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동 트레킹: 비주얼이 뛰어났던 북악산.








10월 23일.


강원도에서 들려오는 단풍 소식이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의 대부분의 산들은 아직 단풍 절정기에 들지 않았더군요. 기왕하는 트레킹,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걸으면 좋잖아요.


이 날은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의 세번째 리워드 트레킹이 있었던 날입니다. 일명 성북동 역사트레킹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성북동 트레킹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처음으로 런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잘해야 하는데!"


첫 스타트였으니 부담감도 좀 생기더군요. 그런 약간의 부담감을 안고 약속장소인 성심여대역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첫번째 코스인 정릉을 지났는데... 그만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바람도 거세게 불고.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트레킹을 첫번째로 런칭한 날인데!!! 


그렇다고 하염없이 날씨 탓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기획한대로 제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답사를 제대로 해서 그랬는지 첫 번째로 행하는 트레킹치고는 물 흐르듯이 잘 진행이 되었답니다.


"우와!"


북악산을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참가자들의 탄성 소리도 커져갔습니다. 왜냐?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주위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다른 산들은 아직 단풍절정기가 아니었지만 우리가 갔던 북악산 코스는 단풍이 최절정기에 다다랐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비주얼을 바라보며 걸으니 발걸음이 한결 더 가볍더군요. 참가자분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습니다.


"올해 단풍놀이를 여기서 할 줄이야!"


첫번째인데다, 비 내리는 날 행한 트레킹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호응을 해주셔서 무사히 행사가 잘 종료가 됐답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올해 단풍놀이를 그날 처음했던 것 같네요. 눈이 호강을 한 하루였습니다.

 



 





 
   * 전망대: 뒤로 성북구와 도봉구 일대가 보인다.
 






 

  * 호경암: 1.21사태. 일명 김신조 사태 때의 상흔을 품고 있는 호경암.








  * 성북동 역사트레킹: 단풍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 한강: 매봉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강.

 





 

* 버티고개: 버티고개에서 한 컷. 수강생분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10월 8일 토요일, 한겨레 문화센터 역사트레킹 강의가 있는 날.


그 전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한겨레 문화센터입니다. 내일 비 예보가 있는데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예보 저도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출발할 때는 비가 그친다고 나오네요."


"그래도 비가 계속 올 지 모르니까..."


'그렇죠. 비가 계속 이어서 올 지 모르죠. 요즘 하도 일기예보가 안 맞으니까..."


"음...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혹시 이번 트레킹은 취소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아니요. 일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때 그때 일정을 소화해야지 차후로 미루면 엉켜버립니다."



저는 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의사표시를 한 것이죠. 한 번 일정이 틀어지면 계속 꼬이게 되잖아요.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단호하게 나갔던 것입니다. 제 뜻을 알겠다는 듯 담당자 분도 수긍을 해주시더군요. 감사하더군요.


8일에 행해진 서울내부트레킹은 그렇게 비 때문에 취소될 뻔했답니다. 사실 당일날 새벽까지 비가 오긴 왔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개었더군요. 전화위복이라고 그렇게 비가 그친 뒤에 행한 트레킹이라 상쾌함이 배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내부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는 좀 고민을 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길을 안 좋아하면 어쩌냐... 여기 산들은 다 동네 뒷산급인데..."


하지만 수강생분들의 만족도는 상당했습니다. 괜한 걱정을 한 것이죠. 수강생분들은 서울의 구석구석을 알 수 있게 되어, 즐거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해주시더군요. 매봉산 팔각정, 버티고개, 수표교, 광희문 등등... 수강생분들은 그런 곳들을 탐방하며 즐거워하셨습니다.


걱정을 많이 한 만큼 준비를 많이 한 탓도 있을 겁니다.


역시 강의 준비는 철저히! 다음 트레킹을 또 기약하며!


 








​ * 성곽길: 남산의 동쪽에 위치한 성곽길.


 


* 광희문











 * 백사실 계곡: 백사실 계곡 입구 









서울 한복판에 능금마을?

