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내림굿 받은 무당에게 덕담을 들었어요


입춘에 내림굿 받은 박영숙씨 이야기





16.02.23 15:05 최종 업데이트 16.02.23 15:05


  

           


주위에 아는 용한(?) 점쟁이가 있으십니까? 저는 이번 입춘에 한 명 생겼답니다. 제가 '박 보살'이라고 부르는, 일본에서 온 박영숙씨가 바로 그분입니다.

영숙씨는 일본에서 '돈 꽤나' 만진 분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형편에 놓였던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고진감래'라고,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넘기니 물질적인 풍요가 따라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쿄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임대업에 뛰어들었다고 하네요. 요즘 아무리 엔화 가치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도쿄에서 임대업을 할 정도면 '돈 좀 굴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랬던 영숙씨는 지난 입춘(立春)에 신을 받았습니다. 내림굿을 한 것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과거에 '돈 좀 만진' 박 보살은 뭐가 아쉬워서 무당이 되기로 한 걸까요?

"17살께부터 신기(神氣)가 있었어요. 외할머니가 무속인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때는 잘 몰랐어요. 제가 무당이 된다는 걸 어디 상상이나 했겠어요?"

하지만 자신이 거부한다고 신기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걸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생채기가 날 뿐이죠. 그렇습니다. 신병(神病)에 시달리게 됩니다. 영숙씨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 내림굿 박영숙 내림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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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도 혼자, 신의 길도 혼자

그래도 거기까지는 감수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운명의 잔'을 계속 거부하니, 그 잔이 결국 자기 자식에게로 향하게 됐다고 합니다. 자신이 거부하니 하나 있는 아들에게로 그 운명이 넘어갔다는 것이죠. 그 운명이라는 건, 좋은 뜻이 아니겠죠. 아들의 교통사고…. 이후 박 보살은 '운명의 잔'을 집어들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저는 인간의 길을 갈 때도 혼자였고, 신의 길을 갈 때도 혼자 갑니다!"


영숙씨가 이런 말을 한 건, 그녀가 고아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젖먹이였을 때부터 부모의 품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랐고, 이름도 고아원에서 지어줬다고 합니다. 일본은 20년 전께 갔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이름조차도 고아원에서 지어줬다면, 부모에 대한 정보는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외할머니가 무속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요? 그건 그녀의 몸에 조상신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의 영혼이 박 보살의 몸에 들어온 것입니다. 인간의 길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두 사람이 신의 길에서 서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인생 스토리를, 더군다나 '신의 길을 갈 때도 혼자 간다'는 영숙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언가 짠한 기분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저도 동영상 담당 스태프로 참여하게 됐고, 현장 기록을 토대로 이렇게 기사까지 작성하게 됐습니다.





 
▲ 내림굿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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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가 강한 황해도 작두굿

박영숙씨의 내림굿은 2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에 걸쳐 경남 거창군 고제면에 위치한 '아시아1인극협회 한국본부'에서 행해졌습니다. 연극제가 열렸던 소극장에 제단이 차려지고 굿이 거행된 것입니다. 악사가 동원되기는 하지만 굿도 1인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1인극제가 개최된 장소에서 굿이 거행되는 것이 어색해보이지 않습니다.

신굿, 신명굿, 강신제 등으로도 불리는 내림굿은 신령의 부름에 답하는 절차입니다. 더불어 신령을 정식으로 받아들여 '몸주'로 삼는 절차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매우 중요한 절차이기에 내림굿을 이끌어 줄 선배 무당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어머니' '신아버지'로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영숙씨는 마고당이라 불리는 서문정을 신어미니로 모시게 됩니다. 마고당은 작두굿으로 유명한 무속인인데, 황해도 작두굿 계보를 잇고 있는 분이죠. 지금 황해도 땅이 휴전선 이북에 있는 만큼, 마고당의 위치는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 보살이 마고당의 '신딸'이 된 만큼 이제 그녀도 황해도 작두굿 '줄'을 잡게 된 것입니다.

본격적인 내림굿 이전에 일반 재수굿 열두거리가 거행됩니다. 거기에 '허주굿'이라 불리는 잡귀를 씻어내는 굿까지 진행돼야 정식으로 내림굿이 거행됩니다. 이렇게 사전에 많은 굿들이 거행되니 1박 2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황해도 굿은 의복을 여러 번 갈아입고 칼춤을 추는 등, 화려함이 두드러집니다. 이에 대해 아시아1인극제 한국본부장인 한대수 선생은 황해도 굿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황해도나 경기 이북 지역의 굿은 화려함, 즉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강조됩니다. 그래서 볼거리가 풍부한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신(降神)이 됐다지만 작두를 탄다는 건 두려운 일일 겁니다. 그건 영숙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심 작두가 무섭다며 말끝을 흐리더군요. 그렇다고 안 탈 수가 있을까요? 신을 받고 싶어서 받고, 안 받고 싶어서 안 받을 수가 없듯이, 작두도 타기 싫다고 안 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운명은 운명인 거죠!

