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토요일.

 

좀 늦은 후기. 이날 서대문 독립공원에서는 <해방전후항일통일민주애국민간인학살 진혼제>라는

아주 긴 이름의 진혼제가 있었다. 무대는 옛 서대문 형무소의 사형장이 보이는 곳에 마련됐다.

 

내가 서대문 독립공원을 얼마나 많이 왔겠는가. 더군다나 사형장은 서대문 안산 역사트레킹을 진행할 때 가장 먼저 발걸음을 하는 곳이 아니던가. 트레킹을 할 때 왔던 곳을 진혼제 진행요원 자격으로 방문했으니 좀

어리둥절했다.

 

여기서 잠깐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다. 지난 5월 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이 통과됐다. 이를 근거로 올해 12월 10일에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할 예정이다.

 

2기라고? 그럼 1기가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 진실화해위원회 1기가 있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약 5년에 걸쳐 활동을 했었다. 이때 한국전쟁전후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강기훈 유서 조작 대필사건 등등... 현대사에 굵직한 사건들이 1기 위원회의 활동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유서 조작 대필사건은 2015년에 대법원에서 진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주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왜 다시 2기가 필요한 것일까? 원작보다 낫다는 2탄은 없다는데 말야. 결론적으로 말하면 1기 위원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아주 드라마틱했던 만큼 진실을 밝혀야 하는 억울한 사건들이 넘쳐난다는 뜻이다.

 

그 사건의 당사자들(유족)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상황을 복사기처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가 너무도 깊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의 시각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매우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날 어쩌다 스태프로 참가를 해서 진혼제를 디테일하게 기록하지는 못했다. 기억에 남는 건 불교인권위원회 대표인 진관스님이 위령 독경을 설하신 거였다. 진관스님? 내가 진관사 역사트레킹을 대표 상품으로 내세워서 그랬는지... 진관 스님의 독경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든 역사트레킹을 내세우려는 내 모습...^^

 

진혼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무대는 아시아1인극제 한국대표인 한대수 선생의 진혼굿이었다. 가수 한대수가 아니라 연극인 한대수! 한대수 선생은 경남 거창에서 귀농학교도 운영하시는데... 나도 귀농학교에서 얼마간 기거를 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이번 진혼굿에 보조로 참가한 것은 다 한대수 선생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사실 진혼굿을 위해 시간 투자를 많이 했다. 전날인 금요일 오후에 남대문 꽃 도매시장에 가서 장미꽃 100송이를 샀다. 내 평생에 장미꽃 100송이를 살 줄이야! 그 장미꽃은 진혼굿의 소품으로 이용됐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한대수 선생은 장미꽃으로 자신의 몸을 때렸다. 일명 등짝 스매싱을 스스로에게 날린 것이다. 도매점에서 가시 제거를 해줬는데 그거 안 했으면...ㅋ

 

장미꽃이 100송이나 이용됐으니 확실히 인상적인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일부러 끝물에 갔더니 10송이에 5천원을 달라더라. 그러니 100송이는 5만원. 하지만 문제는 100송이를 한 아름 안고 남대문에서 안국역까지 걸어갔다는 거였다. 꽃다발을 안고 택시 타기도 뭐하고, 전철은 타면 오히려 돌아가고. 그래서 남대문에서 안국역까지 걸어갔다. 안국역에 있는 지인분의 사무실에 장미꽃을 보관하려고. 가뜩이나 왼쪽팔이 엘보우로 파스 신세를 지고 있는데 말야.

 

그 지인분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넋전과 피켓을 만들었다. 넋전은 넋을 담은 종이인형이다. 새벽까지 진혼제 준비를 하느라 정말 분주했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까지 행사 준비를 해봤다. 그러고보면 난 행사 체질인가?^^

 

수많은 애국민주 열사들이 피눈물을 흘렸던 서대문 형무소 울타리에 넋전을 걸어두니 좀 묘한 감정이 들더라. 뒤로는 인왕산이 보이니 더 그랬던 거 같다.

 

이제 더이상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PS. 장미꽃 이야기나 트레킹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좀 가볍게 한 것이 사실이다. 진혼제를 스케치하는 것보다 내 자신의 활동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작성한 글이니 감안을 하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진혼제를 희화화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꼭 알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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