북악산에 가면 무언가 얻어가는 느낌이 들 겁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드높기만 하다. 설악산에서는 단풍 소식도 들려온다. 그래서일까, 이런 계절에 집에만 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까지 든다. 가벼운 배낭 하나 둘러메고 어디를 가도 좋을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그럼 어디로 떠나는 게 좋을까? 북악산을 추천해 본다. 북악산 역사트레킹을.

 

  

 

세검정(洗劍亭)보다 고향집 팔각정이 더 낫다?

 

북악산 역사트레킹은 세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세검정은 칼을 씻었다(洗劍)’는 의미인데 광해군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자, 인조반정을 획책한 이귀, 김류 등이 칼을 갈아 씻었다고 해서 세검정(洗劍亭)이라고 명명됐기 때문이다. 정자정()에서도 보듯 세검정은 계곡 옆에 지어진 정자다.


세검정 일대(종로구 부암동)는 예부터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였다.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이 주위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사천이라 불렸던 홍제천이 너럭바위 위를 유유히 흐르고 있으니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데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다산 정약용과 겸재 정선도 그렇게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린 이들이었다. 다산 선생은 <유세검정(遊洗劍亭)>이란 시를 지었고, 겸재 선생은 <세검정도>라는 부채 그림을 그려 세검정을 칭송했다.

현재의 세검정은 1977년에 지어졌다. 1941년에 인근에 있던 종이공장에서 화재가 났는데 불이 옮겨 붙어 주춧돌만 남기고 완전히 소실됐다가 이후 36년 만에 복원된 것이다. 겸재 선생의 부채 그림을 많이 참조하여 복원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크다고 한다. 내가 봐도 복원된 세검정과 겸재 선생의 그림 속의 세검정은 닮아 있지 않았다. 현재의 세검정은,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동네 정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농담 삼아 이런 말도 한다.

 

우리 고향 마을회관에 있는 팔각정이 더 좋아 보이는데요...”


부채에 그려진 수려한 주위풍광은 되돌릴 수 없겠지만 문화재 복원만큼은 보다 더 정교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 세검정: 홍제천 위에 서 있는 세검정

 

오성대감 이항복과 백사실 계곡

 

세검정을 지나 백사실 계곡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북악산 트레킹이 시작된다. 백사실 계곡은 말이 계곡이지 거의 건천에 가깝다.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을 때를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백사실 계곡은 계곡 자체보다는 숲길이 더 각광을 받는 곳이다. 중심가와 인접한 곳에 그렇게 잘 정돈된 숲길이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니까.


숲길 안쪽으로 걷다보면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가 보인다. 숲길 한편에 자리 잡은 별서터는 현재 기단석만이 남아 있다. 그 기단석과 바로 옆쪽에 있는 연못자리로 그 옛날 별장의 풍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별서터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고 새겨진 바위를 볼 수 있다.백석백악을 뜻한다. 북악산을 예전에는 백악산이라고 불렀다.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풍광이 수려한 곳을 말한다. 한마디로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풍광이 수려한 골짜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백사실 계곡의 백사는 이항복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백사실 계곡 인근에 있는 세검정은 광해군과 관련이 많은 곳이다. 인조반정을 획책한 이귀, 김류 등이 반정을 획책하고 칼을 씻었다고 해서 세검정(洗劍亭)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항복도 광해군과 관련이 많은 인물이다.


오성대감으로 더 잘 알려진 이항복은 한음 이덕형과의 재기 넘치는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임진왜란 중에 5번이나 병조판서에 오를 만큼 이항복은 선조의 신임을 받았다. 이항복이 당쟁에 물들지 않고, 초연하게 자신의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해냈기에 이런 신임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항복은 이덕형을 명나라에 급파하여 원군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이 왜와 함께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는 오해가 생기자, 그 자신이 직접 명나라에 가 오해를 풀고 오기도 했다. 이렇듯 이항복은 외교적으로도 뛰어난 업적을 쌓았다.


오성대감 이야기를 조금 더해보자. 전란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대북파로 분류됐던 문홍도가 휴전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유성룡을 탄핵했다. 그러자 오성대감은 자신도 그 의견에 동조를 했다며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영의정이었던 1600년에는 기축옥사(1589)와 관련하여 성혼을 변호하다가 반대파들에게 정철 비호자로 몰렸고, 그래서 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는 인목대비 폐위(1617)에 대해서도 반대하다 삭탈관직을 당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1618년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만다. 오성대감이 그렇게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5년 뒤, 광해군도 인조반정에 의해 퇴위당하고 유배길에 오르고 만다. 그러다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세상을 떠난다.

