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인해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진행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 잘 마무리가 됐답니다.


펀딩이 성공을 한 것입니다. 달성율 101%. 100%를 넘어 101%에 도달한 것입니다. 짝짝짝~!

​2016년 9월 1일부터 12월 20일 까지 무려 111일간 진행!

그렇게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을 진행하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답니다. 

제게는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답니다. 물론 오해도 받았답니다.~ ㅋ  

​어차피 사랑이든 오해든 뭐든... 이제는 다 지난간 일입니다.


이제는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다가올 2017년 계획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다사다난 했던 2016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밝아오는 새해에는

항상 좋은 일들만 함께 하시길~!

* 후원금: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펀딩 소개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자신이 낸 후원금으로 역사트레킹(테마트레킹)을 즐기는 것입니다. 연재글에서도 계속 언급을 했었지요.


그래서 후원금도 그렇게 지출됐습니다. 5번의 리워드 트레킹에 후원금이 모두 지출된 것입니다. 이 점도 리워드에 참가를 해주신 참여자분들에게도 계속 이야기를 했었답니다. 

사실은 제 사비를 털어서 실비로 먼저 지출했지요. 이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도 저는 펀딩금을 만져 보지도 못했으니까요. 한마디로 전 지금 마이너스... -_-; ㅋㅋㅋ


그래도 다른 펀딩에 비하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양반입니다. 다른 펀딩들은 리워드 때문에 무척 골치가 아플텐데 저는 그런 염려에서 벗어났으니까요.

회계 보고에 대한 부담감도 없습니다. 후원자들을 직접 만나 후원금을 같이 집행을 했으니까요.

 







무장공비 루트에 고운 단풍... 그런데 여기가 서울?



정릉에서 김신조 루트까지, 성북동 역사트레킹




16.11.21 13:10 최종 업데이트 16.11.21 13:10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이번글은 5편입니다. - 기자 말

    

▲ 북악산 북악산 하늘길, 일명 김신조 루트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빛깔 고운 단풍비를 맞으며 걷고 있다.

        

        



출발 전부터 바람이 불었다. 빗방울도 오락가락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처음 런칭하는 날인데..."

지난 10월 23일.

이 날은 성북동 역사트레킹이 행해진 날이었다. 성북동 트레킹은 스토리펀딩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트레킹이었다. 그래서 나름 준비도 열심히 했다.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답사도 여러번 다녀왔고, 자료를 찾는다고 책장을 분주히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당일 날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트레킹할 때 날씨가 좋으면 반을 먹고 들어간다고 하는데 보시다시피 오늘은 꽝이네요."
"그래도 좋아요!"
"이런 날씨에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자리에 모인 후원자분들이 더 걱정을 해주셨다. 말씀만이라도 고마웠다. 이런 후원자들과 함께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일 테지!





▲ 정릉 세계문화유산 정릉.   

       







이성계의 총애를 받은 신덕왕후

트레킹 팀이 첫 번째로 탐방한 곳은 정릉(貞陵)이었다. 정릉은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다. 황해도 곡산 출신인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이성계의 총애를 받게 된다. 1392년, 조선이 개국했을 때 태조의 옆에 서 있던 사람도 신덕왕후였다.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가 그 전 해에, 조선의 개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결국 강씨는 현비로 봉해져 조선의 첫 번째 왕비에 오르게 된다.

조선왕조가 개창될 때 이성계의 나이는 58세였다. 그래서 즉위하자마자 세자 책봉에 나서야 했다. 현비였던 신덕왕후로서는 자신이 생산한 왕자를 세자의 자리에 앉히고 싶어 했다. 이성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녀였기에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으리라.

하지만 쟁쟁하게 버티고 있던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들이 문제였다. 방과(정종), 방원(태종) 등등... 신의왕후의 소생들은 조선 창업에 큰 공을 세운 이들었다.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신덕왕후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정도전과 손을 잡게 된다. 정도전 입장에서도 이미 다 장성한데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신의왕후 자제들보다는 아직 나이가 어린 강씨의 소생이 세자가 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 재상중심의 왕도정치를 주창한 정도전이었으니까.

