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8년 12월 11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및 이베리아반도 여행을 행하고 왔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답니다. 앞으로 그 여행일지를 포스팅화 시킬 예정입니다. 여행일지를 약간의 수정 과정을 거쳐 올릴 거라 그렇게 재밌는 포스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손글씨로 작성한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테니까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호카곶: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






*여행 36일차: 2019년 1월 15일 화요일 맑음


1.코임브라 the luggage 호스텔은 전망도 좋고 시설도 좋은데 무척 추웠다. 그리고 룸메이트는 게으름뱅이였다. 오전 9시가 다 되었는데도 이불을 부여잡고 있었다. 


2. 코임브라 대학에 있는 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 티켓을 끊었다. 무려 12.5유로. 외관은 그냥 둘러볼 수 있지만 주요 관광포인트를 보자면 티켓이 필요했다.

3. 먼저 채플실을 들렀다. 호불호가 있으나 난 채플실이 더 좋았다. 예전에 방문했던 세고비아 대성당이나 톨레도 대성당이 생각날 정도로 채플실은 큰 감흥을 주었다. 또 사진 촬영도 되고 말야!

4. 코임브라 대학 여행의 메인포인트인 대학도서관으로 향했다. 대학도서관은 고서들로 가득했다. 황금으로 장식된 장식물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5. 이런 곳에서 공부가 잘 될까? 좀 어뚱한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이 책들이 대출이 가능할까? 어쨌든 이 도서관은 코임브라대학의 자랑이자 사람들을 코임브라로 모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6. 옆에 있는 왕궁 탐방까지 끝낸 후 코임브라 여행을 마치고 리스본행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향했다. 

7. 아참 코임브라대학 도서관의 책장 옆에는 중국풍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마카오 일대의 풍광이라고 한다. 낯선 곳에서 동양의 자취를 보고 있으니 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은 사진 촬영이 안 되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허가가 됐으면 그런 것들을 다 찍어왔을텐데...

8. 오후 2시경에 리스본행 버스에 탑승했음. 코임브라에서 리스본 가는 버스는 사람들이 많았음. 포르투에서 코임브라까지는 1시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코임브라에서 리스본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렸음.

8. 오후 4시가 넘어 리스본에 도착함. 숙소를 찾아 나섰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가장 싸구려 숙소를 찾아감. 8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만 1천원. 싸구려인 이유가 있었음. 무슨 달방 같았음. 투숙객들이 장기로 묵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상호간에 서로 친분이 쌓인 듯했음.

9. 서로 웃고 떠드는데... 숙박 장소인지 돗떼기 시장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음. 왜 밤 12시 넘어서 람바다를 추냐고... 그것도 음악 볼륨을 크게 해놓고 말야...ㅋ





*코임브라 대학: 채플실




* 코임브라: 대학 내에 있는 궁전. 코임브라는 리스본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포르투갈의 수도였음.






*여행 37일차: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맑음

1. 그 달방 같은 호스텔이름은 'football hostal'이었음. 괜히 축구라는 단어에 혹해서 들어갔더니만...
이 인간들이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음. 새벽 1시에 왜 소리를 지르는지...ㅋ

2. 하여간 그 인간들이랑 엮여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래서인지 잠을 무척 설쳤음. 돈 아끼려다 아주 꽝이었지!

3. 리스본에서 신트라를 가기 위해 rossi 역으로 향함. 신트라는 동네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인 곳으로 유라시아대륙의 최서단인 호카곶을 가기 위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임.

4. 신트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원데이프리티켓을 구매했는데 16.5유로였다. 신트라까지 가는 왕복 기차와 신트라 현지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패스였다. 


5.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일단 호카곶으로 향했다. 사실 이번 포르투갈 여행의 첫번째 타깃은 호카곶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인 호카곶!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에서 바라본 대서양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이번 호카곶 탐방에 대한 기대는 대단했다.

6.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바람 한 점 없는 호카곶은 너무나 고요했다. 대서양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며 호카곶에 섰는데... 너무 밋밋하다고 해야 하나?

7. 호카곶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산티아고순례길에서 받은 감흥이 너무 컸던 터라 다른 여행지가 눈에 잘 안들어 왔던 것이다. 

8. 호카곶 탐방을 마친후 버스를 타고 인근에 있는 cascais를 탐방했음. 해변이 아름다운 cascais는 휴양도시로 유명함. 신트라 -> 호카곶, 호카곶 -> 까스카이스 순으로 이동했음.

