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객' 퇴계 이황 선생이 이름 붙여준, 수승대


경남 거창 '수송대'를 '수승대'로 바꾼 퇴계 이황


16.03.21 15:50  최종 업데이트 16.03.21 15:50
    
곽동운(artpunk)            


    




이런저런 이유로 속세의 근심이 밀려올 때, 우리는 도피처를 찾아갑니다. 수려한 자연 속에 자신을 맡기며 잠시나마 세상 시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선들이 산다는 무릉도원에서 시름을 달래면 좋겠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그 곳을 갈 수 없으니 '대타'를 찾아야겠지요. 여기 무릉도원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달래며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 위치한 '수승대(搜勝臺)'라는 곳입니다.





 
▲ 수승대 수승대 거북바위. 여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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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의삼동이라고 불렸던 수승대 계곡

수승대는 널찍한 바위와 그 옆을 흐르는 맑은 물, 푸른 숲이 어우러져 일품 풍광을 자랑합니다. 그 물의 발원지는 덕유산이랍니다. 물과 바위와 숲이라... 그렇습니다. 수승대는 계곡 한복판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거북바위를 말합니다.


원학동(猿鶴洞)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수승대는 거창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한 곳입니다. 거창을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바로 수승대라는 뜻이죠. 원학동 계곡은 함양의 화림동(花林洞) 계곡, 용추계곡이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심진동(尋眞洞) 계곡과 더불어 안의삼동(安義三洞)이라고 불렸습니다. 원학동, 화림동, 심진동이 안의 지방의 3대 계곡이라는 뜻입니다.


안의는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으로, 면 단위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안의현이라 불리며 함양, 거창과 함께 그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합니다. 이후 행정구역이 개편됐고, 그래서 현재 수승대는 거창군 소속이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를 논할 때, 흔히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여기서 '우 함양'을 '우 안의'로 바꿔도 될 만큼 안의 지역은 풍부한 선비문화를 창달했던 곳입니다. 수승대가 안의삼동이었던 만큼 수승대도 선비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라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그 명칭을 둘러싼 이야기부터 아주 선비적(?)이었답니다.






 
▲ 수승대 구연교. 이 다리를 이용하여 계곡 반대편, 요수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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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승대의 옛 이름 '수송대'

수승대의 옛날 명칭은 수송대(愁送臺)였습니다. 한자를 풀어보면 근심 수(愁), 보낼 송(送), 돈대 대(臺)입니다. 한자에서도 보이듯 수송대라는 명칭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보낼 송(送)자에서 보듯 '근심을 떨쳐낸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죠.


근심을 잊으려면 잊을 망(忘)를 썼겠지요. 풍류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이 아름다운 장소에, 왜 '근심'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명칭에 드리워져 있었을까요? 무슨 이유로?


원학동 계곡은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였습니다. 백제는 나날이 쇠락해졌고, 반대로 신라는 점점 더 강성해질 무렵이었습니다. 백제 사신들은 신라 조정에 가서 수모를 당합니다. 심지어는 목숨을 잃고 영영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먼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술 한 잔 건네며 위로해 주었던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국경과 가까운 곳에 풍광이 수려한 곳이 있으니, 그 곳에서 마지막(?)을 잘 챙겨 보내주었다는 것이죠. 그곳이 바로 수송대라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일대에서 백제와 신라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오갔다는 사실입니다. 원학동에서 동쪽으로 약 8㎞ 떨어진 곳에 거열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산 정상부근에는 거열성이라는 산성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말기, 거열성은 신라군에 의해 함락되기도 했고, 이후에는 백제 부흥 운동이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 일대는 백제와 신라의 격전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거북바위는 그 이후로도 약 천 년 동안 수송대라고 불리게 됩니다.