결국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었던 방석(의안대군)이 1392년 8월 20일에 세자로 책봉된다. 그해 7월 17일에 조선이 개국했으니 약 한 달 만에 세자가 책봉이 된 것이다. 이에 이방원(정안대군)은 격분한다.

"정릉은 조선왕조가 개국한 후 처음으로 능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왕릉들에 비해서는 좀 허술해 보이지 않나요? 봉분을 둘러싼 봉분석도 없고요." 

그 말대로 정릉은 능의 격식에 맞지 않게 무언가가 빠져 있다. 여백의 미학이 아닌 인위적으로 뺄셈을 당한 것이다. 그렇게 뺄셈을 한 사람은 바로 태종 이방원이었다.

신덕왕후는 자신의 소생이 왕위에 등극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396년(태조5)에 눈을 감고 만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신덕왕후가 죽자 이성계는 지금의 서울 정동, 현재의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을 조성했다. 또한 흥천사라는 사찰을 지어 그녀의 명목을 빌었다.

이 흥천사를 두고 원찰(願刹)이라고 부르는데, 원찰은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진 사찰을 뜻한다. 정조대왕과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융건릉 인근에 있는 용주사도 원찰이다.



                             ▲ 정릉 봉분을 두르는 봉분석이 없다.

        






뺄셈을 당한 정릉

1398년 8월, 이방원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무인년에 일어났다 하여 무인정사(戊寅靖社)라고도 불리는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정도전은 목숨을 잃게 된다. 세자였던 이방석도 목숨을 잃게 된다.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도성 안에 무덤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1409년(태종9)에 정릉을 지금의 위치인 성북동으로 이전시킨다. 본격적인 뺄셈이 시작된 것이다. 그 다음해에는 정릉의 봉분을 두르고 있던 석각신장 같은 석물을 광통교 건설에 쓰게 했다. 광통교는 청계천에 있는 다리다.

능에서 가져온 귀한 석재들로 돌다리를 만드는 만큼 그것들을 제대로 이용했으면 좋았으련만 이방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부러 신장석을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광통교 하단을 보면 몇몇 신장석들은 머리가 바닥을 향해 있다. 이방원은 철저하게 신덕왕후를 짓밟았던 것이다.

"여기 이거 물구나무 선 거 같지 않나요?"
"진짜 그러네요."
"청계천 복원할 때 뒤집어서 복원한 게 아니고, 광통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이렇게 물구나무를 세웠습니다. 광통교는 1410년, 태종 때 만들어졌지요. 이렇게 거꾸로 놓이게 된 건 제작자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뜻이겠죠."
"굳이 이렇게까지..."
"그나저나 이것들은 거의 600년 이상을 이렇게 거꾸로 세상을 보고 있었겠네요."


인왕산역사트레킹 때 광통교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에 정릉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광통교도 함께 탐방할 것을 추천한다. 





▲ 광통교 정릉에서 빼온 신장석이 거꾸로 세워져 있다. 무려 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광통교는 청계천에 있다.

     


 
  

아픈 현대사를 걷다, 김신조 루트를 걷다

정릉을 뒤로 하고 트레킹팀은 본격적인 길을 나섰다. 바람이 좀 더 세게 부는 듯했다. 빗줄기도 더 강해지고 있었다. 참가자들 중에는 우비를 꺼내 입은 분들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이런 게 내 잘못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하자. 오늘 가는 곳이 아픈 현대사를 담은 곳이잖아. 그러니 비를 배경 삼아 가는 것도 괜찮겠네.'

트레킹팀은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 <북악하늘길>로 접어들었다. 북악하늘길은 성북구에서 조성한 도보여행길로 총 4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트레킹 팀은 제2산책로를 '타깃'삼아 이동을 했다. 나는 제2산책로를 앞에다 두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정릉을 거쳤고, 북악스카이웨이 옆 산책로도 지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그럼 거의 끝난 건가요?"
"아니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 코스를 걷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이었어요."
"에이..."
"너무 해!"