9. 신트라에서 rossi 역으로 오지 않고 멋진 오리엔트역으로 돌아옴. 오리엔트역은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의 무대였다고 함. 그도 그럴 것이 정말 멋있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음. 야경도 멋졌음.

10. 오리엔트역은 버스터미널과 붙어 있음. 이곳에서 스페인 세비야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려했음. 7시간 정도 걸리는 야간 버스고, 평일이니 사람이 많지 않겠지... 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지만 심야 버스에 왜그리 사람들이 많았던지!

11. 오늘따라 사람들이 많아서 티켓이 없단다. 정말 멘붕이었다. 숙소를 검색하며, 노숙까지 떠올리게 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좌석이 하나 남았다. 10시에 탑승하는 버스에 10시 1분에 탑승했다. 그렇게 세비야행 버스에 올랐다. 요금은 45유로. 조금 비싼듯.

 


* 호카곶: 인증샷



* 코임브라 대학: 도서관 외관






 

대서양에 작은 다짐을 실어보내며

 

[22일간의 스페인 여행 8]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15.01.22 08:25 최종 업데이트 15.01.22 08:28
곽동운(artpunk)

 

 

 

 

 

 

 

 
▲ 피스테라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바위 위에 철로 만든 신발상이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2014년 11월 12일, 여행 10일째.


이전 여행기에서도 언급했듯이, 스페인의 땅 끝 마을인 피스테라(Fisterra)의 길은 확실히 개발이 덜 된 느낌이었다. 황무지 같이 방치된 곳들도 있었고, 간간이 버려진 집들도 눈에 띄었다. 스페인의 농어촌도 도시로의 인구 유출이 심각해 보였다.

그렇게 개발도 안 됐고 인적도 드물다 보니,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중 인상적인 지형도 눈에 띄었다. 아침에 올베이로아(Olveiroa)에서 출발을 한 후, 1시간 정도 이동했을 때였다. 길 옆쪽으로 살라스 강(rio xallas)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는데 감입곡류 형태였다.

 

 

 


 
▲ 살라스 강 감입곡류형 하천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감입곡류는 하천이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뱀처럼 꾸불꾸불하게 감겨 나가는 것을 말한다. 감입곡류 일부 구간에서는 강물이 350도로 휘돌아 나가기도 한다. 그런 살라스 강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 예천의 회룡포가 생각났다. 사실 한반도 지형을 담은 서강과 회룡포를 만든 내성천에 비하면 살라스 강의 꾸불꾸불함은 새발의 피였다. 이렇게 남의 것을 바탕삼아 우리 것을 비교해 보는 것도 해외 도보여행의 장점 중에 하나다. 


뱀처럼 휘감겨 흐르는 살라스 강처럼, 강은 있는 그대로 흐르게 해야 한다. 괜히 직선화를 한다, 보를 세운다 하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럼 강은 역습을 하게 된다. 지금의 4대강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360도 전체를 보는 도보여행

 


 
▲ 피스테라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 피스테라, 묵시아(Muxia), 산티아고 콤푸스텔라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도보여행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걷고 또 걷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되듯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수그려서 걸으니 정면만 응시했다. 시야가 무척이나 좁아진 것이다. 그날 여행수첩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도보여행은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사방 360도 전체를 보고 가는 것이다. 길을 가다 잠시 멈춰 서서 꽃과 나무를 감상하고, 시냇물 소리도 듣고, 바람도 느끼는 것이 진정한 도보여행이다."

 


여행수첩에는 "도보여행은 360도"라고 적어 놓았지만 정작 필드에서는 시야각이 겨우 45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자신이 적어 놓은 것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결국 목적지인 피스테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보여행의 마지막을 아주 화끈하게 불태운 듯싶었다. 발바닥이 불이 난 듯 아주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본 대서양에 발을 담가 열을 식히고 싶을 정도였다.

4년 전 행한 국토종단 여행도 무척 힘들었다. 해남 땅끝 마을을 방문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태풍을 만나고, 텐트가 망가지고... 하지만 결국에는 국토종단 여행을 무사히 종료 됐다. 그렇게 고생스러운 여정 때문이었는지 아직까지도 그 여행은 필자의 뇌리 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피스테라 길을 포함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도 마찬가지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고 또한 많이 배운 여행이라서 그런지 여운이 아주 길게 갈 것 같다. 

 

 



피스테라와 야고보는 관련이 없다?