 

 




 * 백사실계곡: 백사실 계곡 숲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서울 한복판에 능금마을이?

 

백석동천을 탐방하다 보면 능금마을이라는 곳을 만나게 된다. 능금마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그런지 전원적인 모습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서울 도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료포대가 쌓여진 농촌 마을을 보고 있자니 생경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왜 능금마을이 북악산 뒤편 부암동 부근에 있는 것일까? 아시다시피 능금이면 우리나라의 고유 사과종을 말하는데 능금으로 유명한 지역은 대구·경북 쪽이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드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 북악산 역사트레킹에 참가한 사람들도 그렇게 묻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왜 사과마을이 있는 거에요?”

 

현재 창의문 밖, 부암동 일대는 능금마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과나무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능금마을이라는 마을 명칭만이 옛 흔적(?)을 확인해 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40여 년까지만 해도 창의문 밖 능금은 경림금(京林檎)이라 하여 서울의 유명한 특산물이었다. 능금이 출하되는 가을 때쯤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상인들로 창의문 인근이 들썩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창의문 밖에 능금나무가 많이 심어졌을까? 먼저 산지 형태를 띠는 부암동 일대의 토양이 척박하여 논농사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로 들어질 수 있겠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두 번째 이유는 창의문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그 두 번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창의문의 역사를 더듬어 가야 한다.

 




 * 백석동천: 백석동천이라는 한자가 음각된 바위.




 

 

인조반정과 능금마을

 

1623313.

 

창의문 밖 홍제원(지금의 서대문구 홍제동)에 집결한 의군(義軍)’들은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으로 진격한다.

반정군의 원두표가 도끼로 문을 부셨다. 당시 창의문은 문루가 없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탔기 때문이다. 높은 위치에서 활도 쏘고 해야 하는데 문루가 없으니 효과적인 방어가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반정군은 창덕궁을 점령했고, 광해군은 퇴위된다.


능금마을 이야기를 하다 뚱딴지 같이 왜 인조반정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일까? 그렇다. 창의문 밖 능금마을은 인조반정과 무척 관련이 깊다. 인조는 반정에 협조했다 하여 창의문 밖 백성들에게 능금나무와 자두나무를 나눠주었다. 그게 부암동 능금마을의 시초가 된 것이다.


숙종 때에는 정책적으로 묘목을 더 많이 심어 부암동 일대에 무려 20만 그루의 능금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매운 음식을 먹은 듯, 빨갛게 달아오른 사과알들이 푸른 잎들 사이에서 대롱대롱 거렸을 것이다. 아주 멋진 장관이 펼쳐졌을 것 같다. 거기에 인왕산 서편으로 석양이 지는 모습까지 어우러지면...!


창의문 밖 능금, 경림금은 그렇게 서울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되었다. 추석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제례물품이 되었던 것이다.





   

 * 능금마을: '능금마을'을 가리키고 있는 표식. 

 

 

적어도 손해 보지는 않는다!

 

전편인 4편에서 나는 이렇게 부제목을 썼다.

 

- 다음은 북악산입니다. 안 가면 후회할 겁니다.

 

조금은 자극적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노골적인 영업성 멘트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북악산 역사트레킹을 행하다보면, 적어도 손해 보는 느낌이 들지는 않을 거라고. 무언가를 얻어 가는 느낌이 들 거라고.






 * 북악산: 북악산 팔각정에서 바라 본 북학산. 












어라? 이거 놀고 먹는 펀딩이 아니었네!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일품 풍광, 안산 역사트레킹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이번글은 3편입니다. - 기자 말 


           


    

 
▲ 안산에서 본 인왕산 안산 봉수대에서 바라 본 인왕산의 모습. 능선을 따라 늘어선 서울성곽이 보인다. 왼쪽 뒤로 보이는 산은 북한산이다.
ⓒ 곽동운









나를 설득 해봐요!

"이번에 또 펀딩하니까 한 번만 더 도와줘요!"