      ▲ 북악산 하늘길 단풍이 고운 북악산 하늘길.         

       



그렇게 참가자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어떤 참가자는 내게 '사기꾼'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 탄식과 핀잔이 감탄사로 바뀔 것이라는 그런 자신감.

"이 곳은 북악하늘길 제2코스입니다.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곳이죠."

북악산은 군사 목적으로 출입이 제한되다가 지난 2007년 전면 개방이 되었다. 그 군사적인 목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김신조 일당이었다.

"1·21사태, 일명 김신조 사건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청와대 습격 사건이라고도 부르는 그 사건이요."

나는 호경암 앞에서 입을 열었다. 호경암은 1·21사태 때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져 아직까지도 바위 곳곳에는 그날의 아픈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당시 김신조를 위시한 무장공비들은 시간당 10km 이동을 했답니다. 그것도 산길을요. 건강한 성인이 4km로 정도로 이동하니까 그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이동을 했는지 알 수 있겠죠."

구멍이 뻥뻥 뚫린 호경암을 앞에 두고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 호경암 치열했던 교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호경암. 빨간색으로 칠한 표시가 바로 총탄 자국이다.        

  





격동의 시기, 1968년!

"김신조 사태가 1968년 1월 21일에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이틀 후인, 1월 23일에는 미국의 정보선인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의해 나포되지요. 또 그해 10월 경에는 울진, 삼척 지역에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를 하기에 이릅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월맹군의 구정공세로 미군의 예봉이 꺾였고, 미국에서는 반전 운동이 크게 일어났잖아요. 히피문화로 대변되는..."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숨을 좀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이것 말고도 1968년에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서구에서는 68혁명이라 하여 구체제 극복을 내세운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당시 공산권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프라하의 봄이라는 혁명이 일어났지요. 밀란 쿤데라라고 소설가 아시죠? 그 사람이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프라하의 봄이 중요한 모티브였습니다. 하지만 그 봄날은 오래가지 못했답니다. 구소련이 강제 진압을 했었거든요. 봄날이 너무나 쉽게 가버린 것이죠."

너무 설명이 진지했던 것 같아 약간 말을 돌렸다.

"이제까지 1968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 1968이라는 숫자를 저도 가지고 있답니다. 제 전화기 끝자리가 1968이거든요."

그렇게 내가 실없는 소리를 했어도 참가자들은 신나했다. 비가 오고 있어도 바람이 불고 있어도 신나했다. 왜? 성북동 트레킹이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악산 단풍이 아주 곱게 잘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깔 고운 단풍을 서울에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장공비의 루트였던 곳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하긴 아무리 지뢰가 깔리고, 철조망이 쳐져 있다고 해도 DMZ만큼 아름다운 곳도 없을 테니까!

글을 마치기 전에 혁명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만 하자. 며칠 전인 12일에 백 만명 이상 사람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19일에도 수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촛불혁명이라고 명명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여 불을 밝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이렇게 외쳤다.

"박근혜 퇴진"

나중에 이 촛불혁명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승리로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패배로? 나는 승리로 기록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참가자: 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이날은 참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드디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의 리워드 트레킹이 마지막으로 실시된 날이었으니까요.


여기서 잠깐! 앞에서도 계속 언급을 했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 다시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지난 9월부터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한마디로 트레킹을 주제로 펀딩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펀딩을 받으면 저는 후원자들에게 무언가 답례를 해야 합니다. 이것을 두고 '리워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게 돈을 주신 분들에게 무언가를 건네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다른 펀딩을 진행하시는 분들은 에코백이나 엽서, 도서 등을 리워드로 많이 제시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트레킹을 잘하니 '북악산트레킹 초대' 같은 식으로 리워드를 제공했습니다. 유형의 물질을 드리는게 아니라 무형의 것을 제공한 셈이죠.


그렇게 리워드 트레킹이 진행되었고, 결국 이날 마지막 트레킹인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이 실시된 것입니다.