 

 


 
▲ 오레오 곡물 창고인 오레오. 습기와 설치류들을 피하기 위해 기둥을 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둥은 끝 마무리를 둥글게 했다. 기둥 마무리 부분이 둥그니 아무리 쥐들이 기둥을 타고 올라와도 끝 부분에서 떨어지고 만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땅끝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도 대개 그곳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피스테라를 소개하는 일부 책자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피스테라는 필자가 반복해서 기술한 대로 스페인의 땅끝이지 유럽 대륙의 땅끝은 아니다.


정확히 유럽 대륙의 땅끝은 호카 곶(Cabo de Roca)이다. 호카 곶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깎아질 듯한 해안절벽이 일품인 곳이다.

 

 



 
▲ 피스테라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에 선 필자.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피스테라에 대한 환상(?)을 한 가지 더 깨보자. 앞선 여행기 2편
(관련 기사 : "산티아고에 '산티아고'가 없다고?")에도 언급했듯이, 야고보 성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야고보의 시신이 담긴 배가 예루살렘에서 피스테라까지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의 항해 기술은 둘째 치고, 사역을 하지도 않은 곳에다 자신의 시신을 묻어 달라는 전도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스테라가 왜 야고보와 연결이 됐을까? 아무래도 야고보의 존재를 더욱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스테라가 동원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로마인들은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끝에서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도착하여 별들의 들판이라는 산티아고 콤프스텔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이 정리될 수 있다. 이런 전개 과정 자체가 여행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익사이팅'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 챔피언 이 스페인 사람은 피스테라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에게 큰 감흥을 주어서 이번 여행기에 사진을 올려본다. 이 분의 왼쪽 다리를 보시라. 의족이다. 저런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더 당당했다. 저 자전거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론 이베리아 반도 순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챔피언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환상이 깨졌다고는 해도, 피스테라는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곳이다. 넘실대는 파도와 해안절벽들을 따라 가다보면 땅끝 등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모습은 일품 중에 일품이다. 특히 이곳의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피스테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행한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자신의 것들을 산화 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등대 근처 곳곳에는 순례자들이 태운 신발과 옷가지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피스테라는 그런 장소였다. 무언가 의식을 행하거나 다짐을 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마치 해남 땅 끝에 가면 무언가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필자도 대서양 바다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 유럽대륙을 자전거로 피스테라에서 만난 한국 여대생. 터키에서부터 스페인 피스테라까지 무려 5000km 넘는 거리를 단독으로 여행 했다고 한다. 앳된 얼굴이었지만 진짜 강철같은 에너지를 가진 청년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전거로도 순례를 할 수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난생 처음 보는 대서양 앞에서 다짐을 한 말치고는 무척 소박한가? 그래도 상관없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도 못한다는 것이 평소 필자의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허상과도 같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일들을 척척해내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과거를 괴롭게 되새기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억지로 끌어와서 현재를 낭비하지 말자는 뜻이기 하다. 대신 너무 현실적으로 살지는 말자. 가능한 꿈은 얼마든지 꾸자!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도보여행은 끝이 났다. 도합 200km 정도를 걸었는데도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래서인지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작성해 송고할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당장 배낭을 꾸려서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꾹 참아야 했다. 그만큼 순례길은 필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남북한 순례자들이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

글을 마치기 전에 순례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본다.

순례길은 화합의 길이었다. 지역감정으로 유명한 마드리드, 카탈로니아, 바스크 사람들이 서로 정답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 순례길이었다. 스페인 내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앙숙이었던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에스토니아(발트3국) 청년들이 서로 의지를 하며 걷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었다.

도보여행을 하는데 국적이니 지역이니 하는 것들은 다 소용이 없다. 순례자의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열심히 즐기며 도보여행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필자도 일본인 친구들과 짧게나마 즐겁게 걸었다. 니가타 출신이라는 처자는 필자에게 한국말로 '오빠'라고 칭해 주었다. 필자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응답했다. 이런 것도 하나의 재미다.

산티아고 카미노에서 북한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순례길을 걷는다면 그것 자체로 좋은 일일 것이다. '통일대박' 시대에 자연스러운 남북한의 인적교류가 이루어지는 거니까!

순례팀은 차량을 통해 피스테라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바닷가 마을 묵시아(Muxía)로 이동을 했다. 묵시아도 풍광이 무척 아름다운 어촌 마을 중에 하나였다. 묵시아 여행을 끝으로 필자는 개인 배낭여행 형식으로 스페인 중부권 일대를 탐방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다.

 

 



 
▲ 묵시아 묵시아는 풍광이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