"아, 좋다!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은 처음이구나! 이 제자 그동안 길을 몰라 헤매였지만…. 오늘에서야 이 길을 가니, 기분이 정말 좋구나!"

천하대장군의 공수(무당에 신이 내려 신의 소리를 내는 일)가 영숙씨의 입을 타고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영숙씨의 두 발은 날카로운 작둣날 위에 오른 상태였습니다. 신이 잘 강림했다는 뜻입니다. 내림굿이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 내림굿 내림굿에 임하는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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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에 들은 덕담

갓 내림굿을 받은 무당의 신기가 가장 좋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래서 강신자(降神者)에게 공수를 받기 위해 사람들은 줄을 섭니다. 저도 줄을 섰습니다.

"2년 내에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참어!"

박 보살은 제게 그런 공수를 줬습니다. 얼핏 보면 2년만 지나면 성공한다는 뜻이니 좋은 거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반론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까지도 계속 참았는데, 또 2년을 참으라고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그 공수를 액면 그대로 풀면, 2년 안에 '고진감래'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까? 요즘 같이 '헬조선'이라는 말이 남발되는 세상에 2년 만 고생하면 된다는 말은 무척 희망적이지 않습니까? 2년 만 지나면 '파라다이스'를 만날 수도 있으니….

저는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천주교 성지 탐방을 할 것이고, 사찰 순례를 행할 것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에 대해서도 공부할 것입니다. 왜? 저는 종교 다원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2년 만 고생하라'는 공수는 입춘에 들은 덕담 정도로 넘길 생각입니다. 맹신은 금물입니다. 공수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있던 복도 달아날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공수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자체가 복(福)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 아래사진은  박보살이 찍은 사진입니다. 박보살은 일월성신을 찍은 사진이라고 했고, 저는 UFO라고 했던 사진입니다. 일월성신이든 UFO든... 신기한 사진임에는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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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중놀이를 볼 수 있는 거창아시아1인극제!

 

제26회 <거창아시아1인극제> 참관기

 

15.08.11 15:19  최종 업데이트 15.08.11 15:19

 

 

 

 

 

▲ 거창아시아1인극제 필자가 '이효리'라고 부른 자원활동가가 동네 어르신에게 잔치국수를 직접 말아드리고 있다. '이효리' 를 비롯하여 총 6명의 대학생 활동가가 열심히 맡은바 소임을 다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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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더웠다. 강렬한 햇살이 얼굴을 덮치듯 내리쬐었다.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땀이 안경에 튀어 시야가 흐려졌다. 가뜩이나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는데, 그래서 발걸음이 꼬이는데 앞까지 잘 안보이니...

"작년엔 비가 와서 공연 준비가 어려웠고, 올해는 폭염이 스태프들을 잡는구나!"

 

 

 

 

거창귀농학교에서 펼쳐지는 '거창아시아1인극제'

 


필자가 스태프로 참여한 행사는 올해로 26회째를 맞는 '거창아시아1인극제'다.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거창국제연극제'와 구별되는 행사로 백두대간 삼봉산이 올려다 보이는 거창귀농학교에서 행해진다.

거창귀농학교는 삼봉산문화예술학교라고도 불리는데 폐교를 리모델링한 곳으로 거창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고제면에 위치해 있다. '거창국제연극제'가 수승대라는 명승지에서 개최되는 큰 규모의 연극제라면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거창 읍내에서도 20km 정도 떨어진, 궁벽진 곳에서 행해지는 행사라는 뜻이다.

공연장의 규모뿐만 아니라 행사비용도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거창아시아1인극제'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거마금' 정도만 받고 공연을 진행했다.

 


 

 

 


 
▲ 만석중 만석중 인형. 목각인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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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작은 산골짜기 연극제로 '쪼그라'들었지만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모노드라마(monodrama) 축제다. 현재의 '거창아시아1인극제의 기원은 1988년, 서울 바탕골 소극장에서 펼쳐진 '아시아1인극제'에서 찾을 수 있다. 1회 대회를 치른 이후 '아시아1인극제'는 아시아 각국을 돌며 매해 개최되었다. 이후 1996년부터는 충남 공주에 있는 공주민속박물관이 주관이 되어 공연을 하게 된다. 이에 명칭도 '공주아시아1인극제'로 바뀌게 된다.

'아시아1인극제'가 현재의 체제로 자리를 잡은 건 2007년 이후부터였다. 거창의 진산인 삼봉산의 아래에 위치한 거창귀농학교에서 모노드라마 축제가 열리게 되니 이에 명칭도 '거창아시아1인극제'로 변하게 된 것이다.