얼마 전 만난 지인과의 대화. 나는 능청스럽게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어차피  돈 벌려고 펀딩을 하는 건 아니었다. 지인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난 저렇게 능청을 떨면서 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냥 편안하게.

"전에 한 번 했었잖아요. 그거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야."
"한 번 했다고 두 번 못하라는 법 있어요. 그냥 하는 거지."
"어차피 인건비도 못 뽑을 거면서... 괜히 돈 냈다가 허무하게 공수표 되는 거 아니에요?"

"뭐 그러겠죠. 그런데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냥 하는 거지."
"팔자 좋네. 부러워 정말.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부럽기는... 뻔히 사정 알면서. 그리고 펀딩하면서 욕도 많이 먹는 거 알잖아요."


툭툭 말을 던지는 지인. 그걸 또 툭툭 맞받아치는 나. 지인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저렇게 이야기를 해대도 지인은 속이 깊은 사람이다.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니까. 지난번에 행한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펀딩에도 거액(?)의 후원금을 내게 쥐어줬었다.

"자 그럼 내가 지갑을 또 열 수 있게 나를 설득해 봐요. 그냥 도와달라는 말은 사절합니다!"

나는 주변 사람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제3자도 설득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본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기본적인 취지에서부터, 다른 펀딩과의 차별성 등을 차례로 설명해나갔다. 본 펀딩의 사회적·공익적 역할 부분에서는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까지 이야기를 해댔다.   

"잠깐, 전이나 비슷하네... 그건 그렇고 방금 말한 리워드 중심이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아, 리워드 중심이요. 리워드 중심 프로젝트라는 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기획할 때부터 리워드에 방점을 찍고 시작했다. 다른 프로젝트들이 에코백이나 도서 같은 현물을 리워드로 제공하지만 내 프로젝트는 '트레킹 초대' 식으로 리워드가 제공된다. 그렇게 리워드 트레킹이 5회가 제공되기에 창작자인 나는 후원자들을 5번 이상 만나게 된다.

확실히 다른 프로젝트들과는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이것을 두고 나는 리워드 중심 프로젝트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 부분은 앞선 1화에서도 언급을 했었다. 지인은 그때서야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쉽게 이야기를 하지. 뭘 그렇게 어려운 단어들 써가면서 말을 해요."
"음... 이게 어려운가요?"
"한마디로 자기 돈 만 원 내고, 트레킹에 참여를 한다는 거잖아요. 내 말이 맞죠?"
"맞아요. 딱 그 말이에요."


역시 날카로워! 그런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펀딩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런 날카로운 지적이 오히려 필요했다.

"리워드 중심이니, 뭐니 하는 어려운 말을 쓰지 말고, 해당 트레킹 코스의 매력에 대해서나 이야기를 해봐요."
"예... 매력이요?"

"그게 현실적이지. 백날 리워드 중심이니, 창작자와 후원자가 만난다느니 하는 소리하지 말고요. 뭐하러 그 구리구리한 얼굴을 보러 가겠어!"
"쩝..."


"처음 간다는 곳이 어디에요? 안산이라고 했나요?"
"네. 서대문 안산이요. 경기도 안산 말고."
"그럼 그 안산의 매력에 대해서 읊어 봐요."






▲ 봉수대 안산 봉수대 전망대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 근처에 연세대가 위치해 있어 유학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 곽동운





서대문 형무소와 다크 투어리즘

안산 역사트레킹은 서대문 형무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시다시피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독립운동가들만 시련을 당했던 것은 아니다. 작고한 김근태 의원 같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분들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런 아픈 역사 때문인지 서대문 형무소는 다트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대표적인 장소로 손꼽힌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천연재해 등을 당한 곳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다크 투어리즘은 아픈 기억을 가진 지역을 탐방함으로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로 착안된 테마여행 방식인데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만약 당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동남아 쓰나미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했다면 다크 투어리즘 여행을 행했다고 볼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확대해보면, 서울도 곳곳이 다 그 탐방지에 속할 수가 있다.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던 경복궁, 한국전쟁 중에 폭파가 됐던 한강철교 등등... 서울만 그러겠는가. 전국이 다 다크 투어리즘 천지다. 5·18 민주화운동, 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 등등... 동학농민군이 몰살을 당한 공주 우금치도 다크 투어리즘의 최적지일 것이다.