 
▲ 구연서원 거북바위 옆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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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객(?) 이황이 지어준 '수승대'라는 이름


거북바위가 수승대(搜勝臺)라는 현재의 명칭을 얻게 된 건 퇴계 이황이 지은 시 한 수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를 수취한 이는 요수(樂水) 신권(愼權)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신권 선생은 일찍부터 벼슬길을 마다하고 원학동 일대에서 후학들을 양성했습니다. 거북바위 옆쪽에 구연재(龜淵齋)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는데 이를 두고 구연서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관수루라는 멋진 문루를 두고 있는 구연서원은 이후 구연서당 자리에 들어선 것입니다. 계곡의 반대편에는 요수정이라는 정자도 지었는데 요수정에 오르면 거북바위를 정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연과 학문을 벗 삼고 있던 신권 선생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안의지역을 유람하던 퇴계 이황 선생이 원학동을 방문하겠다는 전갈이 당도한 것입니다. 신권 선생은 요수정에서 한 상 차려 놓고 반가운 이의 발걸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라는 퇴계 선생은 오지 않고, 편지 한 통이 전해지게 됩니다. 왕의 부름 때문에 급하게 한양으로 떠나야 했던 퇴계 선생이 보낸 서찰이었습니다. 그 서찰에는 원학동을 방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시 한 수가 적혀 있었습니다.





 
▲ 수승대 사진 오른편에 요수정이 있다. 소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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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에서 퇴계 선생은 어감이 좋지 않은 '수송대'를 '수승대(搜勝臺)'로 고치라고 권유합니다. 한자를 거칠게 풀어보면, '찾아다녔던 뛰어난 곳' 정도로 쓰일 수 있겠네요. 발음도 비슷하니 못 바꿀 이유도 없었겠지요. 그렇게 하여 거북바위는 퇴계 선생 덕분에 천 년 동안 간직해오던 부정적인 이름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풍류를 즐기기에 딱 좋은 장소에 어울리는 '풍류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이야기를 입증이라도 하듯 거북바위에는 퇴계 선생의 시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거북바위에는 수많은 풍류객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갔습니다.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소풍 가기 딱 좋은 계절이 다가온 거죠. 우리도 옛날 선비들처럼 산천이 수려한 곳에서 풍류를 즐겨볼까요? 근심을 떨쳐 보낼 수 있고, 찾아다녔던 멋진 곳인, 수승대에서 말이죠.





* 거북바위







■ 도움말

1. 서울에서 거창까지는 고속버스로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됨. 남부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거창행 버스를 탈 수 있음.


2. 거창읍내에서 수승대가 있는 위천면 면소재지까지는 시골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음. 면소재지에서 수승대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정도 소요됨.


3. 거창읍내-위천면 시골버스 이동시간은 약 15분 정도임. 배차간격은 약 30분 정도임.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 현포항이 바라다보이는 전망대 북면 현포항이 보이는 전망대다.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현포항 부근은 옛날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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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지도 울릉도 지도. 기사의 이해 높이기를 위하여 네이버 지도 서비스를 가져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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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0일 차: 2012년 6월 23일

내가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석양이 지고 있을 때였다. 당시 여행일지를 살펴보니 오후 8시에 하선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배멀미로 구토를 여섯 번이나 해서 진이 다 빠졌지, 주위는 이미 어두워진 데다 하룻밤 잘 곳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지. 울릉도 섬 여행이고, 백두대간 여행이고 다 귀찮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여행을 '쫑 내고'고 서울로 복귀하고 싶었다. 그냥 편하게 안양천이랑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예쁜 여자'들이나 쳐다보면서 자전거나 탈 걸 무엇 하러 이고생을 사서 하는가? 그런 필자의 우울한 마음도 몰라주고 어떤 울릉도 아줌마가 이런 말을 외친다.

"어이, 자전거 끌고 가는 아저씨 민박 3만원."

가뜩이나 울릉도에 와서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는데 그 호객행위 하는 아줌마의 말이 귀에 잘 들렸겠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텐트 있어요."

 

 



 

 

▲ 울릉한마음회관에 친 텐트 울릉도에 너무 늦게 입도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노숙을 할 판이었지만, 다행히 울릉한마음회관 앞마당에 저렇게 텐트를 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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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의 첫 번째 베이스캠프 울릉한마음회관

텐트만 있었을 뿐이지, 캠핑 장소는 없었다. 조바심이 생겼다. 아무리 필자가 노숙에 익숙하다고 해도 진이 빠진 상태에서 텐트 세팅도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도동항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읍 소재지인 도동항에 가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울릉도의 지형은 한계령 빰칠 정도로 험했다. 저동항에서 도동항으로 이동할 때는 저동재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의 경사도가 엄청 가파른 것이다. 배멀미의 여파로 정신은 혼미하고, 뱃속은 허하고, 저동재의 경사도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정말 울릉도와 나는 서로 궁합이 안 맞는 것일까?