 

 

 

 

 


 
▲ 만석중놀이 운심게작법을 추고 있는 연극인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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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볼 수 없는 만석중놀이

 


지난 3월 5일.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가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의 피습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이란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해서인지 당시 언론들은 김기종과 관련된 이력들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그런 보도들은 거의가 김기종의 기이한 행적들에 대해서 초점이 맞추어졌다. 문제는 그런 보도들로 인해 애꿎은 우리전통놀이까지 도매금으로 격하됐다는 점이다. 김기종은 '우리마당'이외에도 '만석중놀이보존회'의 대표직을 겸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만석중놀이까지 싸잡아 질타를 당했던 것이다.  

만석중놀이는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 무언극이다. 개성 일대에서는 초파일을 전후하여 사찰 부근에서 그림자놀이가 펼쳐졌는데 이 놀이가 바로 만석중놀이다. 어두운 밤, 사찰 인근에 큰 광목천을 걸어 놓고 횃불을 피워 용, 잉어, 사슴 같은 종이 인형의 그림자가 비추게 하여 놀이를 진행했던 것이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입혀진 인형들, 즉 십장생들이 그려진 인형들이 광목천에서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만석중놀이의 주인공은 만석중이라는 나무 인형이다. 십장생 인형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만석중 인형은 '탕'하고 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만석중을 조종할 때 나는 소리로 만석중 인형의 조종은 다른 인형들과 마찬가지로 광대가 한다. 만석중 인형이 내는 '탕'하는 소리는 목탁 소리 같기도 하고, 죽비소리 같기도 하다. 어리석은 무지몽매함에서 벗어나 세상을 직시하라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 만석중놀이 인형을 조종하고 있는 광대들. 인형의 색깔이 참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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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중놀이의 대미는 운심게작법이라는 승무다. 용과 잉어가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클라이맥스 단계에서 운심게작법이 펼쳐진다. 운심게작법을 끝으로 40여 분에 걸쳐 올려진 만석중놀이는 끝이 난다.

만석중놀이는 쉽게 볼 수 없는 공연이다. 무대 세팅의 번거로움은 둘째 치고, 이 놀이를 행할 광대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들고 대학로를 가 봐도, 국립극장을 가 봐도 '티켓'을 구할 수가 없다. 만석중놀이를 재연할 수 있는 광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운이 좋았는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만석중놀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올해는 아예 무대 뒤편에 시선을 두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십장생 인형들이 어떻게 조정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실내 공연이었다면 어림없는 이야기겠지만 실외공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스태프 아닌가? '거창아시아1인극제'의 스태프로 참여한 '특권'을 톡톡히 누렸던 셈이다.

 

 

 


 
▲ 황해도 작두굿 마고당 서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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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 좀 타 봤수? 황해도 작두굿!

역시 사람의 취향은 제각각이었다. 필자는 만석중놀이에 방점을 찍어 시선을 고정시켰다면 대다수의 관객분들은 황해도 작두굿에 열광을 하는 분위기였다.

마고당 서문정이 행한 황해도 작두굿은 남한에서는 보기 드문 황해도 지역의 굿판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작두를 타는 모습이 흔하게 보이지만 예전에는 꼭 그렇지 않았다. 통상 북쪽 지방인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작두굿이 많이 벌어졌고, 남쪽으로 갈수록 작두를 타는 무속인들이 적었다고 한다. 무당이라고 모두 작두를 타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황해도 작두굿은 고정형 작두만 이용하지 않고 이동식 작두도 사용했다. 그러니 다양한 변형방식도 등장했다. 서문정은 발뿐만 아니라 손목과 배, 심지어 목에까지 작두를 들이댔다. 작두 위에 목을 올려놓으니 마치 '기요틴(단두대)'에 머리가 오른 듯했다. 한 여름 밤에 호러쇼(?)가 펼쳐졌다고나 할까? 이렇게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졌으니 황해도 작두굿의 인기는 상당했다.

독자들 중에는 작두가 가짜가 아니냐고 의구심을 품으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도 그런 의구심을 품었다. 그래서 눈을 크게 뜨고 작두의 상태를 관찰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가짜 작두가 아니었다. 나중에 뒤풀이에서 마고당 서문정 선생의 상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었다. 발에도, 팔에도, 심지어 배와 목까지... 역시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는 듯싶었다.

No pain, No gain!

 
▲ 전통공연예술단 난타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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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문화버스를 타고, 거창으로?

박일화 선생의 창작 춤 공연, 전통공연예술단의 타혼 공연 등이 이어졌고, 그렇게 26회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잘 마무리됐다. 달빛이 아름답게 쏟아지는 거창의 한 시골마을에서 행해진 모노드라마 축제는 내년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그래도 작년보다 관객이 더 많이 들었어요."

이 말이 참 고마웠다. 낮에 흘린 땀방울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내년 27회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기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문화버스'가 와도 좋을 것 같다. 1박 2일로 연극제를 즐길 수 있는 문화버스 말이다. '문화버스'를 타고 와서 공연도 공짜로 보고, 공짜로 밥도 얻어  먹을 수 있다면 그거 훌륭한 여름휴가 아닌가?

 

 

 


 
▲ 창작무 박일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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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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