 

▲ 서대문 형무소 안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서대문 형무소.
ⓒ 곽동운







안산과 인왕산

그렇게 서대문형무소를 지나 본격적인 안산 역사트레킹이 시작된다. 안산(鞍山)은 그 형태가 말 위에 올려놓은 안장과 비슷하다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鞍'는 '안장안'자다.

안산은 인왕산과 무악(毋岳)재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지금은 통일로가 놓여 있는 무악재는 무학재로도 불린다. 이처럼 한끝의 차이는 왜 나타났을까? '무악'이나 '무학'이나 똑같아 보이는데.

조선이 개국할 즈음에 천도 예정지로 거론된 곳은 한양, 계룡산, 안산 세 곳이었다. 당시 경기도 관찰사 하륜은 안산 주산론을 펼치며 안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 이에 이성계는 실제로 안산 남쪽 부근을 도읍지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안산의 남쪽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이유로 안산 주산론은 폐기되고, 무학대사의 의견에 따라 북악산 남쪽이 도읍지로 결정된다. 이런 이유로 무악재가 무학재로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무악재는 말안장 같은 안산 기슭을 따라 넘는 고개라고 하여 길마재라고도 불렸다.

나는 이전에 안산 역사트레킹을 리딩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인왕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은 인왕산이 아닌 이곳 안산입니다. 저기 보세요. 정상부 능선 따라 이어진 서울 성곽의 윤곽을요."

괜한 말이 아니다. 안산 정상부에 올라서면 봉수대와 함께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인왕산의 모습은 좀 색다른 멋이 있다. 통상적으로 바라보는 경복궁 방면의 인왕산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봉수대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면 어떻게 이 산이 내사산(內四山:작은서울)과 외사산(外四山:큰서울) 속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그 때문에 나는 이런 멘트를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산이나 비슷한 거 같아요.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봐야 제대로 냉철하게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안산 봉수대 전망대의 또 다른 매력은 한강 너머로 보이는 낙조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한강이 시원하게 보이는데 그 한강에 붉은 기운이 감돌 때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안산의 명소인 메타세쿼이아 숲 탐방도 꼭 해야 한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이 다 상쾌해진다.


 

▲ 안산 봉수대 봉수대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
ⓒ 곽동운





이런 설명들을 들은 지인이 입을 열었다.

"음... 가볼만 한 거 같긴 한데요."
"진짜 가보면 말로 들은 것보다 더 좋아요."
"그런가..."


헤어질 시간이 됐다.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지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아참 각 코스들 다 1만 보 이상 걷죠?"
"당연하죠."
"그럼 운동이 꽤 되겠네요."
"그럼요. 아주 많이 됩니다. 스트레칭도 쭉쭉 하고."
"리워드로 모이는 사람이 전부 다 합치면 75명이 된다고 했죠?"
"네 맞아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지인이 내게 미소를 보이며 말을 했다.

"그럼 공익성은 있네요. 그냥 놀고먹는 펀딩이 아니었네. 그 많은 사람들 1만 보 이상 운동시켜주니까요."
"맞아요. 이제야 제 펀딩을 좀 이해를 해주시네!"
"잘하면 보건복지부에서 상 받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좋죠. 상금도 빵빵하게 주면 더 좋고. 그럼 제가 한 턱을...!"
  









* 능안정: 안산은 행정구역상 북아현동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 이곳은 능안리로 불렸던 터라 능안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있다.  











* 공주역사트레킹: 공산성 위에 선 후원자님. 뒤로 보이는 강이 금강이다.  





* 관악산 역사트레킹: 장승들 앞에 선 후원자분들.







9월 3~4일.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트레킹을 했습니다. 어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열심히 걸었지요. 하지만 그날 트레킹에 참가한 분들은 남다른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냐?


바로 제게 후원금을 내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들은 제 후원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108일 동안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이라는 펀딩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 스토리펀딩이라는 플랫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죠.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리워드'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리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창작자가 후원자들에게 주는 답례입니다.