불행 중 다행으로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곳 앞뜰에 팔각정이 있어 거기다 그냥 텐트를 쳤던 것이다. 더 이상 이동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그냥 텐트 세팅을 했던 것이다.

텐트를 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바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다. 배멀미로 위액까지 쏟아낸 터라 내 뱃속이 음식물을 잘 소화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을 먹으면 제격이었기에 그 길로 다시 저동항 부근 편의점으로 가, 인스턴트 야채죽을 하나를 사먹었다. 울릉도에 입도해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편의점 죽일 줄이야...

다음날. 육지에서 피로가 많이 쌓여서 그랬는지 잠은 잘 왔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관공서 앞에 야영지를 잡았지만 그럭저럭 하루를 잘 보낸 셈이었다. 텐트에서 나와 야영지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난 놀라운 풍광들을 보게 됐다. 내가 있던 울릉한마음회관은 저동재 중턱 부근에 있었는데 그 아래로 저동항 일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던 게 아닌가. 내 눈은 휘둥그레졌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비경을 품고 있기에 필자가 놀랄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 저동항 울릉한마음회관에서 내려다 본 저동항. 울릉도에서 맞은 첫 아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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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의 해안도로 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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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vs. 제주도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다. 그래서 울릉도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듯 계속적으로 울릉도행 배편은 증편되고 있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활동에 의해 탄생된 섬이다. 하지만 두 섬의 지형적 특색은 다르게 나타난다. 제주도가 솥두껑 모양의 완만한 순상화산 지형이라면, 울릉도는 급격한 경사도를 나타내는 종상화산 지형이다. 제주도는 해안도로를 따라 올레길이 개설됐을 정도로 해안지형이 완만한 경사도 나타내지만 울릉도는 그렇지가 않다. 울릉도의 해안은 수직적인 해식애 지형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해식애란 바닷물의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를 말한다.

그런 지형적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 울릉도는 완전한 일주도로가 없다. 1963년부터 2001년까지 39.8km에 이르는 도로가 저동(울릉읍)-섬목(북면)까지 개설이 됐는데, 섬목-저동까지는 도로가 끊겼다. 울릉도 중앙에 성인봉(986m)이 있는데, 성인봉을 중심으로 1시 방향 지역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동리 -천부(북면 면소재지)간 4.75km 도로의 기공식이 2011년 12월에 거행됐고, 2016년에는 완전한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설될 예정이다.

 

 



▲ 울릉공설운동장 서면에 있는 울릉공설운동장. 저렇게 멋진 곳에서 축구를 하면 나도 메시나 호나우두처럼 공을 잘 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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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듯 울릉도에는 둘레길이 있다. 하지만 경사도 완만성이나 접근성면에서 제주 올레길이 우위에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울릉도 둘레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서면 남양리에서 태하리까지 개설된 7km 구간은 섬 안쪽에 있는 태하령(496m)를 넘어가는 코스다. 저동-섬목 구간에 개설된 둘레길도 남양-태하 구간보다는 바닷가에 접하기는 하나 내수전과 정매화골등을 지나쳐야 하기에 산행코스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대신 울릉도에는 '행남해안산책로'라는 해안도보길이 따로 개설돼 있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 팀이 탐방해 유명해진 길인데, 해안절벽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을 주는 멋진 길이다.

 

 

 


▲ 항목령 정말 꾸불꾸불한 길이다. 난 항목령에서 '시시포스'놀이를 해야 했다. 내가 무슨 그리스 신화를 쓰는 사람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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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락내리락, 울릉도는 내게 시시포스가 되길 '강요'했다

필자는 주로 울릉도 해안을 따라 이동을 했다. 울릉도는 역시 섬지역이라 해안을 따라 관광명소가 즐비했다. 예를 들어 서면 통구미 마을에 거북바위나 북면 석포리의 삼선암 등은 해안도로 바로 옆에 있어 힘들이지 않고 그 바위들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한편 울릉도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무척 힘든 곳이었다. 급격한 경사도로 인해 자전거를 끌고 가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철TB'인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에 무려 40kg 달하는 짐을 싣고, 울릉도의 꾸불꾸불한 길을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오르락내리락은 반복하니, 마치 내 자신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가 된 것 같았다.

