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하고 경찰서 가고... 그렇게 스페인에 왔다

 

[22일간의 스페인 여행기①] 산티아고 순례길, 확 질러버렸다

 

14.12.13 20:46  
최종 업데이트 14.12.13 20:46
곽동운(artpunk)

 

 

 

 

 

 

 

 

지난 11월 3일~25일까지, 22일 동안 스페인과 핀란드를 여행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수도 마드리드와 그 인근에 있는 도시들을 방문했습니다. 스톱오버로 방문한 핀란드에서는 헬싱키를 탐방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약 10회에 걸쳐 담아보려고 합니다.... 기자말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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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그 곳을... 그 돈이면 국내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돈인데...'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을 제안 받았을 때 필자는 좀 멈칫했다. 도보여행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제안 받았는데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트레킹 '바닥'에서 먹고 살려면 분명히 한 번 이상은 가야 할 곳이고, 버킷리스트에도 상위에 링크돼 있는 그 산티아고 순례길 트레킹을 확 낚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인생사 타이밍, 갈 수 있을 때 가자!


왜? 일단 돈이 없어서 그랬다. 달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카드 귀신'을 물리치기도 역부족인데 해외여행이라니! 또한 아직 국내도 가본 곳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은 터라, 국내에서 내공을 많이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국내와 서로 비교대조를 하면서 길을 걸어야 할 테니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갈 수 있을 때 가! 나중에는 여건이 돼도 못 갈 수도 있어!"   

주저하는 필자에게 여행 제안을 했던,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 일침을 가했다.

그 말이 맞다. '인생사 타이밍'이라고, 이거다 싶으면 확 낚아채야 한다. 질질 끌다가는 손에 남는 건 그저 허송세월뿐이다. '카드 귀신'이야 허리띠 졸라매면서 틀어막으면 되는 것이고, 국내와의 비교대조는 그간 역사트레킹 리딩을 하며 익힌 지식을 써먹으면 될 테니까!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선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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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일.


필자는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여정이라 비행기에서만 약 15시간 정도 머물러야 했다. 좀이 쑤시고, 발이 저려오는 것을 참으며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을 찾고, 화장실을 가고 했더니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스페인이 남부유럽이라고 하지만, 11월 마드리드의 밤공기는 무척 차가웠다. 필자의 마음속에도 찬바람이 쌩쌩 불어왔다.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될 판이었기 때문이다. 손성일 대장을 위시한 본진들은 그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도착할 예정이었고, 필자는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홀로 선발대(?)가 되어 공항 벤치에 자리를 깔아야 했다. 픽업을 해주는 한인민박집에서 1박을 하면 만사 '오케이'가 되겠지만 첫날부터 과소비(?)를 할 수는 없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마드리드 공항에서 노숙을


공항보안 요원들이 필자의 앞을 지나다니며 '쑥떡쿵' 거리기는 했지만 못 본 척하고 그냥 자리를 깔았다. 공항 내부는 춥지가 않아 그럭저럭 버틸 만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벤치에 있는 손잡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벤치를 침대처럼 쓸 생각이었는데 칸칸이 있는 손잡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몸을 옆쪽으로 꾸부정하게 만들어 배낭을 앉고 잠을 청했다. 

11월 4일.

필자는 터미널 4(T4)에서 노숙을 했는데, 이 T4는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Richard George Rogers)의 작품이다. 리처드 로저스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1977), 영국 그리니치 밀레니엄 돔(1999)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들을 많이 설계했다.

 

 


 
▲ 마드리드 공항 마드리드 공항에서 자리를 깔고 노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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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완공된 T4는 매우 독특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건물 전체를 '통유리'로 감싼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연광을 듬뿍 받을 수 있을 뿐더러 유리 너머로 이착륙하는 항공기들도 감상할 수 있게 설계됐다. 로저스의 건축 철학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생각들이 반영되어 T4는 시야가 확 트인 공항청사로 태어난 것이다. 