통상적으로 리워드로 많이 지급되는 것이 엽서, 머그컵, 에코백 등등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저런 것들을 리워드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트레킹이라는 이름으로 펀딩을 한 만큼 트레킹에 초대하는 것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관악산 역사트레킹: 후원자분들과 함께 서 있는 나. 맨 오른쪽. 땀으로 범벅이 됐다-_-







* 공주 역사트레킹: 우금티 고개에 선 나. 그날 햇살이 강해서 그랬는지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렇습니다. 리워드를 트레킹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리워드 트레킹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리워드 트레킹이 9월 3일과 4일에 진행됐습니다.


3일에는 공주 역사트레킹이 실시됐고, 4일에는 관악산 역사트레킹이 진행됐습니다. 두 날 모두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아쉽기는 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걸었으면 좋았을텐데...


특히 공주 역사트레킹 같은 경우는 쉽게 행할 수가 없답니다. 일단 제가 미리 가서 답사를 해야 합니다. 또 이동시간도 꽤 깁니다. 서울에서 하는 트레킹보다 적어도 1시간 이상 더 걸리니까요. 그러니 참가자들도 부담, 저도 부담이 되지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어쨌든 더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_-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나름의 특색이 있는게 트레킹의 매력입니다. 공주 역사트레킹 같은 경우는 1:1 맨투맨으로 트레킹을 했습니다. 관악산 역사트레킹의 경우는 3명의 후원자와 함께 행했습니다.





* 공주 역사트레킹: 공산성 광복루에 선 후원자 분. 저 광복루라는 이름은 김구 선생께서 직접 붙이신 것이다.








* 공주 역사트레킹: 공주성당.








트레킹 하기 좋은 가을날 후원자분들과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습니다. 후원자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펀딩이 사실 많지가 않답니다. 실제로 만난다고 해도 티타임이나 강연 정도이고요. 후원자가 능동적인 입장이 되어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행운아입니다. 후원자들과 직접 만나 트레킹을 행했으니까요. 서너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으니까요. 저같은 창작자도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함께 걷는 길 서울 트레킹>이라는 펀딩을 또 하고 있답니다. 후원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또 펀딩을 개설한 것이죠. 이번 펀딩에는 리워드 트레킹을 5개를 배치해서 후원자들들 5번 이상 만날 계획입니다. 5번 이상 그들과 만나 웃고 떠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가을은 은근히 바쁠 것 같습니다. 소출이 기대되는 올가을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8179  <--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 관악산 역사트레킹: 메타세콰이어 숲에 선 후원자분들.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여기에서는 <함께 걷는 서울역사트레킹>으로 이름을 바꿔서 올릴 생각입니다. 실제로 '서울트레킹'보다는 '서울역사트레킹'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함께 걷는 서울역사트레킹_ 다음스토리펀딩 1편

올 해는 소출이 좀 있었다!







 ▲ 남산 남산 서울성곽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는 서울. 그 서울이 싫어 누구는 '탈 서울'을 꿈꾼다. 귀농, 귀촌, 주말농장, 혹은 제주살이. 명칭만 다를 뿐 서울을 떠나는 이들의 이유는 비슷비슷할 것이다. 각박한 삶, 끊임없는 경쟁, 웃음기 잃은 얼굴들...




다시 서울로

역사트레킹 강사인 나도 '탈 서울'을 꿈꾸었다. 서울과는 더 이상 궁합이 맞지 않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백두대간인 삼봉산이 올려다 보이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이라는 곳에서 쓰고 있다. 거창 귀농학교라는 곳에서.

하지만 나는 다시 서울로 상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귀농하려다 실패해서 다시 리턴하는 것인가? 아니다. 현재 귀농학교에서 기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농사를 지을 실력이 못 된다. 귀농은 아무나 하는가!

귀농학교는 내게 집필 장소이자 생태교육의 장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우리 농촌과 우리 산하의 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위쪽으로는 덕유산, 아래쪽으로는 지리산이 가까운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마디로 이곳은 강원도를 빰치는 아웃도어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아웃도어 천국인 곳을 뒤로 하고 나는 왜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 하는가? 서울이 역사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도 뚜껑 없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각박함, 스트레스, 공해 등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단어들 너머로 숨어 있는 서울의 유적지와 그 유적지를 탐방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 내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 진관사: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의 대웅전

 





성곽길이 곡선을 그리며 나가는 인왕산, 계곡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북한산성, 낙조가 아름다운 안산의 봉수대... 남도가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다 해도,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서울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역사트레킹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서울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요!"