설악산의 한계령을 넘고, 그밖에 강원도의 험준한 고개들 줄줄이 넘어온 나였지만, 울릉도의 꾸불꾸불한 길에 그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서면 태하에서 북면 현포리로 넘어가는 항목령 부근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 험하기로 소문난 지리산 관통도로와 필적할 정도로 꾸불꾸불했기 때문이다. 지리산 관통도로야 해발고도가 높기라도 하지. 항목령은 겨우 300m밖에 안 되는 곳이었지만 내게 시시포스의 역할을 강요시켰던 것이다.

 

 

 


▲ 항목령에 우뚝선 블루야크 어렵게 어렵게 정상부에 올랐다. 거의 탈진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시시포스 놀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뿌듯했다. 블루야크는 내 철TB의 애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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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바위 서면 통구미 마을 부근에 있는 거북바위다. 형상이 기묘하여 사진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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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포항이 바라다보이는 전망대 북면 현포항이 보이는 전망대다.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현포항 부근은 옛날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 울릉도의 해안도로 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 여행 10일차: 2012년 6월 23일


내가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석양이 지고 있을 때였다. 당시 여행일지를 살펴보니 오후 8시에 하선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배멀미로 구토를 여섯 번이나 해서 진이 다 빠졌지, 주위는 이미 어두워진데다 하룻밤 잘 곳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지. 울릉도 섬 여행이고, 백두대간 여행이고 다 귀찮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여행을 ‘쫑 내고’고 서울로 복귀하고 싶었다. 그냥 편하게 안양천이랑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이쁜 여자’들이나 쳐다보면서 자전거나 탈 걸 무엇 하러 이고생을 사서 하는가? 그런 필자의 우울한 마음도 몰라주고 어떤 울릉도 아줌마가 이런 말을 외친다.


“어이, 자전거 끌고 가는 아저씨 민박 3만원.”


가뜩이나 울릉도에 와서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는데 그 호객행위 하는 아줌마의 말이 귀에 잘 들렸겠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텐트 있어요.”

 

 

 

# 울릉도의 첫 번째 베이스캠프 울릉한마음회관


텐트만 있었을 뿐이지, 캠핑 장소는 없었다. 조바심이 들었다. 아무리 필자가 노숙에 익숙하다고 해도 진이 빠진 상태에서 텐트 세팅도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도동항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읍 소재지인 도동항에 가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울릉도의 지형은 한계령 빰칠 정도로 험했다. 저동항에서 도동항으로 이동할 때는 저동재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의 경사도가 엄청 가파른 것이다. 배멀미의 여파로 정신은 혼미하고, 뱃속은 허하고, 저동재의 경사도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정말 울릉도와 나는 서로 궁합이 안 맞는 것일까?

 

 

 

▲ 울릉한마음회관에 친 텐트 울릉도에 너무 늦게 입도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노숙을 할 판이었지만, 다행히 울릉한마음회관 앞마당에

저렇게 텐트를 칠 수 있었다.

 

 

▲ 저동항 울릉한마음회관에서 내려다 본 저동항. 울릉도에서 맞은 첫 아침 풍경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텐트 칠 곳을 찾았다.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곳 앞뜰에 팔각정이 있어 거기다 그냥 텐트를 쳤던 것이다. 더 이상 이동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그냥 텐트 세팅을 했던 것이다.

 

텐트를 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바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다. 배멀미로 위액까지 쏟아낸 터라 내 뱃속이 음식물을 잘 소화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을 먹으면 제격이었기에 그 길로 다시 저동항 부근 편의점으로 가, 동원 야채죽을 하나 사 먹었다. 울릉도에 입도해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편의점 죽일 줄이야!

 

 

다음날.

 

육지에서 피로가 많이 쌓여서 그랬는지 잠은 잘 왔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관공서 앞에 야영지를 잡았지만 그럭저럭 하루를 잘 보낸 셈이었다. 텐트에서 나와 야영지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난 놀라운 풍광들을 보게 됐다. 내가 있던 울릉한마음회관은 저동재 중턱 부근에 있었는데 그 아래로 저동항 일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던 게 아닌가! 내 눈은 휘둥그레졌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비경을 품고 있기에 필자가 놀랄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 도동일대: 도동은 울릉도의 중심지이다. 군청과 읍사무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 도동항: 도동항 일대는 울릉도에서 가장 번성한 지역이다. 한편 야간에

내수전전망대에 오르면 도동항과 저동항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독도사랑호: 사동항 인근에서 찍은 사진이다.