'사람'을 우선시한 로저스의 건축 철학 때문인지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너무 맛있게 잠을 자서 예정시간보다도 더 늦게 일어날 정도였다. 그래서 서둘러 본진이 도착하는 터미널 2(T2)로 이동해야 했다.

EU 지역은 하나의 존(zone)으로 묶여, 나라가 다르더라도 국내선 개념으로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 T4는 국내선 청사로 분류되었는데 그래서 필자는 별다른 절차 없이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보안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너무 쉽게 게이트를 빠져나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핀란드 헬싱키에서 스페인 입국심사를 받았던 것이다. 핀란드 출입국 직원이 차가운 음성으로 '왜 스페인과 핀란드를 방문하냐'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그렇다 쳐도 스페인은 지가 무슨 상관이야? 지가 핀란드 사람이지, 스페인 사람이야?"

그때는 이렇게 투덜댔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진이 도착할 T2는 비유럽권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도착하는 터라 따로 입국수속을 밟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은 단일청사라 항공편에 따라 터미널을 이동하는 불편이 없어서 좋다. 공항 벤치에 개별손잡이가 없어 노숙하기도 편하고.

 

 


 
▲ 마드리드 지하철 전동차 내에 광고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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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미가 있는 마드리드 지하철

 


늦잠을 자서 그랬는지 본진과 합류하여 지하철을 탔을 때는 한창 출퇴근 시간에 걸리고 말았다. 우리 일행이 가야 할 곳은 마드리드 북쪽에 위치해 있는 차마르틴(Chamartin)이었다. 그곳에는 차마르틴 역이 있는데 거기서 기차를 타고 사리아(Sarria)로 가야했다.

우리나라 지하철과 달리 마드리드 지하철은 광고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성형광고들로 점령(?)된 우리나라 전동차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짭짤한 광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공간을 그냥 여백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매일같이 출퇴근을 하며 성형수술을 '권장'받는 한국인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혼자 속삭였다.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지... 외모가 전부냐!'

드디어 차마르틴 역에 도착했다. 마드리드에서 우리의 서울역에 해당되는 곳은 중앙역이라 불리는 아토차(Atocha)역이고, 차마르틴 역은 청량리역 정도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 역은 주로 스페인의 북부지역과 연결된다.

 

 


 
▲ 스페인 경찰서 스페인에서는 경찰을 폴리시아(policia)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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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부터 스토리를 만들었다!


"어, 내 스마트폰?"

시차적응이 안 된 건지, 아니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게 한 것인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분실했다. 배낭까지 다 들어내서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 곳이 좀 도둑이 들 끊는 마드리드라는 사실을, 더군다나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허둥지둥 대는 필자에게 손성일 대장이 이런 말을 했다.

"첫날부터 스토리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빨리 잘 찾아봐!"

그 말대로 스토리를 만들고 말았다. 그냥 소매치기들한테 스마트폰을 헌납할 수가 없어 경찰서를 찾아갔다. 스페인어도 못하면서 그냥 찾아갔다. 그냥 분실신고서 하나 작성하고 나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들어간 것이다.

사무실에 있던 현지 경찰관은 자신은 영어를 못한다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돌려,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순간 긴장했다.

'나도 영어 못하는데!'

전화를 받는 내내 식은땀이 흘렀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 전화상으로 심문을 받는 듯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스페인 경찰의 한숨 소리가 이렇게 들리는 듯했다.

'어이 동양친구, 왜 이리 영어를 못 해. 너 영어실력 다 바닥났어!'

결국 스마트폰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여행 내내 필자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답답했지만 나중에는 그것조차도 적응이 되었다.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만큼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보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첫날부터 스토리가 작성됐다. 하지만 그건 서막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필자 앞에 펼쳐졌으니까.

 

 


 
▲ 스페인의 땅끝 스페인의 대서양쪽 땅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Fist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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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교 로마시대에 건립된 수도교. 마드리드 인근인, 세고비아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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