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더워졌네요. 이제 여름입니다. 여름~


이제 2017년 상반기 역사트레킹도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슬슬 상반기를 정리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덥다고 트레킹 안 하나? 덥다고 밥 안 먹어?"


누구는 그렇게 말씀들을 합니다. 한 여름에도 한 겨울에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트레킹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저는 일년 365일 계속 하고 싶답니다... ㅋ


오늘은 올 하반기에 함께 가고 싶은 코스를 소개합니다. 거기가 어디냐!


남산역사트레킹입니다. 


내사산 중에 한 곳인 남산, 워낙 중요한 산이라 목멱대왕이라는 벼슬까지 하사된 남산.


이렇게 중요한 산이기에, 워낙 유명한 산이기에 우리는 남산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 남산을 탐방해보려고 합니다. 진짜 남산을 잘 알고 있는지 곱씹어 보면서...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지대도 가보고, 전망대에 올라 한강 이남도 시원하게 관망하는 것입니다.


또 남산 북단에 있는 와룡묘도 탐방할 겁니다. 


와룡묘? 와룡과 봉추할 때 그 와룡? 그럼 제갈공명인데... 맞습니다. 그 제갈공명과 관련된 유적지가 남산에 있습니다.


그런 와룡묘도 탐방할 것입니다. 안 가면 섭섭하죠.


자 이렇게 남산역사트레킹도 꽤나 흥미로운 트레킹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남산에 올라 우리가 진짜 남산을 잘 알고 있는지 곱씹어 볼 생각입니다. 


올 하반기에, 남산역사트레킹에서 만나 뵙고 싶습니다. 남산의 낙엽길을 걸으며 낭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요~ ^^;



















 

 

 

 

 

 

 

 

 

 

 

 

 

 

남산 타워 아래쪽에 있는 비밀의 숲길 같은 서울성곽길.

이 구간에서는 숙종 시대에 쌓여진 성벽을 볼 수 있답니다.

 

이곳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저는 여러가지 단어들이

떠올랐답니다.

 

한적함, 휴식, 느림 등등...

 

남산타워의 바글바글함에 정신이 없었는데 불과 몇 백 미터의

사이를 두고 이렇게 느긋하게 숲길을 걸을 수 있다니!

더군다나 서울성곽을 바로 옆에다 두고 걸을 수 있다니!

 

성벽을 호위하듯 서 있는 소나무 숲. 그 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서울에도 이런 보석 같은 곳이 있어!"

 

 

 

 

 

 

 

 

 

 

 

 

 

 

 

 

 

 

여행 사진을 찍다보면 단선보다는 곡선을 더 선호하게 됩니다. 그냥 단선은 밋밋할

 

뿐이라 별 감흥이 없잖아요. 같은 다리라고 해도 아치가 있는 한강대교가 그냥 밋밋한

 

원효대교보다는 그림이 더 잘 나올 겁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비슷해서 그런지 여행 사진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들을 보아도 곡선미가

 

살아 있는 사진들이 후한 점수를 받더군요. 'S라인 순천만', '반원을 그린 공룡해안'...

 

 

 

 

 

그렇게 둥글게 휘돌아 나가는 모습에 눈길이 가니 자연경관 뿐아니라 인공구조물도

 

곡선미를 중심에 두고 사진을 찍는 버릇이 생기더군요.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나름대로의 미적 감각이 생겼나 봅니다.

 

 

 

 

 

게재된 사진은 둘 다 서울 성곽을 담은 사진입니다. 메인은 남산 구간에서 찍었고,

 

아래 사진은 인왕산 코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성곽이 휘돌아 나가는 모습이 저에게는

 

하나의 '리듬'처럼 들리네요. 그럼 미감에 음감까지 얻게 된 것인가요?

 

예술가 다 됐네! ^^;

 

 

 

 

 

 

 

 

 

 


 

 

 

아기자기한 재미, 서울내부트레킹!

 

한강, 서울성곽, 수표교까지... 아기자기한 도보여행

 

15.06.03 14:14   최종 업데이트 15.06.03 14:15

 

 

 

 

 

 

 
▲ 수표교 장충단공원 입구에 위치해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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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날 행하는 아웃도어 활동이라면 적어도 북한산 정도는 올라가야 폼이 좀 날지 모른다. 그 귀중한 시간에 동네 뒷산에나 오른다면 휴일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동네 뒷산도 훌륭한 트레킹 코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동네 뒷산의 쓰임새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역사트레킹 코스는 금호산이라는 전형적인 동네 뒷산을 시작점으로 삼고 있다.