너무 원거리에 있는 배를 찍어서 그런지 선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독도사랑'이라는 로고가 있어 한 컷 찍어 봤다.

 

 

 

* 도동항의 갈매기들: 울릉도는 갈매기들의 천국이었다. 은근히 도도한 녀석들이다.

 

 

 

▲ 거북바위 서면 통구미 마을 부근에 있는 거북바위다. 형상이

 기묘하여 사진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바위다.

 

 

 

 

▲ 거북바위와 내 자전거

 

 

 

 

 

 

▲ 울릉도 지도 포스팅의 이해 높이기를 위하여 지도를 가져와 봤다.

노란색 줄은 울릉도 일주도로를 뜻한다. 동북쪽 지역은

일주도로가 연결이 안 된 것을 지도상의 표시로도 알 수 있다.

 

 

 

 

 

 

내수전: 울릉읍에 있는 내수전. 울릉도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할 곳 중에 하나다.  구름 사이로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 거북바위: 울릉도 서면에 위치한 거북바위. 생김새 자체가 워낙 독특하여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좋은 바위다. 바위 바로 옆에서 파도가 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배수구인지 시멘트 블럭 사이로 구멍이 몇 개 난 곳이 있었는데, 파도가 치면 그 구멍에서 분수가 뿜어지듯 물줄기가 차올랐다.

 

 

 

 

 

----> 전편에 이어

 

 

“배 타시려고요?”

“지금 출발하는 배가 있어요?”

“네. 편도 4만 9천원이에요.”

 

 

 

대합실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온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매표소 아줌마가 퉁명스럽게 말을 건냈다.

배가 있단다. 그런데 배에서 먹을 간식거리 같은 필요 물품들을 구매하지 않았는데. 강릉항 근처에서 1박을 하면서 그때 마트에 가서 물품들을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터미널 구조나 알아보려고 들어왔는데 바로 배가 있다니. 어차피 물품이야 울등도에 가서 구매를 하면 되지 않은가? 물론 울릉도 물가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말야. 인생사 타이밍아닌가! 지금 안 잡으면 또 언제 타이밍을 잡을 것인가.

 

나는 그 즉시 배에 올랐다. 알고 보니 그 배는 부정기편이었는데 그래서 승선 인원도 적었다. 나를 포함해서 40명도 안 되는 인원이 탑승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자전거를 적재할 수 있는 공간도 여유가 있었다. 강릉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차량 탑승이 안 되는 밀폐형 배다. 일명 박스(box)배로 불리는 쾌속정으로 선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속 50Km 이상의 속도로 해상을 질주를 하는 터라 승객 안전을 위해 그런 구조로 배를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속도가 빠른 만큼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울렁증이 심하게 생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출항 직전에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구토용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눠줄 정도였다.

 

까짓것 무슨 배멀미인가! 내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배를 타봤는데. 그동안 섬여행을 얼마나 많이 다녔는데. 난 받아든 비닐봉지를 하찮게 여기며 그냥 쓰레기 비닐봉지로 사용을 할 생각을 했었다.

 

 

 

* 시스타(sea star)호 객실: 울릉도와 강릉항(구 안목항) 구간을 운항하는 쾌속정이다. 배수량 590톤에 433명을 태우고 3시간 정도로 강릉-울릉

구간을 주파한다.  한편 밀폐형 배라서 그런지 배멀미가 심하다. 사전에 배멀리 약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  북면 석포동: 울릉도 북면에 가면 석포동이 있는 그 곳에 석포전망대가 있다. 석포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이 험난 했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다.

울릉도의 산길은 경사도가 급했다.

 

 

 

 

#울릉도여행의 팁: 멀리약을 챙기자!

 

깜빡 잠이 들었다 깼다.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왜이리 속이 울렁거리지? 울릉도에 간다고 이렇게 울렁거리나. 역시 울릉도는 내게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올 기세였다. 난 당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윀. 해상 날씨가 안 좋았던지 배가 요동을 쳤다. 다시 우윀. 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아까 주문진에서 먹은 오징어가 꿈틀대며 내 몸에서 빠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또다시 우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승선 인원이 별로 없어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도 구토를 심하게 하다 보니, 난 오기가 생겼다. 그래 몇 번까지 하냐, 한 번 카운팅을 해보자. 또 우윀. 총 여섯 번이었다. 총 여섯 번에 걸쳐 구토를 했다. 나중에는 개어낼 것이 없어서 그냥 위액이 쏟아졌다. 아까운 내 주문진 오징어들이 변기통으로 싹 다 쓸려 내려간 것이다.