순조로운 해피엔딩은 없었던 것인지 , 아침부터 좀 삐그덕거렸답니다. 오전 10시경 집합장소인 구파발역에 가봤더니 갑자기 '헉' 소리가 나더군요.


구파발역에서 시작점인 북한산성 입구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등산객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버스를 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을 빰칠 정도로 콩나물 시루 같았습니다. 정말 탈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종료점인 진관사에서 출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역순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하고 진관사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진관사행 버스는 북한산성행 버스에 비하면 천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가 순발력 있게 잘 대처한 듯했습니다.


정방향이면 어떻고 역방향이면 어떻습니까! 앞뒤를 바꿔서 시작해도 상관없는 게 트레킹의 묘미잖아요!


진관사를 출발해 북한산성입구, 대서문, 북한산계곡 등으로 이어진 이 날의 트레킹은 약 4시간에 걸쳐 진행이 됐답니다. 길이에 비해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하여 마지막 리워드 트레킹인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은 순조롭게 잘 마무리 됐답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버스 타는 것만 혼잡했지, 그 다음부터는 계속 한적하게 우리만 다녔기 때문입니다. 역시 트레킹은 한적한 맛이 있어야 합니다!


하여간 제 어깨에 놓인 짐이 하나가 날아간 느낌입니다. 어쨌든 다섯번의 트레킹이 잘 마무리가 됐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더군요. 또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하다는 감정도 생기고!

 






  * 북한산: 북한산성 대서문에서 바라본 원효봉.







  *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 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













  * 전망대: 금호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강. 금호산도 응봉 라인의 한 축이다.








11월 6일 일요일.



청명한 가을날이었습니다. 약속 장소인 지하철 5호선 청구역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전날에는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이 뿌였습니다. 약간 목이 간질거리기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하늘이깨끗하더군요. 하루 사이에 그렇게 달라지더군요.


한마디로 트레킹하기 아주 좋은 날이었다는 뜻이죠. 그렇게 좋은 날, 우리는 서울내부트레킹을 하러 떠났습니다.


사실 내부트레킹을 진행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답니다. 다른 트레킹과 달리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다른 리워드 트레킹은 거의 다 '만땅'을 채웠는데 유독 내부트레킹만이 신청이 미비했답니다.  


많으면 많은데로, 적으면 적은데로... 또 그렇게 떠나는게 트레킹의 묘미 아닙니까!


트레킹을 할 때마다 열 대여섯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함께 이동하느라 좀 북적북적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주 단출했지요.


트레킹팀은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와!"

"단풍 명소가 따로없네"

"북악산 단풍하고는 또 다르네!"


참가자들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저런 말씀들이 터져 나오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단풍구경을 하고 있다고 감탄을 하시는 겁니다.


내부트레킹은 매봉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응봉 라인을 따라 걷는답니다. 응봉은 이름에도 나타나듯이 매사냥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작은 봉우리들이 남산에서부터 서울숲까지 '쭈욱' 연결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이 절경입니다.


그런 한강의 모습을 보기 위해 트레킹 코스로 넣었는데 시기가 시기인만큼 단풍구경까지 덤으로 하게 된 것이죠. 아니 단풍구경이 메인이 되고 한강 조망이 사이드가 되었다고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이 한강과 가까워서 그런지 강에서 불어는 바람 때문에 단풍이 빛깔이 잘 드는 듯싶더군요. 하늘도 청명하고 단풍도 예쁘고...!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참여를 많이 안 해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단풍 선물, 그것도 비주얼이 뛰어난 단풍 선물을 받았으니까요.


역시 세상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트레킹 때문에 또 하나 삶을 배워갑니다. 그러고보면 제 인생학교는 트레킹인 것 같습니다!









​  * 참가자: 이번 트레킹은 단출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코스의 비주얼은 대단했다!





  * 북한산: 단풍들 너머로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 샛강 생태공원: 샛강 생태공원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   * 샛강 생태공원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거의 3년 만에 처음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10월 4일에 행한 한강 역사트레킹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선유도에서부터 여의도에 있는 샛강 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저는 한강 역사트레킹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한강 트레킹을 마지막으로 행했을 때가 2013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저도 이 길을 걷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트레킹을 앞두고 좀 긴장을 했답니다.


