동 일대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거북바위 옆쪽에 구연재(龜淵齋)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는데 이를 두고 구연서당이라고 불렀다.

 

관수루라는 멋진 문루를 두고 있는 구연서원은 이후 구연서당 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계곡의 반대편에는 요수정이라는 정자도 지었는데 요수정에 오르면 거북바위의 또다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자연과 학문을 벗 삼고 있던 신권 선생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안의지역을 유람하던 퇴계 이황 선생이 원학동을 방문하겠다는 전갈이 당도한 것이다. 신권 선생은 요수정에서 한 상 차려 놓고 반가운 이의 발걸음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오라는 퇴계 선생은 오지 않고, 편지 한 통이 전해지게 된다. 왕의 부름 때문에 급하게 한양으로 떠나야 했던 퇴계 선생이 보낸 서찰이었다. 그 서찰에는 원학동을 방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시 한 수가 적혀 있었다.

 

그 시에서 퇴계 선생은 어감이 좋지 않은 '수송대'를 '수승대(搜勝臺)'로 고치라고 권유한다. 한자를 거칠게 풀어보면, '찾아다녔던 뛰어난 곳' 정도로 쓰일 수 있겠네요. 발음도 비슷하니 못 바꿀 이유도 없었겠지요. 그렇게 하여 거북바위는 퇴계 선생 덕분에 천 년 동안 간직해오던 부정적인 이름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이다. 풍류를 즐기기에 딱 좋은 장소에 어울리는 '풍류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야기를 입증이라도 하듯 거북바위에는 퇴계 선생의 시문이 새겨져 있다. 이외에도 거북바위에는 수많은 풍류객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갔다. 그런 글씨들이 멋있어보여서 그랬는지 필자도 한 번 붓을 놀리고 싶었다. 하지만 문화재를 훼손하면 감방에 갈 수도 있다.

 

 

 

 

 

* 용암정: 숲길을 따라 수승대에서 약 1km 정도 이동을 하면 만날 수 있다.

 

 

 

 

 

 

근래에 들어 수승대의 명칭 변경 논란이 있었다. 2019년에 서울 성북동에 있는 성락원(명승 제35호)이 역사성 논란에 휩싸였는데 엉뚱하게 그 불똥이 수승대로 튄 것이다. 성락원 논란으로 인해 전국의 명승과 별서정원의 역사성을 전수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와 관련하여 관계자들이 삼국시대의 명칭인 수송대로 바꾸자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승대는 수승대였다. 굳이 수송대라는 옛 이름으로 돌릴 이유가 없었다. 거창 군민들은 반발을 했고 적극적으로 의견 제시를 했다고 한다. 결국 2021년 11월 10일, 문화재청은 현재의 수승대 명칭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수승대 일대는 보물로 지정된 농산리석조여래입상, 용암정, 모산재 등등... 다양한 문화재들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수승대를 감싸고 있는 성령산은 소나무숲길이 인상적인 곳이다. 계곡도 좋고, 문화재도 만날 수 있고, 숲길도 좋은 곳... 당장 가보자!

 

 

ps. 본 포스팅은 경상남도에서 주관하는 거창한달살기 프로그램을 행한 결과물입니다.

 

 

 

 

 

* 농산리석조여래입상: 보물 1436호로 지정되어 있는 농산리석불. 수승대에서 약 2km 정도 떨어져있다.

 

 

 

  

* 소나무숲길: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다. 숲길이 짧다는게 단점이었다.

 

 

 

 

 

* 수승대

 

 

 

 

 

 

* 참고

 

1. 서울에서 거창까지는 고속버스로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됨. 남부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거창행 버스를 탈 수 있음.

2. 거창읍내에서 수승대가 있는 위천면까지 군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음.

3. 거창읍내-위천면 시골버스 이동시간은 약 15분 정도임. 배차간격은 약 30분 정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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