이곳은 북한산에 비하면 작은 동네 산일 뿐이다. 하지만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강을 조망할 수도 있고, 서울성곽길을 만날 수도 있다. 거기에 걸음을 더하면 수표교와 광희문, 그리고 동대문으로 익숙한 흥인지문도 탐방할 수 있다.

 

 

매 사냥터였다는 매봉산

이렇게 아기자기한 길에 이름이 없다면 섭섭할지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이름을 지어보았다. 서울 내부트레킹! 남산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을 탐방한다는 의미로 지어본 이름이다.

서울 내부트레킹의 시작점은 지하철 5호선 청구역이다. 청구역에서 첫걸음을 뗀 후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금호산이라고도 불리는 매봉산이다. 조선시대 왕들이 매를 풀어 사냥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매봉산은 응봉근린공원의 한 축으로 속해 있다. 그 응봉근린공원은 남산과 서울숲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이야 도심지의 확장으로 중간중간 녹지축이 잘려 나갔지만 예전에는 남산에서부터 응봉산까지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응봉산은 조선 초기 동빙고(東氷庫)가 있던 산으로 지금은 개나리 축제로 유명한 작은 산이다. 사냥감을 노리는 '매'서운 눈빛이 사라진 매봉산이지만 그곳에 올라서면 눈이 크게 떠지게 된다. 시원스럽게 한강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호대교 아래로 압구정동 방면으로 꺾여 나가는 한강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인근에 있는 아차산은 물론 멀리 팔당대교 부근까지 조망할 수 있다.

연이어 놓여 있는 한강다리들의 이름을 맞혀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필자도 동행한 트레킹팀과 함께 한강다리 이름 맞히기 놀이를 했다. 결과는? 당연히 필자가 1등을 했다. 참가자들 중에 지방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 버티고개 버티고개를 걷고 있는 트레킹팀.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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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개에 앉아 있는 놈'이 되지 말자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이다."

이런 속담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 저 속담은 사람들한테 사기나 치고, 민폐나 끼치는 못된 놈들을 욕할 때 쓰는 말이다. 버티고개는 약수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버터고개, 번터고개라고도 불린 이 고개는 길이 좁은 데다 도둑들까지 들끓는 터에 악명이 높았다. 그 도둑들을 옛날 순라꾼들이 '번도'라고 외치며 추격을 했는데, 그 말이 변하여 '번티'라 불렸다가 다시 '버티'로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 한밤중에 버티고개에 앉아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아마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남들에게 민폐나 끼쳐서 '밤중에 버티고개에 앉을 놈'과 같은 욕을 먹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버티고개는 걷기에 좋은 길이 됐다. 안전한 보행교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남산의 동쪽 방면을 보며 걸을 수 있다. 그렇게 버티고개를 넘으면 동남쪽 서울성곽길과 만나게 된다. 이 구간의 성곽길은 신라호텔 후면을 돌아간다. 이 구간은 신라호텔의 사유지였던 곳이 개방된 터라 비교적 성곽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 서울성곽길 서울성곽길. 이 길을 따라가면 신라호텔과 장충단공원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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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충단 공원

 


가수 배호의 노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으로 유명한 장충단(奬忠壇)은 원래 제례를 드리는 공간이었다. 이곳은 어영청의 분소인 남소영(南小營)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남소영은 도성의 남부지역을 방비하는 군영이었다.

이 자리에 장충단이 들어서게 된 건 1900년 9월경이었다. 고종은 을미사변(1895년)으로 살해된 명성왕후와 신하들의 넋을 추모하고자 장충단을 세웠다. 처음에는 시위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장병들만 제사를 지냈으나 이후에는 이경직 같은 궁내부 대신들도 배향되었다. 더불어 임오군란, 갑신정변 당시에 순직한 문신들도 배향되면서 많은 문무관들이 장충단제향신위(奬忠壇祭享神位)에 봉안됐다. 

공원 중심부에 서 있는 장충단(奬忠壇) 비석의 앞면은 순종이 직접 쓴 글씨를 새긴 것이다. 순종은 명성왕후의 둘째 아들이었으니 글자를 써내려가면서 울분을 토했을 것이다.