"잘 되야 하는데... 또 오늘이 4학기 첫 수업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날은 2016년 4학기의 첫 수업이었습니다. 렛츠런 문화센터의 2016년 4학기의 첫 수업이었죠. 3학기가 잘 끝났으니 4학기는 더 잘 해야 하잖아요. 그런 심적 부담을 좀 안고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첫 수업이라서 그랬는지 수강생들도 거의 다 참석을 해주신 것 같더군요. 약 2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모였답니다.


10월의 하늘은 참 맑고 청명했습니다. 햇살이 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걷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


한강 역사트레킹은 서울에 있는 트레킹 코스치고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합니다. 선유도를 걷는 것도 좋고, 샛강 생태공원을 걷는 것도 좋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의도 옆에 위치한 샛강 생태공원은 빌딩 숲과 푸른 수목이 어우러져 있어 무척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낸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색적인 트레킹 코스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답니다. 바로 소음 때문입니다. 길 옆 쪽으로 88도로가 지나가는데 그래서 자동차 소음이 상당히 심하다는 것이죠. 리딩하는 내내 그 점이 마음이 걸리더군요.


그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트레킹은 무사히 잘 종료가 됐답니다.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렇게 호평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4학기는 가을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트레킹하기 정말 좋은 학기라고 생각합니다. 수강생들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트레킹에 임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런 만큼 제 어깨도 무척 무겁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죠. 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다음 강의 때도 날씨가 받혀줬으면 정말 좋겠네요~

 







​ * 샛강교: 샛강교에서 한 컷. 뒤로 여의도 금융가의 빌딩 숲들이 보인다.


 



   * 뱀 조심: 뱀 조심 표지판. 샛강 생태공원에 뱀이 나타나는가 보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샛강에서 뱀을 본 적이 없다.










* 서대문 안산: 봉수대 올라가는 길.










펀딩 잘 몰라요, 그냥 트레킹이 좋아서...

다음은 북악산입니다. 안 가면 후회할 겁니다!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이번글은 4편입니다. - 기자 말 

- 죄송합니다. 김밥이랑 생수 사느라고 한 10분 정도 늦을 거 같습니다.

 


925일 일요일.

 

나는 서대문 영천시장을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트레킹 참가자, 정확히는 내 후원자들에게 나눠줄 김밥과 생수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미리 준비한다고 김밥집 검색도 해놨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허둥지둥 댔던 것이다. 먼저 가서 후원자들을 맞았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후원자들과 함께하는 첫 번째 리워드 트레킹부터 발걸음이 꼬였던 것이다.

 

 




 *  안산: 봉수대 가는 길. 뒤로 보이는 산이 인왕산이다.









 

높아진 긴장도 수치

 

사실 이날 리워드 트레킹을 앞두고 나는 좀 긴장을 했었다. 후원자들과 직접 대면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루 전인 토요일에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트레킹 리딩을 했는데 그 여파가 그날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행하는 트레킹 강의도 그날이 처음 시작하는 날이었다. 한마디로 이틀 연속으로 첫 시작이었던 것이다. 긴장도 수치가 높을 만 하지 않는가? 실제로 일요일 트레킹을 마친 후에 나는 며칠간 앓아누워야했다.

 

죄송합니다. 오늘이 리워드 트레킹 첫날인데 지각을 해버렸네요... 너그러이 용서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정이야기를 드려서 그랬는지 모두다 넘어가주는 분위기였다. 역시 후원자분들이었다. 다른 곳이었으면 분명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리딩자가 어떻게 늦을 수 있냐며...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탐방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이 되었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이 좀 뿌옇게 보였다. 그래도 인왕산은 바로 옆에 있어서 그랬는지 멀리 있는 남산보다는 훨씬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인왕산입니다. 우리는 인왕산의 서쪽 면을 보고 있습니다. 경복궁이나 서촌 쪽에서 바라보는 인왕산과는 좀 다를 겁니다.”


