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처먹고 할일 없어서"... 걷다 보면 이런 소리도 듣네요

 

[22일간의 스페인 여행 6편] 도보여행자 반기는 산티아고 주민들은 달랐다

 

15.01.11 19:42  최종 업데이트 15.01.12 08:22

 

곽동운(artpunk)

 

 

 

 

 

 

 

 

 

 

 

 
▲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구시가지. 사진 중앙에 있는 첨탑이 바로 산티아고 대성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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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hola)."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보면 저런 말들을 숱하게 듣게 된다. '올라'는 스페인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인데 'h'가 묵음이 되어 '홀라'가 아닌 '올라'가 됐다. 부엔 카미노에서 '부엔'은 '좋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직역하면 '좋은 길'이 된다.

이런 말들은 순례자들은 물론이고 현지 주민들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들은 처음 보는 낯선 순례객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인사말을 건넸다. 그런 모습들은 그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 얼마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현지인들의 자부심은 순례길을 걷기 위해 다른 지방에서 온 스페인 자국민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 자원봉사자 알베르게 자원봉사자. 공립 사리아 알베르게의 자원봉사자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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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방문지는 환대를 받은 곳과 일치한다

국내에서 도보여행을 하다보면 간혹 이런 소리를 듣곤 한다.

"밥 처먹고 할 일들이 없으니 저렇게 다니지!"

현지인들의 태도에 의해 그 동네에 대한 친밀도가 요동치기 마련이다. 현지분들이 환대를 해주었으면 그 동네에 대한 호감 지수가 급상승하고 차후에 다시 방문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재방문 예정지는 환대를 받았던 곳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저런 소리를 들으면 여행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 그곳을 다시 방문할 여지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단련이 됐지만 처음 저런 소리를 들었을 때는 무척 서운했었다. 나름대로 민폐를 끼치지 않고 여행을 다닌다고 자부를 했었던 터라 그 서운함의 강도는 좀 심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잔상들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 무척 부러웠다.

 

 


 
▲ 공립 알베르게 이모님 알베르게의 이모님. 저 이모님이 필자한테 판초우의를 건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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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자부심은 단순히 말로 그치지 않았다. 행동으로 이어졌다. 여행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는 크게 공립과 사립으로 나뉘는데, 공립 알베르게는 보통 6유로 정도에 이용할 수 있다. 1박을 하는 데 겨우 8000원 정도 밖에 들지 않는 셈이다. 아무리 순례객을 위한 시설이라지만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숙박을 할 수 있다는 건 누군가의 헌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공립 알베르게의 관리자들이 그렇게 헌신을 했는데 그들은 무급을 원칙으로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무급인데도 공립 알베르게 자원봉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 구간 순례를 마친 사람들만이 봉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후배 순례자들을 위해 선배 순례자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순례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오전 8시경, 그들은 침대를 정돈하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외관상 숙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작업을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았다. 조금이라도 더 후배 순례자들을 챙겨주려는 마음이 엿보였다.

돈도 안 생기는 작업을 하면서도 그렇게 너그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들의 순례길을 방문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 순례객들을 잘 거두어 보내겠다는 자부심. 그런 자부심은 그곳을 재방문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11월 9일, 여행 7일째. 순례팀은 페드로조(O Pedrouzo)에 있는 한 공립 알베르게를 출발하였다. 페드로조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는 약 17km 남짓 떨어져 있다.

그날도 역시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다. 필자는 순례팀을 다 보내고 알베르게에서 제일 늦게 나올 생각이었다. 후미 대장을 자처한 탓도 있지만 '빨리 가서 뭐하냐'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 어차피 도보여행이라는 건 속도보다는 방향이 아니겠는가. 속도를 내서 빨리 가려면 그냥 자동차를 타고 가면 되지 굳이 배낭을 짊어 메고 걸어갈 필요가 없다는 게, 도보여행에 대한 필자의 강한 신념이다.