그런 말을 내게 하며 미소 짓던 얼굴들.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물과 간식거리를 건네주었던 따뜻한 마음들. 그런 고마운 미소와 마음들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리딩을 하고 싶어 했던 내 모습. 그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게 서울로 가는 티켓을 다시 끊게 했던 것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지만 결국은 또 사람이다. 역사트레킹을 하면서 망나니들만 만났다면 나는 진작 트레킹 리딩을 때려치웠을지 모른다. 돈도 안 되는 일에, 거기다 망나니들까지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 안산 봉수대 서대문 안산의 정상에 자리잡은 봉수대. 중국인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작은 서울과 큰 서울

서울은 작은 서울과 큰 서울로 나눌 수 있다. 작은 서울은 내사산(內四山)이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북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이 바로 그 내사산이다. 이 내사산들을 따라 한양도성이 축조됐던 것이다. 즉 작은 서울은 사대문 안쪽을 말한다.

이에 비해 큰 서울은 외사산(外四山) 안쪽을 뜻한다. 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덕양산(행주산성)이 외사산이다. 아시다시피 조선건국 초기의 서울은 도성 안쪽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은 계속 팽창해 나갔다. 그렇게 팽창해 나갔지만 외사산을 넘지는 못했다. 현재 서울의 행정구역은 외사산 안쪽에 위치해 있다. 아무리 도심지가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자연지형까지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작은 서울, 큰 서울은 내 트레킹의 단골 소재로 이용됐다. 이번 주는 작은 서울, 다음 주는 큰 서울. 그 다음 주는 좀 멀리가고. 계속 그런 식으로 트레킹을 해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볼 일 없는 나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고,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붙여줬다. 아이고, 낯 뜨거워! 그러고 보면 트레킹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창구였던 셈이다.





▲ 인왕산 서대문 안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산 능선을 타고 서울성곽이 구축되어 있다. 왼쪽 뒤편에 있는 산은 북한산이다.  







올해는 소출이 좀 있었다!

'덥다 덥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슬슬 외투를 챙겨 입어야 할 계절로 들어섰다. 그렇다. 이제는 가을로 진입했다. 야외활동하기에 제격인 계절로 들어선 것이다.

사실 이 글은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1편을 오마이뉴스에 싣기 위해 편집한 글이다.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실시하는 프로젝트로 9월 1일에 오픈하여 111일간 진행된다.

트레킹 하기 좋은 계절에 시작해서 올해가 끝나는 시기에 종료되는 펀딩이다. 정확히 12월 20일에 종료가 되는데 그때가 동지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연재가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지난 3월에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이라는 펀딩을 이미 실시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올해에만 펀딩을 두 개를 실시하는 것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난생 처음으로 펀딩을 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아봤고,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해서 '선생님' 소리도 들었다. 이 정도면 소출이 좀 나왔다고 할 만하다.

이제 나는 그 소출을 더 늘리기 위해 다시 서울로 복귀할 것이다. 그렇게 서울로 복귀를 하면 남도의 넉넉한 들녘이 내 시야에서 계속 아른거릴 것 같다. 내가 남도에서 서울성곽길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 서울트레킹 서울트레킹, 정확히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참가했던 분이다. 앞쪽에 있는 한옥 구조물은 창의문이다. 창의문은 사소문 중에 하나로 작년에 보물로 승격됐다.      






* 북악산 역사트레킹: 북악산 역사트레킹에 참여한 참가자들. 저런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이다.  

     









 
  

 

 















* 수표교: 장충단 공원 안에 있는 수표교 앞에 선 참가자들.










"소나기라도 안 내리나? 이런 날씨에 무슨 트레킹이야! 더워 죽겠구만!"



2016년 8월 16일.



찌는 듯한 폭염이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광복절 전후로 폭염이 꺾인다는 기상청의 발표는 그저 무색할 따름이었죠. 정말 망설였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 무슨 트레킹입니까!