어떻게 다르죠?”


경복궁 쪽에서는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려보잖아요. 그래서 인왕산의 암반 노출면이 두드러지게 보이죠. 하지만 이곳에서 보면 인왕산을 전체적으로 다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내사산인 인왕산이 북악산, 또 그 뒤에 있는 북한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자리를 잡고 있는지 확인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내 설명이 좀 부족했을지 모른다. 경복궁이나 서촌쪽에서 인왕산을 직접 올려다 본 후라야 저 해설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 곳을 제대로 보려면 365도로 다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산에서 보는 인왕산이 다르듯, 북한산에서 보는 인왕산도 다르거든요. 북한산에서는 인왕산의 북쪽면을 둘러볼 수 있죠.”

 

 




* 안산 자락길: 안산 자락길 표식.







펀딩 그런 거 몰라요. 그냥 트레킹이 좋아서...

 

나는 이렇게 힘을 주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사실 나 같아도 저런 딱딱한 해설보다는 시원한 풍광 쪽에 포인트를 맞췄을 거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참가자들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서울트레킹 펀딩의 취지가 좋아서 돈을 냈는지 아니면 그냥 트레킹이 좋아서 왔는지요.”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슬쩍 물어보았다.

 

스토리펀딩의 창작자 입장에서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오늘 트레킹에 참여를 하셨는데,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의 취지가 좋아서 참여를 했다 1, 그냥 펀딩 형식만 빌렸을 뿐 내 돈 내고 트레킹에 참여를 했다 2, 자 손을 들어 주십시오.”

 

압도적이었다. 내심 1번이 많았으면 했지만 거의 다 2번으로 손을 들어주셨다. 대충 감은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2번으로 중심추가 쏠리니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1번에 선 분들이 언젠가는 2번으로 자리바꿈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그렇게 자리를 옮기게 하려면 내가 잘해야 했다.

 

 



* 홍제천: 홍제천 인공폭포






 

승복을 입은 바위?

인왕산의 서울성곽 구간은 인왕산 자체보다 여기 안산에서 보는 게 더 낫습니다. 인왕산 정상부근에서 내려온 성곽이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 큰 바위 하나를 비켜서 나갑니다.”


무슨 바위죠?”


선바위입니다. 마치 바위가 승복을 입은 승려처럼 보인다고 해서 선()바위라고 불립니다. 성곽을 쌓을 때 무학대사는 저 선바위를 도성 안쪽에 놓자고 했지요. 하지만 정도전은 반대를 했습니다. 승복을 입은 거대한 바위가 도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계한 것이죠.”


누가 이긴 거죠?”


정도전이 이겼죠. 보시다시피 선바위는 성곽 밖에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했지만 아차 싶었다. 사실 멀리서보면 이 바위가 선바위인지, 저 바위가 선바위인지 잘 분간이 안 된다. 그래서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저 선바위 밑에 국사당이라고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대표적인 기도처가 있거든요. 거기가면 기도빨이 잘 받는다고 하니까 나중에 우리 거기 한 번 가보죠.”

 

애꿎은 국사당을 들먹이며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휴우!

안산의 자랑인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 홍제천 인공폭포 앞에서 트레킹은 무사히 종료가 됐다. 거의 4시간 정도 진행이 됐는데 한 분도 낙오하지 않고 모두 다 완주를 해주셨다.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 세검정: 북악산 역사트레킹.





 

다음은 북악산 역사트레킹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지만 서울트레킹 펀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리워드 트레킹은 북악산으로 이어집니다. 안 가시면 후회할 겁니다. 사실 안산 트레킹은 맛배기에 불과하거든요.”

 

안산 역사트레킹은 종료가 됐지만 앞으로도 리워드 트레킹은 계속된다. 당장 109일에 북악산 역사트레킹이 실시가 된다. 그날은 또 어떤 후원자들이 오실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미 오신다고 약속을 해주신 분들이 여럿이니 그날 먹을 김밥이랑 생수를 좀 넉넉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 표지속: 북악산 완전 개방 표지석. 