장충단은 1910년, 일제에 의해 폐사된다. 1920년대 일제는 장충단을 공원화하면서 그곳의 정신을 앗아가게 된다. 마치 '종묘사직' 할 때의 '사직단'이, 1922년 사직단 공원이 된 것과 같이 격하된 것이다.

 

 



 
▲ 장충단 비석 앞면은 순종, 뒷면은 민영환의 글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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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희생자들의 넋들이 빠져(?)나간 장충단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추모시설들이 그 자리를 채워나갔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을 당해 죽었을 때인 1909년에 일본은 장충단에서 추도대회를 열었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도하기 위해 박문사(博文寺)가 세워졌고, 상해사변(1932년) 때 폭탄을 안고 적진(?)을 향해 갔던 육탄삼용사를 기리는 동상도 세워졌다.


육탄삼용사는 가미카제의 원형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중국군의 철조망을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폭탄에 불을 댕겼는데 생각한 것보다 심지가 빨리 탔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됐을까? 그냥 폭사했다. 그런 3인을 위해 일제는 동상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 일제가 만든 시설들은 광복 후에 다 철거가 됐다.

광복 이후 장충단 공원은 정치집회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수많은 정치집회 연설 중 두드러진 연설이 하나 있었다. 1971년 4월 18일,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의 선거 유세가 바로 그것이다. 그해 4월 27일에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선거 와중에 행해진 김대중의 연설은 무척 파격적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지 못하면 박정희씨의 영구집권 총통시대가 온다"

그의 연설처럼 1972년에 유신헌법이 제정됐고,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꿈꾸게 된다. 1979년 10월 26일에 있은 '시크릿 파티'에서 한 잔의 술에 섞인 한 발의 '총탄'이 있기 전까지 박정희는 실질적으로 총통이었다. 3권 분립은 그저 교과서에서만 존재했다.

이외에도 김대중은 향토예비군 폐지, 남북간 비정치적 영역 교류 실시, 지방자치제 도입 등을 언급했다. 지금이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당시의 시각으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들이었다. 장충단 공원에 모인 100만 가까운 인파들 앞에서 저런 '센세이셔널'한 내용들이 확성기를 타고 퍼져나갔으니 당시 집권세력은 얼마나 긴장을 했겠는가?

 


 
▲ 수표교 장충단공원에 있는 수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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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의 핵심, 수표교 

    
장충단공원에는 수표교(水標橋)도 있다. 청계천에 세워져 있던 수표교는 1958년, 청계천이 복개가 될 때 철거되어 홍제동으로 이전했다가 1965년부터 장충단공원 입구에 자리 잡게 됐다.

수표교는 세종 2년(1420)에 처음 세워졌는데 그때 이름은 마전교(馬廛橋)였다. 마전교가 수표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경되게 된 건 세종 23년(1441)의 일이다. 그해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해 다리 아래에 양수표(量水標) 세우게 됐는데 그것을 계기로 수표교(水標橋)로 개칭이 된 것이다. 

수표교의 매력은 다리 난간에 있다. 난간이 있는 다리는 궁궐에서나 쓰였다. 조선시대 민간의 다리는 징검다리나 섶다리 수준이었다. 그래서 수해가 나면 다리가 흔적조차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수표교는 튼튼한 돌다리인 데다 고급스러운 난간까지 더해졌다. 백성들이 이용하는 다리들 중에 수표교처럼 궁궐의 양식으로 격조 높게 축조된 다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편 수표교의 돌기둥에는 경진지평(庚辰地坪)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영조 36년(1760), 그해에 있은 대대적인 청계천 준설 과정에서 새겨진 것이다. 

이렇듯 수표교는 역사적으로 건축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다리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이 된 지금도 원래 위치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청계천 자리에는 '짝퉁 수표교'가 세워져 있다.

 

 

 

아기자기한 역사트레킹 코스


광희문과 흥인지문(동대문) 탐방을 끝으로 서울 내부트레킹은 종료가 된다. 광희문은 4소문 중에 하나고, 흥인지문은 4대문의 하나다.

한강 보고, 서울성곽길 걷고, 장충단도 탐방하고, 대문과 소문을 관찰할 수 있는 서울 내부트레킹! 동네 뒷산에서 시작되지만 이 정도면 아기자기한 역사트레킹 코스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 광희문 광희문을 탐방중인 트레킹팀.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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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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