 

 



 
▲ 스페인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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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욕'을 하며 눈물을 보였던 마드리드 처자

꾸물꾸물한 스페인의 11월 날씨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이미 순례자들은 거의 다 떠나고 없어 알베르게에는 정적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필자도 배낭을 둘러메고 문을 나서려고 했는데 젊은 처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자신의 침대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무척 부자연스러웠다. 마드리드에서 왔다는 이 처자를, 사실 전날부터 유심히 지켜봤었다. 예뻐서(?) 지켜 본 것도 있었지만 발목에 큰 붕대를 메고 있어서 한 눈에도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페드로조에서 순례길의 종료점까지는 반 나절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 알베르게에 머무르는 순례객들은 들떠 있었다. 이제 곧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설 수 있다는 설렘이 그들 표정에서 묻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척 슬픈 표정을 지었고 눈물까지 보였다.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순례 여행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눈물이 되어 흘러 내렸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녀는 이런 말까지 내뱉었다.

"Fu*****"

스페인의 젊은 처자에게 저런 '욕'을 들으니 귀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욕'을 들어먹었지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배낭을 들어 아래층까지 내려주기로 했다. 그녀와 필자가 함께 있던 룸은 2층이었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래층까지 오기에는 좀 버거웠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착한 일을 한 것이다. 참고로 알베르게는 남녀 공용이다.

 

 



 
▲ 스페인 사람들 이 스페인 친구는 길을 걷는 내내 우리 순례팀과 동선이 겹쳤다. 이 친구는 비고(vigo) 출신인데 축구선수 박주영을 좋아한다며 셀타비고 유니폼을 뽐내고 있었다. 셀타비고는 비고를 연고지로 한 축구클럽이다. 잠시 박주영 선수가 뛰기도 한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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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전날처럼 영락없이 몸이 젖을 판이었다. 우비를 가지고 가긴 했지만 다 찢어진 상태였다. 안일하게 1회용 우비로 준비한 게 패착이었다. 이미 우비는 비닐봉지보다도 더 못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착한 일을 해서 그런가?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바로 ARCA 알베르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이모님(그냥 한국에서 잘 쓰는 호칭을 써봤다) 이 판초 우의를 하나 건네주신 것이다. 전날 신발이 젖었다는 필자의 몸짓에 이모님은 수더분한 미소를 보내며 직접 신발 말리는 장소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는 필자가 따로 요청한 것도 아닌데 흔쾌히 판초 우의를 건네주셨던 것이다.

선배 순례자로서 후배 순례자를 잘 챙겨준 셈이다. 물론 그 판초 우의는 누군가가 두고 간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새 것 이상으로 고마운 물품이었다. 덕분에 그 이후부터는 비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

 

 



 
▲ 십자가 길을 걷다 목숨을 잃은 순례객들을 위해 세워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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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결국 사람이다

 


도보여행가 김남희씨가 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 스페인 산티아고 편>을 보면, 다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지은이를 독일인인 아그네스 아줌마가 치료를 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치료를 마친 후에 아그네스 아줌마는 김남희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를 도울 수 있어서 정말 기뻐."

필자는 배려와 친절도 순례길의 일부분이라고 판단한다. 필자도 그런 배려와 친절을 듬뿍 받고 왔다. 또한 할 수 있는 대로 받은 만큼 베풀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답다. 주위 풍광이 아름답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아름답다. 그래서 그 길 위에는 좋은 기운들이 넘쳐난다. 저토록 사랑과 인심이 넘쳐나기에 나쁜 기운이 스며들 틈이 없다.

그래서인지 순례길 곳곳에는 십자가들이 세워져 있다. 길을 걷다가 죽음을 맞이한 순례객들을 추모하기 위해 후배 순례자들이 세운 십자가들이다. 볼거리, 먹거리, 쇼핑거리를 다 거쳐 온 여행의 최종지점에는 항상 사람이 서 있었다. 앞에 것들이 다 좋아도 마지막에 사람이 별로면 그 동네의 친밀도도 별로가 된다. 반면 앞에 것들이 미진해도 사람이 좋으면 그럭저럭 다 무마가 된다. 그러고 보면 여행도 결국 사람이다.

"밥 처먹고 할 일들이 없으니 저렇게 다니지!"

웬만하면 이런 발언들은 삼가주셨으면 한다. 대신 이렇게 바꿔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밥 맛있게 드시고, 우리 고장도 좀 다녀가세요. 우리 고장에도 좋은 것들이 많아요. 대신 여행자의 매너는 잊지 마시고요!"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문하는 나라들의 국기를 그려 넣은 그림. 우리나라는 맨 아래쪽에 있는데 'korea'가 아닌 'corea'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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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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