 















9월 25일 일요일.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제 발걸음은 분주했습니다. 이날은 안산 역사트레킹을 하는 날이었으니까요.


안산 트레킹은 처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좀 긴장이 되더군요. 처음하는 트레킹도 아닌데 긴장을???



저는 현재 다음 스토리펀딩에 <함께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에 올린 포스팅에도 기술되어 있지요. 이날 오신 분들은 모두 다 <함께걷는 서울트레킹>을 통해 참가를 해주신 분들입니다.

한마디로 저는 제게 후원해주신 분들과 함께 리워드 트레킹에 나선 것입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저처럼 후원자들과 직접 만나는 창작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간단한 티타임이나 강연 형식이 아닌 저처럼 서너시간을 함께하는 창작자는 더더욱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참가자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행운아에요. 이렇게 후원자분들을 직접 만나서 오랜시간을 함께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2348












 
























9월 24일 토요일.


제게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예전에 포스팅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이 날은 제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트레킹 강의를 첫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한겨레 문화센터면 왠만한 백화점 문화센터보다도 더 인지도가 있지 않습니까!


날씨도 좋더군요. 수강생들도 많이 오셨고. 저를 포함해서 총 19명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을 지날 때, '아차'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더군요.


가을날의 광화문은 축제의 연속입니다. 그 축제의 장으로 트레킹팀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소음과 번잡함 속으로 들어갔으니 정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제가 좀 말려버렸습니다. 9월의 광화문에 대해서 미리 판단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니 참가자분들도 제가 좀 미더웠을 겁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황은 좀 나아지는 것 같더군요. 일단 길이 예쁘고, 한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트레킹의 묘미는 한적함입니다. 한들한들 거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야 참가자들도 저도 숨통이 트이니까요.


첫 트레킹은 그저그렇게 끝났지만 다음부터는 더 잘해보고 싶네요. 수강생들의 열화가 같은 박수를 받는


그런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추신: 한겨레문화센터 강의에 너무 신경을 곤두 세웠나 봐요. 그날 트레킹 끝나고 그냥 뻗어버렸답니다.~ 

트레킹 한 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신경을 많이 썼나 봅니다. 잘해보려고 하는 욕심도 컸고요.  











 



 



 










 * 안산 자락길: 서대문 안산 자락길 표식
        








요즘도 가끔가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

"트레킹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런 질문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입 속에서 우물거리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대응능력은 예전보다는 좀 더 나아졌다.

"우리나라에서 글만 써서 밥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거의 없지 않나요."
"그렇죠. 거의 없죠. 이 트레킹 바닥은 그것보다 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걷기열풍이 휘몰아치지 않았던가. 그에 편승되어 각 지자체에서 앞 다투어 도보여행길을 개설하지 않았나. 그렇게 만들어진 트레일(trail:오솔길)이 무려 2만km가 넘는다. 또 아직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길 열풍은 또 어떤가.

참 아이러니컬하다. 그렇게 트레킹에 대한 물리적인 저변이 크게 확장됐음에도 트레킹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니! 

솔직히 나도 트레킹만으로 먹고 사는 입장이 못 된다. 얼마 전에도 시멘트 포대를 좀 날랐다. 각기목도 나르고. 공사판에서 일을 했던 것이다. 또 요즘은 추석 시즌이라 농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공사장일도 농장일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서 일당을 딱딱 받는 재미가 있으니까. 또 삼시 세끼를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트레킹으로 먹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적어도 트레킹과 관련된 일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필자: 남도의 어느 임도 길에서.     




● 트레킹의 정확한 어원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더 많이 답사를 다니고, 더 많이 자료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적절할 때 '아재 개그'를 터뜨려서 참가자들의 배꼽을 빠뜨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트레킹이든 답사여행이든 재밌어야하니까.

어쨌든 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트레킹의 어원을 잘못 쓰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아래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다.

최근 몇 년간 거세게 일어났던 도보여행 덕분일까? 우리는 트레킹(trekking)이라는 낯선 단어를 꽤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물며 이 글의 서두에서는 '트레킹으로 먹고 살 수 있냐'는 질문까지 적시되어 있다.