그래도 약속은 약속입니다. 아무리 덥다고 해도 일정을 변경을 할 수는 없겠죠. 중간에 에어컨이 빵빵한 커피숍으로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발걸음을 떼야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덥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제가 소나기가 내렸으면 하는 기원까지 드렸겠습니까!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렛츠런 문화공감센터에서 역사트레킹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은 서울내부 역사트레킹이 행해진 날이었습니다. 폭염에 대한 염려의 마음을 한가득 안고 집합장소인 청구역에 도착했습니다.


렛츠런에서 행하는 트레킹은 모임 인원이 20명인데 이날은 9명이 오셨더군요.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참가율이 저조했던 것 같습니다.


두둥~ 드디어 첫걸음을 옮겼습니다. 태양은 뜨겁게 내려째고 있었고, 지열은 이글이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서울내부 역사트레킹 코스는 응봉이라고 불리는 산등성이를 타고 갑니다. 산등성이라고 하지만 해발이 낮아서 누구나 다 오를 수 있는 코스죠. 그래도 산을 오르려면 오르막 길을 올라야 하잖아요. 그런 오르막이 초반에 있답니다. 그 초반 오르막을 지나면 숲길을 지나는 터라 걷기는 편하죠. 참가자 분들이 도보여행에 익숙한 분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초반 오르막 길을 무사히 잘 오르시더군요.







*버티고개: 버티고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참가자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날 트레킹도 모든 분들이 완주를 해주셨답니다. 땀을 뻘뻘 흘리기는 했지만... 그래서 옷이 완전 젖었지만... 아참 출발하기 전에 제가 참가자 분들에게 손수건을 나눠 드렸습니다. 일명 '역사트레킹 손수건'이었는데 나름대로 디자인이 예쁘다고 하시더군요. 그 손수건으로 땀도 닦으시고 그러더군요. 하여간 잘 나눠드린 것 같습니다.


저도 다른 모임 때보다 아주 천천히 리딩을 했답니다. 사실 저도 무척 힘들었으니까요. 사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요.


하여간 쉽지 않은 트레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을 했더니 기억에 많이 남는 모임이 되었답니다. 보람도 컸습니다.


그래도 9월 달 트레킹은 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 서울성곽: 서울성곽 구간에 선 참가자들.













 







더운 요즘입니다. 수박 한 덩이가 간절하게 그리운 계절이네요.


휴가철이라 많은 분들이 피서를 떠나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휴가를 못 떠납니다.


명색이 역사트레킹 마스터고, 여행작가이기도 한데... -_-


하지만 며칠 전에 저에게 시원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역사트레킹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정식으로 런칭을 했고, 모집 공지도 문화센터 홈페지에 정식으로 올라왔더군요.


한겨레문화센터는 제가 수강생 입장으로 방문을 했던 곳인데... 이제 저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강사 타이틀을 얻게 됐네요.





 

* 한겨레문화센터: 역사트레킹 패키지. 이번 가을 학기에는 총 5회 실시한다. 패키지를 구매하면 10%를 할인 받는다.









물론 저는 다른 문화센터에서도 역사트레킹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문화센터는 인지도 면에서나 영향력에서나 다른 문화센터보다는 좀 남다르잖아요.


그래서인지 한겨레문화센터에 역사트레킹이 런칭된 것이 정말 감격스럽더군요!


런칭이 확정됐을 때는 좀 울컼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삼 시 새끼를 빵 뜯어 먹으며 답사다녔던 기억들, 당사자는 무심코 내뱉었지만 내게는 비수가 되었던 이야기들,


지독하게 내렸던 빗줄기 때문에 어느 마을회관 처마에서 오도가도 못했던 그 때, 그때 내 얼굴에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그 때의 기억들...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더니만 기어이 그런 기억들이 제 눈 앞에 떠오르더군요.









* 인왕산 역사트레킹:  이번 가을 학기의 첫번째 스타트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이 끊는다. 9월 24일에 실시된다.








세상 참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제가 문화센터에서 강연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정말 세상일 알다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역사트레킹을 해왔으니까요. 대신 자만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더 열심히 길을 걷고, 자료를 더 많이 습득해야겠습니다.


또한 열심히 아재 개그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참가자들이 은근히 아재 개그를 좋아하거든요... ㅋ



클릭 ---> 역사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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