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남도 출신이었지만 음식 솜씨가 별로다. 아들인 내가 생각해도 우리 어머니의 음식은 특출한 것이 없다. 맛깔 나는 식도락과는 거리가 먼, 그저 삼시 세끼를 때우는 식으로 음식을 만드셨다.

어쩌면 우리 어머니는 음식을 배울 시간이 없었을지 모른다. 전남 진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들로 갯가로 쉴 새 없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 먹을 것도 없는 마당에 산해진미를 만드는 레시피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어머니는 평생을 일만 하시는 것 같다. 칠순이 훨씬 넘은 요즘에도 일을 하신다. 그렇게 계속 일만 하셔서 그랬는지 항상 밥상은 단출했었다. ‘남도밥상’처럼 밥상이 풍성했으면 했지만 사정을 뻔히 아는 만큼 군말 없이 숟가락을 들어야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좋아하는 ‘엄마표 음식’이 있었다. 된장국이었다. 누런 국물에 흰 두부가 둥둥 떠다니고, 잘게 썰린 버섯이 있는 된장국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워낙 밥상이 단출해서 그랬는지 어떨 때는 밥과 된장국과 김치, 딱 3개만 밥상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렇게 단출한 식단으로도 배를 채웠던 내가 군대를 가게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입대했던 20여 년 전에도 군대에서는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 자신의 입맛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군대 짬밥에 내 입맛을 맞춰야했다. 사실 돌아서면 배고픈 곳이 군대인데 음식을 가리고 말고 할 것이 어디 있겠나!

그렇게 나도 짠밥을 먹어갔다. 그러다보니 군대 음식 중에서도 나름대로 괜찮다 싶은 음식도 생기게 됐다. 그중 하나가 바로 된장국이었다. 사회 있을 때 엄마표 된장국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군대표 된장국도 먹을 만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된장국을 ‘똥국’이라고 표현했던 고참들도 있었다. 군대생활에서 오는 염증을 그런 식으로 표출한 것이다. 박격포를 ‘똥포’, 기관총을 ‘똥총’ 등등...

아무리 그래도 ‘똥국’이라니! 똥국을 맛있게 먹었던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똥국’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군대표 된장국도 잘 먹고 잘 소화시켰다. 그러다보니 별 탈 없이 군대를 전역할 수 있게 되었다. 군대생활을 잘 했던 사람이 사회생활도 잘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군대에서 음식 안 가리는 사람이 사회에서도 음식을 안 가리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어쨌든 다시 엄마표 된장국을 먹게 됐고, 내가 다시 사회로 돌아왔음을 실감하게 됐다.

작년에 약 두 달 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걷고 유럽의 주요 관광지도 탐방을 했었다. 워낙 음식을 가리지 않고, 서양 음식도 좋아하는 터라 처음 얼마간은 문제가 별로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조리를 해 먹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은근히 한식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갔다. 김치와 라면은 현지 한인마트에서 구매를 할 수 있으니 그렇게 큰 갈증이 없었다. 또한 고추장 같은 매운 음식도 크게 그립지는 않았다. 정말 그리운 것은 구수한 된장국 혹은 된장찌개였다.

누런 국물에 흰 두부가 둥둥 떠다니고, 잘게 썰린 버섯이 있는 된장국! 귀국하자마자 집으로 달려와 엄마표 된장국을 먹었다. 그제야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군대시절도 그렇고 해외여행 때도 그렇고, 엄마표 된장국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내가 제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귀한 엄마표 음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자신도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2020 한식공모전에 응모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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