그렇듯 우리는 트레킹이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고 있다. 그것도 그냥 액면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접두사까지 붙여서 사용한다. 힐링트레킹, 숲길트레킹, 봄꽃트레킹 등등...








 * 공산성: 공산성 성곽길을 걷고 있는 도보여행자.      
        





한마디로 '트레킹'이란 명칭은 이제 우리에게 '등산'이란 단어만큼이나 친숙해진 말이 됐다. 하지만 트레킹이란 말은 자주 입에 올려도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싶다.

트레킹은 남아프리카의 보어인들이 소달구지 등을 이용하여 정처 없이 이동한다는 것을 그 어원으로 두고 있다. 여기서 보어(bore)인들은 네덜란드에서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즉 보어인들은 남아프리카 지역의 원주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백인이었고 네덜란드어를 썼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트레킹(trekking)이라는 말도 네덜란드어 'trek(끌기, 이동)'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부에서는 보어인들을 남아프리카 원주민으로 잘못 설명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원주민은 흑인인 줄루족인데도 보어인들을 원주민으로 잘못 지칭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원 설명도 뒤바뀌어 버렸다. 네덜란드 이주민들이 썼던 말을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썼던 말로 잘못 설명한 것이다.

그 설명대로 하자면 넬슨 만델라도 보어인이 된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때문에 온갖 박해를 받은 넬슨 만델라가 보어인이 되는 것이다. 보어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정책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어원 설명이 잘못되다보니, 나머지 사실들도 뒤죽박죽이 된 것이다. 참고로 만델라는 줄루족이 아닌 템부족 출신이다. 줄루족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다수 종족이다.

일부 도보여행 전문가들의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온라인 백과사전에도 그런 식으로 트레킹의 어원 설명을 잘못 기재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안은 확실하게 개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삼신봉: 지리산 삼신봉. 1284고지에 위치한 삼신봉. 저 곳에 올라서면 지리산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져진다.










● 트레킹 VS 등산

사실 트레킹의 어원이 네덜란드이든 남아프리카이든 걷기에 나선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걷기가 트레킹으로 불리든 도보여행으로 불리든 배낭을 둘러메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트레킹의 장점일 것이다. 트레킹의 효용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동어반복이 될 수 있다. 트레킹 좋은 거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차라리 누구나 다 아는 트레킹의 장점을 나열하는 것보다 등산과 비교하는 것이 더 알찬 일이 될 것이다.

등산은 '산에 오른다'라는 말처럼 수직적인 개념이다. 이에 비해 트레킹은 수평적인 개념이다. 산에 올라야 하기에 등산의 등판각은 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비해 산 주위를 둘러가는 트레킹은 등판각이 완만하다. 거의 평지를 걸을 때도 있다. 그렇게 완만한 길을 걷기에 등산보다는 관절에 부담이 덜 한 것이다.

관절의 부담만 덜한 것이 아니다. 심장의 부담도 덜하다. 등산 시에는 종종 호흡이 가팔라지지는 경우가 있지만 트레킹을 할 때는 그렇게 심장박동이 빨라질 일이 별로 없다. 그렇게 완만함이 유지되다 보니 접두사가 붙여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풍류, 역사, 봄꽃, 인문학 등등...

그런 접두사들은 테마로 도출된다. 한마디로 테마트레킹이 되는 것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헥헥' 거리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걸어 다니니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듣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추석 연휴도 막바지를 향해간다. 한 해의 소출을 거두는 귀중한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가을걷이가 이루어지는 들녘은 언제 봐도 풍요롭다.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농부들의 미소가 달덩이처럼 보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모두 다 보름달 같은 미소로 추석 연휴를 즐기셨으면 좋겠다. 나도 보름달 같은 미소를 짓고 싶다. 그리고 올해는 머뭇거렸지만 내년에는 당당히 답을 하고 싶다.

"트레킹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네, 많이는 못 벌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 안산 자락길: 안산 자락길을 산책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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