 

필자도 느껴진다. 내게 가해지는 따가운 시선들. 좋은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이렇게 세밀하게 ‘우윀’ 장면을 묘사 하냐고 항의를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만약 이 기사를 식사 시간 전후로 읽으신 분들은 필자에게 엄청난 저주를 퍼부으실 것이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필자는 몇 가지 당부를 하려고 이 부분을 세밀하게 그린 것이다. 그렇다. 배멀미를 주의하라는 것이다. 꼭 배멀미 약을 준비하신 후에 승선을 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자신이 배멀미에 강하다고 과신하지 마시고 미리 약을 준비하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배멀미를 앓으면 그만큼 자신도 괴롭고 향후 여행 일정에도 막대한 차질이 생기게 된다. 필자처럼 56일 동안 여행을 하실 시간적 여유가 없으신 분들은 돈 2~3천원 들여서 멀미약을 복용하신 후에 승선을 하시면, 더 기분 좋게 울릉도 여행을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게 필자가 독자들에게 드리는 첫 번째 울릉도 여행 팁이다.

 

여기서 잠깐! 당시 필자는 울릉도에 입도를 할 때까지 여행 경비로 110,000원을 지출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때가 여행 10일차였었다. 하루에 만 원 정도 썼는데, 7일을 머물렀던 울릉도에서는 얼마를 지출했을까? 항간에는 울릉도 여행이 제주도여행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그만큼 울릉도의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다. 그럼 주머니가 가벼운 필자가 7일 동안 울릉도 곳곳을 다니면서 쓴 돈이 얼마일까? 필자는 놀 거 다 놀고, 볼 거 다 보면서 울릉도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을 텐데, 이거 경비 부족으로 울릉도가 자전거여행의 마지막이 되는 건가?

 

다음편을 기대해주시라. 울릉도에서 쓴 경비내역들을 올릴 생각이다. 가난뱅이 여행가가 고물가 지역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드릴 생각이다. 아웃도어여행 앞에 모든이들이 공평하다는 게 내 여행 철학인만큼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도 울릉도 여행을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생각이다.

 

 

 

 

 

 

* 울릉도의 해양경찰차: 울릉도의 지형이 워낙 험난한 터라 경찰차도 힘이 좋은 4륜 구동을 이용한다.

 

 

 

 

 

 

*울릉도 저동항: 배에서 구토를 여섯 번이나 해서 그런지 넋이 빠진 모습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저동항에서 정신 좀 차리고 하다보니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 울릉도 서면: 서면의 딴바위 부근에서 한 컷. 울릉도는 그 자체가 출사지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었다.

차를 타고 지나갔으면 제대로 사진을 못 찍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울릉도: 울릉도의 지형 저렇게 급경사지가 많다. 그래서 사진에서처럼 해안도로 주변에도 터널들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저 터널들이 단방향이라는 것이다.

신호에 따라 한 편에 있던 차들이 쫘악 지나간 후에야 반대편 차량들이 움직일 수 있었다.

 

 

 

 

*울릉도 터널: 터널이 단일 차선이다. 그래서 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 울릉도의 도동: 도동은 울릉도의 중심지이다. 도동에는 군청과 읍사무소, 군의회 등등의 행정기관과 각종 편의시설들이 몰려 있다.

 하지만 도로사정은 매우 열악했다. 사진처럼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도로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 시스타호: 저렇게 시스타호 후미 부근에 자전거를 적재했다. 원칙적으로는 자전거 탑승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출항 당시 워낙 사람들이 적게 승선해서 그냥 승무원들이 탑승을 시켜줬다. 본 사진은 창문 넘어로 찍었다. 운항중에는 승무원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선실밖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 태하 황토굴: 서면 태하리의 황토굴. 사진 오른쪽에 나오는 것처럼 이 동굴은 황토굴이다. 울릉도는 이렇듯 신비로운 지형들을 품고 있다.

조선시대에 파견관리들은 울릉도 순찰의 증거로 향나무와 태하황토를 제출해야 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농땡이 치는 넘들이 있고, 한편으로는 그 농땡이를 막으려는 장치가 있는 것이겠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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